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7-8.89호
첨부파일
89_분석_최윤정.pdf

신종 플루의 사회경제적 원인

근본적 대책은 존재하는가

최윤정 | 정책위원
우리는 기생체의 존재가 발병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질병을 감염성 질병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기생체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정의보다 이 정의를 선호하는데, 발병으로 인한 불편과 죽음은 여러 요인들의 전체적 맥락에 따라 좌우되고 기생체는 그 중 단 하나의 요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질병과 기생체를 동일시하는 것은 특정한 감염체와의 접촉의 결과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관심 밖으로 밀어냈다.
- 위르외 하일라, 리처드 레빈스



4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멕시코와 미국에서 새로운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환자가 발생했다고 공식발표했다. 돼지인플루엔자는 양돈업계의 반발로 신종플루라고 명명되었다. 신종플루는 미국, 멕시코를 시작으로 캐나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이탈리아, 홍콩 등 전 세계로 확산되어 6월 10일 공식으로 보고된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멕시코와 미국을 비롯한 74개국에서 27,737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6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 경보 단계를 5단계에서 6단계로 격상하면서 인플루엔자 A(H1N1)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선언했다. 신종플루의 대유행 선언은 1968년 홍콩에서 인플루엔자로 약 100만 명이 숨진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다.
6월 22일 기준으로 전 세계 발병자는 52,160명, 사망자는 231명까지 증가했다. 발병자는 미국이 21,449명으로 전체 발병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멕시코가 7,624명, 캐나다 5,710명, 칠레 4,315명, 영국 2,506명, 호주 2,436, 아르헨티나 1,010명, 일본 850명, 중국 739명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사망자 수는 멕시코가 113명으로 전 세계 사망자의 49%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미국으로 87명(38%), 캐나다 13명(6%), 아르헨티나 7명(3%), 칠레 4명(2%) 순으로 나타났다. 콜롬비아(2명), 호주,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과테말라, 영국(모두 각각 1명) 이외 지역에서는 아직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5월 23일까지만 해도 10명에 불과하던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해 6월 1일 41명, 10일 55명, 16일 75명, 18일 85명에 이어 20일 105명까지 증가했다.
인플루엔자 A는 1968년 홍콩 사태나 이번 신종플루 외에도 지난 100여년간 수차례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세계적으로도 2천만~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H1N1) 대유행, 1957년 조류 인플루엔자 H2N2 대유행, 1968년 H3N2 대유행, 1976년 돼지 독감 발생, 1997년 홍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H5N1 발생 이후에도 2001년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2005년 이후로는 유라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었다. 2005년에는 조류독감이 한국을 위협한 바 있다. 지난 1세기 동안 인플루엔자의 발생 현황을 볼 때 이번 신종플루는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인플루엔자 중의 하나다.
한편 신종플루는 치사율은 아직 높지 않지만 치명적인 변종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인플루엔자 유행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57~1996년 사이 40년 동안 14번의 크고 작은 유행이 있었다면 1997~2006년까지는 단 10년 동안 10번의 유행이 발생했다. 각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는 방역 강화, 의약품 공급 등 신종플루에 대한 대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신종플루의 발생과 전파를 둘러싼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에는 침묵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1)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변종이 발생하는 맥락을 알아보고 그것을 촉진하는 조건으로서 생태파괴와 거대축산업, 2)신종플루 감염 시 적절한 치료의 실패로 인한 사망의 조건으로서 빈곤과 공공의료의 붕괴, 3)신종플루 치료제에 대한 접근권 제한의 원인으로서 초국적 제약자본의 지적재산권 등을 다루기로 한다.

