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불황과 미국 노동자운동의 영욕
초과노동과 실업은 자본주의에서 제거될 수 없는 요소다. 세계 노동자운동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초과노동 또 한편으로는 실업에 맞선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 경제위기가 1930년대 세계 대불황에 비견되고 있는 지금 1930년대 미국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살펴보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29년 주식시장 대폭락으로 본격화된 미국 대불황은 엄청난 대량실업을 낳았다. 실업률은 1933년에 24.9%로 고점에 도달했다. 19세기까지 미국 노동자들은 특정 기업에 대한 애착심을 거의 품지 않았다. 인구의 지리적 이동성이 높은 만큼 이직률도 매우 높았다. 1910대 초반 경제번영을 구가하던 시기에 거대 법인기업은 높은 이직률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1912~13년에도 포드사의 이직률은 415%였다. 이에 따라 1920년대 동안 숙련노동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장기근속에 대한 보상으로 연금, 스톡옵션, 보험, 주택대출이 제공되었다. 이로 인해 특정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애착심이 강해지게 되었다.
또한 다수의 기업들은 경기하강으로 인해 정리해고를 실행할 경우에 먼저 신규 비숙련노동자를 해고하고, 숙련노동자를 비숙련노동자의 위치로 전환배치하거나 숙련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숙련노동자에게 노동을 분배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처럼 새로운 기업경영기법은 그전에는 노동자가 반대하던 일자리 나누기가 확립되고 고용주가 주도권을 행사하게 했다. 또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같은 기업에 재고용될 때까지 그 지역에 계속 머물게 하는 새로운 경향을 낳았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경향은 대불황 초기에 실업자조직이 신속히 결성되어 실업수당 입법이나 해고된 기업의 일자리 회복을 요구하게 된 효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1930년대 새롭게 출현한 산업노조(CIO)는 장기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선임자 우선의 원칙에 따라 정리해고와 재고용이 규제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즉 근속기간이 긴 노동자가 나중에 해고되고 먼저 재고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많은 기업 경영진이 이미 채택한 방식이었지만 점차 노동조합의 강력한 원칙이 되었다. 물론 그 원칙이 확립되는 과정은 매우 복합적인 쟁점과 갈등을 낳았다.
어떤 노동조합은 주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을 선호한 반면, 어떤 노동조합은 선임권에 따라 정리해고가 진행되는 것을 인정했다. 자연스럽게 청년 노동자층은 일자리 나누기를 옹호한 반면 장년 노동자는 선임권에 따른 정리해고를 선호했고 이는 당연히 큰 갈등을 낳았다.
이중에서 웨스팅하우스 601지부의 사례는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601지부는 대량해고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선임권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경영진과 합의를 이루었다. 하지만 추가적인 대량해고의 충격이 다가오는 두 번째 단계에서는 조금 남아 있는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며 새로운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면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이 크게 감소하면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방침이 일자리의 공유가 아니라 ‘비참함의 공유’라고 부르며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일자리공유를 중단하고 엄격한 선임자 우선의 원칙에 따른 정리해고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다시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최종적인 단계에서 회사와 합의한 결론은 주 36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이 감소하면 1년 이하 근속연수의 노동자를 해고한다, 30시간 이하로 감소해야 할 상황이 오면 5년 이하 노동자를 해고하고 최소 30시간 노동은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점점 더 적은 수의 숙련 노동자만이 일자리와 일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 받는 방식으로 귀결된 것이다.
