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
이주노동자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다
표적단속과 강제추방, 그 후에는?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1990년대 초반부터 형성되었다. 1994년 1월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경실련 강당농성, 1995년 1월 네팔 산업기술연수생 13인의 명동성당 쇠사슬 농성투쟁 등이 그것들이다. 그 이후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기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2000년에 이주노동자 투쟁본부가 결성되었고 이는 2001년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로 이어졌다. 2003년 11월에는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쟁취를 위한 농성투쟁단을 구성하여 386일 동안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농성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대거 형성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에 의한, 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으로서 서울경인이주노조가 2005년 4월 건설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투쟁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단속추방이라는, 목숨을 내놓는 것과도 같은 위험을 무릅쓰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이주노동자가 제기해야 하고, 나아가 한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국경 없는 연대를 통해 전체 노동자의 해방을 앞당겨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은 스스로를 내던져 노조를 결성하고 이를 사수해 왔다. 그 과정에서 표적단속 되고 강제추방 된 이들은 부지기수다. 평등노조이주지부 활동가인 비두,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장 샤말, 이주노조 초대위원장 아느와르, 3대 위원장 까지만, 부위원장 라주, 사무국장 마숨, 3대 보궐 위원장 토르너, 부위원장 소부르 등이 대표적인 이들이다. 많은 이주노조 지부장, 간부, 조합원 등도 단속추방 당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표적단속과 강제추방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단속과 추방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단속에서 추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겪는 인격적인 모욕은 물론이거니와 범죄자 취급이나 보호소의 반인권적 환경으로 인한 분노, 한국에서의 생활과 활동을 정리할 최소한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본국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등은 심리상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필자의 눈앞에서 붙잡혀간 토르너 위원장이 분노와 아쉬움으로 보호소 면회실에서 흘리던 눈물, 연행 당하던 당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마냥 전화번호 수첩이 펼쳐져 있고 이런저런 명함이 널려있었던 소부르 부위원장의 쓸쓸한 방을 생각하면 그들의 심사가 어떨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짐을 이리저리 챙기고 통장의 돈을 찾아서 보내주고 안부 전화를 하고 하지만 역시 쓰리고 뼈저리기는 마찬가지다.
하도 강제추방을 당하다보니,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의 이주운동과 연계를 가지며 본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예전부터 있었다. 이미 네팔에서는 샤말과 버즈라 동지가 네팔노총(General Federation of Nepali Trade Union, GEFONT)에서 이주위원회(Migrant Committee)를 만들어 이주노동자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고, 방글라데시에서는 비두 동지가 BPS(Bikrampur Patriot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공동체 운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었다. 또 어떤 동지는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했다. 최근에 본국으로 돌아간 동지들은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운동 경험을 본국에서의 활동으로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본인들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국 적응과 생계 때문에 활동이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그것이 그 나라와 한국의 노동자운동에 기여하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었다.
국제회의 제안 경과
이주노동자들이 일단 나라로 추방되면 운동의 경험이 단절되고 더 이상의 관계를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이주노동자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이주노동자 지원센터들은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을 일찍부터 지원하여 그 나라에서 NGO 활동을 하도록 돕는 상황이다. 또한 이주노조로서는 계속되는 국가권력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표적단속과 강제추방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올해 초부터 전 평등노조이주지부 사무국장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안되었고 6월경에 가능한 사람들이 네팔에서 모여서 회의를 가지자는 내용이 이메일과 국제전화 등을 통해서 관련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주노조도 제안을 접하고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이런 동지들이 한국에서 활동했을 당시 한국의 노동자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서로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운동의 중요한 신뢰 및 동지애를 형성했다. 이 신뢰와 동지애는 연대 및 공동 활동의 든든한 바탕을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주노조는 본국으로 돌아간 활동가들과 체계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조직적으로 묶어내지 못했다. 그러하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간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서 각 나라의 정세/조건을 확인하고 한국과 송출국 노동운동 사이의 지속적인 소통과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하며 추후 공동의 조직사업과 투쟁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회의 제안문-
구체적인 목표로 설정한 것은 다음과 같다. 각국의 정치상황, 노동 사회 이주운동 상황을 공유하고 활동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고용허가제(EPS) 노동자 교육과 조직, 세계이주민의 날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공동활동을 논의한다. 한국 이주노조 탄압 현황을 공유하고 공동의 대응 방향을 논의한다. 송출국에서 이주하는 노동자들의 교육 및 조직 사업을 함께 논의하고 이를 추진 할 구체적 계획을 세운다.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조 사이의 소통 및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송출국에서 이주노동자 이슈에 대한 연대체 형성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신뢰와 동지애를 새롭게 확인하고 미래 활동의 영감을 키운다. 이러한 목표를 현지에서 참가자들과 다시 한 번 공유하고 2박 3일 간의 회의를 진행하였다. 참고로 회의 주최는 이주노조와 네팔동지회(가칭), 방글라데시동지회(가칭)였고 경북일반노조,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건설노조, 금속노조,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민주노총서울본부, 문화연대,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전교조, 참세상 변정필 동지, 금속노조 김혁 동지 등이 재정후원을 해주었다.
