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공적자금 조성과 금융기관 지원 정책의 계급적 본질
금융기관을 통한 손실의 사회화
평상시 한국정부의 경제정책 체계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획재정부의 재정정책으로 구성된다. 이에 따라 최근 경제위기 대응도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금융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고, 기획재정부가 외환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가운데 추경편성 등 경기부양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일상적인 구분에 따른 정책 외에도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공적자금은 부실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털어내고 자본을 확충하는 데 투입되는 것이니 금융정책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재원이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니 재정정책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감세, 추경편성, 부동산시장부양으로 요약할 수 있는 재정정책은 제외하고, 금융안정화 정책과 공적자금 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정책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평가하겠다.
한국은행의 정책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격화되자 한국은행은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정책금리 인하,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유동성 공급,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확대 등의 정책수단을 사용했다. 먼저, 한국은행은 시장금리의 하향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서 정책금리를 대폭 인하했다. 한국은행은 2008년 9월 5.25%이던 정책금리를 여섯 차례에 거쳐 3.25%p 인하해 2009년 2월 2.0%로 낮췄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불과 5개월 사이에 빠른 속도로 정책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둘째, 금융기관 사이에 신용경색의 조짐이 나타나자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확대하고, 통화안정증권 중도환매, 국고채 직매입 등 공개시장조작으로 금융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와 함께 2008년 12월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위해 RP거래 대상 기관에 12개 증권사를 추가했다. 증권사에 자금을 공급해 채권시장 및 단기금융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또 RP거래의 대상 증권을 기존 국고채와 통안채에서 은행채 및 특수채(공공단체와 공적 기관 등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별법인이 발행한 채권)로 확대했다. 한국은행이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했으며, 즉각적인 유동성 공급을 위해 정책대상을 은행 외의 금융기관으로 넓힌 것이다.
셋째,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제도를 확대하여 금융시장 안정과 중소기업 자금사정 개선을 꾀했다. 먼저 자금조정대출의 대출기간(원래 1영업일)을 연장하고, 금융기관이 대출을 이용할 때 제공하는 담보요건을 완화했다. 그런데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가산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고 대출을 꺼림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자금동원에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이 자기자본 확충에 몰두하면서 금융권의 돈이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기업에 도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두 차례에 거쳐 총액한도대출의 한도를 6.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3.5조 원 확대해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원활해지도록 했다.
이러한 한국은행의 대응이 기존의 정책수단을 활용하고 확대한 것이라면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은행자본확충펀드에 대한 자금지원은 비상수단인 셈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신용경색으로 회사채의 발행여건이 악화되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 12월 설립되었다. 이 펀드에 은행(8조 원), 보험사(1.5조 원), 증권사(0.5조 원)가 10조 원을 출자하는데, 한국은행이 RP매입 등의 형태로 금융기관에 출자금의 50%인 5조 원까지 지원한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은행채와 회사채 등 각종 채권에 투자하며, 위험자산의 경우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강을 통해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형태로 편입한다. 반면 은행자본확충펀드에는 산업은행을 경유해 한국은행이 직접 10조 원을 대출한다. 이러한 목적형 펀드에 한국은행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유동성 공급이 실물경제 주체의 구조조정이나 자금조달로 효과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막기 위한 외화 확보와 공급
2008년 하반기에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한국 외채규모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국내은행의 해외차입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에 투자된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이탈해서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가 부족해지고 환율이 폭등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화를 확보하고 실수요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외환정책은 금융안정화 정책에 포함되나 정책 주체가 정부와 한국은행으로 중첩되고, 위기 대응정책 중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독립적으로 살펴본다.
우선 한국은행이 미국, 일본, 중국의 중앙은행과 외화스왑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연준 300억 달러, 일본은행 300억 달러, 중국인민은행 1,800억 위안과 IMF의 단기유동성지원자금 220억 달러를 모두 더하는 경우 약 1,120억 달러의 추가 외화유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둘째, 외환시장의 불안이 은행의 외화자금 차입 어려움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하여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정부가 1,000억 달러까지 지급보증하기로 했다. 최근까지 외화공급의 불안이 계속되자 정부는 외화차입 보증의 보증시한을 2009년 6월에서 12월로, 보증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셋째,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화공급이 실수요와 연계되도록 수출입금융지원을 강화하고 경쟁입찰을 통한 대출이나 스왑거래를 통하여 55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유동성을 공급했다.