특히 선임권 원칙이 낳은 가장 큰 고통은 흑인에게 집중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공산당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선임권 여부와 상관없이 흑인에 대한 고용할당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한다, 흑인이 숙련직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흑인에게 일률적으로 2-3년의 근속연수를 더해주어야 한다 등등. 이러한 공산당의 요청에 대해 노동조합 대부분은 ‘역인종차별’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이에 따라 선임권의 불가침성은 노동조합 지도자, 백인 숙련노동자, 고용주가 모두 옹호하는 신성한 원칙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선임권에 따른 정리해고와 재고용 규제는 경기침체가 일시적인 경우라면 노동자들이 이를 잠시 추인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재고용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노동자 간 심각한 갈등요소가 되었다. 또한 임금삭감을 감수하는 일자리 나누기(어떤 경우에는 선임자들 사이의 일자리 나누기) 역시 일시적이라면 취업자의 경우에는 이를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더라도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심각한 임금하락 때문에 노동자 내부의 반발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점점 더 적은 수의 숙련 노동자만이 고용과 임금을 보장 받는 것이었다. 특히 대량해고가 발생할 때 흑인 노동자,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당연시되었다. 이미 1900년대 초반에도 정리해고와 재고용에서 기혼 남성이 우대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미국 CIO가 선임권에 따라 기업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은 상당히 전투적인 양상을 취했지만 이는 CIO의 미래에서 계급적 토대를 스스로 침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모든 점들에서 볼 때 미국 노동자운동이 걸었던 길과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이 선택하고 있는 길은 여러 모로 매우 유사하다. 물론 1930년대 미국의 기업구조에 비해 현재 한국의 기업구조는 하청계열화로 인해 훨씬 더 복잡하지만 대량해고가 진행되는 양상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예를 들어 최근 GM대우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무급순환 휴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전환배치를 합의했다. GM대우의 생산물량 감소로 인해 실질 노동시간과 임금이 모두 감소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미국 웨스팅하우스 지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쯤을 의미할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추가적인 인력감축도 예고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국면이 예상된다.
이처럼 미국 노동조합의 실패한 경험과 현재 노동조합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믿고 있는 방안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대안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역사의 경험에서 볼 때 결국 모두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 당장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어렵더라도 대안에 미달하는 것을 대안이라고 주장하거나 거기에 노동자의 모든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기관지 특집은 현 정세에 가장 적합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목표를 수립하기 위한 제언들을 담고자 기획했다. <최근 고용, 임금, 노동시간 실태>는 고용과 임금의 악화 현실을 분석했고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목표 수립을 위한 제언>은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는 해고와 임금삭감을 저지하기 위한 특단의 계획이 필요하며 그 매개고리로 ‘한시적 해고중단 및 고용안정 특별법’을 위한 투쟁과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제시하였다. <GM의 손실의 세계화 전략과 GM대우 구조조정 전망>은 노동조합 대응의 시금석이 될 GM대우의 사례에서 노동조합이 택해야 할 대응방안을 제시하고자 했고, <세계경제위기와 이주노동자운동>은 경제위기로 격화되는 이주노동자 공격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기했다. 현재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심각성을 볼 때 지금까지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관성적 대응은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사회진보연대의 진단과 제언이 건설적 토론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1929년 주식시장 대폭락으로 본격화된 미국 대불황은 엄청난 대량실업을 낳았다. 실업률은 1933년에 24.9%로 고점에 도달했다. 19세기까지 미국 노동자들은 특정 기업에 대한 애착심을 거의 품지 않았다. 인구의 지리적 이동성이 높은 만큼 이직률도 매우 높았다. 1910대 초반 경제번영을 구가하던 시기에 거대 법인기업은 높은 이직률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1912~13년에도 포드사의 이직률은 415%였다. 이에 따라 1920년대 동안 숙련노동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장기근속에 대한 보상으로 연금, 스톡옵션, 보험, 주택대출이 제공되었다. 이로 인해 특정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애착심이 강해지게 되었다.
또한 다수의 기업들은 경기하강으로 인해 정리해고를 실행할 경우에 먼저 신규 비숙련노동자를 해고하고, 숙련노동자를 비숙련노동자의 위치로 전환배치하거나 숙련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숙련노동자에게 노동을 분배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처럼 새로운 기업경영기법은 그전에는 노동자가 반대하던 일자리 나누기가 확립되고 고용주가 주도권을 행사하게 했다. 또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같은 기업에 재고용될 때까지 그 지역에 계속 머물게 하는 새로운 경향을 낳았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경향은 대불황 초기에 실업자조직이 신속히 결성되어 실업수당 입법이나 해고된 기업의 일자리 회복을 요구하게 된 효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1930년대 새롭게 출현한 산업노조(CIO)는 장기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선임자 우선의 원칙에 따라 정리해고와 재고용이 규제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즉 근속기간이 긴 노동자가 나중에 해고되고 먼저 재고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많은 기업 경영진이 이미 채택한 방식이었지만 점차 노동조합의 강력한 원칙이 되었다. 물론 그 원칙이 확립되는 과정은 매우 복합적인 쟁점과 갈등을 낳았다.
