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와 한국 민중운동의 과제
현 시기는 2010년대로 예상되는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 국면이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좌파의 약진이 아니라 좌파의 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남한 민중운동진영의 현실도 세계적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7년 9월 16일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으로 가속화된 반신자유주의운동 내부의 분열, 2007년 대선과 민주노동당의 분당, 노동자운동 조직의 오래된 정파갈등 속에서 남한 노동자운동은 총연맹, 산별, 단위노조에 걸쳐 대체로 코퍼러티즘과 청원형 투쟁에 갇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민중운동의 이념과 정치노선과 조직노선을 둘러싼 명확한 논쟁이 형성되지 않은 채 이론적으로는 ‘이론적인 실용주의’ 혹은 ‘아나키즘 경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고, 실천적으로는 개별 이슈 중심의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현재 남한 민중운동의 이러한 난맥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운동이념과 노선, 실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논쟁이 재개되어야 하며, 동시에 현재 경제위기에 맞서는 공동의 투쟁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글에서는 세계경제위기라는 조건 하에서 남한 민중운동의 실천적 논점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공동의 투쟁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한국 민중운동의 대응의 한계
한국사회에서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금융화와 궁핍화(즉, 노동의 불안정화)를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첫 번째 측면인 금융화는 주식시장 부양을 중심으로 자본시장 개방, 외환 자유화, 외국인 소유제한 완화 또는 철폐, 금융 ‘선진화’를 통해 단기적 금융투기에 적합한 형태로 남한사회의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것이다. 생산에 근거를 둔 산업자본 조차도 사내 기업유보금을 통해 주식, 채권 투자 등 금융부문에 대한 투자와 단기적 수익창출,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위한 상시적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등이 기업경영의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조치로 외자유치라는 이름으로 초민족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각종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추진되었고, 한편으로는 금융허브 혹은 금융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시장통합법, 금융지주회사법, 금산분리 완화 등을 통한 대형 투자은행 육성을 추진해왔다. 두 번째 측면은 노동의 불안정화(유연화)로 노동자들의 임금, 고용, 노동조건을 자본의 이윤확보에 유리하도록 공격하는 것이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시간근로제로 대표되는 노동법 개악은 이러한 자본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제도화였다. 반면 남한 민중운동은 세계자본주의의 이윤율의 저하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반격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98년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가면서 노사정 사회협약을 통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법제화에 합의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이것은 이후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지속적인 패퇴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남한 민중운동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응은 초기부터 오류와 한계를 노정했다.
첫재,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는 탈규제, 즉 자본시장 개방, 외환 자유화, 외국인 소유제한 완화 또는 폐지, 금융 선진화 등 남한사회의 경제구조의 전면 재편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이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중운동을 조직하지 못했다. 남한 사회의 경제구조는 미국발 경제위기의 충격파에 대한 영향의 측면에서나 향후 사회를 재건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식적인 사회운동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남한 사회운동의 현 주소를 반영한다.
둘째, IMF 경제위기와 함께 남한의 민중운동의 적나라한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운동진영은 정권과 자본의 경제위기와 고통분담 이데올로기에 압도당했다. 우선 98년 IMF 경제위기 하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수용은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노동유연화를 받아들여 비정규직 확대 확산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다음으로 드러난 것은 정리해고 반대투쟁 과정에서 발생했던 소위 ‘밥.꽃.양’으로 상징되는 여성중심의 정리해고의 수용이었다. 노사정위에서의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수용’으로 IMF 경제위기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한 후 98년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향후 정세를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현대자동차 사측에서는 1538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하려했고, 노조 지도부는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없을 것이라며 파업에 임했지만 정권과 자본의 총공세에 직면하여 277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된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혹은 회사의 회유에 의해, 그리고 계속되는 파업에 지쳐 떠난 식당 여성노동자 133명의 자리를 남성 노동자들이 채운 채로 정리해고는 받아들여지게 된다. 당시 IMF 경제위기 하에서 사내 부부의 경우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등 여성 우선 정리해고가 사회적으로도 확산되었다. 향후 정세를 좌우할 만큼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던 현대자동차에서 여성 우선 정리해고 수용은 남성중심의 남한 노동자운동의 한계를 보여주었으며, 여성 우선 정리해고를 일반화시키고 성별분업,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수 여성운동의 노동자운동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켰고, 여성들만의 특수한 이해를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의 경향을 강화하는 계기로도 작동했다. KTX 새마을호 투쟁 과정에서도 일부 드러난 바와 같이 정규직, 남성 중심의 노동자운동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강한 일부 여성운동은 정규직 임금동결을 통한 여성노동자의 문제 해결 등을 요구했다. 향후 닥쳐오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또 다시 여성 우선 정리해고를 수용할 경우 IMF 당시와는 다르게 여성운동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노동자운동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비정규직 투쟁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1990년대 말 비정규직 투쟁이 본격화된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투쟁이 장기화 되고 투쟁의 성과를 제대로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견, 용역, 하청,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노동자들조차도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고, 해당 투쟁을 둘러싼 정세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을 일반화해서 평가하는 데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다만 이 글에서는 ‘비정규직 운동 혹은 투쟁’을 어떤 관점으로 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인 평가를 하고자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의 본질은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노동자 분할통제와 그를 통한 노동자 착취 강화라는 국가와 자본의 전략에 대한 대응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대응은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를 관철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제도도입에 맞서는 투쟁과 국가와 자본의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에 맞서 정규직/비정규직, 대공장/중소영세사업장, 남성/여성, 이주/정주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기 위해 공동의 투쟁을 형성하는 것이다. 첫 번째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과 관련해서는 이미 1998년 노사정 협약을 통해 기선을 제압당한 이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핵심 과제로 설정하면서 제대로 된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결국 주5일제의 도입과 변형시간근로제 등 노동법 개악을 맞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두 번째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의 확대를 위한 공동투쟁의 형성의 측면에서도 제대로 된 투쟁을 형성하지 못했다. 많은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자신의 고용의 방패막이로 사고하거나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의 활동을 통제하거나 심지어 정규직 조합원들이 사측의 구사대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조직화된 비정규직 운동 또한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공동의 운동전망을 확대하기보다는 정규직과는 또 다른 실리주의적인 한계에 갇혀있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향후 운동을 전개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라는 상황과 관련하여 정규직들의 자기 방어적 태도를 어떻게 규정하고 극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혹자는 정규직 노조운동은 이미 끝났다라고 규정하고 비정규직만이 희망이라고 결론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투쟁은 임노동 제도에 근거한 착취를 폐절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착취에서 배제된 실업 반실업 노동자들만을 조직화의 중심으로 해서 성공할 수 없다. 현재까지 비정규직 운동이 보여주듯이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만으로 운동이 활성화될 수는 없으며, 배제 혹은 주변화 된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이 혁명적 주체를 보증할 수는 없다. 현재의 정규직 노조의 실리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바꾸어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반 편향으로 비정규직 노조만을 강조할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고용, 노동조건의 격차가 현격한 현재 조건에서 자본의 정규직 이기주의 이데올로기에 휘말려 자본의 노동자 분할전략에 공동으로 맞서기보다는 자칫 상호 갈등을 확대하거나 적대적인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따라서 기존의 비정규직 운동 과정에서 드러났던 편향과 한계들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하고 의식화, 조직화를 통한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기보다 개별 사업장에서의 경제적 투쟁의 성과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팽배했으며, 조직화된 사업장조차도 별도의 의식화, 조직화를 위한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따라서 우리를 포함하여 일부에서는 기존의 정규직 노조의 임단투의 한계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향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축소와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 경제투쟁의 중요성에 착목하면서도 경제투쟁의 양적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의 형성과 단결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투쟁의 요구를 마련하고 신뢰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정규직 철폐를 당면 목표로 사고하고 정규직화 쟁취를 비정규직 투쟁의 일반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비정규직 철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변혁함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목표이고 현 시기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은 정규직과 실업 반실업자의 단결을 강화,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당면 현실에서 정규직화 쟁취를 비정규직 투쟁의 일반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순간 해당 정세와 운동의 주체적 조건에 관계없이 모든 개별 사업장에서 정규직화를 관철해야 하는 모순에 부딪힌다. 결국 될 때까지 투쟁하고 승리하지 못하면 조직 자체가 붕괴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현재의 계급 역관계와 자본주의의 조건을 고려할 때 당장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일부 사업장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일반화될 수 없다. 따라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작은 경제투쟁의 성과라도 노동자운동 전체 차원에서나 해당 노조의 차원에서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의 확대와 강화, 의식화, 조직화를 통한 운동의 주체형성이라는 목적에 얼마나 부합했는지가 관건적인 것이다.
넷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필요하다. IMF 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실업에 대한 대안으로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대량실업(정리해고)에 대한 차악의 선택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실업의 조직화(비정규직화)로 귀결되며, 비정규직화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켰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항상 변형시간근로제와 함께 도입되어 초과노동주인 특근을 연장하고, 초과노동일인 잔업을 증가시켜서 일자리 나누기는커녕 실질임금의 삭감과 실질 노동시간 연장으로 귀결되었다. 남한의 경우도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제출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조건 개악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후퇴하다가 정작 주5일제 법제화를 앞두고 주 5일제 시행과 맞바꾸어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경총 등 자본가단체가 이미 주 5일제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변형시간근로제 등 노동유연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변형시간근로제란 노동의 유연화를 의미하는 데, 자본가의 또 다른 꿈은 변형근로제의 절정인 노동년제의 시행이다. 1일이나 1주 단위로 노동시간을 계산하는 노동일제나 노동주제가 아니라 1년 단위로 노동시간을 계산하는 것이다. 노동년제를 통해 시장수요가 감소할 경우에는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잔업과 특근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시간이 개별화되면 임금도 개별화되게 된다. 임금의 유연화를 상징하는 것이 연봉제인데, 남한에서 생산직은 아직 연봉제가 아니지만 기술관리직은 대부분 연봉제가 적용되었다. 자본가의 꿈은 모든 임금을 연봉제로 적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형시간근로제 등 노동유연화가 아닌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주가 아니라 노동일을 단축해야 한다. (예컨대 8시간 노동에서 6시간 노동으로!) 하지만 노동일 단축은 임금인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투쟁이다. 이를 관철시키는 것은 정책대안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노동자운동의 투쟁역량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앞으로도 노동자운동의 역량과 조건, 정권과 자본의 의도를 파악하고 명확한 투쟁방향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IMF 당시의 오류를 또 다시 반복할 수 있다.
다섯째, 민영화 사유화 반대투쟁으로 촉발하여 사회공공성 투쟁으로 확장되고 있는 투쟁 흐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민영화 사유화 반대투쟁은 초민족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공기업의 주식상장, 민영화, 사유화 등 지분소유구조 재편의 문제이므로 경제구조와 관련된 투쟁의 성격이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반대투쟁이기도 하며, 민영화 사유화로 인한 초민족자본, 재벌의 이윤확대를 위한 요금인상, 서비스 하락 등에 맞서는 투쟁이므로 공적 서비스를 방어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최근 촛불시위 등을 통해 물, 에너지, 교통 등을 넘어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 등 민영화 시장화로 인한 공적 서비스를 훼손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는 기만적인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민영화, 시장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동안 민영화 사유화 반대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아니라 사업장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넘어서지 못했고(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이 고용위협이 없으면 투쟁하지 않는다) 더불어 공적 서비스의 축소와 요금인상에 반대하는 대국민 투쟁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민영화 사유화 저지 투쟁의 한계를 공유하면서 공공성, 특히 사회공공성 투쟁이 의도하건 아니건 함축하고 있는 물, 에너지, 교통,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 등 사회공공성의 확대, 강화를 통한 사회변혁이라는 관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토한다.
사회공공성 개념은 공기업화(국유화)의 확대를 통한 반독점 사회화 이행전략의 차원과 공공부문의 방어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의 방어라는 두 가지 차원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사회변혁의 전략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반독점사회화전략/대안경제전략은 영국 노동당의 대표적인 전략으로 영국 노동당은 1945년부터 6년 간 집권하여 기초부문(석탄을 비롯한 에너지 부문, 철도, 전신을 비롯한 교통, 통신 부문)과 공공서비스 부문(교육, 의료 부문)을 국유화 대상으로 설정하고 국유화를 실행했다. 1973년에 이르러 국유화 강령을 급진화하려는 노동당 좌파가 등장하여, ‘대안경제 전략’을 제시했다. 대안경제전략은 일관되게 유럽연합 가입에 반대하면서 대신 민족경제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가지주회사의 설립을 제안했는데 유상매입을 통한 국유화 방식은 유지하되 국가가 중심이 되어 지주회사를 설립하자는 입장이다. 특히 국가지주회사를 통한 국유화를 성장산업 전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공산당의 반독점 구조개혁 강령은 국유화를 강조하지 않는다. 무솔리니 파시즘이 체계적인 국유화를 위해 국가지주회사를 제안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 역시 무솔리니의 파시즘 경제강령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성장산업을 유상매입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고, 이를 위해 노사정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가지주회사,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경제 전략으로 집권한 노동당이 1975-76년 전후 최초로 경제위기를 맞으며 국가지주회사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미테랑 정부도 이와 유사한 국유화 계획을 입안하지만 자본도피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독점사회화/대안경제전략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상몰수가 아닌 유상매입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본의 초민족화라는 현실에서 자본도피의 위협에 무력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 또한 현실적 실행과정에서는 노동자연합에 의한 사회의 실질적 통제라는 방향 아래서 운동주체의 역량을 확대, 강화하여 사회적 관계를 재편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변혁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코퍼러티즘 체계에 의존하여 자본주의적 모순을 재생산했다. 따라서 유로코뮤니즘의 (민족적인 수준의) 반독점사회화 전략은 정책의 실현가능성 차원에서 유효성이 크게 상실되었다.
