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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3-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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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진단과 제언

여성운동 없이는 노동자운동의 혁신도 없다

김정은 | 여성국장
민주노총 전 조직강화위원장 성폭력 사건이 공개된 이후 민주노총 내외부의 모든 운동세력이 민주노총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상조사를 통해 사건을 일정하게 수습하고 선거 국면으로 접어든 후 민주노총 혁신과 여성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소멸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건 처리를 넘어 노동자운동을 진정으로 혁신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자세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성폭력에 대한 노조 내 인식의 현황

이석행 위원장 검거 후 검찰이 주장하는 ‘범인도피’ 혐의자에 대한 수사 대응 지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간 미수’는 ‘성적’ ‘폭력’을 통해 피해자를 제압하고 의도를 관철시키려했던 시도로 보인다. 성폭력은 단지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적 폭력은 여성을 무기력하게 하고 통제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타 인종을 절멸케 하고자 체계적으로 자행되는 전시강간, 노동자/철거민 투쟁 과정에서 자행되는 구사대나 용역에 의한 성폭력, 범죄 신고를 막기 위한 안전판으로써 강도의 성폭력 등. 그러나 이러한 폭력은 단지 그들의 야만성을 나열하는 데 추가되는 항목으로만 기술될 뿐 여성을 억압하는 특수한 위험과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인식되지 않는다.
운동사회에서 성폭력은 개별 활동가의 도덕성이나 자질부족 문제로 편협하게 이해되곤 한다. 소양이 부족한 특정 간부만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 소속 정파나 조직 전체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물론 함께 활동하는 동지를 성적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한 시도는 활동가 사이에서의 신뢰와 예의를 저버린 행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만 그친다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는 사안만을 성폭력으로 인정할 수 있을 뿐 무엇이 성폭력인지를 폭넓게 설명하지 못한다. 개별 자본가의 착취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이듯이,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한 자기 소유의 권리인 여성권을 침해하는 것 또한 도덕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성폭력은 발생한다.
노동자운동은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여성운동의 과제일 뿐, 노동자운동의 과제는 아니라고 여겨 왔다. 여성 문제는 비정치적인 사안일 뿐, 보편적인 권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에서 밥 짓고 아이 키우는 게 여성의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한 여성은 보편적인 ‘노동자’가 아닌, 누구의 아내, 엄마이고 따라서 출산,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우선해고는 여성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남성가장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가족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장이 아닌(실제 가장의 역할을 한다하더라도) 여성들의 저임금은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덜 조직되어있고,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제약은 여성의 역할과 임무를 규정하는 가족 및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노동자운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생산하고 노동권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여성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에 나서야 한다.

공동체의 변화, 반성폭력 운동으로 충분한가

그간 운동사회 내에서는 성폭력 규약을 제정하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이 규약에 따라 사건을 처리해 왔다. 또한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은 왜 끊이지 않는가. 이번 사건을 두고도 사건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등 외부에 사건을 임의로 유출하고 사건을 축소 처리하려고 시도하는 등 성폭력에 대한 운동사회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하기엔 그럴만한 긍정적인 지표가 보이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 주체가 재생산되고 있는지, 이것이 노동자운동 전체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잣대로 평가할 때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는 모호하다. 그러나 앞으로 반성폭력 운동의 어떤 요소를 강화해야 하는지 역시 모호하다. 현재 노조 내 반성폭력 운동의 실체는 규약에 따라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가해자를 처리하는 것,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 그 두 가지가 전부다.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피해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여 공동체 내부를 성찰하고 변화시키고자 했던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애초 성폭력 사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반성과 변화를 도모하려던 반성폭력 운동의 구상은 제대로 실행되지도 못했고 따라서 예상했던 성과를 거두지도 못했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논의가 개시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공개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진상조사위원회 바깥에서는 논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성폭력에 해당되느냐 아니냐의 논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건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왜 해당 사건이 여성억압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논의 지형상 이른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성폭력의 정의를 넘어서는 소위 ‘잘 이해가 안 되는’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해당 사안을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 즉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태도로 여겨진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남성들은 행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자신을 검열하며 차라리 입을 닫았고 결국 논의는 봉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성폭력에 해당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검열 지침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현실의 반성폭력 운동 전략이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성폭력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지 않게 하고, 그 말을 한 가해자를 처벌하면 공동체가 변화하는가. ‘노동형제’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노조 내 여성의 배제, 주변화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노동형제’라는 울타리 밖으로 배제된 여성노동자를 주체로 세우고 조직화하는 운동이 실행될 때 공동체는 바뀐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현장, 가족 등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얻을 수 있는 토론과 교육이 노동자운동 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도 일 년에 한차례 실시하는 교육만으로 노동자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듯이 일 년에 한차례 실시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으로 여성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단지 학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해방을 향한 대중적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을 확대해야

