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담론과 탄소거래의 문제점
이명박 대통령은 7월 9일 일본에서 열리는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위기 공동대처를 위한 G8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정부는 이것을 계기로 국가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 9위(2005년 기준)다. 또 1990년에서 2004년 사이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약 90%로 OECD국가 중 1위다. 따라서 2012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 체제 후에 등장할 국제적 온실가스 감축 체제(포스트 교토체제) 논의에서 더 이상 개도국이라는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
이런 객관적인 조건에다 정부의 한 관계자 말대로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G8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만큼 우리로서도 국가적인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6월 9일 2020년까지 일본이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14% 줄이겠다는 ‘후쿠다 비전’을 직접 발표했다. G8확대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협상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여 정부는 6월 13~14일 100여명의 정부관계자, NGO, 학자 등이 모인 가운데 ‘기후변화 대책 워크숍’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환경운동연합 등 NGO들은 한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20% 줄여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의 주류 환경단체들의 주요 운동 전략은 정부 압박이다. 국제회의에 참가해서 한국 대표가 책임 있는 자세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를 주문하고, 국내에서도 때로는 상징적인 항의로 때로는 동반자 관계를 맺으며 한국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에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가 주최한 워크숍에 참여해서 정부 시안보다 ‘강력한’ 감축목표를 요구한 것은 그러한 활동 방식 속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온실가스의 급진적인 감축. 물론 설정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목표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물론이고 환경단체를 포함해서 한국사회에서 기후변화를 논의하는 주체들은 막상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재 발생하는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가장 기본적이면서 근본적인 질문은 기후변화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구조는 무엇이고,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다.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다양한 이유’로 심각성을 인정하고, 단지 강력한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를 발생시킨 사회관계를 유지한 채, 또는 그 관계를 활용해서 기후변화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역설 말이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해법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현황과 문제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전개와 교토메커니즘
1992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고, 1994년 50개국 이상이 비준하여 기후변화협약이 발효한 이래 매년 국제적인 기후변화협상이 진행되고 있다.1)
작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3차 당사국 총회가 개최되어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합의한 발리로드맵을 채택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 할 때는 교토의정서가 빠지지 않는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되었는데 ①부속서 1 국가의 구속력 있는 감축목표 설정(제3조),2)
②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 등 시장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수단의 도입(제6조, 12조, 17조), ③국가 간 연합을 통한 공동 감축목표 달성 허용(제4조) 등이 주요 내용이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부속서 1 국가(38개국)는 2008년에서 2012년까지 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 비해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국가별 감축 목표는 각국의 여건에 따라 -8%에서 +10%까지 다양하다. 유럽연합의 경우 국가 간 연합을 통한 공동 감축목표(이른바 버블 방식)에 따라 8% 감축이지만 소속 국가 간 합의를 통해 각 국별로는 포르투갈 7% 증가에서 룩셈부르크 28% 감소까지 다양하다. 교토메커니즘(유연성체제로 부르기도 한다)은 부속서 1 국가가 자국 내 감축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저렴하게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시장 기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토메커니즘에는 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 세 가지가 있다. 추가하여 산림이나 토지를 온실가스의 흡수원으로 인정하고 활용하는 것도 논란 끝에 허용되었다.
1997년 교토에서 열린 3차 당사국회의 이후 시장과 기술 위주의 정책이 기후변화의 주요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이후 당사국총회에서는 교토메커니즘의 운용방안과 흡수원의 인정범위에 협상의 초점이 맞춰졌다. 기후변화에 대한 초기 논의 쟁점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라면 교토회의 이후에는 다음과 같은 쟁점이 주로 다루어졌다. 첫째 감축 목표 수준 및 설정 방식, 둘째 교토메커니즘(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의 도입과 세부방안, 셋째 개발도상국의 의무 부담 문제, 넷째 흡수원의 인정여부 및 범위. 기후변화협상이 진행되면서 기후변화가 발생한 역사-사회 구조 문제와 세계 질서의 불평등과 책임의 차이 문제에서 감축 목표와 수단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쟁점이 변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적인 논의의 중심에 교토메커니즘이 존재했다.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6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의 세부 운용방안에 대해 당사국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2001년에 미국의 부시 정부가 교토의정서 탈퇴선언을 했다.3)
미국의 탈퇴로 위태로워진 교토의정서가 꼭 발효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2001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속개회의는 그간의 이견을 조율하여 합의에 이른다(본 합의). 그 내용은 산림이나 토지를 이산화탄소 흡수원으로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교토메커니즘을 제한 없이 활용하며, 토지나 산림이용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청정개발체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미국이 요구해온 사항들이 거의 수용되는 방향이었다. 한편 본 합의는 온실가스 감축의무 불이행에 대한 강력한 제제 방안을 배제함으로써 교토의정서를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합의로 만들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가 사라졌다. 곧이어 2001년 11월에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7차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메커니즘의 구체적인 절차 등을 최종적으로 논의해 교토의정서의 비준과 이행방안에 대한 최종합의가 이뤄졌다(마라케시 합의). 그리고 2004년 말 러시아가 교토의정서에 비준함으로써 2005년 2월 교토의정서가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2005년 이후 당사국총회는 포스트 교토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논의가 집중되었다.
교토의정서가 비준되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의무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이행시기에 접어들자 기후변화 완화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교토메커니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높다. 또 교토메커니즘이 허용한 탄소거래를 바탕으로 돈을 버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작년에 탄소펀드가 출시되고, 탄소배출권 거래소 개설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청정개발체제 사업의 경우 한국은 유엔 등록기준 4위, 예상 온실가스 감축량 기준 3위로 수위이고, 정부와 기업도 적극적인 추진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과 전략은 문제의 초점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지배적인 관점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에서 빈번해진 극단적인 기후현상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절대화되고 그 방법으로 교토의정서와 교토메커니즘은 불문에 부쳐진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방안으로 승인된 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와 같이 무형의 자연에 재산권을 부여하고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안은 온실효과의 증대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경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를 중시하고, 주류 환경운동은 이것이 기후변화의 ‘현실적’이고 ‘유일한’인 대책임을 강조한다. 강조점의 차이는 있으나 기후변화의 해법에 있어서는 일정한 의견일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인한 기후변화는 사회 모든 영역에 심대한 위기요인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대한 간단한 대응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토메커니즘과 같은 방식은 기후변화에 대한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적 위기대응 방식이다. 외교적 협상, 기술과 통제에 대한 낙관주의, 이해관계 당사자 사이의 윈-윈 논리를 따르는 이러한 방식은, 복잡한 이산화탄소 대차대조표 속에서 작동된다. 그러나 실제로 온실가스의 감축이 이루어졌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탄소거래, 자본의 새로운 놀이터
총량거래와 탄소상쇄
교토메커니즘을 활용해서 온실가스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식을 통칭하여 탄소거래라고 부른다. 탄소거래라는 아이디어의 연원은 1970~198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질소산화물, 이산화황 등 오염물질에 대한 총량거래제도다. 1990년대 동안 미국 정부는 유엔이 이 제도를 수용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미국 경제학자들은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선전했다. 유엔에서 기후변화 논의가 시작되자 기업과 각국 정부들은 부담을 줄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감축 방안을 관철하기 위해 구조적인 변화보다는 기술적인 조정에 초점을 맞춘 교토메커니즘에 합의했다.
