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5-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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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의 투쟁목표 수립을 위한 제언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해고와 임금삭감, 어떻게 싸울 것인가

박준도 | 노동위원장
1998년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의 일시적 호황에 편승하여 IMF위기를 1년~2년 만에 극복한다. 하지만 정보통신 거품이 사라지고 국내소비를 진작하려던 신용카드 붐 역시 위기에 다다르자 한국경제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붕괴하면서 한국경제는 모든 경기지표에서 장기불황 돌입의 징후를 확인한다.
환율이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급감하고 있고 실업은 급증하며 임금은 대폭 삭감되고 있다. 실업은 자영업자, 건설 일용직에서부터 확대되기 시작하여 중소제조업체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생산물량마저 감소하자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소득도 감소한다.
현재 한국의 경제위기는 1998년 IMF 위기 당시와는 달리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위기의 일부다. 수출산업이 지배적인 한국경제로서는 오랜 시간동안 생산의 감퇴를 겪는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주노조운동 내 실리주의적 경향의 희망과는 달리 양보교섭과 실리적 담합으로는 실업과 임금삭감이라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리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화된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정당성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욱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 비정규직 등 미조직 대중에서부터 밀려들어오는 해고와 실업의 경향에 맞서 투쟁하는 주체를 조직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왜곡된 임금체계로 인해 생산물량 감소가 임금삭감으로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저항 한번 못하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노동조합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조합운동의 전면적인 개혁을 촉구한다.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을 전제로 경제위기 아래 노동조합운동이 해고와 임금삭감에 맞서 어떻게 투쟁을 새롭게 조직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제안한다.

해고경향의 확대와 불안정한 일자리의 증가

2009년 3월 현재 경제활동참가율은 60.2%다. 이는 IMF 위기 당시 1998년 연간 경제활동참가율 62.5%보다 2.1% 포인트 더 낮은 수치여서 현재 경제활동참가율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1월부터는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규모가 생산가능인구 증가 규모를 크게 초과했다. 참고로 취업자 증가 규모는 2008년 12월부터 4개월 연속 감소세이며 2009년 3월 한 달 사이 감소폭은 19만 5천 명으로 10년 내 최대치다.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를 보면 비임금근로자, 특히 자영업자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고 있고(전년 동월 대비 -3.8%) 임시근로자 및 일용근로자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전년 동월 대비 각각 -1.6%, -5.4%). 자영업자와 임시직 일용직 근로자의 실업이 크게 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자는 2008년 3월 현재 13만 3천 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136% 증가하였다. 이 중 86.9%가 휴업이며, 또한 전체 지원 중 80% 이상이 제조업 중소영세사업장이다. [그림 1]을 보면 중소제조업체의 가동률이 곧 최저 한계치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중소규모 부품업체, 하청용역업체 등에서 해고가 빠르게 진행 중이거나 곧 임박했다는 뜻이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현재 실직이 자영업자 → 임시일용직 → 중소기업 순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고 경향에서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초단기계약직 노동자에서부터 시작한 해고의 경향이 지금 현재 사내하청노동자, 부품사 노동자에게까지 이르고 있다.
취업자 비중을 살펴보면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2,954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8% 증가하지만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19,919천 명으로 2.6% 감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일자리 공유’를 통한 고용유지 방안(임금삭감, 공공부문 청년인턴제 도입 등등)과 55만 개의 일자리 창출계획(6개월 공공근로 40만 개, 초중고 학습보조 인턴교사 채용 2만 5천 명,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3만 3천 명, 중소기업 청년 인턴 채용 지원 1만 2천 명)은 저임금, 임시직 일자리 창출(공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라는 것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통한 ‘실업의 조직화’에 불과함을 확인할 수 있다.

