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금융세계화 전략의 파산
금융투자업에 겸업화와 포괄주의를 도입하는 자통법
세계경제가 대불황에 진입하고 있다. IMF는 2009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G20 국가 중 최악인 -4%로 예상했다. 환율이 다시 급등하여 1,500원선을 훌쩍 돌파했으며, 주식이 폭락하여 1,000선을 위협하는 등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불안정성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시장 발전을 기치로 내건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 2009년 2월 4일부로 시행되었다. 2005년부터 추진되어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자통법이 세부 감독규정 정비와 시행령 마련으로 1년 6개월 동안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본격 시행된 것이다. 자통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 법인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 간접투자자산운영법, 신탁업법, 종합금융회사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꾼 것으로 한국 금융기관과 금융제도의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주요 내용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금융업 간 겸영이 대폭 허용되었다. 자통법으로 기존에 겸업이 제한되었던 증권회사, 선물회사, 자산운영사(투자일임사, 투자자문사 포함), 신탁회사가 금융투자회사라는 이름으로 겸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금융사의 겸업에 따른 투자자와 기업 간, 투자자 간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서 이해상충방지체계(차이니즈 월)를 설치했다. 또 금융투자회사가 은행이 독점하고 있던 지급결제망에 가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외국환업무와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금융투자상품 규제에 포괄주의를 도입했다. 자통법에 따르면 은행의 예금과 달리 고수익을 목적으로 하면서 원본이나 원본을 초과하는 손실이 가능한 모든 상품이 금융투자상품이다(금융투자상품은 다시 원본 손실이 가능한 상품인 증권과, 원본을 초과하는 손실이 가능한 상품인 파생금융상품으로 나뉜다). 예전에는 법에서 한정적으로 열거한 금융투자상품만을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어서 신규 금융투자상품의 개발에 사전적 제한이 가해졌다. 그러나 자통법에서는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의 개발에 대해서 사전적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금융상품개발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포괄주의를 채택했다.
셋째 기능별 규제 체제를 도입했다. 기존의 기관별 규제 하에서는 금융기관의 종류에 따라 각기 상이한 규제가 부과되었다. 은행과 관련한 상품과 업무는 은행법의 규제를 받고, 증권사의 경우는 증권거래법에 의한 규제를 받았다. 그러나 자통법이 시작되면서 자본시장과 관련된 상품이나 업무를 취급하는 한, 은행이나 증권사라는 기관형태의 차이에 관계없이 자통법이라는 단일 법률에 의해 규제를 받게 되었다.
넷째 투자자 보호조치가 강화되었다. 자통법 시행에 따른 보완조치로 투자권유시 상품내용과 위험을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설명의무와 불완전판매에 대한 판매회사의 책임을 강화했다.