사회공공성 즉, 공공성과 사회복지를 이행의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행을 위한 이행’의 문제점.) 공공성 투쟁에 대한 관점은 임금투쟁에 대한 관점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 임금투쟁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제한하기 위한 투쟁이자만 임금제도 자체의 혁파를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써만 의미를 지닌다. 물론 임금투쟁에서도 최저임금, 생활임금의 확보와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경향과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격차 확대를 목표로 삼는 비즈니스 노동조합의 경향이 존재할 수 있듯이 공공성, 사회복지의 방어라는 측면에서도 이러한 경향들 간의 갈등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투쟁의 방향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민중들의 건강에 대한 권리/요구(보건의료), 지식에 대한 권리/요구(교육), 교통, 물 에너지, 사회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구체적인 정세와 대중의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여 대중운동을 활성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계기를 확보해야 하다.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와 이행
신자유주의: 역전 가능한 정책인가, 자본주의 최종적 위기인가
한 세기 전 영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제국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던 것과 유사하게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 오늘 날에도 신자유주의를 둘러싸고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1902년 자유주의자인 홉스가 『제국주의론』을 통해 제국주의 정책이 끼치는 나쁜 영향으로부터 자유주의를 보호하고 영국을 개선시키려는 목적으로 자본의 집중, 경제의 기생성, 과두지배, 군국주의 등 폐해를 낳고 있는 제국주의를 비판했다. 홉스에게 있어서 제국주의는 역전 가능한 정책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반해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본성상 필연적 과정이자 ‘자본주의 최고 최후의 단계’로서 ‘사멸해 가는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 재분할을 둘러싼 전쟁의 발발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러시아 혁명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유사하게 오늘날 새케인즈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역전 가능한 하나의 정책으로 묘사하며 국제적인 공조 아래 은행들의 (일시적인) 국유화, 예금보장, 거시 경제적 경기부양을 위기 타개책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운동진영 일부에서도 이러한 부르주아들의 이데올로기를 고려하여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역전 가능한 정책이 아니며,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의 과잉축적과 이윤율 저하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자 현 시기 자본주의의 존재형태일 수밖에 없다. 레닌에 유비하자면 미국 헤게모니 하의 ‘자본주의의 최고 최후의 단계’로서 ‘사멸해 가는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 비판’이냐 자본주의 비판이냐는 허구적 논점에 갇힐 것이 아니라 이미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비판의 이데올로기를 급진화하고 구체적인 투쟁 요구를 제기하여 대중투쟁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 최고 최후의 단계, 타락하고 부패한 투기적인 자본주의로서 신자유주의를 넘어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를 변혁하고 대안사회를 건설해야 함을 선전, 선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의 심화와 붕괴: 대안사회로의 이행인가, 반동적 정치세력의 출현인가
19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연결시키는 사건은 바로 파시즘의 집권이었다. 즉 대공황이 파시즘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출현했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식민지와 시장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팽창주의 경쟁은 전쟁을 향한 필연적인 경향을 낳았고 이것이 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폐허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참호전과 독가스 속에서 연합군 500만 명, 패전국 400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전사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참혹한 전쟁의 여파로, 유럽에서는 반동적 정치체제에 도전하는 노동자운동과 혁명운동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를 자극하며 파시즘이 등장했다. 파시즘은 기존 정치세력이나 정치제도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지닌 이들을 열광시켰고,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던 짜깁기식 경제정책을 제시했다. 유럽에서 파시즘은 자본가, 군부, 귀족 등이 후원자가 되고, 제대한 군인과 도시와 농촌의 중간계급이 대중적으로 파시스트 운동에 참가함으로써 극적으로 확산되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대폭락에서 촉발된 대불황의 영향은 즉시 유럽 경제에 파급되어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자유무역이 쇠퇴하고 생존전략으로써 지역 블록화가 모색되어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경제위기와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1932년 오타와에서 열린 대영제국 경제회의에서 영국과 그 속령 간에 특혜관세가 설치되면서, 몇 개의 국가를 하나의 블록으로 통합해 타 지역에 봉쇄적인 무역정책을 취하는 블록 경제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국제금본위제의 붕괴는 세계 여러 나라를 통화권별로 분열시켜 파운드 블록, 달러 블록, 마르크 블록, 프랑 블록 등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각각 열강을 중심으로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차별관세, 구상무역, 수입통제, 외환관리 정책으로 역내의 자원과 시장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강화했다. 또한 블록 내에서는 국가 간 요소이동을 자유화함으로써 지배국의 자본 수출이나 기업 진출을 촉진시키는 반면, 식민지나 속령의 공업발전을 억제함으로써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적 지배 예속 관계를 고정시켰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식민지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에서 파시즘의 강화, 전쟁을 향한 충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물론 전후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직전과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이 1세기 전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분할,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이 촉발되었다면, 현 시기는 금-달러 태환, 고정환율제를 근간으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1970년대에 실질적으로 붕괴한 이후에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중심부 국가들 간의 경제적 상호 관계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에 미국, 유럽,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의 가능성은 당장 그리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 중심부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이동이나 무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도 매우 높다. 현재 시점에도 금융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정책공조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나머지 세계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제적으로 유지하려는 욕구는 더욱 높아질 수 있고 이것이 중동, 라틴 아메리카,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 혹은 대리전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이 극적으로 증명한 사실이다. 또한 세계경제에서 소외된 지역에서 발발하는 상호 파괴적 전쟁,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인종전쟁과 같은 비극적 사례는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현 시기 또 하나의 특징은 1세기 전 영국 자본주의의 위기 시에는 강력한 식민지 해방운동 혹은 민족해방운동이 존재했는데, 반해 현재는 이러한 강력한 운동주체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대안적인 운동세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경제위기의 심화는 이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위험을 낳을 수도 있다. 보수주의, 인민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2차 세계대전 직전과 유사한 경제의 블록화와 상호 파괴적 대립을 선동하는 반동적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보수적 반동적 반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적 세계화의 전망이 시급하며, 이를 추동할 수 있는 대안적 노동자운동, 민중운동의 형성이 관건이다.
자본주의 체계 변혁과 이행 주체의 형성
투쟁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정세인식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주체역량에 대한 분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객관적으로 대중운동이 분출하는 조건에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계획과 전망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대중운동이 취약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적 위기라는 조건에만 착목하여 ‘자본주의 변혁을 위해 봉기하자’고 선전, 선동하는 것만으로는 대중들의 투쟁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IMF 경제위기의 학습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구조조정 투쟁의 패배와 지속된 투쟁의 패배 속에서 집단적 투쟁을 통한 승리의 전망을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들은 그것이 어리석은 기대일지라도 손쉽게 자신의 고용을 방어하기 위해 고통분담과 임금동결(실질임금 삭감)에 동의하고 투쟁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위기라는 조건은 극단적인 생존의 위협 속에서 대중들이 노동자대중의 보편적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타적 이해만을 관철하기 위한 반동적인 정치로 쏠릴 수도 있다. 현재 동북아의 정치지형과 남한사회의 노동자 내부의 분할, 인종주의,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지형은 반동적 정치에 지극히 취약할 수 있다.
현실의 운동은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운동주체, 대중투쟁의 형성 없이는 아무리 급진적인 요구와 대안도 공허할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의 해결불가능성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과 토론, 선전, 선동을 강화하면서도 이와는 독자적으로 대중투쟁을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중투쟁의 요구와 계획, 즉 이행강령을 마련해야 한다. 바로 자본주의 체제 변혁을 위한 이행강령(이행요구)을 중심으로 현재의 투쟁전선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세에서 이행강령(요구)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실현 불가능한 급진적 요구나 급진적 이념을 선동하는 것만으로는 사고될 수 없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단결,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실업자, 반실업자), 여성과 남성,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단결을 고취할 수 있는 대중투쟁의 요구(이행강령)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한 세기 전 ‘빵, 토지, 평화’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특정한 정세에서 대중들의 요구를 반영한다면 아주 기본적인 요구조차도 혁명적 요구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 시기 우리의 요구를 케인즈주의적 요구와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케인즈주의자들은 현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대안과 요구를 제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갖는 명백한 한계를 인식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 없이는 현재의 위기가 해결불가능하기 때문에 역동하는 정세에 대해 대안세계화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정세에서 우리가 어떤 이행요구와 투쟁계획으로 대중들의 역동적인 행동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운동노조: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노조’의 혁신과 재건의 중요성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는 상황 하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보수적 반동적 반세계화를 넘어서 쇄신된 이념, 변혁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운동을 전개할 주체는 누구인가. (이 글의 보론을 참조하라.) 자본-임노동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투쟁의 중심일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운동의 조직형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20세기 노동자운동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는 당과 노조이다. 대안세계화운동의 시각에서 노동자연합(평의회, 소비에트, 인민공사)이 아니라 당 형태를 ‘계급투쟁 조직의 유일한 본질적 형태’로 간주하는 역사적인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의 당 관념을 기각하고 당 형태를 계급투쟁 조직의 ‘정세적 형태’로 상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세계화운동은 노동조합에 대해 어떤 관점이 필요한가?
우리는 마르크스의 임금론, 노조론에 따라 노동자연합(평의회, 소비에트, 인민공사)과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원칙적 조직으로서 판단한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해 노동자가 투쟁할 수 있는 조직형태는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이며, 노조는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노조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표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표준노동일 단축을 위한 투쟁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궁핍과 불안정화 경향에 반작용하는 ‘경제투쟁’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노조의 의의에 주목하면서도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계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결국 노조의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지적하면서 노동자간 경쟁을 지양하고 단결을 쟁취함으로써 임금제도의 소멸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취업자와 실업자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경쟁이 아니라 단결이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목적인 임금제도의 소멸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일상적 요구투쟁으로서 경제투쟁보다 더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바로 최종적 해방투쟁으로서 ‘정치투쟁’이라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에게 노조의 정치투쟁은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런 사회운동의 목적은 실업자나 비정규직과의 단결을 통해 임금제도를 궁극적으로 철폐하는 것이다.
사회운동노조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의 노동조합론을 계승하면서, 현재 노동조합운동이 처한 한계에 대한 (노조의 현실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노조로부터 퇴각이 아니라) 혁신을 강조한다. 특히 현재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는 조건에서 노조가 코퍼러티즘적, 생디칼리즘적 운동을 벗어나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 운동의 혁신과 함께 생태주의, 평화주의, 페미니즘과 결합한 대안적 이념, 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운동의 일부로 스스로를 혁신하는 것은 사활적인 과제이다. 사회운동노조가 이미 존재하는 노동조합을 모델화한 것이 아니고 현존 노조의 개혁을 동반하는 어떤 운동적 지향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구체적인 실체를 형성하는 것은 남겨진 과제일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중심으로 현존 노조를 사회운동노조로 혁신하기 위한 공동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단순한 조직화를 넘어서 대안세계화운동을 지향하는 이념의 혁신과 ‘의식화와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공동의 정치활동,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 확보와 실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육과 토론을 중요한 요소로 사고해야 한다.
