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딛고 새로운 생태운동을!
더 이상 환경문제와 생태위기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떤 일관된 논리와 운동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환경문제의 심화와 함께 한때 각광 받았던 녹색당과 환경운동의 위기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환경단체의 회원증가 폭 감소나 회원수 축소, 회계부정으로 인한 도덕성 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위기의 결과이자 현상일 것이다.
생태위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주류 환경운동이 문제에 진정으로 대면하고 있는지, 이러한 운동으로 지금과 다른 생태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지를 의심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농업에 기반을 둔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주장하고,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 귀농을 택한다. 생태적이고 호혜적인 농촌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에서 대안을 실험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소중한 생각이고 실천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공고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한국 환경운동의 초창기 역사를 되돌아보고, 환경단체의 현재 정체성을 생태적 근대화로 해석하면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한국 환경운동의 연원: 반공해운동에서 환경운동으로
한국 환경운동의 뿌리는 1980년대 반공해운동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 초반부터 대학 내 이공대생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운동과 반공해운동이 모색되었고, 거의 동시에 민주화운동 세력 일부가 공해문제연구회를 결성해 활동했다. 공업단지 주변 주민들의 공해 피해 현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공해 지도를 만들고, 주민을 면담하는 것이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보고서, 마당극으로 발표해서 군부 독재의 실정을 폭로하고, 사회변혁의 필요성을 찾았다.
당시에는 공해문제에 대한 계급적 해석을 중요시했고, 무엇이 공해문제의 원인인지, 그리고 불평등한 피해를 낳는지를 정치경제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일본의 좌파 공해운동 이론서인 『공해의 정치경제학』(츠르 시게토, 풀빛, 1983)이 널리 읽혔다. 공해의 원인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구체적으로는 독점자본과 억압적인 국가권력이었고, 따라서 공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반공해운동은 서구의 중산층 중심 환경운동을 비판하고 민중지향적인 환경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환경운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환경문제가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고 피해 민중을 막연하게 가해자로 둔갑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면서, ‘환경운동’이 아닌 ‘반공해운동’이라는 표현만을 써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반공해운동은 대중성은 떨어졌지만 강한 현장성과 비타협적인 문제의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7년 이후 제한적 민주화 국면에서 반공해운동은 환경운동으로 변모했다. 전국 각지에서 공해피해, 개발피해 주민 민원이 쏟아졌고, 정부도 환경오염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1991년 3월에 터진 낙동강 페놀 오염 사태는 환경운동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환경문제가 처음으로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다(이전에도 반핵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주목을 받았지만 일부 운동권과 해당지역 주민의 관심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페놀 사태로 환경운동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일반 대중과 미디어를 상대로 운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페놀 폐수를 담은 비커에 금붕어를 담아 죽이는 실험을 하고, 페놀 오염을 일으킨 두산전자 계열사의 OB맥주를 길거리에 쏟아 붓는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최초로 벌였다.
언론은 환경문제와 환경운동에 우호적이었다. 1992년부터는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 스스로가 ‘쓰레기를 줄입시다’와 같은 캠페인을 벌이면서 환경 의제를 선점하고 이슈화했다. 언론은 환경문제를 모든 사람이 공히 책임져야하는 문제로 소개했다. 모두가 같은 환경 파괴자이자, 환경 피해대중이었다. 반공해운동이 환경운동으로 바뀌고, 자본주의나 독점자본이 아니라 소비사회의 문제점이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특히 언론은 시민들 개개인이 노력해서 쓰레기를 줄이고, 배기가스를 덜 배출하는 것이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고 선전했다. 당시 노동운동에 대한 언론의 적대적인 보도와 비교하면 막 태동하던 환경운동을 다루는 언론의 호의는 놀라울 정도다. 환경운동과 언론은 공생관계였다. 환경운동은 언론을 활용하는 방식의 운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조직을 확장할 수 있었다. 언론은 환경문제를 선점하고 활용하면서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공해운동의 이념이 급격하게 쇠퇴한 데에는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큰 역할을 했다. 반공해운동의 주요 논리 중 하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차이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해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공해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반공해운동은 환경문제와 다르다. 환경운동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만 반공해운동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싸움이다. 그야말로 반자본주의적이고 계급적 관점에 선 운동이다”와 같은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었다. 사회주의는 몰락했고, 소련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으며, 사회주의의 ‘공해’는 자본주의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았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다른 대부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반공해운동도 이념을 재검토하거나 반성하기보다는 기존의 관념을 기각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탈계급적 환경운동과 생태주의를 비판하고,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던 비판적 생태사회주의가 일부에게 소개되었으나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다.
환경운동 내에도 반공해운동의 맥락을 계승하면서 강조하는 흐름이 존재했다. 반핵운동이 그것이다. 사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환경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의 건설을 막는 것이었다. 1988~89년 핵발전소 건설반대 투쟁, 1990년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반대 투쟁, 1995년 덕적도 핵폐기장 건설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공권력을 동원해 비민주적 결정을 강행하려는 정부에 대항해 지역주민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핵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히 나누었으며, 가장 치열한 대중투쟁의 현장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성공한 핵폐기장 건설저지 운동은 대안적인 주민 주체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핵발전소 건설은 막지 못했다. 반핵운동은 대부분 생존권과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 성격이 강했고, 대안적인 환경운동 이념 형성이나 주체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격렬한 투쟁 방식이 비정치적이고 부드러운 환경운동의 이미지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환경운동 내에서 반핵운동의 입지는 축소되었다.
