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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7-8.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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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어디로 갈 것인가

류미경 | 정책위원
지난 4월 18일에 타결된 한미쇠고기협상을 바탕으로 한 <미국산 수입쇠고기 위생조건>이 6월 26일 관보에 게재된 후, 두 달 가량 지속되어 온 촛불시위는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추가협상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 청와대 및 내각 인사 개편으로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사태를 매듭짓겠다고 나섰으나, 정부가 고시를 강행하겠다고 발표한 6월 25일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전보다 훨씬 강경해진 경찰의 진압 작전에도 불구하고 완강한 투쟁을 전개했다. 주말인 28일에는 6월 10일 100만 촛불대행진 이후 최대 인원이 모였다. 정부는 6월 21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의 ‘추가협상’ 결과를 발표하며 “일련의 조치로 국민이 안심할 수준이 되었다.”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4월 18일 타결된 내용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4월 18일 타결된 쇠고기협상에서 이명박정부는 ‘뼈와 내장을 포함한 30개월령 이상, 대부분의 특정위험물질(SRM)을 포함한 30개월 령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추가협상으로 달라진 부분은 3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만 거래한다는 양국의 수출입업체의 자율적인 조치를 연령검증 품질체계평가(QSA)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양국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뿐이다. 더불어 한국에서 수요가 없는 뇌, 눈, 척수, 머리뼈에 대해, ‘한국에서 수요가 계속 없는 한 이러한 관행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확인’했다는 것과, 대표성 있는 표본에 대한 현지 점검시 한국 정부가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특정 작업장을 점검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광우병 위험을 통제할 최소한의 수단으로 언급되어 왔던 동물성사료에 대한 규제 강화, 특정위험물질(SRM) 수입 배제, 검역에 대한 권한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다.
그러나 이미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겠다고 스스로 나선 이명박 정부로서는 기만적인 추가협상과 고시 강행 후 더 이상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질서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이들이 의존할 수단이라고는 ‘촛불시위에 대한 초강경 탄압’밖에 없는 상태다. 이명박 정부는 고시 강행 직후 시위 도중 연행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 활동가 2인을 구속했고, 8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고시 강행 이후에는 물대포와 곤봉, 방패, 소화기를 무기삼아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백 명의 부상자를 내더니, 29일 오후에는 법무부, 행정안전부, 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무총리실 등 5개 부처 공동으로 ‘과격 폭력시위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여 촛불집회를 서민 경제를 죽이는 ‘불법 폭력시위’로 규정하며 최루액 살포 등을 통해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급기야는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대책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에 이르렀다. 민중의 요구를 진정으로 수용할 의사가 없고 그럴 능력도 없는 이명박 정부가 촛불집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거듭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는 역할만 해왔다.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기자회견, 뒤이은 쇠고기 청문회가 그랬다. 또한 5월 20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발표한 미 무역대표의 서한과 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6월 3일 양국 수출입 업체가 자율적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거래하도록 조치했다는 농식품부장관의 발표, 6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의 두 번째 특별담화, 그리고 6월 21일의 추가협상 결과 발표 모두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와서 폭력시위 운운하며 초강경 폭력진압으로 촛불을 끄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가 뜻대로 관철될 리 만무하다.