둘째,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이 사회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되고 노동조합의 기본활동, 임금투쟁이나 단체협약과 같은 활동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인 사회운동의 요구와 접맥을 모색할 수 있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축소와 단결의 확대를 위한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총연맹/산별노조 차원에서 임금투쟁, 단체교섭의 내용과 형식을 혁신하고 정액임금 인상, 최저임금제 인상 등 공동요구안 마련과 공동투쟁을 위해 적극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이자 활동형태로서 지역을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일반노조나 산별노조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노조형태에 주목하고 기업, 산업, 업종별 구획을 뛰어 넘는 단결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 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뿐 아니라 재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역시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설정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지역불균등 발전과 지역발전주의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노동자운동 차원에서 사업장의 투쟁과 동시에 지역적 차원에서 계급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셋째, 노동자운동 정치 분파들 간에 건강한 논쟁과 공동실천의 기풍과 윤리를 세워내는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등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는데도 아주 중요하며, 이를 실천하는 것은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
현 시기 대중투쟁 요구와 공동투쟁, 공동실천을 위한 제안
현재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금융기관과 기업의 도산에 따른 구조조정, 실업의 증가, 가계부채로 인한 노동자들의 파산, 물가폭등 등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구조조정과 휴폐업, 조업감축 등이 발생하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정규직을 비정규직 자리에 전환 배치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 620여명 가운데 350여명에 대한 휴업 등의 조처를 실시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도 에쿠스 단종으로 비정규직 110여명이 이미 정리해고되고, 이 부서에서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환배치를 앞두고 있어 2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휩싸여 있다. 또 12월부터 GM대우차 부평의 1공장은 2주간 휴업, 2공장은 5주간 휴업에 들어가는데, 부평공장에 납품하는 하청공단은 이에 관계없이 5주간 휴업에 들어간다. 휴업기간 임금 또한 1차 사내하청까지는 평균시급 70%의 휴업지불이 보장되는 반면, 2?3차 하청은 제외된다. 부품공장들의 경우에도 노조가 없는 대다수의 사업장들에서 휴업기간은 무급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가들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부터, 즉 일용직에서 시작하여 임시직·하청·비정규직으로, 맨 마지막에 상용직·정규직의 순서로 물리려 한다. 내년도 현대자동차 전 공장 생산계획이 속속 확정되고 있는데, 확실한 것은 일체의 잔업이 없는 “8+8”(주간 8시간, 야간 8시간)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본가들의 감산 조치에 의해 단축된 노동시간은 곧바로 임금의 삭감과 고용불안 심리 가중으로 연결될 것이다. 자본은 전면전을 먼저 걸기보다 우선 감산과 노동시간 단축, 순환휴업 등으로 일자리와 생산물량이 없다는 것을 순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에 단결과 투쟁의 기운이 아니라 분열과 고용불안 심리를 조장하여, 먼저 이데올로기적인 무장해제를 실시하려는 것이다. 한편 최근 정부는 출입국관리소와 경찰을 동원하여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살인적인 합동 폭력단속을 자행하며,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을 ‘범죄의 온상’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남양주시의 2007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2년-2006년까지 남양주에서 발생한 범죄 65,579건 중 외국인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209건으로 0.31%에 불과하다.) 또한 한나라당은 “지역별, 연령별로 최저임금 차등적용, 수습근로자의 수습기간 3→6개월로 연장, 60세 이상 고령노동자에게 최저임금 감액적용, 사용자가 제공해야 하는 숙박 및 식사비를 최저임금에서 공제”하는 등 최저임금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공세는 경제위기 하에 저항할 수 없는 가장 밑바닥의 노동자들부터 순차적으로 공격하여 노동자 내부를 분할하고 최저임금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빼앗으려는 정권과 자본의 사악한 의도가 숨어있다.
현 시기 대중투쟁 요구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11월 27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내수경제 복원 및 활성화 대안정책>을 발표하고, “경제위기 극복은 공공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회안전망강화를 위한 내수경제 활성화가 올바른 대안”임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올바른 경제위기 대응방안으로 첫째 특권층 위주의 감세를 즉각 중단할 것, 둘째 토건 투자가 아닌 사회서비스 대규모 투자 필요, 셋째 비정규직 확산이 아닌 정규직화와 차별 해소(4년간 비정규직 200만명 정규직화, 4년간 18조원 소요), 넷째 실업대책 및 사회안전망 강화, 다섯째 금융규제 등 각종규제 강화를 제시했다. <경제위기에 대응한 일자리 창출과 내수활성화를 위한 예산증액 요구>를 통해 구체적인 예상증액방안도 제시했다.
금속노조는 11월 27일 22차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부도와 구조조정에 대비해 경제위기 관련 대책위를 구성, 운영하며, ‘노동시간단축과 교대제개선을 통한 고용안정’을 노조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하고 내용적 준비와 함께 2009년 교섭의 주요의제로 설정하고 투쟁하기로 하였다. 또한 제조업의 균형발전, 제조업영역에서 비정규직의 사용제한, 제조업 중소업체에 대한 국가적 지원체계 강화, 원하청 동반발전을 위한 전략 등을 사회적으로 의제화한다. 또한, 노동자 서민 살리기를 위하여 공적자금을 자본이 아니라 민중에게 지급 요구,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보장 법제화, 빈곤층에게 최저생계비 지급,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처우개선 등의 요구를 적극 검토하기로 하였다. 한편 대의원대회에서는 비정규직 우선해고 중단과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보장, 물가인상보다 높은 임금인상, 비정규직법 개악 등 노동법 개악 중단 및 고용안정법 제정, 실업급여 지급액 인상, 지급기준 연장, 재벌과 부자의 사유재산 사회환원과 부유세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 국가기간산업 국유화와 공기업화로 노동자 고용보장 등을 주요 요구로 하여 금속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금속노조 ‘고용안정-노동자 살리기 투쟁본부’로 전환하자는 현장 발의안이 제출되었으나, 중앙집행위원회로 위임되었다. 이에 앞서 11월 19일 개최된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주최의 <금융위기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노조의 핵심적 대안 기존 일자리의 재분배를 통해 실업자를 최소화하고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을 제안했다. 첫째 정규노동시간의 단축과 가동시간의 조정을 통해 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 둘째 특근폐지와 연장노동의 축소는 집단적 의미의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실업대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내수경제 복원 및 활성화 대안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데,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내수경제가 활성화되려면 민간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경제위기로 인해 최종 소비자 역할을 해온 미국경제가 침체함에 따라 미국으로의 수출과 중국으로의 우회수출 등이 모두 축소되고, 심각한 신용경색으로 인해 기업들이 파산하고 휴폐업이 증가하는 조건에서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고환율과 신용경색 조건에서 국민경제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해서 사용해야 하는 남한경제 구조에서 급격히 내수를 확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 경제위기의 효과로 임금동결(실질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이 확대되는 조건에서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특히나 실업이 확산되고 조업감축, 휴업 등으로 가동시간 조정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요구가 얼마나 현실 가능한 요구인지도 의문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가져올 파국적인 상황에 대해 일정한 정책수정, 즉 금융통제와 재정 확대를 통한 내수활성화가 가능하다고 오판하고 있다.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정책연구위원이 제시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교대제 개선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느냐가 중요하다)이나 ‘특근폐지, 연장근무 축소’는 자본의 입장에서도 현실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미 현장에서도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도 향후 제조업 전반의 침체가 가속화되는 조건에서 인력조정은 불가피한데 당장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은 커다란 저항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에 조업단축, 그에 따른 특근폐지, 연장근무 축소, 교대제 개선 등을 통해 나름대로의 해고회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면서 희망퇴직 등을 유도하는 등 순차적으로 노동자들을 정리해 나갈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불황기의 자본의 자구노력 차원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며, 실질임금은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한편 ‘교대제 개선을 통한 고용안정’은 현실적으로 중요할 수 있는데, 문제는 비정규직 우선해고를 수용하지 않고 사업장 차원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유지, 지역적 차원에서 부품업체의 고용유지와 결합될 수 있는지가 관건적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현 시기 대중투쟁의 요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노동자의 생존의 권리가 중요한가, 경제위기 주범인 재벌과 자산계층의 재산권이 중요한가.
- 고통분담, 노사화합 강요에 맞서 경제위기 하에서 전국적인 투쟁전선 형성과 이데올로기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경제위기 하에서 고용문제가 임금문제를 압도하여 사태가 개별 사업장 차원의 대응으로 축소될 경우 대부분의 경우 임금동결(실질임금 삭감)이 관철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총연맹과 산별노조 차원에서 IMF 이후 노동자의 구조조정, 비정규직화로 고통을 전담한데 반해 재벌과 초민족자본이 그 과실을 독식한 것에 대해 폭로하고, 현재 재벌, 자산계층에게는 투기로 인한 부의 축적, 감세정책과 규제완화로 인한 천문학적 혜택을 제공하면서 정리해고와 실업의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에게는 사회복지 축소, 공공요금 인상으로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생존의 권리를 내놓아야 하는가, 재벌과 자산계층의 세금과 사회적 부담을 강제할 것인가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고통분담과 양보교섭은 끝없는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요구를 포함할 수 있도록 요구안을 마련해야 하고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나 전국적인 공통의 요구나 투쟁전선을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생존을 위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데 한정된 재정을 둘러싸고 지역별, 산업별, 기업별 이해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최근 지역경제살리기 대책기구나 지역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 살리기 운동이 출현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전국적인 공동의 요구와 함께 ‘교대제 개선을 통한 고용안정’이 이주노동자, 여성, 비정규직 우선해고를 수용하지 않고, 사업장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여성, 비정규직의 고용유지, 지역적 차원에서 부품업체의 고용유지와 결합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정규직 노동자와 지역의 비정규직, 실업자 간의 적대적 정서가 강화될 우려가 농후하다. 정권과 자본은 인종주의적 정서를 활용하여 이주노동자와 같은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공격한다. 그리고 성별 분업과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여성 우선 해고를 강행하고, 고령자와 비정규직을 순차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이러한 정권과 자본의 분할 전략에 노동자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역으로 여성, 고령자, 비정규직의 이름으로 정규직노조를 공격하여 무력화시킬 것이다. 특히 밥꽃양으로 대변되는 여성노동자의 희생이 발생할 경우, 노동자운동의 정당성은 사리지고 노동자 간 분할은 강화될 것이다.
• 감세정책 철회, 재벌과 자산계층의 부유세 납부
• 물가인상과 연동하여 모든 노동자에게 정액임금 인상
• 공적자금 투입과 교대제의 개선 등을 통한 이주노동자/여성/비정규직 우선해고 중단과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유지
• 생태파괴를 동반하는 토목건설 투자가 아닌 공적 일자리 창출
• 실업급여 인상 및 최저임금 인상, 국민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안정망 강화
• 연금의 금융투기 중단 및 공공사업 지원
• 공적자금 투입 미분양 아파트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
둘째, 현재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금융선진화 계획 중단과 금융자본 통제 강화를 위한 요구를 전면화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금융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가 남한사회를 세계적 금융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오히려 심화시킨다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나아가 자본주의 체계적 위기와 이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교육활동과 선전선동에도 주력해야 한다.
