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가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
2008년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원화가치는 30% 이상 폭락했다. 일상적 시기라면 원화가치가 하락할 때 수출품 가격하락으로 인해 수출량이 증가하여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게 되지만, 지난해 말부터 오히려 수출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를 보여주는 중요한 현상이자, 한국의 경제불황이 얼마나 장기화될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미 2008년 1월~11월 체감실업률이 전년에 대비해 증가했고, 고용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머지않아 공식실업자 100만 명 돌파도 예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경제의 위기가 드러나는 특징적 양상과 그것이 노동자에게 끼칠 영향을 검토한다. 특히 이명박정부가 제시하는 고용실업대책과 노동법 개정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살펴본다. (최근 이명박정부가 제시한 사회서비스 확충이나 녹색뉴딜을 통한 일자리 창출계획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번 기관지에 실린 다른 필자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
대불황의 초입에 서있는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세계경제는 대불황의 초입에 서있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적 디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다. 즉 경기 침체, 불황으로 인한 시장 수요 감소, 물가 하락, 기업 경영 위축으로 인한 투자 감소 및 실업률 상승,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심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디플레이션 위기는 유동성 함정을 동반할 수 있다. 즉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인하하더라도 금리인하에 따른 소비, 투자의 확대, 주식시장 활황이 이루어지지 않고, 현금보유가 확대되고 소비와 투자는 위축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유동성 함정이 나타나면 정부정책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대불황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가 심화됨에 따라 미국의 금융부실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미 2008년 월스트리트의 세계 5대 투자은행이 몰락했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신청을 했고,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는 각각 JP 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되었으며,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미국 정부는 2008년 10월 입법된 긴급경제안정화법을 통해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조성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상업은행발 2차 금융위기의 위험에 대한 경고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자산 규모로 세계 최대 금융기업인 씨티그룹은 정부의 450억 달러에 달하는 직접적인 자금지원과 부실자산에 대한 3,000억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받았으나 여전히 자금난을 겪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으며, 웰스파고, JP모건체이스 등 초대형 은행들의 부실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다. 이미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지방은행도 다수 존재하며,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최대 1,500 개의 지방은행이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향후 세계 경제위기 전개를 전망할 때, 역사적인 대불황을 상기해야 한다. 1930년대 대불황은 1929년 증시붕괴가 기폭제가 되었으나 대불황으로 발전될 때 은행위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후 국가 간 평가절하 경쟁으로 인해 블록경제가 구축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했다.) 따라서 미국의 은행위기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한편 한국은 미국보다 먼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08년 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마이너스, 전년 동기 대비 0%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2008년 11월 국내수출과 수입은 동시에 마이너스 두자리 성장을 기록했다. 원화가치가 30% 이상 절하되었지만 수출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자본재와 중간재(IT 제품, 석유제품, 화공품, 철강제품, 기계류 등) 공급국 역할을 했으나 세계적으로 설비투자가 크게 축소될 것이므로 수출 위축은 불가피하다. 또한 선진국으로 내구재(자동차, 가전) 수출도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다. 개도국과의 경쟁심화로 인해 수출가격도 하락될 것이다. 또한 신용경색이 지속되면서 내수경기(민간투자와 소비)도 위축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 주가 하락 등 자산가격 하락도 가계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도 마이너스 성장에 접어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 위험성이 높아진다면 외환위기 가능성은 언제라도 다시 고조될 수 있다.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를 드러내는 특징적인 양상은 다음과 같다.
