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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3-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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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의 안보정책

자본주의 위기가 평화를 촉진하는가?

임필수 | 정책위원장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은 실제 상황이며 심각하고 많습니다. 쉽게, 짧은 시간에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바마 대통령, 2월 24일 의회연설)

미국 경제위기는 실제 상황이다. 미국 중앙은행(FRB)의 기능은 기준금리 결정과 공개시장조작과 같은 통상적인 수준을 이미 벗어났다. FRB는 새로 도입된 각종 긴급신용공급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회사와 기업에 직접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FRB는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중앙은행, 영국, 스위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한국,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 등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에게도 통화스왑 방식으로 막대한 양의 달러를 공급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정부에 이어 더욱 확대된 부실자산구제계획을 통해 금융회사들의 부실 확산을 막으려 하지만 금융회사들의 부실자산 규모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미국 은행들, 특히 대형은행들조차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미국 정치권과 경제계의 일부 인사들은 이른 시일 안에 은행 국유화를 단행해서 정부가 직접 부실제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경기부양법안을 통해 수천억 달러를 퍼부어서라도 경제위기의 진행속도를 늦추려 시도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 경제가 대불황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 자산가격 하락, 신용경색과 은행위기, 실업률 급상승이라는 악순환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전망은 지극히 어둡다.
그렇다면 파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경제위기는 세계 정치군사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편에서는 미국이 재정난 때문에 안보비용을 감축하기 위해 해외주둔군 축소나 핵무기 상호감축을 포함한 군비축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적대국과 평화협상에 임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즉 자본주의 위기가 평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는 이러한 낙관적 기대를 항상 저버렸다. 특히 미국의 경제력, 대표적으로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으로 보장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당장 오바마 정부가 미국의 일부 ‘과잉’ 군사력을 감축하거나(전략핵탄두 감축), 동맹국과의 공동지배 전략을 발전시키거나(나토 역할 강화), 부시정부가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국가들 즉 이란,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미국의 압도적 군사적 지배력의 유지, 확장 전략의 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미국의 군사지배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냐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한 문제다. 현재 오바마 정부가 천명하고 있는 안보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와 구체적 변화 양상을 검토하면서 그 함의를 밝혀보자.

오바마 정부 안보정책의 우선순위

오바마 정부의 안보정책은 부시 정부를 계승하여 대테러전쟁,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기조를 확고히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러시아 문제가 안보정책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질 것이다.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에서는 무엇보다도 수출달러환류 메커니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동아시아(중국)가 우선순위로 고려될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오바마 대통령후보가 제시한 10대 안보공약은 다음과 같다. ① 대테러전쟁 승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중시하고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원하고 아프가니스탄의 강화를 위해 지원과 훈련을 제공한다. ② 이라크 문제는 이라크정부와 국제적 협력체제에 맡기고 미군을 가급적 16개월 내에 철수시키며,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력 투입방향을 전환하도록 한다. ③ 동맹국, 우방국 정상과의 대화를 중시하고, 나토의 국제적 역할을 증대하며, 동반자 관계를 확대함으로써 스마트 외교를 강화한다. ④ 핵확산, 핵물질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인 제재조치를 강구한다. ⑤ 중국의 부상을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를 주시하고,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며, 중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도록 촉구한다. 특히 중국의 불공정 경제행위에 대해서는 통상제재 등의 조치를 강구한다. ⑥ 러시아군의 그루지야 철수를 압박하고,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완화시키는 한편, 이란의 핵개발을 방지하는 등 주요 이슈에 협력하는 새로운 포괄적 정책을 추구한다. ⑦ 북한, 이란과 조건 없이 직접적인 정상외교를 실시하고, 이 국가들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협력 하에 정치경제적 제재를 가한다. ⑧ 군사혁명에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첨단전력 획득에서 지상군 병력 증원으로 그 방향을 조정한다. ⑨ 미국의 압도적 군사능력과 전 세계적 투사능력을 유지한다. ⑩ 테러, 빈곤, 환경 문제와 같이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리더십을 적극 발휘하며,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한다.
11월 5일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11월 18일 정권인수팀은 대선공약을 국정과제로 재구성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2009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오바마 정부는 대선공약의 실행을 두고 본격적인 재검토에 돌입했다.