• 미국에서부터 파산하고 있는 대형 투자은행 육성 계획 중단 (산업은행 민영화 반대, 자본시장통합법 반대, 금산분리 완화 방안 반대)
•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규제 강화
•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
공동투쟁, 공동실천을 위한 제안
첫째,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요구안 마련과 공동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한국진보연대는 논란 끝에 반쪽짜리로 출범한 이후로 민중운동 내에서 합력을 창출하기 보다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결성 과정,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 활동 등 시민운동진영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결국 이런 경향이 맞물려 민중연대 투쟁 전선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정반대로 민주당과 협력관계를 구축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요구까지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출범한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이하 국민회의(준))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경제위기와 민생 파탄을 불러온 핵심 원인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서 이명박-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집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민회의(준)에는 민주노총, 전농을 비롯한 한국진보연대 가입단체와 참여연대, 여연, 민언련 등 시민단체, 깨어있는 누리꾼 모임 등 네티즌 단체를 주축으로 약 70여개 단체가 가입을 결정한 상태다.) 국민회의(준)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해서 현 내각의 즉각적인 총사퇴와 거국 민생내각 구성을 요구하며, 국민희망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경제 살리기 대책위원회가 각종 경제단체, 이익단체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명목 하에 시민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 진보연대도 이러한 흐름에 부분적으로 연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자동차기업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경제위기가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부정하고 있는 이런 경향은 이명박 내각 총사퇴와 거국 민생내각 구성이라는 정권의 교체와 정책의 변화를 통해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는 급격한 경제위기와 함께 노동자운동의 투쟁과 연대를 확장하기보다는 스스로 운동을 관리, 축소하는 역할로 경도될 위험성이 크다. 또한 지역경제 혹은 지역기업 살리기 식의 운동은 정권과 자본의 고통분담, 구조조정, 노사화합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제조업 현장의 조업중단, 휴업, 전환배치 등 구조조정의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이 커지고, 경제위기에 대한 토론들이 막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닥쳐올 경제위기의 파괴력과 지속성에 대한 인식의 편차도 클뿐더러 명확한 투쟁흐름이 형성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IMF 상황을 능가하는 경제위기와 주류적인 운동의 우경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경제위기에 맞서는 좌파적인 공동요구안 마련과 공동실천을 위한 논의틀을 시급히 구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노동조합, 정당, 사회단체 등 조직형식을 망라하여 현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시급히 조직하고, 공동의 투쟁태세를 구축하자. 무엇보다도 총연맹, 산별노조 차원의 대응태세를 구축하고 전국적인 전선을 세우기 위해서 노조 현장 활동가들 차원의 논의를 활성화하고 공동의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기존 노조운동의 한계를 넘어 노조운동의 전망 모색을 위한 공동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조운동은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다. 그 동안 노조운동이 대안으로 제시해온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 운동 양자가 공히 위기에 처해 있다. 산별노조는 초기업 초업종 조직화를 통한 실업자,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제시되고 건설되었으나 기대와 달리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금속 등 대부분의 산별노조에서 산별중앙교섭 자체가 성사되지 않거나 그 포괄범위가 미약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올 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과 함께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또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조운동의 조합주의적, 코퍼러티즘적 한계와 함께 오랜 정파적 갈등이 총연맹에서 단위사업장에 걸쳐 만연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위기와 함께 정권과 자본은 임금삭감,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 등 노동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2009년 직선제 전환, 2010년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도입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있다. ILO 사회적대화국/아태지역사무소의 루치오 바카로에 따르면, 의사결정이 한국처럼 대의원대회를 중심으로 개별 노조 지도부에 한정된다면 강경파가 우세할 가능성이 높지만, 의사결정과정에서 일반 노조원(비노조원 포함)의 선호 사항을 반영하는 직선제의 도입은 온건파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그는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도입과 관련하여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화 및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노조의 노력이 고무되어질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 시스템을 보다 국제노동기준에 알맞게 변용시키는 이러한 법률적 변화는 단지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카로의 자본에 대한 조언과 충고에서 보이듯 현재와 같은 정세와 민주노총의 상황을 고려할 때 직선제와 복수노조가 노조운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결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운동의 오랜 관행대로 정파갈등을 재현할 것인가, 현재까지의 노조운동에 대한 평가와 향후 투쟁전망에 대한 모색을 통해 공동의 대응을 구축할 것인가는 향후 남한 민중운동의 미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존 노조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을 통해 노조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공동의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 성과를 기반으로 다가오는 민주노총 선거에도 공동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셋째, 민주노조운동의 분열을 막고, 노조운동의 재조직화를 위해 좌파적 정당운동은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인민의 독재’가 ‘인민에 대한 당의 독재’로 귀결된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정치와 이론의 중심으로서 전위당 노선을 상대화시킨다면, 대중에 대한 ‘당적 지도’라는 관념은 노동자 간 경쟁을 지양하고 단결을 쟁취함으로써 임금제도의 소멸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운동’으로 대체될 수 있다. 우리는 정당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도, 현실 운동에서의 실천적 계기점을 찾아야 한다. 민중운동을 토대로 한 노동자 대중정당의 ‘부르주아 정당화’(그리고 정당의 위기 메커니즘의 공유)가 객관적 경향이라면, 그에 반경향을 창출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정당의 사회운동적 지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 한편으로 선거정치는 대중운동을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분할하려는 경향을 낳는다. 사회운동을 지향하는 정당은 대중운동의 통합적 발전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 ‘사회운동정당’은 자신의 지역적 토대에 주목해야 한다. 산별협상이나 사회협약, 이를 위한 노동조합 활동의 중앙 집중화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운동은 지역, 현장 수준의 공동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사회운동정당’은 쇄신된 이념, 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운동의 일부로서 현장 수준의 노조운동의 혁신과 재건, 사회운동노조의 형성과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
한편 지난 대선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 그리고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과 <노동자진보정당건설전국추진위원회>(노건추) 등 복수의 정당 건설 흐름이 준비되고 있다. 현재의 당 건설운동은 크게 두 차원으로 구분된다. 정통적인 의미에서 전위당 건설의 입장과 변혁적 혹은 좌파적 정당 건설 입장이 존재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은 전자의 입장으로 보이며, 사노준의 경우는 양자가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힘이 주축이 된 사노준의 경우 당을 중심으로 한 전략을 공유하는 정치단체들의 ‘세력결집’을 위해 사노련,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 등과 공동의 당 건설을 추진해왔으나 당 건설에 대한 입장 차이와 조직적 불신 등으로 일정한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동정치의 통합을 위해 사노준과 일차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히고 있는 노건추와 사노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전국토론회가 내년 초에 예정되어 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형식적으로는 유지되고 있으나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하지만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와 같이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특정한 정치세력의 이해만을 위해 배타적 지지방침의 고수에 집착할 경우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파괴적 분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복수의 진보정당운동의 출현이 민주노조운동의 분할과 분열의 계기로 작동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우선 좌파적 정당운동의 통합적 흐름 창출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좌파적 정당운동 흐름이 사회운동정당의 지향으로 통합적으로 구성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현재 좌파적 정당운동의 주체들이 정당운동에 동의하고, 직접 참여하는 주체들만을 고려한 편협한 계획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위기와 노조운동의 혁신을 통한 노동자운동의 단결의 확대와 강화라는 관점 속에서 여타 사회운동과의 공동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진행될 때에만 또 다른 실패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남한 민중운동의 이러한 난맥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운동이념과 노선, 실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논쟁이 재개되어야 하며, 동시에 현재 경제위기에 맞서는 공동의 투쟁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글에서는 세계경제위기라는 조건 하에서 남한 민중운동의 실천적 논점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공동의 투쟁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한국 민중운동의 대응의 한계
한국사회에서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금융화와 궁핍화(즉, 노동의 불안정화)를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첫 번째 측면인 금융화는 주식시장 부양을 중심으로 자본시장 개방, 외환 자유화, 외국인 소유제한 완화 또는 철폐, 금융 ‘선진화’를 통해 단기적 금융투기에 적합한 형태로 남한사회의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것이다. 생산에 근거를 둔 산업자본 조차도 사내 기업유보금을 통해 주식, 채권 투자 등 금융부문에 대한 투자와 단기적 수익창출,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위한 상시적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등이 기업경영의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조치로 외자유치라는 이름으로 초민족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각종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추진되었고, 한편으로는 금융허브 혹은 금융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시장통합법, 금융지주회사법, 금산분리 완화 등을 통한 대형 투자은행 육성을 추진해왔다. 두 번째 측면은 노동의 불안정화(유연화)로 노동자들의 임금, 고용, 노동조건을 자본의 이윤확보에 유리하도록 공격하는 것이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시간근로제로 대표되는 노동법 개악은 이러한 자본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제도화였다. 반면 남한 민중운동은 세계자본주의의 이윤율의 저하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반격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98년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가면서 노사정 사회협약을 통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법제화에 합의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이것은 이후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지속적인 패퇴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남한 민중운동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응은 초기부터 오류와 한계를 노정했다.
첫재,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는 탈규제, 즉 자본시장 개방, 외환 자유화, 외국인 소유제한 완화 또는 폐지, 금융 선진화 등 남한사회의 경제구조의 전면 재편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이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중운동을 조직하지 못했다. 남한 사회의 경제구조는 미국발 경제위기의 충격파에 대한 영향의 측면에서나 향후 사회를 재건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식적인 사회운동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남한 사회운동의 현 주소를 반영한다.
둘째, IMF 경제위기와 함께 남한의 민중운동의 적나라한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운동진영은 정권과 자본의 경제위기와 고통분담 이데올로기에 압도당했다. 우선 98년 IMF 경제위기 하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수용은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노동유연화를 받아들여 비정규직 확대 확산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다음으로 드러난 것은 정리해고 반대투쟁 과정에서 발생했던 소위 ‘밥.꽃.양’으로 상징되는 여성중심의 정리해고의 수용이었다. 노사정위에서의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수용’으로 IMF 경제위기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한 후 98년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향후 정세를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현대자동차 사측에서는 1538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하려했고, 노조 지도부는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없을 것이라며 파업에 임했지만 정권과 자본의 총공세에 직면하여 277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된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혹은 회사의 회유에 의해, 그리고 계속되는 파업에 지쳐 떠난 식당 여성노동자 133명의 자리를 남성 노동자들이 채운 채로 정리해고는 받아들여지게 된다. 당시 IMF 경제위기 하에서 사내 부부의 경우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등 여성 우선 정리해고가 사회적으로도 확산되었다. 향후 정세를 좌우할 만큼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던 현대자동차에서 여성 우선 정리해고 수용은 남성중심의 남한 노동자운동의 한계를 보여주었으며, 여성 우선 정리해고를 일반화시키고 성별분업,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수 여성운동의 노동자운동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켰고, 여성들만의 특수한 이해를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의 경향을 강화하는 계기로도 작동했다. KTX 새마을호 투쟁 과정에서도 일부 드러난 바와 같이 정규직, 남성 중심의 노동자운동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강한 일부 여성운동은 정규직 임금동결을 통한 여성노동자의 문제 해결 등을 요구했다. 향후 닥쳐오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또 다시 여성 우선 정리해고를 수용할 경우 IMF 당시와는 다르게 여성운동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노동자운동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비정규직 투쟁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1990년대 말 비정규직 투쟁이 본격화된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투쟁이 장기화 되고 투쟁의 성과를 제대로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견, 용역, 하청,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노동자들조차도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고, 해당 투쟁을 둘러싼 정세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을 일반화해서 평가하는 데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다만 이 글에서는 ‘비정규직 운동 혹은 투쟁’을 어떤 관점으로 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인 평가를 하고자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의 본질은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노동자 분할통제와 그를 통한 노동자 착취 강화라는 국가와 자본의 전략에 대한 대응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대응은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를 관철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제도도입에 맞서는 투쟁과 국가와 자본의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에 맞서 정규직/비정규직, 대공장/중소영세사업장, 남성/여성, 이주/정주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기 위해 공동의 투쟁을 형성하는 것이다. 첫 번째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과 관련해서는 이미 1998년 노사정 협약을 통해 기선을 제압당한 이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핵심 과제로 설정하면서 제대로 된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결국 주5일제의 도입과 변형시간근로제 등 노동법 개악을 맞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두 번째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의 확대를 위한 공동투쟁의 형성의 측면에서도 제대로 된 투쟁을 형성하지 못했다. 많은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자신의 고용의 방패막이로 사고하거나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의 활동을 통제하거나 심지어 정규직 조합원들이 사측의 구사대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조직화된 비정규직 운동 또한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공동의 운동전망을 확대하기보다는 정규직과는 또 다른 실리주의적인 한계에 갇혀있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향후 운동을 전개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라는 상황과 관련하여 정규직들의 자기 방어적 태도를 어떻게 규정하고 극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혹자는 정규직 노조운동은 이미 끝났다라고 규정하고 비정규직만이 희망이라고 결론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투쟁은 임노동 제도에 근거한 착취를 폐절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착취에서 배제된 실업 반실업 노동자들만을 조직화의 중심으로 해서 성공할 수 없다. 현재까지 비정규직 운동이 보여주듯이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만으로 운동이 활성화될 수는 없으며, 배제 혹은 주변화 된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이 혁명적 주체를 보증할 수는 없다. 현재의 정규직 노조의 실리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바꾸어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반 편향으로 비정규직 노조만을 강조할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고용, 노동조건의 격차가 현격한 현재 조건에서 자본의 정규직 이기주의 이데올로기에 휘말려 자본의 노동자 분할전략에 공동으로 맞서기보다는 자칫 상호 갈등을 확대하거나 적대적인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따라서 기존의 비정규직 운동 과정에서 드러났던 편향과 한계들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하고 의식화, 조직화를 통한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기보다 개별 사업장에서의 경제적 투쟁의 성과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팽배했으며, 조직화된 사업장조차도 별도의 의식화, 조직화를 위한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따라서 우리를 포함하여 일부에서는 기존의 정규직 노조의 임단투의 한계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향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축소와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 경제투쟁의 중요성에 착목하면서도 경제투쟁의 양적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의 형성과 단결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투쟁의 요구를 마련하고 신뢰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정규직 철폐를 당면 목표로 사고하고 정규직화 쟁취를 비정규직 투쟁의 일반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비정규직 철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변혁함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목표이고 현 시기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은 정규직과 실업 반실업자의 단결을 강화,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당면 현실에서 정규직화 쟁취를 비정규직 투쟁의 일반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순간 해당 정세와 운동의 주체적 조건에 관계없이 모든 개별 사업장에서 정규직화를 관철해야 하는 모순에 부딪힌다. 결국 될 때까지 투쟁하고 승리하지 못하면 조직 자체가 붕괴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현재의 계급 역관계와 자본주의의 조건을 고려할 때 당장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일부 사업장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일반화될 수 없다. 따라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작은 경제투쟁의 성과라도 노동자운동 전체 차원에서나 해당 노조의 차원에서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의 확대와 강화, 의식화, 조직화를 통한 운동의 주체형성이라는 목적에 얼마나 부합했는지가 관건적인 것이다.
넷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필요하다. IMF 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실업에 대한 대안으로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대량실업(정리해고)에 대한 차악의 선택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실업의 조직화(비정규직화)로 귀결되며, 비정규직화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켰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항상 변형시간근로제와 함께 도입되어 초과노동주인 특근을 연장하고, 초과노동일인 잔업을 증가시켜서 일자리 나누기는커녕 실질임금의 삭감과 실질 노동시간 연장으로 귀결되었다. 남한의 경우도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제출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조건 개악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후퇴하다가 정작 주5일제 법제화를 앞두고 주 5일제 시행과 맞바꾸어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경총 등 자본가단체가 이미 주 5일제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변형시간근로제 등 노동유연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변형시간근로제란 노동의 유연화를 의미하는 데, 자본가의 또 다른 꿈은 변형근로제의 절정인 노동년제의 시행이다. 1일이나 1주 단위로 노동시간을 계산하는 노동일제나 노동주제가 아니라 1년 단위로 노동시간을 계산하는 것이다. 노동년제를 통해 시장수요가 감소할 경우에는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잔업과 특근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시간이 개별화되면 임금도 개별화되게 된다. 임금의 유연화를 상징하는 것이 연봉제인데, 남한에서 생산직은 아직 연봉제가 아니지만 기술관리직은 대부분 연봉제가 적용되었다. 자본가의 꿈은 모든 임금을 연봉제로 적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형시간근로제 등 노동유연화가 아닌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주가 아니라 노동일을 단축해야 한다. (예컨대 8시간 노동에서 6시간 노동으로!) 하지만 노동일 단축은 임금인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투쟁이다. 이를 관철시키는 것은 정책대안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노동자운동의 투쟁역량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앞으로도 노동자운동의 역량과 조건, 정권과 자본의 의도를 파악하고 명확한 투쟁방향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IMF 당시의 오류를 또 다시 반복할 수 있다.
