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 맞선 사회운동의 모색
최근 이명박 정부가 지배세력의 이익 방어 전략을 극대화한다는 면에서 1% 부자정부, 친재벌 정부라고 칭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좋았던 시절’을 떠나보낸 이들이 과거 10년간의 정권을 떠올리며 사용하는 표현이라면 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10년의 세월 동안 정부 정책으로 인해 고통에 처한 수많은 이들의 현실과 이에 맞선 반빈곤운동이 그 증거다. 이명박 정부가 실행하는 사회정책의 대부분은 IMF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전 정책들에 밑바탕을 두고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전개과정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 - 선별주의의 강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강제하는 대표적 국제기구로 알려진 IMF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에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권고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는 한국 복지의 낙후성을 역설한다는 논리에 따라 복지에 있어서 만큼은 ‘위기가 기회’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본격화해야 하는 위기관리 정부였다는 점에서 생산적 복지의 관리주의적 성격은 명확했다. 생산적 복지는 급증한 빈곤과 실업에 대한 대응이라는 일차적 과제, 즉 죽지 않을 만큼의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정책개혁의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를 구축하고 동시에 정책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복지개혁의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제1차 사회보장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계획안은 가족 해체, 대량실업, 소득분배의 악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 기조로 삼고, ‘국민복지 기본선’의 보장과 ‘생산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사회보험 적용확대를 통해 1차적 사회안전망을 완비하며, 이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에 대해서는 공공부조를 확대하는 방향을 지향하되, 생산적 복지의 이념에 따라 자활사업 등을 통해 노동 능력자에 대한 노동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정책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통합, 고용보험 확대적용, 국민연금 확대 등 사회보험의 개혁이 추진되었고,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전 국민의 사회보험화 실현’이라는 구호는 노동의 불안정화 과정에서 허상임이 드러났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기초법은 대량실업과 빈곤 확산 상황에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최저생계비)을 정해 놓고 연령에 관계없이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라도 수급자가 된다는 한국사회 복지제도의 획기적인 전환으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기초법은 전 국민 대비 수급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3% 수준으로 포괄적인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이는 기초법 제도가 안고 있는 엄격한 수급 조항과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 탓이다. 최저생계비를 바닥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면서(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점점 낮아져 2007년 기준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31.1%까지 떨어졌다.) 포괄범위를 줄이고 그렇게 해서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은 엄격한 부양의무자기준과 재산소득기준으로 거른 후 일을 해서 근로소득이 발생하면 그만큼을 제하고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보충급여의 원칙)이다. 한마디로 더욱 더 빈곤해질 것, 더욱 더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나아갈 것을 강요하는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동시에 빈곤층의 일자리 ‘운동’을 자임한 자활사업을 기초법 내로 제도화하면서 조건부수급조항으로 두었는데, 이는 빈곤과 실업을 최소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복지와 노동을 연계해 가난한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정책으로 기능해왔다. 김대중 정부 말기, 다소 완화된 실업률과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빈곤율이라는 모순적 상황은 당시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효과와 사회정책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불안정화 심화에 따른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 혹은 차상위 계층의 빈곤문제가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의 명분으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을 구호로 내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와 ‘사회투자국가론’의 기만성
이 시점에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원의 문제에 중심을 두었다. 지속 가능한 위기관리를 위한 성장동력의 창출, 김대중 정부 당시에 더욱 심화한 사회적 배제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통치의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 여기서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는 배제된 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을 재구축하기 위해 NGO와 같은 민간조직들을 동원하고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달벨트 또는 매개자로 재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참여복지라는 타이틀로 제시되는 ‘참여복지 공동체’, (생산적 복지에 비해 상대적 의미에서의) ‘보편적 복지’의 제공은 노무현 정부에게 별 대안이 없는 선택지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출산 고령화 해소’에 역점을 둔 사회정책을 펼쳤다. 노무현 정부 집권 기간 동안 추진된 일련의 복지개혁, 빈곤관리 정책들이 대부분 사회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수렴된 바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국가 위기의 원인이자 동시에 그의 해결을 위한 책임을 가지는 투자의 대상으로 규정하는(대다수 NGO들이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확대된 형태의 사회통합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 하에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투자국가론’를 주창하고 이를 위한 실현과제를 제시하였다.