금산분리 완화와 신금융서비스 허용 효과 발생
자통법으로 금융기관별 장벽이 해체되고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큰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금융기관별 장벽 해체로 금융투자회사가 자본시장과 관련된 모든 업무와 소액결제와 관련된 은행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금융투자회사가 은행고객을 흡수하고 사업영역 확장이나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확대해 은행 못지않은 증권사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증권연구원은 은행 예치자금 중에 20조 원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급하는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자통법으로 금산분리 완화효과도 발생한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지만 각각 삼성증권,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을 가지고 있다. 자통법으로 증권사가 지급결제망을 갖추기 때문에 일반 고객의 입장에서는 은행과 서비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사실상 해당 증권사가 사실상 삼성은행, 현대자동차은행, 현대중공업은행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 직원 25만 명, 현대자동차 직원 9만 명, 현대중공업 직원 2만 5천명과 하청기업 등 관계사들이 해당 증권사의 계좌유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통법으로 기존에 존재했던 300여 개의 자본시장관련 규제의 3분의 1 이상이 철폐되거나 완화되었다. 그 중 핵심은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규제가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바뀌는 것이다. 이로써 금융시장 개방도 거의 무제한 허용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미 FTA에서 미국에는 있으나 한국에 없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 즉 신금융서비스 허용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 협상 성과라고 주장했다. 상업적 주재가 없는 해외 금융회사의 신금융서비스 판매는 예전처럼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 추가 개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 금융투자회사 역시 국내에 지사나 자회사를 두면 한국 회사로 인정받기 때문에 자통법이 시행되면 똑같이 포괄주의 규제를 받는다. 즉 자통법으로 한미 FTA 협상결과와 무관하게 초민족 금융자본의 신금융서비스가 무차별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한편 새로운 금융투자상품 개발이 자유로워지고, 금융투자회사 간 장벽이 없어지면서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자산운영업 겸업 여부다. 자산운영업과 증권업을 겸업하면 펀드에 편입된 주식의 매매회전율을 높여서 위탁매매업무의 수수료 수입을 늘리는 행위, 자신이 발행한 유가증권을 펀드에 넘겨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시장의 자기규제’가 작동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자산운영업과 증권업을 겸업하는 금융투자회사의 신뢰성이 의심받기 때문에 섣불리 겸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회사 형태로 자산운영사를 존속시킨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포괄주의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눈속임할 수 있는 신규상품을 개발하고, 자산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혁신적인 거래 기법을 사용한다면 이해상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금융거품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도 높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초민족 금융자본과 재벌을 위한 금융제도 정비
자통법은 금융제도에 관련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핵심으로, IMF 경제위기 이후 추진된 금융개혁의 일단락이자 한국사회의 금융화를 한층 심화시키는 조치다. 자통법을 입안 추진하고 통과시킨 것은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계획하고, 같은 해 12월 재정경제부 산하에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금융허브란 국내 금융시장의 축을 자본시장으로 이동시키고 국제 금융시장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초민족 금융자본의 국내 유입을 촉진하고 국내 금융시장의 덩치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재벌과 금융자본의 발전을 도모해서 그들을 국제적인 금융자본으로 성장시키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는 자산운영업에 중점을 두는 특화 금융허브를 기획했다. 자산운영업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하여 금융자산 등에 투자하여 운영하고 그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금융업이다. 즉 자산운용업을 발판으로 채권, 주식, 외환 시장의 선진화를 도모해 국내 금융시장의 매력도를 증진시키고, 나아가 외국 금융기관을 유치해서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금융허브 달성을 위해 임기 내인 2007년까지 실행할 7대 추진과제로 ① 자산운용업을 선도산업으로 육성 ② 채권, 주식, 외환 시장의 선진화 ③ 지역특화 금융수요 개발 ④ 금융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⑤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 설립 ⑥ 금융 규제 및 감독 시스템 혁신 ⑦ 금융 관련 경영 및 생활 여건 개선을 선정했다.
금융허브전략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제정, 2004년 퇴직연금제 도입, 2005년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 한국투자공사(KIC) 설립, 2006년 자통법 제정방안 발표의 차례로 금융제도를 정비했다. 간접투자자산운영법은 각종 펀드(간접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으로 이전에는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유가증권으로 제한되었던 투자대상을 환율, 금리 등 장내외 파생상품과 부동산, 금, 영화, 곡물 등 실물자산으로 대폭 확대했다. 자산운용사의 범위도 확대해 은행과 보험사도 펀드를 운영할 수 있게 했다. 2004년에는 간접투자자산운영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사모펀드의 설립이 가능해지고, 그 운용을 위한 제약도 대폭 완화되었다. 자산운용업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으로 이미 거대하게 조성되어 있는 자금을 금융시장에 투입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인데, 간접투자자산운영업법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정비되었다.