광범위한 임금삭감 경향

2009년 2월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08년 4/4분기 월평균 명목임금은 266만 1천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하락하였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6.4% 하락했다. 이 같은 하락 경향은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층에서 두드러진다. 상용노동자의 명목임금은 1.7%,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은 9.4%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상용노동자는 5.9%,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자그마치 12.9%나 하락한다.
문제는 실질임금 삭감이 이루어진 방식이다. 통계상 상용노동자의 명목임금상 정액급여는 5.1% 상승하였지만, 초과급여와 특별급여는 각각 9.4%, 22.4% 감소하였다. 잔업과 특근의 축소, 상여금과 성과급 축소가 임금삭감을 주도한 셈이다. 결국 노동자는 노조가 있건 없건 2008년 4/4 분기동안 저항 한번 못해보고 임금삭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경제위기상황에서 노동시간과 임금 신축성의 위력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한편 지난 4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추진 점검 워크숍’에서 연봉제와 성과급제, 임금피크제 확대 도입을 통한 기존 직원 임금 삭감을 강력히 주문하였다. 그에 따라 제조업노동자에 비해 생산성 임금제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던 공공기관 노동자들이나 사무직조차도 임금삭감이 예상되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이건 사무직 노동자이건 ‘일자리 공유’라는 미명으로 시행된 대졸신입사원 임금 삭감과 청년인턴제 확대에 따른 영향력에서 비켜설 수 없고, 형평성 논리에 따라 10% 임금삭감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실제 임금삭감의 경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경제위기 초입단계에서부터 노동자들의 고용상태가 매우 열악해지고 있고, 임금이 심각하게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딜레마

왜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이 같은 임금삭감 경향에 아무런 저항 한번 못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것은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서 임금인상 투쟁이 왜곡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노협 당시에는 기본급 인상투쟁이 중심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여 각종 초과급여나 특별급여를 쟁취하는 방식으로 임금인상의 중심목표가 바뀌고, 그나마 기본급에서도 직능 및 직무급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경향은 금속노조 관할 사업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금속산업 전체의 임금 구조는 정액급여 69%, 초과근로급 11%, 상여금 19%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금속노조가 포괄하는 사업장의 임금 구조는 정액급여 38%, 초과근로급 27%, 상여금 35%로 구성되어 있다. 즉 금속노조 사업장의 임금구조가 더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는 자동차산업, 이른바 완성차 4사 노동자의 임금이 어떻게 해서 다른 제조업 사업장보다 높은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결국 임금체계가 생산성 임금제 중심으로 바뀌면서 임금신축성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경제위기로 인해 물량이 축소되고 실노동시간이 줄면서 초과급여와 특별급여도 줄면서 임금삭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임금격차다. [그림 3]에서 보듯 사업체 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 임금격차 그래프는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데 [그림 2]에서 보듯 평균 명목임금액의 상승추세는 1997년 이후 둔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0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 임금노동자의 명목임금액 상승추세만을 고려하더라도 완만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명목임금액이 완만하게 상승했다는 것은 사실 10인 이상 임금상승률이 점차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음 가설이 가능하다. 정규직 대공장 임금은 대기업단위 노조가 얻어낸 임금방어의 결과다. 반면 500인 이하 사업장과 비교할 때 나타나는 임금격차는 하청계열화가 심화화면서 1990년대 임금상승의 지체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과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향은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더더욱 분명하게 관찰된다.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대규모 제조업 자본이 노동비용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하청생산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대규모 제조업 사업장에서 노무비에 대비한 외주가공비와 하청생산비의 비율은 1996년 41%에서 2007년 67%까지 증가한다. 반면 대규모 사업장 대비 중소규모 사업장 임금은 1997년 69%에서 2007년 57%로 하락한다. 결국 하청연계망을 통한 외주 하청업체(여기서 사내하청인가 사외하청인가는 부차적인 쟁점이다)에서의 임금삭감을 통해 대규모 제조업 자본가들이 이득을 보거나 손실을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자, 배당의 형식으로 금융소득은 확대되고 유보이윤이 기업설비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노동자 내부 임금 격차란 부의 분배가 노동자하층에서 금융소득자로 이전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현상적으로는 마치 여성노동자의 임금을 남성노동자가,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 노동자가 빼앗아간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이런 내부격차의 확대에 대해 지배세력들이 역으로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강화하면서 노노갈등을 부추겼다. 그에 따라 노동조합의 임단협 투쟁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른바 정규직 대기업 노조는 이 같은 착취의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 없이, 그것도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여 각종 수당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임단협 투쟁을 진행해 왔다. 이것이 도리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 말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은 전체 산업의 임금인상이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하청체계의 발달로 전체 산업의 임금인상이라는 부수 효과는 사라지고 도리어 임금격차가 확대되었다. 임단협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이끌어왔던 역사적인 성과가 유실되면서 민주노조운동이 고립에 처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이 착취 메커니즘에 따라 경제위기에 따른 대기업의 손실이 고스란히 용역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IMF이후 손실 전가의 필요성을 확실히 깨달은 대기업은 사내유보금 형태로 버틸만한 재무 여건을 유지하면서, 자사의 경우에는 대량해고보다는 각종 수당 삭감 등을 통한 임금 감축을 도모한다. 그리고는 실제 비용삭감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 납품업체 부품단가를 낮추거나 납품업체들 사이의 물량을 강제로 조정함으로써 위기비용을 전가한다. 앞서 언급했던 300인 이하 중소규모업체들에서 업체폐업 가능성에 따른 고용불안이 확대되고, 임금삭감이 광범위하게 전개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총고용보장 투쟁이 이른바 ‘정규직 대기업 노조’의 고용보장 투쟁에 그친다면, 남한사회에서 민주노조운동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말 것이다. 고용보장투쟁과 임금삭감저지투쟁은 개별기업 노동조합의 틀 내에 갇혀서는 절대로 안 된다.