쇠고기 문제가 어떻게 빅 이슈가 되었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처음 거론되었고,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관세부과 방식으로 완전 자유화되었다. 그 후 2003년 말 미국에서 광우병 의심소가 발견되었고 노무현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2006년 6월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하면서 미국이 요구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의 하나로 제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같은 해 9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고기에 한하여 수입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검역과정에서 수차례 뼈 조각, 척추뼈, 등뼈가 발견되고 미국 내 부실한 검역체계가 문제시되자 다시 수입이 중단되었다. 그 전인 2007년 4월 한미 FTA 협상 타결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은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미국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획득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뼈를 포함하여 전면 수입할 것을 구두로 약속했다. 그리고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 카란 바타야 미무역대표부 부대표는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전면 재개방하지 않으면 미 의회가 FTA 합의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 뒤 같은 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은 미국에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부여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인 2007년 10월 1차 쇠고기협상에 응했으나 특정위험물질(SRM) 수입을 받아들이지 않고 협상을 결렬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이어 받은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후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2차 쇠고기협상이 열렸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의 미국 의회 내 비준을 위해서 연령제한을 없애고 30개월 미만의 쇠고기에 대해서는 혀, 곱창, 사골, 꼬리뼈 등 특정위험물질도 포함하여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사실상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순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광우병 위험으로 중단되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한미 FTA 협상 개시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되면서 이 문제는 한미 FTA 협상의 불평등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되었다. 뿐 만 아니라 2006년~2007년 한미 FTA 저지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동안 한미 FTA 반대운동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문제를 함께 제기해왔다. 그러나 당시 미국산 쇠고기가 제한적으로 수입되던 상황에서 이 문제는 폭발적이지 않았다. 한미 FTA 역시 초기에 광범위한 반대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분야별 이해득실, 국익 논란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체결 후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나 올해 4월 18일 연령과 부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기로 결정된 후 4월 29일 MBC PD수첩에서 방영된 ‘미국산 소고기, 과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동물성 사료, 특정위험물질 등의 문제가 집중 부각되었고, 특히 인간광우병의 감염 경로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법도 없다는 점은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켰다. 급식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중고등학생들이 나서서 촛불집회 개최를 제안했고, 인터넷카페인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2MB탄핵연대)와 <정책반대시위연대가> 5월 2일 개최한 첫 촛불집회에 2만 명 넘게 모였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진행된 이명박 탄핵 온라인 서명운동에는 100만 명이 훨씬 넘게 참여했다. 5월 6일 인터넷 카페와 네티즌 모임, 사회단체 등이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개에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를 결성했다. 이 자리에서 대책회의는 4대 요구사항으로 협상 무효화와 재협상, 협상경위 규명과 책임자 파면, 이명박의 책임인정과 공개사과, 광우병예방특별법(가칭) 제정을 결정했다. 그 뒤 청계광장에서는 연일 촛불집회가 개최되었고, 5월 24일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최초로 가두로 진출하여 연행되는 사태가 발생한 후부터 참여 인원이 급증했고 장소도 서울시청으로 옮겨졌다. 촛불집회는 가두 진출을 가로막는 경찰에 불복종하는 투쟁으로 확산되었고, 5월 31일에는 경찰이 설치해 놓은 차벽을 뚫고 경복궁까지 진출하여 물대포를 동원한 진압을 무릅쓰고 밤샘 시위를 전개했다. 6월 29일 촛불시위가 53차에 이르는 동안 경찰은 1,000명에 이르는 시민들을 연행했고 대다수를 집시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위해 국민의 건강권을 손쉽게 포기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반민중성이 극적으로 드러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가 기폭제가 되었지만, 촛불집회가 다룬 의제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촛불집회 초반 이 운동은 ‘과학적 사실과 무관한 괴담과 근거 없는 공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폄하되었으며 따라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진행되면서 더욱 확산된 것은 ‘괴담’이 아니라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절대 다수 국민의 목소리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였고, 의료 민영화, 상수도 민영화, 학교 자율화 등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민중적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물가폭등, 고용불안으로 인해 더욱 커지는 민중의 불안과 고통을 전혀 해결하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에 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시작된 민중의 저항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문제는 민중의 건강권을 무시하는 WTO, FTA 무역체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가 논란이 되는 동안 한미 FTA와 쇠고기 문제는 별개라고 주장했다. 