탄소거래는 총량거래(cap and trade)와 탄소상쇄(carbon offset)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이나 국가는 이것을 할당 거래와 프로젝트 거래로 구분하기도 한다. 총량거래는 전 세계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총량을 설정하고 그것을 각 주체에 할당한 후 잉여분 및 부족분을 거래하는 제도다. 교토메커니즘에 따르자면 배출권거래가 이에 해당한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한 국가의 한 해 탄소배출 총량이 100톤이고, 그 국가의 산업이 A부문과 B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A/B부문에 각각 50톤씩을 할당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A부문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것보다 B부문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이 저렴하다고 하면 A/B 각각이 주어진 배출량 50톤을 만족하는 것보다 B의 배출량을 줄이고 그 만큼 A의 배출량은 늘리는 것이 전체적인 수준에서 비용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A는 B가 줄인 배출량을 배출권으로 구매해서 B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면 된다.
탄소상쇄는 부유한 산업이나 국가가 배출량의 감축을 지연시켜 추가적인 오염을 허용하기 위한 제도다. 자신의 배출을 감축하는 대신에 국가, 기업, 개인은 저렴한 “탄소 감축” 프로젝트에 비용을 투자하여 그것을 자신의 감축량으로 인정을 받아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토메커니즘에 따르면 공동이행이나 청정개발체제가 이에 해당한다.
탄소거래와 금융자본의 진출
한 세계적인 헤지펀드 기업이 ‘새로운 놀이터’라고 명명한 탄소거래 시장은 2002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2005년 1월에는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체제(EU-ETS)가 출범했는데 그 이후 시장규모가 급성장하여 2006년 세계 탄소거래의 규모는 301억 달러로 2005년 대비 2.8배 성장했다. 세계은행은 2010년 탄소거래 규모를 1,500억 달러로 2006년 대비 5배, 연평균 약 5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거래규모나 거래액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체제인데 이는 세계 탄소거래량의 62.4%, 거래액의 80.8%를 차지하고 있다.
탄소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금융자본은 탄소거래 시장을 친환경사업의 일환으로 표방하는 한편, 새로운 수익원으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며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경우 2006년 5월 온실가스 배출감소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향후 5년간 30억 달러를 탄소 배출권 구입에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도이치 뱅크 등 투자은행도 사모펀드 조성, 해외 탄소펀드 지분 매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탄소거래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또 2004~2005년 에너지 시장에서 40~50%의 고수익을 거둔 헤지펀드들도 최근 탄소거래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탄소펀드도 붐을 이루고 있는데 2007년 전 세계적으로 38개의 탄소펀드가 총 25억 달러 이상의 규모로 활동하며 탄소펀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탄소펀드는 조성 방법에 따라 크게 공적기금 형태와 민간기금 형태로 구분되며, 탄소펀드를 통한 직접 참여 외에 간접투자 개념인 탄소 파생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공적기금 형태의 탄소펀드는 세계은행 주도로 2000년 4월에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프로토타입 탄소펀드’다. 세계은행은 현재 9개의 탄소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자본금은 약 19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민간 탄소펀드로는 2005년 6월 유럽의 9개 금융기관 주도로 만들어진 ‘유러피언 탄소펀드’가 있다. 한편 2005년 세계 최초로 출시된 탄소 관련 파생상품시장은 초기 단계에 있다.
탄소거래의 문제점
탄소거래는 탄소배출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기술혁신과 효율적 환경관리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이라는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탄소거래 시장을 형성하고 온실가스를 상품화하고, 또 산림과 토지의 온실가스 흡수 능력도 상품화, 자본화한다. 그런데 정말 탄소거래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고 효과적인 기후변화 저지가 가능한 것일까?
탄소거래는 어디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발생하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큰 주체(계급, 산업, 지역, 국가 등)가 감축의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이를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탄소거래는 오히려 기후변화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작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더 받는 약자에게 감축의 부담과 의무를 지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담당자인 화석연료 발전소의 경우 신속한 기술 혁신과 배출 감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발전소가 탄소거래를 통해 다른 부문에서 감축된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매함으로써 기술 혁신과 배출 감소는 연기된다. 또 청정개발체제는 부유한 국가가 제3세계 낙후 산업의 개선이나 재조림 사업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권을 획득하는 방식인데, 현재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국가에 편향되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발리로드맵에 따라 향후 조림과 산림파괴 방지에도 청정개발체제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경우 제3세계 토지와 지역공동체의 파괴가 우려된다.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추진되는 조림 사업은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민들의 생계수단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즉, 탄소거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지연시키고 위험을 미래로 연기하려고 한다.
벨기에의 사회주의자 다니엘 타뉘로(Daniel Tanuro)는 탄소거래가 기후변화에 맞선 투쟁에 근본적으로 부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실린 타뤼로의 글을 참고하라.) 그는 탄소거래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들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탄소거래는 배출권을 과잉 할당함으로써 오염 당사자에게 초과이윤을 제공한다. 반면 오염 당사자들은 저탄소 기술에 이윤을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기후 정책의 실행을 지연하거나 완화하려고 노력한다. 둘째, 탄소거래는 새로운 사회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탄소배출권을 둘러싼 새로운 사회갈등이 발생하는데 자본과 국가는 이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한다. 이는 사회의 새로운 분할, 특히 노동자 간 분할을 야기해 기후변화 예방 정책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셋째, 탄소거래는 기후변화 완화를 위태롭게 하는 남-북 불평등의 근원이다. 특히 배출권거래와 청정개발체제의 연계는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 원칙을 위태롭게 한다. 넷째, 배출권의 할당은 탄소순환과 탄소조절에 대한 전례 없는 소유권 분할이며, 따라서 생명체 그 자체에 대한 소유권 분할이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극히 불공정하다. 다섯째, 탄소거래의 기준이 되는 비용 효율성은 전적으로 양적인 척도인데, 이것으로는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 체계 변혁의 질적 측면과 장기적인 합리성을 평가할 수 없다.
