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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5-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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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추진되는 의료민영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동근 | 보건의료팀
민영화=선진화? 영리병원=투자개방형 병원? 다시 시작된 말장난

2009년 3월 의료민영화와 관련해서 두 차례의 토론회가 열렸다. 3월 6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보건산업진흥원이 개최한 ‘의료제도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와 13일 ‘의료서비스산업선진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최한 토론회가 그것이다. 6일 열린 토론회는 의료민영화의 강력한 추진 지지 세력인 두 명의 교수가 발표했고, 역시 의료민영화를 지지하는 5명의 각계 전문가가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이 토론회는 취임 전부터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약했던 의료민영화를 재추진하기 위한 일종의 세몰이이자 의료시장주의자들의 ‘시위’였다.
특히 주목할 것은 13일 열린 토론회인데, 이 토론회는 기획재정부 주도하에 구성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 공동 위원회’의 활동을 총괄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위원회를 구성해 1월 19일 첫 회의를 개최했다. 그 활동의 중간결과를 3월 10일~20일에 관련 정부부처와 한국개발연구원이 토론회 형식으로 발표했는데, 그 중 의료 분야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토론회는 의료민영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7명의 토론자는 찬성 측 5명, 반대 측 2명으로 구성되었다. 토론회의 핵심인 보건산업진흥원 이신호 전문위원이 발표문은 처음에 포함되어 있었던 영국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비교연구결과가 빠진 채 발표되었다. 비교연구결과는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에 비해 성과가 우수하거나 차이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의료기관의 자본참여 다양화 방안’이라는 제목의 이 발표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해외환자 유치 사업 활성화, 제약 바이오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의료산업의 신성장동력화 등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자본 조달 방안을 다양화하여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영리의료법인, 의료채권제도, 경영지원회사(MSO)를 통한 경영효율성 증대 및 부대사업 확대 등이다. 영리의료법인의 경우 현행 건강보험제도의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기존 비영리법인의 영리법인 전환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는 형태가 실질적으로 검토 가능한 방안이며, 도입 방법은 사회적 논란의 최소화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등 제한된 지역에서 시범적 허용 후 허용지역을 확대하는 방안이 타당하다.”
이날 토론회 이후 특별한 정부의 움직임이 없어 표면적으로는 영리병원 도입 문제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4월 9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료산업의 선진화는 일자리 창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발전 및 질의 향상, 경제구조의 변화 등 모든 부문에 필요하다”, “영리병원 허용으로 산업적 측면에서 길을 터주자”는 발언을 하는 등 영리법인병원 허용의지를 명확히 했다. 한승수 총리도 10일 대정부질문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보건복지부 전재희 장관은 같은 날 대정부질문에서 “찬반 논쟁에 대해 연구용역과 토론을 거쳐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번 추경을 통해 병원 영리법인화 관련 예산이 530% 증가했으며 제주도에서 2008년 주민들의 반대로 좌초되었던 영리병원이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이름만 바꾼 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결국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전재희 장관의 입장이 “병원 영리법인화와 민간자본 투자허용에 대한 계획이 없다”에서 “아무런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연구용역과 토론을 거치겠다’로 변하고 있는 것이 이런 예측을 뒷받침 해준다.

