땅과 풀과 벌레와 대화하는 노동자들 기로에 서다
농촌진흥청 퇴출제 시행
“왜 이렇게 말랐어. 살 좀 쪄야겠어.”
“아니, 그 쪽이야 말로 몸 건강 좀 챙기셔야지…”
“우리는 여기서 잘 비육되고 있는데 뭘…”
인사말로 한마디 건네시고 커피 한 잔 타들고 나가는 씁쓸한 뒷모습이 마음을 아리고 지나갔다. 비육이라니….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처참한 표현이다. 도축하기 직전에 가축을 살찌우는 것을 비육이라고 하니, 생사 갈림길에 놓여 있으면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 그 분 스스로 느끼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그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 분은 지난 4월 말 하위 5% 인적 쇄신 대상자, 흔히 말해지는 퇴출 대상자로 선별되어 교육을 받고 계신 교육생이다. 농진청지부 집행부는 요즘 비정기적으로 농업현장기술지원단, 소위 퇴출 대상자들을 교육하고 있는 곳에 방문하고 있다. 이렇게 방문할 때마다 안타까운 얼굴들을 마주대하게 되고 복잡한 심정을 갖게 된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4월 28일 직원 중의 하위 5%인 107명을 인적 쇄신 대상자로 추려내고 중앙부처 최초의 과감한 인적 쇄신이라는 타이틀 아래 “무사 안일한 직원에게는 반성과 과감한 쇄신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그런데 말이 좋아 ‘인적 쇄신’이고 공무원 사회 개혁이지 이 안에서 들여다보니 그 실상은 정말 가관이다. 노동자운동을 접하면서부터는 ‘해고’니 ‘퇴출’이니 하는 문제들을 가장 많이 마주대했고, 그 대상자들의 생존권이나 해고의 부당함 등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구체적인 공간 안에서 가까이 지켜보니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정말 기가 찬 일들을 당하면서 사는구나, 심지어 정규직 공무원 사회인데도 이렇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이번 퇴출제 시행에 있어서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하위 5%를 선별하는 작업을 직원들 스스로 하게 했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미국의 GE사의 활력 곡선 방식을 도입해서 농촌진흥청의 경쟁력을 늘리겠다는 명목으로 직원들의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직원 평가’라는 것을 4월에 실시했다. 그런데 이 ‘직원 평가’는 직원이 다른 직원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게 하면서 농진청의 관료와 보직자들의 손에는 피한방울 안 묻히고 직원들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만드는 말 그대로 악랄한 수법이었다. 그리고 평가 항목도 ‘성과, 업무 지식, 기획력과 업무추진력, 조직기여도와 협조성’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평가자는 인사 한번 제대로 나눈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름만 보고 피평가자가 업무 지식은 얼마나 있는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일은 잘하는지를 평가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렇기 때문에 어떤 직원은 반농담 반진담으로 ‘눈감고 그냥 찍었다’고 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평가 과정 자체도 누가 봐도 어이없는 것들이었다. ‘성과’ 항목 역시도 3년간의 업무 실적을 A4용지 단 2장에 제출하게 하여 그것으로 평가를 하게 했으니 ‘직원 평가’ 자체의 문제점을 구구절절 더 나열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직원 평가’야 애초에 목적이 불순(?)하니 문제가 많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골라내진 하위 평가자들은 동료로부터 축출됐다는 상처를 얻게 되고, 반대로 그 직원을 평가했던 다른 직원들은 죄책감에 휩싸이고 자기 방어논리를 쌓게 된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직원들 사이의 분란과 갈등이 생겨 단결이 어렵게 됨과 동시에 전선이 흐트러지게 되는 것이면서 정작 이것을 시행한 농촌진흥청 관료들은 쏙 빠져나갈 수 있는 교묘하고 얄밉기 그지없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바로 엊그제(6월 말)에는 ‘승진’계획을 발표하고 승진 대상자가 된 직원들을 퇴출 대상자들 바로 옆 강의실에서 교육을 시키기까지 했다. 한 쪽은 퇴출 대상자로 교육을 받고, 한 쪽에서는 승진 대상자로 교육을 받는 직원들을 농천진흥청 관료들은 한 장소에서 교육을 시킨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한 지회에서 같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조합원들조차도 승진 대상자 쪽은 겸연쩍고 미안해서, 퇴출 대상자 쪽은 박탈감과 배신감 때문에 인사도 나누지 못한다. ‘인적 쇄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이나 갖다 붙이면서 농촌진흥청 관료들은 그저 언론에 떠들어대기 바쁘지만 공무원 개혁이라는 것의 실상은 ‘이 따위’다. 사실 애초에 고위 공무원들, 국가 관료들이 무엇인가 잘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도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이것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점입가경이다.