신종플루 발생의 사회생태적 조건: 생태 파괴와 거대 축산업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변종의 발생

인플루엔자는 크게 A, B, C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C는 통상 감기라고 부르는 것이고 B는 매년 상당한 수의 사망자를 낳는 독감이기는 하나 대유행병의 위협과는 무관하다. 반면 인플루엔자 A는 매우 위험하다. 인플루엔자 A의 주요 보유 숙주는 오리와 물새류이나 현재 다른 조류와 포유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횡단해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이번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A H1N1이고 지난 2005년 유행했던 조류독감은 H5N1이었다. HxNy라는 공식은 헤마글루티닌(이하 HA)과 뉴라미니다아제(이하 NA)의 종류에 기초해 분류한 것이다. 인플루엔자A는 구형의 표면 위에 HA과 NA 단백질이 분포되어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체 내 세포에 침투할 때는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HA는 인체의 호흡기 점막 세포의 특정 수용체를 인식하여 결합하면서 세포 내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즉 HA는 인체 세포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인 셈이다. 바이러스가 감염을 일으키려면 인체 세포 내에서 증식을 하고 그 세포를 빠져나와서 다른 세포를 공격해야 하는데 이때 세포에서 나오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 NA다. 이번 신종 플루의 치료제로 유명하게 된 타미플루는 항바이러스제로 NA의 역할을 막아서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여 증식을 막는 것이다.
인플루엔자 A의 유행이 여러 지역에서 재발하는 이유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재조합(recombination)과 재분류(reassortment)를 통해 끊임없이 변이를 하면서 종간 장벽을 뛰어넘고 인체에 감염을 일으키는 형태로 발전해나가기 때문이다. 재조합이나 재분류는 바이러스 A와 바이러스 B가 세포 내로 침입했을 때 두 바이러스가 서로 유전물질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 때 만약 A와 B가 서로 다른 종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라면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의 바이러스가 섞인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변이 확률은 높아진다. 이는 개체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개체들이 더 밀집해있을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일으키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변이 능력이 뛰어나서 뿐 아니라 변이를 촉진하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로 다른 종이 접촉하지 않는다면 혹은 개체 수가 많지 않거나 밀집되어 있지 않다면 바이러스의 변이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야생조류의 서식지 파괴, 거대축산업의 발달 등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습지 파괴

