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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1-12.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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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위기와 혁신논쟁

박준형 | 공공노조 정책기획국장
2004년 1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이수호 후보가 당선된다. 이를 계기로 민주노총에서는 이른바 ‘국민파’의 장기집권이 지속된다. 2006년 보궐선거에서 조준호 위원장이 당선되고, 그 뒤를 이석행 위원장이 잇는 과정은 ‘국민파’가 근소한 차이로나마 과반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2004년 이후 민주노총을 집권하고 있는 ‘국민파’가 그리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상은 산업별교섭-노사정교섭의 안정적인 제도화다. 이를 통해서 ‘사회개혁적’인(이 말은 때로는 ‘사회공공적’ 혹은 심지어 ‘사회운동적’이라는 말로 대체된다) 과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러한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일련의 사업을 계속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안정적일 수 없었는데, 민주노총 안에서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시도는 조직 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민주노총의 위기에 대한 인식과 그 대안에 대한 논란을 돌아보고, 앞으로 민주노조 운동을 혁신하는데 필요한 시사점을 살펴본다. 또 이 과정에서 사회진보연대가 가졌던 입장과 활동을 돌아본다.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

민주노총은 2004년부터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간다. 민주노총 내 각급 단위 회의에서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토론을 진행하는 한편, 총연맹 차원에서는 사회적 교섭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준비한다.
2005년부터 사회적 교섭은 쟁점으로 부각된다. 1월 20일에 열린 대의원대회는 사회적 교섭 안건에 대한 찬반토론이 격렬하게 이어지다가 무산된다. 이어 3월 14일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는 이 안건을 놓고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고, 급기야 단상점거와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한다. 당시 보수언론은 이 사건을 민주노총의 과격파들에 의한 “폭력사태”로 묘사하며 민주노총이 정파대립으로 인해 조직적 위기에 빠졌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결국 민주노총은 당시 논의가 막 시작된 비정규직법안에 대해서만 정부와 협상한다는 전제를 두고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기로 한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4월 내에 국회에서 비정규 개악법안을 처리하고 6월에 노사관계 로드맵을 처리한다는 일정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노동운동 내에서 ‘현장파’ 혹은 ‘좌파’의 상당수는 <사회적 합의주의/노사정담합 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전노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항의를 조직하거나 현장의 반대를 조직하는 활동 주로 전노투를 통해 이루어졌다.
민주노총 안에서는 1998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IMF 협약을 관철하기 위해서 소집되었던 노사정위원회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이 많았다. 상황이 이러해서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은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노선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며 또한 기존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게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새로운 틀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전노투는 ‘사회적 교섭정책은 사회적 합의주의일 뿐이며 사회적 합의주의는 총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서 노동자 죽이기 프로젝트일 뿐’이라며 민주노총의 입장에 반박한다. (조돈희 전노투 상황실장,「사회적 교섭 방침 안건은 폐기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토론회: 사회적 교섭, 어떻게 볼 것인가 자료집』, 2005.3.11.)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적 합의 반대라는 단일 쟁점으로 좌파연대체를 구성하는 것과 사회적 교섭 참가/불참을 민주노조 운동 내 중심 쟁점으로 설정하는 것에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전노투에 ‘참관’으로 연대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사회진보연대 역시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민주노총 내에서 반대 입장을 조직하는 한편 노동조합을 넘어선 사회운동의 대응을 형성하는 활동에 함께 했다. 당시 입장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코퍼러티즘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실현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서구의 코퍼러티즘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동측면에서 보완하기 위한 ‘공급중시 코퍼러티즘’으로 변모한다. 더구나 한국과 같은 반주변 국가에서는 국가가 합의를 위해 양보할 것도 별로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오히려 노동의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제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추진한 ‘선한’ 사회적 교섭은 애초부터 실현가능성이 없었다. 이는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 파탄으로 다시금 확인된다. 2006년에 진행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오른 의제는 복수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대체노동 및 필수공익사업장 범위 확대 등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들이었다.
