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차 핵실험 이후 반전평화운동의 과제
핵 경쟁과 대북제재의 악순환을 종식시키자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2009년 4월 5일) 이후에 발표된 유엔 의장성명(4월 13일)에서 명기된 대북제재 방침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월 29일 성명을 통해 유엔 안보리가 의장성명 등에 대해 사죄하지 않으면 ‘자위적 조치’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으며 5월 25일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핵실험 이후 지대함과 지대공 등 단거리 미사일 6발을 발사한 데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작업까지 준비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핵실험 직후 관측된 지진파를 분석한 결과 폭발력 규모를 4킬로톤으로 추정했다. 이는 2006년 1차 핵실험의 8~10배 정도 규모다. 이에 곧바로 소집된 유엔 안보리는 2006년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6월12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 직후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공식 참여를 밝히고, 6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 공동비전을 채택해 확장억지력 제공을 명문화했다. 북한은 PSI 참여에 대해서 서해에서의 안전항해를 담보할 수 없고, 정전협정에 구속받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어, 북방한계선(NLL) 인근과 동부전선 군사분계선(MDL),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유엔 대북결의에 반발하면서 우라늄농축 작업 착수,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 봉쇄시 군사적 대응 조치를 선언하여 한반도의 핵 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대북 적대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부추겼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함께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도 국제공조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보상이 아닌 제재’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북한에 대한 비난은 기만적이다. 북한을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극단적인 군사행동으로 유도했던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에도 △미군무력(특히 핵무기)의 철수 △주한미군 철수 △남북무력 감축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의 구축(북미남간 3자회담을 통한 남북 불가침선언 및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 왔으며,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에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1992년 4월 △핵문제해결 △남북관계 개선 △미군 유해 송환 △테러 포기 등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해온 조건(이른바 솔로몬의 5개항)과 함께, △미사일 수출 중지 △인권상황 개선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추가로 제시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요구를 거부했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군사시설을 포함하는 특별핵사찰 실시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을 예비하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응할 의사가 없음을 강경한 행동으로 보여줬다. 결국 미국의 이러한 태도가 1990년대 초반 1차 핵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이후 1994년 미국은 북한과 제네바 합의 체결을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지만, 이것 역시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제네바 합의 이행을 고의적으로 유보하고, 오히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북한을 압박할 새로운 빌미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애초부터 북미 양자 간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미국의 노골적인 대북 적대정책은 부시정부 등장 이후로 더욱 강화되었다.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유지한 채 정권 교체를 운운했다. 뿐만 아니라 PSI를 통해 북한에 대한 강력한 봉쇄에 돌입하는 한편 대규모 탈북, 기획망명을 유도하는 법안을 만들고 ‘작전계획 5030’을 세우는 등 ‘전쟁 없는 체제 교체’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체제보장과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교환하자는 북한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하고 북한을 압박하여 군사적 행동을 유발했으며 2000년대 ‘2차 북핵 위기’를 야기했다. 한편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을 통해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기대가 있었으나, 검증문제를 둘러싼 의견대립으로 결국 6자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스마트 외교를 내세우던 오바마 정권 역시 기존의 대북전략과 다르지 않은 입장을 고수하며 북한 정권 제거를 목표로 하는 키리졸브 훈련을 감행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은 대외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인공위성 발사에 이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대북제재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인 1718호보다 강경한 조치로 1874호를 6월 12일에 채택했다. 결의안은 △북한의 해외 자산 및 금융계좌 동결 △무기 금수 목록 확대 △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를 골자로 담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조치들은 대부분이 안보리 결의 1718호 상의 제재 규정에서 그 대상을 포괄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즉 기존의 핵ㆍ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개인 및 기관의 금융자산만 동결하던 것에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한 일체의 금융지원 및 차관제공을 금지했다. 