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사회로: 교사운동의 빛과 그림자
4.19 교원노조가 쿠데타로 강제 해산당한 후 1980년대 초반까지 기나긴 교사운동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YMCA교육자회와 소모임을 중심으로 기지개를 편 교사운동은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으로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약칭 전교협),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 결성은 교사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1500여명의 해직자와 150여명의 구속자를 낸 전교조 결성은 교사운동을 넘어 ‘민주화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시대에 민주노총은 교원노조 합법화 등과 구조조정을 교환했다. 한국 민중운동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전교조의 합법성을 획득했다. 그날 이후 전교조 활동가들은 이른 바 ‘빅딜’에 대한 부채의식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그 시대를 대학인으로 살아갔던 본인 역시 전교조 신화를 들으며 대학을 다녔다. 예비교사였던 우리는 ‘전교조 조합원’을 좋은 교사로 알았고, 그 일원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교사가 되었고, 너무나 당연하게 전교조에 가입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 시절 목표였던 전교조 조합원이 되었다. 물론, ‘합법화 이후 가입자’라는 또 하나의 명찰을 달았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금새 몇 해가 지나갔고, 그 사이 정권도 교체되었다. 그 즈음 사람들은 ‘전교조 교사’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하고, 가끔은 ‘북으로 가라’고 욕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보다 노골적으로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전교조를 이적단체라고 고발하고, 광고를 통해 전교조 조합원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덩달아 교사운동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갑갑한 것은,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교육/ 교사 운동의 쟁점
시대가 바뀌었지만, 전교조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결성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조합원 중 일부가 퇴직을 하거나 사망한 것, 덩달아 ‘젊은 조합원’의 비중이 낮아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이제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아이들 입으로 장래희망이 정규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사교육비도 크게 늘었다. 20년 전만 해도 피아노 있는 집이 드물었고, 학원이 구석구석까지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교육이 학교 교육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세상은 변했는데, 전교조는 변하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교사운동의 딜레마는 시작된 것이리라.
1. 정규직 교사 운동
2. 교직원노조가 아닌 교원노조에 머문 현재의 전교조 운동
3. 교사, 학생, 학부모, 시민(지역)의 관계맺음
4. 교육운동인가, 교육노동운동인가
몇 해 전, 전교조에서도 ‘비정규직 교사의 전교조 가입 허용’이 물밑에서 이야기된 바 있었다. 교원노조에서 교사란 초중등교육법 제1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학교 교사를 말한다. 현직 기간제 교사는 법률상으로도 교원노조 가입이 불허되지 않는다. 물론 기간제 교사의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재계약이 되지 않거나 해직될 경우에는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정규직 교사의 교원노조 가입을 추진하지 않거나 포기한다면 불안정노동 확산에 맞서 싸울 명분이 없다. 안타깝지만 몇 해 전 이야기는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그냥 가라앉고 말았다. 그리고 몇몇 대공장에서 정규직 - 비정규직 노조의 통합을 이야기할 때, 전교조 활동가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전교조만큼 온전히 정규직으로만 구성된 노조는 없으니 말이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전교조는 학교에 근무 중인 교직원을 가입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학교노조를 표방하고 결성되었다. 그러나 결성 초기 극심한 탄압으로 다수의 해직자와 구속자가 발생했고, 교사와 행정직원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대부분이 교사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합법화 과정에서 ‘교직원노동조합’이 아니라, ‘교원노동조합’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전교조는 이름과 달리 교사들만의 노조가 되고 말았다. 전교조 가입이 이뤄지지 못한 교육행정직원은 훗날 공무원노조에 소속되었다. 교사와 직원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지만 굉장히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학교의 주류는 교사고, 직원은 비주류이자 약자이다. 법률상 교사를 우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법률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학교는 철저하게 교사중심, 교장중심이다. 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부분도 교원노조가 기득권을 누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교사운동이 그 동안 주목한 것은 교육제도 개혁, 교원처우 개선, 사회인식 변화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에 발간된 교육잡지는 하나같이 교육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시 유행했던 말 중에 하나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어른들은 몰라요’였는데, 이 말은 곧 전교조의 주장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교육개혁 담론을 주도한 것은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같은 단체였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권이 어느날 신자유주의 교육이데올로기를 들고 혜성처럼 나타났다. 공수가 전환된 것이다. 그날 이후 교사운동은 우왕좌왕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깨지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교사운동은 학교, 교실, 교사에 머물렀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학부모와 교사의 거리가 멀다. 그런데 교사운동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에 대한 관심을 덜 기울였다. 지난 20년 동안 서서히 거리가 멀어진 지금, 상당수의 지역에서 학부모는 교원노조(=전교조)를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불신의 상당수는 보수언론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교원노조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급진적 투쟁’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 문제다.
