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6개월 노동자운동 평가와 하반기 전망
노동자운동 평가와 하반기 전망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48.7%(17대 대선 득표율) → 37.5%(18대 총선 득표율) → 17.1%~22.9%(YTN/중앙일보, 6.3 취임 100일) → 31.2%(서울신문, 08.25)로 급격하게 추락하다가 최근에 약간 반등했다.
‘막대기만 꽂아도, 강아지만 데려다 놓아도 한나라당이면 당선된다.’는 말이 상징하듯 노무현 정권 집권 5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에 대한 대중적 반감은 극에 달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 지역, 세대를 넘어 ‘노무현 정권교체’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경제성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힘입어 48.7%의 지지(투표율 63%)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4월 9일 18대 총선에서 노무현과 386 판본의 ‘진보’가 보여준 무능력과 기만은 최종적인 심판을 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152석 대 한나라당의 121석의 비율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153석 대 통합민주당 81석(투표율 46%)으로 반전되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예기치 않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거리를 뒤덮었고 물가폭등, 경제위기 심화와 맞물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정국주도권이 약화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한 조건 창출과 국제적 안전 기준을 명분으로 고시를 강행하려 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더욱 격렬한 가두시위를 낳았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 초기 과잉, 폭력진압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후 청와대 방면으로 시민들의 진출만 차단하며 촛불시위를 보장했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친재벌/반민중 정책으로 인한 민심이반에 대한 묘안은 없었다. 따라서 정부는 6.21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발표와 6.26 관보 게재 강행 이후 촛불집회에 대한 대대적인 공안탄압으로 선회했다. 경찰, 검찰은 물론 법무부까지 나서 인터넷 활동과 네티즌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을 자행했다. 이른바 ‘광우병 괴담’에 대한 광범위한 인터넷 여론 수사,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5.17 학생 동맹휴업 문자메시지 발신자에 대한 기소, 여성시민 사망설을 제기한 네티즌의 구속, 촛불시위 소송 상인 명단을 발표한 네티즌에 대한 체포, 그리고 조중동 광고기업 불매운동 네티즌에 대한 출국금지, 압수수색, 구속 등등. 또한 사회운동단체와 활동가들에 대한 공안기관의 탄압이 거세졌고 심지어는 국가보안법까지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한국진보연대 지도부에 대한 구속과 수배, 촛불집회 국면에서 파업을 진행했던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구속,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활동가 체포. 그리고 불법 시위에 대한 집단소송제 실시, 집회 복면착용 처벌, 불법 시위 참가단체에 대한 보조금 중단,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반촛불 법안’ 입법 시도.
촛불집회가 사그라진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인 공안탄압과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민중운동 전반이 투쟁의 전열을 정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악화된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상반기 급박한 정세에서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핵심적인 주체인 노동운동이 어떻게 활동해왔는지에 대한 엄밀한 평가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박의 예고된 공세 vs 노동운동의 취약한 태세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이석행 위원장이 경찰에 출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노총과의 간담회 약속을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민주노총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권의 노동정책은 초민족자본과 재벌의 이해를 전면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경제성장’ 기조에 철저히 종속되어 ▲‘법과 질서’의 확립(‘반노조’ 이데올로기의 강화와 파업권의 무력화)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구성(노사협조주의의 확대와 민주노조운동의 고립화) ▲노사관계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유연화 ▲차별을 고착화하는 비정규직 문제의 확대, 심화 ▲일과 가정 양립형 여성 일자리 확대, 여성을 위한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양산)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예견되는 정세가 분명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대응력이 지극히 취약해진 것이 문제다. 또 한국진보연대의 무리한 출범과 왜소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파적 패권과 무능력 등 운동세력 내부의 문제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어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노총은 2008년 3대 사업목표로 ▲민주노총 조직력, 투쟁력 강화 ▲산별노조 강화, 비정규/미조직사업 강화로 대산별 건설기반 마련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 제고로 설정하고, ▲신자유주의적 공공부문 시장화, 사유화 저지에 맞서 공공부문 연대로 강력한 대정부 투쟁 전개 ▲4.9 총선에서 원내교섭 단체 쟁취 ▲6월말~7월초 산별공동 임단투에 기반한 민주노총 총력투쟁 전개, 10월말~11월초 ‘2008년 요구 쟁취 민주노총 총력투쟁’ 전개 ▲이를 위해 총연맹, 가맹, 산하, 산별노조를 망라하는 2008년 민주노총 투쟁본부 출범을 투쟁기조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11일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저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동투쟁본부)를 출범하고, (가칭)‘신자유주의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반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민연대’ 결성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공동투쟁본부는 각 연맹 혹은 산별노조의 계획을 조율하는 것 이외에 투쟁의 지도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는 1만 명이 참가했는데 투쟁을 결의하는 장이 되지 못했고, 4월 총선 시기 제시한 1만 명 규모 캠페인 인 <사회공공성 지킴이 발족식> 등 맥없는 이벤트 사업이 주를 이뤘다. 또한 공동투쟁본부는 5.21~23 사회공공성 포럼 개최, 5월 24일 각 산별 결의대회와 3만 명이 참석한 민주노총 ‘민생파탄 물가폭등 이명박 정권 규탄! 공공부문 시장화 사유화 저지! 민주노총 공공부분 공투본 총력결의대회’ 개최 이외에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계획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고 해당 연맹/산별노조의 투쟁을 취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문제점은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지역마다 공동투쟁팀을 구성하도록 한 민주노총의 지침에 대한 지역본부의 비판적 평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편 공공운수연맹은 6월 18일 ‘국민생존권 보장과 공공성 사수를 위한 가스, 전기, 철도, 지하철 공동투쟁본부(약칭 기간산업 공투본 / 운수노조 철도본부, 공공노조 가스지부, 공공노조 가스기술지부, 한국발전산업노조, 한국전력기술노조, 서울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노조로 구성)’ 출범기자회견을 갖고, 7월 5일 1만 여명이 참석한 출범식 개최, 7월 25일 2차 결의대회를 개최했으며, ▲공공요금 인상 중단과 국민생활 기초서비스 보장, ▲민영화정책 철회 및 구조조정 중단, ▲공공기관 운영 민주화, ▲노동기본권 보장, ▲올바른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노정교섭 틀 마련 등을 요구안을 갖고 국무총리 교섭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교섭사항이 아니라며 이를 거절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시민단체와 함께 연대기구를 구성하는 것에 중요성을 두면서 민주노총 공동투쟁본부 주관으로 “사회공공성 포럼: 시장화 사유화를 넘어 사회공공성 대안 찾기”를 개최하여 시민단체를 조직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민주노총과 직접 연대기구를 구성하는 것을 꺼리는 바람에 국민연대 결성이 좌초되었다. 시민단체는 민주노총이 시민의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의 특수 이익을 추구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도 보편 이익을 위해 투쟁하지만 노동조합인 이상 노동자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결국 노동자의 요구가 특수 이익이라는 정권과 자본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시민운동에 대한 추종적 자세를 낳을 뿐이다. 민주노총은 ‘진보진영 단일투쟁전선 구축과 통일단결 실현’을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민주노총이 추진하는 각종 연대 사업에서 한국진보연대 출범을 반대했던 세력, 이른바 좌파세력은 사실상 주요 고려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이런 태도 때문에 상반기 국민연대 결성이 좌절되었고 진보진영의 단일투쟁전선도 구호로만 남게 되었다. 한편 국민연대 결성이 좌초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시장화, 사유화 정책에 대한 대응을 위해 6월 24일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 저지 공동행동’(물 사유화저지 공동행동, 미디어 공동행동, 보건의료단체연합, 범국민교육연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입시폐지대학평준화범국본, 한미FTA저지 교수학술공대위, 빈곤사회연대)이 결성되어 5월 21~25일 ‘공공성 지키기 촛불문화제 및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 저지 공동행동’은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책적, 이데올로기적 대응을 넘어 대중적인 투쟁을 조직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를 가졌다.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라는 엄혹한 정세적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전국적인 투쟁의 중심형성과 지역별 반신자유주의 연대투쟁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지 못하고, 시민운동을 주요 파트너로 사고한다면 이는 현실적인 투쟁전선 형성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서울지역 사회공공성 연대회의’를 포함하여 상반기 각 지역마다 신자유주의적인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기구들이 이미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지역별 연대기구들의 역량을 결집하고 하반기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 저지투쟁이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으로 훼손된 지역연대운동을 다시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진보진영의 단결과 연대를 위해 책임 있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의 고수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참담한 패배 이후,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을 중심으로 한 당내 논쟁과 갈등이 촉발되었다. 