게다가 무기 금수대상을 대량살상무기에서 소형무기를 제외한 북한의 모든 무기 관련 물자로 확대했으며, 이를 수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검색도 영해상은 물론 공해상에서도 가능하게 했다. 대북제재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북한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나, 북한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대북제재의 목표는 북한을 압박하여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군사적 행동을 제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재를 비롯한 위협의 메시지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상대방의 폭력적 대응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명백하다. 이번 2차 핵실험 역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응하여 채택된 유엔 의장성명에 대한 규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북한은 대북 결의 1874호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우라늄농축 작업 착수,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 봉쇄시 군사적 대응 등 3개 대응조치를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선언했다. 결국 미국의 압도적인 정치적 군사적 힘을 활용하여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을 공격하는 것은 핵무기를 매개로 대결에서 우위에 서고자 하는 북한의 노력을 부채질하고, 상대방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섬멸) 능력을 과시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
미국은 핵확산의 주범으로서 북한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 미국은 총 1,127회의 핵분열, 핵융합 실험을 실행했다. 소련/러시아는 969회를 진행하였고, 프랑스는 210회, 영국은 45회, 중국은 45회, 인도와 파키스탄은 13회의 지하실험을 실행했고, 남아공과 이스라엘은 1979년 한 차례의 지상실험을 단행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가공할 만한 핵실험 횟수와 핵무기 보유 규모와 비교해 볼 때,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UN의 제재의 시도는 분명히 위선적이다. 또한 1970년 3월, 유엔에서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반핵을 염원하는 세계 민중의 요구를 실행하는데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NPT 체제는 핵보유국인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의 핵무기 개발에 전혀 제약을 가하지 못하며, 핵위협이나 핵공격을 제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사례처럼 자신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NPT를 자의적으로 활용하거나 무시해왔다. 이는 미국의 핵정책에 면죄부를 부여하며,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 욕구를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미국은 NPT 체제를 붕괴시키고 전 세계적 핵확산의 주범으로 북한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핵은 전쟁억지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전쟁유발 요인이다
6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핵을 폐기시키기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하는 한미동맹 공동비전을 채택했다. 핵우산 제공은 미국의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을 때와 동일한 전력 수준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미사일, 전략폭격기로) 응징타격을 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1992년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한 뒤 핵우산 제공을 약속했고 이를 양국 국방당국의 정례 협의체인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명시했다.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한 조치는 한국의 안보불안을 해소하고 북한에 대한 강력한 위협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서 북한의 한반도 핵전쟁 도발 시에 미국은 “핵에는 핵으로 맞대응할 뜻”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에 북한은 6월 22일자 노동신문 개인 논평을 통해 “미국이 해상 및 공중봉쇄와 선제타격 시나리오를 실행하는 데로 노골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남조선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한 것은 수수방관할 수 없는 사태”라며 북한의 핵실험과 핵 억제력 보유는 정당방위적인 자위권 행사라고 밝혔다. 일부 관측자들은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결국 핵이 전쟁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핵전쟁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 군사시설과 비군사시설의 구별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절대적 파괴, 절멸의 극한을 현실화했다. 또한 대중을 전쟁에 참여시키기보다는 체계적으로 배제하며, 모든 권한을 지배세력에게 집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핵능력을 향상시키고, 핵무기를 군사적 요충지에 배치하려는 모든 시도는 세계의 무차별적 대중을 볼모로 삼았으며, 이러한 시도를 강행하려는 세력과 막으려는 세력 간의 긴장과 대리전을 낳았다. 미소 간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변형된 형태의 전쟁과 분쟁, 특히 대리전이 냉전시기의 전쟁양상을 지배했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남미뿐만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군사적 요충지를 장악하기 위한 미소 간의 첨예한 대결과 이른바 미소 대리전이 수십 차례 벌어졌다. 즉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핵전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가 전쟁유발요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의 핵 대결은 민중들의 피해를 가져오고, 나아가 주변국과 세계 민중의 고통을 확대할 뿐이다.