사회투자국가는 영국 블레어 노동당 정부의 핵심 정책을 생산한 앤서니 기든스가 1998년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소개한 개념이다. 이는 복지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빈곤 감축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우익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과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론에 기반을 둔 사회정책 개혁 담론이다. 1970~80년대 이르러 누적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배세력은 금융 주도의 경제 재편과 고용신축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동하였고, 이로 인한 만성적 빈곤이 확산되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이를 ‘새로운 위험’으로 규정하고, 1> 여성노동력의 증대와 고용불안정의 증가 2> 여성단독가구의 증가로 인한 빈곤위험 증가, 아동 빈곤 증가 3> 고령화로 인한 연금재정 악화 4> 공적연금, 의료보험의 민영화 등을 그 특징적 양상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최선의 대응 방향으로 강조된 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사회보장의 지속과 재정적 부담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담론 개발과 개인적 차원에서 복지수혜자들의 복지의존성에 대한 공격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시장경제가 사회적 번영의 필수적 여건이라고 전제한다. 즉 시장의 역동성이 보장되어야 장기적인 부의 재분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며, 이러한 투자가 경제에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 지식기반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여긴 것이다. 즉, 결과의 평등(소득의 재분배)이 아닌 기회의 평등(사회통합)을 강조하고, 권리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연계시키는 것이 사회투자국가 담론의 기반이다. 영국의 경우 사회투자국가론에 따라 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집중해 이를 예방적 사회정책이라 칭했고, 여성 장애인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를 통한 복지의존성 약화를 강조하는 노동연계복지 정책을 본격화했다.
사회투자국가 담론에 기반을 둔 정책은 여성 및 중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 출산율 제고를 통한 미래의 노동력 확충,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강화를 통한 노동의 질 제고, 사회적 보험 기능 강화를 통한 위험 담지적 혁신활동 제고, 경쟁촉진적/성장친화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수용역량 제고, 사회통합 및 사회자본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안정적 성장을 지지, 사회투자 중 사회서비스업 활성화 등을 그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1) 사회투자국가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회투자국가 ‘복지국가’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실제로 이는 탈규제, 민영화,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 신자유주의 핵심 의제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논리다. 오히려 사회투자전략의 필요성에서 강조되는 ‘새로운 위험’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전략의 결과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유연화의 지속적 확대로 인한 불안정성과 노동조건의 악화에 대한 근본적 대안 없이 단지 교육훈련을 통해 제조업에 종사하는 반숙련 노동자, 여성, 장애인에게 IT 기술 등을 교육 훈련시키는 것을 통해서는 현재의 사회적인 배제와 불평등은 해소될 수 없으며 성과는 일시적이다. 사회투자전략은 노동시장정책을 통해서 실현되는 근로연계복지가 주요한 프로그램으로 자활정책과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을 자연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이에 대한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비전2030: 선진복지한국을 위한 비전과 전략’). 이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은 여성 노동력 활용을 통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성취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정확히 부합했다. 여성 저임금노동자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확대, 노동시장의 성별분리, 시간제 노동확대, 민영화 증대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전 2030뿐만 아니라 새로마지플랜, 새싹플랜, 가족정책기본 계획 등을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놓고 있는 가족여성정책의 경우 오히려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 성별분업구조의 타파와 같은 조치는 크게 미흡한 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여성의 빈곤화 경향을 부추기는 시장화 전략이 주를 이룬다. 그 대표 사례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전략이다.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과 가족, 개인책임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IMF 이후 양적으로 성장하긴 하였지만 이와 같은 기본적인 복지체제의 변화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복지의 부재라는 조건 하에서 투자 담론의 제기는 결국 ‘시장’을 강화시켜주는, 기존 잔여적 선별적 복지체제의 유지와 존속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유연안정성’이란 개념의 도입은 매우 위험한데 이는 불안정노동을 양산할 뿐 아니라, 노동빈곤층이 확산되어 사회보험제도의 적용률을 낮추고 공공부조 대상자를 늘려 선별적 복지정책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들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상호보완한다고 강조하지만, 상호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경제정책에 종속된 방향 하에서 사회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성장동력 확충, 능동적 세계화, 민간시장 활성화를 위한 수단과 정책으로서 사회정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 위기’ 논의가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된 ‘복지의 예방적 접근’이라는 말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아래서 개별 국가의 복지제도가 처한 딜레마를 잘 표현하는 것이다. 즉, 복지제도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한 전제인 안정적인 노동시장에서의 (완전)고용이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하며, 현재와 같은 만성적 고실업, 불안정 노동의 확대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투자국가는 정책적 내용의 측면보다도 사회양극화 해소-사회통합 담론으로 대표되는 무수한 담론적 역할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연한 실업, 빈곤 등의 사회위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는 임금, 고용, 소득의 문제를 상대화하고 근로연계복지식 처방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이러한 조치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화에 순응하도록 하는 한편, 사후보완 조치들에 대한 국가의 의존을 더욱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대중들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도록 강제하고 반동적인 사회 이데올로기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 능동적 복지 비판