자발적 상쇄, 기후변화에 대한 면죄부 부여
자발적 상쇄의 이데올로기적 효과
한편 유럽(특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탄소상쇄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자발적인 탄소상쇄는 개인이나 기업이 자신의 만족이나 이미지 제고(기업의 친환경 이미지 선전 활동인 ‘그린워시’)를 위해 탄소상쇄 프로그램에 자발적인 비용을 지불해서 ‘탄소중립’을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항공은 탄소상쇄를 통해 ‘탄소중립’을 이룬 항공권을 판매한다. 영국항공은 원래 항공권 가격에 탄소상쇄 비용으로 일부 금액을 추가해서 지불하면, 비행기를 타고 수천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선전한다. (환경재단의 프로그램에 따르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왕복하면 3,382.2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것을 상쇄하려면 북한에 나무심기에는 23,910원, 태양광발전소 세우기에는 125,640원, 캄보디아에 친환경 조리기구 보급에는 102,690원을 지불하면 된다. 북한에 나무심기가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한국의 아시아나항공도 올해부터 탄소상쇄 항공권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기농 표시처럼 탄소중립 표시를 한 상품도 판매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탄소중립 마크가 찍힌 상품을 구매한다. 이런 광고도 있다. “우리가 주유할 때마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자연 자산의 보호를 돕게 됩니다. 당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이 자연에게 무언가를 돌려준다는 것은 정말 멋지지 않나요?”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환경재단 부설 기후변화센터에서 CO2 ZERO 프로그램(http://www.co2zero.kr)을, 지식경제부 산하 에너지관리공단에서 탄소중립 프로그램(http://zeroco2.kemco.or.kr)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소비자나 기업의 자발적인 탄소상쇄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까닭에 현재는 정부와 NGO 주도로 탄소상쇄(탄소중립) 프로그램을 선전하고 참가를 독려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당장의 경제적 효과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효과 때문에 자발적인 탄소상쇄의 문제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 탄소상쇄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아니라 자기 만족감에 기초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사회체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쇄를 이용해 현재와 같은 생활양식을 유지하고도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와 우리 삶의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대신에, 다양한 상쇄 계획에 돈만 지불하면 기후변화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현재와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둘째, 운동이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자발적인 탄소상쇄 활동은 기후변화를 위한 행동이 사회전체의 변화와는 동떨어진 개인적인 것이고 전제한다. 그래서 기후에 대한 행동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의지에 금전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시장논리로써 흡수해버린다. 즉 어떤 사람이 상쇄기업(또는 NGO)의 웹사이트를 클릭하고 ‘전문가’가 당신 대신 비용대비 효율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돈을 지불하고 나면, 기후변화를 발생시킨 사회경제 구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 셋째, 필요한 변화를 지연시킨다. 탄소상쇄는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가능한 늦춤으로써 이득을 얻는 산업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 석유회사들과 항공사에게 상쇄는 자신을 친환경적인 이미지로 포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은 상쇄를 통해서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중립화’할 수 있다거나 기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식으로 ‘브랜드화’ 할 수도 있다. 결국 자발적인 탄소상쇄는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 산업과 경제의 더 크고 체계적인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상쇄되는 것은 무엇?
탄소상쇄는 아주 단순한 방정식에 근거한다. 한쪽 변에는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있고, 다른 변에는 그 이산화탄소를 상쇄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돈이 있다. 그러나 ‘중립화’될 이산화탄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무에 의해 흡수되는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에는 이산화탄소의 순환에 대해 우리가 가진 지식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탄소 순환은 활성탄소 순환과 비활성탄소 순환으로 나눌 수 있다. 나무는 식물, 생물체, 물, 대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탄소의 계속적인 이동인 활성탄소 순환의 일부분이다. 반면에 화석연료 안에 매장된 탄소는 비활성이다. 일단 탄소가 연소되면 비활성 상태에서 활성탄소 순환으로 진입한다. 하지만 활성탄소 순환이 비활성탄소 순환으로 이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석탄과 석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조차 과학계 내에 이설이 많다.) 따라서 화석연료를 태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 나무를 심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것은 활성 순환이냐 비활성 순환이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조림 플랜테이션은 이러한 점에서 무척 의심스럽다. 활성탄소 순환의 복잡한 교환과정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흡수할 수 있고, 나무가 얼마나 오랫동안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추정치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배출량을 ‘중립화’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나무를 심어야하는지 알기란 불가능하다. 또 나무가 한 번에 많은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탄소상쇄 프로그램에서는 장기간(최대 100년) 동안 나무가 탄소를 흡수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법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간과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증폭시키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향후 10년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중요한 시기다. 자동차나 비행기로부터 나오는 탄소는 이미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반면 상쇄 프로젝트는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탄소 흡수에 의존하고 있다. 탄소상쇄 계획의 논리에 따르면 중요한 시기가 지난 다음에야 배출량을 약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상쇄 프로젝트에서 획득되는 크레딧(온실가스 배출권)은 상쇄 프로그램이 없을 때 발생했을 배출량과 상쇄 프로그램이 있을 때 발생하는 배출량의 차로 계산된다. 하지만 기준이 되는 상쇄 프로그램이 없을 때 발생했을 배출량을 결정할 수 있는 타당한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탄소 크레딧을 계산하는데 어떤 방법을 쓸 것이냐는 경제적, 기술적 예측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결정에 가깝다. 분명한 검증방법이 없기 때문에 구속적인 검증절차를 밟지 않는 자발적인 상쇄 회사들은 책상머리에서 이런저런 회계방법을 동원해 기준을 결정하고 더 많은 크레딧을 창조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재 시점의 배출을 시간이 지나면서 ‘중립화’될 배출량과 동일시할 수도 없다. 상쇄 회사들이 탄소중립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탄소를 계산하면서 ‘미래가치계산’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 회계방법을 써서 초장기간(100년)에 걸쳐 완전히 상쇄가 된다고 주장한다. 미래에 이루어질(?)(이루어진다고 믿는) 탄소 흡수는 현재에 이루어진 탄소 저장처럼 계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떤 사람이 일생 단 한 번 비행기를 탔을 때 가능한 일이다. ‘중립’이 일어나는 기간은 어떤 때는 100년이 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주기적으로 상쇄를 한다고 해도 배출 속도는 자신의 행동이 ‘중립화’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매년 여러 번 비행기를 타면 탄소상쇄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대기 중의 탄소는 증가한다. 결국 상쇄 회사들의 주장은 기만적인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북반구의 면죄부를 위한 식민주의
북반구 국가들이 배출한 탄소를 중립화하기 위해 남반구에 기후 친화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탄소 배출권을 판매하는 국제적인 상쇄 기업들도 있다. 북반구의 배출을 ‘중립화’하기 위해 남반구에 나무를 플랜테이션으로 단작하는 것은 탄소 식민주의다.4)
이런 플랜테이션 때문에 생태계와 지역공동체가 훼손되고 있다. 지역 경제와 공동체 파괴하고 생물종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엄청난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토양의 영양분을 침식시키기 때문이다.
남반구의 문제를 원조와 개입을 통해 풀겠다는 북반구의 의지는 목표 달성에 실패하거나, 그 지역에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끝났다. 공통된 요인은 관리의 실패, 지역공동체와의 논의 부족, 잘못된 과학적 정보, 사회적 정치적 생태적 통찰의 부재 등이다. 2000년 미국 의회에 제출된 멜처 위원회의 보수적인 보고서를 보더라도 최빈국에 대한 세계은행의 개발 프로젝트 중 65~75%가 실패했고 빈곤을 완화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최근의 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남반구를 ‘발전’시키기 위한 북반구 개입의 새로운 장인데,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북반구의 사업자들은 에너지 효율, 재생가능 에너지, 탄소배출 감축 산업 등을 개발하여 상품화하고 이를 상쇄 회사들을 통해 북반구의 소비자에게 판다. 두 가지 실례를 통해서 자발적 탄소상쇄가 남반구 민중에게 어떤 결과를 발생시켰는지 살펴보자.