영리법인병원 허용: 의료민영화의 시발점

13일 토론회에서 박인출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병원은 이미 대다수가 영리성 병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현재 한국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법인이고 따라서 병원 경영을 통해서 얻은 이윤을 병원 바깥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이 제도를 바꾸어 병원 경영을 통해 얻은 이윤을 주주들에게 배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병원 영리법인화다. 이를 위해 정부와 자본은 현재 직접적으로 영리법인병원 허용, 간접적으로 의료채권 발행 허용 및 병원경영지원회사(MSO) 허용의 방식으로 영리법인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의료시스템의 기반은 민간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부문과 서비스의 재원을 마련하는 부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공급 부문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 8%만이 공공병원(병상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15%)이며, 모든 병원이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되어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적극적 영리추구행위를 하고 있다. OECD 국가들은 병원들이 90%이상 국공립병원이거나, 국공립병원과 실질적인 비영리병원을 합치면 70-80% 이상인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보건의료제도가 가장 시장에 맡겨져 있는 미국이나 일본조차 35-40%가 공립병원이다. 재원 부문을 보면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 재원 중 공적재원 비중이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전국민 의료보장제도가 있고, 지속적으로 보장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공적재원의 비중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치료 및 시술에 대해서 통제할 수 있는 수단도 거의 없어 과잉진료가 유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삼성, 현대 등 대형 자본의 병원 진출이 본격화되며 병상수와 고급의료장비에 대한 경쟁이 심화되었다. 그 결과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되고 의료서비스 공급이 한층 더 민간 중심, 대형병원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보건의료시스템의 상황과 자본의 결정권이 증대된 최근의 계급역관계가 결합된 결과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공공적으로 재편하려는 경향보다는 재원 조달을 민간화하려는 경향이 계속되었다. 최근 병원 영리법인화를 허용하려는 시도는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에 대해서 네트워크병원 진영이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네트워크병원은 영리법인화가 허용되면 곧바로 영리병원으로 전환하여 본격적으로 이윤을 추구를 하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반면 대형 병원자본은 현재 국면에 대해서 특별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다. 영리법인화가 허용된다고 해서 곧바로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형 병원자본의 경우 의료채권 발행이나 MSO를 통한 간접적인 영리병원화를 계획하고 있다. 의료채권 발행의 경우 발행한 채권에 대한 이자 형태로 이윤의 외부유출이 가능해지고, MSO 허용의 경우 MSO에 대한 수수료 등의 형태로 이윤 유출이 가능해지며 MSO를 중심으로 병원 자본이 형성될 수 있다. 삼성, 현대 등 대형병원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의료채권이나 MSO 허용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의료법 개정을 통한 영리법인병원 허용을 막는 것 못지않게 의료채권이나 MSO 허용 등 간접적인 영리병원화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이미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의료법 전부개정안을 통해서 부대사업의 범위 확대, MSO 허용 등을 시도하였으나 반대여론에 밀려 실패한 바 있으며, 2009년 현재 의료기관 순자산의 4배 이내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채권법이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는 상황이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의료민영화의 완성

병원 영리법인화와 함께 의료민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민간의료보험의 확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비의 60% 정도는 건강보험을 통해서 집행되고 있는데, 이를 지탱하는 것이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다.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공단이라는 공적인 보험자와 계약을 해야 하고, 전 국민은 건강보험공단에 피보험자로 가입을 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각각의 시술에 대해서 보험을 적용할지 여부와 수가를 결정하고 의료기관은 이 수가와 본인부담률을 바탕으로 진료를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가격결정권을 의료기관이 가지고 있지 않다. 진료비에 대한 가격결정권이 없고, 건강보험으로 의료비의 대부분이 집행되는 이러한 구조 때문에 의료기관의 이윤추구를 전면화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대형 의료자본은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통한 건강보험의 무력화를 원하는데, 여기에는 또 다른 강력한 이해당사자로 보험회사가 개입한다.
2005년 유출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켰던 ‘삼성생명 내부전략보고서’를 살펴보면 민간의료보험의 발전과 관련하여 보험회사들이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삼성생명은 ①정액방식의 보험에서 출발해 ②정액방식의 다질환 보장 ③후불방식의 준손실보험 ④실손의료보험 ⑤병원과 연계된 부분경쟁형 ⑥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으로 차근차근 보험의 형태를 포괄적으로 바꾸어나가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미 후불방식의 준 실손보험이 활성화되어 있고 실손의료보험이 노무현 정부 때 허용되었다. 