산과 바다, 땅을 연구하는 국가연구기관 민영화의 문제점
그런데 이러한 퇴출제를 급작스럽게 시행한 배경에는 지난 2월 대통령 인수위에서 농촌진흥청 민영화 방안을 내놓은 것에 있다는 것이 또 다른 핵심이다. 그 당시 분노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덕에 일단 한 목숨 구하기는 했지만 현재까지도 이명박 정권과 행정안전부에서는 농촌진흥청을 민영화하겠다는 기조를 확실히 하고 있어 농진청 지부에서는 중요한 투쟁 과제이다. 현재 대중적으로 물이나 의료 민영화 정도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국가연구기관 민영화의 문제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것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공공성’이나 ‘국가 기관으로 존치’를 둘러싼 쟁점은 일단 차치하고 폭을 좁혀 국가연구기관 민영화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짚어 보자면 간단하게는 이러한 것들이 있다. 지난 2월 인수위에서 폐지하고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한 국가연구기관은 농촌진흥청뿐만이 아니라 수산과학원, 산림과학원 등도 포함되어 있다. 대략 알고 있는 정도로만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바다에 갑자기 적조가 생겨서, 혹은 지난 서해안 기름유출 사태와 같은 재난으로 바다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일상적이고 꾸준한 연구와 역할을 하는 곳이 수산과학원이며 이것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어민들과도 밀접하다. 또 지난 동해안 산불이나 소나무 재선충병과 같이 예측되지 않은 긴급 재난에 대비한 연구 수행 및 대응 역할을 하는 곳은 산림과학원이다. 또 농촌진흥청은 카길과 같은 초국적 자본들이 비싼 값에 종자를 팔아넘기고 있는 지금 자체적으로 연구한 종자를 무상으로 농민들에게 보급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역할과 연구를 해왔다. 지금처럼 ‘효율성’이니 ‘경제성’이니 하는 것을 최고 가치로 따지는 마당에 그까짓 소나무 좀 말라죽든 말든, 바다에 적조가 생겨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든 말든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무상으로 지급하던 종자는 시장으로 팔아서 수익을 창출하고 우리나라도 카길같은 종자 회사 하나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꿈이니 말이다.