한편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정상회의에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을 주축으로 환경운동가들이 대규모로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엘지 등 대기업의 협찬금을 받는 문제로 공해추방운동연합 활동가와 회원 일부가 “공해반대를 부르짖는 환경단체가 공해를 일으키는 당사자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공해추방운동연합을 탈퇴했다. 그러나 하나의 에피소드였을 뿐 내홍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함께 문제제기를 했던 환경운동가들도 머지않아 비슷한 길을 선택했다.
이 시기 환경운동은 양적으로 성장했다. 환경단체의 수와 회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페놀 사태가 일어난 1991년 녹색연합의 전신인 배달환경연구소와 푸른한반도되찾기시민모임이 창립됐다. 이듬해 환경정의의 모태인 경실련 환경개발센터가 출범했고, 그 다음해엔 환경운동연합이 닻을 올렸다. 이처럼 환경운동이 진용을 정비한 1990년대 초는 정부의 환경 정책도 큰 전환점을 이룬 시기였다. 김영삼 정권 등장 후인 1994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었다. 환경문제는 이제 국가 정책의 한 부분으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됐다.
환경운동 위기 비판적으로 보기
십 년 이상의 시간을 건너 뛰어보자. 2004년경부터 환경운동의 위기가 널리 이야기됐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새만금, 천성산, 핵폐기장 등 굵직굵직한 개발 사안이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또는 훨씬 나쁜 형태로 관철되었다. 환경단체는 대선 때는 비공식적으로, 탄핵 때는 공식적으로 촛불을 들며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정권이 골프장 230개 건설과 관련 규제완화, 기업도시법 재정, 토지규제 완화 등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전 국토를 파헤칠 일련의 정책을 내놓았다. 2004년 말 100개가 넘는 전국의 환경단체가 노무현 정권의 반환경 정책에 맞서기 위해서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하고 농성에 나섰다. 그러나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개발연합이 강고했을 뿐만 아니라, 환경단체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전과 같지 않았다. 정부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한다고 여겨졌던 환경단체들의 대정부 집단행동은 뜬금없어 보였다. 결국 시국회의는 성과 없이 초라하게 해산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5년 초 환경운동연합 부설 에코생협이 환경운동의 주요 투쟁대상인 한국수력원자력과 포스코 등의 기업에게 구매 협조문을 통해 환경상품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이 일을 계기로 보수언론이 환경운동의 권력화와 제도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제 비판은 환경운동에 적대적인 언론이나 경제인뿐만 아니라, 환경운동 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었다.
2005년 많은 환경단체들이 모여 환경운동의 위기를 점검하는 토론회를 개최했고, 각종 언론을 통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이러저러한 환경운동가와 환경운동 지지자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를 내부적 비판으로 볼 수 있는데 몇 가지로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 ①환경운동이 초기처럼 현장의 요구에 밀착하지 못하고, 운동과제를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②또 환경운동이 국가 관료에 대한 로비에 치중하고 정부 기구에 깊숙이 참여하면서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었다. ③나아가 정부와 기업의 프로젝트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아 활동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경제적 의존도가 높다. ④대안 없는 환경지상주의가 문제며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⑤운동의 거시적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사안별로 대처해서 여러 가지 대형토목 사업으로 인한 국토난개발을 막는 총제적인 전선에서 밀렸다. ⑥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해 근거 없이 기대하고, 사태를 낙관적으로 판단했다. ⑦대중적 운동 토대 없이 언론 활용에 몰두하는 운동 방식으로 시민 없는 환경운동을 자초했다. ⑧일부 환경운동가들이 무원칙하게 정치권과 정부를 드나들고, 자기 자리마련에 골몰하는 등 권력 지향적 환경관료, 환경귀족이 되었다. ⑨새만금 간척을 저지하기 위한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나 천성산 관통터널을 막기 위한 지율스님의 단식처럼 끈기 있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운동을 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내부적 비판 대부분은 운동방식의 측면에 주목하는 것으로 운동이념 수준에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비판과 토론은 거의 없었다. 간혹 생명운동이나 급진적인 생태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영성에 주목하는 운동을 해야 하고, 지역적 수준에서 공동체 대안 만들기가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했으나 그 역시 현재 환경문제의 성격이나 환경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본격 토론이라기보다는 방법론의 차이에 가까웠다. 과연 진짜 문제가 이러한 것들일까. 오히려 근본적인 차원에서 환경운동의 목표와 주체, 전략을 재검토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환경운동의 위기에 대한 토론이 어떻게 더 진행되었고 결론을 맺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2005년까지 각종 통로로 전해지던 환경운동의 위기는 더 이상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올해 가을 한국 최대 환경단체 환경운동연합의 회계부정 사건이 드러났다.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부장급 이상 활동가 15명이 사직하고, 이후 특별대책회의가 백지상태에서 조직의 쇄신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쇄신이 도덕성 강화나 제도 정비, 조직 관리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비리는 해결할 수 있어도 환경운동의 위기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환경운동을 이끌어왔던 주류 환경단체가 자신의 운동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혁신의 지점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환경운동의 위기가 회자된 지도 5년 가까이 흐른 지금, 더 이상 재정 운용의 불철저함, 관료화, 운동 전략의 부재를 극복하는 수준에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생태적 근대화의 수렁
무엇이 잘못되었나. 누구도 정확한 분석을 하기 힘들다. 나 역시 환경운동의 경험이 길지 않고, 구체적인 내부사정을 잘 모른다. 다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환경운동을 지켜보고, 짧게나마 함께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환경운동의 이념에 초점을 맞추면서 가설적인 차원에서 현 위기에 대해 해석해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상대적으로 명확한 이념적 지향과 전략, 정치적 목표를 설정했던 반공해운동이 해체되고 나서 환경운동은 푯대를 세우지 못했다. 환경, 생태, 녹색, 초록, 생명 등 새로운 낱말이 사용되고, 생명 평화, 초록 희망 등으로 조합되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했다. 운동의 이념과 가치를 구성하고 토론하려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가치가 소개되고 주목받으면 그 의미를 포섭하고자 새로운 말은 만들어 내는 식이었다.