국내 은행의 건전성, 수익성 악화
국내 은행은 2005년 이후로 아시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여신을 확대했다(GDP 성장률 대비 여신 성장률은 3.9배). 2005년 이후로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건설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부동산, 건설 관련 대출 비중이 2002년 8%에서 2008년 14.8%로 확대되었다. 부동산, 건설은 경기침체가 나타날 경우 가장 먼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부동산 경기악화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고조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이 확대되고 있으며, 중소 조선업계이 수주감소와 무리한 설비투자로 인해 현금흐름이 악화됨에 따라 은행의 선수금 환급보증이 은행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KIKO 관련 통화옵션에서 손실이 확대되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상승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향후 경기침체가 지속될 경우 중소기업의 연체율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다. 최근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도 확대되고 있으며, 펀드판매 등 비이자이익도 감소하고 있다. 현재 은행업계의 손실 추정치는 40~60조 원이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은행의 자기자본비중이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하여 산업은행(1조 4,000억 원), 기업은행(1조 원), 신용보증기금(9,000억 원), 자산관리공사(4,000억 원) 등 국책금융기관에 5조 3600억 원을 출자하고, 1월말까지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중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직접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시중은행도 자본확충을 위해 후순위채를 발행했고, 금융지주회사는 회사채를 발행하여 자회사인 은행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정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로 어려움을 겪는 저축은행의 대출 1조 3천억 원 어치 채권을 매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은행부실이 심화된다면 정부의 직접적인 자금지원, 워크아웃, 은행간 인수합병 등 더욱 강도 높은 대응책이 제시될 것이다. 국내은행의 부실심화는 한국경제 위기폭발의 뇌관이 될 것이다.
기업 부실의 심화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할 때, 현재 기업 부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외환위기 당시에는 특정 기업집단들의 부실이 문제였다면, 현재는 다수 중소기업의 부실이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업종과 일부 기업집단에서 비교적 큰 부실이 나타날 수 있지만, 다수의 중소기업, 특히 중소수출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둘째, 충격의 속도는 외환위기 때처럼 일시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부실의 누적효과에 따른 충격의 강도는 당시 못지 않을 것이다. 셋째, 부실기업의 파악과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부실기업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현재 기업 부실이 대부분의 산업, 대부분의 기업에 거쳐 나타나고 있고, 지속적으로 누적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충격요법을 통한 부실 제거와 경제회생 가능성도 그리 밝지 못하다.
일단 현재 경제위기의 일차적 타격을 입고 있는 건설업, 조선업에서 2-3월 중 구조조정이 실시될 예정이다. 2008년 12월 금융감독원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건설업, 조선업 기업을 퇴출시키기 위한 평가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여, 은행들이 그 기준과 절차에 따라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업은 정상(A등급), 일시적 유동성 부족(B), 부실징후(C), 부실(D)이라는 4개 등급으로 분류된다. B등급은 신규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자구계획을 마련하고 채권단과 양해각서를 체결해야 된다. C등급은 외부자금지원이나 별도 차입 없이는 기존 차입금 상환이 어려운 기업이며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금관리인 파견,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약정 체결, 경영정상화 가능성 점검 등을 거쳐야 한다. 반면 D등급은 신규자금 지원이 끊어지고 대주단협약에 의한 채권행사 유예조치도 취소돼 사실상 퇴출된다. 이번 건설사, 조선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와 구조조정은 반도체ㆍ유화 등 향후 구조조정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월 15일 금융감독 당국과 채권단 등에 따르면 주채권은행들은 92개 건설사와 19개 조선사 등 111개 업체에 대해 신용위험 평가를 잠정 마무리했는데, 퇴출 대상인 D등급을 받은 곳이 없는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또한 구조조정(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을 받은 곳들도 건설사 12~14개사, 조선사 2~3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1월 16일 금융당국은 A, B등급으로 분류된 기업이 부도날 경우 해당 은행에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은행들이 퇴출시 대손충당금 부담 등을 고려해 평가대상 업체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기업과 은행이 부실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어느 한쪽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과 은행을 망라하여 전체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자회사인 쌍용자동차는 1월 9일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미국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에서 무너진 첫 번째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와 중국정부, 채권은행은 어느 쪽이 쌍용차에 자금을 지원하느냐를 두고 싸움을 벌여왔다. 상하이자동차는 2004년 5,900억 원에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인수협약에서 1조 2천억 원의 투자와 부채 8천 200억 원 해결을 약속했으나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철수 수순에 들어가고 있다. 언론은 희망퇴직, 임금삭감, 순환휴직 등 상하이자동차가 내놓은 인력감축안을 뛰어넘는 수준의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독자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여론몰이는 기업부실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며, 이에 대한 대응은 노동자운동에게 사활적 문제가 될 것이다.