교사운동에 몸을 담을 시점이었다. 평소처럼 ‘교육운동’이란 용어를 사용하던 내게 한 선배 교사가 “교육운동이 아니라 ‘교육노동운동’이다”고 지적했다. 그 선배 교사는 교육운동은 개량이고, 교육노동운동은 급진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실제로 이른 바 좌파 진영에서는 ‘교육운동’을 시민운동적 교육운동으로, ‘교육노동운동’을 민중운동적 교육운동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좌파 교사운동을 대표하는 의견그룹은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약칭 교찾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교육운동과 교육노동운동이란 용어는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교육운동이 교육을 매개로 한 운동이라면, 교육노동운동은 교사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전교조 운동은 교육노동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교사운동이 교육이란 의제를 갖고 다른 사회운동과 만나기 위해서는 ‘교육노동’으로 한정되지 않는 운동이 요구된다. 물론 그것이 현실적으로 급진적 교사운동을 포기하고, 온건한 개혁을 추구하는 시민운동 성향의 교육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용어의 차이는 교사운동의 분화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90년 중반부터는 교사운동이 교육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두 가지 그룹으로 발전했다. 첫 번째 그룹은 교육운동을 ‘참교육실천운동’으로 바라보는 견해였고, 두 번째 그룹은 교육운동을 사회운동으로 바라보는 그룹이었다. 1980년대 교사운동을 주도한 그룹은 교육운동의 핵심을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잘 가르치는 것’에 동의를 한다고 치더라도 ‘무엇이 잘 가르치는 것이냐’는 물음이 돌아올 것은 자명하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온건한 그룹’으로 분류되는 이들 그룹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이 드러났다. 가장 우경적인 그룹은 ‘참교육실천에 주력해야 하고, 학생을 잘 가르쳐서 학업성취도를 높여야 하며, 입시교육도 잘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교육운동은 교사와 학부모라는 양대 축으로 이뤄져 왔고, 최근 주체운동에서 벗어난 사회운동이 형성되는 양상을 보였다. 애초에 교사운동은 진보적 학부모 운동과 파트너 관계였으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애증관계로 전환되었다. 이즈음 학부모운동은 교육소비자 운동에 경도되면서 교원노조와 학부모단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지역에 뿌리내렸던 사회운동 단체 중 상당수가 붕괴되면서 교원노조는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런 외부 환경의 변화는 급진적인 교사운동 그룹이 ‘교육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교육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긍정하게 만든 조건이 되었다.