이명박 정부는 능동적 복지2) 를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핵심 추진방향으로 1)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평생 복지 2) 개인별 특성에 맞는 예방 통합 맞춤형 복지 3) 일자리와 균등한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일하는 복지 4) 효율적 전달체계를 통한 국민 체감형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일자리 기회 배려를 위한 능동적 복지 실천계획’. 2008. 보건복지가족부). 이는 기존 생산적 복지 담론과 궤를 같이 하는 가운데 수요자의 욕구를 경쟁적 시장 내에서의 선택권으로 해석하는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은 복지 분야의 시장형성을 위한 규제완화 등 제도 개선, 정비와 시장 규모 형성을 위한 초기 투자로 한정된다. 이는 개인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복지의 기본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는데,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복지의 다양한 시장을 보장하고 노동연계복지정책을 확대하여 최소한의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보장해줌으로써 다양한 복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러한 사회정책의 결합은 민중들에게 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노동공급에 대한 정책은 노동시장의 낮은 임금을 전제로 이루어지는데,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시장 안으로 사람들을 밀어넣기 위한 당근과 채찍이 사용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급여제한이라는 채찍을 사용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EITC(근로장려세제)와 같은 당근을 부여한다. 또한 부족한 가계 소득을 메우기 위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저임금 불안정노동)를 독려하기 위한 가사노동과 돌봄에 관한 일정한 국가정책의 확대를 시행하게 된다. 또한 지금은 빈곤하더라도 자식세대를 빈곤하지 않게 하겠다며 아동에 대한 교육투자를 강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한국 사회복지는 그 기본틀은 유지하되, ‘시장화’, ‘민영화’ 전략과 동시에 ‘노동빈곤층’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체계적으로 변모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연금 개편,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내걸고 사회보험 뒤흔들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기본틀까지 와해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의 기본틀을 파괴할 경우 발생할 사회적인 폐해를 정권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필연적인 요소로 전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전망을 공유하고 있는 자유주의-보수우익 정치세력 양자 모두 정도의 차이뿐 민중의 삶의 권리를 보편주의와 평등이라는 가치관에 입각해 보장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만성화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소득층 지원 대책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한시적인 선전용 정책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 제도와 체제 내에서 기존의 제도를 고수, 강화하라는 요구는 ‘국가’를 탈계급적인 공적 공간으로 오해하는 경우이거나 ‘시장’의 창궐에 대한 도덕적, 사회윤리적 비판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주체’가 어떠한 ‘권리’를 요구하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복지 시장화 전략에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 전반에서 민중들이 어떠한 고통에 처하고 있는가를 폭로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특히 무권리의 상태에 내몰린 저임금 비정규노동자의 상태, 저임금 불안정노동과 가족 돌봄의 책임을 이중적으로 떠맡고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빈곤운동의 출발점과 모색
반빈곤운동의 필요성: 주체화와 연대 확장
한국의 반빈곤운동은 80년대 도시빈민운동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였고 87년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시빈민운동은 한편으로는 주민운동이나 공동체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점상이나 철거민 운동과 같은 특정한 이해에 기반한 대중조직운동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 속에서 전자의 다수는 서비스 NGO화의 길을 걸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고, 후자의 경우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며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사회운동은 지배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생성되는 각종 사회정책담론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배세력이 수행하는 빈곤관리정책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각각의 사회정책에 대한 대응을 파편적으로 인식하는 연대의 부재라는 조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현실로 반빈곤운동이 자율적인 운동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의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을 ‘극복’하고 대안적 가치와 연대를 발견하기 위한 운동의 모색이 필요하다.
2004년 발족한 빈곤사회연대는 그러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운동의 공간을 자임하였다. 2001년 12월 명동성당에서 최옥란열사와 노동사회단체들이 전개한 ‘민중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 이후 “기본생활권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를 위한 연석회의”(기초법연석회의)라는 연대체가 결성되었다. 기초법연석회의 활동을 기반으로 부문과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빈곤문제의 전반적인 사안과 근본적인 원인에 대응하고자 빈곤사회연대(‘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에서 2008년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로 개명)가 발족하였다.3) 빈곤사회연대는 현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사회운동 단체와 전국빈민연합, 노숙인당사자모임, 자립생활센터, 주거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빈민, 지역, 부문 조직 등 39개 단체가 결합되어 있는 연대체로서, 대중적 사업의 기획과 확대와 연대체로서 역할을 확대해오면서 활동가 형성과 대중 조직화를 표방하고 있다. 2007년을 거치면서 반빈곤운동의 기본방향과 관점, 의제를 정리하는 토론과 활동을 통해 빈곤사회연대는 반빈곤운동의 기본 방향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핵심슬로건으로 1>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소득의 확보 2> 성별, 인종, 연령, 장애유무에 따른 위계와 분할을 넘어선 확장된 노동권의 실현 3> 재생산 노동의 사회와, 공공서비스 확보가 포함된 사회서비스 확보라는 과제가 결합된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세계빈곤철폐의 날에 10대 과제를 중심으로 반빈곤운동의 과제를 제출하였다.4)
현재 빈곤사회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반빈곤운동은 그 의제와 연대 폭을 넓혀가고 있으나, 해결해야 하는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빈곤, 복지 정책과 정세적 사안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한 안정적인 정책생산과 활동가들의 토론과 교육에 있어서 발생하는 취약함. 둘째, 폐쇄적인 성격이 강하고 실리주의에 기반을 둔 실천과 조직화 형태에 머물고 있는 도시빈민대중운동을 재조직화해야 하는 과제. 셋째, 사회운동 내에서의 지위와 역할의 모호함과 과소대표성. 따라서 반빈곤운동은 연대운동의 틀을 취하며 그 영역과 의제를 넓혀나가는 동시에 핵심 운동조직들이 반빈곤운동의 의제를 흡수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도시빈민대중조직의 운동에 개입하여 반빈곤운동의 정치적 방향을 형성해내는 과정과 반빈곤운동을 실제로 추동할 대중주체, 활동가들의 직접 조직화가 빈곤사회연대 스스로의 과제다.