취업자 수의 감소
한국에서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처음으로 취업자 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임금노동자의 증가세 둔화는 주로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는 2008년 상반기까지는 수출호조에 따라 대기업은 생산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내수부진의 영향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8년 3/4분기 이후로 대기업의 생산증가율 증가도 둔화됨에 따라 전체 임금노동자 일자리 상황이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취업유발계수, 즉 실질 GDP 10억 원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취업자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2008년 현재 28.5). 이를 환산하면 한국 경제가 2%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뤄야만 2008년의 취업자 수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면 취업자 수 규모가 감소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에서 공식 실업률 상승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공식실업률 통계계산에서 제외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고령인구가 구직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청년층의 구직기간이 늘면서 구직활동을 아예 단념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2009년 말이나 2010년 초 월평균 (정부통계상) 실업자의 수가 100만 명을 상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에서 이명박정부의 고용실업대책, 노동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부의 노동정책, 고용실업대책의 허구성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2009년을 비상경제정부 체제로 규정했다. 그는 “일자리를 지키는 데 노사 화합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면서 “정부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년연설 직후 청와대 대변인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 “공기업 개혁이야말로 민간부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길”이라고 말했고, 4대강 정비사업에 관해, “같은 돈을 투자했을 때 제조업보다 두 배 이상인 약 2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청년실업 대책으로는 정부가 이미 발표했던 공공기관 청년 인턴사원, 한미 대학생 연수취업프로그램 WEST 등을 소개했다.
이에 덧붙여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신년사를 통해 고용유지지원금, 직업훈련 지원을 통해 일자리 유지를 지원하며, 영세자영업자와 장기실직자에 대한 실업급여 적용을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일자리 사업규모 확충, 청년 인턴제, 취업지원 패키지 사업, 뉴스타트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비정규직 기간제한 등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정리해고제 요건 완화 등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2010년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지급 제도를 차질 없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고용실업 대책의 문제점
하지만 정부가 제시하는 고용실업대책은 보수언론조차 그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주가 휴업, 훈련, 휴직, 업종 전환의 방법으로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면 최장 9개월 동안 임금의 일부를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 수령요건을 완화하고, 지원금 규모를 중소기업은 임금의 2/3에서 3/4로, 대기업은 1/2에서 2/3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여기에 예산 583억 원을 배정했고, 65,000명의 노동자를 실직 위기에서 구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예산규모는 대기업 몇 곳만 신청해도 지원금이 소진될 정도다. 2008년 12월 1~15일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업체는 2167곳이었는데, 지난해 10월 한 달치인 469곳의 네 배가 넘는다.