넷째 정부는 외국인 투자유치 및 관련 규제완화를 통해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외화유동성 확충을 위한 제도개선방안’(2009.2.26)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①외국인의 국내채권 투자 확대를 위해서 외국인이 국채, 통안채에 투자하는 경우 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와 소득세 원천징수를 면제하고, 채권양도차익에 대해서도 비과세한다. ②재외동포의 자금유치를 촉진하기 위해서 부동산, 펀드에 대한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외환거래 규제를 완화한다. ③국내은행의 외화예금 증대를 위해서 외화정기예금을 위해 해외에서 국내로 1만 달러 이상 송금시 국세청 통보제도를 면제하는 등 외환규제를 완화한다. ④공기업 및 국내은행의 해외차입 원활화를 위해 공기업의 관련지침을 개정한다.
금융기관 지원과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 조성
2008년 4/4분기부터 실물경제가 급격히 침체하고 은행의 연체율이 높아지는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금융 및 산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1997-98년의 위기와 달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이 아직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크게 두 방향의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했다. 우선 건설 조선 해운업과 같이 이미 부실이 드러난 산업에 대해서는 기업신용평가와 재무구조평가를 통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으로 향후 드러날 부실기업의 효율적인 구조조정과 금융기관이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와 재원을 사전에 마련하고 있다.
먼저 2009년 1월과 3월에 채권단이 건설사와 조선사에 대한 기업신용평가를 진행했다. 111개 기업에 대한 1차 기업신용평가에서 16개 기업을 구조조정대상으로 선정하고 이 중 2개 기업을 퇴출시켰다. 74개 기업에 대한 2차 기업신용평가에서는 20개 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 중 5개 기업을 퇴출시켰다. 2009년 4월 현재 37개 해운사를 대상으로 한 신용위험평가가 진행 중이며, 45개 대기업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도 진행해 기준에 미달한 대기업과 5월까지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그러나 1-2차 기업신용평가에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C등급)이나 일시적 자금난(B등급)이라고 판정받은 5개 기업이 부도처리 되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처럼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비해 건설기업의 부실이 더 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채권단이 평가를 잘못했거나 회생 가능한 기업으로 분류하고도 지원을 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평가와 관련해서 금융권이 자신의 부실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해 공정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주채권단인 은행 주도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신규자금 지원 등 구조조정 철차에 대한 합의가 없어 2차 금융기관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정부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은행자본확충펀드, 구조조정기금, 금융안정기금 등의 공적자금을 조성하고 있다. 은행자본확충펀드는 은행의 실물지원 및 구조조정지원 목적이며, 경영권에 대한 관여는 하지 않는다. 은행자본확충펀드는 한국은행 10조 원(산업은행에 대한 1년 만기 대출), 산업은행 2조 원과 기관 및 일반투자자 8조 원을 유치하여 총 2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자금으로 은행의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우선주를 매입할 계획인데, 지금까지 1차로 4조 원가량이 투입되었다.
자산관리공사에 설치되는 구조조정기금은 부실채권과 구조조정기업의 자산 매입이 목적이다. 정부가 40조 원 한도의 구조조정기금채권을 발행하여 기금을 마련하며 운용기간은 2014년까지다. 정책금융공사에 설치되는 금융안정기금은 은행과 은행 외의 금융기관 전반에 대한 자금지원이 목적이다. 은행자본확충펀드와 구조조정기금으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구조조정기금과 마찬가지로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마련하며 그 규모는 경제위기 진행 상황을 고려하여 추후에 확정할 예정이다.