다섯째, 민영화 사유화 반대투쟁으로 촉발하여 사회공공성 투쟁으로 확장되고 있는 투쟁 흐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민영화 사유화 반대투쟁은 초민족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공기업의 주식상장, 민영화, 사유화 등 지분소유구조 재편의 문제이므로 경제구조와 관련된 투쟁의 성격이 존재하고, 그 과정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반대투쟁이기도 하며, 민영화 사유화로 인한 초민족자본, 재벌의 이윤확대를 위한 요금인상, 서비스 하락 등에 맞서는 투쟁이므로 공적 서비스를 방어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최근 촛불시위 등을 통해 물, 에너지, 교통 등을 넘어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 등 민영화 시장화로 인한 공적 서비스를 훼손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는 기만적인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민영화, 시장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동안 민영화 사유화 반대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아니라 사업장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넘어서지 못했고(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이 고용위협이 없으면 투쟁하지 않는다) 더불어 공적 서비스의 축소와 요금인상에 반대하는 대국민 투쟁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민영화 사유화 저지 투쟁의 한계를 공유하면서 공공성, 특히 사회공공성 투쟁이 의도하건 아니건 함축하고 있는 물, 에너지, 교통,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 등 사회공공성의 확대, 강화를 통한 사회변혁이라는 관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토한다.
사회공공성 개념은 공기업화(국유화)의 확대를 통한 반독점 사회화 이행전략의 차원과 공공부문의 방어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의 방어라는 두 가지 차원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사회변혁의 전략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반독점사회화전략/대안경제전략은 영국 노동당의 대표적인 전략으로 영국 노동당은 1945년부터 6년 간 집권하여 기초부문(석탄을 비롯한 에너지 부문, 철도, 전신을 비롯한 교통, 통신 부문)과 공공서비스 부문(교육, 의료 부문)을 국유화 대상으로 설정하고 국유화를 실행했다. 1973년에 이르러 국유화 강령을 급진화하려는 노동당 좌파가 등장하여, ‘대안경제 전략’을 제시했다. 대안경제전략은 일관되게 유럽연합 가입에 반대하면서 대신 민족경제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가지주회사의 설립을 제안했는데 유상매입을 통한 국유화 방식은 유지하되 국가가 중심이 되어 지주회사를 설립하자는 입장이다. 특히 국가지주회사를 통한 국유화를 성장산업 전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공산당의 반독점 구조개혁 강령은 국유화를 강조하지 않는다. 무솔리니 파시즘이 체계적인 국유화를 위해 국가지주회사를 제안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 역시 무솔리니의 파시즘 경제강령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성장산업을 유상매입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고, 이를 위해 노사정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가지주회사,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경제 전략으로 집권한 노동당이 1975-76년 전후 최초로 경제위기를 맞으며 국가지주회사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미테랑 정부도 이와 유사한 국유화 계획을 입안하지만 자본도피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독점사회화/대안경제전략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상몰수가 아닌 유상매입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본의 초민족화라는 현실에서 자본도피의 위협에 무력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 또한 현실적 실행과정에서는 노동자연합에 의한 사회의 실질적 통제라는 방향 아래서 운동주체의 역량을 확대, 강화하여 사회적 관계를 재편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변혁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코퍼러티즘 체계에 의존하여 자본주의적 모순을 재생산했다. 따라서 유로코뮤니즘의 (민족적인 수준의) 반독점사회화 전략은 정책의 실현가능성 차원에서 유효성이 크게 상실되었다.
사회공공성 즉, 공공성과 사회복지를 이행의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행을 위한 이행’의 문제점.) 공공성 투쟁에 대한 관점은 임금투쟁에 대한 관점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 임금투쟁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제한하기 위한 투쟁이자만 임금제도 자체의 혁파를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써만 의미를 지닌다. 물론 임금투쟁에서도 최저임금, 생활임금의 확보와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경향과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격차 확대를 목표로 삼는 비즈니스 노동조합의 경향이 존재할 수 있듯이 공공성, 사회복지의 방어라는 측면에서도 이러한 경향들 간의 갈등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투쟁의 방향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민중들의 건강에 대한 권리/요구(보건의료), 지식에 대한 권리/요구(교육), 교통, 물 에너지, 사회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구체적인 정세와 대중의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여 대중운동을 활성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계기를 확보해야 하다.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와 이행
신자유주의: 역전 가능한 정책인가, 자본주의 최종적 위기인가
한 세기 전 영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제국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던 것과 유사하게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 오늘 날에도 신자유주의를 둘러싸고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1902년 자유주의자인 홉스가 『제국주의론』을 통해 제국주의 정책이 끼치는 나쁜 영향으로부터 자유주의를 보호하고 영국을 개선시키려는 목적으로 자본의 집중, 경제의 기생성, 과두지배, 군국주의 등 폐해를 낳고 있는 제국주의를 비판했다. 홉스에게 있어서 제국주의는 역전 가능한 정책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반해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본성상 필연적 과정이자 ‘자본주의 최고 최후의 단계’로서 ‘사멸해 가는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 재분할을 둘러싼 전쟁의 발발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러시아 혁명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유사하게 오늘날 새케인즈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역전 가능한 하나의 정책으로 묘사하며 국제적인 공조 아래 은행들의 (일시적인) 국유화, 예금보장, 거시 경제적 경기부양을 위기 타개책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운동진영 일부에서도 이러한 부르주아들의 이데올로기를 고려하여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역전 가능한 정책이 아니며,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의 과잉축적과 이윤율 저하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자 현 시기 자본주의의 존재형태일 수밖에 없다. 레닌에 유비하자면 미국 헤게모니 하의 ‘자본주의의 최고 최후의 단계’로서 ‘사멸해 가는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 비판’이냐 자본주의 비판이냐는 허구적 논점에 갇힐 것이 아니라 이미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비판의 이데올로기를 급진화하고 구체적인 투쟁 요구를 제기하여 대중투쟁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 최고 최후의 단계, 타락하고 부패한 투기적인 자본주의로서 신자유주의를 넘어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를 변혁하고 대안사회를 건설해야 함을 선전, 선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의 심화와 붕괴: 대안사회로의 이행인가, 반동적 정치세력의 출현인가
19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연결시키는 사건은 바로 파시즘의 집권이었다. 즉 대공황이 파시즘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출현했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식민지와 시장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팽창주의 경쟁은 전쟁을 향한 필연적인 경향을 낳았고 이것이 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폐허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참호전과 독가스 속에서 연합군 500만 명, 패전국 400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전사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참혹한 전쟁의 여파로, 유럽에서는 반동적 정치체제에 도전하는 노동자운동과 혁명운동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를 자극하며 파시즘이 등장했다. 파시즘은 기존 정치세력이나 정치제도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지닌 이들을 열광시켰고,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던 짜깁기식 경제정책을 제시했다. 유럽에서 파시즘은 자본가, 군부, 귀족 등이 후원자가 되고, 제대한 군인과 도시와 농촌의 중간계급이 대중적으로 파시스트 운동에 참가함으로써 극적으로 확산되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대폭락에서 촉발된 대불황의 영향은 즉시 유럽 경제에 파급되어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자유무역이 쇠퇴하고 생존전략으로써 지역 블록화가 모색되어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경제위기와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1932년 오타와에서 열린 대영제국 경제회의에서 영국과 그 속령 간에 특혜관세가 설치되면서, 몇 개의 국가를 하나의 블록으로 통합해 타 지역에 봉쇄적인 무역정책을 취하는 블록 경제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국제금본위제의 붕괴는 세계 여러 나라를 통화권별로 분열시켜 파운드 블록, 달러 블록, 마르크 블록, 프랑 블록 등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각각 열강을 중심으로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차별관세, 구상무역, 수입통제, 외환관리 정책으로 역내의 자원과 시장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강화했다. 또한 블록 내에서는 국가 간 요소이동을 자유화함으로써 지배국의 자본 수출이나 기업 진출을 촉진시키는 반면, 식민지나 속령의 공업발전을 억제함으로써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적 지배 예속 관계를 고정시켰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식민지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에서 파시즘의 강화, 전쟁을 향한 충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물론 전후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직전과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이 1세기 전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분할,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이 촉발되었다면, 현 시기는 금-달러 태환, 고정환율제를 근간으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1970년대에 실질적으로 붕괴한 이후에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중심부 국가들 간의 경제적 상호 관계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에 미국, 유럽,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의 가능성은 당장 그리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 중심부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이동이나 무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도 매우 높다. 현재 시점에도 금융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정책공조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나머지 세계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제적으로 유지하려는 욕구는 더욱 높아질 수 있고 이것이 중동, 라틴 아메리카,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 혹은 대리전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이 극적으로 증명한 사실이다. 또한 세계경제에서 소외된 지역에서 발발하는 상호 파괴적 전쟁,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인종전쟁과 같은 비극적 사례는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현 시기 또 하나의 특징은 1세기 전 영국 자본주의의 위기 시에는 강력한 식민지 해방운동 혹은 민족해방운동이 존재했는데, 반해 현재는 이러한 강력한 운동주체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대안적인 운동세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경제위기의 심화는 이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위험을 낳을 수도 있다. 보수주의, 인민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2차 세계대전 직전과 유사한 경제의 블록화와 상호 파괴적 대립을 선동하는 반동적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보수적 반동적 반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적 세계화의 전망이 시급하며, 이를 추동할 수 있는 대안적 노동자운동, 민중운동의 형성이 관건이다.
자본주의 체계 변혁과 이행 주체의 형성
투쟁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정세인식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주체역량에 대한 분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객관적으로 대중운동이 분출하는 조건에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계획과 전망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대중운동이 취약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적 위기라는 조건에만 착목하여 ‘자본주의 변혁을 위해 봉기하자’고 선전, 선동하는 것만으로는 대중들의 투쟁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IMF 경제위기의 학습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구조조정 투쟁의 패배와 지속된 투쟁의 패배 속에서 집단적 투쟁을 통한 승리의 전망을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들은 그것이 어리석은 기대일지라도 손쉽게 자신의 고용을 방어하기 위해 고통분담과 임금동결(실질임금 삭감)에 동의하고 투쟁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위기라는 조건은 극단적인 생존의 위협 속에서 대중들이 노동자대중의 보편적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타적 이해만을 관철하기 위한 반동적인 정치로 쏠릴 수도 있다. 현재 동북아의 정치지형과 남한사회의 노동자 내부의 분할, 인종주의,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지형은 반동적 정치에 지극히 취약할 수 있다.
현실의 운동은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운동주체, 대중투쟁의 형성 없이는 아무리 급진적인 요구와 대안도 공허할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의 해결불가능성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과 토론, 선전, 선동을 강화하면서도 이와는 독자적으로 대중투쟁을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중투쟁의 요구와 계획, 즉 이행강령을 마련해야 한다. 바로 자본주의 체제 변혁을 위한 이행강령(이행요구)을 중심으로 현재의 투쟁전선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세에서 이행강령(요구)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실현 불가능한 급진적 요구나 급진적 이념을 선동하는 것만으로는 사고될 수 없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단결,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실업자, 반실업자), 여성과 남성,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단결을 고취할 수 있는 대중투쟁의 요구(이행강령)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한 세기 전 ‘빵, 토지, 평화’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특정한 정세에서 대중들의 요구를 반영한다면 아주 기본적인 요구조차도 혁명적 요구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 시기 우리의 요구를 케인즈주의적 요구와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케인즈주의자들은 현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대안과 요구를 제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갖는 명백한 한계를 인식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 없이는 현재의 위기가 해결불가능하기 때문에 역동하는 정세에 대해 대안세계화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정세에서 우리가 어떤 이행요구와 투쟁계획으로 대중들의 역동적인 행동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운동노조: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노조’의 혁신과 재건의 중요성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는 상황 하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보수적 반동적 반세계화를 넘어서 쇄신된 이념, 변혁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운동을 전개할 주체는 누구인가. (이 글의 보론을 참조하라.) 자본-임노동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투쟁의 중심일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운동의 조직형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20세기 노동자운동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는 당과 노조이다. 대안세계화운동의 시각에서 노동자연합(평의회, 소비에트, 인민공사)이 아니라 당 형태를 ‘계급투쟁 조직의 유일한 본질적 형태’로 간주하는 역사적인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의 당 관념을 기각하고 당 형태를 계급투쟁 조직의 ‘정세적 형태’로 상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세계화운동은 노동조합에 대해 어떤 관점이 필요한가?