현재 민간의료보험의 시장규모는 10조 원을 넘어 건강보험의 40%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고, 보험료대비 지급률은 정확히 공개된 바는 없지만 6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유럽의 80~85%, 미국의 70%에 비해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미 의료분야를 상당부분 시장화해서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이 담당하지 않는 비급여부분이나 본인부담금 부분에 대해서 대부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비 집행에 있어서는 건강보험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보험자본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대해 반대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국가운영의 건강보험과 경쟁하거나 나아가서 이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당연지정제 폐지가 필요한데 지금 이를 시도하기에는 파장도 너무 크고 국민적 반대에 부딪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자본참여 다양화 방안’에 관련한 논의에서도 당연지정제 폐지는 논의대상이 아니라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 각계가 공히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되면 순차적으로 당연지정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영리법인화한 병원들의 고급 과잉진료로 인해 상승한 의료비를 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한데 이 경우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든지 보장성을 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건강보험은 파탄나게 된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병원자본 측에서 당연지정제로 인해 영리추구가 제한된다는 요지의 헌법 소원을 제기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의료민영화의 역사와 성격

2000년대 초부터 진행된 의료민영화 추진의 경과를 간략히 살펴보자. 김대중 정부는 2002년 1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구상을 발표한 후 12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한다.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는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며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병원 영리법인화 등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주된 논지는 신성장동력론이었는데 이는 자본의 이윤창출이 제약되며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했던 상황을 반영한다. 2004년 10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으로 외국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여 영리법인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로 가는 기반을 닦았고, 2005년 10월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발족하여 이듬해 7월 ‘의료산업 선진화 전략’을 발표하였다. 2006년 12월에는 ‘1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MSO, 인수합병, 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사전작업이 대체로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한 정부는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데, 이 법안은 그간 추진해온 의료민영화정책 중 당연지정제 폐지를 제외하고 거의 망라한 법안이다. 의료법 개정은 결국 의협까지 반대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공언하였고 2008년 시도하였던 의료민영화의 대부분은 내용적으로 2007년 의료법 개정의 시도를 이어받는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로 상반기 정권이 위기를 겪으면서 의료민영화를 단기적으로 철회했지만 이것이 포기는 결코 아니었으며 현재의 재추진도 이러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빌미로 의료민영화를 재추진하고 있지만 상황을 활용한 정당성 확보 측면이 크다. 즉 김대중 정부부터 꾸준히 추진되어온 의료민영화 추진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미국의 사례를 통해서 그 의미를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1970년대 보건조직의 가입 확대를 위해 대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려는 미국 정부의 전략이 1973~75년의 경기침체 때문에 실패하자 보건조직의 성장은 대부분 사적 자본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배상보험을 취급하던 대형 상업보험회사들이 보건조직에 참여했으며, 이를 계기로 보건의료의 영리부문에서뿐만 아니라 비영리부문에서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인기업이 성장하여 보건의료산업 관련분야를 포괄적으로 결합하는 이른바 의산복합체가 출현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의산복합체는 우선 개별적인 의료기관이 복합적 의료기관으로 수평적으로 통합되면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통합 과정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체인이 급속하게 성장했고 일반 기업의 경영기법들이 도입되었다. 또한 각기 다양한 단일 수준의 의료기관들이 보건조직을 통해 수직적으로 통합되었으며 보건조직은 다양한 수준과 방식의 의료를 모두 포괄하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영리병원의 확대 속에서 비영리병원 역시 요양소와 휴양센터, 심장재활기구, 신장투석센터, 스포츠의학 및 실험서비스 등 다각화된 사업부문에 진출하며 영리추구에 뛰어들었다. 비영리병원은 점차로 다양한 보건의료영역에 관계하는 영리, 비영리 자회사를 거느린 모기업이 되거나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자회사를 소유하는 지주회사를 별개로 설립하는 등으로 변화해 갔으며 다각화에 실패한 병원은 곧 인수 합병되었다.
의산복합체의 출현으로 병원은 이윤 추구의 수단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끊임없이 비용절감과 주가상승을 추구하는 금융적 논리에 종속되었다. 의사와 병원의 자율성은 축소되었고 주주 이익의 최대화가 최대의 목표가 되었다. 보건조직과 의산복합체의 출현은 의료가, 보험을 매개로 병원을 보편적인 의료기관으로 확립했던 금융자본의 이해에 따라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조직과 의산복합체는 지속적인 비용상승에 따른 보건의료의 위기에 대한 금융적 해법이다. 대중보건의료가 금융적으로 재편되면서 의료서비스는 축소되고 대중의 건강은 평가절하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의료민영화의 두 축은 ‘병원의 영리법인화’와 ‘포괄적·공적 의료보험의 무력화를 동반하는 민간의료보험의 확대’이다. 이 중 후자를 핵심적인 기제로 하여 의료부문의 영리화와 금융화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보험사와 의료기관 간의 관계가 변화한다. 비영리병원과 공적 의료보험 하에서 의료서비스분야의 주체는 의료기관으로 설정되고 보험제도는 의료비의 집행을 사회화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사적 보험사들이 의료영역을 주도하게 되면서 의료서비스 영역이 보험사들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분야로 되고 의료기관이 그 집행기관으로서 역할하게 된다. 더 진행되면 원래 비영리적 목적을 가지고 있던 의료기관도 영리화되며 보험회사를 중심으로 병원, 요양소, 건강검진센터 등이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의산복합체가 출현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보험자본이 주도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형성하면서 병원이 영리화되고 의산복합체가 출현했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전국민의료보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영리병원 허용을 앞세워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인 경과는 비슷할 것이다.