1990년대 이후 환경파괴와 관련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긴박하게, 또 실용적으로 대응해 왔던 환경단체의 활동과 이념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일관된 논리를 구성하고 활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개별적 활동의 양태들과 역사를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한국 환경단체의 현 정체성을 ‘생태적 근대화’로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토론과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이런 방식의 해석에 타당성이 없지 않다. 환경관리주의라는 이념으로 한국 환경운동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있는데, 환경관리주의보다 생태적 근대화가 최근 더 중요해지고 있는 거버넌스와 신자유주의라는 측면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근대화는 서구 학계에서 1980년대 이후의 변화한 환경담론, 환경정치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또 정부, 기업, 환경단체, 학계를 막론하고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환경담론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나마 생태적 근대화의 내용을 살펴보고, 한국 주요 환경단체의 활동을 이 측면에서 검토해보자.
생태적 근대화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정치, 경제, 사회적 제도 안으로 내부화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이념이나 담론이다. 즉 환경문제를 기존 제도와 체제의 근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제도와 기술 개혁을 통해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경관리주의 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태적 근대화나 환경관리주의에 따르면 제로섬 관계로 여겨지던 경제 성장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길이 가능해진다.
생태적 근대화를 경제, 정치, 주체의 면에서 각각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경제적 측면에서 생태적 근대화는 환경과 경제의 조화를 추구한다. 생태적 근대화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 성장과 환경 개선의 조화를 확신한다는 점이다(단적으로 최근 팽배해지고 있는 ‘녹색성장’ 찬양을 생각해보라). 설계, 생산, 소비, 폐기의 과정에 생태적 기준이 도입되고, 생산자, 소비자, 신용기관, 기업 등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생태적 혁신과 개선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생태적 근대화의 경험적 증거로 꼽힌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생태적 근대화는 환경개선의 수단으로써 시장메커니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또한 생태적 근대화는 기술혁신을 통한 환경문제 해결을 추구한다. 적절한 경제적 인센티브만 제공된다면, 과학기술은 환경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 경제기구와 규칙들이 더 이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작동할 수 없게 된 것도 생태적 근대화의 징후로 파악된다. 생태적 근대화의 시각에 비춰진 현실은 시장 메커니즘을 근간으로 시민사회의 압력, 소비자의 수요 등이 곁들여져 경제적 행위자들이 자발적인 환경개선 시도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생태적 근대화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거버넌스의 도입과 활용을 옹호한다.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전략은 국가의 재구조화다. 상명하달식의 위계화되고 집중화된 명령-통제 방식의 규제가 탈중심화된 유연하고 협의에 기반을 둔 방식으로 전환된 것, 이른바 거버넌스의 확산이 중요한 변화로 포착된다. 따라서 국가 독점부문을 민영화하는 것이나 국가 의사결정에 산업계와 NGO가 협력하는 것 등 국민국가의 전통적인 영역에 비국가기구가 참여하게 된 것을 중요한 변화로 파악한다. 명령-통제 중심의 환경규제가 자율규제 형태로 전환된 것은 시장 메커니즘의 역할 증대와 함께 일어난 중대한 변화다. 또 다양한 경제적 수단들과 결합된 자발적 협약이 핵심적인 전략으로 제기된다.