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 민중의 절대적 소외로서의 핵전쟁에서 더 이상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반전 반핵 평화 운동으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와 압박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PSI에 참여하고 미국의 핵우산 제공 명문화를 추진했다. 게다가 공군은 “현재 KF-16 , F-4, F-5 등 전투기와 패트리어트, 호크, 나이키 등 방공 무기, 각종 정보자산 등을 총동원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고 해군은 최신예 유도탄 고속함(PKG)을 서해에 배치했다. 게다가 북한이 남한의 PSI참여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무력대응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합동참모본부는 최근 PSI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주요 내용으로 해상 강제 검색에 반발한 북한군이 서해에서 도발할 경우 남측이 보복 타격하는 것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PSI 참여로 남북 간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없다던 정부의 기존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편 미국은 본토를 향한 북한의 잠재적 미사일 발사에 만반의 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하와이에 요격 미사일과 레이더망을 이동시킨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인근에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위시한 항모타격단을 배치했으며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어떤 공격에도 워싱턴의 승인 없이 현장에서 즉각 대응할 체제를 갖춰놓고 있다. 북한은 남한 정부의 PSI 참여로 “무력충돌과 전면전쟁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NLL을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985년 미국이 군사분계선 없는 지역에서 한국 해군의 임의행동(북침)을 규제하려고 만든 작전통제선일 뿐이다.
그렇다면 고조되는 전쟁위기 속에서 반전평화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로 미군이 한반도의 군사적 억지력이란 믿음과 정반대로 한미동맹의 강화, 주한미군의 주둔, 미국의 핵우산과 선제핵공격 옵션이 한반도 전쟁의 유발 요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이명박 정권의 모든 군비증강 시도를 반대해야 하며 존재 자체가 전쟁유발 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 한미동맹의 해체를 요구해야 한다. 남한에서부터 전쟁유발요인을 제거하여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경쟁국이 먼저 해야 한다거나 동시에 해야 한다는 세력균형의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셋째 대북제재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북한의 더욱 강경한 대응만을 부추길 것이라는 점도 명확히 하면서, 남한 정부의 PSI 참여와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반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핵무기에 대한 숭배나 무감각을 깨고, 핵무기에 철저히 반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 보유를 협상용이나 자위용이기 때문에 비판할 수 없다는 입장은 대중들로 하여금 핵문제에 대한 혼란과 무감각을 조장하여 남한의 핵무장 주장에 대해서 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남한의 핵 주권 주장에 대해서 단호하게 맞서며, 핵무기는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와 절대적인 정치적 소외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주장해야 한다. 반전 반핵 평화의 기치를 들고, 국가들 간의 세력균형을 통한 ‘공포의 균형’이 아니라, 대중들의 반전반핵평화운동이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실천해나가자.
대북 적대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부추겼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함께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도 국제공조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보상이 아닌 제재’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북한에 대한 비난은 기만적이다. 북한을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극단적인 군사행동으로 유도했던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에도 △미군무력(특히 핵무기)의 철수 △주한미군 철수 △남북무력 감축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의 구축(북미남간 3자회담을 통한 남북 불가침선언 및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 왔으며,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에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1992년 4월 △핵문제해결 △남북관계 개선 △미군 유해 송환 △테러 포기 등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해온 조건(이른바 솔로몬의 5개항)과 함께, △미사일 수출 중지 △인권상황 개선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추가로 제시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요구를 거부했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군사시설을 포함하는 특별핵사찰 실시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을 예비하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응할 의사가 없음을 강경한 행동으로 보여줬다. 결국 미국의 이러한 태도가 1990년대 초반 1차 핵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이후 1994년 미국은 북한과 제네바 합의 체결을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지만, 이것 역시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제네바 합의 이행을 고의적으로 유보하고, 오히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북한을 압박할 새로운 빌미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애초부터 북미 양자 간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미국의 노골적인 대북 적대정책은 부시정부 등장 이후로 더욱 강화되었다.