지난 2월, 인수위가 농진청 민영화를 발표했을 때 농진청 직원들은 소위 말해서 누가 ‘개입’하기도 전에 스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었다. “모두가 돈 되는 연구에 매달려 있을 때…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가진 공공적인 연구는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 주장을 접했을 때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가진 공공적인 연구’라는 말에는 괜히 찡하게 감동했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라는 대목에서 ‘자본주의’ 국가 기조에 맞는 ‘자본주의적 농업’을 앞서서 연구하고 수행하는 ‘국가장치’로서의 한계라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것도 상당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당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농진청 민영화 반대 싸움의 초점이 그저 ‘국가 기관으로 존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더 큰 가치를 지닌 연구’로 맞춰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어떤 운동을 기획해야 할까,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리저리 따져보면 현재 농진청 지부를 둘러싼 조건이 사실 썩 좋지는 않다. 공무원 노조는 정부 탄압과 조직 분열 이후 조합원들이 많이 위축되었고 조직력도 약화되었다. 농진청 지부 역시 같은 상황이고 ‘노동조합이 강성이라 농진청 폐지 상황이 왔다’는 도저히 말도 안 돼는 청측의 흑색선전과 일부 그것을 받아들여 ‘노조는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는 직원들이 있어 더더욱 안 좋다. 또한 이미 우려한 것처럼 농진청 직원들의 초점이 ‘국가 기관 존치’로 주로 맞춰지다보니 그 후과로 ‘국가기관으로 존치하지 않더라도, 즉 공무원 아니더라도 생계에만 문제없으면…’이라는 자기 위안과 스스로의 양보안을 내놓기도 한다. 조직력에서도 밀리고, 그렇다보니 이데올로기 전에서도 더욱 밀린다. 요즈음은 가끔 혼자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좋은 세상이 왔을 때, 혹은 그 과정에서 생태, 환경, 식량 주권 분야에서 이곳의 연구자들과 노동자들이 활약하는 상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민영화 반대 싸움의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농업 정책에 맞춘 농업 연구를 해오던 이들의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자기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욕심내기도 한다. 당장은 역동적인 출발이 없지만 기운 빠지고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이때에 또한 진심을 다해 잘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건강한 분들이 계시기에 여기에서부터 시작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가끔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다가 현실로 돌아와 보면 갑갑할 때도 많고, 그나마 있는 정규직 노조도 힘든 마당에 매일 마주치는 농진청의 ‘공공 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보면 빨리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쨌든 욕심이 앞서 기 보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아가는 것을 개인적인 우선 과제로 설정해놓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번에 사회진보연대에서 나온 <광우병, 한미FTA와 민중의 식량주권> 소책자는 정말 대환영이다. 이곳이 농축산물 분야 공무원들이다보니 환경, 생태, 농업 관련하여 매우 관심도 높고(일부이긴 하지만), 정세적으로 대화가 되는 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에게도 말할 거리와 입장, 조합원들과 같이 대화해볼 거리를 사회진보연대에서 제공해준 셈이다. 사회진보연대에서 또 한 분야에서도 잘 해내기를 바라면서 모두에게 건승을 빈다.
“왜 이렇게 말랐어. 살 좀 쪄야겠어.”
“아니, 그 쪽이야 말로 몸 건강 좀 챙기셔야지…”
“우리는 여기서 잘 비육되고 있는데 뭘…”
인사말로 한마디 건네시고 커피 한 잔 타들고 나가는 씁쓸한 뒷모습이 마음을 아리고 지나갔다. 비육이라니….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처참한 표현이다. 도축하기 직전에 가축을 살찌우는 것을 비육이라고 하니, 생사 갈림길에 놓여 있으면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 그 분 스스로 느끼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그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 분은 지난 4월 말 하위 5% 인적 쇄신 대상자, 흔히 말해지는 퇴출 대상자로 선별되어 교육을 받고 계신 교육생이다. 농진청지부 집행부는 요즘 비정기적으로 농업현장기술지원단, 소위 퇴출 대상자들을 교육하고 있는 곳에 방문하고 있다. 이렇게 방문할 때마다 안타까운 얼굴들을 마주대하게 되고 복잡한 심정을 갖게 된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4월 28일 직원 중의 하위 5%인 107명을 인적 쇄신 대상자로 추려내고 중앙부처 최초의 과감한 인적 쇄신이라는 타이틀 아래 “무사 안일한 직원에게는 반성과 과감한 쇄신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그런데 말이 좋아 ‘인적 쇄신’이고 공무원 사회 개혁이지 이 안에서 들여다보니 그 실상은 정말 가관이다. 