어떤 노동조합은 주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을 선호한 반면, 어떤 노동조합은 선임권에 따라 정리해고가 진행되는 것을 인정했다. 자연스럽게 청년 노동자층은 일자리 나누기를 옹호한 반면 장년 노동자는 선임권에 따른 정리해고를 선호했고 이는 당연히 큰 갈등을 낳았다.
이중에서 웨스팅하우스 601지부의 사례는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601지부는 대량해고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선임권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경영진과 합의를 이루었다. 하지만 추가적인 대량해고의 충격이 다가오는 두 번째 단계에서는 조금 남아 있는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며 새로운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면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이 크게 감소하면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방침이 일자리의 공유가 아니라 ‘비참함의 공유’라고 부르며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일자리공유를 중단하고 엄격한 선임자 우선의 원칙에 따른 정리해고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다시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최종적인 단계에서 회사와 합의한 결론은 주 36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이 감소하면 1년 이하 근속연수의 노동자를 해고한다, 30시간 이하로 감소해야 할 상황이 오면 5년 이하 노동자를 해고하고 최소 30시간 노동은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점점 더 적은 수의 숙련 노동자만이 일자리와 일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 받는 방식으로 귀결된 것이다.
특히 선임권 원칙이 낳은 가장 큰 고통은 흑인에게 집중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공산당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선임권 여부와 상관없이 흑인에 대한 고용할당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한다, 흑인이 숙련직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흑인에게 일률적으로 2-3년의 근속연수를 더해주어야 한다 등등. 이러한 공산당의 요청에 대해 노동조합 대부분은 ‘역인종차별’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이에 따라 선임권의 불가침성은 노동조합 지도자, 백인 숙련노동자, 고용주가 모두 옹호하는 신성한 원칙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선임권에 따른 정리해고와 재고용 규제는 경기침체가 일시적인 경우라면 노동자들이 이를 잠시 추인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재고용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노동자 간 심각한 갈등요소가 되었다. 또한 임금삭감을 감수하는 일자리 나누기(어떤 경우에는 선임자들 사이의 일자리 나누기) 역시 일시적이라면 취업자의 경우에는 이를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더라도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심각한 임금하락 때문에 노동자 내부의 반발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점점 더 적은 수의 숙련 노동자만이 고용과 임금을 보장 받는 것이었다. 특히 대량해고가 발생할 때 흑인 노동자,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당연시되었다. 이미 1900년대 초반에도 정리해고와 재고용에서 기혼 남성이 우대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미국 CIO가 선임권에 따라 기업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은 상당히 전투적인 양상을 취했지만 이는 CIO의 미래에서 계급적 토대를 스스로 침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모든 점들에서 볼 때 미국 노동자운동이 걸었던 길과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이 선택하고 있는 길은 여러 모로 매우 유사하다. 물론 1930년대 미국의 기업구조에 비해 현재 한국의 기업구조는 하청계열화로 인해 훨씬 더 복잡하지만 대량해고가 진행되는 양상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예를 들어 최근 GM대우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무급순환 휴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전환배치를 합의했다. GM대우의 생산물량 감소로 인해 실질 노동시간과 임금이 모두 감소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미국 웨스팅하우스 지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쯤을 의미할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추가적인 인력감축도 예고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국면이 예상된다.
이처럼 미국 노동조합의 실패한 경험과 현재 노동조합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믿고 있는 방안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대안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역사의 경험에서 볼 때 결국 모두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 당장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어렵더라도 대안에 미달하는 것을 대안이라고 주장하거나 거기에 노동자의 모든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기관지 특집은 현 정세에 가장 적합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목표를 수립하기 위한 제언들을 담고자 기획했다. <최근 고용, 임금, 노동시간 실태>는 고용과 임금의 악화 현실을 분석했고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목표 수립을 위한 제언>은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는 해고와 임금삭감을 저지하기 위한 특단의 계획이 필요하며 그 매개고리로 ‘한시적 해고중단 및 고용안정 특별법’을 위한 투쟁과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제시하였다. <GM의 손실의 세계화 전략과 GM대우 구조조정 전망>은 노동조합 대응의 시금석이 될 GM대우의 사례에서 노동조합이 택해야 할 대응방안을 제시하고자 했고, <세계경제위기와 이주노동자운동>은 경제위기로 격화되는 이주노동자 공격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기했다. 현재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심각성을 볼 때 지금까지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관성적 대응은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사회진보연대의 진단과 제언이 건설적 토론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