이라크 철군과 미국의 이라크 지배전략

미국은 이라크전 개전 이후 매년 전비로 900억 달러 투입한 꼴이었고, 대통령선거 당일 기준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 누적 사망자 수는 4,200명을 넘어섰다. 오바마는 16개월 이내 이라크 완전 철군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부시정부 당시에도 이라크 의회가 통과시킨 주둔군지위협정을 통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계획이 제시되었다. 이라크 영토 내 다국적군 주둔의 법적 근거가 되었던 UN 안보리 결의안 1483호의 시효가 2008년 12월 31일로 만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라크 의회는 이를 대체하는 미군 주둔의 법적근거로 2008년 11월 27일 주둔군지위협정을 통과시켰다.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군은 3년 간 점진적, 단계적으로 철군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즉 미군 전투부대는 2009년 6월 말까지 도시 외곽으로 물러나고, 2011년 12월 31일까지 이라크에서 철수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정 체결 당시 이라크 국방장관도 “데드라인 이후에 일부 미군이 필요할 수 있다”며 그 이후의 주둔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미군의 뮬런 합참의장도 “3년은 긴 시간”이라며 “조건이 변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논의를 계속할 것이다”고 밝혔으며, 백악관 대변인도 2011년은 “희망하는 날짜”라고 말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정부와 다른 획기적인 철군안을 제시할지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2009년 2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철군안은 대선공약과도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는 2010년 8월 31일까지, 즉 19개월 안에 전투부대를 모두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16개월 안에 이라크에서 완전 철군하겠다는 공약과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전투부대를 철군하더라도, 35,000~50,000명에 이르는 지원부대는 2011년 12월 31까지 남게 된다. (현재 이라크에는 전투부대와 지원부대 등 142,000여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에 남는 부대는 여전히 이라크를 점령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실제로 전투부대와 거의 비슷한 임무를 맡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들이 이라크 훈련과 지원, 대테러 임무를 수행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이름만 ‘전투부대’가 아닐 뿐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 군사적 저항은 지속될 것이며, 이라크인과 미군 사상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나아가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2011년 이라크 철군 이후에도 훈련 지원부대, 대테러부대, 병참시설, 공군부대를 이라크에 유지한다고 결정할 수 있으며, 그 규모는 20,000명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한편 2011년까지 미군을 철수한다는 주둔군지위협정은 이라크 의회에서 비준되었지만, 미국 상원에서는 비준되지 않았다. 또한 이 협정은 2009년 여름 중에 이라크에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이라크인은 주둔군지위협정의 철군 일정조차 너무 길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결국 오바마의 결정은 이라크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며, 미국의 이익에 따라 철저히 계산된 행동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대테러전쟁

오바마는 당선 직후 발표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신정부의 핵심목표를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 완수로 설정했다. 오바마는 이라크전쟁에 대해서는 9.11 테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역에 대한 일방적이고 비합법적인 공격이라면서 부시정부를 비난했지만, 국제 테러리즘의 핵심지역으로 이라크 대신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지목하며 이 지역에서 테러세력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응징을 천명했다. <오바마-바이든 플랜>의 구체적 안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나토 휘하 국제안보지원군(ISAF) 병력 규모를 현재 67,000명에서 134,000명으로 배가하고, 여기에 소요되는 170억 달러의 경비를 미국이 주도적으로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33,000명 규모의 미군을 60,000명으로 늘리고, 나토 동맹국의 참여 확대를 요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현지 시찰한 리처드 홀브룩 미국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특사는 2009년 2월 8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라크에서보다 더 힘들 것”이라며 “길고 오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탈레반을 축출하고 내세운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2월 8일 “탈레반과 화해하는 것 외에는 아프가니스탄 안정화에 성공할 길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축출과 미군의 승리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2월 17일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전투, 지원부대 17,000명을 증파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이들 중 일부는 4월 20일로 예정된 아프가니스탄 선거 전에 보내고 나머지는 여름에 파병한다는 방침이다. 오바마 정부는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 일단 추가 파병을 결정했지만, 총괄적인 아프가니스탄 전략 재검토는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3월 말까지 완료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은 1980년대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친소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을 육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탈레반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지역 군벌을 비롯한 잡다한 세력과 동맹을 맺고 있다. 미국의 단기 전략은 아프가니스탄 전체의 장기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침식하고 있다.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략검토를 두고 미국 일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통일국가로 유지하려는 계획을 재검토하자고 주장한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어 영토분할까지 고려해야한다는 주장이 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이란 핵문제와 대선