우리는 마르크스의 임금론, 노조론에 따라 노동자연합(평의회, 소비에트, 인민공사)과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원칙적 조직으로서 판단한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해 노동자가 투쟁할 수 있는 조직형태는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이며, 노조는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노조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표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표준노동일 단축을 위한 투쟁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궁핍과 불안정화 경향에 반작용하는 ‘경제투쟁’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노조의 의의에 주목하면서도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계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결국 노조의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지적하면서 노동자간 경쟁을 지양하고 단결을 쟁취함으로써 임금제도의 소멸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취업자와 실업자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경쟁이 아니라 단결이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목적인 임금제도의 소멸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일상적 요구투쟁으로서 경제투쟁보다 더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바로 최종적 해방투쟁으로서 ‘정치투쟁’이라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에게 노조의 정치투쟁은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런 사회운동의 목적은 실업자나 비정규직과의 단결을 통해 임금제도를 궁극적으로 철폐하는 것이다.
사회운동노조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의 노동조합론을 계승하면서, 현재 노동조합운동이 처한 한계에 대한 (노조의 현실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노조로부터 퇴각이 아니라) 혁신을 강조한다. 특히 현재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는 조건에서 노조가 코퍼러티즘적, 생디칼리즘적 운동을 벗어나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 운동의 혁신과 함께 생태주의, 평화주의, 페미니즘과 결합한 대안적 이념, 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운동의 일부로 스스로를 혁신하는 것은 사활적인 과제이다. 사회운동노조가 이미 존재하는 노동조합을 모델화한 것이 아니고 현존 노조의 개혁을 동반하는 어떤 운동적 지향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구체적인 실체를 형성하는 것은 남겨진 과제일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중심으로 현존 노조를 사회운동노조로 혁신하기 위한 공동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단순한 조직화를 넘어서 대안세계화운동을 지향하는 이념의 혁신과 ‘의식화와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공동의 정치활동,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 확보와 실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육과 토론을 중요한 요소로 사고해야 한다.
둘째,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이 사회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되고 노동조합의 기본활동, 임금투쟁이나 단체협약과 같은 활동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인 사회운동의 요구와 접맥을 모색할 수 있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축소와 단결의 확대를 위한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총연맹/산별노조 차원에서 임금투쟁, 단체교섭의 내용과 형식을 혁신하고 정액임금 인상, 최저임금제 인상 등 공동요구안 마련과 공동투쟁을 위해 적극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이자 활동형태로서 지역을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일반노조나 산별노조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노조형태에 주목하고 기업, 산업, 업종별 구획을 뛰어 넘는 단결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 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뿐 아니라 재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역시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설정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지역불균등 발전과 지역발전주의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노동자운동 차원에서 사업장의 투쟁과 동시에 지역적 차원에서 계급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셋째, 노동자운동 정치 분파들 간에 건강한 논쟁과 공동실천의 기풍과 윤리를 세워내는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등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는데도 아주 중요하며, 이를 실천하는 것은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
현 시기 대중투쟁 요구와 공동투쟁, 공동실천을 위한 제안
현재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금융기관과 기업의 도산에 따른 구조조정, 실업의 증가, 가계부채로 인한 노동자들의 파산, 물가폭등 등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구조조정과 휴폐업, 조업감축 등이 발생하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정규직을 비정규직 자리에 전환 배치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 620여명 가운데 350여명에 대한 휴업 등의 조처를 실시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도 에쿠스 단종으로 비정규직 110여명이 이미 정리해고되고, 이 부서에서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환배치를 앞두고 있어 2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휩싸여 있다. 또 12월부터 GM대우차 부평의 1공장은 2주간 휴업, 2공장은 5주간 휴업에 들어가는데, 부평공장에 납품하는 하청공단은 이에 관계없이 5주간 휴업에 들어간다. 휴업기간 임금 또한 1차 사내하청까지는 평균시급 70%의 휴업지불이 보장되는 반면, 2?3차 하청은 제외된다. 부품공장들의 경우에도 노조가 없는 대다수의 사업장들에서 휴업기간은 무급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가들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부터, 즉 일용직에서 시작하여 임시직·하청·비정규직으로, 맨 마지막에 상용직·정규직의 순서로 물리려 한다. 내년도 현대자동차 전 공장 생산계획이 속속 확정되고 있는데, 확실한 것은 일체의 잔업이 없는 “8+8”(주간 8시간, 야간 8시간)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본가들의 감산 조치에 의해 단축된 노동시간은 곧바로 임금의 삭감과 고용불안 심리 가중으로 연결될 것이다. 자본은 전면전을 먼저 걸기보다 우선 감산과 노동시간 단축, 순환휴업 등으로 일자리와 생산물량이 없다는 것을 순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에 단결과 투쟁의 기운이 아니라 분열과 고용불안 심리를 조장하여, 먼저 이데올로기적인 무장해제를 실시하려는 것이다. 한편 최근 정부는 출입국관리소와 경찰을 동원하여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살인적인 합동 폭력단속을 자행하며,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을 ‘범죄의 온상’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남양주시의 2007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2년-2006년까지 남양주에서 발생한 범죄 65,579건 중 외국인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209건으로 0.31%에 불과하다.) 또한 한나라당은 “지역별, 연령별로 최저임금 차등적용, 수습근로자의 수습기간 3→6개월로 연장, 60세 이상 고령노동자에게 최저임금 감액적용, 사용자가 제공해야 하는 숙박 및 식사비를 최저임금에서 공제”하는 등 최저임금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공세는 경제위기 하에 저항할 수 없는 가장 밑바닥의 노동자들부터 순차적으로 공격하여 노동자 내부를 분할하고 최저임금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빼앗으려는 정권과 자본의 사악한 의도가 숨어있다.
현 시기 대중투쟁 요구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11월 27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내수경제 복원 및 활성화 대안정책>을 발표하고, “경제위기 극복은 공공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회안전망강화를 위한 내수경제 활성화가 올바른 대안”임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올바른 경제위기 대응방안으로 첫째 특권층 위주의 감세를 즉각 중단할 것, 둘째 토건 투자가 아닌 사회서비스 대규모 투자 필요, 셋째 비정규직 확산이 아닌 정규직화와 차별 해소(4년간 비정규직 200만명 정규직화, 4년간 18조원 소요), 넷째 실업대책 및 사회안전망 강화, 다섯째 금융규제 등 각종규제 강화를 제시했다. <경제위기에 대응한 일자리 창출과 내수활성화를 위한 예산증액 요구>를 통해 구체적인 예상증액방안도 제시했다.
금속노조는 11월 27일 22차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부도와 구조조정에 대비해 경제위기 관련 대책위를 구성, 운영하며, ‘노동시간단축과 교대제개선을 통한 고용안정’을 노조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하고 내용적 준비와 함께 2009년 교섭의 주요의제로 설정하고 투쟁하기로 하였다. 또한 제조업의 균형발전, 제조업영역에서 비정규직의 사용제한, 제조업 중소업체에 대한 국가적 지원체계 강화, 원하청 동반발전을 위한 전략 등을 사회적으로 의제화한다. 또한, 노동자 서민 살리기를 위하여 공적자금을 자본이 아니라 민중에게 지급 요구,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보장 법제화, 빈곤층에게 최저생계비 지급,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처우개선 등의 요구를 적극 검토하기로 하였다. 한편 대의원대회에서는 비정규직 우선해고 중단과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보장, 물가인상보다 높은 임금인상, 비정규직법 개악 등 노동법 개악 중단 및 고용안정법 제정, 실업급여 지급액 인상, 지급기준 연장, 재벌과 부자의 사유재산 사회환원과 부유세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 국가기간산업 국유화와 공기업화로 노동자 고용보장 등을 주요 요구로 하여 금속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금속노조 ‘고용안정-노동자 살리기 투쟁본부’로 전환하자는 현장 발의안이 제출되었으나, 중앙집행위원회로 위임되었다. 이에 앞서 11월 19일 개최된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주최의 <금융위기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노조의 핵심적 대안 기존 일자리의 재분배를 통해 실업자를 최소화하고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을 제안했다. 첫째 정규노동시간의 단축과 가동시간의 조정을 통해 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 둘째 특근폐지와 연장노동의 축소는 집단적 의미의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실업대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내수경제 복원 및 활성화 대안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데,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내수경제가 활성화되려면 민간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경제위기로 인해 최종 소비자 역할을 해온 미국경제가 침체함에 따라 미국으로의 수출과 중국으로의 우회수출 등이 모두 축소되고, 심각한 신용경색으로 인해 기업들이 파산하고 휴폐업이 증가하는 조건에서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고환율과 신용경색 조건에서 국민경제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해서 사용해야 하는 남한경제 구조에서 급격히 내수를 확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 경제위기의 효과로 임금동결(실질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이 확대되는 조건에서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특히나 실업이 확산되고 조업감축, 휴업 등으로 가동시간 조정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요구가 얼마나 현실 가능한 요구인지도 의문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가져올 파국적인 상황에 대해 일정한 정책수정, 즉 금융통제와 재정 확대를 통한 내수활성화가 가능하다고 오판하고 있다.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정책연구위원이 제시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교대제 개선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느냐가 중요하다)이나 ‘특근폐지, 연장근무 축소’는 자본의 입장에서도 현실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미 현장에서도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도 향후 제조업 전반의 침체가 가속화되는 조건에서 인력조정은 불가피한데 당장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은 커다란 저항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에 조업단축, 그에 따른 특근폐지, 연장근무 축소, 교대제 개선 등을 통해 나름대로의 해고회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면서 희망퇴직 등을 유도하는 등 순차적으로 노동자들을 정리해 나갈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불황기의 자본의 자구노력 차원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며, 실질임금은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한편 ‘교대제 개선을 통한 고용안정’은 현실적으로 중요할 수 있는데, 문제는 비정규직 우선해고를 수용하지 않고 사업장 차원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유지, 지역적 차원에서 부품업체의 고용유지와 결합될 수 있는지가 관건적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현 시기 대중투쟁의 요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노동자의 생존의 권리가 중요한가, 경제위기 주범인 재벌과 자산계층의 재산권이 중요한가.
- 고통분담, 노사화합 강요에 맞서 경제위기 하에서 전국적인 투쟁전선 형성과 이데올로기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경제위기 하에서 고용문제가 임금문제를 압도하여 사태가 개별 사업장 차원의 대응으로 축소될 경우 대부분의 경우 임금동결(실질임금 삭감)이 관철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총연맹과 산별노조 차원에서 IMF 이후 노동자의 구조조정, 비정규직화로 고통을 전담한데 반해 재벌과 초민족자본이 그 과실을 독식한 것에 대해 폭로하고, 현재 재벌, 자산계층에게는 투기로 인한 부의 축적, 감세정책과 규제완화로 인한 천문학적 혜택을 제공하면서 정리해고와 실업의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에게는 사회복지 축소, 공공요금 인상으로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생존의 권리를 내놓아야 하는가, 재벌과 자산계층의 세금과 사회적 부담을 강제할 것인가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고통분담과 양보교섭은 끝없는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요구를 포함할 수 있도록 요구안을 마련해야 하고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나 전국적인 공통의 요구나 투쟁전선을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생존을 위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데 한정된 재정을 둘러싸고 지역별, 산업별, 기업별 이해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최근 지역경제살리기 대책기구나 지역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 살리기 운동이 출현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전국적인 공동의 요구와 함께 ‘교대제 개선을 통한 고용안정’이 이주노동자, 여성, 비정규직 우선해고를 수용하지 않고, 사업장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여성, 비정규직의 고용유지, 지역적 차원에서 부품업체의 고용유지와 결합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정규직 노동자와 지역의 비정규직, 실업자 간의 적대적 정서가 강화될 우려가 농후하다. 정권과 자본은 인종주의적 정서를 활용하여 이주노동자와 같은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공격한다. 그리고 성별 분업과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여성 우선 해고를 강행하고, 고령자와 비정규직을 순차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이러한 정권과 자본의 분할 전략에 노동자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역으로 여성, 고령자, 비정규직의 이름으로 정규직노조를 공격하여 무력화시킬 것이다. 특히 밥꽃양으로 대변되는 여성노동자의 희생이 발생할 경우, 노동자운동의 정당성은 사리지고 노동자 간 분할은 강화될 것이다.
• 감세정책 철회, 재벌과 자산계층의 부유세 납부
• 물가인상과 연동하여 모든 노동자에게 정액임금 인상
• 공적자금 투입과 교대제의 개선 등을 통한 이주노동자/여성/비정규직 우선해고 중단과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유지
• 생태파괴를 동반하는 토목건설 투자가 아닌 공적 일자리 창출
• 실업급여 인상 및 최저임금 인상, 국민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안정망 강화
• 연금의 금융투기 중단 및 공공사업 지원
• 공적자금 투입 미분양 아파트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
둘째, 현재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금융선진화 계획 중단과 금융자본 통제 강화를 위한 요구를 전면화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금융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가 남한사회를 세계적 금융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오히려 심화시킨다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나아가 자본주의 체계적 위기와 이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교육활동과 선전선동에도 주력해야 한다.