삼성생명-삼성병원을 포함하는 자본을 넓은 의미에서 의산복합체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 민영화가 진행되면 이들은 더욱더 긴밀하게 결합하게 될 것이다. 이미 삼성생명은 보험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간의료보험 시장에도 꾸준히 진출해 왔다. 서울삼성병원은 2009년 현재 1,900여 병상규모로 전국 4번째 규모이며 2007년 5월 기준 200병상 이상의 병원 중 전국 87개 병원, 200병상 이하 병원 중 전국 1,243개 병원이 삼성과 연계된 병의원이다. 만약 미국의 경로를 밟아 나간다면 삼성생명과 체인으로 통합된 삼성병원이 의산복합체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의료민영화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쪽은 일부 네트워크병원 진영보다는 보험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자본일 것이다.
의료민영화 문제를 금융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개별적 국면에서의 복지의 진보나 후퇴라는 관점에서 파악해서는 적절한 인식과 대응이 불가능하다. 다만 경제위기로 의료민영화 추진이 정부와 자본에게 있어서 이전보다 더 사활적 요구가 된 점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민영화가 불러올 우울한 미래

의료민영화가 민중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불러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료민영화 추진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이 지면에서는 편의상 의료소비자와 보건의료노동자로 입장을 나누어 민중이 받게 될 피해들을 간단히 정리하겠다.
먼저 의료비의 상승이 가속화될 것이다. 기존 체계에 없던 이윤의 배당이 의료기관과 보험회사 양쪽에서 일어날 것이므로 당연히 의료비는 상승하게 된다. 또 민간의료보험이 건강보험과 경쟁하는 체계가 형성된다면 부유층에서부터 건강보험에서 민간의료보험으로의 역선택이 일어날 것이고,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이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보장성을 대폭 축소하거나 혹은 건강보험을 폐지하고 민간보험에 맡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어느 쪽이든 공적 보험제도는 파괴될 것이고, 의료이용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해질 것이다. 한편 영리법인화된 의료기관은 최대한의 이윤을 얻으려 노력하는데, 한편으로는 의료비를 상승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건의료인력을 축소하거나 비정규직화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해서 이를 달성할 것이다. 의료기관의 고용 감소, 노동조건 악화는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건의료서비스는 여타의 분야보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인건비 비율의 하락은 직접적으로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킬 수밖에 없다. (2007년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병원 정규직 종사자수는 4.6명으로 주요 선진국 평균인 13.43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영리병원화에 따라 병원자본의 집중과 대형화가 이루어지면서 인수합병이 증가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지금도 병원 단위에서 강화되고 있는 구조조정과 노무관리는 더욱 더 강력하게 노동조건을 압박할 것이다.
의료민영화의 최대 승자는 대형 자본, 특히 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정부가 생각하는 대로 서비스 산업 선진화와 이를 통한 성장동력 형성은 어려울 것이다. 현재 AIG 생명보험은 국유화를 통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이고 거대 금융자본이 모두 휘청거리고 있는 등 미국의 경제위기는 금융화의 파산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5월 셋째 주 10개 분야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는 ‘서비스 산업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각계의 반대여론으로 애초에 시도되었던 병원 영리법인화는 이번 보고대회에서는 빠질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운동을 통한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없다면 의료민영화의 추진은 계속될 것이다. 당장 의료채권법, MSO 허용 등 병원 영리화를 가능케 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한 번 의료민영화를 막아내고 공적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의료제도를 구축해내기 위한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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