노동자운동을 접하면서부터는 ‘해고’니 ‘퇴출’이니 하는 문제들을 가장 많이 마주대했고, 그 대상자들의 생존권이나 해고의 부당함 등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구체적인 공간 안에서 가까이 지켜보니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정말 기가 찬 일들을 당하면서 사는구나, 심지어 정규직 공무원 사회인데도 이렇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이번 퇴출제 시행에 있어서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하위 5%를 선별하는 작업을 직원들 스스로 하게 했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미국의 GE사의 활력 곡선 방식을 도입해서 농촌진흥청의 경쟁력을 늘리겠다는 명목으로 직원들의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직원 평가’라는 것을 4월에 실시했다. 그런데 이 ‘직원 평가’는 직원이 다른 직원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게 하면서 농진청의 관료와 보직자들의 손에는 피한방울 안 묻히고 직원들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만드는 말 그대로 악랄한 수법이었다. 그리고 평가 항목도 ‘성과, 업무 지식, 기획력과 업무추진력, 조직기여도와 협조성’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평가자는 인사 한번 제대로 나눈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름만 보고 피평가자가 업무 지식은 얼마나 있는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일은 잘하는지를 평가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렇기 때문에 어떤 직원은 반농담 반진담으로 ‘눈감고 그냥 찍었다’고 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평가 과정 자체도 누가 봐도 어이없는 것들이었다. ‘성과’ 항목 역시도 3년간의 업무 실적을 A4용지 단 2장에 제출하게 하여 그것으로 평가를 하게 했으니 ‘직원 평가’ 자체의 문제점을 구구절절 더 나열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직원 평가’야 애초에 목적이 불순(?)하니 문제가 많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골라내진 하위 평가자들은 동료로부터 축출됐다는 상처를 얻게 되고, 반대로 그 직원을 평가했던 다른 직원들은 죄책감에 휩싸이고 자기 방어논리를 쌓게 된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직원들 사이의 분란과 갈등이 생겨 단결이 어렵게 됨과 동시에 전선이 흐트러지게 되는 것이면서 정작 이것을 시행한 농촌진흥청 관료들은 쏙 빠져나갈 수 있는 교묘하고 얄밉기 그지없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바로 엊그제(6월 말)에는 ‘승진’계획을 발표하고 승진 대상자가 된 직원들을 퇴출 대상자들 바로 옆 강의실에서 교육을 시키기까지 했다. 한 쪽은 퇴출 대상자로 교육을 받고, 한 쪽에서는 승진 대상자로 교육을 받는 직원들을 농천진흥청 관료들은 한 장소에서 교육을 시킨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한 지회에서 같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조합원들조차도 승진 대상자 쪽은 겸연쩍고 미안해서, 퇴출 대상자 쪽은 박탈감과 배신감 때문에 인사도 나누지 못한다. ‘인적 쇄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이나 갖다 붙이면서 농촌진흥청 관료들은 그저 언론에 떠들어대기 바쁘지만 공무원 개혁이라는 것의 실상은 ‘이 따위’다. 사실 애초에 고위 공무원들, 국가 관료들이 무엇인가 잘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도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이것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점입가경이다.
산과 바다, 땅을 연구하는 국가연구기관 민영화의 문제점
그런데 이러한 퇴출제를 급작스럽게 시행한 배경에는 지난 2월 대통령 인수위에서 농촌진흥청 민영화 방안을 내놓은 것에 있다는 것이 또 다른 핵심이다. 그 당시 분노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덕에 일단 한 목숨 구하기는 했지만 현재까지도 이명박 정권과 행정안전부에서는 농촌진흥청을 민영화하겠다는 기조를 확실히 하고 있어 농진청 지부에서는 중요한 투쟁 과제이다. 현재 대중적으로 물이나 의료 민영화 정도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국가연구기관 민영화의 문제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것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공공성’이나 ‘국가 기관으로 존치’를 둘러싼 쟁점은 일단 차치하고 폭을 좁혀 국가연구기관 민영화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짚어 보자면 간단하게는 이러한 것들이 있다. 지난 2월 인수위에서 폐지하고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한 국가연구기관은 농촌진흥청뿐만이 아니라 수산과학원, 산림과학원 등도 포함되어 있다. 대략 알고 있는 정도로만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바다에 갑자기 적조가 생겨서, 혹은 지난 서해안 기름유출 사태와 같은 재난으로 바다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일상적이고 꾸준한 연구와 역할을 하는 곳이 수산과학원이며 이것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어민들과도 밀접하다. 또 지난 동해안 산불이나 소나무 재선충병과 같이 예측되지 않은 긴급 재난에 대비한 연구 수행 및 대응 역할을 하는 곳은 산림과학원이다. 또 농촌진흥청은 카길과 같은 초국적 자본들이 비싼 값에 종자를 팔아넘기고 있는 지금 자체적으로 연구한 종자를 무상으로 농민들에게 보급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역할과 연구를 해왔다. 지금처럼 ‘효율성’이니 ‘경제성’이니 하는 것을 최고 가치로 따지는 마당에 그까짓 소나무 좀 말라죽든 말든, 바다에 적조가 생겨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든 말든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무상으로 지급하던 종자는 시장으로 팔아서 수익을 창출하고 우리나라도 카길같은 종자 회사 하나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꿈이니 말이다.