비정규직 법안 개악 시도와 양보교섭의 확산

한편 이명박 정부는 노동자운동 내에 존재하는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갈등을 틈 타 이른바 취약계층 실업대책으로 기간제 고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거나 비정규직 법안 실행을 한시적으로 유보함으로써 해고경향을 완충시킬 수 있다며 쟁점을 호도한다. 2년에서 4년으로 연장을 하든 안 하든 비정규직 계약해지는 어차피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법 개정 여부와는 무관하게 비정규직 해고는 필연적이다. 실상 비정규직 관련 법안 개악의 목표는 노동신축화 확대에 있지만, 현실에서는 ‘해고의 완화’에 있다는 듯이 포장하여 현실의 해고 경향을 감추고, 노동신축화도 제도화하겠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지배세력들의 속셈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자행되는 해고와 임금삭감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 운동의 투쟁계획 자체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계급대립이 비정규법 개악여부를 둘러싸고 드러날 것이라는 비정규법 개악 저지투쟁에 대한 ‘협소한’ 이해로는 실제로 자행되는 해고와 임금삭감에 맞서는 민중운동의 저지 전선을 구성할 수가 없다. 우선 비정규직 법안 개악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피해를 입는 운동주체 즉, 정규직화를 목전에 둔 주체의 구성이 곤란하다. 또한 당장의 해고여부를 다투는 상황에서, 이 법안의 개악 여부가 실제 해고를 저지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효과도 별로 없다. 더구나 광범위한 해고와 임금삭감에 따른 산업예비군의 증가야말로 노동신축화의 물질적인 힘인데도 여기에 맞서는 투쟁계획 없이 비정규법 개악 저지투쟁만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겠다는 것은 대단히 한계적이다. 비정규법 개악 저지투쟁은 장기적 경기불황을 예상하면서 노동신축화를 관철시키려는 지배세력들의 의도를 폭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 전선 상의 폭로와 선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 시대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는 새로운 차원의 쟁점을 형성하고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불행히도 여기에 맞설 수 있는 조직노동자, 조합원의 투쟁태세는 최악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3월 현재까지 12.3% 사업장의 임금교섭이 종료되었고, 협약임금 인상률은 평균 1.8%이다. 이는 외환위기 이래 가장 빠른 속도의 임금교섭이자, 가장 낮은 협약임금 인상률이다. 더구나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임금 인상률이 1.1%이고,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2.3%이이어서, 결국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 노사민정합의에 따라 임금삭감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총에서마저 개별사업장 차원의 임금협약 및 특별단체협약 진행상황이 온전히 총화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방적인 양보교섭이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민주노조운동진영의 해고와 임금삭감에 맞서는 투쟁계획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실업 보조금 지원 확대’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정규직 양보론’을 필두로 하는 ‘임금삭감과 고용유지 중 어느 것이냐’는 선택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경제위기하 지배세력들의 ‘노동재조직화’에 무비판적인 고용안정방안 합의로 귀결되어, 일자리 나누기의 결과로서 임금삭감과 노동신축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실업 보조금 지원 확대는 실업노동자의 생존권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경제위기 하 노동권 문제를 헌법이 보장하는 취업자의 권리(혹은 취업의 권리) 정도로 상대화하는 경향도 있어 노동의 불안정화 추세에 맞서 투쟁하는 주체의 구성을 유보하는 경향을 동반하기도 한다.
더구나 1990년대 이래 지속되어온 민주노조운동 이념이 약화되면서, 즉 노동해방을 이념적 전거로 하는 전노협 정신이 ‘청산’되고 노동조합운동 내 실리주의적 경향이 힘을 얻어가면서, 현재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대안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과 집행력마저 약화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이자 노동자 투쟁의 구심으로서 총연맹의 위상이 심각히 흔들리고 있다. 결국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의 노선 즉, 이념, 활동목표, 조직론의 구성과 함께 총연맹의 위상이 투쟁의 구심으로 제고되지 않는 이상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조합운동의 활력을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경제위기에 맞서는 노동조합운동의 당면 투쟁기조