2박 3일의 발걸음
드디어 6월 12일 오후에 회의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이번 회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주목하고 있던 네팔노총에서는 사무총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대거 참석하여 힘을 실어 주었고, 또 다른 노총인 네팔노조회의(Nepali Trade Union Congress)에서도 부위원장이 참석하였다. 네팔에서는 주요 정당별로 이를 지지하는 노총이 있는데, 지난 4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1당이 된 네팔공산당(마오이스트, CPN-M) 계열로 전네팔노조연맹(All Nepal Federation of Trade Union), 2당이 된 국민의회당(Nepali Congress Party) 계열의 네팔노조회의, 3당이 된 네팔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 CPN-ML. 흔히 UML이라고 함) 계열의 네팔노총이 있다. 네팔노총이 35만 명 규모로 가장 크다고 한다. 참고로 네팔 정치 상황은 현재 지난 4월 선거를 통해 제헌의회가 구성되었고 1차 회의에서 왕정폐지를 선언해서 왕이 시민이 되어 왕궁에서 쫓겨난 상태다. 601석의 제헌의회 의석에서 마오이스트가 220여석으로 과반에서 약80석이 모자라는 1당이 되었고, 국민의회당이 40여석, UML이 30여석으로 3당이 되었다. 이 세 당이 권력분점(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을 놓고 정치협상을 하고 있고 제헌의회에서는 2년의 시한을 두고 헌법 제정 과정을 밟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공화국으로서 네팔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네팔노총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개막식에서는 네팔노총의 사무총장인 비노드 슈레스타(Binod Shrestha)와 네팔노조회의의 부위원장인 라마 포우델(Rama Poudel) 동지가 축사를 해주었다. 참가자로는 방글라데시에서 마숨(이주노조 전 사무국장), 비두(평등노조이주지부 전 활동가), 소부르(이주노조 전 부위원장), 민뚜(이주노조 전 서울부지부장), 네팔에서 샤말(명동성당농성투쟁단장), 버즈라(평등노조이주지부 전 활동가), 까지만(이주노조 전 위원장), 토르너(이주노조 전 위원장), 라주(이주노조 전 부위원장), 검(이주노조 전 동대문분회장), 바브람(이주노조 전 조합원), 건까시(라주동지 부인), 한국에서 필자를 포함하여 이주노조 2인, 영상활동가 문성준, 노동넷 이원배, 소냐(평등노조이주지부 전 사무국장) 등이 인사하였다.
개막식의 분위기는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교차하였다. 볼 수 있으리라 생각 못했던 동지들이 한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확인하게 되니 반가운 마음과 투쟁의 고락을 같이했던 동지애 등이 충만했다. 이렇게 모인 것만으로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매일의 뒤풀이로도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었다.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 결성
회의의 가시적인 성과는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를 결성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방글라데시, 네팔, 한국 사이의 네트워크로 출발하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이주노동자운동에 함께하는 다른 나라에도 확장하자는 결의도 하였다.