지금의 현실과 향후 과제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확대는 금융 소득자에게 거대한 부가 집중한 결과이다. 자본의 금융화로 인한 부의 양극화, 고용의 감소, 비용절감을 위한 불안정 노동의 심화가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원인이다. 또한 다층적으로 구성된 복지정책들은 빈곤인구에 대한 사후적, 소극적 관리를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산업예비군을 관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빈곤과 실업에 맞선 사회운동은 빈곤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빈곤의 문제는 특정 ‘현상’이나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확산되고 일상화되는 빈곤에 대항하는 반빈곤운동의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연대가 요구된다. 이는 기존의 정규직 중심(이 자체에 가치판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운동 형성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의 기업적 실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자기 혁신과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의 과정, 그리고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관리통제전략 하에 저임금비정규 인력으로 활용되거나 여전히 재생산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 여성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노동과 제반 삶의 권리를 능력주의와 논리에 송두리째 박탈당해온 장애인 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등 새로운 사회운동을 형성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말한다.
빈곤을 새롭게 정의하고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에서 찾기 위한 출발점은 우선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를 위해서는 빈곤을 통계수치 뒤로 감추고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은폐하는 지배세력의 빈곤에 대한 규정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빈곤선이자 복지수혜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의 최저생계비이다. 그러나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최저생계비 비중은 1999년 38.2%에서 2007년 31.1%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즉 실제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금액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사회의 빈곤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통해 빈곤선을 끌어올려 빈곤에 대한 인식과 출발점을 전환시켜내야 한다. 또한 그를 통해 부의 편중과 소득 불평등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기본적 요구다.
기본생활권을 사회적 필요에 근거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적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성별, 인종, 국적, 장애, 나이 등의 차이와 관계없이 인간 개개인이 누리고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에 맞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일차적인 과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다.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빈민운동 등 부문영역별로 분리 형성된 운동들이 상호 침투하는 과정이 없다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의 권리에 대한 이해와 토론이 어렵다. 물론 각각의 운동 내에서 발생하는 내적 차이에 따른 분할선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폭넓은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저항주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노동자운동과의 결합과 지역운동의 형성이 지금 반빈곤운동에 던져진 과제이다.
올해 빈곤사회연대 등이 추진했던 ‘적정생계비-임금 실현을 위한 실태조사’ 사업을 통해 드러났듯이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대변해 줄 수 없다. 그리고 고착화된 침전층으로 존재하는 빈곤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만연해지는 빈곤문제에 도전하는 출발점은 정부의 빈곤관리정책으로 고통 받는 주체들의 목소리다. 사회진보연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재생산의 권리)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성찰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 진전을 위한 하나의 유력한 계기일 것이다.
1) 한국에서의 사회투자국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동 청소년 정책으로 아동발달계좌, 저소득가정 아동지원, 이주민 2세 포용정책, 방과후 교육활성화 △근로세대정책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내실화, 평생학습체제 구축, 이주노동자정책, 학자금 융자제도 활성화, 양성평등에 입각한 모성보호, 예방적 건강서비스 △노인정책으로 장기요양제도 구축, 기초노령연금도입, 고령자직업훈련 및 고용촉진, 공적연금개혁 등이다.본문으로
2) ‘능동적(active) 복지’라는 표현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경제사회발전위원회에서 쓰기 시작한 것으로 기존의 복지국가 사회정책이 노동의욕을 저해하는 측면들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규범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능동적 복지는 공공부조, 실업급여, 상병수당, 조기 퇴직 수당 등의 소득보장정책이 노동의 동기를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수동적(passive) 정책이라고 하고 이런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 속에서 제기되었다. 본문으로
3) 출범 당시 빈곤사회연대(준)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첫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 둘째, 기초생활보장 취지에 맞게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라. 셋째, 주택의 투기화를 막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 주거를 보장하라. 넷째, 영유아 보육의 공공화, 의료급여 본인부담상한제, 노인 무료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확대하라. 다섯째, 세제, 재정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사회복지재원을 대폭 확대하라.본문으로
4)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 10대 요구>는 다음과 같다. • 기만적인 기초법 개정 반대! 기본생활권 보장하라! • 최저생계비 현실화하고 상대적 빈곤선 즉각 도입하라! • 빈곤층 부담 가중 의료급여 개악 철회하라! •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 노동권을 보장하라! • 물 산업화, 사유화를 중단하라! 빈곤층에게 물, 전력 등 필수서비스 무상 제공을! • 최저임금 현실화하고 생활임금 보장하라! • 비정규악법 철회하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에 대한 폭력적 관리통제정책 철회하라! • 가진 자만을 위한 개발정책 중단하고 주거권 보장을 위한 사회주택정책 실시하라! • 살인적인 고금리 철폐하고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라! 본문으로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전개과정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 - 선별주의의 강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강제하는 대표적 국제기구로 알려진 IMF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에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권고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는 한국 복지의 낙후성을 역설한다는 논리에 따라 복지에 있어서 만큼은 ‘위기가 기회’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본격화해야 하는 위기관리 정부였다는 점에서 생산적 복지의 관리주의적 성격은 명확했다. 