• 미국에서부터 파산하고 있는 대형 투자은행 육성 계획 중단 (산업은행 민영화 반대, 자본시장통합법 반대, 금산분리 완화 방안 반대)
•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규제 강화
•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
공동투쟁, 공동실천을 위한 제안
첫째,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요구안 마련과 공동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한국진보연대는 논란 끝에 반쪽짜리로 출범한 이후로 민중운동 내에서 합력을 창출하기 보다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결성 과정,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 활동 등 시민운동진영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결국 이런 경향이 맞물려 민중연대 투쟁 전선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정반대로 민주당과 협력관계를 구축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요구까지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출범한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이하 국민회의(준))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경제위기와 민생 파탄을 불러온 핵심 원인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서 이명박-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집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민회의(준)에는 민주노총, 전농을 비롯한 한국진보연대 가입단체와 참여연대, 여연, 민언련 등 시민단체, 깨어있는 누리꾼 모임 등 네티즌 단체를 주축으로 약 70여개 단체가 가입을 결정한 상태다.) 국민회의(준)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해서 현 내각의 즉각적인 총사퇴와 거국 민생내각 구성을 요구하며, 국민희망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경제 살리기 대책위원회가 각종 경제단체, 이익단체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명목 하에 시민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 진보연대도 이러한 흐름에 부분적으로 연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자동차기업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경제위기가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부정하고 있는 이런 경향은 이명박 내각 총사퇴와 거국 민생내각 구성이라는 정권의 교체와 정책의 변화를 통해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는 급격한 경제위기와 함께 노동자운동의 투쟁과 연대를 확장하기보다는 스스로 운동을 관리, 축소하는 역할로 경도될 위험성이 크다. 또한 지역경제 혹은 지역기업 살리기 식의 운동은 정권과 자본의 고통분담, 구조조정, 노사화합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제조업 현장의 조업중단, 휴업, 전환배치 등 구조조정의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이 커지고, 경제위기에 대한 토론들이 막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닥쳐올 경제위기의 파괴력과 지속성에 대한 인식의 편차도 클뿐더러 명확한 투쟁흐름이 형성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IMF 상황을 능가하는 경제위기와 주류적인 운동의 우경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경제위기에 맞서는 좌파적인 공동요구안 마련과 공동실천을 위한 논의틀을 시급히 구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노동조합, 정당, 사회단체 등 조직형식을 망라하여 현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시급히 조직하고, 공동의 투쟁태세를 구축하자. 무엇보다도 총연맹, 산별노조 차원의 대응태세를 구축하고 전국적인 전선을 세우기 위해서 노조 현장 활동가들 차원의 논의를 활성화하고 공동의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기존 노조운동의 한계를 넘어 노조운동의 전망 모색을 위한 공동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조운동은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다. 그 동안 노조운동이 대안으로 제시해온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 운동 양자가 공히 위기에 처해 있다. 산별노조는 초기업 초업종 조직화를 통한 실업자,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제시되고 건설되었으나 기대와 달리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금속 등 대부분의 산별노조에서 산별중앙교섭 자체가 성사되지 않거나 그 포괄범위가 미약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올 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과 함께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또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조운동의 조합주의적, 코퍼러티즘적 한계와 함께 오랜 정파적 갈등이 총연맹에서 단위사업장에 걸쳐 만연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위기와 함께 정권과 자본은 임금삭감,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 등 노동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2009년 직선제 전환, 2010년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도입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있다. ILO 사회적대화국/아태지역사무소의 루치오 바카로에 따르면, 의사결정이 한국처럼 대의원대회를 중심으로 개별 노조 지도부에 한정된다면 강경파가 우세할 가능성이 높지만, 의사결정과정에서 일반 노조원(비노조원 포함)의 선호 사항을 반영하는 직선제의 도입은 온건파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그는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도입과 관련하여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화 및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노조의 노력이 고무되어질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 시스템을 보다 국제노동기준에 알맞게 변용시키는 이러한 법률적 변화는 단지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카로의 자본에 대한 조언과 충고에서 보이듯 현재와 같은 정세와 민주노총의 상황을 고려할 때 직선제와 복수노조가 노조운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결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운동의 오랜 관행대로 정파갈등을 재현할 것인가, 현재까지의 노조운동에 대한 평가와 향후 투쟁전망에 대한 모색을 통해 공동의 대응을 구축할 것인가는 향후 남한 민중운동의 미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존 노조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을 통해 노조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공동의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 성과를 기반으로 다가오는 민주노총 선거에도 공동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셋째, 민주노조운동의 분열을 막고, 노조운동의 재조직화를 위해 좌파적 정당운동은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인민의 독재’가 ‘인민에 대한 당의 독재’로 귀결된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정치와 이론의 중심으로서 전위당 노선을 상대화시킨다면, 대중에 대한 ‘당적 지도’라는 관념은 노동자 간 경쟁을 지양하고 단결을 쟁취함으로써 임금제도의 소멸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운동’으로 대체될 수 있다. 우리는 정당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도, 현실 운동에서의 실천적 계기점을 찾아야 한다. 민중운동을 토대로 한 노동자 대중정당의 ‘부르주아 정당화’(그리고 정당의 위기 메커니즘의 공유)가 객관적 경향이라면, 그에 반경향을 창출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정당의 사회운동적 지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 한편으로 선거정치는 대중운동을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분할하려는 경향을 낳는다. 사회운동을 지향하는 정당은 대중운동의 통합적 발전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 ‘사회운동정당’은 자신의 지역적 토대에 주목해야 한다. 산별협상이나 사회협약, 이를 위한 노동조합 활동의 중앙 집중화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운동은 지역, 현장 수준의 공동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사회운동정당’은 쇄신된 이념, 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운동의 일부로서 현장 수준의 노조운동의 혁신과 재건, 사회운동노조의 형성과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
한편 지난 대선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 그리고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과 <노동자진보정당건설전국추진위원회>(노건추) 등 복수의 정당 건설 흐름이 준비되고 있다. 현재의 당 건설운동은 크게 두 차원으로 구분된다. 정통적인 의미에서 전위당 건설의 입장과 변혁적 혹은 좌파적 정당 건설 입장이 존재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은 전자의 입장으로 보이며, 사노준의 경우는 양자가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힘이 주축이 된 사노준의 경우 당을 중심으로 한 전략을 공유하는 정치단체들의 ‘세력결집’을 위해 사노련,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 등과 공동의 당 건설을 추진해왔으나 당 건설에 대한 입장 차이와 조직적 불신 등으로 일정한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동정치의 통합을 위해 사노준과 일차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히고 있는 노건추와 사노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전국토론회가 내년 초에 예정되어 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형식적으로는 유지되고 있으나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하지만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와 같이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특정한 정치세력의 이해만을 위해 배타적 지지방침의 고수에 집착할 경우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파괴적 분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복수의 진보정당운동의 출현이 민주노조운동의 분할과 분열의 계기로 작동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우선 좌파적 정당운동의 통합적 흐름 창출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좌파적 정당운동 흐름이 사회운동정당의 지향으로 통합적으로 구성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현재 좌파적 정당운동의 주체들이 정당운동에 동의하고, 직접 참여하는 주체들만을 고려한 편협한 계획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위기와 노조운동의 혁신을 통한 노동자운동의 단결의 확대와 강화라는 관점 속에서 여타 사회운동과의 공동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진행될 때에만 또 다른 실패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보론] 쇄신된 이념,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대안세계화운동
심화되는 자본주의 경제위기 하에서 세계의 좌파, 남한의 민중운동은 이중적인 곤란에 처해 있다. 하나는 앞서 지적한 대안적 운동주체의 취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현존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실패와 뿌리 깊은 반공주의라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즉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실패하지 않았느냐, 그것이 자본주의를 대안이 될 수 있느냐’는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에 대한 부르주아들의 악의적인 비난이 아니라 주체적 관점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쇄신의 작업은 필수적이다.
대안세계화운동은 IMF와 세계은행, WTO와 같은 국제 금융, 무역기구에 반대하는 제한적인 의미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개념에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우리는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비판적 평가에 기반한 쇄신된 이념과 생태주의, 평화주의, 페미니즘과 결합한 대안적 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운동이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우리는 ‘전위당/국유화’ 노선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국가들조차도 사회주의 노선상의 혼란과 오류로 인해, 당이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당 스스로 강력한 국가기구가 되어 노동자 국제주의가 아닌 일국적 차원의 국가자본주의적 자본축적의 길로 통합되었다. 소련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당의 독재가 아니라 인민의 독재라는 레닌 본인의 사고와 4월 테제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당의 독재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스탈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바, 스탈린적 편향을 낳을 수 있는 전위당 사상, 즉 당이 정치의 중심이자 이론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것의 맹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역사적으로 현실화되었듯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정치, 이론의 중심인 당이 노동자연합(소비에트, 평의회, 인민공사)를 억압할 가능성. 둘째로 스탈린적 편향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과학의 ‘정치이데올로기화’ 즉 당에 대한 충성이 과학적 인식의 기준이 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과학적 성격을 억압할 가능성. 오늘날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혁신의 관점에서 소련에서 나타났던 소유의 법적 형태를 계급 관계와 기계적으로 동일시하는 테제(사회주의 생산양식론, 즉 산업의 국가소유와 농업의 집단농장소유가 사적 소유를 대체하였으므로 모든 착취계급은 오늘날 제거되었다는 입장), 생산력 발전의 우위에 관한 테제(먼저 사회의 생산력이 발전하면 그 다음에 이러한 변화에 의존하여 그리고 생산력에 부합하여 생산의 인간적 관계, 경제적 관계가 변화한다는 입장), 억압적 국가기구의 강화는 반드시 비판되어야할 내용이다.
국유화는 전위정당이 제시하는 정치노선의 핵심이다. 하지만 소유형태의 변화인 국유화는 ‘형식적 사회화’일 뿐이고, 노동자연합에 의해 실질적으로 노동자통제가 실현되는 것이 ‘실질적 사회화’다.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의 경제도 국유화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소유형식 즉 국유화를 사회주의, 공산주의 혹은 사회변혁의 목표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국유화도 부르주아적 국유화와 프롤레타리아적 국유화가 존재하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연합(대중운동역량)을 구축하는 것이며 정세에 따라 국유화를 요구할 수 있으나 일반적 의미의 ‘공공서비스 강화’ 요구를 국유화라는 소유형태로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특수한 정세에서 국유화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것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정세의 문제이다. 공기업의 사유화에 대한 입장은 현 정세 속에서 경제상황이나 세력관계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국유화를 비판하는 것은 원칙적인 이념의 수준이고, 국유화가 불가피한 전술로 채택될 수 있는가 여부는 정세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연합(평의회, 소비에트, 인민공사)이 아니라 당을 ‘계급투쟁 조직의 유일한 본질적 형태’로 간주하는 당 관념을 기각하고 당을 계급투쟁 조직의 ‘정세적 형태’로 상대화시켜야 한다. 노동자연합(대중운동역량)에 의한 실질적인 사회의 통제를 원칙적인 방향으로 하여 집권을 전술적으로 사고하고, 소유(국유화)의 문제를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 사고해야 한다.
2. 우리는 조국방위 전쟁 참여, 핵무장을 용인했던 역사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평화주의를 옹호한다.
2인터내셔널은 1차 세계대전 이전 몇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반군국주의, 반제국주의 정치세력이었다. 당시 정치적, 수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던 사회주의와 인터내셔널은 단지 ‘전쟁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는데 그치지 않고, 평화를 향한 적극적 투쟁에 5백만의 조직된 노동자 군대를 동원할 것이 라고 기대되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계속되었던 모로코 사태, 이탈리아-터키 전쟁, 발칸 분쟁에서 사회주의 세력은 지속적인 반전행동을 통해 사회주의만이 세계 평화에 찬성하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것을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실천은 자기규정만이 아니라 여론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1913년 인터내셔널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이전의 어떤 반전 평화운동도 수적, 정치적으로 인터내셔널과 비교할 수 없었다. 제1인터내셔널에서 제2인터내셔널로 이어지는 시기는 운동의 발전임과 동시에 운동에 새로운 질곡이 발생하는 시기였다. 그것은 ‘국제노동자연합’라는 개인들의 연합체 수준의 운동이 <독일사회민주당>이라는 매우 잘 조직된 정당에서 출발해 전 세계적 정당조직의 기반을 가지는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진정한’ 인터내셔널로 발전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국가적’ 특성보다는 ‘초민족적’ 성격을 강조한 제1인터내셔널이 민족당에 기반한 국제적 연합체인 제2인터내셔널로 전환되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국가 간 체계 내의 모순들이 사회운동들 사이의 모순으로 곧바로 이전될 가능성을 늘려간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은 1차 대전이 발생하면서 증폭되었고, 전쟁공채에 동조하는 좌파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된 ‘조국방위’ 구호가 결국 제2인터내셔널을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1차 대전이 촉발되자,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대한 태도를 놓고 분열되었는데, 다수가 자국의 운동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데 동의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국제주의를 붕괴시켰다.