1월 12일 중앙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하였으나 1월 26일 총선 전 진보신당 창당을 표방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공동대표: 김석준 부산시당위원장,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조승수 전 진보정치연구소장)이 공식 출범하였다. 2월 3일 임시당대회에서 상당한 갈등과 논란 끝에 이른바 ‘일심회’ 관계자 제명 건이 부결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심상정 비대위’가 총사퇴하고 민주노총 전현직 임원 45명이 탈당선언을 하는 등 탈당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이는 배타적 지지단체인 민주노총으로까지 이어져 조합원들의 탈당이 급증하기 시작됐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진보진영은 2개의 진보정당으로 분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2007년 11월 17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비례대표제 선거방식으로 1인 6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2004년 총선과 달리 비례의원 숫자는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1인이 행사하는 투표수가 늘어날수록 다수파가 유리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진은 ‘소수대표성 보장’을, 내부적으로는 ‘범좌파 비례후보 당선’을 위해 명부별 1표제(여성과 일반도 1인 1표, 즉 1인 4표)를 추진했었으나 선출방식은 최고위가 제출한 원안이 그대로 처리됐다. 이날 중앙위의 결과는 평등파 일각에게는 다수파인 자주파가 민주노동당을 정파연합당으로 유지하기를 포기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당사태가 촉발된 직접적인 계기일 뿐 분당론이 급속히 현실화된 배경에는 그 동안 민주노동당 활동과정에서 지역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적 갈등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고 대중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 등 ‘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사당화(私黨化) 경향이 강화되고 있었다. 지역구의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파 간 경쟁구조에 과다하게 노출되었던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 의회주의적 성격도 당의 파괴적인 분열에 크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지난 활동에 대한 발본적인 성찰 없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까지 동원해 ‘종북주의’나 ‘주사파’와 같은 선정적인 딱지 붙이기로 이념에 대한 마녀사냥을 한 것은 ‘평등파’의 명백한 오류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가졌던 역사적 의미이자 현실적인 힘의 근원은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대중조직의 조직적 지지와 지원이었다. 그런데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에 대해 제대로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소위 중앙파 노조활동가들의 다수가 활동 중인 금속노조와 공공연맹에서조차 ‘배타적 지지 철회’ 관련 논의는 유보되거나 공식 논의 안으로 상정되지도 못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치위원회와 동부/서부/북부/남부/남동지구협의회가 산하 3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2월 27일~3월 5일 1주일 동안 실시한 설문조사는 진보정당의 분열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물론 연맹별 응답자의 경우 56.9%가 공공운수연맹에 집중돼 있고, 금속 사업장 0.28%에 불과했으며, 언론노조 응답자가 34.6%로 2위를 차지하는 등 모집단이 민주노총의 대표성을 말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선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과 관련해 방침 철회에 찬성한 응답자는 25.1%인 반면 배타적 지지 방침 고수는 13.1%에 그쳤다. 응답자들의 59.9%인 절대 다수는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노동자 우호적인 진보정당에도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답해 사실상 배타적 지지 방침 철회 의견이 압도적 다수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의 역할에 대해서는 조합원의 46.9%가 분당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두 진보 정당 사이의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34.4%는 두 정당이 재통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응답해 역시 압도적 다수가 두 진보정당의 연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은 6.8%에 불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의 분당 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습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에 대한 반성과 노동자운동의 단결을 추구하기 보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기에 급급했다. 이미 분당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통일단결’을 주장하면서도 “분당 추진한 사람부터 솎아내야” 한다거나 “진보신당과 연대할 생각이 없다” 등 갈등을 부추기는 태도와 발언들이 이어졌고 일부지역에서 진보신당을 표적으로 한 공천도 강행했다. 대규모 탈당사태에 맞서 “총선시기 평생당원 1천명, 당원 1만 명 조직하겠다”며 민주노동당 평생당원 모집, 사업장 차원의 집단 당원 가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패권적인 방침에 대한 조합원들은 반응은 싸늘했다. 민주노총 차원의 총선투쟁기금 모금액은 3,200여만 원에 불과했다. 총선 결과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3석(5.6% 득표)을 합쳐 5석을 확보하여 2004년 총선에 비해 의석이 반으로 줄어 독자적 입법발의권이 없어졌다.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진보신당의 창당, 그리고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추진위원회’와 ‘노동자 진보정당 건설 전국추진위원회’ 등 복수의 정당 건설 흐름이 준비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형식적으로는 유지되고 있으나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배타적 지지방침의 고수에 집착할 경우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파괴적 분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지금까지의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침과 민주노총의 정치활동을 냉철히 평가해야한다. 이에 기반해서 복수의 진보정당운동의 출현이 민주노조운동의 분할과 분열의 계기로 작동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새롭게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예기치 않은 촛불정국과 민주노총의 역할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여 5월 2일부터 시작해 8월 15일 100회에 이른 촛불집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반도 대운하, 공공부문 사유화, 학교자율화, 건강보험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로 확대되어 이명박 정부의 초기 정책주도권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대상인 쇠고기 수입은 강행했지만 가스, 발전, 수도 등 공기업 민영화, 의료 민영화 등 정부 내부의 정치적 판단이 작동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하지만 추가협상 발표와 고시 강행 이후 대대적인 공안탄압과 역공을 가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이 친박연대와 무소속 의원들의 합류로 개헌선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정책추진에 큰 힘을 얻었다.
민주노총은 촛불운동에 대해 “민주노총 지부도 청계광장 농성 돌입, 미국산 쇠고기 운송저지 투쟁 전개, 촛불집회에 대규모 조합원 참여, 7.2 총파업 투쟁, 7.5 이후 전개된 의제별 투쟁에 연맹별 촛불집회 개최 등을 통해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 소중한 성과로 돌아왔으며 6월말부터 강화된 정권의 물리적 탄압 속에서도 촛불 정세를 완강히 이어가는데 복무하였다”라고 평가했다. 즉 “10만큼하고 100만큼 얻은 투쟁”이라는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운동진영의 주도력이 부족했고 비정규직,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의제의 쟁점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점, 투쟁본부를 통해 결정된 주요 방침들이 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한계로 평가하고 있다.
촛불집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평가는 “한계는 있었지만, 열심히 했고, 성과도 좋았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까? 촛불정국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을 냉철히 평가해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우선 민주노총은 일관된 투쟁기조였던 ‘촛불에의 복무’, 즉 촛불집회에 참여한다는 것 외에 주도적인 운동의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지 않았다. 이명박의 정책주도권에 대한 타격, 이명박의 시장화/사유화 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의 형성 등 촛불집회가 미쳤던 정세적 효과는 컸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가지는 명백한 한계와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촛불집회가 민주노총의 투쟁을 그대로 대변할 수는 없었다. 예컨대 대운하, 방송장악 등 이명박 정권이 시작한 정책들에 대한 반대 여론은 촛불집회와 함께 급속하게 확산되었으나, 노무현 정권 말기 추진하여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과 반대여론을 형성했던 여러 쟁점들은 촛불집회에서 잘 수용되지 않았다. 지난 5~7월은 경제위기와 물가폭등이라는 상황에서 광우병 논란의 직접적인 계기인 한미 FTA 문제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등이 중요한 정세적 쟁점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에 대한 적절한 투쟁과 여론화를 하지 못했다. 한미 FTA의 문제,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등에 대해서 여론의 지지가 높지 않다는 근거로 투쟁을 방기한다면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는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제 세력, 나아가 민중운동 전반이 면밀히 평가해야할 지점이다.
둘째, 민주노총은 ‘집단 이기주의’라는 언론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포화 속에서 시민단체에 대해서 더욱 수세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촛불집회 국면에서 “네티즌을 앞장 세워야 한다. 우리가 나서면 판을 망친다.”라는 이석행 위원장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노동자운동의 힘을 스스로 잠식하는 효과를 낳았다. 2000년 이후만 보더라도 민주노총은 경제자유구역,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이라크전쟁, 한미 FTA, 비정규법 등을 매개로 민중운동이 공동투쟁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버팀목 구실을 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한 민주노총의 주도력이 약화되면서 민중운동의 연대도 약화되고 있다. 한편 촛불집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인식과 태도는 공안탄압이 본격화된 이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투쟁 기조를 둘러싼 논쟁에서 의제확대와 가두투쟁보다는 광우병 단일의제와 불매운동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시민단체에 힘을 실어주었다.