데니스 블레어 미 국가정보국 국장은 2월 12일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서 “미 정보기관들은 이란이 지난 2003년 말 핵무기 설계 및 무기화 작업을 중단한 이후 이를 재가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란이 현재 핵무기 생산을 위한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 생산에 착수할 것인지 여부는 이란 내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란 핵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현재까지도 다소 모호하다.
하지만 최근 이란과 미국의 관계개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언급되기도 한다. 이는 무엇보다 이란 내부의 경제사정의 악화 때문이다. 2008년 7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가 현재 100달러 이상 떨어져 4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란의 인플레이션은 25%를 넘어섰고 실업률 역시 계속 치솟고 있다. 이란 정부는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 감소로 예산을 감축해야 할 곤경에 처해 있다. 이란의 산유량도 지난 수년간 하루 400만 배럴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일부 석유 전문가들은 이란의 유전 대부분이 상당히 노후했기 때문에 2030년이 되면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심지어 이란은 경제제재에 따른 정유시설 부족으로 국내 소비용 휘발유의 60%만을 이란 내에서 조달하고 나머지는 인도, 프랑스 등에서 수입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란이 경제제재에서 벗어나서 석유와 가스 개발을 위한 투자를 끌어와야 할 시급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출되고 있다. 특히 2009년 6월 이란 대통령 선거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란과 미국 사이에는 어떤 공식적 대화채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보수파는 이란과의 접촉을 이란 대선 이후로 미루고 이란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나토 확대와 러시아의 선택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동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나토 확대(동진) 전략을 추구했다. 1999년에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했고, 2004년에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가입하여 현재 정식 가입국은 26개국이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등 5개국 가입이 추진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이 계속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한 부시 정부는 이란의 유럽공격에 대비해 동맹국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방어망(MD) 기지를 추진하였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미사일방어기지 건설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유럽과의 재래식무기감축협상(CFE)을 중단하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지대의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으며, 벨로루시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8년 8월에는 그루지야 내 남(南) 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둘러싼 민족갈등이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으로 터져 나왔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가 1991년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2009년 12월 5일 효력 만료된다. START는 전략 핵탄두를 6,000기 이하로 상호 감축하기로 합의한 협정이다. 양국은 START를 대신하는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이 역시도 부시 행정부가 적극 추진하던 동유럽 미사일방어망 구축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유럽을 무대로 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른바 ‘신냉전’)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나토 확대를 기본적인 방침으로 관철시키면서도 러시아를 달래기 위한 몇몇 방안을 찾고 있다. 2월 11일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MD 시스템의 동유럽 배치를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고위관리도 고위관리들이 러시아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데 협조하면 동유럽 미사일방어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러시아에 우회적으로 제안했다. 한편 그 이전부터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는 대신 미국은 MD 계획에서 양보하라고 압박해왔다. 러시아는 동유럽 MD 계획 재검토 가능성이라는 미국 측의 신호해 반응하여 2월 14일 외무장관을 통해 러시아 영토를 경유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비군사 물자를 수송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러시아 역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국제유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주가는 지난해 8월 대비 80% 가까이 떨어졌고, 6,000억 달러에 육박했던 외환보유액은 3,800억 달러대로 줄었다. 실업자도 600만 명을 넘어섰다. 러시아에서 서방자본의 철수는 곧 러시아 경제의 붕괴를 뜻한다. 러시아 경제의 취약성은 러시아 대서방정책의 근본적 제약요인이다.