2차 대전 종전 후 핵무장과 핵무기에 대한 반대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소련의 핵무장이었다.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였고, 미국 핵 보유에 대한 억지력을 갖기 위해 핵무장을 정당화하였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핵폭격 위협에 노출된 중국 또한 핵개발을 추진하였으며, 중소분쟁이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핵 보유의 논리를 더욱 정당화하여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여기서 모두 핵 보유는 ‘국가생존’의 차원에서 정당화되었으며, 소련의 핵 보유는 소련이나 소련 외부에서 모두 사회주의 운동이 핵무장에 반대하는 싸움을 전개할 수 없는 자기무력화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조국을 방위’해야 하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기 파괴적이었다. 핵 보유는 결국 국가간체계의 논리를 사회주의 국가들에 깊숙이 내장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였으며, 국가권력의 논리가 대중보다 우위에 서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문제는 핵 보유가 대중운동을 희생하는 대가로 국가를 생존시키고 국제주의를 억압하는 계기이자 논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국가권력의 지속성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더라도 운동을 소생시키고 국제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봉쇄되었던 것이다. 초대형 수소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짜르 봄바’는 소련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결국 체르노빌 사건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었을 뿐이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중심부 국가와 동아시아, 아메리카 등 일부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선별된 지역을 포섭하고, 나머지 지역은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선별적 포섭과 배제는 배제를 통한 더 많은 불평등을 통해 더 제한된 공간의 부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빈부의 격차를 통해, 덜 가난한 지역을 향한 경쟁(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함께 세계화의 주요한 시스템들(물류, 에너지, 금융의 네트워크)을 배제된 지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군사세계화’가 일반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착취라는 구조적 폭력으로부터 배제된 지역의 사람들이 새로운 전쟁의 대상(서남 아프리카,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북한 등)이 되는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는 더 이상 이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하지 않으며 이 지역에 미국식 인권과 민주주의 개념을 확산시키는 것에 관심 없다. 따라서 이 지역을 다루는 통치성은 통상적 개념으로서 자본주의적 착취(구조적 폭력)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의 배제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 배제가 인종, 종족, 종교 간 분쟁 등 정치 자체가 불가능한 새로운 극단적 폭력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9.11 테러를 계기로 출현한 미국의 군사전략은 전쟁 억지론에서 예방전쟁론, 즉 대테러전쟁으로 변화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단행했다. 미국은 이를 위해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GPR)을 구상했다. 또한 방어대상을 미국에 한정하지 않고 우방국까지 확대하며 지상 및 해상 요격 시 항공기 이용을 가미하고 중간단계 뿐만 아니라 초기 발사단계까지 포함하는 다층적 요격체제 구축을 목표로 미사일방어망(MD)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서 탈퇴했다. 한편 한국정부는 MD 참여를 요청받은 바 없다고 하면서도 패트리어트 최신형 PAC-Ⅲ, 탄도미사일 요격능력을 갖춘 이지스 전투체계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도입,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날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 시대에 평화, 평화주의는 가장 긴급하고 절박한 문제이다. 오늘날 평화주의란 ‘민족자결’을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주의이다. 핵우산을 비롯한 모든 군사동맹의 폐기를 즉각적으로 요구하는 것,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군비축소를 요구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평화주의는 전쟁의 부재와 수동적/부정적 의미의 소극적 평화주의를 넘어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과 극단적 폭력에 대한 비판을 결합하는 것이다. 남한의 사회운동은 일차적으로 한ㆍ미군사동맹 폐기, 핵위협과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미군 철수, 군비 현대화 반대와 일방적 군비축소라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아울러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자기도취 속에서 전지구와 우주공간을 군사화하고 핵 경쟁을 야기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저지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비핵지대화를 추구하기 위한 역내 사회운동으로 전망을 확대해 나가야 하며, 핵을 포함한 재래식 무기의 전면적ㆍ동시적 감축을 위한 세계사회운동의 반전ㆍ반핵ㆍ군축 평화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3.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 간 체계를 매개로 한 노동자 분할에 맞서 국제주의를 지향한다.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어느 때보다 국제주의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개별 국가의 틀 속에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늘어가고, 국가들 자체가 문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각종 분할의 선들이 늘어나면서 단결과 통일을 향한 운동의 전환이 국제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보편성의 요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런 요구와 일치하기보다는 오히려 배치되는 모습으로 나타나, 현 시기에 국제주의를 향한 집단적 움직임은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가 국제주의를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더 큰 단결과 통일의 틀로 사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제주의가 ‘국가에 대한 반대로서 반(反)국가 일반’의 언사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에 반대하고, 국가를 거부하는 사고가 그 자체로서 국제주의로 표상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국제주의의 쟁점은 사실 매우 복잡해지는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보자면, 국제주의가 쟁점이 되던 시기에 중요하게 부각된 바 있던 쟁점 중 하나는 아나키즘에 대한 반대였지만 마르크스주의보다 훨씬 더 반국가의 입장에 선 아나키즘이 현실적으로는 더 국제주의적이었다고 할 수 없는 점도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문제가 이처럼 복잡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제주의는 국가라는 쟁점,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분할이라는 쟁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축적의 전지구적 위기나 또는 자본축적의 지역적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정세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자동적으로 국제주의를 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의 국제주의가 자본의 본성상 출현하는 것이었다면,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달성해야할 목표로서만 표명되고, 그리고 그것이 달성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지양을 표명하는 것임을 뜻하였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대칭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본과 노동은 거울상이 아니고, 자본의 직접적 부정이 노동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노동은 자본과 동일한 형태의 국제주의를 형상화해 낼 수는 없다. 노동의 통일은 자본의 지양이며, 자본축적은 분할된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이 분할되어야만 노동은 자본에 포섭될 수 있으며,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고, 착취될 수 있다. 그 분할선은 중심과 주변, 성별, 인종, 지식, 국적에 따를 것이며, 국가는 항상 한편에서 지배계급을 통일시키는 동시에 피지배계급을 분할하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 국제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통일성의 경향을 지칭하며 이처럼 분할된 구체적 노동자들의 존재조건들을 넘어서는 통일적 경향의 수립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지배를 넘어서는 길임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파악된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결국 새로운 보편성의 형성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또한 노동자의 분할에 작동하는 사회적 적대들을 함께 고려하는 보편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국가 대 반국가라는 단순화한 구도로 형상화할 수 없다. 그것은 국가일반의 부정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전화를 요구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이미 국가에 의해 재생산되는 분할된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이 국가를 거부함으로써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된 국제주의는 국가 ‘외부’에서 사고하는 논리라기보다는 국가의 ‘경계’에서 사고하고 국경을 민주화, 문명화하는 논리로 규명되어야 한다.
4. 우리는 민중의 식량주권을 옹호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체계로의 전환과 생태주의를 지향한다.
자본주의의 전개와 함께 진행된 전지구적 규모의 자연 파괴가 극심해지고 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지구 구석구석의 농업과 자원을 수탈하고 파괴하고 있으며,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켜 기후변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제도 개선과 기술 혁신으로 관리 가능한 ‘환경문제’와 구별되는 ‘생태위기’에 주목한다. 즉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류문명 전체를 파괴할 위험이 있는 것이 생태위기며, 그 해결방법으로 체제의 전환을 필수요건으로 하는 것이 생태위기다. 그 하위범주로 식량과 농업의 위기, 화석에너지의 위기, 기후변화의 위기가 중요하다. 농업, 에너지, 기후 시스템의 변화는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 특수한 형태, 즉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이제 전세계적 규모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에너지는 모든 역사와 문명의 물질적 토대를 이룬다. 자본주의는 농업을 조직하는 방법을 바꿔 자본축적의 한 과정으로 포섭했고, 농민을 착취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력과 축력 등 자연적 힘에 의존하던 에너지를 화석연료의 발견과 기술 발전으로 혁신해서 자본축적에 활용하는 엄청난 동력으로 만들었다.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적 수탈과 과잉 소비가 확산되면서 생태계의 수용력을 뛰어넘는 폐기물이 누적되고 이것이 지역적, 지구적 차원의 생태계 파괴를 낳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하며 인류문명을 처참하게 파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후변화 문제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역사와 뿌리 깊게 관련되어 있는 농업, 에너지, 기후 위기의 극복은 체제의 변혁과 분리될 수 없다. 자연의 물질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자본축적의 명령에 따라 자연을 수탈하는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반생태적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역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했다. 생산력주의와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점은 극복되어야 한다. 생태위기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자연을 고려하지 않는 운동과 그들이 꿈꾸는 대안사회 건설은 유사한 결과를 낳을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생태적 유물론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농업, 에너지, 기후의 위기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경제위기는 그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한 계급에게 특히 취약하다. 농업, 에너지, 기후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자본에 의한 농업의 지배와 세계시장에 의존하는 식량수급,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갈등과 종족적 분쟁, 기후변화로 극심해지는 자연재해, 사막화, 해수면 상승. 이러한 문제는 특히 가난한 제3세계 민중의 삶을 파괴한다. 지역농업이 파괴된 상태에서 발생한 곡물가격 폭등으로 세계 곳곳에서 식량봉기가 발생한다. 석유를 위해 토착민들의 문화와 생계가 침해당하고 살던 곳에서 쫓겨난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태평양의 소규모 도서국가가 사라진다. 생태위기는 또한 계급적 문제이다.
문제들은 상호 연관되면서 서로를 더 악화시킨다. 새로운 투기 대상을 찾아서 떠도는 금융자본이 석유와 식량 가격을 폭등시켰다. 그 와중에 거대 석유기업과 농업기업은 엄청난 초과이윤을 실현했지만, 유가와 곡물가 인상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는 제3세계와 가난한 민중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또 자본주의 녹색혁명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농업관행을 창출해 에너지 위기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킨다.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겠다며 바이오연료 생산을 늘려서 농업의 위기와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기도 한다. 각각의 문제에 대한 단편적이고 분절적인 대응 속에서 자본은 새로운 이윤창출의 기회를 얻을 뿐이다.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다. 공통적으로 자본의 권력에 대한 통제와 경제 체제의 재구조화가 핵심적인 과제로 제시된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는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꾀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심화되고 있는 생태위기는 자본주의 극복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해주고 있다. 대안세계화 농민운동과 식량주권, 재생 가능한 대안에너지의 급격한 확대, 탄소거래와 기후불의를 막는 기후정의운동이 모두 사회운동의 주요 과제로 추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과정에서 경제 체제의 변혁을 사고해야만 한다. 이것이 동시에 추진될 때 실질적인 생태적 전환도 가능하고, 자연의 물질적 조건과 순환을 고려하는 대안사회 건설도 가능하다. 시간은 많지 않다. 생태위기에 맞서기 위해서 생태주의를 훨씬 진지하게 생각하고 운동의 과제로 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태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공문구가 아니다.
5. 우리는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보편주의로서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남성과의 평등의 달성을 주요 목표로 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보편적인 해방운동과 단절되어 분리주의적 운동으로 귀결되었으며, 성욕의 문제를 포함한 사적영역에서의 여성억압을 주요하게 제기했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구조의 차원을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의 생활을 개조하는 것으로 문제의식을 후퇴시켰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기반해 구성되었던 페미니즘은 재생산 영역, 그리고 경제적 문제(계급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억압의 토대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맹목을 드러냈다.
이러한 한계들을 넘어서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실천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재생산 영역과 여성억압의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인식했던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성별화된 권리와 남녀 간의 새로운 윤리의 출현을 제기했던 성차의 페미니즘에 착목하여 새로운 페미니즘의 이념과 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여성억압을 물질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매개하는 가족형태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사고의 개방은 매우 핵심적이다. 따라서 새롭게 출현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자기통치/자기소유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으로서 여성권과 노동권의 결합을 지향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별화된 권리와 그에 따라 구성되는 공동체의 새로운 윤리에 바탕을 두는 사회를 지향하므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보편주의로서의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위와 같은 이념, 이론적 기반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현실의 조건과 결합할 때, ‘가족의 위기’, ‘여성노동력 활용의 확대’로 압축되는 현재 상황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과 대응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주류 여성운동은 여성억압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이론적 지반의 취약함과 여성의 권리를 특수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젠더편향성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의 파트너로서 기능하고 있다. 가족의 위기,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여성화 등을 둘러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과 비판은 더욱 깊이 있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노동력 관리전략 전반에 대한 비판과 더욱 밀착될 필요가 있다. 대량의 산업예비군을 형성, 포섭하는 한편 여성의 노동력을 출혈 판매하도록 하여 가계경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자본의 전략이 여성 대중들의 생존형태를 어떻게 다변화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여 여성운동, 사회운동의 개입의 지점을 보다 구체화 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