셋째 주체의 측면에서 녹색 소비자의 형성이 중요해진다. 생태적 근대화는 주체와 관련해서 국가, 기업, 초국가 기구,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할도 중시한다. 이때 개인의 역할이 곧 경제적 행위자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생태적 근대화의 주체로서 개인은 소비자로 위치지어진다. 특히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환경개선과 관련해서 소비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개인은 현명한 소비자로서, 친환경상품을 구매하고, 반환경적 제품과 기업은 보이콧하는 식으로 생태적 근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호명된다. 환경상표, 친환경 인증 등이 유용한 시장 메커니즘으로 꼽힌다. 생태적 근대화를 위해서 개인은 책임감 있고, 윤리적인 녹색소비자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제 생태적 근대화의 관점에서 한국 주류 환경운동을 해석해보자.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운동은 체제의 극복이라는 관점을 부차화하고 법과 제도 개선, 반환경적 토건사업 저지를 운동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특히 김대중 정권 이후 정부와의 거버넌스가 중요해졌고, 나아가 기업 역시 환경문제 해결의 한 주체로 적극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환경단체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정부를 대상으로 한 로비가 주요 운동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재정적으로도 기업과 정부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환경운동연합 재정 수입 중 정부와 기업 프로젝트, 기타 생협 수익 등을 포함하는 사업수입이 전체의 60% 이상이고 회비수입은 30% 내외에 머무른다(나머지는 후원금). 민영화나 시장을 활용한 환경개선의 경우 환경단체 차원에서 명시적인 목표로 내세우지는 않으나 한전 민영화 문제, 탄소거래 문제 등에 있어서 상당한 논란 속에서 ‘현실’이라는 이유로 시장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상품 소비자만을 특권화하는 것은 아니나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고, 친환경상품을 통한 소비의 차별화를 주요한 운동방법으로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류 환경운동은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를 발생시킨 구조와 원인에 대해서 더 이상 근본적으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현재 사회에서 생태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존 질서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사고되지 않는 것이다. 또 한국사회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새로운 세계, 사회,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안 된다. 생태적 변혁이 아니라 생태적 근대화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운동 모두가 생태적 변혁을 목표로 할 수는 없다. 이러저러한 환경 이슈를 열심히 제기하고 로비하고 싸우는 환경운동이 존재할 것이고, 그러한 운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급진적 사회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 생태적 변혁을 목표로 하는 환경운동이다. 1980년대 반공해운동은 분명히 그것을 약속했다. 초창기 환경운동도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생태사회로의 전환’과 같은 표현으로 그러한 목표를 명확히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그러한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환경운동은 존재하는가.
생태위기에 주목하고, 새로운 생태운동을!
환경단체 내부에서 변화가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활동가들 사이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강하고, 환경단체 사이의 조직적 카르텔도 강하다. 허심탄회한 공개적인 내부 토론과 비판이 쉽지 않다. 이미 유사한 활동 패턴과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어 발본적인 문제제기가 나오기 어렵다. 뚜렷한 대안적 운동이념이나 모델을 제시하는 단체나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다. 환경운동 전체가 무익하거나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생태적 변혁을 진지하게 목표로 하는 운동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환경운동 외부에 새로운 운동 주체가 가시적인 것도 아니다. 사회운동 대부분은 분업화되어 있고 생태문제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생활습관 개선이나 영성 함양과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무관심하거나 계급 문제로 단순하게 포섭하려고 한다.
따라서 우선 어렵지만 문제의식이 있는 소수가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통해서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의 변화, 즉 전통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환경운동의 적색화, 좌파운동의 녹색화’를 꾀할 수밖에. 그렇다면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우선 개념적으로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를 구분하고, 전략적으로 후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나 생태위기는 공통적으로 자연과 인간사회 사이의 물질적인 교환과정에서 생태계의 수용능력을 벗어나는 폐기물 축적이나 생태계 그 자체의 변형, 파괴로 인류에게 해가 되는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는 모두 인간적 관점을 채택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현재의 제도를 수정하거나 기술을 혁신해서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즉 생태적 근대화로 포섭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난개발로 지역생태계가 파괴되거나 오염배출기준이 낮아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환경문제도 사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단편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시각의 운동이 필요하다. 앞서 밝혔듯이 여기서는 개념적 차원에서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를 나누고, 전략적 측면에서 후자를 강조한다.)
반면 생태위기는 자연환경의 물질적 변화에 따라 인류문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기준이 인류문명의 생존을 위협하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생태위기를 세계 전역에 누적되고 있는 다수의 특수한 생태문제들에 관한 집합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제안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연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지역문명이나 사회가 몰락했던 사례들이 존재한다. 지금과 같은 대량파괴의 시대에 생태위기는 다만 은유적인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세계화된 자본주의에서 인류문명이 지구적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자연환경의 파괴는 인류문명 전체의 파괴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가 현 체제를 승인한 내에서 부분적인 제도 개혁으로 해결가능하다면 이를 위기로 부르기 힘들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 내적 노력이 오히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난국, 자본주의의 본성인 이윤축적 추구 하에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따라서 생태위기에 상응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농업과 식량 위기, 에너지(화석연료) 위기, 기후변화 위기를 생태위기의 하위 범주로 사고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에 신자유주의와 함께 전 지구적 규모의 자연 파괴가 극심해지고 있다. 또 바로 지금 경제위기와 상호 연관되어 함께 전개되는 농업, 에너지, 기후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주목하는 사회운동, 생태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농업의 위기에 대응하는 식량주권 쟁취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 농민운동과 지역먹거리운동, 또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적 기후정의운동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새로운 생태운동의 출발이 독자적인 조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환경운동, 사회운동 내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실천하는 세력을 형성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구체적인 운동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딛고 새로운 생태운동을 시작해보자!