셋째 촛불정국에서 민주노총의 투쟁이 책임 있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민주노총 평가에서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 투쟁본부에서 결정된 방침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 “정부가 오는 15일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할 경우 ‘결사항전’ 할 것”, “11일 민주노총이 나서서 서울 시청광장 탈환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 등 이석행 위원장의 과감한 발언은 대부분 거짓말이었다. 연초부터 공언했던 7.2 총파업(총력투쟁)은 금속노조 외에는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며, 공공노조 일부 사업장은 찬반투표조차 부결되었다. 당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공공부문 민영화에 반대하는 정치총파업은 정세가 고양되는 6월 10일 전후에 지도부가 파업을 선언하고 이를 통해 현장을 조직하자고 제기된 것이었다. 그러나 찬반투표를 통한 총파업으로 결정되면서 시간을 끌어 7월로 미뤄지고 말았다. 어차피 정치총파업은 노동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찬반투표는 정치적 결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시기는 정세와 무관하게 늘어지는 투표시기에 맞추어 연기를 거듭했다. 또 필수공익사업장은 필수유지업무제도라는 법적 제약에 갇히면서 불법파업의 책임은 현장으로 떠넘겨지게 되었다.
7.30 서울교육감 선거: “촛불여론 vs 이명박/보수세력” 격돌
7월 30일 촛불정국의 여파 속에 최초로 서울시민 직선으로 치러지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보수층은 위기에 처한 이명박 정권을 구하고 대선과 총선의 승리를 재확인하기 위해서 ‘전교조에 의한 교육정책을 막아야 한다.’는 공세를 펼치며 이념 대결의 선거 구도를 만들었다.
선거결과는 499,254표(40.09%)를 얻은 공정택 후보가 477,201표(38.31%)를 얻은 주경복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서울시 25개 구 중에서 17개 구에서 주경복 후보가 많은 득표를 했음에도 강남 표의 결집은 박빙의 선거 판세를 갈랐다. 평균투표율 15.5%인 상황에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서초(19.6%), 강남(19.2%), 송파(16.6%)의 유권자들은 공정택 교육감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줬다. 대표적 서민 주거지역인 은평(13.5%), 강북(13.2%), 중랑(13.7%)의 낮은 투표율과 큰 차이가 났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시장화 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주요한 계기였다. 결과적으로 주경복 후보의 낙선으로 기대했던 가능성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결과에 대해 “새 정부 교육정책, 국민적 지지 확인했다.”며 자신감을 표현했고, 공정택 교육감은 당선과 함께 초등학교까지 입시경쟁체제로 몰아넣을 ‘국제중’ 설립을 발표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가 필요하다. 우선 이번 선거가 현재의 정세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평가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는 촛불여론의 정당성과 ‘이명박·공정택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인하여 이명박 정부의 정책 주도권을 약화시킬 수 있는 주요한 계기였다. 따라서 최소한 선거에서 승리하지는 못했더라도 이명박·공정택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선을 형성하여 이후 교육시장화에 맞선 투쟁의 고리를 확보했어야 한다. 하지만 주경복 선본에 참여한 일부 교육시민단체들의 민주당 선본참여 주장, ‘외고폐지’를 통한 입시 경쟁체제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에서 ‘외고 정상화’로의 선거공약의 변경 등을 둘러싸고 내부적 논란과 갈등이 존재했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의 이명박·공정택 교육정책에 대한 명확한 폭로를 통한 여론형성 보다는 ‘당선’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소위 중간층의 표를 얻어야 한다는 이유로 선거기조가 대폭 후퇴하여 선거 막바지에는 선거운동원들이 지역에서 여론을 형성하기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전교조’와 ‘교원평가제’와 관련한 주경복 후보의 발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마 전교조에서 임의적으로 저를 지지할 순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지지하는 많은 사회 시민단체가 있는데요. 콩나물에 시금치 한 잎 들어가면 그게 뭐 시금치 국이 됩니까, 저는 콩나물 국, 말하자면 시민후보입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특히 교수단체가 저를 추대해줬습니다.” 조 중동을 포함한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전교조’에 대한 이념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후보의 이런 발언은 현장 교사들에게 선거회의론을 일으킬 정도로 너무도 수세적으로 표를 구걸하는 것이었다. “글쎄, 그 점도 참 많이 지금 왜곡해서 흑색선전하고 있는데 저는 한 번도 교원평가 반대한 적이 없고 오히려 교원평가는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추진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교원평가가 목적으로 하는 게 일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부적격 교사 문제거든요. 저는 강력하게 레드카드제를 도입해 가지고 부적격 교사는 바로 조치할 그러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예, 일정한 선을 넘어선 교사들은 축출해야 되죠. 그렇게 하고 교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을 해야 한다, 그냥 단순 그 체크리스트형 교원평가 가지고는 그게 힘들고요. 보다 더 심도 있는 교원의 질을 진단하는 그런 제도를 도입해서 질이 미달하면 바로 조치할 수 있는 그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주경복 후보의 교원평가제에 대한 발언은 전교조가 수년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관철을 위한 교사통제의 수단인 교원평가제에 맞서 싸워왔던 근거를 일시에 허무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당선’만을 목표로 명확한 정책기조를 가져가지 못했을 경우에 가져오는 심각한 폐해에 대해 냉혹한 자기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은 주경복 후보를 공식적인 지지후보로 결정했다. 당초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최초로 서울시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7.30 서울교육감 선거 출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서울지역이 주축이 되어 교육감 선거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촛불정국으로 인해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지만,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는 조직적으로 선거에 대응하지 못했다. 조중동 등을 등에 업은 보수세력들의 총 공세에 견주어 볼 때, 노동운동진영의 정세판단과 대응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전교조 서울지부 등이 참여하고 있는 서울지역 사회공공 연대회의와 여러 교육시민단체, 정치조직들이 주경복 선본에 결합하거나 서울 소지역의 사회공공성 연대단위를 구성하여 활발히 운동을 추진했고 진보정당의 분당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지역별 연대운동의 토대를 형성하는 성과를 낳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경우 산별의 경계를 넘어 8,000여개 사업장에 간담회와 교육을 배치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기 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서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알릴 수 있었다.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한계와 산별시대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 예상하고 총파업을 작년부터 준비했다.”
“나를 던지겠다는 생각으로 6월말 7월초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6월말 7월초 이명박 정부와의 전면전을 치르겠다며 한 발언이다. 하지만 이석행 위원장의 호언과는 달리 민주노총의 6월말~7월초의 총력투쟁은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산별임단투에 기반한 총력투쟁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7월 2일 총파업에 참가한 단위는 금속 외에는 거의 없었고 산별공동임단투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공공노조의 경우 총파업 불참을 넘어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파업찬반투표가 부결되기도 하였다.
투쟁은 선언과 희망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약화되어 있는 민주노총의 조직상황을 냉철히 진단하고, 이를 고려한 정확한 계획을 제출해야 실패하더라도 전진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허언’은 대중들의 신뢰만을 떨어뜨릴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상반기 투쟁은 이석행 집행부의 지도력의 부재와 무능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금속노조, 공공노조, 운수노조 등 산별노조 전환에 따라 총연맹의 전략적 위상이 모호해 질 수 있다는 문제를 주요하게 검토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자체 평가에서 민주노총 산별교섭 구조가 안착되어야 산별 임단협 시기집중 투쟁이 가능하리라 언급했지만, 산별노조의 자립성이 높아지면서 산별의 규모와 자원이 크면 총연맹이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지금처럼 재정과 산하조직에 대한 구속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산별시대에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은 점점 더 모호해질 가능성이 높다.
98년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을 둘러싼 국민파와 현장파 간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구도는 산별노조/진보정당 즉 내셔널 센터(정치세력화, 정부와의 정책협의)-산별노조(산별교섭, 산별조직화, 정책개발·교육사업)-단위사업장(추가적 교섭, 노동자경영참가) vs 계급적 노동운동/노동자정치조직 즉 내셔널 센터(노동자투쟁의 정치적 구심)-지역본부(지역 차원의 노동자 공동투쟁 및 민중연대투쟁)-단위사업장(현장조직활동) 간의 논쟁이었다.