퇴직연금제가 도입되고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허용된 것도 자본시장의 덩치를 키우기 위한 조치였다. 퇴직연금의 40%까지 국내외 상장 주식, 주식형 펀드, 해외펀드, 회사채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고, 또 기업이 적립한 퇴직금의 60%를 외부 금융기관이 위탁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퇴직금이 일종의 금융상품이자 투자자산이 된 것이다. 국민연금의 외부위탁 비율도 대폭 확대되어 2003년 3.3%에서 2008년 22.7%(56조 8천억 원)로 대폭 늘어났다. 또 연기금뿐 아니라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기금과 같은 정부 관련 기금 역시 투자대상을 다변화해 주식이나 각종 펀드에 투자되고 있다.
2005년 설립된 한국투자공사는 국부펀드로서 외국계 자산운용사를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연기금과 외환보유액을 해외금융기관에 투자 일임의 방식으로 위탁하고 있다. 2009년 현재 한국투자공사는 297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데 이중 80~90%를 국내외 자산운용사에 재위탁할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투자공사를 통해 2012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 중 10~20개의 지역본부를 국내에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법 제도 정비만으로는 금융허브를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완비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금융시장 전반을 일거에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치는 포괄적인 금융빅뱅이 필요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재벌기업이 축적해 놓고 있는 자본을 금융시장으로 유인하고, 외국계 금융자본을 유치하고, 모든 국민을 금융투자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자통법 시행과 금산분리 완화가 추진되어야 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한미 FTA가 비준되고, 재벌이 지주회사로 전환된다면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한국 경제와 정치 사회의 제도 정비는 완비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노무현은 임기 말기까지 자통법 시행, 금산분리 완화, 한미 FTA 비준에 힘을 쏟았다.
금융화 진전을 위한 이명박의 금융법안 개정 시도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 전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자통법 이후 후속조치로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고, 사모펀드 규제 완화와 헤지펀드 허용을 통해 자본시장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이미 지난 1월 자통법 개정안 등 10개 금융법안이 통과되었고, 현재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중요한 금융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들은 자통법의 시행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완하고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이다.
은행법 개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또 공적 연기금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보고, 사모투자전문회사(PEF,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투자기업의 경영에 참가하여 기업가치를 제고한 후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간접투자기구)의 경우 산업자본이 30% 이상 출자한 경우에만 산업자본으로 간주한다. 결국 산업자본은 은행 주식의 10%를 직접 보유하고, 사모투자전문회사를 통해서 나머지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은행을 우회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이미 산업자본이 주요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를 지배하고 있어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은행법이 개정된다면 산업자본에게 은행마저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터줘, 금산분리의 마지막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비은행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서 재벌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쉽게 만든 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보험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지주회사가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를 직접 지배하는 방식이 허용되고, 금융투자지주회사는 직접 지배 이외에도 금융자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지배하는 방식도 허용된다. 즉 보험회사는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는 반면 금융투자회사는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으로 지주회사로의 전환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대상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경은 불가능하다. 삼성그룹의 복잡한 상호출자를 정리하려면 삼성생명 산하에 비금융자회사를 두는 방안이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삼성증권 산하 비금융자회사는 허용되지만, 삼성생명 산하에는 비금융자회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험업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한 추가 개정요구가 있는 상황이며 앞으로 그런 방향의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투자회사는 자통법으로 성장의 길을 최대한 확보했는데,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제는 금융투자회사가 산업자본까지 합법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복잡한 출자구조를 가진 대기업집단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금융투자산업과 보험산업이 대형화되고 겸업화되어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도 은행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강제해서 한국 재벌이 금융적 수단을 통해 경제지배력을 확장하도록 만들며 나아가 전체 경제의 금융화를 심화시키면서 금융위기에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를 형성할 것이다.
증권시장 중심 금융세계화의 파산, 그래도 우리는 추진한다?