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유지한 채 정권 교체를 운운했다. 뿐만 아니라 PSI를 통해 북한에 대한 강력한 봉쇄에 돌입하는 한편 대규모 탈북, 기획망명을 유도하는 법안을 만들고 ‘작전계획 5030’을 세우는 등 ‘전쟁 없는 체제 교체’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체제보장과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교환하자는 북한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하고 북한을 압박하여 군사적 행동을 유발했으며 2000년대 ‘2차 북핵 위기’를 야기했다. 한편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을 통해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기대가 있었으나, 검증문제를 둘러싼 의견대립으로 결국 6자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스마트 외교를 내세우던 오바마 정권 역시 기존의 대북전략과 다르지 않은 입장을 고수하며 북한 정권 제거를 목표로 하는 키리졸브 훈련을 감행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은 대외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인공위성 발사에 이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대북제재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인 1718호보다 강경한 조치로 1874호를 6월 12일에 채택했다. 결의안은 △북한의 해외 자산 및 금융계좌 동결 △무기 금수 목록 확대 △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를 골자로 담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조치들은 대부분이 안보리 결의 1718호 상의 제재 규정에서 그 대상을 포괄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즉 기존의 핵ㆍ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개인 및 기관의 금융자산만 동결하던 것에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한 일체의 금융지원 및 차관제공을 금지했다. 게다가 무기 금수대상을 대량살상무기에서 소형무기를 제외한 북한의 모든 무기 관련 물자로 확대했으며, 이를 수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검색도 영해상은 물론 공해상에서도 가능하게 했다. 대북제재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북한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나, 북한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대북제재의 목표는 북한을 압박하여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군사적 행동을 제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재를 비롯한 위협의 메시지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상대방의 폭력적 대응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명백하다. 이번 2차 핵실험 역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응하여 채택된 유엔 의장성명에 대한 규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북한은 대북 결의 1874호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우라늄농축 작업 착수,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 봉쇄시 군사적 대응 등 3개 대응조치를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선언했다. 결국 미국의 압도적인 정치적 군사적 힘을 활용하여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을 공격하는 것은 핵무기를 매개로 대결에서 우위에 서고자 하는 북한의 노력을 부채질하고, 상대방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섬멸) 능력을 과시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
미국은 핵확산의 주범으로서 북한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 미국은 총 1,127회의 핵분열, 핵융합 실험을 실행했다. 소련/러시아는 969회를 진행하였고, 프랑스는 210회, 영국은 45회, 중국은 45회, 인도와 파키스탄은 13회의 지하실험을 실행했고, 남아공과 이스라엘은 1979년 한 차례의 지상실험을 단행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가공할 만한 핵실험 횟수와 핵무기 보유 규모와 비교해 볼 때,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UN의 제재의 시도는 분명히 위선적이다. 또한 1970년 3월, 유엔에서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반핵을 염원하는 세계 민중의 요구를 실행하는데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NPT 체제는 핵보유국인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의 핵무기 개발에 전혀 제약을 가하지 못하며, 핵위협이나 핵공격을 제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사례처럼 자신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NPT를 자의적으로 활용하거나 무시해왔다. 이는 미국의 핵정책에 면죄부를 부여하며,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 욕구를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미국은 NPT 체제를 붕괴시키고 전 세계적 핵확산의 주범으로 북한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핵은 전쟁억지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전쟁유발 요인이다
