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말하지만 할 수록 고민되는 공공성투쟁
나는 현재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공공노조) 정책기획실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태어나서 공공노조에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전국보육노조에서 활동하다가 속해 있던 노조가 산별전환을 하면서 고용이 승계되어 공공노조에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보육노조에서 공공노조로
처음에 전국보육노조에 들어갈 때는 말로만 여성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 보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막상 전국보육노조로 가서 보니, 여성노동자를 조직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노조로 간 남성동지 이야기를 들으니 하나의 사업장을 조직하면 최소 100~200명이 조직되었지만, 어린이집은 많아야 15명 안팎이었고 50%이상이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게다가 보육노조 초기이다 보니 보육교사가 노조 조합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낯설어 하는 분위기였다. 2년 여 사업으로 대부분의 보육교사는 노조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실제 노조가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처음 전국보육노조로 가면서는 노조의 규모가 커지는 조직화뿐만 아니라 보육노조가 ‘돌봄노동의 사회화’에 대해 고민하고, 운동하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터지는 보육의 시장화, 부당해고 등에 대한 대응도 버거운 것이 보육노조의 조직적 상황이었다. 그러다 조직이 채 자리 잡히기도 전에 산별전환을 하면서 보육노조는 아쉽게 해소되었다.
복잡한 조직, 공공노조
공공노조가 어떤 곳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조합원은 주로 어떤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나의 대답은 늘 ‘정말 다양해요’라는 말로 시작된다. 가스공사, 전기안전공사와 같은 공기업,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과 같은 공단,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는 기타 공공기관들부터 시작해서 병원, 학교, 청소와 시설관리를 하는 민간용역업체까지 사업장의 성격도 천차만별이며 조합원이 하는 일이 사무에서 간호, 보육, 청소미화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전에 기업별 노조로 있을 때에는 같은 사업장에서 함께 임단투도 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동질성이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당연히 ‘같은 조합원’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공공노조’에 함께 있다 보니, 서로 더 알려고 하고, 알다보니 서로 함께 하려는 모습도 보게 된다. 복잡한 조직형태가 활동과 사업에도 이어져 하루에도 비정규직투쟁 집회와 법 개악에 대한 기자회견, 토론회, 신규지부 조합원 교육 등이 정신없이 펼쳐진다. 이 글은 하루하루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공공노조의 현재를 바라보고, 과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공노조와 ‘공공성’
공공노조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 진영, 더 나아가 진보진영 내에서 ‘공공성’ 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사실 ‘공공성’을 이야기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공공노조는 가스, 전기, 보건의료, 건강보험, 간병, 보육, 사회복지 등의 공공부문을 포괄하고 또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어 공공성 투쟁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실제 공공노조 내에서 공공성 관련 사업은 공공부문 민영화반대를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현재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전문가나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개선안’을 마련하고, 조합원들은 그것에 대하여 대시민선전전을 하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개선안’이라는 것이 다른 영역에서의 후퇴를 가져오는 경우도 발생한다. 국민연금에 있어서 '기초연금'을 주장하여 '기초노령연금'이 신설되었으나, 기초노령연금으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생계급여를 받고 있던 노인층은 생계급여가 삭감되고, 교통수당과 경로연금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수입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이른바 ‘공공성 쟁취’가 하나의 제도를 중심으로 ‘완결된’ 개선안을 잘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교훈으로 남긴 것이 아닐까. 제도 개선안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은 기업별노조를 지향하기 위하여 산별노조로 전환하였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자신이 속한 영역의 ‘제도’를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데, 그렇다보니 이전과 다름없이 자신이 속한 영역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고, 확장된 사고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성 투쟁을 강조하다 보니, 정세적으로 요구되는 투쟁은 소홀이 다루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다. 올해 한창 촛불투쟁이 진행될 때, 조합원들은 촛불투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의제에 대하여 촛불시민에게 알리자는 계획이 제출되자 이것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은 결합하였다. 자신이 속한 사업장과 관련된 의제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더욱 커지는 양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특별히 사회서비스에 대해
나는 현재 담당하고 있는 게 사회서비스이다 보니, 공공노조가 만들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보육, 간병, 사회복지의 경우에는 독자적으로 노조를 만들기도 쉽지 않고, 함께 공동 활동을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돌봄노동’의 영역에 있는 노동자의 조직화에 대해 공공노조는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이미 조직된, 또 규모가 큰 지부에 먼저 예산과 인력을 투여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돌봄노동 영역의 노동자 조직화에 대해서도 조직할 주체가 있느냐, 그 영역에 얼마나 노동자가 있느냐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반면 어떠한 노동자를 조직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는 여전히 공백이다.