생태위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주류 환경운동이 문제에 진정으로 대면하고 있는지, 이러한 운동으로 지금과 다른 생태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지를 의심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농업에 기반을 둔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주장하고,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 귀농을 택한다. 생태적이고 호혜적인 농촌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에서 대안을 실험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소중한 생각이고 실천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공고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한국 환경운동의 초창기 역사를 되돌아보고, 환경단체의 현재 정체성을 생태적 근대화로 해석하면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한국 환경운동의 연원: 반공해운동에서 환경운동으로
한국 환경운동의 뿌리는 1980년대 반공해운동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 초반부터 대학 내 이공대생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운동과 반공해운동이 모색되었고, 거의 동시에 민주화운동 세력 일부가 공해문제연구회를 결성해 활동했다. 공업단지 주변 주민들의 공해 피해 현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공해 지도를 만들고, 주민을 면담하는 것이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보고서, 마당극으로 발표해서 군부 독재의 실정을 폭로하고, 사회변혁의 필요성을 찾았다.
당시에는 공해문제에 대한 계급적 해석을 중요시했고, 무엇이 공해문제의 원인인지, 그리고 불평등한 피해를 낳는지를 정치경제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일본의 좌파 공해운동 이론서인 『공해의 정치경제학』(츠르 시게토, 풀빛, 1983)이 널리 읽혔다. 공해의 원인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구체적으로는 독점자본과 억압적인 국가권력이었고, 따라서 공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반공해운동은 서구의 중산층 중심 환경운동을 비판하고 민중지향적인 환경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환경운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환경문제가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고 피해 민중을 막연하게 가해자로 둔갑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면서, ‘환경운동’이 아닌 ‘반공해운동’이라는 표현만을 써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반공해운동은 대중성은 떨어졌지만 강한 현장성과 비타협적인 문제의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7년 이후 제한적 민주화 국면에서 반공해운동은 환경운동으로 변모했다. 전국 각지에서 공해피해, 개발피해 주민 민원이 쏟아졌고, 정부도 환경오염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1991년 3월에 터진 낙동강 페놀 오염 사태는 환경운동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환경문제가 처음으로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다(이전에도 반핵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주목을 받았지만 일부 운동권과 해당지역 주민의 관심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페놀 사태로 환경운동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일반 대중과 미디어를 상대로 운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페놀 폐수를 담은 비커에 금붕어를 담아 죽이는 실험을 하고, 페놀 오염을 일으킨 두산전자 계열사의 OB맥주를 길거리에 쏟아 붓는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최초로 벌였다.
언론은 환경문제와 환경운동에 우호적이었다. 1992년부터는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 스스로가 ‘쓰레기를 줄입시다’와 같은 캠페인을 벌이면서 환경 의제를 선점하고 이슈화했다. 언론은 환경문제를 모든 사람이 공히 책임져야하는 문제로 소개했다. 모두가 같은 환경 파괴자이자, 환경 피해대중이었다. 반공해운동이 환경운동으로 바뀌고, 자본주의나 독점자본이 아니라 소비사회의 문제점이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특히 언론은 시민들 개개인이 노력해서 쓰레기를 줄이고, 배기가스를 덜 배출하는 것이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고 선전했다. 당시 노동운동에 대한 언론의 적대적인 보도와 비교하면 막 태동하던 환경운동을 다루는 언론의 호의는 놀라울 정도다. 환경운동과 언론은 공생관계였다. 환경운동은 언론을 활용하는 방식의 운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조직을 확장할 수 있었다. 언론은 환경문제를 선점하고 활용하면서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공해운동의 이념이 급격하게 쇠퇴한 데에는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큰 역할을 했다. 반공해운동의 주요 논리 중 하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차이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해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공해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반공해운동은 환경문제와 다르다. 환경운동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만 반공해운동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싸움이다. 그야말로 반자본주의적이고 계급적 관점에 선 운동이다”와 같은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었다. 사회주의는 몰락했고, 소련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으며, 사회주의의 ‘공해’는 자본주의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았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다른 대부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반공해운동도 이념을 재검토하거나 반성하기보다는 기존의 관념을 기각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탈계급적 환경운동과 생태주의를 비판하고,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던 비판적 생태사회주의가 일부에게 소개되었으나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다.
환경운동 내에도 반공해운동의 맥락을 계승하면서 강조하는 흐름이 존재했다. 반핵운동이 그것이다. 사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환경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의 건설을 막는 것이었다. 1988~89년 핵발전소 건설반대 투쟁, 1990년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반대 투쟁, 1995년 덕적도 핵폐기장 건설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공권력을 동원해 비민주적 결정을 강행하려는 정부에 대항해 지역주민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핵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히 나누었으며, 가장 치열한 대중투쟁의 현장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성공한 핵폐기장 건설저지 운동은 대안적인 주민 주체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핵발전소 건설은 막지 못했다. 반핵운동은 대부분 생존권과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 성격이 강했고, 대안적인 환경운동 이념 형성이나 주체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격렬한 투쟁 방식이 비정치적이고 부드러운 환경운동의 이미지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환경운동 내에서 반핵운동의 입지는 축소되었다.