더구나 진행 양상을 보더라도, 노사정위원회는 지속적으로 정부의 노사관계 관리기구로서 역할을 할 뿐이었다. 민주노총이 대정부 협상을 요구하면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결국 노사정위원회, 사회적 교섭이라는 쟁점은 민주노총의 지도력을 분할시키면서 조직을 약화시켰는데, 정부는 이것만으로도 원하는 성과를 충분히 얻은 셈이다. 민주노총이 거대한 자충수를 둔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 모든 실패 이후에도 이를 인정하는 평가를 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의 논의 방식이 노사정 교섭과 관련된 모든 쟁점을 “전부 아니면 전무”로 환원하며 논의를 지나치게 과열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일정한 정세에서는 노사정 교섭에 노동조합이 참여할 수도 있다. 혹은 교섭을 오히려 전술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 1)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조 운동의 전략적 전환의 문제고, 사회진보연대는 이 노선에 단호하게 반대해왔다. 그러나 또 한편 노정 교섭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전술의 문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반대론자 앞에서는 노사정위원회를 전술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인 양 변명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전략적인 방향이라고 주장하면서 전혀 신뢰를 주지 않았다. 사실 민주노총의 입장은 전략적인 수준에서 노조운동의 노선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다’라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공허한 변명이었다. 논의 과열의 책임은 민주노총 집행부에 있었다.
결국 쟁점이 이렇게 형성된 탓에 노사정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아니라 특정정세에서 필요할 수 있는 노사정교섭의 전술적 활용마저도 모두 ‘논외’가 되었다. 이는 민주노총이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무능하게 대응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여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에 관한 논의를 진행한다. 그러나 2006년 9월 11일 타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노총과 경총, 노동부의 기습적인 야합이 벌어진다. 복수노조 및 전임자임금 관련 노동법 조항의 적용을 연기하고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해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업무 유지의무 부과 및 대체근로 허용 등이 합의된다.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하고 한국노총에 대해 연대중단, 총파업 투쟁을 선언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하는데, 이는 민주노총의 조직력과 지도력이 수년 동안 약화된 결과였다.
그러나 이 날의 야합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고, 따라서 민주노총이 사실상 묵인,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상당히 제기되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민주노총은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 무능한 대응으로 일관하였는데, 공언한 것 처럼 ‘사회적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지도 않았고, 이를 위한 전략과 전술을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민주노총 스스로가 사회적 교섭 방침은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결국 비정규직 악법과 함께 노사관계로드맵 상의 개악법안들도 모두 정기국회에 통과된다. 비정규직 법안과 필수업무유지제도 등은 지금도 심각한 후과를 낳고 있다.
당시에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협상을 중시할 것인지 파업을 중시할 것인지가 겉으로 드러난 쟁점이었지만, 실제로 투쟁과 조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총파업이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모두 대안이 없었다. 12월에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이 통과되는 마지막 시점에서도 민주노총의 투쟁은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더욱이 로드맵 수정안을 둘러싼 혼란은 총체적인 무력을 확연히 드러냈는데,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만들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되어온 결과였다.
사회적 대화 자체만을 놓고 보더라도, 2006년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파탄을 통해 지난 10년간 지배세력과 노동운동 내 일부 세력이 추진해 온 협상기제 제도화 노력이 잠정적으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당분간은 사회적 교섭 방안이 시도될 수 없도록 그 동력이 사라진 상태며, 이후 더 이상은 중심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노조 비리 사태 폭발