지난 논쟁을 반추하건대 산별노조 시대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대정부 정치투쟁의 지도부로서의 역할과 대정부 교섭전략의 수립이라는 두 차원에서 동시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양자는 분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민주노총이 산별시대에 정부나 자본이 노조 요구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투쟁의 동력을 현실적으로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점검을 해야 하며, 노조 투쟁동력 집중을 전제로 하면서 대정부 교섭 역량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총연맹 권한 강화와 민주적 지도력을 통해 투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총연맹 지역본부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설립초기 산별연맹을 중심축으로, 지역조직을 보조축으로 설정하면서 지역본부의 위상은 단순한 협의체로 전략해서 상근 간부 부족, 열악한 재정, 수공업적 조직 활동 등의 문제를 일상적으로 겪어 왔다. 따라서 총연맹 지역본부가 산하조직에 대해 충실한 사업을 전개하고 산별연맹 지역조직과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며, 단순한 수평적 협의체를 넘어서 더욱 강화된 통솔, 조정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편 산업간 혹은 산별노조 내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총연맹 차원의 교섭이 필요하다. 임금인상률이 전적으로 개별기업의 지불능력에 좌우되고, 노조 조직력이 주로 대기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규모 사업장의 상대적인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이 높게 합의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올해 임금 기본급 134,690원(8%) 정액 인상안을 중앙교섭 요구안에 포함했으나, 임금협상은 사업장별 논의로 이월되었다. 현재와 같은 임금격차가 존재하는 한 상당기간동안 산별노조가 산별교섭에서 임금 문제를 다루기 힘들 것인데, 임금을 다루지 않는 산별교섭은 그만큼 의미가 반감된다. 따라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 노조 내부의 일정한 격차를 인정하더라도 노동자간 경쟁을 완화시키고 임금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다루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차원의 방안을 마련하고 투쟁의 집중, 교섭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비정규 투쟁 및 비정규, 미조직 조직화의 전략적 토대 구축
비정규직 투쟁들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보호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100인 이상 300인 미만)는 작년에 비해 두 배 가량 많았지만, 뚜렷한 투쟁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기간제 등의 직접고용은 줄고 파견근로, 용역근로 등의 간접 고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고. 임금 역시 정규직과의 차이가 더욱 커졌다. 즉 비정규직의 규모는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비정규직의 노동 조건이 더욱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간접고용으로 인한 조직화의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현대미포조선, 코스콤 등 법원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 도 존재하지만 매우 이례적이며 최근 몇 년간 자본은 하청 도급을 매우 세련된 형태로 처리해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 역시 파견근로 등을 더욱 확대하는 흐름이기 때문에 사용자성 인정 문제를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파업사업장의 경우 수 년 간의 완강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홈에버 매각에 따라 삼성테스코와 교섭 중인 이랜드노조의 경우 교섭이 타결되더라도 노조 유지 가능이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코스콤의 경우 법원의 판결과 사측의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조의 거부로 인해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 밖에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이 70여일을 넘기고 있고 사측과 교섭중이다.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다시 고공농성에 돌입했으며,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연맹 차원의 비정규직 투쟁은 이랜드, 코스콤, 기륭 등의 파업 사업장에 대한 동원 지침을 내리는 것 외에는 큰 역할이 없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근 들어 가장 낮은 6.1%에 그쳤고, 비정규직보호법 확대 적용, 비정규직보호법 개악 흐름 등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도 전반적으로 매우 무기력한 상황이다. 비정규 투쟁이 대부분 장기투쟁 사업장이 되고 있고, 성과 있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전반에 대한 진단과 새로운 투쟁 전략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금속노조의 중앙교섭도 다소 실망스럽게 종결되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은 관련기관의 판결을 조건으로 붙였으며,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화는 공동실태조사를 하는 것으로,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기준보다 5만원 많은 95만원 선에서 타결되었다. 다른 내용들은 이전 년도와 대동소이하며, 1사1조직 건설 역시 대부분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GM대우나 기아의 경우처럼 비정규직이 배제되는 방식 혹은 일부 비정규직만 가입대상이 되는 1사1조직 건설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 미조직노동자 조직, 복수노조 대응,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 등 민주노총 조직 확대 사업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이를 포괄적으로 추진하는 단위로 ‘조직확대기획단’을 구성하였고, 수차례 회의를 거쳤다. 기획단에 따르면 향후 ▲5개년 계획 및 전략사업 평가 및 이후 사업기조와 구체방안 수립, ▲가맹산하조직 조직확대사업 실태 종합, ▲기 진행되어온 미비조직사업(일반노조, 특수고용 등) 현장실사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이에 입각하여 2009년 조직사업방침을 수립할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로 각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조직활동가의 포진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지만 비정규직 전략조직화라는 목적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지는 못하다. 산별연맹과 지역본부의 일상 사업이나 급박하게 발생하는 (비정규직)투쟁으로 인해 본래 취지에 맞는 전략조직화가 이루어지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평가와 대안마련이 시급하다.
하반기 반신자유주의/반이명박 투쟁전선을 확고히 세워내야 한다
촛불을 짓밟고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한 이명박 정권은 ▲한미FTA 국회비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지주회사 요건 완화, ▲노동기본권 축소, ▲비정규법 개악 ▲공기업 사유화, ▲국제고, 자립형사립고고 설립, 일제고사 및 성적공개, 학교 서열화 ▲국립대 법인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연금법 개악, ▲8.21 부동산 대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생한 세계 신용경색이 장기화되고 있고, 원유가격 폭등과 원자재가격 폭등이 중첩되면서 세계적 스태그플래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 관련 정책목표수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재벌 경제연구소는 임금인상 억제, 노동유연성 제고, 공공요금 인상 연기, 재벌에 대한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 촉진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현재 세계적 경제위기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명박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에 대한 공세는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민주노총은 하반기 투쟁목표로 ▲당면한 언론장악음모 분쇄 투쟁 전면화로 민주주의 전선 확대, ▲공기업민영화, 언론/교육/의료 등 공공부분 시장화 사유화 저지, ▲비정규법 개악 등 신자유주의 노동기본권 말살 법제도개악 저지 및 민주노총 요구안 쟁취,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 ▲10말~11월초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위력적 성사, ▲대규모 이명박 심판 국민촛불 재점화를 내걸었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 과제로 ▲간접고용 여론 쟁점화 및 법제화 사업 (ILO 권고사항 이행 촉구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감시단 구성), ▲비정규 사회보험 전면적용 투쟁, ▲비정규악법 개악저지 투쟁, ▲10월 7일 국제 공동캠페인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세계행동의 날’ (World Day for Decent Work)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상반기에 드러난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의 현실을 볼 때 민주노총의 하반기 계획이 힘 있게 추진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 구축의 측면에서나, 소속 산별노조들의 총력투쟁의 성사 면에서나 여러 면에서 취약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진단하고 극복하기 위한 뚜렷한 계획 또한 부재한 상황이다. 최근 금속노조의 산별중앙교섭은 자동차 완성사들을 교섭에 참가시키지 못함으로써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하반기 공공운수대산별 준비위를 결성하고 내년 대산별을 건설한다는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계획 또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산별노조 전환 이후 봉착해 있는 난제들과 산별노조전환과 함께 자칫 모호해질 수 있는 총연맹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총연맹을 대정부, 대자본 투쟁의 정치적 구심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현 시기 노동운동의 사활적인 과제이다. 이와 동시에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자간 임금격차 해소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총연맹의 역할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 이후 복수의 진보정당이 출현했거나 추진되고 있고, 2009년 말에는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직선제 선거를 진행하며, 2010년에는 단위 사업장 복수노조가 도입된다. 급격한 노조운동의 환경 변화 속에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자신의 전략을 마련하고 계급적 단결을 형성하는가 여부에 따라 향후 한국의 사회운동과 한국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올 하반기는 이명박의 공안탄압과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굳건한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추진하면서도 내적으로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진영 내부의 논쟁과 합의를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연대운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상반기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매개로 느슨한 수준에서 연대활동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활동은 소강상태다. 최근 민주노총은 “촛불항쟁정신과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성과를 계승하고 총체적인 민주주의 후퇴와 신자유주의 정책 강행에 반대하는 민중 시민 정당세력의 합의로 반이명박 범국민적 연대투쟁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8월 중에 협의를 진행하고 10월에 건설을 완료하여 11월 노동자대회나 민중대회와 연계하여 범국민촛불대행진을 전개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진보연대와 시민단체들의 중심으로 합의되고 있는 연대체의 성격은 일부 의제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명백하다. 특히 민주당과의 공조 여부라는 쟁점을 회피하기 위해 정당일반의 참여를 배제하면서 진보정당의 참여를 막는 것은 문제가 많다. 연대체의 구성을 진보진영의 단결과 민중운동의 투쟁전선 형성보다는 시민단체와의 공조를 중심으로 사고한 결과다. 이러한 시도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민중운동의 강력한 연대전선을 구축하기보다 상층 중심의 캠페인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울지역 사회공공성 연대회의’를 포함하여 상반기 각 지역마다 신자유주의적인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기구들이 이미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지역별 연대기구들의 역량을 결집하고, 한미 FTA 저지투쟁으로 지역의 농민운동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반기 투쟁이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으로 훼손된 지역연대운동을 다시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진보진영의 단결과 연대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한국진보연대와 시민운동이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연대운동이 지속된다면 민중운동 진영의 단결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향후 운동내부의 커다란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민주노총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해 본다.