한편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정상회의에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을 주축으로 환경운동가들이 대규모로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엘지 등 대기업의 협찬금을 받는 문제로 공해추방운동연합 활동가와 회원 일부가 “공해반대를 부르짖는 환경단체가 공해를 일으키는 당사자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공해추방운동연합을 탈퇴했다. 그러나 하나의 에피소드였을 뿐 내홍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함께 문제제기를 했던 환경운동가들도 머지않아 비슷한 길을 선택했다.
이 시기 환경운동은 양적으로 성장했다. 환경단체의 수와 회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페놀 사태가 일어난 1991년 녹색연합의 전신인 배달환경연구소와 푸른한반도되찾기시민모임이 창립됐다. 이듬해 환경정의의 모태인 경실련 환경개발센터가 출범했고, 그 다음해엔 환경운동연합이 닻을 올렸다. 이처럼 환경운동이 진용을 정비한 1990년대 초는 정부의 환경 정책도 큰 전환점을 이룬 시기였다. 김영삼 정권 등장 후인 1994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었다. 환경문제는 이제 국가 정책의 한 부분으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됐다.
환경운동 위기 비판적으로 보기
십 년 이상의 시간을 건너 뛰어보자. 2004년경부터 환경운동의 위기가 널리 이야기됐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새만금, 천성산, 핵폐기장 등 굵직굵직한 개발 사안이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또는 훨씬 나쁜 형태로 관철되었다. 환경단체는 대선 때는 비공식적으로, 탄핵 때는 공식적으로 촛불을 들며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정권이 골프장 230개 건설과 관련 규제완화, 기업도시법 재정, 토지규제 완화 등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전 국토를 파헤칠 일련의 정책을 내놓았다. 2004년 말 100개가 넘는 전국의 환경단체가 노무현 정권의 반환경 정책에 맞서기 위해서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하고 농성에 나섰다. 그러나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개발연합이 강고했을 뿐만 아니라, 환경단체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전과 같지 않았다. 정부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한다고 여겨졌던 환경단체들의 대정부 집단행동은 뜬금없어 보였다. 결국 시국회의는 성과 없이 초라하게 해산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5년 초 환경운동연합 부설 에코생협이 환경운동의 주요 투쟁대상인 한국수력원자력과 포스코 등의 기업에게 구매 협조문을 통해 환경상품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이 일을 계기로 보수언론이 환경운동의 권력화와 제도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제 비판은 환경운동에 적대적인 언론이나 경제인뿐만 아니라, 환경운동 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었다.
2005년 많은 환경단체들이 모여 환경운동의 위기를 점검하는 토론회를 개최했고, 각종 언론을 통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이러저러한 환경운동가와 환경운동 지지자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를 내부적 비판으로 볼 수 있는데 몇 가지로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 ①환경운동이 초기처럼 현장의 요구에 밀착하지 못하고, 운동과제를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②또 환경운동이 국가 관료에 대한 로비에 치중하고 정부 기구에 깊숙이 참여하면서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었다. ③나아가 정부와 기업의 프로젝트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아 활동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경제적 의존도가 높다. ④대안 없는 환경지상주의가 문제며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⑤운동의 거시적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사안별로 대처해서 여러 가지 대형토목 사업으로 인한 국토난개발을 막는 총제적인 전선에서 밀렸다. ⑥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해 근거 없이 기대하고, 사태를 낙관적으로 판단했다. ⑦대중적 운동 토대 없이 언론 활용에 몰두하는 운동 방식으로 시민 없는 환경운동을 자초했다. ⑧일부 환경운동가들이 무원칙하게 정치권과 정부를 드나들고, 자기 자리마련에 골몰하는 등 권력 지향적 환경관료, 환경귀족이 되었다. ⑨새만금 간척을 저지하기 위한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나 천성산 관통터널을 막기 위한 지율스님의 단식처럼 끈기 있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운동을 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내부적 비판 대부분은 운동방식의 측면에 주목하는 것으로 운동이념 수준에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비판과 토론은 거의 없었다. 간혹 생명운동이나 급진적인 생태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영성에 주목하는 운동을 해야 하고, 지역적 수준에서 공동체 대안 만들기가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했으나 그 역시 현재 환경문제의 성격이나 환경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본격 토론이라기보다는 방법론의 차이에 가까웠다. 과연 진짜 문제가 이러한 것들일까. 오히려 근본적인 차원에서 환경운동의 목표와 주체, 전략을 재검토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환경운동의 위기에 대한 토론이 어떻게 더 진행되었고 결론을 맺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2005년까지 각종 통로로 전해지던 환경운동의 위기는 더 이상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올해 가을 한국 최대 환경단체 환경운동연합의 회계부정 사건이 드러났다.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부장급 이상 활동가 15명이 사직하고, 이후 특별대책회의가 백지상태에서 조직의 쇄신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쇄신이 도덕성 강화나 제도 정비, 조직 관리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비리는 해결할 수 있어도 환경운동의 위기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환경운동을 이끌어왔던 주류 환경단체가 자신의 운동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혁신의 지점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환경운동의 위기가 회자된 지도 5년 가까이 흐른 지금, 더 이상 재정 운용의 불철저함, 관료화, 운동 전략의 부재를 극복하는 수준에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생태적 근대화의 수렁
무엇이 잘못되었나. 누구도 정확한 분석을 하기 힘들다. 나 역시 환경운동의 경험이 길지 않고, 구체적인 내부사정을 잘 모른다. 다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환경운동을 지켜보고, 짧게나마 함께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환경운동의 이념에 초점을 맞추면서 가설적인 차원에서 현 위기에 대해 해석해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상대적으로 명확한 이념적 지향과 전략, 정치적 목표를 설정했던 반공해운동이 해체되고 나서 환경운동은 푯대를 세우지 못했다. 환경, 생태, 녹색, 초록, 생명 등 새로운 낱말이 사용되고, 생명 평화, 초록 희망 등으로 조합되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했다. 운동의 이념과 가치를 구성하고 토론하려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가치가 소개되고 주목받으면 그 의미를 포섭하고자 새로운 말은 만들어 내는 식이었다.