이명박 시대의 교사운동의 진로
전교협 결성 이후 약 20년을 맞은 교사운동은 활동가 부족, 노쇠화로 ‘동맥경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교사운동의 중심은 1세대(결성과 함께 참여한 세대)와 1.5세대(비합법 시절에 교원노조에 가입한 세대)이고, 2세대(합법화 세대)는 비중이 작다. 물론 다른 노동자운동에 비해서는 비교적 건강하고, 활동가도 풍부한 편이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교사운동의 실력은 과대포장되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요즘 전교조는 전국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교사운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지회와 분회의 약화가 두드러진다. 요즘은 시군 단위로 조직된 지회에서 지회장 선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 집행부 구성도 어려워지고 있다. 더군다나 전교조의 강점이던 ‘개혁’적 측면도 정부가 신자유주의, 혹은 우익적인 개혁을 표방하면서 이니셔티브를 상실했다.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아 어려움을 겪던 전교조로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이뤄지는 공안탄압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진행된 조직진단에서 전교조가 전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을 닮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일본 노동운동, 사회운동은 전공투 이후 점차 쇠퇴하여 최근에는 노인 집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집회에서 40대 이전 세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전교조가 현재 추세대로 가면 10년 후에는 일교조와 별로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직진단이 나오자 활동가들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교조 주축이 40대 이상이고, 20~30대 조합원이 급격히 줄어들거나 활동가가 부족한 상황을 한 번에 역전시킬 수는 없다. 특히 현재와 같이 조합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완이 불가피하다. 그야말로 전교조 결성 20년내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극우 세력은 전교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름은 ‘뉴라이트’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이들 세력은 ‘반전교조’라는 슬로건을 ‘반민주노총’이나 ‘우향우’보다 명징하게 받아들인다. 뉴라이트 그룹은 ‘반전교조’라는 슬로건 수용 여부를 마치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고백하는 것처럼 바라본다. <시사IN>의 보도에 따르면 뉴라이트 진영은 내부 결속이 비교적 강하고, 재정적으로 탄탄한 전교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뉴라이트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통해 반전교조가 전선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이명박식 교육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전교조를 비롯한 학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치른 일제고사를 학생들은 ‘명박고사’라고 부르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전국적으로 시험 거부자, 결시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불만은 확실히 축적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불만이 곧바로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계가 지리멸렬하고 있고, 사회단체들은 부정부패 시비로 추락하고 있는 등 대응역량이 눈에 띄게 약화되어 있다. 2008년을 달군 촛불시위는 사회변화 동력으로서는 지속성이 떨어진다.
현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교사운동 내 각 그룹 간의 주장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그룹은 ‘통합 지도부를 건설하자’고 제안하고, 어떤 그룹은 ‘공동투쟁본부로 투쟁을 통해 돌파하자’고 호소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조합원 교육을 강화하고, 교사운동을 사회운동적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주로 선거 국면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장들이다. 물론 교사 운동 각 그룹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과연 비정규직 교사의 전교조 가입을 명운을 걸고 추진할 그룹은 없어 보인다. 이 사안을 교사운동의 사활적인 내용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MB 시대를 맞은 교사운동 역시 총체적 난국이라고 생각된다. 합법화 시대에 전교조 조합원이 된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탄압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저들은 거침없이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지리멸렬하다. 지금 다시 브레히트의 시집 『흔들리는 사람에게』를 읽어야겠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시대에 민주노총은 교원노조 합법화 등과 구조조정을 교환했다. 한국 민중운동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전교조의 합법성을 획득했다. 그날 이후 전교조 활동가들은 이른 바 ‘빅딜’에 대한 부채의식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그 시대를 대학인으로 살아갔던 본인 역시 전교조 신화를 들으며 대학을 다녔다. 예비교사였던 우리는 ‘전교조 조합원’을 좋은 교사로 알았고, 그 일원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교사가 되었고, 너무나 당연하게 전교조에 가입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 시절 목표였던 전교조 조합원이 되었다. 물론, ‘합법화 이후 가입자’라는 또 하나의 명찰을 달았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금새 몇 해가 지나갔고, 그 사이 정권도 교체되었다. 그 즈음 사람들은 ‘전교조 교사’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하고, 가끔은 ‘북으로 가라’고 욕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보다 노골적으로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전교조를 이적단체라고 고발하고, 광고를 통해 전교조 조합원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덩달아 교사운동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갑갑한 것은,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교육/ 교사 운동의 쟁점
시대가 바뀌었지만, 전교조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결성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조합원 중 일부가 퇴직을 하거나 사망한 것, 덩달아 ‘젊은 조합원’의 비중이 낮아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이제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아이들 입으로 장래희망이 정규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사교육비도 크게 늘었다. 20년 전만 해도 피아노 있는 집이 드물었고, 학원이 구석구석까지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교육이 학교 교육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세상은 변했는데, 전교조는 변하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교사운동의 딜레마는 시작된 것이리라.