자통법으로 한층 더 강화될 한국의 금융화를 비판하기 위해서 금융세계화에서 대부자본과 가공자본이 수행하는 역할의 특성을 구별해볼 필요가 있다. 금융자본은 산업자본 또는 실물자본과 관련하여 대부자본과 가공자본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대부자본의 대표적 형태는 은행신용이다. 대부자본은 이자나 원금상환처럼 미리 결정된 현금흐름을 갖는 계약에 기초한다. 대부자는 일정한 기간 동안 차용자에게 자금을 이전시키고, 만기가 되면 채무자는 원금을 상환하고 이자를 지급한다.
반면 가공자본은 금융시장에서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는 증권들이다. 가공자본은 공장, 설비, 원료 등과 같은 실물적 자본에 어떤 대응물도 갖지 않는다. 가공자본의 가격은 미래의 수입에 대한 금융시장에서의 평가에 의존한다. 가공자본의 가치를 평가할 요인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가공자본의 가격은 매우 불안정한 파동을 보인다. 가공자본의 거래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개발된 파생상품은 실물적 기초의 측면이나 불안정성의 측면에서 증권보다 한층 더 나아간 것이다.
역사적으로 1970년대 유로시장 중심으로 석유달러가 유입되면서 초민족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세계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란혁명과 2차 석유위기로 촉발된 1979-82년의 경제위기로 은행 중심 금융세계화가 난관에 봉착한다. 고금리(1979년 미 연준의장 볼커의 대대적인 금리인상)로의 정책전환이 주변부의 외채위기와 중심부의 은행위기로 귀결된 것이다.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채택된 고금리 정책으로 해외 달러유동성의 부족이 야기되어 세계경제의 불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신용긴축 없이 달러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아니라 증권시장을 통해 달러를 흡수하는 것이 필요했다. 증권의 가격은 이자율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증권시장의 부양은 신용긴축 없이 해외의 과잉달러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 중심의 금융세계화는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가공자본의 급속한 성장을 통해 금융세계화가 진전되었다. 먼저 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보충하기 위해서 단기채권을 발행하고 채권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1986년 영국이 외국인에 의한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를 모두 허용하는 ‘금융빅뱅’을 단행해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흡수함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다른 중심부 국가들도 잇달아 주식시장을 개방했다. 증권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금융기관 중에서 전통적으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은행의 비중이 감소하고 연기금과 투자신탁기금과 같은 비은행 금융기관이 금융시장의 주요 행위자로 등장했다. 초민족 법인자본도 금융적 활동을 다각화함에 따라 더 이상 산업자본이 아니라,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산업을 지배적 요소로 하는 금융그룹’으로 변모했다. 이들은 금융기관을 자회사로 운영하면서 그룹의 내부금융시장을 형성하거나, 지주회사의 금융지도부가 금융거래 전체를 조직하고 통제했다. 그리고 투자은행은 인수합병(M&A)과 금융혁신을 주도하면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를 선도했다.
그러나 지금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에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파산하거나 독자 생존을 포기했다. 금융거품의 붕괴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확산되면서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목표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지배세력은 현재의 위기가 보여주는 역사적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금융시장 활성화와 금융투자기관 대형화로 금융세계화로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리고 있다.