돌봄노동 노동자의 조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제가 (나도 사회서비스에 대한 교육을 할 때 그렇지만...) 돌봄노동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그런데 이 노동자를 조직하여 일정 수준 이상으로 노동조건을 상승시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노동자로서 노동권을 가지는 것이 현재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나, 고용을 안정화하는 것으로 환원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들과 노동권의 실내용이 무엇일지 함께 인식하는 과정이 조직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지배세력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재생산 위기를 관리하고 있고,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던 재생산 노동 중 일부를 시장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은 여성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노동조건으로부터 시작하더라도, 현재의 체제와 구조 안에서는 사회서비스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권리가 결코 쟁취될 수 없다는 것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사회서비스의 시장화에 대한 대응은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적었던 노조, 대표적으로 공공노조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을 분리하여 재생산영역을 사적영역으로 비가시화 시켜왔던 사실을,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재생산노동을 가족 내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담당해 왔던 사실을, 운동사회는 생산영역의 변혁만 사고해왔고 재생산영역의 변혁은 사고하지 못해왔다는 사실을 교육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노조가 성맹목적임을 인식케 했으나,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그 자체로 적대적으로 사고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보편적 운동으로 인식하거나, 여성억압의 구조적인 원인을 사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서비스 시장화에 대한 대응을 노동자운동이 페미니즘적 과제와 만날 수 있는 유의미한 계기로 사고해야 한다.
공공노조, 어디로 가야 할까?
공공노조는 지금 공공성 의제들을 세분화시켜 각각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려고 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공공성 의제들을 그 자체로 완결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 중심을 두면서 오히려 정세인식과 요구받는 투쟁에서 후퇴한다면, 공공노조는 공공(空空)노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의제 속에서 완결된 대안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 대안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별도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도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의제들이 서 있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이다.
특히 현재 금융위기 시기에 공공노조 조합원의 반응이 ‘지금껏 펀드를 얼마를 날렸는데…, 주가 더 떨어지면 안 되는데…’와 ‘주가가 떨어지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라는 것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내년 공공노조의 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노조 내에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아가 공공노조의 과제를 현 시기 운동의 과제 속에서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과의 소통이 각별히 요구된다.