“본국으로 돌아가든 한국에 있든,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서 투쟁경험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신뢰와 동지애는 연대와 공동활동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 사이의 지리적 거리를 제한으로 여기지 않고 기회로 생각한다. 이주와 이주민 권리의 문제는 한국이나 다른 유입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님이 명확하다. 그것은 네팔과 방글라데시 같은 송출국의 사회적 조건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한국 이주노동자운동과 본국으로 돌아간 동지들 사이의 강고한 연대가 이러한 문제들을 국제적 수준에서 제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소통과 공동활동 구조가 있어야 한다.” -네트워크 제안문-
네트워크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한국 이주노동자운동, 이주노조와 방글라데시, 네팔 등 송출국 동지들 사이의 체계적인 소통 구조를 만든다. 각 국의 정치, 사회, 노동운동 상황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구조를 만든다. 공동활동을 논의하고 실천하는 구조를 만든다. 다른 송출국과 유입국을 포함하도록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또한 실천을 다음과 같이 하기로 하였다. 정기적인 소통과 정보공유(이주노조와 전직 평등노조이주지부/이주노조 간부, 관련 단체들을 포함하여)를 위해 온라인 상에 메일링리스트와 블로그를 만든다. 각 나라에서 전직 평등노조 이주지부, 이주노조 멤버들의 모임을 만들고 책임자를 정한다. 정기적인 회합을 가진다. 공동활동을 논의하기 위해 이주노조와 각 나라 모임이 1년에 한 번씩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이 활동을 위해 방글라데시 동지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이주 연대 네트워크’(Bangladesh Migrant Solidarity Network)를 만들기로 했고,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노동문제에 대해 선전하고 민주노총과 이주노조에 대해 알리겠다고 얘기했다. 또한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이주노동자들이 새로운 생활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주노동자 관련 여러 단체들과 연대하겠다고 얘기했다. 네팔 동지들 역시 고용허가제로 들어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고, 이주노조의 합법화를 위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겠다고 하였다. 또한 지속적인 연대와 지원 활동을 하고 네팔 국내에서 이주노동자 연대운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네팔노총에서 이주위원회를 각 지역본부에도 두는 계획을 올해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노조에 대한 제언도 많았다. 어렵더라도 직무대행을 선출하자, 웹사이트에 영문판도 만들고 업데이트를 잘 하자, 조합원 확대를 위해 한국노동조합이 있는 이주노동자 사업장을 잘 조직하자, 리더십 교육을 체계적으로 하자 등 애정 어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공동활동에 대해서는 각 나라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주노조를 알리는 활동을 주로 논의했다. 이주노조 소개 자료와 현재 한국정부의 정책의 문제점 등을 선전물로 만들어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자고 얘기했다. 이미 네팔과 방글라데시에서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을 접촉하고 있었고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 보였다. 물론 그것이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과 본국의 노동자운동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국제연대에 대해서는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각 나라 단체들에게서 서명을 받기로 했고, 우선 이 회의에 참여한 활동가들의 서명을 받았다. 또한 가능한 국제회의에 이주동지들이 직접 참여해서 경험을 발표하고 이주노조 합법화 지지를 호소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12월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에는 이주노조와 연계하여 각 나라에서 행사를 추진하기로 했고, 현수막을 교환해서 걸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리고 여수보호소 화재참사가 일어난 2월 11일을 국제적으로 이주노동자 추모의 날로 제안하자는 얘기도 되었다.