자통법 제정의 취지가 달성된다면 IMF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 사회전반의 금융화와 투기화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를 투자자로 포섭하고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결탁시키면서 모든 국민이 금융투자자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게 한다(그러나 그 과실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금산분리 완화로 재벌을 필두로 한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화도 더 진전된다. 적절한 실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금융부문으로 쏠리고, 금융지주회사가 산업자본을 소유하는 형태로 재벌의 지배구조가 변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율하락추세가 반등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금융적 축적마저 붕괴한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금융시장 육성으로 한국경제가 독자적으로 회생할 리는 없다. 금융시장 육성은 실물경제와 거의 관련이 없는 휘발성 높은 가공자본의 거품을 확대해서 금융위기의 위험을 높인다. 증권을 다시 증권화하고, 증권화 사슬을 연장하고, 통제되지 않는 파생상품을 확산시킨 결과 형성된 금융거품이 이번 경제위기의 시발점이었다.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편승하려는 조치는 미국의 파국적 결과가 말해주듯이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민중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세계경제가 대불황에 진입하고 있다. IMF는 2009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G20 국가 중 최악인 -4%로 예상했다. 환율이 다시 급등하여 1,500원선을 훌쩍 돌파했으며, 주식이 폭락하여 1,000선을 위협하는 등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불안정성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시장 발전을 기치로 내건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 2009년 2월 4일부로 시행되었다. 2005년부터 추진되어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자통법이 세부 감독규정 정비와 시행령 마련으로 1년 6개월 동안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본격 시행된 것이다. 자통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 법인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 간접투자자산운영법, 신탁업법, 종합금융회사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꾼 것으로 한국 금융기관과 금융제도의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주요 내용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금융업 간 겸영이 대폭 허용되었다. 자통법으로 기존에 겸업이 제한되었던 증권회사, 선물회사, 자산운영사(투자일임사, 투자자문사 포함), 신탁회사가 금융투자회사라는 이름으로 겸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금융사의 겸업에 따른 투자자와 기업 간, 투자자 간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서 이해상충방지체계(차이니즈 월)를 설치했다. 또 금융투자회사가 은행이 독점하고 있던 지급결제망에 가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외국환업무와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금융투자상품 규제에 포괄주의를 도입했다. 자통법에 따르면 은행의 예금과 달리 고수익을 목적으로 하면서 원본이나 원본을 초과하는 손실이 가능한 모든 상품이 금융투자상품이다(금융투자상품은 다시 원본 손실이 가능한 상품인 증권과, 원본을 초과하는 손실이 가능한 상품인 파생금융상품으로 나뉜다). 예전에는 법에서 한정적으로 열거한 금융투자상품만을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어서 신규 금융투자상품의 개발에 사전적 제한이 가해졌다. 그러나 자통법에서는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의 개발에 대해서 사전적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금융상품개발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포괄주의를 채택했다.
셋째 기능별 규제 체제를 도입했다. 기존의 기관별 규제 하에서는 금융기관의 종류에 따라 각기 상이한 규제가 부과되었다. 은행과 관련한 상품과 업무는 은행법의 규제를 받고, 증권사의 경우는 증권거래법에 의한 규제를 받았다. 그러나 자통법이 시작되면서 자본시장과 관련된 상품이나 업무를 취급하는 한, 은행이나 증권사라는 기관형태의 차이에 관계없이 자통법이라는 단일 법률에 의해 규제를 받게 되었다.
넷째 투자자 보호조치가 강화되었다. 자통법 시행에 따른 보완조치로 투자권유시 상품내용과 위험을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설명의무와 불완전판매에 대한 판매회사의 책임을 강화했다.
금산분리 완화와 신금융서비스 허용 효과 발생
자통법으로 금융기관별 장벽이 해체되고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큰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금융기관별 장벽 해체로 금융투자회사가 자본시장과 관련된 모든 업무와 소액결제와 관련된 은행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금융투자회사가 은행고객을 흡수하고 사업영역 확장이나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확대해 은행 못지않은 증권사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증권연구원은 은행 예치자금 중에 20조 원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급하는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자통법으로 금산분리 완화효과도 발생한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지만 각각 삼성증권,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을 가지고 있다. 