쇠고기 수입은 한미 FTA가 아닌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통해 개시되어 WTO 내에서의 관세 및 위생조건 조율을 위한 협상에서 다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알려진 것처럼 광우병 위험으로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재개는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위해 시작되었고, 한미 FTA의 미 의회 조기 비준을 위해 마무리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미 FTA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쇠고기 문제와 한미 FTA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드러냈다. WTO와 한미 FTA 협상는 협상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관세를 낮추고 비관세장벽을 제거하여 전 세계적인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따라서 WTO를 통해 협상이 이루어지는지, 양자간 FTA를 통해 협상이 이루어지는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WTO나 FTA가 지향하는 국제적인 무역체계가 초민족자본의 기업 활동의 자유와 이윤 확대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데 있다. 양국 정부는 ‘과학적 기준에 입각한’ 무역 규범에 따라 ‘한국의 국민들도 질 좋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싼 값에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여기에는 카길을 비롯한 초민족 농식품 기업이 광우병 위험 논란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무역과 이윤 창출을 지속한다는 목표가 숨어있다. 비육-도축-정육 과정의 통합을 기본골격으로, 사료산업, 냉장, 유통, 농업자금 대출, 그리고 동물 부산물 가공까지 초민족기업이 장악하고, 소규모 목축 농민들은 일종의 도급 형태로 가장 위험부담이 높은 한 두 부문을 떠맡는 형태인 미국 육류생산 체계에서 육골분 사료라는 광우병의 직접적인 원인은 제거되지 않고 있다. 현재 WTO나 FTA를 통해 형성되는 무역 체계는 이렇듯 생태와 민중의 건강에 대한 위협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이를 ‘자유화’라는 미명하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 문제뿐 아니라 유전자조작식품(GMO), 쇠고기 성장호르몬과 같은 식품안전성을 해치는 요소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 FTA 협상을 개시했던 노무현 정부나 이를 조속히 발효시키려는 이명박 정부나 한미 FTA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강조했다. 2006년 4월 한미 FTA가 체결된 직후 ‘한미 FTA 협상에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비판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모든 분야를 다 내주더라도 한미 FTA를 체결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이익이다.” “한미 FTA를 기회로 삼아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구조조정하고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쇠고기 문제에 관한 대국민담화에서 “유가, 식량, 원자재 값의 상승과 미국 발 금융위기 등의 상황에서 한미 FTA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므로 것은 이념이나 정파를 떠난 국가적 과제인 한미 FTA 비준에 나서야 한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34만개의 좋은 일자리가 새로이 생기고, GDP(국내총생산)도 10년간 6%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대통령으로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쇠고기협상을 추진했다.]”라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고강도,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기반을 두고 대미 상품수출에 의존해 성장해 온 한국경제가 1996-97년 위기에 처하자 노동유연화와 급격한 평가절하를 통해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비슷한 성장방식을 취한 중국과의 3각 교역, 즉 한국에서 중국으로 부품소재를 수출하고, 중국에서 미국으로 최종소비재를 수출하는 형태가 활성화되면서 국내투자의 저하와 경기침체의 장기화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IMF 구조조정으로 초민족자본의 금융지배가 심화되면서 오히려 평가절상의 압력이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배계급은 한미 FTA를 통해 대미교역량을 확보하고 외자유치를 촉진하여 이러한 위기를 극복한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경제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이중적자를 지지해주는 원천인 동아시아 지역과의 FTA를 통해 초민족자본의 활동의 안정성을 구축하고 이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으로 확대하는 것이 사활적인 과제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사회에 도입하고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구조조정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성한다는 한미 FTA는 더욱 불안정해지는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을 확대할 뿐 한국경제의 장기침체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국내 재벌과 초민족자본의 생존전략일 뿐 노동자 민중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더구나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는 현재 WTO나 FTA를 통해 완성하려는 국제무역체계가 철저하게 초민족자본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이윤 확대를 보장하기 위해 민중의 건강권을 파괴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FTA 협상에서 쇠고기는 내주었지만 쌀은 지켰고, 자동차와 섬유시장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다가는 한미 FTA 협상 타결로 확보한 자동차 및 섬유 시장마저도 내주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며 쇠고기 재협상이 국익을 저버린 주장이라고 협박했다. 이들의 의도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가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분야별 이해득실 논리와 국익론에 묻혀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촛불집회가 주장하는 ‘축산업체의 이윤에 우선하는 민중의 건강권’이라는 쟁점은 무척 중요하다. 이를 확장하여 모든 국제적인 교역은 민중의 필요와 권리에 부합하는 방식이어야지, 초민족자본의 기업 활동을 자유화하고 이윤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촛불 어디로 갈 것인가

이번 촛불집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되는 것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다. 1800개에 이르는 시민사회단체가 대책회의를 구성했지만 어떤 구호를 외칠지, 어떤 방식으로 집회를 이끌어갈지는 집회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선도해왔다. 대책회의는 협상 무효화와 재협상, 협상경위 규명과 책임자 파면, 이명박의 책임인정과 공개사과, 광우병예방특별법(가칭) 제정 등 광우병 문제에 국한하여 요구를 제시했지만, 집회참가자들은 한반도 대운하, 의료민영화와 상수도민영화를 비롯한 공공부문 민영화, 학교자율화 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반을 비판했다. 밤샘 가두시위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기만적인 첫 번째 담화문을 발표한 뒤 집회참가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개시되고 유지되었다. 기만적인 대책과 강경진압으로 촛불시위를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분명해짐에 따라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 역시 자연스럽게 확산되었다.