그리고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에서 ‘아시아 노동넷’(Asia Labornet) 구축 계획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노동운동 뉴스를 자국어와 영어로 올리고 이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계획이다. 올해 말에는 각국의 웹마스터를 교육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회의 내용을 14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회의 참가자들과 더불어 네팔노총 간부들, 말레이시아에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대표 등이 참여하여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발표하였고 회의 선언문을 마숨 동지가 낭독하였다. 기자회견 이후에는 한국에서 촬영해 간 한국 동지들의 영상메시지를 보면서 연대의 인사를 들었고, 투쟁 영상과 ‘필승 연영석 ver 2.0’을 보면서 한국에서의 투쟁 경험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 후 이번 회의에 대한 평가 시간을 간략하게 가졌다. 여러 동지들이 공통적으로 이 회의를 성공적이고 훌륭한 만남이었다고 성과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모임을 예전부터 생각만 했는데 현실로 되어서 좋았고, 이주노조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한 회의를 통해 서로 힘을 얻었고 회의에서 논의한 것을 앞으로 잘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우리가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 만들었다. 한국 이주동지들이 나라에 돌아가면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이주노동자 권리 위해 활동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꿈 있었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 많은 일이 남아 있고 열심히 해야 한다. 우리의 결정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지 종이에 써 놓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꼭 고민해야 한다. 지난 3일 너무 좋았고 네팔에서 하나의 매뉴얼이 될 것이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MTU 만들지 못했지만 여러 동지들의 희생으로 MTU 만들었다. 그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MTU에서 현재 활동하는 동지들과 연대 동지들께 매우 감사드린다. 우리의 빚이라고 생각한다. MTU는 합법화될 것이고 세계적인 선례가 될 것이라는 믿음 갖고 있다.” -샤말 동지 평가 발언-
한편 회의에서 제안된 한국대사관 앞 항의집회가 6월 16일 오전 11시에 네팔 한국대사관 앞에서 개최되었다. 회의 참가자들을 포함하여 네팔노총 100여 명이 참석하였고 동지들이 발언도 잘하고 한국영사를 만나 항의서한과 선언문을 전달하는 등 힘차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작지만 큰 걸음
이번 회의는 작지만 큰 걸음이었다.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을 주도적으로 하였던 활동가들이 많이 모였고 실천적인 고민을 나누며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고 결과를 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방글라데시, 한국, 네팔 동지들이 모여서 그 동안의 투쟁과 경험, 아픔 등을 서로 나누고 토론과 논의를 통해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공통의 고민을 나누고 동지애를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단속추방이 이주노동자운동의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운동의 시작이라는 점을 서로 확인하고 나아가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출발점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번 회의가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치유의식이지 않았나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을 하면서 단속추방당한 동지들은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분노와 상처와 아쉬움이 있고 계속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한국 동지들 역시 저마다 그러한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회의하는 사이사이에, 차를 마시면서, 뒤풀이를 하면서 마음속의 얘기들을 서로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동안 맺혔던 부분을 정서적으로 어느 정도 푸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국내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5월부터 7월까지 집중적인 정부 합동단속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날마다 잡혀가고 있고, 보호소는 잡혀온 이주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며칠 동안 한 지역에 계속 들어가서 그 지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싹쓸이하는가 하면, 야간에도 단속을 하고 경찰의 검문을 강화하여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있다. 그래서 단속 과정에서 다치는 이주노동자들도 많다. 한번쯤 산으로 도망가보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 거듭되는 표적단속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정부는 앞으로 단속반원을 5백 명 수준으로 늘리고 상시적인 합동단속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상시화된 인간사냥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국가권력의 폭력이 이주노동자들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주노조 역시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이주노조 인정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6~7월에는 단속추방 반대운동과,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주노조 인정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 합법화 캠페인, 지역조직 확대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현재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결합하여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과 이주노조 합법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고, 6월 5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단속반대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7월에는 이주공동행동 차원으로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중행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추진하고 있고 국제조직들의 지지 입장을 조직하고 있다. 지역에서도 경기이주공대위가 매월 이주문화제를 개최하고 있고, 대구경북투쟁대책위원회에서 대구출입국사무소 앞 농성투쟁과 집중집회를 지속하고 있다. 부산경남대책위원회에서도 부산출입국사무소 앞 집회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내부적으로는 각 지역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조직화 계획을 새로이 세우고 추동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한 성과가 현실화되어 현재의 한국 이주노동자운동과 송출국의 노동자운동이 연대를 강화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 선언문
2008년 6월 14일, 네팔 카트만두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평등노조이주지부, 명동성당 농성투쟁, 서울경기인천이주노조 활동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운동을 만드는 과정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많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한국정부의 표적단속으로 인해 강제로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평등노조이주지부와 이주노조 전 간부들, 이주노조 현 간부들인 우리들은 표적탄압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6월 12-14일 네팔 카투만두에 모였다. 우리는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조직했다. 지난 2박 3일 동안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그 외 송출국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논의했고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한국 그리고 나아가 다른 나라들 사이에 체계적인 소통과 공동활동을 위해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 IMWSN)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 우리는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 교육과 훈련 활동을 할 것이다.
- 우리는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해서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과 같은 국제 행동을 조직할 것이다.