자통법으로 증권사가 지급결제망을 갖추기 때문에 일반 고객의 입장에서는 은행과 서비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사실상 해당 증권사가 사실상 삼성은행, 현대자동차은행, 현대중공업은행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 직원 25만 명, 현대자동차 직원 9만 명, 현대중공업 직원 2만 5천명과 하청기업 등 관계사들이 해당 증권사의 계좌유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통법으로 기존에 존재했던 300여 개의 자본시장관련 규제의 3분의 1 이상이 철폐되거나 완화되었다. 그 중 핵심은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규제가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바뀌는 것이다. 이로써 금융시장 개방도 거의 무제한 허용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미 FTA에서 미국에는 있으나 한국에 없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 즉 신금융서비스 허용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 협상 성과라고 주장했다. 상업적 주재가 없는 해외 금융회사의 신금융서비스 판매는 예전처럼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 추가 개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 금융투자회사 역시 국내에 지사나 자회사를 두면 한국 회사로 인정받기 때문에 자통법이 시행되면 똑같이 포괄주의 규제를 받는다. 즉 자통법으로 한미 FTA 협상결과와 무관하게 초민족 금융자본의 신금융서비스가 무차별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한편 새로운 금융투자상품 개발이 자유로워지고, 금융투자회사 간 장벽이 없어지면서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자산운영업 겸업 여부다. 자산운영업과 증권업을 겸업하면 펀드에 편입된 주식의 매매회전율을 높여서 위탁매매업무의 수수료 수입을 늘리는 행위, 자신이 발행한 유가증권을 펀드에 넘겨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시장의 자기규제’가 작동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자산운영업과 증권업을 겸업하는 금융투자회사의 신뢰성이 의심받기 때문에 섣불리 겸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회사 형태로 자산운영사를 존속시킨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포괄주의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눈속임할 수 있는 신규상품을 개발하고, 자산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혁신적인 거래 기법을 사용한다면 이해상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금융거품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도 높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초민족 금융자본과 재벌을 위한 금융제도 정비
자통법은 금융제도에 관련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핵심으로, IMF 경제위기 이후 추진된 금융개혁의 일단락이자 한국사회의 금융화를 한층 심화시키는 조치다. 자통법을 입안 추진하고 통과시킨 것은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계획하고, 같은 해 12월 재정경제부 산하에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금융허브란 국내 금융시장의 축을 자본시장으로 이동시키고 국제 금융시장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초민족 금융자본의 국내 유입을 촉진하고 국내 금융시장의 덩치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재벌과 금융자본의 발전을 도모해서 그들을 국제적인 금융자본으로 성장시키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는 자산운영업에 중점을 두는 특화 금융허브를 기획했다. 자산운영업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하여 금융자산 등에 투자하여 운영하고 그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금융업이다. 즉 자산운용업을 발판으로 채권, 주식, 외환 시장의 선진화를 도모해 국내 금융시장의 매력도를 증진시키고, 나아가 외국 금융기관을 유치해서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금융허브 달성을 위해 임기 내인 2007년까지 실행할 7대 추진과제로 ① 자산운용업을 선도산업으로 육성 ② 채권, 주식, 외환 시장의 선진화 ③ 지역특화 금융수요 개발 ④ 금융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⑤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 설립 ⑥ 금융 규제 및 감독 시스템 혁신 ⑦ 금융 관련 경영 및 생활 여건 개선을 선정했다.
금융허브전략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제정, 2004년 퇴직연금제 도입, 2005년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 한국투자공사(KIC) 설립, 2006년 자통법 제정방안 발표의 차례로 금융제도를 정비했다. 간접투자자산운영법은 각종 펀드(간접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으로 이전에는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유가증권으로 제한되었던 투자대상을 환율, 금리 등 장내외 파생상품과 부동산, 금, 영화, 곡물 등 실물자산으로 대폭 확대했다. 자산운용사의 범위도 확대해 은행과 보험사도 펀드를 운영할 수 있게 했다. 2004년에는 간접투자자산운영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사모펀드의 설립이 가능해지고, 그 운용을 위한 제약도 대폭 완화되었다. 자산운용업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으로 이미 거대하게 조성되어 있는 자금을 금융시장에 투입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인데, 간접투자자산운영업법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정비되었다.