영국의 유명 록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와 카본뉴트럴컴페니(Carbon Neutral Company)의 동반자 관계는 지금까지의 자발적 탄소 상쇄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이었다. 콜드플레이가 인도남부의 카나타카 지역에 망고나무를 심는 것을 후원한다는 것이 팬 사이트와 음악 잡지에 보도되었다. 그 밴드가 라는 앨범을 출시했을 때, 이들은 카나타카 지역에 1만 그루의 망고나무를 심는 데 자금을 내기 위해 카본뉴트럴컴페니와 계약했다. 그 회사는 “망고나무는 지역의 소비와 수출을 위한 과일을 평생 제공하고 밴드의 CD제작과 배포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것이다”고 선전했다. 팬들 역시 그 플랜테이션에 나무 한그루를 기부하도록 독려된다. 17.5 파운드를 내면 팬들은 특별 기부된 묘목 한 그루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와 함께 그 나무의 탄소 흡수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카본뉴트럴컴페니는 약속한 망고 나무 묘목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나눠주지도 않았고 그나마 심은 망고 나무도 태반이 죽었다. 어떤 지역은 물을 댈 수 없어서 아예 심는 게 불가능했다. 또 나무의 관리를 대가로 주민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돈도 감감 무소식이다. 망고나무를 돌보느라 농업활동, 경제활동을 못해 주민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콜드플레이의 인도 후원 사례를 성공사례로 선전하고 있다.
1994년 네덜란드의 FACE재단은 우간다의 엘곤산 국립공원 안에 2만5천 헥타르의 땅에 나무를 심기로 우간다 당국과 협정을 맺었다. 또 다른 네덜란드 기업인 그린시트(GreenSeat)가 국립공원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권을 팔기로 했다. 우간다 측에서 이들과 협력한 기관은 우간다야생동물국(Uganda Wildlife Authority)이었다. 의심스러운 점은 엘곤산이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1년 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살던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하루 아침에 갈 곳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이주를 위한 적절한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중요 식량인 죽순도 채취할 수 없고, 땔감도 모을 수 없었다. 주민을 추방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받은 공원 관리인들이 주민들의 집을 불태우고, 농작물을 뽑아버리고, 모욕과 구타를 가하거나 발포했다. 50여명에 가까운 주민이 죽었다. FACE재단과 우간다야생동물국 측에서는 묘목장이 생김으로써 묘목관리에 따른 주민의 수입도 증가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기에 취직된 건 극소수의 사람들뿐이었다. 40년, 50년 산 사람들도 전부 대책 없이 쫓겨났지만 폭력적인 강제추방에 대해 모두 발뺌만 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토론과 (재)정치화
교토의정서에서 제시된 기후변화에 대한 윈-윈 해법인 탄소거래는 실제로는 이산화탄소 회계 조작술일 뿐이다. 교토의정서와 관련해 작성된 공식문서만도 수천 쪽에 이르며, 십여 년 간 이어진 유엔 기후변화협약 회의문서는 훨씬 더 두껍다. 그리고 각각의 세세한 부분에 우리가 미처 파악할 수도 없는 문제가 많다.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점점 일상세계에서 벗어나 기술관료와 이해관계 당사자(자본과 각 국가)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경제적 수단과 정부 간의 협상으로 초점을 좁히는 ‘통제 낙관주의’는 교토의정서의 이행 및 효과에 관련된 불확실성을 은폐하는 동시에 기후변화 문제의 특유한 자본주의적 성격도 간과하게 만든다. 따라서 기후변화의 원인과 자본주의가 자연과 맺는 파괴적 관계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기후변화 문제의 해법에 대한 탐색이 자본주의 체제에 특유하게 내재된 관점과 개념, 방법들로 좁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과를 지난 십여 년 간 목격했다. 기후변화나 탄소거래와 관련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일련의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도외시되고, 연기되고, 배제되고, 누락되고, 상실된 것들이다.
그 와중에 지속불가능한 자원소비 및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기후보호 정책보다는 기후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시장을 활용해 이윤창출의 새로운 기회가 된 교토메커니즘은 막강한 이익집단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이미 형성된 탄소거래 시장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손상을 가하는 조치는 채택되지 않을 것이다.
교토의정서 이후 10년이 열어젖힌 것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말잔치와 자본의 “새로운 놀이터”인 탄소거래 시장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활용할 수단을 개발, 시험, 실행하는 민간 경제부문 행위자들에게 활동의 장이 열렸다. 대부분의 국가에게 자국 에너지산업계의 이익과 경제성장이 우선이며, 국제회의는 이 목표를 우회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심지어 주류 NGO들도 교토메커니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NGO들은 자신의 임무가 세부적이고 실용적 해법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유엔과 각국 정부, 자본, 주류 NGO에 의해서 추진되는 기후 정책은 세 가지 본질적인 결점이 있다. 첫째,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구조적 변화와 같은 대안적인 문제해결 접근법을 배제하는 경제적인 수단을 강조한다. 둘째, 겉보기에 객관적인 과학용어로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통해 문제해결 방안을 도출하고자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해관계의 각축이 있다. 셋째, 매우 한정된 합의만을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회의와 같은 상징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적 정의와 북/남 갈등을 다시 논의의 중심에 두는 교토를 넘어서는 공적인 토론이다. 새로운 토론의 전제이자, 토론 과정에서 합의되어야 하는 것은 탄소거래가 해법이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계급적, 지역적 이해관계와 그에 대한 저항을 기후논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기후문제를 보다 포괄적인 사회생태 위기의 일부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기후문제를 (재)정치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1) 이하의 내용은 사회진보연대 생태팀 세미나와 세미나에서 한 글을 바탕으로 했다. 특히 아힘 브루넨그레버,「교토의정서 정치경제학」, 『자연과 타협하기』, 필맥(2007) ; 윤순진, 「기후변화와 변화책에 내재된 환경불평등」, 『ECO』3호(2002) ; Kevin Smith,「The Carbon Neutral Myth」, Carbon Trade Watch(2007)를 참고했다. 또 캐나다의 생태사회주의자 이안 앵거스(Ian Angus)가 운영하는 블로그 <기후와 자본주의>(http://climateandcapitalism.com/)에 실린 글들이 유용하다. 본문으로
2) 부속서국가에는 선진 산업국가와 구 공산권 국가 38개가 포함되었다. 부속서 1 국가는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 때문에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2008~2012년)에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부속서 2 국가는 부속서1 국가 중 구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24개국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 및 기술 이전 의무가 있다. 나머지 국가는 모두 1차 공약기간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비 부속서1 국가인데 한국도 여기에 속한다. 본문으로
3)미국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21.1%(2004년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 배출국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기술개발을 통한 자발적인 노력에 기후변화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기후변화협상에 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은 온실가스 감축에 개도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교토의정서탈퇴이후 여러 제안을 통해 유엔을 우회한 국제적 리더십을 확보하려고 했다. 2005년 <청정개발 및 기후에 관한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십>을 제안해 2006년 출범시켰다. 여기에 참가한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 인도, 호주 6개국은 전 세계 GDP와 온실가스 배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참가국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자발적, 기술적 대응을 중시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2007년 5월 독일 G8정상회담 직전에 포스트 교토체제를 위한 ‘새로운 기후변화체제’를 제안해 같은 해 8월 17개국이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적 합의와 약속을 깨고 유엔의 틀을 일방적으로 벗어났기 때문에 정치적, 도덕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자발적, 기술적 대응과 보수적인 감축목표도 큰 논란거리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1992년 아버지 부시는 리우 유엔 환경개발회의에j서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은 협상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7년 12월 발리에서 열린 13차당사국 총회에 참가한 미국 대표단은 포스트 교토 체제 논의를 다시 유엔의 틀 내에서 진행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한편 현재 미국의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와와 존 메케인은 모두 교토의정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두 후보 간에 감축 목표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와 세부적인 수단(석탄과 원자력 등)에 대한 강조점 등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자국 산업 우선 보호, 기술적 수단 중심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수사 상의 변화가 아닌)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문으로
4)현재 국내에서는 북한 조림 청정개발체제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북한 황폐지 조림의 사업성과 보완과제: 탄소배출권 사업의 타당성 분석」(2008.3.7)을 참고하라.본문으로