내년이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지며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임금삭감, 물가상승으로 노동자의 고통이 커질 것이다. 공공부문은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축소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좋은 제도 개선안을 국민들에게 알린다고 그것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들과 현시기 공공서비스를 축소하는 정부의 야만성에 대하여 폭로하며, 노동자 민중들과 함께 정부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공공서비스 축소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빈곤층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운동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비정규직을 포괄하기 위한 사회보험의 제도 개선안들, 연대전략들은 빈곤층과 비정규직 당사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기획되고, 요구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결코 빈곤층이나 비정규직과의 연대라 볼 수 없고, 의도는 선하였을지 몰라도 시혜적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확대하지도 못했고, 주체를 형성하는 방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공노조는 공공성의 실내용으로 공공서비스의 저렴한 가격, 안정적인 공급, 수혜 대상의 확대 등을 주로 고민하고 있다. 빈곤운동, 비정규직운동 내에서 공공노조가 고민하는 공공성에 대하여 어떠한 고민이 있는지 함께 논의해야 하며, 투쟁의 공동기획과 공동실천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육노조에서 공공노조로
처음에 전국보육노조에 들어갈 때는 말로만 여성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 보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막상 전국보육노조로 가서 보니, 여성노동자를 조직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노조로 간 남성동지 이야기를 들으니 하나의 사업장을 조직하면 최소 100~200명이 조직되었지만, 어린이집은 많아야 15명 안팎이었고 50%이상이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게다가 보육노조 초기이다 보니 보육교사가 노조 조합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낯설어 하는 분위기였다. 2년 여 사업으로 대부분의 보육교사는 노조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실제 노조가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처음 전국보육노조로 가면서는 노조의 규모가 커지는 조직화뿐만 아니라 보육노조가 ‘돌봄노동의 사회화’에 대해 고민하고, 운동하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터지는 보육의 시장화, 부당해고 등에 대한 대응도 버거운 것이 보육노조의 조직적 상황이었다. 그러다 조직이 채 자리 잡히기도 전에 산별전환을 하면서 보육노조는 아쉽게 해소되었다.
복잡한 조직, 공공노조
공공노조가 어떤 곳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조합원은 주로 어떤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나의 대답은 늘 ‘정말 다양해요’라는 말로 시작된다. 가스공사, 전기안전공사와 같은 공기업,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과 같은 공단,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는 기타 공공기관들부터 시작해서 병원, 학교, 청소와 시설관리를 하는 민간용역업체까지 사업장의 성격도 천차만별이며 조합원이 하는 일이 사무에서 간호, 보육, 청소미화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전에 기업별 노조로 있을 때에는 같은 사업장에서 함께 임단투도 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동질성이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당연히 ‘같은 조합원’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공공노조’에 함께 있다 보니, 서로 더 알려고 하고, 알다보니 서로 함께 하려는 모습도 보게 된다. 복잡한 조직형태가 활동과 사업에도 이어져 하루에도 비정규직투쟁 집회와 법 개악에 대한 기자회견, 토론회, 신규지부 조합원 교육 등이 정신없이 펼쳐진다. 이 글은 하루하루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공공노조의 현재를 바라보고, 과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공노조와 ‘공공성’
공공노조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 진영, 더 나아가 진보진영 내에서 ‘공공성’ 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사실 ‘공공성’을 이야기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공공노조는 가스, 전기, 보건의료, 건강보험, 간병, 보육, 사회복지 등의 공공부문을 포괄하고 또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어 공공성 투쟁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실제 공공노조 내에서 공공성 관련 사업은 공공부문 민영화반대를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현재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전문가나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개선안’을 마련하고, 조합원들은 그것에 대하여 대시민선전전을 하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개선안’이라는 것이 다른 영역에서의 후퇴를 가져오는 경우도 발생한다. 국민연금에 있어서 '기초연금'을 주장하여 '기초노령연금'이 신설되었으나, 기초노령연금으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생계급여를 받고 있던 노인층은 생계급여가 삭감되고, 교통수당과 경로연금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수입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이른바 ‘공공성 쟁취’가 하나의 제도를 중심으로 ‘완결된’ 개선안을 잘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교훈으로 남긴 것이 아닐까. 제도 개선안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은 기업별노조를 지향하기 위하여 산별노조로 전환하였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자신이 속한 영역의 ‘제도’를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데, 그렇다보니 이전과 다름없이 자신이 속한 영역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고, 확장된 사고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성 투쟁을 강조하다 보니, 정세적으로 요구되는 투쟁은 소홀이 다루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다. 올해 한창 촛불투쟁이 진행될 때, 조합원들은 촛불투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의제에 대하여 촛불시민에게 알리자는 계획이 제출되자 이것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은 결합하였다. 자신이 속한 사업장과 관련된 의제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더욱 커지는 양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특별히 사회서비스에 대해
나는 현재 담당하고 있는 게 사회서비스이다 보니, 공공노조가 만들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보육, 간병, 사회복지의 경우에는 독자적으로 노조를 만들기도 쉽지 않고, 함께 공동 활동을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돌봄노동’의 영역에 있는 노동자의 조직화에 대해 공공노조는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이미 조직된, 또 규모가 큰 지부에 먼저 예산과 인력을 투여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돌봄노동 영역의 노동자 조직화에 대해서도 조직할 주체가 있느냐, 그 영역에 얼마나 노동자가 있느냐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반면 어떠한 노동자를 조직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는 여전히 공백이다.