한편 2009년 노동부의 고용안정대책 예산 가운데 90%가 고용보험기금이다. 하지만 정부통계 상 544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중 60.8%인 330만여 명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비정규직도 법적으로는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중소기업들이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률 개정과 실행에 상당한 시간이 들 것이므로, 당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저소득층 취업 패키지는 저소득층이 취업할 때까지 최장 1년 동안 무료로 상담, 직업훈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훈련 참여자에 대한 재정지원이 없으므로 실제 저소득층이 참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청년인턴제는 81,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지만, 인턴 종료 후 계획이 없어 6~10개월 간 아르바이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4대 강 정비사업은 연간 63,000개, 3년간 19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밝혔으나, 이는 통계상 건설업의 고용유발효과로 계산한 수치다. 이 사업의 문제점은 다양한 각도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일자리 창출효과의 측면에서도 하천사업이 대부분 중장비 작업이라 그 효과가 적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법 개악
이명박정부는 출범시점부터 ‘상생의 노사문화 창조’를 ‘투자환경의 획기적 개선’의 하위범주로 규정했다. 또한 노사관계에서 법치주의 확립을 내세우며 무관용에 입각한 법집행을 추진했다. 이명박정부는 노동자운동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면서 올해 내에 노동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관련 법안을 노동개악 3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먼저 비정규직법 개정을 살펴보면, 정부는 2008년 11월 10개 부처 공동으로 발표한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의 한 방안으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1월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현행 2년인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기간 제한을 재계 요구대로 4년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오히려 기간제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파견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정부의 최저임금제 개정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고령자 감액적용, 수습노동자 감액기간 연장 및 감액율 상향, 숙식비용 등 현물급여 최저임금 포함, 지역별 최저임금 도입, 결정시한 마감시 공익위원 단독결정권 부여 등이 모두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도급인의 연대책임 확대, 공익위원 선출방식 개선, 감액적용과 적용제외 대상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복수노조 도입을 위한 정부의 강행 처리 최종시점은 최소한 2009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의 창구단일화 방안은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로 수렴되어 왔다. (표2 참조.) 민주노총은 정부의 창구단일화 방안이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산별노조를 무력화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산별노조의 특정사업장에 대한 대각선 교섭이 불가능해 질뿐 만 아니라, 다수노조로 승인되지 않은 소수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 참여할 수 없으며, 현재 산별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라 할지라도 사업장에서 다수노조의 지위를 상실하였을 경우에는 산별교섭에 대한 참여의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자율교섭의 원칙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다양한 방안들이 제출되었다. 민주노총은 전임자의 수와 급여규모의 한도를 입법적으로 정하는 것은 노사자치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의 금지는 입법적 관여사항이 아니므로 현행 노조법 상의 관련규정을 폐지할 것으로 수차례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자율교섭제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자율교섭제 및 노사자율에 의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법 개악 흐름은 노동조합의 기본활동을 크게 제약하고, 노동자 대중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므로 노동자운동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별사업장부터 조업단축, 생산감소로 인한 해고, 임금삭감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고 노동자 대중의 투쟁사기가 상당히 위축되어 있기 특단의 대응책이 요구된다.
결론
정부는 신용경색이 전반적인 은행위기로 나타나고 이것이 기업 전반의 재무악화,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은행 전반에 거쳐 BIS 자기자본비중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한 몇몇 은행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유동성 함정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일차적 타격을 입고 있는 건설업, 조선업과 반도체, 석유화학 산업에서 머지않아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부실이 전체 산업에 거쳐 누적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충격요법을 통한 부실 제거와 경제회생 가능성도 그리 밝지 못하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통한 일자리 유지나 다소간의 일자리 창출계획, 실업대책을 내놓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정부정책의 핵심기조이므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 확실하지만 이것이 일자리 창출이나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실업대책은 보수언론도 제기하는 것처럼 효과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상당수의 제조업이 조업중단, 감산에 돌입하고 있고 향후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대응이 시급하지만 노동자 대중의 심리상태 역시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최근 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 설문조사 결과는 그 단편을 보여준다. (설문조사는 2008년 12월에 실시되었고, 전국 100인 이상 사업체 노사 각 500 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결과 노사관계가 2008년에 비해 불안할 것이라는 전망이 58.8%(노 66.2%, 사 51.4%)이었고, 그 이유로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불안 심화(79.1%), 임금체불(9.4%), 복수노조, 전임자 등 노사관계 법개정을 둘러싼 갈등(7.0%),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갈등(4.6%)이 지적되었다. 나아가 임금동결 또는 삭감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65.5%(노 60.0%, 사 70.0%)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노동자운동의 사기저하라는 조건에서 고용보장을 위해 임금동결이나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릴 수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대불황의 초입에 서있고, 한국경제 역시 장기불황이 예상되는 국면에서 집단해고, 노동신축화, 임금삭감과 같은 자본의 공격에 무기력한 대응에 머문다면 노동조합운동 자체가 약화되거나 해체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은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잔업특근 축소와 조업중단 등 실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자 임금 감소에 대한 임금인상 요구,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와 사회보장 확대, 노동법 개악 반대를 내걸고 전국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의 금융자유화를 비판하고 초민족자본에 대한 통제를 요구하는 사회적 투쟁과 결합해야 한다. 예컨대 금융통제를 위한 제도적 전제조건으로서 금융겸업화와 대형화를 추구하는 자본시장통합법 도입과 금산분리 완화 반대, 한미FTA 비준 반대,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운동이 경제위기 대응의 지도력을 획득해야 한다.