한편 2005년 노조 비리 사건이 다수 불거진다. 한국노총 권오만 사무총장의 비리 사태에 이어 민주노총 산하 현대자동차 노조, 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비리 사건이 벌어진다. 급기야 10월 7일에는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된다. 뒤이어 이 사태를 집행부가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사무총국 활동가 15명의 집단사직 사태가 벌어진다. 노조활동가들의 지지성명이 이어졌다. 결국 2005년 10월 20일, 민주노총 이수호위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른다. 사회진보연대는 민주노총 사무총국의 회원 활동가들과 함께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한편, 민주노총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현장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여러 정치, 사회단체와 함께 조직했다.
사용자로부터 돈을 받는 비리사태가 민주노총 안에서, 그것도 민주노총에서 가장 중요한 위상을 가지는 노조들인 자동차완성차 노조에서 발생했다는 것, 급기야 수석부위원장의 비리까지도 밝혀졌다는 점은 큰 충격이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지는 가운데, 일자리를 놓고 노조가 채용비리를 저지른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이미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기업별노조들이 노사담합체계를 형성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사회적 합의주의도 문제지만, 현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자본과 노조의 담합체계도 심각한 문제라는 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비리 사건은 단지 노조간부 개인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점 외에도 노조에 대한 사측의 지배개입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노조의 생명이라고 할 자주성, 독립성이 점차 소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업별 노조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은 민주노조 운동 전체의 정당성을 크게 침식하는 사건이었다. 검찰이 법원에 신청한 구속영장 내용에 따르면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사용자측에 먼저 돈을 요구했고 돈을 받아 장인의 빚을 갚거나 적금에 가입하는 등 개인적 용도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중에도 돈을 받고 있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애초에 밝혔던 위원장 사퇴 의사도 번복하면서 이를 개인의 비리사건으로 처리하려고 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된다. 집행부 차원에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없었던 것인데, 결국 대중적인 항의 때문에 이수호 위원장이 사퇴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말았다.
‘사회적 교섭방침’으로 인한 민주노총의 내홍에 이어 발생한 비리사태, 민주노총 임원의 사퇴는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를 심각하게 드러냈다.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정당성이 심각하게 침식되었다. 이미 민주노총의 요구와 투쟁이 조직된 (주로 정규직)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대중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태는 노동자 운동의 위기를 가속한다.
이러한 사태를 통해 민주노조 진영 안에서도 노조 간부들이 노조 권력을 이용하여 정치적, 경제적 이권을 추구할 수 있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내부 규율의 강화 등, 이미 논의 중이던 ‘민주노총 혁신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혁신안

이렇게 민주노총이 내홍을 겪고 있는 동안 집행부는 민주노총 혁신안을 준비하여 제출했다. 이수호 집행부 출범 직후(2004년 3월 3일) 조직혁신방침이 결정되었고 2004년 말에는 조직혁신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조직혁신위원장은 비리혐의로 구속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었다.
조직혁신위원회는 2005년 중 논의를 지속했고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혐의가 터지기 직전에 혁신안을 제출했다. 조직혁신안에 담긴 핵심과제는 아래와 같다.

○ 산별이행안마련과 정규직-비정규미조직 연대 전면강화: 산별노조 건설
① 산별이행안 확정 및 대의원 대회 특별결의
○ 조직민주주의 확립, 도덕성 회복, 재정안정성 확립: 지도집행력 강화
② 대의원선거제도 개선 및 구성과 운영의 혁신
③ 재정투명성 강화
④ 재정안정성 강화
⑤ 조직집행체계의 정비
⑥ 정책대응력, 교육사업강화