미국의 핵 정책

<오바마-바이든 플랜>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제시했다. 그 핵심은 강력한 핵 반확산 정책을 구사하며, 동시에 러시아와의 핵감축협상을 통해 미국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중대한 결단을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핵정책으로 이미 선언된 것과 가능성이 있는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바마 정부는 NPT 체제를 더욱 강화해서 핵무기 보유국이 더 이상 출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이란과 같은 국가가 NPT 규정을 위반하면 자동적으로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 5월 열릴 NPT 검토회의에서 이 목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둘째, 오바마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안보구상(PSI)의 제도화를 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상원의원 재임 당시 범세계적인 핵확산 방지를 위해 PSI 운영 강화를 촉구한 바 있으며,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도 테러범들이 핵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핵물질의 안전을 확보하고 PSI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셋째, 오바마 정부는 미국-러시아 핵무기 상호감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런데 그 감축목표가 어떻게 설정될 것이냐가 논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작성한 보고서, <전략적 리더십, 21세기 국가안보 전략을 위한 프레임워크>(2008년 7월 24일)는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전략핵무기를 1,000개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넷째, 오바마 정부가 국제핵연료은행 창설을 제안할 수도 있다. 국제핵연료은행은 각국이 군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우라늄 농축 시설 건설을 막기 위해 IAEA가 특별 시설을 설치, 민간용 핵연료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국제사회가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할 수 있는 핵연료를 공동으로 제공, 핵 개발 명분을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오바마는 상원의원이던 2007년 8월 척 헤이글, 존 케리 등 4명의 상원의원과 함께 국제핵연료은행 창설을 위해 미국이 5,000만 달러를 기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당시 상원에서 통과되지 못했지만, 오바마가 발의에 참여했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 후 다시 추진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섯째,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1996년 유엔총회에서 어떠한 형태, 규모, 장소에서도 핵실험을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채택된 CTBT는 그동안 178개국이 서명했지만 원자로를 보유한 44개국 중 9개국이 이를 비준하지 않아 지금까지 발효되지 않고 있다.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 이란, 이스라엘, 북한, 인도네시아, 이집트, 인도, 파키스탄 등이다. 부시 행정부는 CTBT가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상원에 조약 비준을 요청하지 않았다. 2009년 1월 14일 미 상원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 청문회에 클린턴 상원의원이 제출한 답변서는 CTBT 비준을 추진하고 부시 정부가 반대했던 핵분열물질 생산금지조약도 받아들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미국은 러시아와 전략핵무기감축협상을 진행하고 CTBT를 비준하여 세계적 핵감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NPT 체제 강화나 PSI의 제도화를 통해 강력한 비확산/반확산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덧붙여 국제핵연료은행 창설을 제안하여 ‘핵의 평화적 이용’을 세계적 차원에서 관리, 통제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2010년 NPT 평가회의는 미국 핵정책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미동맹

2008년 6월 26일 북한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2007년 10월 3일)에서 명기한 핵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 중국에 제출했다. 또한 2008년 7월 12일 6차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서는 핵 신고서에 대한 “검증조치는 시설 방문, 문서 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및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타조치를 포함하고, 필요시 검증체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관련 검증에 대해 자문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환영하며, 검증의 구체적인 계획과 이행은 전원 합의의 원칙에 따라 한반도비핵화 실무그룹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검증조치 중에서 특히 시료채취 여부를 두고 북한과 나머지 참여국간 이견이 첨예하게 맞섰다. 원자로에서 인출한 사용후 연료봉 시료, 재처리시설에서 방출된 액체 폐기물 시료, 원자로 건물 내외의 환경 시료 등을 채취해 분석하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량, 재처리 횟수, 원자로 가동 주기, 재처리 기간, 심지어 플루토늄의 품질까지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술수준은 20~30년 전 재처리 횟수, 원자로 가동 주기, 재처리 기간, 사용 전 핵 연료봉의 생산 주기 등까지 잡아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시료채취는 다음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며 완강히 거부했고, 미국도 테러지원국 해제를 유보시켰다. 이에 대해 북한은 진행 중이던 핵시설 불능화를 중단하고 나아가 복구에 착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핵 신고서 제출 이후 검증조치에 대한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 힐 차관보가 10월 2일 북한과 구체적 검증조치에 합의하고, 미국 정부는 10월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미 국무부는 ‘시료채취와 법의학적 방법을 포함한 과학적 절차’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북한은 미 국무부의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이를 명확히 정리하기 위해 12월 4-5일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동이 진행됐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고, 결국 2008년 12월 11일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개최되었으나 핵 검증의정서 채택에 북한이 반대하여 합의 없이 종료되었다. 다만 북한의 핵 불능화가 지속되고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지원도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도 북한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이제 6자회담 2단계는 오바마 정부로 넘어오게 되었다.
지난 미국 대선 시기에 오바마 선거캠프에서 밝힌 대북정책 로드맵은 2008년 말, 2009년 초에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명문화한 비핵화 2단계가 완료되고, 비핵화 3단계가 진행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2009년 평양에 외교대표부 설치, 6자간 한반도 평화체제논의 → 2010년 북미정상회담과 정전협정 관련국간(3자 혹은 4자) 종전회담 → 2012년 북미수교와 종전선언’이었다. 북미관계의 진전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미국의 대북특사가 북한을 방문하여 전반적인 문제를 협의한 후 대체로 예정대로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오바마 역시 철저한 검증을 강조하고 있고, 시료채취 여부와 미신고시설 검증이라는 두 가지 핵심 쟁점이 남아 있기 때문에 6자회담 2단계에서 3단계로의 진전과 이에 따른 북미 외교관계 수립 과정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국력과 위상을 평가하며, ‘글로벌 동맹’으로서 한미동맹의 성격을 규정하여, 미국의 안보관심사에 대한 한국의 참여 수준과 폭을 확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2014년 4월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며, 한미동맹은 한국-미국-일본-호주를 잇는 네트워크 동맹으로 확대 전환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반테러전쟁을 추진하면서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하거나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과 이동, 순환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동맹국의 역할 증대와 경비부담 증액을 요구할 것이다. 결국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미국 무기 구매, 아프가니스탄 반테러전쟁 기여, 국제평화유지군 파병, 한국의 PSI 공식가입 문제가 한미동맹 현안으로 계속 부각될 것이다.