퇴직연금제가 도입되고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허용된 것도 자본시장의 덩치를 키우기 위한 조치였다. 퇴직연금의 40%까지 국내외 상장 주식, 주식형 펀드, 해외펀드, 회사채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고, 또 기업이 적립한 퇴직금의 60%를 외부 금융기관이 위탁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퇴직금이 일종의 금융상품이자 투자자산이 된 것이다. 국민연금의 외부위탁 비율도 대폭 확대되어 2003년 3.3%에서 2008년 22.7%(56조 8천억 원)로 대폭 늘어났다. 또 연기금뿐 아니라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기금과 같은 정부 관련 기금 역시 투자대상을 다변화해 주식이나 각종 펀드에 투자되고 있다.
2005년 설립된 한국투자공사는 국부펀드로서 외국계 자산운용사를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연기금과 외환보유액을 해외금융기관에 투자 일임의 방식으로 위탁하고 있다. 2009년 현재 한국투자공사는 297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데 이중 80~90%를 국내외 자산운용사에 재위탁할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투자공사를 통해 2012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 중 10~20개의 지역본부를 국내에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법 제도 정비만으로는 금융허브를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완비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금융시장 전반을 일거에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치는 포괄적인 금융빅뱅이 필요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재벌기업이 축적해 놓고 있는 자본을 금융시장으로 유인하고, 외국계 금융자본을 유치하고, 모든 국민을 금융투자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자통법 시행과 금산분리 완화가 추진되어야 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한미 FTA가 비준되고, 재벌이 지주회사로 전환된다면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한국 경제와 정치 사회의 제도 정비는 완비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노무현은 임기 말기까지 자통법 시행, 금산분리 완화, 한미 FTA 비준에 힘을 쏟았다.
금융화 진전을 위한 이명박의 금융법안 개정 시도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 전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자통법 이후 후속조치로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고, 사모펀드 규제 완화와 헤지펀드 허용을 통해 자본시장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이미 지난 1월 자통법 개정안 등 10개 금융법안이 통과되었고, 현재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중요한 금융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들은 자통법의 시행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완하고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이다.
은행법 개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또 공적 연기금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보고, 사모투자전문회사(PEF,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투자기업의 경영에 참가하여 기업가치를 제고한 후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간접투자기구)의 경우 산업자본이 30% 이상 출자한 경우에만 산업자본으로 간주한다. 결국 산업자본은 은행 주식의 10%를 직접 보유하고, 사모투자전문회사를 통해서 나머지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은행을 우회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이미 산업자본이 주요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를 지배하고 있어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은행법이 개정된다면 산업자본에게 은행마저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터줘, 금산분리의 마지막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비은행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서 재벌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쉽게 만든 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보험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지주회사가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를 직접 지배하는 방식이 허용되고, 금융투자지주회사는 직접 지배 이외에도 금융자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지배하는 방식도 허용된다. 즉 보험회사는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는 반면 금융투자회사는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으로 지주회사로의 전환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대상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경은 불가능하다. 삼성그룹의 복잡한 상호출자를 정리하려면 삼성생명 산하에 비금융자회사를 두는 방안이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삼성증권 산하 비금융자회사는 허용되지만, 삼성생명 산하에는 비금융자회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험업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한 추가 개정요구가 있는 상황이며 앞으로 그런 방향의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투자회사는 자통법으로 성장의 길을 최대한 확보했는데,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제는 금융투자회사가 산업자본까지 합법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복잡한 출자구조를 가진 대기업집단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금융투자산업과 보험산업이 대형화되고 겸업화되어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도 은행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강제해서 한국 재벌이 금융적 수단을 통해 경제지배력을 확장하도록 만들며 나아가 전체 경제의 금융화를 심화시키면서 금융위기에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를 형성할 것이다.
증권시장 중심 금융세계화의 파산, 그래도 우리는 추진한다?
자통법으로 한층 더 강화될 한국의 금융화를 비판하기 위해서 금융세계화에서 대부자본과 가공자본이 수행하는 역할의 특성을 구별해볼 필요가 있다. 금융자본은 산업자본 또는 실물자본과 관련하여 대부자본과 가공자본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대부자본의 대표적 형태는 은행신용이다. 대부자본은 이자나 원금상환처럼 미리 결정된 현금흐름을 갖는 계약에 기초한다. 대부자는 일정한 기간 동안 차용자에게 자금을 이전시키고, 만기가 되면 채무자는 원금을 상환하고 이자를 지급한다.