-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그 외 다른 나라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 평등노조이주지부와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모임을 조직할 것이다.
- 우리는 네팔 GEFONT 이주위원회를 지지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이주노동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직화를 지원할 것이다.
- 우리는 비자 상태 여부에 상관없이 이주노동자를 위해 이주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주노조의 상징적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이주노조의 합법화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할 것이다.
- 우리는 한국정부에 우리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각 나라 한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개최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정부의 탄압에 의해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 함께 했던 운동의 경험을 한국 이주노동자운동의 강화의 기회로 만들고 송출국과 유입국 운동 간의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이주노조의 투쟁에 대해 본국과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한국정부가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집단적인 목소리를 높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우리는 신뢰와 동지애를 새롭게 하였고 새로운 국제적 공간에서 함께 활동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네트워크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나라와 세계에서 노동자의 권리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이주노조에 대한 표적단속과 탄압을 중단하라!
- 단속추방 중단하고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하라!
-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라!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 참가자 일동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1990년대 초반부터 형성되었다. 1994년 1월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경실련 강당농성, 1995년 1월 네팔 산업기술연수생 13인의 명동성당 쇠사슬 농성투쟁 등이 그것들이다. 그 이후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기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2000년에 이주노동자 투쟁본부가 결성되었고 이는 2001년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로 이어졌다. 2003년 11월에는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쟁취를 위한 농성투쟁단을 구성하여 386일 동안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농성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대거 형성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에 의한, 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으로서 서울경인이주노조가 2005년 4월 건설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투쟁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단속추방이라는, 목숨을 내놓는 것과도 같은 위험을 무릅쓰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이주노동자가 제기해야 하고, 나아가 한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국경 없는 연대를 통해 전체 노동자의 해방을 앞당겨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은 스스로를 내던져 노조를 결성하고 이를 사수해 왔다. 그 과정에서 표적단속 되고 강제추방 된 이들은 부지기수다. 평등노조이주지부 활동가인 비두,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장 샤말, 이주노조 초대위원장 아느와르, 3대 위원장 까지만, 부위원장 라주, 사무국장 마숨, 3대 보궐 위원장 토르너, 부위원장 소부르 등이 대표적인 이들이다. 많은 이주노조 지부장, 간부, 조합원 등도 단속추방 당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표적단속과 강제추방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단속과 추방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단속에서 추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겪는 인격적인 모욕은 물론이거니와 범죄자 취급이나 보호소의 반인권적 환경으로 인한 분노, 한국에서의 생활과 활동을 정리할 최소한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본국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등은 심리상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필자의 눈앞에서 붙잡혀간 토르너 위원장이 분노와 아쉬움으로 보호소 면회실에서 흘리던 눈물, 연행 당하던 당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마냥 전화번호 수첩이 펼쳐져 있고 이런저런 명함이 널려있었던 소부르 부위원장의 쓸쓸한 방을 생각하면 그들의 심사가 어떨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짐을 이리저리 챙기고 통장의 돈을 찾아서 보내주고 안부 전화를 하고 하지만 역시 쓰리고 뼈저리기는 마찬가지다.
하도 강제추방을 당하다보니,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의 이주운동과 연계를 가지며 본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예전부터 있었다. 이미 네팔에서는 샤말과 버즈라 동지가 네팔노총(General Federation of Nepali Trade Union, GEFONT)에서 이주위원회(Migrant Committee)를 만들어 이주노동자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고, 방글라데시에서는 비두 동지가 BPS(Bikrampur Patriot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공동체 운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었다. 또 어떤 동지는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했다. 최근에 본국으로 돌아간 동지들은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운동 경험을 본국에서의 활동으로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본인들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국 적응과 생계 때문에 활동이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그것이 그 나라와 한국의 노동자운동에 기여하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었다.