‘막대기만 꽂아도, 강아지만 데려다 놓아도 한나라당이면 당선된다.’는 말이 상징하듯 노무현 정권 집권 5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에 대한 대중적 반감은 극에 달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 지역, 세대를 넘어 ‘노무현 정권교체’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경제성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힘입어 48.7%의 지지(투표율 63%)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4월 9일 18대 총선에서 노무현과 386 판본의 ‘진보’가 보여준 무능력과 기만은 최종적인 심판을 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152석 대 한나라당의 121석의 비율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153석 대 통합민주당 81석(투표율 46%)으로 반전되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예기치 않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거리를 뒤덮었고 물가폭등, 경제위기 심화와 맞물려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정국주도권이 약화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한 조건 창출과 국제적 안전 기준을 명분으로 고시를 강행하려 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더욱 격렬한 가두시위를 낳았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 초기 과잉, 폭력진압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후 청와대 방면으로 시민들의 진출만 차단하며 촛불시위를 보장했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친재벌/반민중 정책으로 인한 민심이반에 대한 묘안은 없었다. 따라서 정부는 6.21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발표와 6.26 관보 게재 강행 이후 촛불집회에 대한 대대적인 공안탄압으로 선회했다. 경찰, 검찰은 물론 법무부까지 나서 인터넷 활동과 네티즌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을 자행했다. 이른바 ‘광우병 괴담’에 대한 광범위한 인터넷 여론 수사,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5.17 학생 동맹휴업 문자메시지 발신자에 대한 기소, 여성시민 사망설을 제기한 네티즌의 구속, 촛불시위 소송 상인 명단을 발표한 네티즌에 대한 체포, 그리고 조중동 광고기업 불매운동 네티즌에 대한 출국금지, 압수수색, 구속 등등. 또한 사회운동단체와 활동가들에 대한 공안기관의 탄압이 거세졌고 심지어는 국가보안법까지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한국진보연대 지도부에 대한 구속과 수배, 촛불집회 국면에서 파업을 진행했던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구속,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활동가 체포. 그리고 불법 시위에 대한 집단소송제 실시, 집회 복면착용 처벌, 불법 시위 참가단체에 대한 보조금 중단,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반촛불 법안’ 입법 시도.
촛불집회가 사그라진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인 공안탄압과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민중운동 전반이 투쟁의 전열을 정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악화된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상반기 급박한 정세에서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핵심적인 주체인 노동운동이 어떻게 활동해왔는지에 대한 엄밀한 평가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박의 예고된 공세 vs 노동운동의 취약한 태세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이석행 위원장이 경찰에 출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노총과의 간담회 약속을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민주노총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권의 노동정책은 초민족자본과 재벌의 이해를 전면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경제성장’ 기조에 철저히 종속되어 ▲‘법과 질서’의 확립(‘반노조’ 이데올로기의 강화와 파업권의 무력화)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구성(노사협조주의의 확대와 민주노조운동의 고립화) ▲노사관계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유연화 ▲차별을 고착화하는 비정규직 문제의 확대, 심화 ▲일과 가정 양립형 여성 일자리 확대, 여성을 위한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양산)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예견되는 정세가 분명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대응력이 지극히 취약해진 것이 문제다. 또 한국진보연대의 무리한 출범과 왜소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파적 패권과 무능력 등 운동세력 내부의 문제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어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노총은 2008년 3대 사업목표로 ▲민주노총 조직력, 투쟁력 강화 ▲산별노조 강화, 비정규/미조직사업 강화로 대산별 건설기반 마련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 제고로 설정하고, ▲신자유주의적 공공부문 시장화, 사유화 저지에 맞서 공공부문 연대로 강력한 대정부 투쟁 전개 ▲4.9 총선에서 원내교섭 단체 쟁취 ▲6월말~7월초 산별공동 임단투에 기반한 민주노총 총력투쟁 전개, 10월말~11월초 ‘2008년 요구 쟁취 민주노총 총력투쟁’ 전개 ▲이를 위해 총연맹, 가맹, 산하, 산별노조를 망라하는 2008년 민주노총 투쟁본부 출범을 투쟁기조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11일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저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동투쟁본부)를 출범하고, (가칭)‘신자유주의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반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민연대’ 결성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공동투쟁본부는 각 연맹 혹은 산별노조의 계획을 조율하는 것 이외에 투쟁의 지도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는 1만 명이 참가했는데 투쟁을 결의하는 장이 되지 못했고, 4월 총선 시기 제시한 1만 명 규모 캠페인 인 <사회공공성 지킴이 발족식> 등 맥없는 이벤트 사업이 주를 이뤘다. 또한 공동투쟁본부는 5.21~23 사회공공성 포럼 개최, 5월 24일 각 산별 결의대회와 3만 명이 참석한 민주노총 ‘민생파탄 물가폭등 이명박 정권 규탄! 공공부문 시장화 사유화 저지! 민주노총 공공부분 공투본 총력결의대회’ 개최 이외에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계획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고 해당 연맹/산별노조의 투쟁을 취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문제점은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지역마다 공동투쟁팀을 구성하도록 한 민주노총의 지침에 대한 지역본부의 비판적 평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편 공공운수연맹은 6월 18일 ‘국민생존권 보장과 공공성 사수를 위한 가스, 전기, 철도, 지하철 공동투쟁본부(약칭 기간산업 공투본 / 운수노조 철도본부, 공공노조 가스지부, 공공노조 가스기술지부, 한국발전산업노조, 한국전력기술노조, 서울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노조로 구성)’ 출범기자회견을 갖고, 7월 5일 1만 여명이 참석한 출범식 개최, 7월 25일 2차 결의대회를 개최했으며, ▲공공요금 인상 중단과 국민생활 기초서비스 보장, ▲민영화정책 철회 및 구조조정 중단, ▲공공기관 운영 민주화, ▲노동기본권 보장, ▲올바른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노정교섭 틀 마련 등을 요구안을 갖고 국무총리 교섭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교섭사항이 아니라며 이를 거절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시민단체와 함께 연대기구를 구성하는 것에 중요성을 두면서 민주노총 공동투쟁본부 주관으로 “사회공공성 포럼: 시장화 사유화를 넘어 사회공공성 대안 찾기”를 개최하여 시민단체를 조직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민주노총과 직접 연대기구를 구성하는 것을 꺼리는 바람에 국민연대 결성이 좌초되었다. 시민단체는 민주노총이 시민의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의 특수 이익을 추구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도 보편 이익을 위해 투쟁하지만 노동조합인 이상 노동자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결국 노동자의 요구가 특수 이익이라는 정권과 자본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시민운동에 대한 추종적 자세를 낳을 뿐이다. 민주노총은 ‘진보진영 단일투쟁전선 구축과 통일단결 실현’을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민주노총이 추진하는 각종 연대 사업에서 한국진보연대 출범을 반대했던 세력, 이른바 좌파세력은 사실상 주요 고려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이런 태도 때문에 상반기 국민연대 결성이 좌절되었고 진보진영의 단일투쟁전선도 구호로만 남게 되었다. 한편 국민연대 결성이 좌초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시장화, 사유화 정책에 대한 대응을 위해 6월 24일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 저지 공동행동’(물 사유화저지 공동행동, 미디어 공동행동, 보건의료단체연합, 범국민교육연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입시폐지대학평준화범국본, 한미FTA저지 교수학술공대위, 빈곤사회연대)이 결성되어 5월 21~25일 ‘공공성 지키기 촛불문화제 및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 저지 공동행동’은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책적, 이데올로기적 대응을 넘어 대중적인 투쟁을 조직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를 가졌다.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라는 엄혹한 정세적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전국적인 투쟁의 중심형성과 지역별 반신자유주의 연대투쟁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지 못하고, 시민운동을 주요 파트너로 사고한다면 이는 현실적인 투쟁전선 형성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서울지역 사회공공성 연대회의’를 포함하여 상반기 각 지역마다 신자유주의적인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기구들이 이미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지역별 연대기구들의 역량을 결집하고 하반기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 저지투쟁이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으로 훼손된 지역연대운동을 다시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진보진영의 단결과 연대를 위해 책임 있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의 고수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참담한 패배 이후,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을 중심으로 한 당내 논쟁과 갈등이 촉발되었다. 1월 12일 중앙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하였으나 1월 26일 총선 전 진보신당 창당을 표방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공동대표: 김석준 부산시당위원장,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조승수 전 진보정치연구소장)이 공식 출범하였다. 