반면 가공자본은 금융시장에서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는 증권들이다. 가공자본은 공장, 설비, 원료 등과 같은 실물적 자본에 어떤 대응물도 갖지 않는다. 가공자본의 가격은 미래의 수입에 대한 금융시장에서의 평가에 의존한다. 가공자본의 가치를 평가할 요인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가공자본의 가격은 매우 불안정한 파동을 보인다. 가공자본의 거래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개발된 파생상품은 실물적 기초의 측면이나 불안정성의 측면에서 증권보다 한층 더 나아간 것이다.
역사적으로 1970년대 유로시장 중심으로 석유달러가 유입되면서 초민족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세계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란혁명과 2차 석유위기로 촉발된 1979-82년의 경제위기로 은행 중심 금융세계화가 난관에 봉착한다. 고금리(1979년 미 연준의장 볼커의 대대적인 금리인상)로의 정책전환이 주변부의 외채위기와 중심부의 은행위기로 귀결된 것이다.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채택된 고금리 정책으로 해외 달러유동성의 부족이 야기되어 세계경제의 불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신용긴축 없이 달러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아니라 증권시장을 통해 달러를 흡수하는 것이 필요했다. 증권의 가격은 이자율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증권시장의 부양은 신용긴축 없이 해외의 과잉달러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 중심의 금융세계화는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가공자본의 급속한 성장을 통해 금융세계화가 진전되었다. 먼저 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보충하기 위해서 단기채권을 발행하고 채권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1986년 영국이 외국인에 의한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를 모두 허용하는 ‘금융빅뱅’을 단행해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흡수함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다른 중심부 국가들도 잇달아 주식시장을 개방했다. 증권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금융기관 중에서 전통적으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은행의 비중이 감소하고 연기금과 투자신탁기금과 같은 비은행 금융기관이 금융시장의 주요 행위자로 등장했다. 초민족 법인자본도 금융적 활동을 다각화함에 따라 더 이상 산업자본이 아니라,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산업을 지배적 요소로 하는 금융그룹’으로 변모했다. 이들은 금융기관을 자회사로 운영하면서 그룹의 내부금융시장을 형성하거나, 지주회사의 금융지도부가 금융거래 전체를 조직하고 통제했다. 그리고 투자은행은 인수합병(M&A)과 금융혁신을 주도하면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를 선도했다.
그러나 지금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에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파산하거나 독자 생존을 포기했다. 금융거품의 붕괴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확산되면서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목표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지배세력은 현재의 위기가 보여주는 역사적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금융시장 활성화와 금융투자기관 대형화로 금융세계화로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리고 있다.
자통법 제정의 취지가 달성된다면 IMF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 사회전반의 금융화와 투기화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를 투자자로 포섭하고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결탁시키면서 모든 국민이 금융투자자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게 한다(그러나 그 과실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금산분리 완화로 재벌을 필두로 한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화도 더 진전된다. 적절한 실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금융부문으로 쏠리고, 금융지주회사가 산업자본을 소유하는 형태로 재벌의 지배구조가 변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율하락추세가 반등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금융적 축적마저 붕괴한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금융시장 육성으로 한국경제가 독자적으로 회생할 리는 없다. 금융시장 육성은 실물경제와 거의 관련이 없는 휘발성 높은 가공자본의 거품을 확대해서 금융위기의 위험을 높인다. 증권을 다시 증권화하고, 증권화 사슬을 연장하고, 통제되지 않는 파생상품을 확산시킨 결과 형성된 금융거품이 이번 경제위기의 시발점이었다.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편승하려는 조치는 미국의 파국적 결과가 말해주듯이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민중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