외국자본에 장악된 은행의 고액배당, 외화차입, 거품양산
금융안정화정책과 공적자금정책에서 금융기관은 직접적인 정책대상이 되거나 실물경제 지원과 구조조정의 매개자 역할을 한다. 따라서 막대한 자금이 금융기관, 그 중에서도 은행권에 투여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먼저 IMF 경제위기 이후 국내은행의 지배소유구조와 경영행태가 변화한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시중은행은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거쳐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 시티, SC제일은행 7개로 통합되었다. 이 중 시티와 SC제일은행은 상장마저 폐지된 완전한 외국계은행이고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도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다. 따라서 은행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이 배당금 등을 통해서 해외자본에게 유출되는 상황이다. 2007년 유가증권 외국인 배당총액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국민은행, 외환은행, 신한지주회사가 포함되었으며, 특히 2위를 기록한 국민은행은 2007년에만 6,700억 원을 외국인에게 배당했다. 외국자본에 의해 장악된 국내은행은 2001년부터 꾸준히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으며 2004년 이후에는 최고의 호황을 누려 2007년 당기순이익이 15조 원에 이르기도 했다. 작년에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7.9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환율의 급등락 속에서 키코 등 환율파생금융상품 수익에 크게 힘입어 외환거래를 통한 이익이 6.6조 원으로 전체의 84%나 되었다.
그런데 한국경제가 대외요소에 매우 취약하게 된 데에는 은행의 역할이 컸다. 2000년 이후 국내은행은 몸집을 불리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이자가 싼 외화를 단기차입하고, 고금리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은행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국내에서 부동산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에 집중했다. 기업대출에 비해 가계대출이 도산 위험이 적어 안정적인 수익처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권의 대출 중 가계대출 비중은 1998년 말 11.0%에서 2000년 말에는 31.2%, 2008년 3월말 53.0%로 급격히 늘었다. 또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도 2001년 말 51.7%에서 2008년 3월 말 62.8%로 늘었다. 이렇게 공격적인 대출확대로 예대율도 높아져 2004년 100%를 돌파한 후 2008년 9월 말 123.4%를 기록했다.
대규모 차입과 부동산거품 편승으로 몸집을 불리던 은행은 자금차입이 여의치 않아지고 부동산거품이 꺼지자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환율폭등과 외화 단기차입의 만기연장 차단으로 외화조달 금리가 급등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시급히 1,000억 달러 지급보증과 300억 달러 지원에 나선 것이다. 또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화 자금조달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BIS자기자본비율이 2007년 말 12.3%에서 2008년 9월 10.9%로 급락했고, 자기자본구성비율(자기자본/총자산)도 같은 기간 6.9%에서 5.7%로 하락했다. 이러한 비율은 영국과 미국은 물론 주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융기관을 통한 손실의 사회화
따라서 정부는 무차별적인 유동성 공급 외에 은행의 자본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기금을 마련했다. 60조 원 이상으로 조성되는 은행자본확충펀드, 구조조정기금, 금융안정기금이 그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은행 자본확충이 주로 보통주나 우선주를 매입하는 (부분)국유화 방식이라면 한국정부는 은행채 인수와 부실채권 정리 방식을 채택했다. 즉 은행의 지배소유구조나 경영형태에 대한 정부의 개입권한이 없다. 게다가 정부지원 요건에 엄격한 기준이 추가되지도 않는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되는 이 자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충당되기 때문에 사실상 공적자금이다.