대불황의 초입에 서있는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세계경제는 대불황의 초입에 서있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적 디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다. 즉 경기 침체, 불황으로 인한 시장 수요 감소, 물가 하락, 기업 경영 위축으로 인한 투자 감소 및 실업률 상승,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심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디플레이션 위기는 유동성 함정을 동반할 수 있다. 즉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인하하더라도 금리인하에 따른 소비, 투자의 확대, 주식시장 활황이 이루어지지 않고, 현금보유가 확대되고 소비와 투자는 위축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유동성 함정이 나타나면 정부정책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대불황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가 심화됨에 따라 미국의 금융부실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미 2008년 월스트리트의 세계 5대 투자은행이 몰락했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신청을 했고,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는 각각 JP 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되었으며,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미국 정부는 2008년 10월 입법된 긴급경제안정화법을 통해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조성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상업은행발 2차 금융위기의 위험에 대한 경고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자산 규모로 세계 최대 금융기업인 씨티그룹은 정부의 450억 달러에 달하는 직접적인 자금지원과 부실자산에 대한 3,000억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받았으나 여전히 자금난을 겪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으며, 웰스파고, JP모건체이스 등 초대형 은행들의 부실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다. 이미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지방은행도 다수 존재하며,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최대 1,500 개의 지방은행이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향후 세계 경제위기 전개를 전망할 때, 역사적인 대불황을 상기해야 한다. 1930년대 대불황은 1929년 증시붕괴가 기폭제가 되었으나 대불황으로 발전될 때 은행위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후 국가 간 평가절하 경쟁으로 인해 블록경제가 구축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했다.) 따라서 미국의 은행위기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한편 한국은 미국보다 먼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08년 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마이너스, 전년 동기 대비 0%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2008년 11월 국내수출과 수입은 동시에 마이너스 두자리 성장을 기록했다. 원화가치가 30% 이상 절하되었지만 수출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자본재와 중간재(IT 제품, 석유제품, 화공품, 철강제품, 기계류 등) 공급국 역할을 했으나 세계적으로 설비투자가 크게 축소될 것이므로 수출 위축은 불가피하다. 또한 선진국으로 내구재(자동차, 가전) 수출도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다. 개도국과의 경쟁심화로 인해 수출가격도 하락될 것이다. 또한 신용경색이 지속되면서 내수경기(민간투자와 소비)도 위축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 주가 하락 등 자산가격 하락도 가계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도 마이너스 성장에 접어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 위험성이 높아진다면 외환위기 가능성은 언제라도 다시 고조될 수 있다.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를 드러내는 특징적인 양상은 다음과 같다.
국내 은행의 건전성, 수익성 악화
국내 은행은 2005년 이후로 아시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여신을 확대했다(GDP 성장률 대비 여신 성장률은 3.9배). 2005년 이후로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건설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부동산, 건설 관련 대출 비중이 2002년 8%에서 2008년 14.8%로 확대되었다. 부동산, 건설은 경기침체가 나타날 경우 가장 먼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부동산 경기악화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고조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이 확대되고 있으며, 중소 조선업계이 수주감소와 무리한 설비투자로 인해 현금흐름이 악화됨에 따라 은행의 선수금 환급보증이 은행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KIKO 관련 통화옵션에서 손실이 확대되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상승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향후 경기침체가 지속될 경우 중소기업의 연체율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다. 최근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도 확대되고 있으며, 펀드판매 등 비이자이익도 감소하고 있다. 현재 은행업계의 손실 추정치는 40~60조 원이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은행의 자기자본비중이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하여 산업은행(1조 4,000억 원), 기업은행(1조 원), 신용보증기금(9,000억 원), 자산관리공사(4,000억 원) 등 국책금융기관에 5조 3600억 원을 출자하고, 1월말까지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중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직접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시중은행도 자본확충을 위해 후순위채를 발행했고, 금융지주회사는 회사채를 발행하여 자회사인 은행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정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로 어려움을 겪는 저축은행의 대출 1조 3천억 원 어치 채권을 매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은행부실이 심화된다면 정부의 직접적인 자금지원, 워크아웃, 은행간 인수합병 등 더욱 강도 높은 대응책이 제시될 것이다. 국내은행의 부실심화는 한국경제 위기폭발의 뇌관이 될 것이다.