2월 3일 임시당대회에서 상당한 갈등과 논란 끝에 이른바 ‘일심회’ 관계자 제명 건이 부결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심상정 비대위’가 총사퇴하고 민주노총 전현직 임원 45명이 탈당선언을 하는 등 탈당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이는 배타적 지지단체인 민주노총으로까지 이어져 조합원들의 탈당이 급증하기 시작됐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진보진영은 2개의 진보정당으로 분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2007년 11월 17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비례대표제 선거방식으로 1인 6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2004년 총선과 달리 비례의원 숫자는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1인이 행사하는 투표수가 늘어날수록 다수파가 유리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진은 ‘소수대표성 보장’을, 내부적으로는 ‘범좌파 비례후보 당선’을 위해 명부별 1표제(여성과 일반도 1인 1표, 즉 1인 4표)를 추진했었으나 선출방식은 최고위가 제출한 원안이 그대로 처리됐다. 이날 중앙위의 결과는 평등파 일각에게는 다수파인 자주파가 민주노동당을 정파연합당으로 유지하기를 포기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당사태가 촉발된 직접적인 계기일 뿐 분당론이 급속히 현실화된 배경에는 그 동안 민주노동당 활동과정에서 지역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적 갈등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고 대중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 등 ‘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사당화(私黨化) 경향이 강화되고 있었다. 지역구의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파 간 경쟁구조에 과다하게 노출되었던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 의회주의적 성격도 당의 파괴적인 분열에 크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지난 활동에 대한 발본적인 성찰 없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까지 동원해 ‘종북주의’나 ‘주사파’와 같은 선정적인 딱지 붙이기로 이념에 대한 마녀사냥을 한 것은 ‘평등파’의 명백한 오류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가졌던 역사적 의미이자 현실적인 힘의 근원은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대중조직의 조직적 지지와 지원이었다. 그런데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에 대해 제대로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소위 중앙파 노조활동가들의 다수가 활동 중인 금속노조와 공공연맹에서조차 ‘배타적 지지 철회’ 관련 논의는 유보되거나 공식 논의 안으로 상정되지도 못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치위원회와 동부/서부/북부/남부/남동지구협의회가 산하 3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2월 27일~3월 5일 1주일 동안 실시한 설문조사는 진보정당의 분열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물론 연맹별 응답자의 경우 56.9%가 공공운수연맹에 집중돼 있고, 금속 사업장 0.28%에 불과했으며, 언론노조 응답자가 34.6%로 2위를 차지하는 등 모집단이 민주노총의 대표성을 말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선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과 관련해 방침 철회에 찬성한 응답자는 25.1%인 반면 배타적 지지 방침 고수는 13.1%에 그쳤다. 응답자들의 59.9%인 절대 다수는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노동자 우호적인 진보정당에도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답해 사실상 배타적 지지 방침 철회 의견이 압도적 다수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의 역할에 대해서는 조합원의 46.9%가 분당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두 진보 정당 사이의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34.4%는 두 정당이 재통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응답해 역시 압도적 다수가 두 진보정당의 연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은 6.8%에 불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의 분당 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습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에 대한 반성과 노동자운동의 단결을 추구하기 보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기에 급급했다. 이미 분당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통일단결’을 주장하면서도 “분당 추진한 사람부터 솎아내야” 한다거나 “진보신당과 연대할 생각이 없다” 등 갈등을 부추기는 태도와 발언들이 이어졌고 일부지역에서 진보신당을 표적으로 한 공천도 강행했다. 대규모 탈당사태에 맞서 “총선시기 평생당원 1천명, 당원 1만 명 조직하겠다”며 민주노동당 평생당원 모집, 사업장 차원의 집단 당원 가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패권적인 방침에 대한 조합원들은 반응은 싸늘했다. 민주노총 차원의 총선투쟁기금 모금액은 3,200여만 원에 불과했다. 총선 결과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3석(5.6% 득표)을 합쳐 5석을 확보하여 2004년 총선에 비해 의석이 반으로 줄어 독자적 입법발의권이 없어졌다.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진보신당의 창당, 그리고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추진위원회’와 ‘노동자 진보정당 건설 전국추진위원회’ 등 복수의 정당 건설 흐름이 준비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형식적으로는 유지되고 있으나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배타적 지지방침의 고수에 집착할 경우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파괴적 분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지금까지의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침과 민주노총의 정치활동을 냉철히 평가해야한다. 이에 기반해서 복수의 진보정당운동의 출현이 민주노조운동의 분할과 분열의 계기로 작동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새롭게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예기치 않은 촛불정국과 민주노총의 역할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여 5월 2일부터 시작해 8월 15일 100회에 이른 촛불집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반도 대운하, 공공부문 사유화, 학교자율화, 건강보험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로 확대되어 이명박 정부의 초기 정책주도권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대상인 쇠고기 수입은 강행했지만 가스, 발전, 수도 등 공기업 민영화, 의료 민영화 등 정부 내부의 정치적 판단이 작동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하지만 추가협상 발표와 고시 강행 이후 대대적인 공안탄압과 역공을 가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이 친박연대와 무소속 의원들의 합류로 개헌선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정책추진에 큰 힘을 얻었다.
민주노총은 촛불운동에 대해 “민주노총 지부도 청계광장 농성 돌입, 미국산 쇠고기 운송저지 투쟁 전개, 촛불집회에 대규모 조합원 참여, 7.2 총파업 투쟁, 7.5 이후 전개된 의제별 투쟁에 연맹별 촛불집회 개최 등을 통해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 소중한 성과로 돌아왔으며 6월말부터 강화된 정권의 물리적 탄압 속에서도 촛불 정세를 완강히 이어가는데 복무하였다”라고 평가했다. 즉 “10만큼하고 100만큼 얻은 투쟁”이라는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운동진영의 주도력이 부족했고 비정규직,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의제의 쟁점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점, 투쟁본부를 통해 결정된 주요 방침들이 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한계로 평가하고 있다.
촛불집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평가는 “한계는 있었지만, 열심히 했고, 성과도 좋았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까? 촛불정국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을 냉철히 평가해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우선 민주노총은 일관된 투쟁기조였던 ‘촛불에의 복무’, 즉 촛불집회에 참여한다는 것 외에 주도적인 운동의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지 않았다. 이명박의 정책주도권에 대한 타격, 이명박의 시장화/사유화 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의 형성 등 촛불집회가 미쳤던 정세적 효과는 컸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가지는 명백한 한계와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촛불집회가 민주노총의 투쟁을 그대로 대변할 수는 없었다. 예컨대 대운하, 방송장악 등 이명박 정권이 시작한 정책들에 대한 반대 여론은 촛불집회와 함께 급속하게 확산되었으나, 노무현 정권 말기 추진하여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과 반대여론을 형성했던 여러 쟁점들은 촛불집회에서 잘 수용되지 않았다. 지난 5~7월은 경제위기와 물가폭등이라는 상황에서 광우병 논란의 직접적인 계기인 한미 FTA 문제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등이 중요한 정세적 쟁점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에 대한 적절한 투쟁과 여론화를 하지 못했다. 한미 FTA의 문제,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등에 대해서 여론의 지지가 높지 않다는 근거로 투쟁을 방기한다면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는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제 세력, 나아가 민중운동 전반이 면밀히 평가해야할 지점이다.
둘째, 민주노총은 ‘집단 이기주의’라는 언론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포화 속에서 시민단체에 대해서 더욱 수세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촛불집회 국면에서 “네티즌을 앞장 세워야 한다. 우리가 나서면 판을 망친다.”라는 이석행 위원장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노동자운동의 힘을 스스로 잠식하는 효과를 낳았다. 2000년 이후만 보더라도 민주노총은 경제자유구역,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이라크전쟁, 한미 FTA, 비정규법 등을 매개로 민중운동이 공동투쟁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버팀목 구실을 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한 민주노총의 주도력이 약화되면서 민중운동의 연대도 약화되고 있다. 한편 촛불집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인식과 태도는 공안탄압이 본격화된 이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투쟁 기조를 둘러싼 논쟁에서 의제확대와 가두투쟁보다는 광우병 단일의제와 불매운동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시민단체에 힘을 실어주었다.