결국 이상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논점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제위기 하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해고와 임금삭감의 경향에 맞서 노동조합의 전 계급적인 투쟁목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둘째, 현재 노동조합운동의 전면적인 혁신을 향해 한걸음이라도 내딛으려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논의에 앞서 다음과 같은 전제를 확인해 두자. 구체적인 투쟁계획이 노동조합운동의 대안적 이념 형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 자본주의 즉, 금융세계화한 자본주의의 부후성과 반동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구체적인 쟁점을 형성하는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 둘째, 노동조합운동의 최우선적인 목표로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가능케 하는 구체적인 투쟁의 매개 고리가 제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오늘날 노동조합운동의 대안적 이념 형성이란 노동해방과 여성해방 이념의 조우와 함께 국제주의적 지향을 밝히는 것이며,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이란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의 단결이다.

재벌의 초민족화, 초민족적자본의 수탈 메커니즘 폭로: 자본의 위기 전가와 수혜자에 대한 폭로

세계적 경제위기에서 초민족자본과 재벌기업들이 자신의 손실을 어떻게 사회화하고,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기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구체적인 비판, 폭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이번 호에 실린 한지원의 글을 참조하라.) 그리고 장기화될 경제위기국면에서 지배세력들이 노동재조직화(노동신축화, 실업의 조직화)를 관철시키는 방식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배세력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어떻게 이간질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초민족적 자본과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주도하려는 정치 권력자들 사이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폭로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수탈의 행위자가 누구인지, 누가 적인지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가 확대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원칙적, 도덕적 호소만 가지고는 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을 도모할 수 없다. 오늘날 경제위기의 손실이 어떻게 노동자에게 전가되는지를 노동자들이 정확히 깨달았을 때에야 노동자 계급 내부 단결의 첫걸음이 가능하다.