기업 부실의 심화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할 때, 현재 기업 부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외환위기 당시에는 특정 기업집단들의 부실이 문제였다면, 현재는 다수 중소기업의 부실이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업종과 일부 기업집단에서 비교적 큰 부실이 나타날 수 있지만, 다수의 중소기업, 특히 중소수출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둘째, 충격의 속도는 외환위기 때처럼 일시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부실의 누적효과에 따른 충격의 강도는 당시 못지 않을 것이다. 셋째, 부실기업의 파악과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부실기업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현재 기업 부실이 대부분의 산업, 대부분의 기업에 거쳐 나타나고 있고, 지속적으로 누적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충격요법을 통한 부실 제거와 경제회생 가능성도 그리 밝지 못하다.
일단 현재 경제위기의 일차적 타격을 입고 있는 건설업, 조선업에서 2-3월 중 구조조정이 실시될 예정이다. 2008년 12월 금융감독원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건설업, 조선업 기업을 퇴출시키기 위한 평가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여, 은행들이 그 기준과 절차에 따라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업은 정상(A등급), 일시적 유동성 부족(B), 부실징후(C), 부실(D)이라는 4개 등급으로 분류된다. B등급은 신규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자구계획을 마련하고 채권단과 양해각서를 체결해야 된다. C등급은 외부자금지원이나 별도 차입 없이는 기존 차입금 상환이 어려운 기업이며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금관리인 파견,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약정 체결, 경영정상화 가능성 점검 등을 거쳐야 한다. 반면 D등급은 신규자금 지원이 끊어지고 대주단협약에 의한 채권행사 유예조치도 취소돼 사실상 퇴출된다. 이번 건설사, 조선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와 구조조정은 반도체ㆍ유화 등 향후 구조조정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월 15일 금융감독 당국과 채권단 등에 따르면 주채권은행들은 92개 건설사와 19개 조선사 등 111개 업체에 대해 신용위험 평가를 잠정 마무리했는데, 퇴출 대상인 D등급을 받은 곳이 없는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또한 구조조정(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을 받은 곳들도 건설사 12~14개사, 조선사 2~3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1월 16일 금융당국은 A, B등급으로 분류된 기업이 부도날 경우 해당 은행에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은행들이 퇴출시 대손충당금 부담 등을 고려해 평가대상 업체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기업과 은행이 부실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어느 한쪽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과 은행을 망라하여 전체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자회사인 쌍용자동차는 1월 9일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미국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에서 무너진 첫 번째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와 중국정부, 채권은행은 어느 쪽이 쌍용차에 자금을 지원하느냐를 두고 싸움을 벌여왔다. 상하이자동차는 2004년 5,900억 원에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인수협약에서 1조 2천억 원의 투자와 부채 8천 200억 원 해결을 약속했으나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철수 수순에 들어가고 있다. 언론은 희망퇴직, 임금삭감, 순환휴직 등 상하이자동차가 내놓은 인력감축안을 뛰어넘는 수준의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독자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여론몰이는 기업부실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며, 이에 대한 대응은 노동자운동에게 사활적 문제가 될 것이다.