그런데 정부는 공적자금 관리 통제 방법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문제가 되자 최근에서야 한나라당이 입법안을 마련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 20명이 발의한 공적자금관리특별법 개정안은 구조조정기금과 금융안정기금을 공적자금 범위에 새로 추가하고, 은행자본확충펀드는 제외했다. 그리고 공적자금을 종합 관리하는 공적자금위원회를 금융위 산하에 설치하고, 6명의 민간위원을 변호사협회, 공인회계사회, 은행연합회, 금융학회,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각각 1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한나라당 법안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은행자본확충펀드를 공적자금으로 간주하지 않아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 은행자본확충펀드에 민간자금이 참여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8조 원의 민간자금이 대부분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서 조달될 가능성이 높고, 금융기관의 자본을 확충하고 구조조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다른 기금과 목적이 동일하다. 따라서 공적자금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공정한 심사와 감독 없이 은행의 사적 이익을 위한 지원에 마구잡이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 둘째 공적자금으로 간주하는 경우에도 그 운용 방식이 최소비용원칙(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이 최소화되는 방식으로 운용)에 맞춰져 있다. 공적자금의 낭비를 막는 것이 필요하지만 공적자금 운용의 원칙이 비용에만 맞춰진다면 기업의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한 공적자금 투입이 노동자의 해고로 직접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나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최소비용원칙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공적자금이 노동유연화에 활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셋째 공적자금을 관리할 공적자금위원회 구성도 문제다. 금융위 산하에 공적자금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인데, 공적자금 투입계획을 직접 입안한 정부기관 아래에 관리기구를 두는 것은 옳지 않다. 또 그 위원들도 대부분 정부, 금융기관, 자본가단체 중심으로 구성된다. 세금으로 조성되는 공적자금 운용에 대한 시민과 노동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서 그나마 보장되었던 국회와 감사원의 감독기능도 대폭 축소될 상황이다.
IMF 경제위기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이 168.5조 원이고 이중 현재까지 55.5%인 93.6조 원만 회수되었다. 엄청난 미회수금액과 이자비용은 2027년까지 일반회계(세금으로 국민의 부담)와 예금보험기금 채권상환기금(특별보험료 형태로 금융소비자의 부담)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또한 공적자금 투입 과정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자의 대량해고가 발생했다. 경제위기와 기업부실을 발생시킨 대주주와 경영자에게는 그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에게 고통과 비용을 떠넘긴 것이다.
우리는 10년 전에 뼈아픈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했다. 감세나 추경 등 경기부양정책에 대해서는 그 규모나 쓰임새에 대한 논쟁이 있으나, 금융정책과 공적자금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 없이 정부의 안이 관철되고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위기이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태도 속에서, 은행을 위시한 금융기관이 위기관리의 공정한 집행자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은행의 부실이 국민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주도한 위기의 주범들이 스스로 해결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폐 속에서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금융기관은 자신의 부실을 사회화하고 정책매개자 역할로 한국사회의 금융적 재편을 다시 꾀할 수 있어 이중의 이익을 얻을 것이다. 반면에 국민들은 세금을 통해서 비용을 떠맡고 노동자들은 해고와 임금삭감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경제위기 대응정책의 계급적 본질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다.
한국은행의 정책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격화되자 한국은행은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정책금리 인하,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유동성 공급,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확대 등의 정책수단을 사용했다. 먼저, 한국은행은 시장금리의 하향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서 정책금리를 대폭 인하했다. 한국은행은 2008년 9월 5.25%이던 정책금리를 여섯 차례에 거쳐 3.25%p 인하해 2009년 2월 2.0%로 낮췄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불과 5개월 사이에 빠른 속도로 정책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둘째, 금융기관 사이에 신용경색의 조짐이 나타나자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확대하고, 통화안정증권 중도환매, 국고채 직매입 등 공개시장조작으로 금융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와 함께 2008년 12월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위해 RP거래 대상 기관에 12개 증권사를 추가했다. 증권사에 자금을 공급해 채권시장 및 단기금융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또 RP거래의 대상 증권을 기존 국고채와 통안채에서 은행채 및 특수채(공공단체와 공적 기관 등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별법인이 발행한 채권)로 확대했다. 한국은행이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했으며, 즉각적인 유동성 공급을 위해 정책대상을 은행 외의 금융기관으로 넓힌 것이다.
셋째,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제도를 확대하여 금융시장 안정과 중소기업 자금사정 개선을 꾀했다. 먼저 자금조정대출의 대출기간(원래 1영업일)을 연장하고, 금융기관이 대출을 이용할 때 제공하는 담보요건을 완화했다. 그런데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가산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고 대출을 꺼림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자금동원에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이 자기자본 확충에 몰두하면서 금융권의 돈이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기업에 도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두 차례에 거쳐 총액한도대출의 한도를 6.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3.5조 원 확대해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원활해지도록 했다.