이런 객관적인 조건에다 정부의 한 관계자 말대로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G8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만큼 우리로서도 국가적인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6월 9일 2020년까지 일본이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14% 줄이겠다는 ‘후쿠다 비전’을 직접 발표했다. G8확대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협상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여 정부는 6월 13~14일 100여명의 정부관계자, NGO, 학자 등이 모인 가운데 ‘기후변화 대책 워크숍’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환경운동연합 등 NGO들은 한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20% 줄여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의 주류 환경단체들의 주요 운동 전략은 정부 압박이다. 국제회의에 참가해서 한국 대표가 책임 있는 자세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를 주문하고, 국내에서도 때로는 상징적인 항의로 때로는 동반자 관계를 맺으며 한국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에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가 주최한 워크숍에 참여해서 정부 시안보다 ‘강력한’ 감축목표를 요구한 것은 그러한 활동 방식 속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온실가스의 급진적인 감축. 물론 설정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목표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물론이고 환경단체를 포함해서 한국사회에서 기후변화를 논의하는 주체들은 막상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재 발생하는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가장 기본적이면서 근본적인 질문은 기후변화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구조는 무엇이고,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다.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다양한 이유’로 심각성을 인정하고, 단지 강력한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를 발생시킨 사회관계를 유지한 채, 또는 그 관계를 활용해서 기후변화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역설 말이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해법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현황과 문제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전개와 교토메커니즘
1992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고, 1994년 50개국 이상이 비준하여 기후변화협약이 발효한 이래 매년 국제적인 기후변화협상이 진행되고 있다.1)
작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3차 당사국 총회가 개최되어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합의한 발리로드맵을 채택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 할 때는 교토의정서가 빠지지 않는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되었는데 ①부속서 1 국가의 구속력 있는 감축목표 설정(제3조),2)
②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 등 시장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수단의 도입(제6조, 12조, 17조), ③국가 간 연합을 통한 공동 감축목표 달성 허용(제4조) 등이 주요 내용이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부속서 1 국가(38개국)는 2008년에서 2012년까지 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 비해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국가별 감축 목표는 각국의 여건에 따라 -8%에서 +10%까지 다양하다. 유럽연합의 경우 국가 간 연합을 통한 공동 감축목표(이른바 버블 방식)에 따라 8% 감축이지만 소속 국가 간 합의를 통해 각 국별로는 포르투갈 7% 증가에서 룩셈부르크 28% 감소까지 다양하다. 교토메커니즘(유연성체제로 부르기도 한다)은 부속서 1 국가가 자국 내 감축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저렴하게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시장 기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토메커니즘에는 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 세 가지가 있다. 추가하여 산림이나 토지를 온실가스의 흡수원으로 인정하고 활용하는 것도 논란 끝에 허용되었다.
1997년 교토에서 열린 3차 당사국회의 이후 시장과 기술 위주의 정책이 기후변화의 주요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이후 당사국총회에서는 교토메커니즘의 운용방안과 흡수원의 인정범위에 협상의 초점이 맞춰졌다. 기후변화에 대한 초기 논의 쟁점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라면 교토회의 이후에는 다음과 같은 쟁점이 주로 다루어졌다. 첫째 감축 목표 수준 및 설정 방식, 둘째 교토메커니즘(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의 도입과 세부방안, 셋째 개발도상국의 의무 부담 문제, 넷째 흡수원의 인정여부 및 범위. 기후변화협상이 진행되면서 기후변화가 발생한 역사-사회 구조 문제와 세계 질서의 불평등과 책임의 차이 문제에서 감축 목표와 수단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쟁점이 변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적인 논의의 중심에 교토메커니즘이 존재했다.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6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의 세부 운용방안에 대해 당사국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2001년에 미국의 부시 정부가 교토의정서 탈퇴선언을 했다.3)
미국의 탈퇴로 위태로워진 교토의정서가 꼭 발효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2001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속개회의는 그간의 이견을 조율하여 합의에 이른다(본 합의). 그 내용은 산림이나 토지를 이산화탄소 흡수원으로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교토메커니즘을 제한 없이 활용하며, 토지나 산림이용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청정개발체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미국이 요구해온 사항들이 거의 수용되는 방향이었다. 한편 본 합의는 온실가스 감축의무 불이행에 대한 강력한 제제 방안을 배제함으로써 교토의정서를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합의로 만들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가 사라졌다. 곧이어 2001년 11월에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7차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메커니즘의 구체적인 절차 등을 최종적으로 논의해 교토의정서의 비준과 이행방안에 대한 최종합의가 이뤄졌다(마라케시 합의). 그리고 2004년 말 러시아가 교토의정서에 비준함으로써 2005년 2월 교토의정서가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2005년 이후 당사국총회는 포스트 교토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논의가 집중되었다.
교토의정서가 비준되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의무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이행시기에 접어들자 기후변화 완화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교토메커니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높다. 또 교토메커니즘이 허용한 탄소거래를 바탕으로 돈을 버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작년에 탄소펀드가 출시되고, 탄소배출권 거래소 개설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청정개발체제 사업의 경우 한국은 유엔 등록기준 4위, 예상 온실가스 감축량 기준 3위로 수위이고, 정부와 기업도 적극적인 추진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과 전략은 문제의 초점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지배적인 관점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에서 빈번해진 극단적인 기후현상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절대화되고 그 방법으로 교토의정서와 교토메커니즘은 불문에 부쳐진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방안으로 승인된 공동이행,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와 같이 무형의 자연에 재산권을 부여하고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안은 온실효과의 증대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경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를 중시하고, 주류 환경운동은 이것이 기후변화의 ‘현실적’이고 ‘유일한’인 대책임을 강조한다. 강조점의 차이는 있으나 기후변화의 해법에 있어서는 일정한 의견일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인한 기후변화는 사회 모든 영역에 심대한 위기요인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대한 간단한 대응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토메커니즘과 같은 방식은 기후변화에 대한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적 위기대응 방식이다. 외교적 협상, 기술과 통제에 대한 낙관주의, 이해관계 당사자 사이의 윈-윈 논리를 따르는 이러한 방식은, 복잡한 이산화탄소 대차대조표 속에서 작동된다. 그러나 실제로 온실가스의 감축이 이루어졌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탄소거래, 자본의 새로운 놀이터
총량거래와 탄소상쇄
교토메커니즘을 활용해서 온실가스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식을 통칭하여 탄소거래라고 부른다. 탄소거래라는 아이디어의 연원은 1970~198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질소산화물, 이산화황 등 오염물질에 대한 총량거래제도다. 1990년대 동안 미국 정부는 유엔이 이 제도를 수용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미국 경제학자들은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선전했다. 유엔에서 기후변화 논의가 시작되자 기업과 각국 정부들은 부담을 줄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감축 방안을 관철하기 위해 구조적인 변화보다는 기술적인 조정에 초점을 맞춘 교토메커니즘에 합의했다.