지난 2월, 인수위가 농진청 민영화를 발표했을 때 농진청 직원들은 소위 말해서 누가 ‘개입’하기도 전에 스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었다. “모두가 돈 되는 연구에 매달려 있을 때…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가진 공공적인 연구는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 주장을 접했을 때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가진 공공적인 연구’라는 말에는 괜히 찡하게 감동했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라는 대목에서 ‘자본주의’ 국가 기조에 맞는 ‘자본주의적 농업’을 앞서서 연구하고 수행하는 ‘국가장치’로서의 한계라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것도 상당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당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농진청 민영화 반대 싸움의 초점이 그저 ‘국가 기관으로 존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더 큰 가치를 지닌 연구’로 맞춰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어떤 운동을 기획해야 할까,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리저리 따져보면 현재 농진청 지부를 둘러싼 조건이 사실 썩 좋지는 않다. 공무원 노조는 정부 탄압과 조직 분열 이후 조합원들이 많이 위축되었고 조직력도 약화되었다. 농진청 지부 역시 같은 상황이고 ‘노동조합이 강성이라 농진청 폐지 상황이 왔다’는 도저히 말도 안 돼는 청측의 흑색선전과 일부 그것을 받아들여 ‘노조는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는 직원들이 있어 더더욱 안 좋다. 또한 이미 우려한 것처럼 농진청 직원들의 초점이 ‘국가 기관 존치’로 주로 맞춰지다보니 그 후과로 ‘국가기관으로 존치하지 않더라도, 즉 공무원 아니더라도 생계에만 문제없으면…’이라는 자기 위안과 스스로의 양보안을 내놓기도 한다. 조직력에서도 밀리고, 그렇다보니 이데올로기 전에서도 더욱 밀린다. 요즈음은 가끔 혼자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좋은 세상이 왔을 때, 혹은 그 과정에서 생태, 환경, 식량 주권 분야에서 이곳의 연구자들과 노동자들이 활약하는 상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민영화 반대 싸움의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농업 정책에 맞춘 농업 연구를 해오던 이들의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자기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욕심내기도 한다. 당장은 역동적인 출발이 없지만 기운 빠지고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이때에 또한 진심을 다해 잘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건강한 분들이 계시기에 여기에서부터 시작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가끔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다가 현실로 돌아와 보면 갑갑할 때도 많고, 그나마 있는 정규직 노조도 힘든 마당에 매일 마주치는 농진청의 ‘공공 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보면 빨리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쨌든 욕심이 앞서 기 보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아가는 것을 개인적인 우선 과제로 설정해놓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번에 사회진보연대에서 나온 <광우병, 한미FTA와 민중의 식량주권> 소책자는 정말 대환영이다. 이곳이 농축산물 분야 공무원들이다보니 환경, 생태, 농업 관련하여 매우 관심도 높고(일부이긴 하지만), 정세적으로 대화가 되는 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에게도 말할 거리와 입장, 조합원들과 같이 대화해볼 거리를 사회진보연대에서 제공해준 셈이다. 사회진보연대에서 또 한 분야에서도 잘 해내기를 바라면서 모두에게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