생산적 복지는 급증한 빈곤과 실업에 대한 대응이라는 일차적 과제, 즉 죽지 않을 만큼의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정책개혁의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를 구축하고 동시에 정책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복지개혁의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제1차 사회보장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계획안은 가족 해체, 대량실업, 소득분배의 악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 기조로 삼고, ‘국민복지 기본선’의 보장과 ‘생산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사회보험 적용확대를 통해 1차적 사회안전망을 완비하며, 이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에 대해서는 공공부조를 확대하는 방향을 지향하되, 생산적 복지의 이념에 따라 자활사업 등을 통해 노동 능력자에 대한 노동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정책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통합, 고용보험 확대적용, 국민연금 확대 등 사회보험의 개혁이 추진되었고,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전 국민의 사회보험화 실현’이라는 구호는 노동의 불안정화 과정에서 허상임이 드러났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기초법은 대량실업과 빈곤 확산 상황에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최저생계비)을 정해 놓고 연령에 관계없이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라도 수급자가 된다는 한국사회 복지제도의 획기적인 전환으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기초법은 전 국민 대비 수급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3% 수준으로 포괄적인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이는 기초법 제도가 안고 있는 엄격한 수급 조항과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 탓이다. 최저생계비를 바닥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면서(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점점 낮아져 2007년 기준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31.1%까지 떨어졌다.) 포괄범위를 줄이고 그렇게 해서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은 엄격한 부양의무자기준과 재산소득기준으로 거른 후 일을 해서 근로소득이 발생하면 그만큼을 제하고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보충급여의 원칙)이다. 한마디로 더욱 더 빈곤해질 것, 더욱 더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나아갈 것을 강요하는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동시에 빈곤층의 일자리 ‘운동’을 자임한 자활사업을 기초법 내로 제도화하면서 조건부수급조항으로 두었는데, 이는 빈곤과 실업을 최소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복지와 노동을 연계해 가난한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정책으로 기능해왔다. 김대중 정부 말기, 다소 완화된 실업률과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빈곤율이라는 모순적 상황은 당시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효과와 사회정책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불안정화 심화에 따른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 혹은 차상위 계층의 빈곤문제가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의 명분으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을 구호로 내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와 ‘사회투자국가론’의 기만성
이 시점에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원의 문제에 중심을 두었다. 지속 가능한 위기관리를 위한 성장동력의 창출, 김대중 정부 당시에 더욱 심화한 사회적 배제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통치의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 여기서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는 배제된 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을 재구축하기 위해 NGO와 같은 민간조직들을 동원하고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달벨트 또는 매개자로 재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참여복지라는 타이틀로 제시되는 ‘참여복지 공동체’, (생산적 복지에 비해 상대적 의미에서의) ‘보편적 복지’의 제공은 노무현 정부에게 별 대안이 없는 선택지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출산 고령화 해소’에 역점을 둔 사회정책을 펼쳤다. 노무현 정부 집권 기간 동안 추진된 일련의 복지개혁, 빈곤관리 정책들이 대부분 사회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수렴된 바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국가 위기의 원인이자 동시에 그의 해결을 위한 책임을 가지는 투자의 대상으로 규정하는(대다수 NGO들이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확대된 형태의 사회통합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 하에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투자국가론’를 주창하고 이를 위한 실현과제를 제시하였다.
사회투자국가는 영국 블레어 노동당 정부의 핵심 정책을 생산한 앤서니 기든스가 1998년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소개한 개념이다. 이는 복지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빈곤 감축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우익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과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론에 기반을 둔 사회정책 개혁 담론이다. 1970~80년대 이르러 누적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배세력은 금융 주도의 경제 재편과 고용신축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동하였고, 이로 인한 만성적 빈곤이 확산되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이를 ‘새로운 위험’으로 규정하고, 1> 여성노동력의 증대와 고용불안정의 증가 2> 여성단독가구의 증가로 인한 빈곤위험 증가, 아동 빈곤 증가 3> 고령화로 인한 연금재정 악화 4> 공적연금, 의료보험의 민영화 등을 그 특징적 양상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최선의 대응 방향으로 강조된 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사회보장의 지속과 재정적 부담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담론 개발과 개인적 차원에서 복지수혜자들의 복지의존성에 대한 공격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시장경제가 사회적 번영의 필수적 여건이라고 전제한다. 즉 시장의 역동성이 보장되어야 장기적인 부의 재분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며, 이러한 투자가 경제에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 지식기반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여긴 것이다. 즉, 결과의 평등(소득의 재분배)이 아닌 기회의 평등(사회통합)을 강조하고, 권리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연계시키는 것이 사회투자국가 담론의 기반이다. 영국의 경우 사회투자국가론에 따라 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집중해 이를 예방적 사회정책이라 칭했고, 여성 장애인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를 통한 복지의존성 약화를 강조하는 노동연계복지 정책을 본격화했다.