취업자 수의 감소
한국에서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처음으로 취업자 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임금노동자의 증가세 둔화는 주로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는 2008년 상반기까지는 수출호조에 따라 대기업은 생산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내수부진의 영향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8년 3/4분기 이후로 대기업의 생산증가율 증가도 둔화됨에 따라 전체 임금노동자 일자리 상황이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취업유발계수, 즉 실질 GDP 10억 원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취업자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2008년 현재 28.5). 이를 환산하면 한국 경제가 2%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뤄야만 2008년의 취업자 수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면 취업자 수 규모가 감소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에서 공식 실업률 상승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공식실업률 통계계산에서 제외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고령인구가 구직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청년층의 구직기간이 늘면서 구직활동을 아예 단념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2009년 말이나 2010년 초 월평균 (정부통계상) 실업자의 수가 100만 명을 상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에서 이명박정부의 고용실업대책, 노동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부의 노동정책, 고용실업대책의 허구성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2009년을 비상경제정부 체제로 규정했다. 그는 “일자리를 지키는 데 노사 화합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면서 “정부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년연설 직후 청와대 대변인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 “공기업 개혁이야말로 민간부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길”이라고 말했고, 4대강 정비사업에 관해, “같은 돈을 투자했을 때 제조업보다 두 배 이상인 약 2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청년실업 대책으로는 정부가 이미 발표했던 공공기관 청년 인턴사원, 한미 대학생 연수취업프로그램 WEST 등을 소개했다.
이에 덧붙여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신년사를 통해 고용유지지원금, 직업훈련 지원을 통해 일자리 유지를 지원하며, 영세자영업자와 장기실직자에 대한 실업급여 적용을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일자리 사업규모 확충, 청년 인턴제, 취업지원 패키지 사업, 뉴스타트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비정규직 기간제한 등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정리해고제 요건 완화 등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2010년 복수노조와 전임자 급여지급 제도를 차질 없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고용실업 대책의 문제점
하지만 정부가 제시하는 고용실업대책은 보수언론조차 그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주가 휴업, 훈련, 휴직, 업종 전환의 방법으로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면 최장 9개월 동안 임금의 일부를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 수령요건을 완화하고, 지원금 규모를 중소기업은 임금의 2/3에서 3/4로, 대기업은 1/2에서 2/3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여기에 예산 583억 원을 배정했고, 65,000명의 노동자를 실직 위기에서 구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예산규모는 대기업 몇 곳만 신청해도 지원금이 소진될 정도다. 2008년 12월 1~15일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업체는 2167곳이었는데, 지난해 10월 한 달치인 469곳의 네 배가 넘는다.
한편 2009년 노동부의 고용안정대책 예산 가운데 90%가 고용보험기금이다. 하지만 정부통계 상 544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중 60.8%인 330만여 명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비정규직도 법적으로는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중소기업들이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률 개정과 실행에 상당한 시간이 들 것이므로, 당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저소득층 취업 패키지는 저소득층이 취업할 때까지 최장 1년 동안 무료로 상담, 직업훈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훈련 참여자에 대한 재정지원이 없으므로 실제 저소득층이 참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청년인턴제는 81,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지만, 인턴 종료 후 계획이 없어 6~10개월 간 아르바이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4대 강 정비사업은 연간 63,000개, 3년간 19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밝혔으나, 이는 통계상 건설업의 고용유발효과로 계산한 수치다. 이 사업의 문제점은 다양한 각도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일자리 창출효과의 측면에서도 하천사업이 대부분 중장비 작업이라 그 효과가 적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법 개악