1990년대 이후 환경파괴와 관련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긴박하게, 또 실용적으로 대응해 왔던 환경단체의 활동과 이념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일관된 논리를 구성하고 활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개별적 활동의 양태들과 역사를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한국 환경단체의 현 정체성을 ‘생태적 근대화’로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토론과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이런 방식의 해석에 타당성이 없지 않다. 환경관리주의라는 이념으로 한국 환경운동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있는데, 환경관리주의보다 생태적 근대화가 최근 더 중요해지고 있는 거버넌스와 신자유주의라는 측면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근대화는 서구 학계에서 1980년대 이후의 변화한 환경담론, 환경정치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또 정부, 기업, 환경단체, 학계를 막론하고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환경담론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나마 생태적 근대화의 내용을 살펴보고, 한국 주요 환경단체의 활동을 이 측면에서 검토해보자.
생태적 근대화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정치, 경제, 사회적 제도 안으로 내부화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이념이나 담론이다. 즉 환경문제를 기존 제도와 체제의 근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제도와 기술 개혁을 통해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경관리주의 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태적 근대화나 환경관리주의에 따르면 제로섬 관계로 여겨지던 경제 성장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길이 가능해진다.
생태적 근대화를 경제, 정치, 주체의 면에서 각각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경제적 측면에서 생태적 근대화는 환경과 경제의 조화를 추구한다. 생태적 근대화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 성장과 환경 개선의 조화를 확신한다는 점이다(단적으로 최근 팽배해지고 있는 ‘녹색성장’ 찬양을 생각해보라). 설계, 생산, 소비, 폐기의 과정에 생태적 기준이 도입되고, 생산자, 소비자, 신용기관, 기업 등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생태적 혁신과 개선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생태적 근대화의 경험적 증거로 꼽힌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생태적 근대화는 환경개선의 수단으로써 시장메커니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또한 생태적 근대화는 기술혁신을 통한 환경문제 해결을 추구한다. 적절한 경제적 인센티브만 제공된다면, 과학기술은 환경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 경제기구와 규칙들이 더 이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작동할 수 없게 된 것도 생태적 근대화의 징후로 파악된다. 생태적 근대화의 시각에 비춰진 현실은 시장 메커니즘을 근간으로 시민사회의 압력, 소비자의 수요 등이 곁들여져 경제적 행위자들이 자발적인 환경개선 시도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생태적 근대화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거버넌스의 도입과 활용을 옹호한다.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전략은 국가의 재구조화다. 상명하달식의 위계화되고 집중화된 명령-통제 방식의 규제가 탈중심화된 유연하고 협의에 기반을 둔 방식으로 전환된 것, 이른바 거버넌스의 확산이 중요한 변화로 포착된다. 따라서 국가 독점부문을 민영화하는 것이나 국가 의사결정에 산업계와 NGO가 협력하는 것 등 국민국가의 전통적인 영역에 비국가기구가 참여하게 된 것을 중요한 변화로 파악한다. 명령-통제 중심의 환경규제가 자율규제 형태로 전환된 것은 시장 메커니즘의 역할 증대와 함께 일어난 중대한 변화다. 또 다양한 경제적 수단들과 결합된 자발적 협약이 핵심적인 전략으로 제기된다.