사회투자국가 담론에 기반을 둔 정책은 여성 및 중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 출산율 제고를 통한 미래의 노동력 확충,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강화를 통한 노동의 질 제고, 사회적 보험 기능 강화를 통한 위험 담지적 혁신활동 제고, 경쟁촉진적/성장친화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수용역량 제고, 사회통합 및 사회자본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안정적 성장을 지지, 사회투자 중 사회서비스업 활성화 등을 그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1) 사회투자국가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회투자국가 ‘복지국가’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실제로 이는 탈규제, 민영화,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 신자유주의 핵심 의제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논리다. 오히려 사회투자전략의 필요성에서 강조되는 ‘새로운 위험’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전략의 결과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유연화의 지속적 확대로 인한 불안정성과 노동조건의 악화에 대한 근본적 대안 없이 단지 교육훈련을 통해 제조업에 종사하는 반숙련 노동자, 여성, 장애인에게 IT 기술 등을 교육 훈련시키는 것을 통해서는 현재의 사회적인 배제와 불평등은 해소될 수 없으며 성과는 일시적이다. 사회투자전략은 노동시장정책을 통해서 실현되는 근로연계복지가 주요한 프로그램으로 자활정책과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을 자연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이에 대한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비전2030: 선진복지한국을 위한 비전과 전략’). 이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은 여성 노동력 활용을 통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성취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정확히 부합했다. 여성 저임금노동자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확대, 노동시장의 성별분리, 시간제 노동확대, 민영화 증대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전 2030뿐만 아니라 새로마지플랜, 새싹플랜, 가족정책기본 계획 등을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놓고 있는 가족여성정책의 경우 오히려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 성별분업구조의 타파와 같은 조치는 크게 미흡한 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여성의 빈곤화 경향을 부추기는 시장화 전략이 주를 이룬다. 그 대표 사례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전략이다.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과 가족, 개인책임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IMF 이후 양적으로 성장하긴 하였지만 이와 같은 기본적인 복지체제의 변화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복지의 부재라는 조건 하에서 투자 담론의 제기는 결국 ‘시장’을 강화시켜주는, 기존 잔여적 선별적 복지체제의 유지와 존속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유연안정성’이란 개념의 도입은 매우 위험한데 이는 불안정노동을 양산할 뿐 아니라, 노동빈곤층이 확산되어 사회보험제도의 적용률을 낮추고 공공부조 대상자를 늘려 선별적 복지정책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들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상호보완한다고 강조하지만, 상호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경제정책에 종속된 방향 하에서 사회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성장동력 확충, 능동적 세계화, 민간시장 활성화를 위한 수단과 정책으로서 사회정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 위기’ 논의가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된 ‘복지의 예방적 접근’이라는 말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아래서 개별 국가의 복지제도가 처한 딜레마를 잘 표현하는 것이다. 즉, 복지제도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한 전제인 안정적인 노동시장에서의 (완전)고용이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하며, 현재와 같은 만성적 고실업, 불안정 노동의 확대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투자국가는 정책적 내용의 측면보다도 사회양극화 해소-사회통합 담론으로 대표되는 무수한 담론적 역할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연한 실업, 빈곤 등의 사회위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는 임금, 고용, 소득의 문제를 상대화하고 근로연계복지식 처방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이러한 조치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화에 순응하도록 하는 한편, 사후보완 조치들에 대한 국가의 의존을 더욱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대중들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도록 강제하고 반동적인 사회 이데올로기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 능동적 복지 비판
이명박 정부는 능동적 복지2) 를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핵심 추진방향으로 1)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평생 복지 2) 개인별 특성에 맞는 예방 통합 맞춤형 복지 3) 일자리와 균등한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일하는 복지 4) 효율적 전달체계를 통한 국민 체감형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일자리 기회 배려를 위한 능동적 복지 실천계획’. 2008. 보건복지가족부). 이는 기존 생산적 복지 담론과 궤를 같이 하는 가운데 수요자의 욕구를 경쟁적 시장 내에서의 선택권으로 해석하는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은 복지 분야의 시장형성을 위한 규제완화 등 제도 개선, 정비와 시장 규모 형성을 위한 초기 투자로 한정된다. 이는 개인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복지의 기본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는데,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복지의 다양한 시장을 보장하고 노동연계복지정책을 확대하여 최소한의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보장해줌으로써 다양한 복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러한 사회정책의 결합은 민중들에게 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노동공급에 대한 정책은 노동시장의 낮은 임금을 전제로 이루어지는데,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시장 안으로 사람들을 밀어넣기 위한 당근과 채찍이 사용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급여제한이라는 채찍을 사용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EITC(근로장려세제)와 같은 당근을 부여한다. 