탄소거래는 총량거래(cap and trade)와 탄소상쇄(carbon offset)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이나 국가는 이것을 할당 거래와 프로젝트 거래로 구분하기도 한다. 총량거래는 전 세계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총량을 설정하고 그것을 각 주체에 할당한 후 잉여분 및 부족분을 거래하는 제도다. 교토메커니즘에 따르자면 배출권거래가 이에 해당한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한 국가의 한 해 탄소배출 총량이 100톤이고, 그 국가의 산업이 A부문과 B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A/B부문에 각각 50톤씩을 할당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A부문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것보다 B부문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이 저렴하다고 하면 A/B 각각이 주어진 배출량 50톤을 만족하는 것보다 B의 배출량을 줄이고 그 만큼 A의 배출량은 늘리는 것이 전체적인 수준에서 비용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A는 B가 줄인 배출량을 배출권으로 구매해서 B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면 된다.
탄소상쇄는 부유한 산업이나 국가가 배출량의 감축을 지연시켜 추가적인 오염을 허용하기 위한 제도다. 자신의 배출을 감축하는 대신에 국가, 기업, 개인은 저렴한 “탄소 감축” 프로젝트에 비용을 투자하여 그것을 자신의 감축량으로 인정을 받아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토메커니즘에 따르면 공동이행이나 청정개발체제가 이에 해당한다.
탄소거래와 금융자본의 진출
한 세계적인 헤지펀드 기업이 ‘새로운 놀이터’라고 명명한 탄소거래 시장은 2002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2005년 1월에는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체제(EU-ETS)가 출범했는데 그 이후 시장규모가 급성장하여 2006년 세계 탄소거래의 규모는 301억 달러로 2005년 대비 2.8배 성장했다. 세계은행은 2010년 탄소거래 규모를 1,500억 달러로 2006년 대비 5배, 연평균 약 5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거래규모나 거래액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체제인데 이는 세계 탄소거래량의 62.4%, 거래액의 80.8%를 차지하고 있다.
탄소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금융자본은 탄소거래 시장을 친환경사업의 일환으로 표방하는 한편, 새로운 수익원으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며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경우 2006년 5월 온실가스 배출감소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향후 5년간 30억 달러를 탄소 배출권 구입에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도이치 뱅크 등 투자은행도 사모펀드 조성, 해외 탄소펀드 지분 매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탄소거래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또 2004~2005년 에너지 시장에서 40~50%의 고수익을 거둔 헤지펀드들도 최근 탄소거래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탄소펀드도 붐을 이루고 있는데 2007년 전 세계적으로 38개의 탄소펀드가 총 25억 달러 이상의 규모로 활동하며 탄소펀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탄소펀드는 조성 방법에 따라 크게 공적기금 형태와 민간기금 형태로 구분되며, 탄소펀드를 통한 직접 참여 외에 간접투자 개념인 탄소 파생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공적기금 형태의 탄소펀드는 세계은행 주도로 2000년 4월에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프로토타입 탄소펀드’다. 세계은행은 현재 9개의 탄소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자본금은 약 19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민간 탄소펀드로는 2005년 6월 유럽의 9개 금융기관 주도로 만들어진 ‘유러피언 탄소펀드’가 있다. 한편 2005년 세계 최초로 출시된 탄소 관련 파생상품시장은 초기 단계에 있다.
탄소거래의 문제점
탄소거래는 탄소배출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기술혁신과 효율적 환경관리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이라는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탄소거래 시장을 형성하고 온실가스를 상품화하고, 또 산림과 토지의 온실가스 흡수 능력도 상품화, 자본화한다. 그런데 정말 탄소거래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고 효과적인 기후변화 저지가 가능한 것일까?
탄소거래는 어디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발생하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큰 주체(계급, 산업, 지역, 국가 등)가 감축의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이를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탄소거래는 오히려 기후변화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작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더 받는 약자에게 감축의 부담과 의무를 지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담당자인 화석연료 발전소의 경우 신속한 기술 혁신과 배출 감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발전소가 탄소거래를 통해 다른 부문에서 감축된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매함으로써 기술 혁신과 배출 감소는 연기된다. 또 청정개발체제는 부유한 국가가 제3세계 낙후 산업의 개선이나 재조림 사업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권을 획득하는 방식인데, 현재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국가에 편향되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발리로드맵에 따라 향후 조림과 산림파괴 방지에도 청정개발체제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경우 제3세계 토지와 지역공동체의 파괴가 우려된다.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추진되는 조림 사업은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민들의 생계수단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즉, 탄소거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지연시키고 위험을 미래로 연기하려고 한다.
벨기에의 사회주의자 다니엘 타뉘로(Daniel Tanuro)는 탄소거래가 기후변화에 맞선 투쟁에 근본적으로 부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실린 타뤼로의 글을 참고하라.) 그는 탄소거래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들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탄소거래는 배출권을 과잉 할당함으로써 오염 당사자에게 초과이윤을 제공한다. 반면 오염 당사자들은 저탄소 기술에 이윤을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기후 정책의 실행을 지연하거나 완화하려고 노력한다. 둘째, 탄소거래는 새로운 사회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탄소배출권을 둘러싼 새로운 사회갈등이 발생하는데 자본과 국가는 이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한다. 이는 사회의 새로운 분할, 특히 노동자 간 분할을 야기해 기후변화 예방 정책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셋째, 탄소거래는 기후변화 완화를 위태롭게 하는 남-북 불평등의 근원이다. 특히 배출권거래와 청정개발체제의 연계는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 원칙을 위태롭게 한다. 넷째, 배출권의 할당은 탄소순환과 탄소조절에 대한 전례 없는 소유권 분할이며, 따라서 생명체 그 자체에 대한 소유권 분할이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극히 불공정하다. 다섯째, 탄소거래의 기준이 되는 비용 효율성은 전적으로 양적인 척도인데, 이것으로는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 체계 변혁의 질적 측면과 장기적인 합리성을 평가할 수 없다.
자발적 상쇄, 기후변화에 대한 면죄부 부여
자발적 상쇄의 이데올로기적 효과
한편 유럽(특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탄소상쇄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자발적인 탄소상쇄는 개인이나 기업이 자신의 만족이나 이미지 제고(기업의 친환경 이미지 선전 활동인 ‘그린워시’)를 위해 탄소상쇄 프로그램에 자발적인 비용을 지불해서 ‘탄소중립’을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항공은 탄소상쇄를 통해 ‘탄소중립’을 이룬 항공권을 판매한다. 영국항공은 원래 항공권 가격에 탄소상쇄 비용으로 일부 금액을 추가해서 지불하면, 비행기를 타고 수천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선전한다. (환경재단의 프로그램에 따르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왕복하면 3,382.2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것을 상쇄하려면 북한에 나무심기에는 23,910원, 태양광발전소 세우기에는 125,640원, 캄보디아에 친환경 조리기구 보급에는 102,690원을 지불하면 된다. 북한에 나무심기가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한국의 아시아나항공도 올해부터 탄소상쇄 항공권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기농 표시처럼 탄소중립 표시를 한 상품도 판매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탄소중립 마크가 찍힌 상품을 구매한다. 이런 광고도 있다. “우리가 주유할 때마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자연 자산의 보호를 돕게 됩니다. 당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이 자연에게 무언가를 돌려준다는 것은 정말 멋지지 않나요?”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환경재단 부설 기후변화센터에서 CO2 ZERO 프로그램(http://www.co2zero.kr)을, 지식경제부 산하 에너지관리공단에서 탄소중립 프로그램(http://zeroco2.kemco.or.kr)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소비자나 기업의 자발적인 탄소상쇄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까닭에 현재는 정부와 NGO 주도로 탄소상쇄(탄소중립) 프로그램을 선전하고 참가를 독려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당장의 경제적 효과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효과 때문에 자발적인 탄소상쇄의 문제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 탄소상쇄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아니라 자기 만족감에 기초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사회체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쇄를 이용해 현재와 같은 생활양식을 유지하고도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와 우리 삶의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대신에, 다양한 상쇄 계획에 돈만 지불하면 기후변화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현재와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둘째, 운동이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자발적인 탄소상쇄 활동은 기후변화를 위한 행동이 사회전체의 변화와는 동떨어진 개인적인 것이고 전제한다. 그래서 기후에 대한 행동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의지에 금전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시장논리로써 흡수해버린다. 즉 어떤 사람이 상쇄기업(또는 NGO)의 웹사이트를 클릭하고 ‘전문가’가 당신 대신 비용대비 효율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돈을 지불하고 나면, 기후변화를 발생시킨 사회경제 구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 셋째, 필요한 변화를 지연시킨다. 탄소상쇄는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가능한 늦춤으로써 이득을 얻는 산업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 석유회사들과 항공사에게 상쇄는 자신을 친환경적인 이미지로 포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은 상쇄를 통해서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중립화’할 수 있다거나 기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식으로 ‘브랜드화’ 할 수도 있다. 결국 자발적인 탄소상쇄는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 산업과 경제의 더 크고 체계적인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상쇄되는 것은 무엇?