이번 사건의 피해자 및 대리인 측은 가해자를 고소할 지 여부를 민주노총 진상 조사 결과를 지켜본 후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건 축소 시도 등으로 끝내 가해자를 고소했고, 검찰은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일부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성폭력 사건 해결 원칙에 따라, 가해자 고소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므로 이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내부 사건 처리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적절한 재판을 촉구’하는 입장도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사법기관에 의한 처벌은 미흡한 내부의 사건 처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할뿐더러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방식이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성폭력 ‘사건 발생’이 ‘범죄’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철저한 법정 논리가 작동한다. 이를테면 형법은 강간을 “상대방의 반항을 불능, 현저히 곤란하게 할 수 있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간음”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강간이 자행됐을 때, 피해자가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는지, ‘확실히’ 성기가 삽입되었는지 여부가 강간죄의 성립 요건이다.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경험과 법 논리에 따른 ‘범죄’ 성립은 다른 문제다. 범죄로 성립되고 나서 남는 것은 폭력의 ‘경중’에 따라 형량을 매기는 것이 전부다. 강간이 성립했든 미수에 그쳤든 상관없이 입게 되는 측정할 수 없는 피해자의 상처는 법정에서 헤아려지지 않는다. 상처와 처벌이 교환되지도 않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여성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법이 여성의 권리와 성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도는 재산권을 침해하는 죄라고 인식된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무엇을 침해하는가. 과거에 강간은 ‘정조’를 침해한 죄였으며, 현재는 그것을 대체하는 정의조차 없다. 여성운동진영에서 성폭력이 여성의 성욕에 대한 권리와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로서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법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가 아닌 개인의 신체와 성적인 ‘사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인 권리의 한 영역으로서 이해될 뿐이다. 맘에 드는 사람과 성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남성의 권리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했을 때, 법정은 누구의 입장에서 누구의 권리에 근거해서 사건을 해석할 것인가. 결국 사건 사건에 따라 가해자 피해자 정황에 따라 판결할 뿐이다. 법은 성폭력이 무엇을 침해하는 범죄이며 어떤 기준에서 판단되고 통제되어야 하는지를 여성의 고유한 권리를 바탕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여성의 권리를 법에 기술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조차 되지 않고 있지만, 설령 법이 그렇게 바뀐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법은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할 뿐, 폭력을 예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약도 마찬가지다.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의 대응이 기업주의 구속이나 복직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노동자 자신이 해방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 노동자와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성폭력에 대한 대응도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제약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의 맥락 안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다. 여성이 처하게 되는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차별과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과 실천 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것으로는 여성해방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실천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며

누구나 민주노총의 혁신을 주문하고, 여성사업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화되어야 할 여성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다. 아래로부터 여성노동자를 주체화하고 조직화한다는 노동자운동의 기본적인 과제이자 장기적인 방향을 현실의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중단기적인 계획을 입안하기 위해 민주노총 내외부의 열린 논의를 제안한다. 우리도 책임 있는 자세로 논의와 실천에 함께 할 것이다.
주제어
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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