1. 정규직 교사 운동
2. 교직원노조가 아닌 교원노조에 머문 현재의 전교조 운동
3. 교사, 학생, 학부모, 시민(지역)의 관계맺음
4. 교육운동인가, 교육노동운동인가
몇 해 전, 전교조에서도 ‘비정규직 교사의 전교조 가입 허용’이 물밑에서 이야기된 바 있었다. 교원노조에서 교사란 초중등교육법 제1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학교 교사를 말한다. 현직 기간제 교사는 법률상으로도 교원노조 가입이 불허되지 않는다. 물론 기간제 교사의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재계약이 되지 않거나 해직될 경우에는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정규직 교사의 교원노조 가입을 추진하지 않거나 포기한다면 불안정노동 확산에 맞서 싸울 명분이 없다. 안타깝지만 몇 해 전 이야기는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그냥 가라앉고 말았다. 그리고 몇몇 대공장에서 정규직 - 비정규직 노조의 통합을 이야기할 때, 전교조 활동가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전교조만큼 온전히 정규직으로만 구성된 노조는 없으니 말이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전교조는 학교에 근무 중인 교직원을 가입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학교노조를 표방하고 결성되었다. 그러나 결성 초기 극심한 탄압으로 다수의 해직자와 구속자가 발생했고, 교사와 행정직원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대부분이 교사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합법화 과정에서 ‘교직원노동조합’이 아니라, ‘교원노동조합’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전교조는 이름과 달리 교사들만의 노조가 되고 말았다. 전교조 가입이 이뤄지지 못한 교육행정직원은 훗날 공무원노조에 소속되었다. 교사와 직원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지만 굉장히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학교의 주류는 교사고, 직원은 비주류이자 약자이다. 법률상 교사를 우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법률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학교는 철저하게 교사중심, 교장중심이다. 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부분도 교원노조가 기득권을 누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교사운동이 그 동안 주목한 것은 교육제도 개혁, 교원처우 개선, 사회인식 변화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에 발간된 교육잡지는 하나같이 교육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시 유행했던 말 중에 하나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어른들은 몰라요’였는데, 이 말은 곧 전교조의 주장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교육개혁 담론을 주도한 것은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같은 단체였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권이 어느날 신자유주의 교육이데올로기를 들고 혜성처럼 나타났다. 공수가 전환된 것이다. 그날 이후 교사운동은 우왕좌왕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깨지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교사운동은 학교, 교실, 교사에 머물렀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학부모와 교사의 거리가 멀다. 그런데 교사운동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에 대한 관심을 덜 기울였다. 지난 20년 동안 서서히 거리가 멀어진 지금, 상당수의 지역에서 학부모는 교원노조(=전교조)를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불신의 상당수는 보수언론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교원노조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급진적 투쟁’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 문제다.
교사운동에 몸을 담을 시점이었다. 평소처럼 ‘교육운동’이란 용어를 사용하던 내게 한 선배 교사가 “교육운동이 아니라 ‘교육노동운동’이다”고 지적했다. 그 선배 교사는 교육운동은 개량이고, 교육노동운동은 급진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실제로 이른 바 좌파 진영에서는 ‘교육운동’을 시민운동적 교육운동으로, ‘교육노동운동’을 민중운동적 교육운동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좌파 교사운동을 대표하는 의견그룹은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약칭 교찾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교육운동과 교육노동운동이란 용어는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교육운동이 교육을 매개로 한 운동이라면, 교육노동운동은 교사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전교조 운동은 교육노동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교사운동이 교육이란 의제를 갖고 다른 사회운동과 만나기 위해서는 ‘교육노동’으로 한정되지 않는 운동이 요구된다. 물론 그것이 현실적으로 급진적 교사운동을 포기하고, 온건한 개혁을 추구하는 시민운동 성향의 교육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용어의 차이는 교사운동의 분화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90년 중반부터는 교사운동이 교육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두 가지 그룹으로 발전했다. 첫 번째 그룹은 교육운동을 ‘참교육실천운동’으로 바라보는 견해였고, 두 번째 그룹은 교육운동을 사회운동으로 바라보는 그룹이었다. 1980년대 교사운동을 주도한 그룹은 교육운동의 핵심을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잘 가르치는 것’에 동의를 한다고 치더라도 ‘무엇이 잘 가르치는 것이냐’는 물음이 돌아올 것은 자명하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온건한 그룹’으로 분류되는 이들 그룹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이 드러났다. 가장 우경적인 그룹은 ‘참교육실천에 주력해야 하고, 학생을 잘 가르쳐서 학업성취도를 높여야 하며, 입시교육도 잘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교육운동은 교사와 학부모라는 양대 축으로 이뤄져 왔고, 최근 주체운동에서 벗어난 사회운동이 형성되는 양상을 보였다. 애초에 교사운동은 진보적 학부모 운동과 파트너 관계였으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애증관계로 전환되었다. 이즈음 학부모운동은 교육소비자 운동에 경도되면서 교원노조와 학부모단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지역에 뿌리내렸던 사회운동 단체 중 상당수가 붕괴되면서 교원노조는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런 외부 환경의 변화는 급진적인 교사운동 그룹이 ‘교육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교육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긍정하게 만든 조건이 되었다.