국제회의 제안 경과
이주노동자들이 일단 나라로 추방되면 운동의 경험이 단절되고 더 이상의 관계를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이주노동자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이주노동자 지원센터들은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을 일찍부터 지원하여 그 나라에서 NGO 활동을 하도록 돕는 상황이다. 또한 이주노조로서는 계속되는 국가권력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표적단속과 강제추방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올해 초부터 전 평등노조이주지부 사무국장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안되었고 6월경에 가능한 사람들이 네팔에서 모여서 회의를 가지자는 내용이 이메일과 국제전화 등을 통해서 관련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주노조도 제안을 접하고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구체적인 목표로 설정한 것은 다음과 같다. 각국의 정치상황, 노동 사회 이주운동 상황을 공유하고 활동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고용허가제(EPS) 노동자 교육과 조직, 세계이주민의 날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공동활동을 논의한다. 한국 이주노조 탄압 현황을 공유하고 공동의 대응 방향을 논의한다. 송출국에서 이주하는 노동자들의 교육 및 조직 사업을 함께 논의하고 이를 추진 할 구체적 계획을 세운다.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조 사이의 소통 및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송출국에서 이주노동자 이슈에 대한 연대체 형성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신뢰와 동지애를 새롭게 확인하고 미래 활동의 영감을 키운다. 이러한 목표를 현지에서 참가자들과 다시 한 번 공유하고 2박 3일 간의 회의를 진행하였다. 참고로 회의 주최는 이주노조와 네팔동지회(가칭), 방글라데시동지회(가칭)였고 경북일반노조,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건설노조, 금속노조,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민주노총서울본부, 문화연대,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전교조, 참세상 변정필 동지, 금속노조 김혁 동지 등이 재정후원을 해주었다.
2박 3일의 발걸음
드디어 6월 12일 오후에 회의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이번 회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주목하고 있던 네팔노총에서는 사무총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대거 참석하여 힘을 실어 주었고, 또 다른 노총인 네팔노조회의(Nepali Trade Union Congress)에서도 부위원장이 참석하였다. 네팔에서는 주요 정당별로 이를 지지하는 노총이 있는데, 지난 4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1당이 된 네팔공산당(마오이스트, CPN-M) 계열로 전네팔노조연맹(All Nepal Federation of Trade Union), 2당이 된 국민의회당(Nepali Congress Party) 계열의 네팔노조회의, 3당이 된 네팔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 CPN-ML. 흔히 UML이라고 함) 계열의 네팔노총이 있다. 네팔노총이 35만 명 규모로 가장 크다고 한다. 참고로 네팔 정치 상황은 현재 지난 4월 선거를 통해 제헌의회가 구성되었고 1차 회의에서 왕정폐지를 선언해서 왕이 시민이 되어 왕궁에서 쫓겨난 상태다. 601석의 제헌의회 의석에서 마오이스트가 220여석으로 과반에서 약80석이 모자라는 1당이 되었고, 국민의회당이 40여석, UML이 30여석으로 3당이 되었다. 이 세 당이 권력분점(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을 놓고 정치협상을 하고 있고 제헌의회에서는 2년의 시한을 두고 헌법 제정 과정을 밟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공화국으로서 네팔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네팔노총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개막식에서는 네팔노총의 사무총장인 비노드 슈레스타(Binod Shrestha)와 네팔노조회의의 부위원장인 라마 포우델(Rama Poudel) 동지가 축사를 해주었다. 참가자로는 방글라데시에서 마숨(이주노조 전 사무국장), 비두(평등노조이주지부 전 활동가), 소부르(이주노조 전 부위원장), 민뚜(이주노조 전 서울부지부장), 네팔에서 샤말(명동성당농성투쟁단장), 버즈라(평등노조이주지부 전 활동가), 까지만(이주노조 전 위원장), 토르너(이주노조 전 위원장), 라주(이주노조 전 부위원장), 검(이주노조 전 동대문분회장), 바브람(이주노조 전 조합원), 건까시(라주동지 부인), 한국에서 필자를 포함하여 이주노조 2인, 영상활동가 문성준, 노동넷 이원배, 소냐(평등노조이주지부 전 사무국장) 등이 인사하였다.
개막식의 분위기는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교차하였다. 볼 수 있으리라 생각 못했던 동지들이 한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확인하게 되니 반가운 마음과 투쟁의 고락을 같이했던 동지애 등이 충만했다. 이렇게 모인 것만으로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매일의 뒤풀이로도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었다.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 결성
회의의 가시적인 성과는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를 결성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방글라데시, 네팔, 한국 사이의 네트워크로 출발하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이주노동자운동에 함께하는 다른 나라에도 확장하자는 결의도 하였다.