또한 부족한 가계 소득을 메우기 위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저임금 불안정노동)를 독려하기 위한 가사노동과 돌봄에 관한 일정한 국가정책의 확대를 시행하게 된다. 또한 지금은 빈곤하더라도 자식세대를 빈곤하지 않게 하겠다며 아동에 대한 교육투자를 강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한국 사회복지는 그 기본틀은 유지하되, ‘시장화’, ‘민영화’ 전략과 동시에 ‘노동빈곤층’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체계적으로 변모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연금 개편,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내걸고 사회보험 뒤흔들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기본틀까지 와해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의 기본틀을 파괴할 경우 발생할 사회적인 폐해를 정권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필연적인 요소로 전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전망을 공유하고 있는 자유주의-보수우익 정치세력 양자 모두 정도의 차이뿐 민중의 삶의 권리를 보편주의와 평등이라는 가치관에 입각해 보장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만성화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소득층 지원 대책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한시적인 선전용 정책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 제도와 체제 내에서 기존의 제도를 고수, 강화하라는 요구는 ‘국가’를 탈계급적인 공적 공간으로 오해하는 경우이거나 ‘시장’의 창궐에 대한 도덕적, 사회윤리적 비판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주체’가 어떠한 ‘권리’를 요구하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복지 시장화 전략에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 전반에서 민중들이 어떠한 고통에 처하고 있는가를 폭로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특히 무권리의 상태에 내몰린 저임금 비정규노동자의 상태, 저임금 불안정노동과 가족 돌봄의 책임을 이중적으로 떠맡고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빈곤운동의 출발점과 모색
반빈곤운동의 필요성: 주체화와 연대 확장
한국의 반빈곤운동은 80년대 도시빈민운동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였고 87년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시빈민운동은 한편으로는 주민운동이나 공동체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점상이나 철거민 운동과 같은 특정한 이해에 기반한 대중조직운동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 속에서 전자의 다수는 서비스 NGO화의 길을 걸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고, 후자의 경우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며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사회운동은 지배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생성되는 각종 사회정책담론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배세력이 수행하는 빈곤관리정책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각각의 사회정책에 대한 대응을 파편적으로 인식하는 연대의 부재라는 조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현실로 반빈곤운동이 자율적인 운동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의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을 ‘극복’하고 대안적 가치와 연대를 발견하기 위한 운동의 모색이 필요하다.
2004년 발족한 빈곤사회연대는 그러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운동의 공간을 자임하였다. 2001년 12월 명동성당에서 최옥란열사와 노동사회단체들이 전개한 ‘민중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 이후 “기본생활권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를 위한 연석회의”(기초법연석회의)라는 연대체가 결성되었다. 기초법연석회의 활동을 기반으로 부문과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빈곤문제의 전반적인 사안과 근본적인 원인에 대응하고자 빈곤사회연대(‘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에서 2008년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로 개명)가 발족하였다.3) 빈곤사회연대는 현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사회운동 단체와 전국빈민연합, 노숙인당사자모임, 자립생활센터, 주거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빈민, 지역, 부문 조직 등 39개 단체가 결합되어 있는 연대체로서, 대중적 사업의 기획과 확대와 연대체로서 역할을 확대해오면서 활동가 형성과 대중 조직화를 표방하고 있다. 2007년을 거치면서 반빈곤운동의 기본방향과 관점, 의제를 정리하는 토론과 활동을 통해 빈곤사회연대는 반빈곤운동의 기본 방향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핵심슬로건으로 1>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소득의 확보 2> 성별, 인종, 연령, 장애유무에 따른 위계와 분할을 넘어선 확장된 노동권의 실현 3> 재생산 노동의 사회와, 공공서비스 확보가 포함된 사회서비스 확보라는 과제가 결합된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세계빈곤철폐의 날에 10대 과제를 중심으로 반빈곤운동의 과제를 제출하였다.4)
현재 빈곤사회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반빈곤운동은 그 의제와 연대 폭을 넓혀가고 있으나, 해결해야 하는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빈곤, 복지 정책과 정세적 사안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한 안정적인 정책생산과 활동가들의 토론과 교육에 있어서 발생하는 취약함. 둘째, 폐쇄적인 성격이 강하고 실리주의에 기반을 둔 실천과 조직화 형태에 머물고 있는 도시빈민대중운동을 재조직화해야 하는 과제. 셋째, 사회운동 내에서의 지위와 역할의 모호함과 과소대표성. 따라서 반빈곤운동은 연대운동의 틀을 취하며 그 영역과 의제를 넓혀나가는 동시에 핵심 운동조직들이 반빈곤운동의 의제를 흡수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도시빈민대중조직의 운동에 개입하여 반빈곤운동의 정치적 방향을 형성해내는 과정과 반빈곤운동을 실제로 추동할 대중주체, 활동가들의 직접 조직화가 빈곤사회연대 스스로의 과제다.