이러한 한국은행의 대응이 기존의 정책수단을 활용하고 확대한 것이라면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은행자본확충펀드에 대한 자금지원은 비상수단인 셈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신용경색으로 회사채의 발행여건이 악화되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 12월 설립되었다. 이 펀드에 은행(8조 원), 보험사(1.5조 원), 증권사(0.5조 원)가 10조 원을 출자하는데, 한국은행이 RP매입 등의 형태로 금융기관에 출자금의 50%인 5조 원까지 지원한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은행채와 회사채 등 각종 채권에 투자하며, 위험자산의 경우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강을 통해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형태로 편입한다. 반면 은행자본확충펀드에는 산업은행을 경유해 한국은행이 직접 10조 원을 대출한다. 이러한 목적형 펀드에 한국은행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유동성 공급이 실물경제 주체의 구조조정이나 자금조달로 효과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막기 위한 외화 확보와 공급
2008년 하반기에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한국 외채규모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국내은행의 해외차입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에 투자된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이탈해서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가 부족해지고 환율이 폭등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화를 확보하고 실수요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외환정책은 금융안정화 정책에 포함되나 정책 주체가 정부와 한국은행으로 중첩되고, 위기 대응정책 중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독립적으로 살펴본다.
우선 한국은행이 미국, 일본, 중국의 중앙은행과 외화스왑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연준 300억 달러, 일본은행 300억 달러, 중국인민은행 1,800억 위안과 IMF의 단기유동성지원자금 220억 달러를 모두 더하는 경우 약 1,120억 달러의 추가 외화유동성을 확보한 것이다.
둘째, 외환시장의 불안이 은행의 외화자금 차입 어려움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하여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정부가 1,000억 달러까지 지급보증하기로 했다. 최근까지 외화공급의 불안이 계속되자 정부는 외화차입 보증의 보증시한을 2009년 6월에서 12월로, 보증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셋째,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화공급이 실수요와 연계되도록 수출입금융지원을 강화하고 경쟁입찰을 통한 대출이나 스왑거래를 통하여 55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유동성을 공급했다.
넷째 정부는 외국인 투자유치 및 관련 규제완화를 통해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외화유동성 확충을 위한 제도개선방안’(2009.2.26)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①외국인의 국내채권 투자 확대를 위해서 외국인이 국채, 통안채에 투자하는 경우 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와 소득세 원천징수를 면제하고, 채권양도차익에 대해서도 비과세한다. ②재외동포의 자금유치를 촉진하기 위해서 부동산, 펀드에 대한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외환거래 규제를 완화한다. ③국내은행의 외화예금 증대를 위해서 외화정기예금을 위해 해외에서 국내로 1만 달러 이상 송금시 국세청 통보제도를 면제하는 등 외환규제를 완화한다. ④공기업 및 국내은행의 해외차입 원활화를 위해 공기업의 관련지침을 개정한다.
금융기관 지원과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 조성
2008년 4/4분기부터 실물경제가 급격히 침체하고 은행의 연체율이 높아지는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금융 및 산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1997-98년의 위기와 달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이 아직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크게 두 방향의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했다. 우선 건설 조선 해운업과 같이 이미 부실이 드러난 산업에 대해서는 기업신용평가와 재무구조평가를 통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으로 향후 드러날 부실기업의 효율적인 구조조정과 금융기관이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와 재원을 사전에 마련하고 있다.