네트워크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한국 이주노동자운동, 이주노조와 방글라데시, 네팔 등 송출국 동지들 사이의 체계적인 소통 구조를 만든다. 각 국의 정치, 사회, 노동운동 상황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구조를 만든다. 공동활동을 논의하고 실천하는 구조를 만든다. 다른 송출국과 유입국을 포함하도록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또한 실천을 다음과 같이 하기로 하였다. 정기적인 소통과 정보공유(이주노조와 전직 평등노조이주지부/이주노조 간부, 관련 단체들을 포함하여)를 위해 온라인 상에 메일링리스트와 블로그를 만든다. 각 나라에서 전직 평등노조 이주지부, 이주노조 멤버들의 모임을 만들고 책임자를 정한다. 정기적인 회합을 가진다. 공동활동을 논의하기 위해 이주노조와 각 나라 모임이 1년에 한 번씩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이 활동을 위해 방글라데시 동지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이주 연대 네트워크’(Bangladesh Migrant Solidarity Network)를 만들기로 했고,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노동문제에 대해 선전하고 민주노총과 이주노조에 대해 알리겠다고 얘기했다. 또한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이주노동자들이 새로운 생활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주노동자 관련 여러 단체들과 연대하겠다고 얘기했다. 네팔 동지들 역시 고용허가제로 들어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고, 이주노조의 합법화를 위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겠다고 하였다. 또한 지속적인 연대와 지원 활동을 하고 네팔 국내에서 이주노동자 연대운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네팔노총에서 이주위원회를 각 지역본부에도 두는 계획을 올해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노조에 대한 제언도 많았다. 어렵더라도 직무대행을 선출하자, 웹사이트에 영문판도 만들고 업데이트를 잘 하자, 조합원 확대를 위해 한국노동조합이 있는 이주노동자 사업장을 잘 조직하자, 리더십 교육을 체계적으로 하자 등 애정 어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공동활동에 대해서는 각 나라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주노조를 알리는 활동을 주로 논의했다. 이주노조 소개 자료와 현재 한국정부의 정책의 문제점 등을 선전물로 만들어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자고 얘기했다. 이미 네팔과 방글라데시에서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을 접촉하고 있었고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 보였다. 물론 그것이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과 본국의 노동자운동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국제연대에 대해서는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각 나라 단체들에게서 서명을 받기로 했고, 우선 이 회의에 참여한 활동가들의 서명을 받았다. 또한 가능한 국제회의에 이주동지들이 직접 참여해서 경험을 발표하고 이주노조 합법화 지지를 호소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12월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에는 이주노조와 연계하여 각 나라에서 행사를 추진하기로 했고, 현수막을 교환해서 걸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리고 여수보호소 화재참사가 일어난 2월 11일을 국제적으로 이주노동자 추모의 날로 제안하자는 얘기도 되었다.
그리고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에서 ‘아시아 노동넷’(Asia Labornet) 구축 계획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노동운동 뉴스를 자국어와 영어로 올리고 이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계획이다. 올해 말에는 각국의 웹마스터를 교육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회의 내용을 14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회의 참가자들과 더불어 네팔노총 간부들, 말레이시아에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대표 등이 참여하여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발표하였고 회의 선언문을 마숨 동지가 낭독하였다. 기자회견 이후에는 한국에서 촬영해 간 한국 동지들의 영상메시지를 보면서 연대의 인사를 들었고, 투쟁 영상과 ‘필승 연영석 ver 2.0’을 보면서 한국에서의 투쟁 경험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 후 이번 회의에 대한 평가 시간을 간략하게 가졌다. 여러 동지들이 공통적으로 이 회의를 성공적이고 훌륭한 만남이었다고 성과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모임을 예전부터 생각만 했는데 현실로 되어서 좋았고, 이주노조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한 회의를 통해 서로 힘을 얻었고 회의에서 논의한 것을 앞으로 잘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한편 회의에서 제안된 한국대사관 앞 항의집회가 6월 16일 오전 11시에 네팔 한국대사관 앞에서 개최되었다. 회의 참가자들을 포함하여 네팔노총 100여 명이 참석하였고 동지들이 발언도 잘하고 한국영사를 만나 항의서한과 선언문을 전달하는 등 힘차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작지만 큰 걸음
이번 회의는 작지만 큰 걸음이었다.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을 주도적으로 하였던 활동가들이 많이 모였고 실천적인 고민을 나누며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고 결과를 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방글라데시, 한국, 네팔 동지들이 모여서 그 동안의 투쟁과 경험, 아픔 등을 서로 나누고 토론과 논의를 통해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공통의 고민을 나누고 동지애를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단속추방이 이주노동자운동의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운동의 시작이라는 점을 서로 확인하고 나아가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출발점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번 회의가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치유의식이지 않았나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을 하면서 단속추방당한 동지들은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분노와 상처와 아쉬움이 있고 계속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한국 동지들 역시 저마다 그러한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회의하는 사이사이에, 차를 마시면서, 뒤풀이를 하면서 마음속의 얘기들을 서로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동안 맺혔던 부분을 정서적으로 어느 정도 푸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국내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5월부터 7월까지 집중적인 정부 합동단속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날마다 잡혀가고 있고, 보호소는 잡혀온 이주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며칠 동안 한 지역에 계속 들어가서 그 지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싹쓸이하는가 하면, 야간에도 단속을 하고 경찰의 검문을 강화하여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있다. 