인플루엔자의 출현과 확산 과정에 환경 문제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개입한다. 가금류의 고밀도 집적을 가져온 축산업 혁명과 더불어 전 세계적인 습지 파괴가 새로운 인플루엔자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관개농업을 위한 댐을 건설하고 습지의 물을 이용하면서 철새들이 관개 수로와 농지로 모여들게 되며 이곳에서 방목되는 오리들이 야생조류가 배설하는 바이러스와 빈번하게 접촉하게 된다. 2006년 4월 유엔 환경계획의 위임을 받은 조류 인플루엔자 과학세미나에 제출된 ‘조류 인플루엔자와 환경’ 연구서는 조류독감 H5N1의 이동경로가 야생조류, 방목되는 가금류, 산업적으로 사육되는 가금류를 연결하는 지대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했다. 예를 들어 H5N1 나이지리아 발병 사태는 카노강 관개 사업이 진행되던 지역의 기업형 가금류 농장에서 발생했다. 카노강 관개사업은 습지에서 물을 끌어와 거대한 댐과 수로의 네크워크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인데 이 관개사업으로 철새들의 서식지인 습지가 파괴되었다. 그 결과 철새들이 관개된 들판을 찾게 되었고 들판의 가금류와 섞이게 되었다. 특히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집약적 가금류 사육장에서 병원균이 전이될 위험성이 증가하게 된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 멕시코 라글로리아: 거대 축산업의 영향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신종 플루가 최초로 발생한 멕시코 베라크루즈주의 라글로리아 지역의 주민들은 신종 플루가 지역에 거대 돼지 축산공장을 두고 있는 스미스필드푸드사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스미스필드푸드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돼지 축산 회사로 매년 1,400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며 2,700만 마리를 도살한다. 버지니아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미국 26개 주와 9개 국에 진출해있으며 스미스필드푸드사의 멕시코 하청업체인 그란하스캐롤사는 베라크루즈주에 72개의 농장을 두고 매년 95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그란하스 캐롤의 축산공장은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8.5km 북쪽에 위치해있는데 공장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이 지역으로 이동해온다. 주민들은 수년 째 공장에서 나오는 돼지 배설물로 인한 악취에 불만을 호소해왔다. 4월 25일 세계보건기구가 멕시코에서 돼지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을 발표하기 이전인 2월부터 라글로리아 주민 3,000여명 중 500여명이 독감 증세를 호소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이를 매년 찾아오는 일반적인 독감으로 치부했고, 4월에는 마을에 만연한 파리 떼를 죽이기 위해 소독을 하면서 사건을 은폐 축소하였다.
새로운 돼지 독감의 발생과 확산은 돼지 사육 규모의 확대와 관련이 있다. 2003년 3월 7일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는 돼지 인플루엔자의 돌연변이가 갑자기 폭발한 원인으로 사육 두수의 증가, 돼지들의 원거리 이동, 백신 접종을 지목했다. 1993년 이후 미국의 돼지고기 생산은 대규모로 산업화된 타이슨사의 양계 모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불과 10년 만에 5,000두 이상을 사육하는 공장형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의 비율이 18%에서 53%로 증가했다. 이런 대규모 사육으로 인해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복제를 통해 역병으로 발전할 기회와 가능성이 극대화된다. 또 돼지들의 원거리 수송이 늘어나면서 감염 범위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 대부분의 닭과 칠면조는 1만 5천~5만 마리가 모여있는 공장형 농장에서 사육되는데 개발도상국에서도 육류가공의 산업화가 진행되어 연 4.3% 비율로 전통적 생산 방식이 산업적 생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 남미, 북아프리카 등의 국가에서 산업적 축산업은 인구밀집지역에 근접하여 위치한다.
인플루엔자 A 유행 가능성은 전통적 방목형 축산보다 거대축산업에서 더 높다는 연구들이 존재한다.(표 1) 2004년 태국, 2002년 덴마크의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A 유행 사례에서도 전통적 방목형 축산농장에서 검출된 사료에 비해 거대 축산업에서 검출된 사료가 더 높은 전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 돼지와 닭 생산 밀집 지역은 지리적으로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돼지와 닭 간의 접촉 가능성을 높다는 것을 시사하며 이는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공장형 축산공장의 대표적인 형태가 폐쇄동물사육시설(CAFO)이다. CAFO는 1년에 45일 이상 하나의 폐쇄된 공간에 최소 1,000마리 이상의 동물을 사육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CAFO에서는 수천 마리 이상의 동물이 폐쇄된 공간에 집중되어 있어 많은 열과 습기가 발생된다. 열과 습기를 조절하기 위해 사육시설에는 거대한 환풍기가 설치되는데 이로 인해 내부 물질과 먼지 등이 축산 공장 밖으로 방출된다. 방출된 물질들은 공기 중에 며칠 동안 떠다니며 공장으로부터 수 킬로미터까지 퍼질 수 있다.
곤충은 병원균을 축산공장 내외로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2004년 일본 교토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A 유행의 진원지가 된 양계농장 근교에서 채집된 파리에서 당시 유행한 유형의 H5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된 바 있다. 동물 사육의 한 사이클 동안 30,000마리의 파리가 발견되었다. 멕시코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주민들이 축산공장으로 인해 파리 떼가 모인다고 불만을 호소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파리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옮기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스미스필드푸드사의 그란하스 캐롤 축산공장이 신종플루와 관련이 있다는 라글로리아 주민들의 믿음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CAFO 시설은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성을 높일 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 위해를 야기한다. 대규모 축산공장이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는 여럿 존재한다. 공장식 축산으로 CAFO가 일반화되었는데, 이러한 시설에서 많은 수의 동물을 사육하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토양, 대기, 강으로 배출된다. CAFO 시설로 인한 악취와 대기오염은 암모니아, 황화수소, 메탄가스, 동물 항생제의 잔여물질 등으로 발생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오와 주의 돼지 CAFO 시설이 있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호흡기 질환을 더 많이 호소했다.(Mirabelli 외, 2006) 돼지 CAFO에 관한 연구는 CAFO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가 공장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긴장, 우울, 분노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였으며 또 다른 연구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CAFO로 인해 주민들이 두통, 콧물, 목의 통증, 지나친 기침, 설사, 눈의 따가움 등의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함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저하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CAFO 지역주민들이 악취가 심할수록 평균적으로 더 낮은 집중도를 보였으며 침샘에서 면역글로불린A의 분비가 저하됨을 보고한 바 있다. 즉 호흡기 증상의 호소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 저하는 인플루엔자 감염에 더 취약하게 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스캐롤라이나의 CAFO 시설들이 사회경제적 지표가 높은 지역보다 낮은 지역에, 그리고 백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지역보다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다른 인종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더 밀집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건강 유해 요인들이 빈곤층에 더 집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멕시코의 사망자 집중: 만연한 빈곤과 의료서비스의 붕괴