셋째 주체의 측면에서 녹색 소비자의 형성이 중요해진다. 생태적 근대화는 주체와 관련해서 국가, 기업, 초국가 기구,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할도 중시한다. 이때 개인의 역할이 곧 경제적 행위자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생태적 근대화의 주체로서 개인은 소비자로 위치지어진다. 특히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환경개선과 관련해서 소비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개인은 현명한 소비자로서, 친환경상품을 구매하고, 반환경적 제품과 기업은 보이콧하는 식으로 생태적 근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호명된다. 환경상표, 친환경 인증 등이 유용한 시장 메커니즘으로 꼽힌다. 생태적 근대화를 위해서 개인은 책임감 있고, 윤리적인 녹색소비자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제 생태적 근대화의 관점에서 한국 주류 환경운동을 해석해보자.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운동은 체제의 극복이라는 관점을 부차화하고 법과 제도 개선, 반환경적 토건사업 저지를 운동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특히 김대중 정권 이후 정부와의 거버넌스가 중요해졌고, 나아가 기업 역시 환경문제 해결의 한 주체로 적극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환경단체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정부를 대상으로 한 로비가 주요 운동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재정적으로도 기업과 정부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환경운동연합 재정 수입 중 정부와 기업 프로젝트, 기타 생협 수익 등을 포함하는 사업수입이 전체의 60% 이상이고 회비수입은 30% 내외에 머무른다(나머지는 후원금). 민영화나 시장을 활용한 환경개선의 경우 환경단체 차원에서 명시적인 목표로 내세우지는 않으나 한전 민영화 문제, 탄소거래 문제 등에 있어서 상당한 논란 속에서 ‘현실’이라는 이유로 시장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상품 소비자만을 특권화하는 것은 아니나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고, 친환경상품을 통한 소비의 차별화를 주요한 운동방법으로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류 환경운동은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를 발생시킨 구조와 원인에 대해서 더 이상 근본적으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현재 사회에서 생태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존 질서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사고되지 않는 것이다. 또 한국사회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새로운 세계, 사회,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안 된다. 생태적 변혁이 아니라 생태적 근대화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운동 모두가 생태적 변혁을 목표로 할 수는 없다. 이러저러한 환경 이슈를 열심히 제기하고 로비하고 싸우는 환경운동이 존재할 것이고, 그러한 운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급진적 사회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 생태적 변혁을 목표로 하는 환경운동이다. 1980년대 반공해운동은 분명히 그것을 약속했다. 초창기 환경운동도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생태사회로의 전환’과 같은 표현으로 그러한 목표를 명확히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그러한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환경운동은 존재하는가.
생태위기에 주목하고, 새로운 생태운동을!
환경단체 내부에서 변화가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활동가들 사이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강하고, 환경단체 사이의 조직적 카르텔도 강하다. 허심탄회한 공개적인 내부 토론과 비판이 쉽지 않다. 이미 유사한 활동 패턴과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어 발본적인 문제제기가 나오기 어렵다. 뚜렷한 대안적 운동이념이나 모델을 제시하는 단체나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다. 환경운동 전체가 무익하거나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생태적 변혁을 진지하게 목표로 하는 운동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환경운동 외부에 새로운 운동 주체가 가시적인 것도 아니다. 사회운동 대부분은 분업화되어 있고 생태문제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생활습관 개선이나 영성 함양과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무관심하거나 계급 문제로 단순하게 포섭하려고 한다.
따라서 우선 어렵지만 문제의식이 있는 소수가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통해서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의 변화, 즉 전통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환경운동의 적색화, 좌파운동의 녹색화’를 꾀할 수밖에. 그렇다면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우선 개념적으로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를 구분하고, 전략적으로 후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나 생태위기는 공통적으로 자연과 인간사회 사이의 물질적인 교환과정에서 생태계의 수용능력을 벗어나는 폐기물 축적이나 생태계 그 자체의 변형, 파괴로 인류에게 해가 되는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는 모두 인간적 관점을 채택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현재의 제도를 수정하거나 기술을 혁신해서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즉 생태적 근대화로 포섭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난개발로 지역생태계가 파괴되거나 오염배출기준이 낮아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환경문제도 사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단편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시각의 운동이 필요하다. 앞서 밝혔듯이 여기서는 개념적 차원에서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를 나누고, 전략적 측면에서 후자를 강조한다.)
반면 생태위기는 자연환경의 물질적 변화에 따라 인류문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기준이 인류문명의 생존을 위협하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생태위기를 세계 전역에 누적되고 있는 다수의 특수한 생태문제들에 관한 집합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제안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연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지역문명이나 사회가 몰락했던 사례들이 존재한다. 지금과 같은 대량파괴의 시대에 생태위기는 다만 은유적인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세계화된 자본주의에서 인류문명이 지구적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자연환경의 파괴는 인류문명 전체의 파괴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가 현 체제를 승인한 내에서 부분적인 제도 개혁으로 해결가능하다면 이를 위기로 부르기 힘들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 내적 노력이 오히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난국, 자본주의의 본성인 이윤축적 추구 하에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따라서 생태위기에 상응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농업과 식량 위기, 에너지(화석연료) 위기, 기후변화 위기를 생태위기의 하위 범주로 사고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에 신자유주의와 함께 전 지구적 규모의 자연 파괴가 극심해지고 있다. 또 바로 지금 경제위기와 상호 연관되어 함께 전개되는 농업, 에너지, 기후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주목하는 사회운동, 생태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농업의 위기에 대응하는 식량주권 쟁취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 농민운동과 지역먹거리운동, 또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적 기후정의운동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새로운 생태운동의 출발이 독자적인 조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환경운동, 사회운동 내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실천하는 세력을 형성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구체적인 운동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딛고 새로운 생태운동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