그래서 단속 과정에서 다치는 이주노동자들도 많다. 한번쯤 산으로 도망가보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 거듭되는 표적단속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정부는 앞으로 단속반원을 5백 명 수준으로 늘리고 상시적인 합동단속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상시화된 인간사냥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국가권력의 폭력이 이주노동자들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주노조 역시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이주노조 인정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6~7월에는 단속추방 반대운동과,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주노조 인정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 합법화 캠페인, 지역조직 확대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현재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결합하여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과 이주노조 합법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고, 6월 5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단속반대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7월에는 이주공동행동 차원으로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중행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추진하고 있고 국제조직들의 지지 입장을 조직하고 있다. 지역에서도 경기이주공대위가 매월 이주문화제를 개최하고 있고, 대구경북투쟁대책위원회에서 대구출입국사무소 앞 농성투쟁과 집중집회를 지속하고 있다. 부산경남대책위원회에서도 부산출입국사무소 앞 집회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내부적으로는 각 지역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조직화 계획을 새로이 세우고 추동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한 성과가 현실화되어 현재의 한국 이주노동자운동과 송출국의 노동자운동이 연대를 강화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8년 6월 14일, 네팔 카트만두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평등노조이주지부, 명동성당 농성투쟁, 서울경기인천이주노조 활동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운동을 만드는 과정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많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한국정부의 표적단속으로 인해 강제로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평등노조이주지부와 이주노조 전 간부들, 이주노조 현 간부들인 우리들은 표적탄압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6월 12-14일 네팔 카투만두에 모였다. 우리는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조직했다. 지난 2박 3일 동안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그 외 송출국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논의했고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한국 그리고 나아가 다른 나라들 사이에 체계적인 소통과 공동활동을 위해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 IMWSN)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 우리는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 교육과 훈련 활동을 할 것이다.
- 우리는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해서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과 같은 국제 행동을 조직할 것이다.
-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그 외 다른 나라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 평등노조이주지부와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모임을 조직할 것이다.
- 우리는 네팔 GEFONT 이주위원회를 지지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이주노동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직화를 지원할 것이다.
- 우리는 비자 상태 여부에 상관없이 이주노동자를 위해 이주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주노조의 상징적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이주노조의 합법화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할 것이다.
- 우리는 한국정부에 우리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각 나라 한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개최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정부의 탄압에 의해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 함께 했던 운동의 경험을 한국 이주노동자운동의 강화의 기회로 만들고 송출국과 유입국 운동 간의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이주노조의 투쟁에 대해 본국과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한국정부가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집단적인 목소리를 높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우리는 신뢰와 동지애를 새롭게 하였고 새로운 국제적 공간에서 함께 활동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네트워크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나라와 세계에서 노동자의 권리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이주노조에 대한 표적단속과 탄압을 중단하라!
- 단속추방 중단하고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하라!
-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라!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