이명박 시대의 교사운동의 진로
전교협 결성 이후 약 20년을 맞은 교사운동은 활동가 부족, 노쇠화로 ‘동맥경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교사운동의 중심은 1세대(결성과 함께 참여한 세대)와 1.5세대(비합법 시절에 교원노조에 가입한 세대)이고, 2세대(합법화 세대)는 비중이 작다. 물론 다른 노동자운동에 비해서는 비교적 건강하고, 활동가도 풍부한 편이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교사운동의 실력은 과대포장되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요즘 전교조는 전국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교사운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지회와 분회의 약화가 두드러진다. 요즘은 시군 단위로 조직된 지회에서 지회장 선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 집행부 구성도 어려워지고 있다. 더군다나 전교조의 강점이던 ‘개혁’적 측면도 정부가 신자유주의, 혹은 우익적인 개혁을 표방하면서 이니셔티브를 상실했다.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아 어려움을 겪던 전교조로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이뤄지는 공안탄압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진행된 조직진단에서 전교조가 전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을 닮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일본 노동운동, 사회운동은 전공투 이후 점차 쇠퇴하여 최근에는 노인 집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집회에서 40대 이전 세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전교조가 현재 추세대로 가면 10년 후에는 일교조와 별로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직진단이 나오자 활동가들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교조 주축이 40대 이상이고, 20~30대 조합원이 급격히 줄어들거나 활동가가 부족한 상황을 한 번에 역전시킬 수는 없다. 특히 현재와 같이 조합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완이 불가피하다. 그야말로 전교조 결성 20년내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극우 세력은 전교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름은 ‘뉴라이트’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이들 세력은 ‘반전교조’라는 슬로건을 ‘반민주노총’이나 ‘우향우’보다 명징하게 받아들인다. 뉴라이트 그룹은 ‘반전교조’라는 슬로건 수용 여부를 마치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고백하는 것처럼 바라본다. <시사IN>의 보도에 따르면 뉴라이트 진영은 내부 결속이 비교적 강하고, 재정적으로 탄탄한 전교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뉴라이트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통해 반전교조가 전선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이명박식 교육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전교조를 비롯한 학교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치른 일제고사를 학생들은 ‘명박고사’라고 부르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전국적으로 시험 거부자, 결시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불만은 확실히 축적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불만이 곧바로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계가 지리멸렬하고 있고, 사회단체들은 부정부패 시비로 추락하고 있는 등 대응역량이 눈에 띄게 약화되어 있다. 2008년을 달군 촛불시위는 사회변화 동력으로서는 지속성이 떨어진다.
현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교사운동 내 각 그룹 간의 주장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그룹은 ‘통합 지도부를 건설하자’고 제안하고, 어떤 그룹은 ‘공동투쟁본부로 투쟁을 통해 돌파하자’고 호소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조합원 교육을 강화하고, 교사운동을 사회운동적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주로 선거 국면에 국한되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장들이다. 물론 교사 운동 각 그룹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과연 비정규직 교사의 전교조 가입을 명운을 걸고 추진할 그룹은 없어 보인다. 이 사안을 교사운동의 사활적인 내용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MB 시대를 맞은 교사운동 역시 총체적 난국이라고 생각된다. 합법화 시대에 전교조 조합원이 된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탄압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저들은 거침없이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지리멸렬하다. 지금 다시 브레히트의 시집 『흔들리는 사람에게』를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