탄소상쇄는 아주 단순한 방정식에 근거한다. 한쪽 변에는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있고, 다른 변에는 그 이산화탄소를 상쇄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돈이 있다. 그러나 ‘중립화’될 이산화탄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무에 의해 흡수되는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에는 이산화탄소의 순환에 대해 우리가 가진 지식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탄소 순환은 활성탄소 순환과 비활성탄소 순환으로 나눌 수 있다. 나무는 식물, 생물체, 물, 대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탄소의 계속적인 이동인 활성탄소 순환의 일부분이다. 반면에 화석연료 안에 매장된 탄소는 비활성이다. 일단 탄소가 연소되면 비활성 상태에서 활성탄소 순환으로 진입한다. 하지만 활성탄소 순환이 비활성탄소 순환으로 이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석탄과 석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조차 과학계 내에 이설이 많다.) 따라서 화석연료를 태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 나무를 심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것은 활성 순환이냐 비활성 순환이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조림 플랜테이션은 이러한 점에서 무척 의심스럽다. 활성탄소 순환의 복잡한 교환과정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흡수할 수 있고, 나무가 얼마나 오랫동안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추정치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배출량을 ‘중립화’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나무를 심어야하는지 알기란 불가능하다. 또 나무가 한 번에 많은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탄소상쇄 프로그램에서는 장기간(최대 100년) 동안 나무가 탄소를 흡수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법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간과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증폭시키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향후 10년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중요한 시기다. 자동차나 비행기로부터 나오는 탄소는 이미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반면 상쇄 프로젝트는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탄소 흡수에 의존하고 있다. 탄소상쇄 계획의 논리에 따르면 중요한 시기가 지난 다음에야 배출량을 약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상쇄 프로젝트에서 획득되는 크레딧(온실가스 배출권)은 상쇄 프로그램이 없을 때 발생했을 배출량과 상쇄 프로그램이 있을 때 발생하는 배출량의 차로 계산된다. 하지만 기준이 되는 상쇄 프로그램이 없을 때 발생했을 배출량을 결정할 수 있는 타당한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탄소 크레딧을 계산하는데 어떤 방법을 쓸 것이냐는 경제적, 기술적 예측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결정에 가깝다. 분명한 검증방법이 없기 때문에 구속적인 검증절차를 밟지 않는 자발적인 상쇄 회사들은 책상머리에서 이런저런 회계방법을 동원해 기준을 결정하고 더 많은 크레딧을 창조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재 시점의 배출을 시간이 지나면서 ‘중립화’될 배출량과 동일시할 수도 없다. 상쇄 회사들이 탄소중립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탄소를 계산하면서 ‘미래가치계산’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 회계방법을 써서 초장기간(100년)에 걸쳐 완전히 상쇄가 된다고 주장한다. 미래에 이루어질(?)(이루어진다고 믿는) 탄소 흡수는 현재에 이루어진 탄소 저장처럼 계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떤 사람이 일생 단 한 번 비행기를 탔을 때 가능한 일이다. ‘중립’이 일어나는 기간은 어떤 때는 100년이 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주기적으로 상쇄를 한다고 해도 배출 속도는 자신의 행동이 ‘중립화’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매년 여러 번 비행기를 타면 탄소상쇄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대기 중의 탄소는 증가한다. 결국 상쇄 회사들의 주장은 기만적인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북반구의 면죄부를 위한 식민주의
북반구 국가들이 배출한 탄소를 중립화하기 위해 남반구에 기후 친화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탄소 배출권을 판매하는 국제적인 상쇄 기업들도 있다. 북반구의 배출을 ‘중립화’하기 위해 남반구에 나무를 플랜테이션으로 단작하는 것은 탄소 식민주의다.4)
이런 플랜테이션 때문에 생태계와 지역공동체가 훼손되고 있다. 지역 경제와 공동체 파괴하고 생물종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엄청난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토양의 영양분을 침식시키기 때문이다.
남반구의 문제를 원조와 개입을 통해 풀겠다는 북반구의 의지는 목표 달성에 실패하거나, 그 지역에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끝났다. 공통된 요인은 관리의 실패, 지역공동체와의 논의 부족, 잘못된 과학적 정보, 사회적 정치적 생태적 통찰의 부재 등이다. 2000년 미국 의회에 제출된 멜처 위원회의 보수적인 보고서를 보더라도 최빈국에 대한 세계은행의 개발 프로젝트 중 65~75%가 실패했고 빈곤을 완화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최근의 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남반구를 ‘발전’시키기 위한 북반구 개입의 새로운 장인데,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북반구의 사업자들은 에너지 효율, 재생가능 에너지, 탄소배출 감축 산업 등을 개발하여 상품화하고 이를 상쇄 회사들을 통해 북반구의 소비자에게 판다. 두 가지 실례를 통해서 자발적 탄소상쇄가 남반구 민중에게 어떤 결과를 발생시켰는지 살펴보자.
영국의 유명 록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와 카본뉴트럴컴페니(Carbon Neutral Company)의 동반자 관계는 지금까지의 자발적 탄소 상쇄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이었다. 콜드플레이가 인도남부의 카나타카 지역에 망고나무를 심는 것을 후원한다는 것이 팬 사이트와 음악 잡지에 보도되었다. 그 밴드가 라는 앨범을 출시했을 때, 이들은 카나타카 지역에 1만 그루의 망고나무를 심는 데 자금을 내기 위해 카본뉴트럴컴페니와 계약했다. 그 회사는 “망고나무는 지역의 소비와 수출을 위한 과일을 평생 제공하고 밴드의 CD제작과 배포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것이다”고 선전했다. 팬들 역시 그 플랜테이션에 나무 한그루를 기부하도록 독려된다. 17.5 파운드를 내면 팬들은 특별 기부된 묘목 한 그루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와 함께 그 나무의 탄소 흡수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카본뉴트럴컴페니는 약속한 망고 나무 묘목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나눠주지도 않았고 그나마 심은 망고 나무도 태반이 죽었다. 어떤 지역은 물을 댈 수 없어서 아예 심는 게 불가능했다. 또 나무의 관리를 대가로 주민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돈도 감감 무소식이다. 망고나무를 돌보느라 농업활동, 경제활동을 못해 주민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콜드플레이의 인도 후원 사례를 성공사례로 선전하고 있다.