이명박정부는 출범시점부터 ‘상생의 노사문화 창조’를 ‘투자환경의 획기적 개선’의 하위범주로 규정했다. 또한 노사관계에서 법치주의 확립을 내세우며 무관용에 입각한 법집행을 추진했다. 이명박정부는 노동자운동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면서 올해 내에 노동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관련 법안을 노동개악 3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먼저 비정규직법 개정을 살펴보면, 정부는 2008년 11월 10개 부처 공동으로 발표한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의 한 방안으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1월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현행 2년인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기간 제한을 재계 요구대로 4년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오히려 기간제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파견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정부의 최저임금제 개정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고령자 감액적용, 수습노동자 감액기간 연장 및 감액율 상향, 숙식비용 등 현물급여 최저임금 포함, 지역별 최저임금 도입, 결정시한 마감시 공익위원 단독결정권 부여 등이 모두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도급인의 연대책임 확대, 공익위원 선출방식 개선, 감액적용과 적용제외 대상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복수노조 도입을 위한 정부의 강행 처리 최종시점은 최소한 2009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의 창구단일화 방안은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로 수렴되어 왔다. (표2 참조.) 민주노총은 정부의 창구단일화 방안이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산별노조를 무력화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산별노조의 특정사업장에 대한 대각선 교섭이 불가능해 질뿐 만 아니라, 다수노조로 승인되지 않은 소수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 참여할 수 없으며, 현재 산별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라 할지라도 사업장에서 다수노조의 지위를 상실하였을 경우에는 산별교섭에 대한 참여의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자율교섭의 원칙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다양한 방안들이 제출되었다. 민주노총은 전임자의 수와 급여규모의 한도를 입법적으로 정하는 것은 노사자치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의 금지는 입법적 관여사항이 아니므로 현행 노조법 상의 관련규정을 폐지할 것으로 수차례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자율교섭제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자율교섭제 및 노사자율에 의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법 개악 흐름은 노동조합의 기본활동을 크게 제약하고, 노동자 대중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므로 노동자운동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별사업장부터 조업단축, 생산감소로 인한 해고, 임금삭감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고 노동자 대중의 투쟁사기가 상당히 위축되어 있기 특단의 대응책이 요구된다.
결론
정부는 신용경색이 전반적인 은행위기로 나타나고 이것이 기업 전반의 재무악화,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은행 전반에 거쳐 BIS 자기자본비중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한 몇몇 은행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유동성 함정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일차적 타격을 입고 있는 건설업, 조선업과 반도체, 석유화학 산업에서 머지않아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부실이 전체 산업에 거쳐 누적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충격요법을 통한 부실 제거와 경제회생 가능성도 그리 밝지 못하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통한 일자리 유지나 다소간의 일자리 창출계획, 실업대책을 내놓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정부정책의 핵심기조이므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 확실하지만 이것이 일자리 창출이나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실업대책은 보수언론도 제기하는 것처럼 효과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상당수의 제조업이 조업중단, 감산에 돌입하고 있고 향후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대응이 시급하지만 노동자 대중의 심리상태 역시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최근 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 설문조사 결과는 그 단편을 보여준다. (설문조사는 2008년 12월에 실시되었고, 전국 100인 이상 사업체 노사 각 500 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결과 노사관계가 2008년에 비해 불안할 것이라는 전망이 58.8%(노 66.2%, 사 51.4%)이었고, 그 이유로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불안 심화(79.1%), 임금체불(9.4%), 복수노조, 전임자 등 노사관계 법개정을 둘러싼 갈등(7.0%),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갈등(4.6%)이 지적되었다. 나아가 임금동결 또는 삭감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65.5%(노 60.0%, 사 70.0%)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노동자운동의 사기저하라는 조건에서 고용보장을 위해 임금동결이나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릴 수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대불황의 초입에 서있고, 한국경제 역시 장기불황이 예상되는 국면에서 집단해고, 노동신축화, 임금삭감과 같은 자본의 공격에 무기력한 대응에 머문다면 노동조합운동 자체가 약화되거나 해체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은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잔업특근 축소와 조업중단 등 실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자 임금 감소에 대한 임금인상 요구,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와 사회보장 확대, 노동법 개악 반대를 내걸고 전국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의 금융자유화를 비판하고 초민족자본에 대한 통제를 요구하는 사회적 투쟁과 결합해야 한다. 예컨대 금융통제를 위한 제도적 전제조건으로서 금융겸업화와 대형화를 추구하는 자본시장통합법 도입과 금산분리 완화 반대, 한미FTA 비준 반대,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운동이 경제위기 대응의 지도력을 획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