셋째 촛불정국에서 민주노총의 투쟁이 책임 있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민주노총 평가에서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 투쟁본부에서 결정된 방침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 “정부가 오는 15일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할 경우 ‘결사항전’ 할 것”, “11일 민주노총이 나서서 서울 시청광장 탈환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 등 이석행 위원장의 과감한 발언은 대부분 거짓말이었다. 연초부터 공언했던 7.2 총파업(총력투쟁)은 금속노조 외에는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며, 공공노조 일부 사업장은 찬반투표조차 부결되었다. 당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공공부문 민영화에 반대하는 정치총파업은 정세가 고양되는 6월 10일 전후에 지도부가 파업을 선언하고 이를 통해 현장을 조직하자고 제기된 것이었다. 그러나 찬반투표를 통한 총파업으로 결정되면서 시간을 끌어 7월로 미뤄지고 말았다. 어차피 정치총파업은 노동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찬반투표는 정치적 결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시기는 정세와 무관하게 늘어지는 투표시기에 맞추어 연기를 거듭했다. 또 필수공익사업장은 필수유지업무제도라는 법적 제약에 갇히면서 불법파업의 책임은 현장으로 떠넘겨지게 되었다.
7.30 서울교육감 선거: “촛불여론 vs 이명박/보수세력” 격돌
7월 30일 촛불정국의 여파 속에 최초로 서울시민 직선으로 치러지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보수층은 위기에 처한 이명박 정권을 구하고 대선과 총선의 승리를 재확인하기 위해서 ‘전교조에 의한 교육정책을 막아야 한다.’는 공세를 펼치며 이념 대결의 선거 구도를 만들었다.
선거결과는 499,254표(40.09%)를 얻은 공정택 후보가 477,201표(38.31%)를 얻은 주경복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서울시 25개 구 중에서 17개 구에서 주경복 후보가 많은 득표를 했음에도 강남 표의 결집은 박빙의 선거 판세를 갈랐다. 평균투표율 15.5%인 상황에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서초(19.6%), 강남(19.2%), 송파(16.6%)의 유권자들은 공정택 교육감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줬다. 대표적 서민 주거지역인 은평(13.5%), 강북(13.2%), 중랑(13.7%)의 낮은 투표율과 큰 차이가 났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시장화 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주요한 계기였다. 결과적으로 주경복 후보의 낙선으로 기대했던 가능성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결과에 대해 “새 정부 교육정책, 국민적 지지 확인했다.”며 자신감을 표현했고, 공정택 교육감은 당선과 함께 초등학교까지 입시경쟁체제로 몰아넣을 ‘국제중’ 설립을 발표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가 필요하다. 우선 이번 선거가 현재의 정세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평가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는 촛불여론의 정당성과 ‘이명박·공정택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인하여 이명박 정부의 정책 주도권을 약화시킬 수 있는 주요한 계기였다. 따라서 최소한 선거에서 승리하지는 못했더라도 이명박·공정택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선을 형성하여 이후 교육시장화에 맞선 투쟁의 고리를 확보했어야 한다. 하지만 주경복 선본에 참여한 일부 교육시민단체들의 민주당 선본참여 주장, ‘외고폐지’를 통한 입시 경쟁체제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에서 ‘외고 정상화’로의 선거공약의 변경 등을 둘러싸고 내부적 논란과 갈등이 존재했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의 이명박·공정택 교육정책에 대한 명확한 폭로를 통한 여론형성 보다는 ‘당선’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소위 중간층의 표를 얻어야 한다는 이유로 선거기조가 대폭 후퇴하여 선거 막바지에는 선거운동원들이 지역에서 여론을 형성하기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전교조’와 ‘교원평가제’와 관련한 주경복 후보의 발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마 전교조에서 임의적으로 저를 지지할 순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지지하는 많은 사회 시민단체가 있는데요. 콩나물에 시금치 한 잎 들어가면 그게 뭐 시금치 국이 됩니까, 저는 콩나물 국, 말하자면 시민후보입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특히 교수단체가 저를 추대해줬습니다.” 조 중동을 포함한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전교조’에 대한 이념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후보의 이런 발언은 현장 교사들에게 선거회의론을 일으킬 정도로 너무도 수세적으로 표를 구걸하는 것이었다. “글쎄, 그 점도 참 많이 지금 왜곡해서 흑색선전하고 있는데 저는 한 번도 교원평가 반대한 적이 없고 오히려 교원평가는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추진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교원평가가 목적으로 하는 게 일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부적격 교사 문제거든요. 저는 강력하게 레드카드제를 도입해 가지고 부적격 교사는 바로 조치할 그러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예, 일정한 선을 넘어선 교사들은 축출해야 되죠. 그렇게 하고 교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을 해야 한다, 그냥 단순 그 체크리스트형 교원평가 가지고는 그게 힘들고요. 보다 더 심도 있는 교원의 질을 진단하는 그런 제도를 도입해서 질이 미달하면 바로 조치할 수 있는 그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주경복 후보의 교원평가제에 대한 발언은 전교조가 수년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관철을 위한 교사통제의 수단인 교원평가제에 맞서 싸워왔던 근거를 일시에 허무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당선’만을 목표로 명확한 정책기조를 가져가지 못했을 경우에 가져오는 심각한 폐해에 대해 냉혹한 자기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은 주경복 후보를 공식적인 지지후보로 결정했다. 당초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최초로 서울시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7.30 서울교육감 선거 출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서울지역이 주축이 되어 교육감 선거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촛불정국으로 인해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지만,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는 조직적으로 선거에 대응하지 못했다. 조중동 등을 등에 업은 보수세력들의 총 공세에 견주어 볼 때, 노동운동진영의 정세판단과 대응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전교조 서울지부 등이 참여하고 있는 서울지역 사회공공 연대회의와 여러 교육시민단체, 정치조직들이 주경복 선본에 결합하거나 서울 소지역의 사회공공성 연대단위를 구성하여 활발히 운동을 추진했고 진보정당의 분당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지역별 연대운동의 토대를 형성하는 성과를 낳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경우 산별의 경계를 넘어 8,000여개 사업장에 간담회와 교육을 배치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기 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서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알릴 수 있었다.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한계와 산별시대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 예상하고 총파업을 작년부터 준비했다.”
“나를 던지겠다는 생각으로 6월말 7월초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6월말 7월초 이명박 정부와의 전면전을 치르겠다며 한 발언이다. 하지만 이석행 위원장의 호언과는 달리 민주노총의 6월말~7월초의 총력투쟁은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산별임단투에 기반한 총력투쟁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7월 2일 총파업에 참가한 단위는 금속 외에는 거의 없었고 산별공동임단투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공공노조의 경우 총파업 불참을 넘어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파업찬반투표가 부결되기도 하였다.
투쟁은 선언과 희망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약화되어 있는 민주노총의 조직상황을 냉철히 진단하고, 이를 고려한 정확한 계획을 제출해야 실패하더라도 전진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허언’은 대중들의 신뢰만을 떨어뜨릴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상반기 투쟁은 이석행 집행부의 지도력의 부재와 무능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금속노조, 공공노조, 운수노조 등 산별노조 전환에 따라 총연맹의 전략적 위상이 모호해 질 수 있다는 문제를 주요하게 검토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자체 평가에서 민주노총 산별교섭 구조가 안착되어야 산별 임단협 시기집중 투쟁이 가능하리라 언급했지만, 산별노조의 자립성이 높아지면서 산별의 규모와 자원이 크면 총연맹이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지금처럼 재정과 산하조직에 대한 구속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산별시대에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은 점점 더 모호해질 가능성이 높다.
98년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을 둘러싼 국민파와 현장파 간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구도는 산별노조/진보정당 즉 내셔널 센터(정치세력화, 정부와의 정책협의)-산별노조(산별교섭, 산별조직화, 정책개발·교육사업)-단위사업장(추가적 교섭, 노동자경영참가) vs 계급적 노동운동/노동자정치조직 즉 내셔널 센터(노동자투쟁의 정치적 구심)-지역본부(지역 차원의 노동자 공동투쟁 및 민중연대투쟁)-단위사업장(현장조직활동) 간의 논쟁이었다.