대유행병에 관한 많은 저술은 빈곤과 표준 이하의 주거환경, 불충분한 식사가 전염병의 발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1918년 바이러스의 연구는 도시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 노동계급과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현재 미국의 연구자들은 한 해 평균 3만 6,000명에서 5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망한다고 보는데 이들 대다수가 노년층, 특히 빈민이다. 인플루엔자 감염은 근본적인 영양실조, 열대병, HIV로 인해 이미 합병증에 감염되기 쉬운 상태인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건강에 상대적으로 훨씬 커다란 충격을 준다.
악명 높은 1918년 스페인 독감에 대한 연구는 인도의 사례를 통해 빈곤과 전염병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 연구는 1918~1919년 스페인 인플루엔자 사망자를 2,000만~2,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중 60%를 차지하는 1,250만 명이 인도에서 발생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영국에 대한 곡물 수출과 전시 징발이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에 영향을 미쳤고 공중보건 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 연구는 감염자들에게 즉각적인 의료 지원과 적절한 영양공급만 이루어졌어도 사망자수는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인도에서 사망률은 계급에 따라 크게 달랐는데 봄베이의 하층 카스트 주민들은 인도 내 유럽인이나 부유한 인도인들보다 8배 더 많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두에서 신종플루 감염 현황을 소개한 바 있지만 사망자가 많은 국가 4개의 현황을 다시 보면 멕시코에서 신종플루 발병자에 비해 사망자가 현저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표 2). 뉴욕타임즈는 이런 현상이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어떤 생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것은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을 그것이 일어나는 사회적, 제도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망자가 멕시코에 집중된 이유는 1980년대 이후 멕시코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으로 심화된 양극화와 만연한 빈곤, 거대 슬럼의 형성, 사회복지의 붕괴, 보건의료체계의 영리화와 무관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5월 5일 멕시코에서 유독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주요 원인은 가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멕시코의 감염환자들이 병원비를 아끼려 자가 치료에 의존한 점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멕시코 국립 의학 및 영양학 연구소의 전염병 전문가 호세 시푸엔테스-오소리오에 따르면 많은 멕시코 국민이 발병 후 3~4일간 자가 치료에 의존하는 바람에 병을 치료할 중요한 시간을 잃었다. 또 멕시코 약국에 저렴한 약이 충분히 있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치료제는 팔지 않았고 판매하더라도 너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이 구입하기 어려웠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로 알려진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2천만 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3분의 2가량이 빈민층에 속한다. 5월 30일까지 확인된 멕시코의 신종 플루 감염환자 397명 가운데 285명, 사망자 26명 중 20명이 멕시코시티 시민이었다.
멕시코의 이러한 상황은 지난 30년간 멕시코에서 일어난 전사회적인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멕시코는 1983-1988년에는 안정화, 1989-2000년에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전사회의 신자유주의적인 개편을 시도했다.(Laurell 외, 2001) 사회지출 삭감을 통해 재정구조를 조정하고 공공사업을 사유화하였으며 경제활동과 노동의 탈규제를 시행하고 중앙은행의 자율화를 인정했다. 1963년부터 1981년까지 77.5%에서 48.5%로 감소하던 빈곤가구 퍼센트는 1981년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6년에는 78%로 다시 196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최저임금은 1982년 32페소에서 1998년 13페소로 감소했다.
전통적으로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되었던 멕시코의 보건의료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면서 1980년까지 매년 10% 증가하고 1980년대는 매년 5% 증가하던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1990년 72%로 최고점을 이루다가 1995년에는 59%로 하락하였다. 실질 임금이 하락하면서 임금비례 정률제로 지불하는 건강보험료 체계에서 건강보험 재정도 자동적으로 축소되었다.
더욱이 건강보험 국고 지원률은 12.5%에서 5%로 축소되었다. 재정축소로 의료기관의 유지는 어려워졌고 의료서비스의 질은 하락했다. 공공의료의 질 하락은 민간의료의 확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1982년 의료서비스분야 GDP 중 민간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2년 48%에서 2001년 58%로 증가했다. 민간병원 병상 수는 1980년대 2배로 증가했다. 1985-1992년 동안 민간의료영역은 확대되었으나 서비스 공급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빈곤의 확산으로 민간의료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민간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자 민간의료자본은, 시장주의들이 말하듯 가격을 인하해서 수요를 늘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가격을 인상해서 부족한 수입을 메꾸려고 하였다. 1985년 민간의료서비스 가격은 빠르게 상승하여 1992년에는 공공의료서비스 가격의 2.5배가 되었다. 이러한 보건의료체계의 변화는 멕시코의 신종플루 환자들이 초기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상황을 뒷받침한다.