혁신안은 대체로 조직체계를 정비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노총에 대한 진단도 담겨있는데, 민주노총의 상태를 ‘사회적 연대성, 계급대표성의 위기,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진단과 대안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 기묘한 안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민주노총의 이러한 혁신안이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를 넘어서는 대안이 되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우선 혁신안은 산별노조 노선의 내적 모순에 대한 맹목을 보이고 있다. 이미 2005년 하반기에는 상반기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협약 10조2항 문제로 인하여 서울대병원지부를 비롯한 다수의 사업장이 산별노조를 탈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산별노조 건설도 중요하지만, 산별노조를 왜 건설하고, 어떻게 건설해야하는가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한편 이 혁신안은 ‘중앙 및 지방정부 예산사용에 대한 원칙을 재정립’ 하자면서 현재 사무실 임대비용으로 한정된 정부지원금 용도를 ‘사무실 및 사무공간의 유지, 보수, 관리비용, 교육원 설립과 교육기자재, 교육프로그램 비용, 중장기적인 다양한 정책연구 비용’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미조직, 비정규, 실업, 이주 등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상담 및 직업훈련 지원 등의 사업비, 남북교류협력기금’으로도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현재 민주노총 총연맹과 지역본부 사무실 임대료를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받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여 각종 사업비와 조직화 비용까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후 40차 대의원대회(2007년 4월)에서 안건토론 중 대회가 유예됨으로서 시행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방안은 ‘자주성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현실성 있게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현실성에 타협하여 자주성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정부에 재정을 의존하면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어떤 항목에 대해 재정 지원을 받을 것인가에 국한되는 문제라기보다는, 이미 산별교섭 제도화와 노사정교섭 시도 등을 통해 진척되고 있던 노동운동 제도화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한 것이었다.
이런 문제점들은 물론이거니와, 이 혁신안은 핵심적으로는 조직의 민주주의, 도덕성 등을 특정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데 문제가 있다. 혁신안은 선거제도, 규율제도, 집행체계 등을 정비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한편 당시 좌파들의 상당수는 ‘직선제’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러한 주장도 비록 혁신안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여 제출되었지만 결국 혁신안의 한계와 유사하게 제도의 도입을 통해서 조직을 혁신한다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직선제 도입은 긍정적인 혁신일 수 있지만, 조직혁신을 위한 과제는 아래로부터 대중운동의 활성화가 전제되어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도의 개선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그 제도가 어떤 혁신을 위해서 도입되는지가 분명해야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진보연대가 제출한 입장은 “직선제는 조직혁신의 일부일 뿐이며 노동자 민주주의는 대중들의 광범위한 참여와 운동의 지속적인 혁신을 추동하는 것에 더욱 무게를 두어야 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사후적으로 평가하건데 당시의 입장은 직선제 주장을 소극적으로 비판하는 데 머물렀는데, 이것으로는 직선제가 노동자 민주주의 실현의 유일한 출발점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직선제는 오히려 노조운동 안에서 의식적인 활동가로 구성된 대의원대회를 상대화할 뿐만 아니라, 투쟁과 활동에 적극적인 조직/조합원이나 그렇지 않은 조직/조합원 모두에게 1인 1표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운동 내 온건파가 항상 우세하게 하는데 유리한 제도라는 평가도 있기 때문이다.2)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선거제도가 아니라 ‘어떤 운동’을 현장에서 조직할 것인가가 된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운동세력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실천을 조직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2004년 이후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논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이념적 공유지반이 해체되어 갔다는 사정이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 합의될 수 있는 혁신의 내용은 극히 형식적인 것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노조운동이 점차 실리주의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념적 대안과 전망이라는 과제는 점차 요원한 일이 되어 갔고, 실용적인 제도의 개편이 주로 사고되는 상태에 이른다.
결국 이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의 이념과 전망을 포괄하는 쟁점이라는 점에서, 이제까지 이루어진 민주노총 혁신논의가 가지는 한계의 극복이라는 과제와 일치하는 문제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가 ‘제도의 위기’가 아니라 (조합원들에게나 미조직 노동자 대중에게나) 정당성의 위기에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운동의 ‘방향’ 즉 노선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선을 수립하기 위한 운동의 이념 혁신이 문제다.
사회진보연대는 당시 「진보진영 단일연대체 건설과 민주노총 조직혁신안 및 노사정대표자회의 비판 -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즈음하여」이라는 문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노동운동의 근본적 혁신이요, 노동운동을 다시금 보편적 해방운동으로 복구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사상과 이념, 조직, 일상 활동, 연대운동 등 노동운동의 전 영역에 걸친 혁신을 의미한다. 즉,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에 조응하는 사회적 타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한 노조의 사회운동적 경향 강화, 노동자 민주주의와 운동성의 복구, 반전-대안세계화 운동 및 여성운동과의 결합 등을 지향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혁신은 제도와 기구의 혁신이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의 혁신으로 이해되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운동적 성격을 복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을 거치면서 민주노총 혁신안은 이제 제도개선 중에서도 ‘직선제’ 도입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다. 그마저도 2009년 말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선거 준비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제도적 참여의 대장정”, 어디로 가는가?