촛불집회가 두 달 가량 지속되고 집회 참가자들이 제시하는 요구가 확대됨에 따라 대책회의 내에서는 출범 당시 내걸었던 기조와 요구를 더욱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논의의 쟁점은 대략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 번째는 무엇을 의제로 삼을 것인가다. 대책회의는 거리에서 제기되는 요구를 반영하여 광우병 문제(협상무효, 고시 철회, 재협상) 외에도 의료민영화, 공공부문 민영화, 학교자율화, 한반도 대운하, 공영방송 사수의 다섯 가지 의제를 추가하고 촛불집회에도 이를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전면 재개의 발단이자 이를 매듭짓도록 추동했던 요소인 한미 FTA는 의제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촛불시위에 참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인데,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침체를 돌파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인 한미 FTA를 포기할 수 없어서 쇠고기 수입 개방을 불가피하게 선택했다는 이명박 정부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국익론’에 근거를 둔 촛불시위에 대한 역공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FTA를 포함한 국제 무역체계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는 사활적이다. 둘째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입장이다. 이미 촛불집회에서는 ‘이명박은 물러나라’, ‘이명박 OUT’, ‘명박퇴진’ 등의 구호가 널리 확산되었지만 ‘정권 퇴진’을 투쟁의 목표로 상정한다면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대책회의는 이를 공식적인 구호로 채택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 다만 6월 10일 ‘100만 촛불 대행진’에서 10일 후인 6월 20일로 시효를 두고 이명박 정부가 ‘전면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권 퇴진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전면 재협상’ 요구가 수용되지 않고 기만적인 추가협상을 명분으로 정부고시를 강행한 현재까지도 이는 쟁점으로 남아 있다. 셋째는 앞의 두 문제와 결부되어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라는 명칭을 변경하거나 대책회의의 위상을 확대하는 문제다. 확대된 의제와 구호를 반영하여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전체 민중운동-시민사회운동을 포괄하는 연대조직으로 그 위상이 변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 역시 쟁점으로 남아있다. 더불어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청와대 진출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구사된 차벽 넘기와 경찰버스 끌어내기와 같은 전술을 유지할 것인지, ‘비폭력’ 원칙을 고수할 것인지 역시 쟁점이다. 투쟁이 확산될수록 많은 쟁점이 추가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투쟁이 사그라질 것을 앞서 우려하며 단기적인 성과를 미리 챙기려 든다거나 운동 단체들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사태로 전개될 것을 두려워하며 대중들의 과감한 행동에 동참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유의미한 결론을 얻지 못할 것이다. 쟁점이 확대될수록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역사적인 맥락을 적극적으로 사고하면서 대중적인 운동 속에서 답을 찾고 대안을 모색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 유가와 곡물가 폭등으로 이미 불안정성이 심각하게 노출된 세계 경제에 더욱 깊숙이 편입하는 것 말고는 경제를 살릴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촛불집회를 접고 모두가 경제를 살리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민중의 불안과 고통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면 민중의 분노는 언제고 거듭해서 폭발할 것이다. 국제적인 금융 불안과 유가 및 원자재가 폭등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갈수록 경제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상승률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물가상승과 실업 확대로 인한 고통은 저소득층에게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식품 안전과 건강에 대한 민중의 우려를 철저히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가를 비롯해 물가인상으로 더 큰 고통을 받는 서민과, 실업이나 비정규직 고용으로 신음하는 노동자에 대해 어떤 실질적인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두 달여 동안 전국을 뒤흔든 민중의 요구를 무시하고 오로지 ‘국제적인 신뢰’를 지키기 위해 고시를 강행한 이명박 정부를 향해 ‘퇴진’ 구호를 지속하는 것은 식품안전과 건강에서부터 물가와 고용에 이르는 삶 전반에 걸친 민중의 요구를 이명박 정부가 결코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달 가까이 민중들이 거리에서 외친 권리를 스스로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지속하고 확대해 나갈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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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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