6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핵을 폐기시키기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하는 한미동맹 공동비전을 채택했다. 핵우산 제공은 미국의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을 때와 동일한 전력 수준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미사일, 전략폭격기로) 응징타격을 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1992년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한 뒤 핵우산 제공을 약속했고 이를 양국 국방당국의 정례 협의체인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명시했다.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한 조치는 한국의 안보불안을 해소하고 북한에 대한 강력한 위협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서 북한의 한반도 핵전쟁 도발 시에 미국은 “핵에는 핵으로 맞대응할 뜻”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에 북한은 6월 22일자 노동신문 개인 논평을 통해 “미국이 해상 및 공중봉쇄와 선제타격 시나리오를 실행하는 데로 노골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남조선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한 것은 수수방관할 수 없는 사태”라며 북한의 핵실험과 핵 억제력 보유는 정당방위적인 자위권 행사라고 밝혔다. 일부 관측자들은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결국 핵이 전쟁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핵전쟁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 군사시설과 비군사시설의 구별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절대적 파괴, 절멸의 극한을 현실화했다. 또한 대중을 전쟁에 참여시키기보다는 체계적으로 배제하며, 모든 권한을 지배세력에게 집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핵능력을 향상시키고, 핵무기를 군사적 요충지에 배치하려는 모든 시도는 세계의 무차별적 대중을 볼모로 삼았으며, 이러한 시도를 강행하려는 세력과 막으려는 세력 간의 긴장과 대리전을 낳았다. 미소 간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변형된 형태의 전쟁과 분쟁, 특히 대리전이 냉전시기의 전쟁양상을 지배했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남미뿐만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군사적 요충지를 장악하기 위한 미소 간의 첨예한 대결과 이른바 미소 대리전이 수십 차례 벌어졌다. 즉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핵전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가 전쟁유발요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의 핵 대결은 민중들의 피해를 가져오고, 나아가 주변국과 세계 민중의 고통을 확대할 뿐이다.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 민중의 절대적 소외로서의 핵전쟁에서 더 이상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반전 반핵 평화 운동으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와 압박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PSI에 참여하고 미국의 핵우산 제공 명문화를 추진했다. 게다가 공군은 “현재 KF-16 , F-4, F-5 등 전투기와 패트리어트, 호크, 나이키 등 방공 무기, 각종 정보자산 등을 총동원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고 해군은 최신예 유도탄 고속함(PKG)을 서해에 배치했다. 게다가 북한이 남한의 PSI참여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무력대응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합동참모본부는 최근 PSI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주요 내용으로 해상 강제 검색에 반발한 북한군이 서해에서 도발할 경우 남측이 보복 타격하는 것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PSI 참여로 남북 간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없다던 정부의 기존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편 미국은 본토를 향한 북한의 잠재적 미사일 발사에 만반의 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하와이에 요격 미사일과 레이더망을 이동시킨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인근에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위시한 항모타격단을 배치했으며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어떤 공격에도 워싱턴의 승인 없이 현장에서 즉각 대응할 체제를 갖춰놓고 있다. 북한은 남한 정부의 PSI 참여로 “무력충돌과 전면전쟁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NLL을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985년 미국이 군사분계선 없는 지역에서 한국 해군의 임의행동(북침)을 규제하려고 만든 작전통제선일 뿐이다.
그렇다면 고조되는 전쟁위기 속에서 반전평화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로 미군이 한반도의 군사적 억지력이란 믿음과 정반대로 한미동맹의 강화, 주한미군의 주둔, 미국의 핵우산과 선제핵공격 옵션이 한반도 전쟁의 유발 요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이명박 정권의 모든 군비증강 시도를 반대해야 하며 존재 자체가 전쟁유발 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 한미동맹의 해체를 요구해야 한다. 남한에서부터 전쟁유발요인을 제거하여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경쟁국이 먼저 해야 한다거나 동시에 해야 한다는 세력균형의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셋째 대북제재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북한의 더욱 강경한 대응만을 부추길 것이라는 점도 명확히 하면서, 남한 정부의 PSI 참여와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반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핵무기에 대한 숭배나 무감각을 깨고, 핵무기에 철저히 반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 보유를 협상용이나 자위용이기 때문에 비판할 수 없다는 입장은 대중들로 하여금 핵문제에 대한 혼란과 무감각을 조장하여 남한의 핵무장 주장에 대해서 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남한의 핵 주권 주장에 대해서 단호하게 맞서며, 핵무기는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와 절대적인 정치적 소외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주장해야 한다. 반전 반핵 평화의 기치를 들고, 국가들 간의 세력균형을 통한 ‘공포의 균형’이 아니라, 대중들의 반전반핵평화운동이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실천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