이명박 정권의 구조조정 방안 및 일자리 정책에 대한 비판 폭로: 반이명박 전선과 반신자유주의전선의 결합
현재 반이명박 전선을 주장하는 세력 중 일부는 현재의 위기가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에서 기인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인 주장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 시기 경제위기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반이명박 전선과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결합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현재 지배세력들의 목표는 이러저러한 전선의 교란 속에서 실질적인 해고와 임금삭감을 관철시키고 그 힘 위에서 노동신축화를 위한 제도정비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해고, 임금삭감 의도에 맞서 싸우는 투쟁전선을 구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위한 반신자유주의 노동자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긴요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대한 비판, 청년실업자들의 청년인턴제 비판의 확산을 통해, 노동권 없는 일자리를 확대함으로써 정부의 책임을 모면하고 도리어 노동표준을 하락시키려는 지배세력들의 일자리 나누기의 기만성에 대한 비판을 강화해야 한다. 경제위기 노동자간 임금격차, 노동조건격차를 확대하여 자신의 책임을 도리어 노동자 대중 내부로 떠넘기려는 기만적인 술책에 대한 비판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노동자와 실업자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자와 실업자간 동맹을 강화할 수 있도록 투쟁들을 보다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경제위기 아래 노동권의 전면적인 제기: 한시적 해고중단 및 고용안정 요구의 전면화
경제위기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서 노동권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노동권이 부정당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일상적인 해고나 해고의 위협이다. 실업노동자일수록 해고의 위협 아래 노동권이 부정 당한다. 더구나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는 높은 실업상태(산업예비군)를 빌미로 하는 해고 위협과 함께 노동권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제도적인 제어방안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한시적인 해고중단 및 고용안정 특별법’은 매우 유력한 매개 고리가 될 수 있다.
단위사업장 수준의 요구를 넘어 노동자의 계급적인 요구로서, 완화된 정리해고제 앞에서 긴장하고 있을 정규직 노동자든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든 현 시기 공동의 요구로서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 해고의 중단을 핵심 목표로 내걸고, 이를 제도화 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무작위로 확산되는 해고위협 앞에서 시민의 노동권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경제위기 동안만이라도 ‘한시적 해고중단 및 고용안정 특별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해고요건 엄격화(정리해고 조항 적용 한시적 유예). 둘째, 계약해지조건 엄격화(경제위기시기 계약해지 중단,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계약 해지 조건 및 사용자 책임성 강화, 하청 용역 업체 등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 셋째, 파산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고용 승계(파산가능성이 높은 기업에서 정부지원을 통한 고용보장, 정부의 파산 기업의 임금 및 노동조건에 준하는 고용 승계 의무). 넷째, 정부지출 증대를 통한 고용 확대 (일자리 창출 및 노동권 보장). 다섯째, 실업자에 대한 사회보장확대(고용보험 지급기준 확대, 실업부조 지원 확대).

임금을 매개로 정규직 비정규직의 단결 모색: 최저임금 현실화 요구를 내걸고 전 민중의 단결을
1980년대 말 재벌기업의 임금인상투쟁은 전체 사업장의 임금인상을 동반했다. 하지만 1990년 초중반부터 이 효과는 약화되었다. 하청계열화를 통한 재벌기업의 손실전가 메커니즘이 확립되면서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이 억제되고 그에 따라 임금격차가 확대되었다. 반면 2001년부터 전개된 최저임금인상투쟁은 재벌기업들의 손실을 어느 이상으로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없는 노동표준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미조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실질적 임금인상 효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임금신축화에 따라 경제위기 상황에서 다소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물량감소에 따른 각종 수당, 성과급이 삭감된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실질수령액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수령액 사이의 격차가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물량감소에 따른 소득감소를 회복하려는 임단협투쟁과 최저임금 인상투쟁은 임금삭감 저지 혹은 임금소득 보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2009년 최저임금투쟁은 과거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첫째, 재벌 기업주들이 경제위기에 따른 자신의 손실을 원하청 구조를 활용하여 하청 용역노동자에 떠넘기려는 시도가 법정 최저임금액만큼 제한되게 된다. 둘째, 물 밀 듯 밀고 들어오는 임금삭감시도가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일정한 선에서나마 저지된다. 셋째, 최저임금 인상이 그 자체로 물량감소 및 각종 임금삭감으로 인해 유실된 임금을 회복시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은 노동자들이 함께 공동의 목표로 삼는 임금삭감저지투쟁이 되어야 한다.

마치며

지금부터라도 계속 확대되고 있는 해고와 임금삭감경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투쟁전선을 세워야 한다.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 해고의 중단’을 핵심 기치로 삼고 이를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동시에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 임금삭감 저지’를 내걸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투쟁해야 한다. 경제위기 시대 실제로 해고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요구를 내걺으로써 지배세력들의 정치적 의지를 꺾을 수 있는 현실적인 쟁점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한시적 비정규직 법안 유예 방안은 우리가 주장하는 ‘한시적 해고 중단 및 고용안정 특별법’과 대립적이면서도 해고에 대한 대안으로서 계급적 입장이 명백히 다른 주장이다. 이에 대한 전면적인 폭로 속에서 ‘한시적 해고 중단 및 고용안정 특별법’을 전면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지배세력들의 야만적 행태를 폭로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이 우리가 지금 ‘해고 및 고용안정 요구’의 전면적 쟁점화, 전체 노동자 민중이 함께하는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제안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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