1994년 네덜란드의 FACE재단은 우간다의 엘곤산 국립공원 안에 2만5천 헥타르의 땅에 나무를 심기로 우간다 당국과 협정을 맺었다. 또 다른 네덜란드 기업인 그린시트(GreenSeat)가 국립공원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권을 팔기로 했다. 우간다 측에서 이들과 협력한 기관은 우간다야생동물국(Uganda Wildlife Authority)이었다. 의심스러운 점은 엘곤산이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1년 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살던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하루 아침에 갈 곳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이주를 위한 적절한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중요 식량인 죽순도 채취할 수 없고, 땔감도 모을 수 없었다. 주민을 추방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받은 공원 관리인들이 주민들의 집을 불태우고, 농작물을 뽑아버리고, 모욕과 구타를 가하거나 발포했다. 50여명에 가까운 주민이 죽었다. FACE재단과 우간다야생동물국 측에서는 묘목장이 생김으로써 묘목관리에 따른 주민의 수입도 증가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기에 취직된 건 극소수의 사람들뿐이었다. 40년, 50년 산 사람들도 전부 대책 없이 쫓겨났지만 폭력적인 강제추방에 대해 모두 발뺌만 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토론과 (재)정치화
교토의정서에서 제시된 기후변화에 대한 윈-윈 해법인 탄소거래는 실제로는 이산화탄소 회계 조작술일 뿐이다. 교토의정서와 관련해 작성된 공식문서만도 수천 쪽에 이르며, 십여 년 간 이어진 유엔 기후변화협약 회의문서는 훨씬 더 두껍다. 그리고 각각의 세세한 부분에 우리가 미처 파악할 수도 없는 문제가 많다.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점점 일상세계에서 벗어나 기술관료와 이해관계 당사자(자본과 각 국가)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경제적 수단과 정부 간의 협상으로 초점을 좁히는 ‘통제 낙관주의’는 교토의정서의 이행 및 효과에 관련된 불확실성을 은폐하는 동시에 기후변화 문제의 특유한 자본주의적 성격도 간과하게 만든다. 따라서 기후변화의 원인과 자본주의가 자연과 맺는 파괴적 관계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기후변화 문제의 해법에 대한 탐색이 자본주의 체제에 특유하게 내재된 관점과 개념, 방법들로 좁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과를 지난 십여 년 간 목격했다. 기후변화나 탄소거래와 관련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일련의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도외시되고, 연기되고, 배제되고, 누락되고, 상실된 것들이다.
그 와중에 지속불가능한 자원소비 및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기후보호 정책보다는 기후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시장을 활용해 이윤창출의 새로운 기회가 된 교토메커니즘은 막강한 이익집단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이미 형성된 탄소거래 시장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손상을 가하는 조치는 채택되지 않을 것이다.
교토의정서 이후 10년이 열어젖힌 것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말잔치와 자본의 “새로운 놀이터”인 탄소거래 시장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활용할 수단을 개발, 시험, 실행하는 민간 경제부문 행위자들에게 활동의 장이 열렸다. 대부분의 국가에게 자국 에너지산업계의 이익과 경제성장이 우선이며, 국제회의는 이 목표를 우회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심지어 주류 NGO들도 교토메커니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NGO들은 자신의 임무가 세부적이고 실용적 해법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유엔과 각국 정부, 자본, 주류 NGO에 의해서 추진되는 기후 정책은 세 가지 본질적인 결점이 있다. 첫째,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구조적 변화와 같은 대안적인 문제해결 접근법을 배제하는 경제적인 수단을 강조한다. 둘째, 겉보기에 객관적인 과학용어로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통해 문제해결 방안을 도출하고자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해관계의 각축이 있다. 셋째, 매우 한정된 합의만을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회의와 같은 상징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적 정의와 북/남 갈등을 다시 논의의 중심에 두는 교토를 넘어서는 공적인 토론이다. 새로운 토론의 전제이자, 토론 과정에서 합의되어야 하는 것은 탄소거래가 해법이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계급적, 지역적 이해관계와 그에 대한 저항을 기후논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기후문제를 보다 포괄적인 사회생태 위기의 일부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기후문제를 (재)정치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1) 이하의 내용은 사회진보연대 생태팀 세미나와 세미나에서 한 글을 바탕으로 했다. 특히 아힘 브루넨그레버,「교토의정서 정치경제학」, 『자연과 타협하기』, 필맥(2007) ; 윤순진, 「기후변화와 변화책에 내재된 환경불평등」, 『ECO』3호(2002) ; Kevin Smith,「The Carbon Neutral Myth」, Carbon Trade Watch(2007)를 참고했다. 또 캐나다의 생태사회주의자 이안 앵거스(Ian Angus)가 운영하는 블로그 <기후와 자본주의>(http://climateandcapitalism.com/)에 실린 글들이 유용하다. 본문으로
2) 부속서국가에는 선진 산업국가와 구 공산권 국가 38개가 포함되었다. 부속서 1 국가는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 때문에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2008~2012년)에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부속서 2 국가는 부속서1 국가 중 구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24개국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 및 기술 이전 의무가 있다. 나머지 국가는 모두 1차 공약기간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비 부속서1 국가인데 한국도 여기에 속한다. 본문으로
3)미국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21.1%(2004년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 배출국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기술개발을 통한 자발적인 노력에 기후변화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기후변화협상에 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은 온실가스 감축에 개도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교토의정서탈퇴이후 여러 제안을 통해 유엔을 우회한 국제적 리더십을 확보하려고 했다. 2005년 <청정개발 및 기후에 관한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십>을 제안해 2006년 출범시켰다. 여기에 참가한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 인도, 호주 6개국은 전 세계 GDP와 온실가스 배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참가국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자발적, 기술적 대응을 중시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2007년 5월 독일 G8정상회담 직전에 포스트 교토체제를 위한 ‘새로운 기후변화체제’를 제안해 같은 해 8월 17개국이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적 합의와 약속을 깨고 유엔의 틀을 일방적으로 벗어났기 때문에 정치적, 도덕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자발적, 기술적 대응과 보수적인 감축목표도 큰 논란거리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1992년 아버지 부시는 리우 유엔 환경개발회의에j서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은 협상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7년 12월 발리에서 열린 13차당사국 총회에 참가한 미국 대표단은 포스트 교토 체제 논의를 다시 유엔의 틀 내에서 진행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한편 현재 미국의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와와 존 메케인은 모두 교토의정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두 후보 간에 감축 목표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와 세부적인 수단(석탄과 원자력 등)에 대한 강조점 등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자국 산업 우선 보호, 기술적 수단 중심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수사 상의 변화가 아닌)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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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현재 국내에서는 북한 조림 청정개발체제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북한 황폐지 조림의 사업성과 보완과제: 탄소배출권 사업의 타당성 분석」(2008.3.7)을 참고하라.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