돌봄노동 노동자의 조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제가 (나도 사회서비스에 대한 교육을 할 때 그렇지만...) 돌봄노동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그런데 이 노동자를 조직하여 일정 수준 이상으로 노동조건을 상승시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노동자로서 노동권을 가지는 것이 현재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나, 고용을 안정화하는 것으로 환원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들과 노동권의 실내용이 무엇일지 함께 인식하는 과정이 조직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지배세력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재생산 위기를 관리하고 있고,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던 재생산 노동 중 일부를 시장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은 여성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노동조건으로부터 시작하더라도, 현재의 체제와 구조 안에서는 사회서비스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권리가 결코 쟁취될 수 없다는 것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사회서비스의 시장화에 대한 대응은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적었던 노조, 대표적으로 공공노조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을 분리하여 재생산영역을 사적영역으로 비가시화 시켜왔던 사실을,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재생산노동을 가족 내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담당해 왔던 사실을, 운동사회는 생산영역의 변혁만 사고해왔고 재생산영역의 변혁은 사고하지 못해왔다는 사실을 교육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노조가 성맹목적임을 인식케 했으나,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그 자체로 적대적으로 사고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보편적 운동으로 인식하거나, 여성억압의 구조적인 원인을 사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서비스 시장화에 대한 대응을 노동자운동이 페미니즘적 과제와 만날 수 있는 유의미한 계기로 사고해야 한다.
공공노조, 어디로 가야 할까?
공공노조는 지금 공공성 의제들을 세분화시켜 각각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려고 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공공성 의제들을 그 자체로 완결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 중심을 두면서 오히려 정세인식과 요구받는 투쟁에서 후퇴한다면, 공공노조는 공공(空空)노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의제 속에서 완결된 대안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 대안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별도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도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의제들이 서 있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이다.
특히 현재 금융위기 시기에 공공노조 조합원의 반응이 ‘지금껏 펀드를 얼마를 날렸는데…, 주가 더 떨어지면 안 되는데…’와 ‘주가가 떨어지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라는 것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내년 공공노조의 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노조 내에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아가 공공노조의 과제를 현 시기 운동의 과제 속에서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과의 소통이 각별히 요구된다.
내년이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지며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임금삭감, 물가상승으로 노동자의 고통이 커질 것이다. 공공부문은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축소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좋은 제도 개선안을 국민들에게 알린다고 그것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들과 현시기 공공서비스를 축소하는 정부의 야만성에 대하여 폭로하며, 노동자 민중들과 함께 정부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실제 공공서비스 축소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빈곤층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운동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비정규직을 포괄하기 위한 사회보험의 제도 개선안들, 연대전략들은 빈곤층과 비정규직 당사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기획되고, 요구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결코 빈곤층이나 비정규직과의 연대라 볼 수 없고, 의도는 선하였을지 몰라도 시혜적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확대하지도 못했고, 주체를 형성하는 방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공노조는 공공성의 실내용으로 공공서비스의 저렴한 가격, 안정적인 공급, 수혜 대상의 확대 등을 주로 고민하고 있다. 빈곤운동, 비정규직운동 내에서 공공노조가 고민하는 공공성에 대하여 어떠한 고민이 있는지 함께 논의해야 하며, 투쟁의 공동기획과 공동실천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