지금의 현실과 향후 과제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확대는 금융 소득자에게 거대한 부가 집중한 결과이다. 자본의 금융화로 인한 부의 양극화, 고용의 감소, 비용절감을 위한 불안정 노동의 심화가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원인이다. 또한 다층적으로 구성된 복지정책들은 빈곤인구에 대한 사후적, 소극적 관리를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산업예비군을 관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빈곤과 실업에 맞선 사회운동은 빈곤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빈곤의 문제는 특정 ‘현상’이나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확산되고 일상화되는 빈곤에 대항하는 반빈곤운동의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연대가 요구된다. 이는 기존의 정규직 중심(이 자체에 가치판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운동 형성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의 기업적 실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자기 혁신과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의 과정, 그리고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관리통제전략 하에 저임금비정규 인력으로 활용되거나 여전히 재생산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 여성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노동과 제반 삶의 권리를 능력주의와 논리에 송두리째 박탈당해온 장애인 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등 새로운 사회운동을 형성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말한다.
빈곤을 새롭게 정의하고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에서 찾기 위한 출발점은 우선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를 위해서는 빈곤을 통계수치 뒤로 감추고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은폐하는 지배세력의 빈곤에 대한 규정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빈곤선이자 복지수혜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의 최저생계비이다. 그러나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최저생계비 비중은 1999년 38.2%에서 2007년 31.1%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즉 실제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금액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사회의 빈곤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통해 빈곤선을 끌어올려 빈곤에 대한 인식과 출발점을 전환시켜내야 한다. 또한 그를 통해 부의 편중과 소득 불평등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기본적 요구다.
기본생활권을 사회적 필요에 근거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적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성별, 인종, 국적, 장애, 나이 등의 차이와 관계없이 인간 개개인이 누리고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에 맞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일차적인 과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다.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빈민운동 등 부문영역별로 분리 형성된 운동들이 상호 침투하는 과정이 없다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의 권리에 대한 이해와 토론이 어렵다. 물론 각각의 운동 내에서 발생하는 내적 차이에 따른 분할선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폭넓은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저항주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노동자운동과의 결합과 지역운동의 형성이 지금 반빈곤운동에 던져진 과제이다.
올해 빈곤사회연대 등이 추진했던 ‘적정생계비-임금 실현을 위한 실태조사’ 사업을 통해 드러났듯이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대변해 줄 수 없다. 그리고 고착화된 침전층으로 존재하는 빈곤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만연해지는 빈곤문제에 도전하는 출발점은 정부의 빈곤관리정책으로 고통 받는 주체들의 목소리다. 사회진보연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재생산의 권리)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성찰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 진전을 위한 하나의 유력한 계기일 것이다.
1) 한국에서의 사회투자국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동 청소년 정책으로 아동발달계좌, 저소득가정 아동지원, 이주민 2세 포용정책, 방과후 교육활성화 △근로세대정책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내실화, 평생학습체제 구축, 이주노동자정책, 학자금 융자제도 활성화, 양성평등에 입각한 모성보호, 예방적 건강서비스 △노인정책으로 장기요양제도 구축, 기초노령연금도입, 고령자직업훈련 및 고용촉진, 공적연금개혁 등이다.본문으로
2) ‘능동적(active) 복지’라는 표현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경제사회발전위원회에서 쓰기 시작한 것으로 기존의 복지국가 사회정책이 노동의욕을 저해하는 측면들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규범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능동적 복지는 공공부조, 실업급여, 상병수당, 조기 퇴직 수당 등의 소득보장정책이 노동의 동기를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수동적(passive) 정책이라고 하고 이런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 속에서 제기되었다. 본문으로
3) 출범 당시 빈곤사회연대(준)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첫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 둘째, 기초생활보장 취지에 맞게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라. 셋째, 주택의 투기화를 막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 주거를 보장하라. 넷째, 영유아 보육의 공공화, 의료급여 본인부담상한제, 노인 무료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확대하라. 다섯째, 세제, 재정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사회복지재원을 대폭 확대하라.본문으로
4)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 10대 요구>는 다음과 같다. • 기만적인 기초법 개정 반대! 기본생활권 보장하라! • 최저생계비 현실화하고 상대적 빈곤선 즉각 도입하라! • 빈곤층 부담 가중 의료급여 개악 철회하라! •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 노동권을 보장하라! • 물 산업화, 사유화를 중단하라! 빈곤층에게 물, 전력 등 필수서비스 무상 제공을! • 최저임금 현실화하고 생활임금 보장하라! • 비정규악법 철회하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에 대한 폭력적 관리통제정책 철회하라! • 가진 자만을 위한 개발정책 중단하고 주거권 보장을 위한 사회주택정책 실시하라! • 살인적인 고금리 철폐하고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