먼저 2009년 1월과 3월에 채권단이 건설사와 조선사에 대한 기업신용평가를 진행했다. 111개 기업에 대한 1차 기업신용평가에서 16개 기업을 구조조정대상으로 선정하고 이 중 2개 기업을 퇴출시켰다. 74개 기업에 대한 2차 기업신용평가에서는 20개 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 중 5개 기업을 퇴출시켰다. 2009년 4월 현재 37개 해운사를 대상으로 한 신용위험평가가 진행 중이며, 45개 대기업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도 진행해 기준에 미달한 대기업과 5월까지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그러나 1-2차 기업신용평가에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C등급)이나 일시적 자금난(B등급)이라고 판정받은 5개 기업이 부도처리 되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처럼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비해 건설기업의 부실이 더 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채권단이 평가를 잘못했거나 회생 가능한 기업으로 분류하고도 지원을 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평가와 관련해서 금융권이 자신의 부실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해 공정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주채권단인 은행 주도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신규자금 지원 등 구조조정 철차에 대한 합의가 없어 2차 금융기관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정부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은행자본확충펀드, 구조조정기금, 금융안정기금 등의 공적자금을 조성하고 있다. 은행자본확충펀드는 은행의 실물지원 및 구조조정지원 목적이며, 경영권에 대한 관여는 하지 않는다. 은행자본확충펀드는 한국은행 10조 원(산업은행에 대한 1년 만기 대출), 산업은행 2조 원과 기관 및 일반투자자 8조 원을 유치하여 총 2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자금으로 은행의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우선주를 매입할 계획인데, 지금까지 1차로 4조 원가량이 투입되었다.
자산관리공사에 설치되는 구조조정기금은 부실채권과 구조조정기업의 자산 매입이 목적이다. 정부가 40조 원 한도의 구조조정기금채권을 발행하여 기금을 마련하며 운용기간은 2014년까지다. 정책금융공사에 설치되는 금융안정기금은 은행과 은행 외의 금융기관 전반에 대한 자금지원이 목적이다. 은행자본확충펀드와 구조조정기금으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구조조정기금과 마찬가지로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마련하며 그 규모는 경제위기 진행 상황을 고려하여 추후에 확정할 예정이다.
외국자본에 장악된 은행의 고액배당, 외화차입, 거품양산
금융안정화정책과 공적자금정책에서 금융기관은 직접적인 정책대상이 되거나 실물경제 지원과 구조조정의 매개자 역할을 한다. 따라서 막대한 자금이 금융기관, 그 중에서도 은행권에 투여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먼저 IMF 경제위기 이후 국내은행의 지배소유구조와 경영행태가 변화한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시중은행은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거쳐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 시티, SC제일은행 7개로 통합되었다. 이 중 시티와 SC제일은행은 상장마저 폐지된 완전한 외국계은행이고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도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다. 따라서 은행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이 배당금 등을 통해서 해외자본에게 유출되는 상황이다. 2007년 유가증권 외국인 배당총액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국민은행, 외환은행, 신한지주회사가 포함되었으며, 특히 2위를 기록한 국민은행은 2007년에만 6,700억 원을 외국인에게 배당했다. 외국자본에 의해 장악된 국내은행은 2001년부터 꾸준히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으며 2004년 이후에는 최고의 호황을 누려 2007년 당기순이익이 15조 원에 이르기도 했다. 작년에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7.9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환율의 급등락 속에서 키코 등 환율파생금융상품 수익에 크게 힘입어 외환거래를 통한 이익이 6.6조 원으로 전체의 84%나 되었다.
그런데 한국경제가 대외요소에 매우 취약하게 된 데에는 은행의 역할이 컸다. 2000년 이후 국내은행은 몸집을 불리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이자가 싼 외화를 단기차입하고, 고금리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은행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국내에서 부동산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에 집중했다. 기업대출에 비해 가계대출이 도산 위험이 적어 안정적인 수익처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권의 대출 중 가계대출 비중은 1998년 말 11.0%에서 2000년 말에는 31.2%, 2008년 3월말 53.0%로 급격히 늘었다. 또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도 2001년 말 51.7%에서 2008년 3월 말 62.8%로 늘었다. 이렇게 공격적인 대출확대로 예대율도 높아져 2004년 100%를 돌파한 후 2008년 9월 말 123.4%를 기록했다.