미국 안보정책과 한국 평화운동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안보정책의 핵심 목표는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이었고, 9.11 이후에는 대테러전쟁의 승리가 새로운 목표로 강력히 부상했다. 오바마 정부는 기존 안보정책의 핵심목표를 충실히 추진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테러전쟁의 핵심목표를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를 위해 지상군 투입을 확대하며, 국방혁신도 최첨단무기 획득에서 지상군 보강으로 변환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고전을 거듭하고 있음에 따라 17,000명의 병력 증파를 결정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력으로 ‘테러세력’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 철군 계획은 대선시기 공약과 거리가 멀며, 부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2011년 이라크 철군 이후에도 훈련지원부대, 대테러부대, 병참시설, 공군부대를 이라크에 유지한다고 결정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을 추구하면서, 특히 NPT체제의 강화(제재수단의 제도화)와 PSI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반확산 정책의 반대급부로 미국-러시아 핵무기 상호감축이나 국제핵연료은행 창설, CTBT 비준 방안이 민주당 주변 싱크탱크 등에서 제안되고 있으나 이는 미국의 압도적 핵 우월성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 경제위기의 여파 속에서 중동 각국의 정치 상황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향은 불균등하다. 이라크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종파 간 분쟁으로 인해 오히려 친미 세속정당이 약진한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영토분할에 반대하는 보수파가 약진했다. 이란은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6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친미 개혁파의 부상이 오바마의 등장과 맞물려 중동지역의 불안을 완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갈등의 본질적 요소 즉 미국의 중동지배전략이 제거되지 않으므로 장기적인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기존의 6자회담 프로세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상회담을 포함해 북미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있으나, 부시정부 2기에 들어 이미 상당한 수준의 북미 직접대화가 진행되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을 사실상 준공식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기존 핵의 폐기보다는 핵확산 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과 같이 미국과 동맹국 또는 협력국이 아닌 북한을 대상으로 미국이 이를 수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오바마 대선캠프의 계획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에 6자회담 2단계가 종료되고 북한으로부터 핵(핵장치, 핵물질) 반출이 이뤄지는 3단계로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북미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이 추진된다. 만약 이러한 프로세스가 실제로 진행된다면 미국이 구상하는 종전협정과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군축을 담는 평화협정 구상 사이의 쟁점이 형성될 수 있다. 한편 오바마 정부는 안보 사안에 대해 동맹국의 ‘공정한 기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위기로 인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중동지역 추가파병, 유엔평화유지군 활동, 방위비분담 증액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의 평화운동은 무엇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하나? 첫째, 미국의 대테러전쟁, 중동지배전략에 맞서는 평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사실상 새로운 형태로 지속될 수 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한국을 포함해 동맹국들을 더욱 헤어 나올 수 없는 전쟁의 늪으로 끌고 갈 것이다. 미국의 중동지배전략의 핵심지주의 하나인 이스라엘은 보수파의 득세 속에서 더욱 강경한 팔레스타인 전략으로 중동 전체의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 지난 2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에 맞서 국제적인 시위가 전개되었고, 세계사회포럼은 3월 30일 <팔레스타인 인민과 연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 민중운동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며, 글로벌동맹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될 한미동맹의 침략행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명분으로 기존의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정책을 제도화된 군사적 강제력으로 보강하면서 압도적인 핵우위 전략을 유지할 것이다. 세계 반핵운동은 2010년 뉴욕에서 개최될 NPT 검토회의에 즈음해 국제적 공동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민중운동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세계 핵무기 철폐와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를 위한 운동을 형성해야 한다. 셋째, 오바마 대북정책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미국은 동아시아 군사적 지배전략을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할 것이다. 오바마의 북미정상회담과 종전협정은 2기 부시정부의 노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 주한미군 주둔, 동아시아 핵옵션과 같은 기존 군사노선은 유지된다. 따라서 북미대화가 진행될수록 한국 평화운동은 더욱 근본적 도전에 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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