지난 논쟁을 반추하건대 산별노조 시대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대정부 정치투쟁의 지도부로서의 역할과 대정부 교섭전략의 수립이라는 두 차원에서 동시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양자는 분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민주노총이 산별시대에 정부나 자본이 노조 요구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투쟁의 동력을 현실적으로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점검을 해야 하며, 노조 투쟁동력 집중을 전제로 하면서 대정부 교섭 역량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총연맹 권한 강화와 민주적 지도력을 통해 투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총연맹 지역본부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설립초기 산별연맹을 중심축으로, 지역조직을 보조축으로 설정하면서 지역본부의 위상은 단순한 협의체로 전략해서 상근 간부 부족, 열악한 재정, 수공업적 조직 활동 등의 문제를 일상적으로 겪어 왔다. 따라서 총연맹 지역본부가 산하조직에 대해 충실한 사업을 전개하고 산별연맹 지역조직과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며, 단순한 수평적 협의체를 넘어서 더욱 강화된 통솔, 조정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편 산업간 혹은 산별노조 내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총연맹 차원의 교섭이 필요하다. 임금인상률이 전적으로 개별기업의 지불능력에 좌우되고, 노조 조직력이 주로 대기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규모 사업장의 상대적인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이 높게 합의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올해 임금 기본급 134,690원(8%) 정액 인상안을 중앙교섭 요구안에 포함했으나, 임금협상은 사업장별 논의로 이월되었다. 현재와 같은 임금격차가 존재하는 한 상당기간동안 산별노조가 산별교섭에서 임금 문제를 다루기 힘들 것인데, 임금을 다루지 않는 산별교섭은 그만큼 의미가 반감된다. 따라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 노조 내부의 일정한 격차를 인정하더라도 노동자간 경쟁을 완화시키고 임금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산별교섭에서 임금을 다루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차원의 방안을 마련하고 투쟁의 집중, 교섭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비정규 투쟁 및 비정규, 미조직 조직화의 전략적 토대 구축
비정규직 투쟁들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보호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100인 이상 300인 미만)는 작년에 비해 두 배 가량 많았지만, 뚜렷한 투쟁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기간제 등의 직접고용은 줄고 파견근로, 용역근로 등의 간접 고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고. 임금 역시 정규직과의 차이가 더욱 커졌다. 즉 비정규직의 규모는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비정규직의 노동 조건이 더욱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간접고용으로 인한 조직화의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현대미포조선, 코스콤 등 법원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 도 존재하지만 매우 이례적이며 최근 몇 년간 자본은 하청 도급을 매우 세련된 형태로 처리해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 역시 파견근로 등을 더욱 확대하는 흐름이기 때문에 사용자성 인정 문제를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파업사업장의 경우 수 년 간의 완강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홈에버 매각에 따라 삼성테스코와 교섭 중인 이랜드노조의 경우 교섭이 타결되더라도 노조 유지 가능이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코스콤의 경우 법원의 판결과 사측의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조의 거부로 인해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 밖에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이 70여일을 넘기고 있고 사측과 교섭중이다.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다시 고공농성에 돌입했으며,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연맹 차원의 비정규직 투쟁은 이랜드, 코스콤, 기륭 등의 파업 사업장에 대한 동원 지침을 내리는 것 외에는 큰 역할이 없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근 들어 가장 낮은 6.1%에 그쳤고, 비정규직보호법 확대 적용, 비정규직보호법 개악 흐름 등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도 전반적으로 매우 무기력한 상황이다. 비정규 투쟁이 대부분 장기투쟁 사업장이 되고 있고, 성과 있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전반에 대한 진단과 새로운 투쟁 전략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금속노조의 중앙교섭도 다소 실망스럽게 종결되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은 관련기관의 판결을 조건으로 붙였으며,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화는 공동실태조사를 하는 것으로,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기준보다 5만원 많은 95만원 선에서 타결되었다. 다른 내용들은 이전 년도와 대동소이하며, 1사1조직 건설 역시 대부분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GM대우나 기아의 경우처럼 비정규직이 배제되는 방식 혹은 일부 비정규직만 가입대상이 되는 1사1조직 건설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 미조직노동자 조직, 복수노조 대응,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 등 민주노총 조직 확대 사업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이를 포괄적으로 추진하는 단위로 ‘조직확대기획단’을 구성하였고, 수차례 회의를 거쳤다. 기획단에 따르면 향후 ▲5개년 계획 및 전략사업 평가 및 이후 사업기조와 구체방안 수립, ▲가맹산하조직 조직확대사업 실태 종합, ▲기 진행되어온 미비조직사업(일반노조, 특수고용 등) 현장실사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이에 입각하여 2009년 조직사업방침을 수립할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로 각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조직활동가의 포진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지만 비정규직 전략조직화라는 목적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지는 못하다. 산별연맹과 지역본부의 일상 사업이나 급박하게 발생하는 (비정규직)투쟁으로 인해 본래 취지에 맞는 전략조직화가 이루어지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평가와 대안마련이 시급하다.
하반기 반신자유주의/반이명박 투쟁전선을 확고히 세워내야 한다
촛불을 짓밟고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한 이명박 정권은 ▲한미FTA 국회비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지주회사 요건 완화, ▲노동기본권 축소, ▲비정규법 개악 ▲공기업 사유화, ▲국제고, 자립형사립고고 설립, 일제고사 및 성적공개, 학교 서열화 ▲국립대 법인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연금법 개악, ▲8.21 부동산 대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생한 세계 신용경색이 장기화되고 있고, 원유가격 폭등과 원자재가격 폭등이 중첩되면서 세계적 스태그플래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 관련 정책목표수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재벌 경제연구소는 임금인상 억제, 노동유연성 제고, 공공요금 인상 연기, 재벌에 대한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 촉진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현재 세계적 경제위기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명박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에 대한 공세는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민주노총은 하반기 투쟁목표로 ▲당면한 언론장악음모 분쇄 투쟁 전면화로 민주주의 전선 확대, ▲공기업민영화, 언론/교육/의료 등 공공부분 시장화 사유화 저지, ▲비정규법 개악 등 신자유주의 노동기본권 말살 법제도개악 저지 및 민주노총 요구안 쟁취,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 ▲10말~11월초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위력적 성사, ▲대규모 이명박 심판 국민촛불 재점화를 내걸었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 과제로 ▲간접고용 여론 쟁점화 및 법제화 사업 (ILO 권고사항 이행 촉구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감시단 구성), ▲비정규 사회보험 전면적용 투쟁, ▲비정규악법 개악저지 투쟁, ▲10월 7일 국제 공동캠페인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세계행동의 날’ (World Day for Decent Work)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상반기에 드러난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의 현실을 볼 때 민주노총의 하반기 계획이 힘 있게 추진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 구축의 측면에서나, 소속 산별노조들의 총력투쟁의 성사 면에서나 여러 면에서 취약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진단하고 극복하기 위한 뚜렷한 계획 또한 부재한 상황이다. 최근 금속노조의 산별중앙교섭은 자동차 완성사들을 교섭에 참가시키지 못함으로써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하반기 공공운수대산별 준비위를 결성하고 내년 대산별을 건설한다는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계획 또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산별노조 전환 이후 봉착해 있는 난제들과 산별노조전환과 함께 자칫 모호해질 수 있는 총연맹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총연맹을 대정부, 대자본 투쟁의 정치적 구심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현 시기 노동운동의 사활적인 과제이다. 이와 동시에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자간 임금격차 해소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총연맹의 역할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 이후 복수의 진보정당이 출현했거나 추진되고 있고, 2009년 말에는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직선제 선거를 진행하며, 2010년에는 단위 사업장 복수노조가 도입된다. 급격한 노조운동의 환경 변화 속에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자신의 전략을 마련하고 계급적 단결을 형성하는가 여부에 따라 향후 한국의 사회운동과 한국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올 하반기는 이명박의 공안탄압과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굳건한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추진하면서도 내적으로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진영 내부의 논쟁과 합의를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연대운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상반기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매개로 느슨한 수준에서 연대활동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활동은 소강상태다. 최근 민주노총은 “촛불항쟁정신과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성과를 계승하고 총체적인 민주주의 후퇴와 신자유주의 정책 강행에 반대하는 민중 시민 정당세력의 합의로 반이명박 범국민적 연대투쟁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8월 중에 협의를 진행하고 10월에 건설을 완료하여 11월 노동자대회나 민중대회와 연계하여 범국민촛불대행진을 전개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진보연대와 시민단체들의 중심으로 합의되고 있는 연대체의 성격은 일부 의제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명백하다. 특히 민주당과의 공조 여부라는 쟁점을 회피하기 위해 정당일반의 참여를 배제하면서 진보정당의 참여를 막는 것은 문제가 많다. 연대체의 구성을 진보진영의 단결과 민중운동의 투쟁전선 형성보다는 시민단체와의 공조를 중심으로 사고한 결과다. 이러한 시도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민중운동의 강력한 연대전선을 구축하기보다 상층 중심의 캠페인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울지역 사회공공성 연대회의’를 포함하여 상반기 각 지역마다 신자유주의적인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기구들이 이미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지역별 연대기구들의 역량을 결집하고, 한미 FTA 저지투쟁으로 지역의 농민운동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반기 투쟁이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으로 훼손된 지역연대운동을 다시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진보진영의 단결과 연대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한국진보연대와 시민운동이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연대운동이 지속된다면 민중운동 진영의 단결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향후 운동내부의 커다란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민주노총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