대규모 차입과 부동산거품 편승으로 몸집을 불리던 은행은 자금차입이 여의치 않아지고 부동산거품이 꺼지자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환율폭등과 외화 단기차입의 만기연장 차단으로 외화조달 금리가 급등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시급히 1,000억 달러 지급보증과 300억 달러 지원에 나선 것이다. 또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화 자금조달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BIS자기자본비율이 2007년 말 12.3%에서 2008년 9월 10.9%로 급락했고, 자기자본구성비율(자기자본/총자산)도 같은 기간 6.9%에서 5.7%로 하락했다. 이러한 비율은 영국과 미국은 물론 주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융기관을 통한 손실의 사회화
따라서 정부는 무차별적인 유동성 공급 외에 은행의 자본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기금을 마련했다. 60조 원 이상으로 조성되는 은행자본확충펀드, 구조조정기금, 금융안정기금이 그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은행 자본확충이 주로 보통주나 우선주를 매입하는 (부분)국유화 방식이라면 한국정부는 은행채 인수와 부실채권 정리 방식을 채택했다. 즉 은행의 지배소유구조나 경영형태에 대한 정부의 개입권한이 없다. 게다가 정부지원 요건에 엄격한 기준이 추가되지도 않는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되는 이 자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충당되기 때문에 사실상 공적자금이다.
그런데 정부는 공적자금 관리 통제 방법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문제가 되자 최근에서야 한나라당이 입법안을 마련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 20명이 발의한 공적자금관리특별법 개정안은 구조조정기금과 금융안정기금을 공적자금 범위에 새로 추가하고, 은행자본확충펀드는 제외했다. 그리고 공적자금을 종합 관리하는 공적자금위원회를 금융위 산하에 설치하고, 6명의 민간위원을 변호사협회, 공인회계사회, 은행연합회, 금융학회,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각각 1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한나라당 법안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은행자본확충펀드를 공적자금으로 간주하지 않아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 은행자본확충펀드에 민간자금이 참여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8조 원의 민간자금이 대부분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서 조달될 가능성이 높고, 금융기관의 자본을 확충하고 구조조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다른 기금과 목적이 동일하다. 따라서 공적자금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공정한 심사와 감독 없이 은행의 사적 이익을 위한 지원에 마구잡이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 둘째 공적자금으로 간주하는 경우에도 그 운용 방식이 최소비용원칙(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이 최소화되는 방식으로 운용)에 맞춰져 있다. 공적자금의 낭비를 막는 것이 필요하지만 공적자금 운용의 원칙이 비용에만 맞춰진다면 기업의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한 공적자금 투입이 노동자의 해고로 직접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나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최소비용원칙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공적자금이 노동유연화에 활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셋째 공적자금을 관리할 공적자금위원회 구성도 문제다. 금융위 산하에 공적자금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인데, 공적자금 투입계획을 직접 입안한 정부기관 아래에 관리기구를 두는 것은 옳지 않다. 또 그 위원들도 대부분 정부, 금융기관, 자본가단체 중심으로 구성된다. 세금으로 조성되는 공적자금 운용에 대한 시민과 노동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서 그나마 보장되었던 국회와 감사원의 감독기능도 대폭 축소될 상황이다.
IMF 경제위기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이 168.5조 원이고 이중 현재까지 55.5%인 93.6조 원만 회수되었다. 엄청난 미회수금액과 이자비용은 2027년까지 일반회계(세금으로 국민의 부담)와 예금보험기금 채권상환기금(특별보험료 형태로 금융소비자의 부담)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또한 공적자금 투입 과정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자의 대량해고가 발생했다. 경제위기와 기업부실을 발생시킨 대주주와 경영자에게는 그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에게 고통과 비용을 떠넘긴 것이다.
우리는 10년 전에 뼈아픈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했다. 감세나 추경 등 경기부양정책에 대해서는 그 규모나 쓰임새에 대한 논쟁이 있으나, 금융정책과 공적자금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 없이 정부의 안이 관철되고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위기이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태도 속에서, 은행을 위시한 금융기관이 위기관리의 공정한 집행자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은행의 부실이 국민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주도한 위기의 주범들이 스스로 해결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폐 속에서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금융기관은 자신의 부실을 사회화하고 정책매개자 역할로 한국사회의 금융적 재편을 다시 꾀할 수 있어 이중의 이익을 얻을 것이다. 반면에 국민들은 세금을 통해서 비용을 떠맡고 노동자들은 해고와 임금삭감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경제위기 대응정책의 계급적 본질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