타미플루와 독점제약회사

이종구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장은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 인플루엔자 치료제 240만 명분을 인구의 10%인 500만 명분으로 늘려 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했고 4월 29일 국회에서 이 치료제들을 추가로 사는 데 필요한 예산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기준은 인구의 20%로 이는 여전히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현재 스위스의 로슈사가 독점 생산하는 타미플루가 전 세계적 수요량을 충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허권으로 인한 고비용 때문에 아예 약을 쓸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타미플루의 성분인 오셀타미비르에 대한 미국 특허는 미 캘리포니아의 길리어드사이언스사가 2016년까지 보유하고 있다. 타미플루의 독점 판매권자인 로슈사의 생산시설을 최대한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2015년이 되어야 전 세계 인구의 20%에 투여할 수 있는 약제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 제약회사들이 타미플루 생산능력이 있다는 것은 2005년 확인되었지만 로슈가 가진 특허권 때문에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허권 때문에 약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산량의 불평등한 분배도 문제이다. 2004년 9월 H5N1이 베트남에 다시 유행했을 때 베트남이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유럽과 캐나다에 남아 있던 약간의 잉여분은 뉴욕과 미국의 다른 지역 보건당국들이 이미 싹쓸이한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는 12개에 불과했고 여기서 생산되는 양의 95%(2억 6천만 명분)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소비되었다.
어떤 약을 개발하는가도 문제가 되는데 약이 필요한 이들의 수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매력에 따라서 즉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포천500에 포함되는 10대 제약회사들이 나머지 490개 기업보다 더 많은 이윤을 냈다. 제약업계는 당뇨병, 고혈압, 천식 등 만성 질병에 필요한 약품이나 비아그라 같은 생활 향상을 위한 약품을 판매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 반면 이익을 적게 내는 백신이나 항생제 같이 실질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제품은 외면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백신제품의 수입을 전부 합해도 화이자가 콜레스테롤 저하제 한 제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미치지 못한다. 병원 감염증으로 미국에서 매년 9만 명이 사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백신 개발에 관한 한 미국은 쿠바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전염병과 빈민층의 질병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쿠바는 수막염 B,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및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들이 외면하는 기타 주요 감염증들을 치료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을 개발해왔다.

반복되는 발병,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는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조류 및 포유류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류가 조류독감 H5N1이나 신종플루 H1N1을 피해간다 할지라도 곧 또 다른 치명적인 독감 아형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야생 조류의 서식지의 파괴와 거대 기업형 축산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자본주의 문명을 숙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인해 심화되는 빈곤은 전염병에 대한 취약성을 증폭시키며 공공의료의 붕괴와 초국적 제약자본의 금융적 지배는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병원균의 박멸은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몰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기생체와 숙주의 관계 자체가 소멸될 수는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감염성 질병의 발생을 최소화하고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조건에 근본적 변화가 가해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인류는 새로운 인플루엔자의 위협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마이크 데이비스, 『조류독감』, 돌베개, 2008.
Laurell, Asa Cristina (2001), Health reform in Mexico: the promotion of inequality,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Vol 31, No.2: 291-321.
Mirabelli, M., Wing, S., Marshall, S., and Wilcosky, T. (2006), Race, poverty, and potential exposure of middle-school students to air emissions from confined swine feeding operations,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Vol 114, No.4.
Otte,J., Roland-Holst,D., Pfeiffer,D., Soares-Magalhaes,R., Rushton,J., Graham,J., and Silbergeld, E. (2007), Industrial livestock production and global health risks, Pro-Poor Livestock Policy Initiative Research Report.
주제어
보건의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