이 글에서 검토한 주제는 2004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 당선 이후 민주노총이라는 총연맹의 노선과 관련된 것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혁신에 대한 다른 쟁점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 지역운동의 활성화 등 노조운동 혁신에 대한 많은 쟁점들은 다루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2004년 이수호 집행부가 당선된 이후 긴 시간동안 ‘국민파’의 집권을 통해 일관된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지도력은 형성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기하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 조직 내 합의를 통해 추진한다는 자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쟁점이 되는 사안은 극단적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대립은 주로 ‘정파적 대립’으로 이해되곤 했는데, 민주노총은 오히려 ‘정파를 지양하자’고 주장하면서 집행부에 반대하는 입장에 부정적인 색깔을 칠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을 만들어 낸 것은 오히려 집행부의 자세라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한편 집행부의 일관된 노선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기간 동안에는 안정적인 노사정 협의기구를 제도화하고 이를 통해서 사회적 교섭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3) 노사정교섭과 산업별교섭을 함께 안정화시킨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후기에 반노동자 정책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급기야 지난 대선으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이런 전략은 실행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요구 대신 이명박 정권 반대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민주노총 스스로가 사회적 교섭은 정세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갈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에만 있지 않다.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이나 이후 민주노총 혁신안과 관련된 입장에서 개별 쟁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노동자운동의 복원을 위한 운동이념의 재구성과 사회운동적 성격의 강화와 같은 것들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러한 입장을 ‘사회운동 노조주의’, ‘노동자사회운동’, ‘사회운동노조’ 등의 개념으로 지칭해왔다. 이러한 대안을 노동운동 내에서 만들어가기 위한 집단적 실천과 토론이 없이는 모든 쟁점에 대한 논쟁은 정파적 대립의 외양을 띌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사회진보연대는 2004년 이후 노동자운동의 혁신과 부활을 위해서는 이념의 재건은 물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국민파의 민주노총 장기집권 속에서, 민주노조 운동 혁신의 쟁점이 한편으로는 정파적인 이해의 단층선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개편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실천을 혁신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도 더욱 심각하게 해체되고 있는 민주노조 운동의 지도력의 복원은 아래로부터 운동의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이에 따라 2004년 2월부터 <지역·부문·현장 연석회의>를 두었고, 2004년 3월에는 <노동부문연석회의>를 구성(2008년 초 <노동위원회>로 재편)하여 지역과 현장에 활동가를 배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이후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한 이념적 과제로 ‘노동자사회운동’을 제기하고, 쟁점에 대한 대응, 현장활동가 교육과 배치 등 노력을 계속해왔다. 특히 지역운동 활성화가 아래로부터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전선의 구축에 핵심적이라는 문제의식에 따라 노동자 사회운동론, 지역운동론 등을 정립하고 활동가를 배치하였다. 2007년 이후에는 ‘사회운동포럼’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기획단을 노동, 사회단체들과 함께 조직하고 노동자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공동의 이념, 노선을 수립하기 위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2008년을 거치면서 ‘노동운동포럼’의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운동의 혁신은 단지 내부의 체계, 기구, 운영을 정비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사실은 더욱 자명해지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러한 이념적 대안, 운동적 대안을 수립하기 위한 토론을 노조운동 안에서 조직하는 것은 물론, 그 대안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직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위기를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주력으로서 노조의 역할을 강화하는, 대안노조 운동을 노동운동 안에서 조직하는 것이 과제다. 노동조합 운동을 재건해야할 시기다.



1) 당시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 반대 입장 중 전술적으로 노정대화를 추진한다면 어떤 조건과 전술이 필요한지를 언급한 것은 노중기 정도가 유일했다. 사회적합의주의 현황과 문제점」, 『노무현정권의‘사회적 합의’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토론회 자료집』(2004.7.3)을 참조하시오.본문으로

2)『약자들의 사회협약 - 아일랜드, 이탈리아 및 한국 사례 비교연구』, 임상훈, 루치오 바카로, 한국노동연구원. ILO부설의 국제노동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Labour Stidies) 연구원이기도 한 바카로는 이 글에서 아일랜드, 이탈리아, 한국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약한노조-약한정부의 사회협약이 실현가능한 조건을 검토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약자들의 사회협약”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를 노조의 강경파에서 찾는다. 따라서 사회협약 실현을 위해서는 온건파가 노조집행부를 운영해야하는데, 이를 위한 여러 조치 중에는 직선제도 포함된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사례는 당시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 당시 사회적 교섭 찬성론자들에게 주로 언급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왜 필요한가?」 <민주노총 정책토론회 : 사회적 교섭, 어떻게 볼 것인가(2005.3. 11.)>, 박용석(민주노총 공공연맹 부위원장).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전략」, , 이상학(민주노총정책기획실장) 등 참고.본문으로

3)노동연구원의 최영기는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 서론을 통해 “시장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위해서 노동운동은 시장경제의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즉 제도적 참여의 대장정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이 2004년 이후에 걸어온 길은 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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