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 파산과 전미자동차노조의 모순
전미자동차노조 사례가 한국 자동차노조에 주는 교훈
20세기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지엠
6월 1일 지엠이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제출하였다. 지엠은 1908년 설립되어 1931년부터 2008년 초까지 세계 자동차 시장 1위의 자리를 지킨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었다. 또한 지엠은 자동차 회사 그 이상이기도 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대기업의 생산 경영 방식, 초국적 기업의 현대적 형태를 만든 것이 바로 지엠이기 때문이다. 1923년부터 1946년까지 지엠 회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슬론은 생산에서 유통까지를 회사 내에서 통합하는 법인기업의 수직 통합, 여러 사업을 별도 회계로 관리하는 다사업부제, 생산 노동 관리만이 아니라 마케팅, 회계, 재무 관리 등을 아우르는 통합 경영 등을 만들어내며 현대적인 초국적 법인 기업의 모태를 만들어 냈고, 미국 기업의 세계 제패를 이끌었다.
이러한 점에서 지엠 파산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한 기업의 파산 이상이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자본주의 몰락의 상징이다. 해외 언론들은 지엠의 파산을 알리며 미국의 영광과 함께한 지엠의 흥망성쇠를 따져보며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되돌아보는 특집 기사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20세기 미국 자본주의를 끝낸 것은 노조?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국내 언론들에 의해서는 참으로도 기이한 의미로 변화된다. 지엠 파산이 가지는 역사적, 경제적 의미보다는 강성 노조가 기업을 파산하게 만들었다는 고리타분한 레퍼토리가 핵심 이슈로 보도되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도대체 무엇이 지엠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강경노조는 기업 채산성을 크게 악화시켰다”라고 연일 주장하고 있고, <매일경제>는 “무엇보다 회사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한 노조 측 요구와 투쟁이 결국 회사를 망하게 한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러한 지엠 보도 말미에는 한국의 강성노조 역시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빠뜨리지 않는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 기업을 노동조합이 부셔버렸으니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노동자운동이 세계를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 미국에서 중심기업 지엠을 노동조합이 쓰러뜨린 것이 아닌가?
물론 국내언론들의 이러한 보도는 사실을 왜곡해도 이만저만 왜곡한 것이 아니다. 지엠이 파산까지 이른 것에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스스로 만들어 낸 금융화가 그 핵심에 있다. 수십 년 동안 양보교섭과 실리주의로 일관한 전미자동차노조는 회사를 망가뜨린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했다.
금융화와 지엠의 성장 그리고 파산
지엠이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에 제출한 회생 계획은 자신의 문제점 중 첫 번째로 지맥(GMAC)이라는 지엠의 금융 자회사를 지적했다. 지엠의 자동차할부금융을 담당하던 지맥이 부실화되면서 자동차 할부금융 서비스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와 달리 사측도, 관리 당국도 지엠 부실과 관련하여 지적하는 첫 항은 노조가 아니라 금융회사이다.
지엠 자동차 판매의 80% 가까이 할부금융 대출을 해주던 지맥은 2008년 말 그 비율이 6%까지 하락했다. 할부금융을 동반한 자동차 구매 혹은 리스가 대다수인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할부금융의 중단은 사실상의 자동차 판매 중단과 같은 의미다. 지엠이 다른 자동차 업계에 비해서도 매출 감소가 더욱 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할부금융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유독 왜 다른 자동차 업체들과 달리 지엠의 할부금융서비스가 크게 문제가 되었을까? 이는 지맥이 1990년대 후반부터 벌였던 사업과 관련이 있다. 1919년에 설립되어 90년 동안 지엠의 할부금융을 담당하던 지맥은 1998년 주택 모기지 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하며 모기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6년 말부터 주택가격이 하락하며 지맥 전체가 부실화되기 시작했다. 지엠은 심지어 2006년 지맥을 이용하여 초국적 사모펀드인 서버러스와 함께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기 위한 금융작전을 펼치기도 하며 갖가지 금융 투기를 벌였다.
예를 들면 지엠은 다음과 같이 장사를 했다. 지맥을 통해 연봉이 2000만 원인 노동자 A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고 1억 짜리 집을 사도록 한다. 그리고 그 노동자에게 앞으로 2년 후에는 그 집이 1억 5천만 원 정도로 상승할 것이니, 3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할부로 사도록 권유한다. 그래도 2천만 원이 남으니 노동자 A는 주택 모기지 이자, 자동차 할부금융 이자를 모두 공제해도 큰 이득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A는 아무런 비용 없이 자동차를 공짜로 얻고 이득까지 올리는 것이다! 물론 집값이 상승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런데 2006년 말부터 집값이 하락하더니 2007년 말에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A는 자동차 할부금융도 주택 모기지 이자도 갚을 도리가 없어졌고, 세계 48개국에서 이러한 장사를 하던 지맥은 당연히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지엠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보다도 더욱 크게 금융 부분을 키워왔고, 그것이 2008년 금융 위기 과정에서 지엠 전체를 파산으로 몰고 간 것이다. 2004년 지엠의 총이익 360억 달러 중 80%인 290억 달러가 지맥을 통해 거둔 수익이었지만, 2006년부터 지맥은 지엠 순손실의 주범이 되기 시작했고, 2008년 중반에는 아예 할부금융을 거의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맥은 2008년 12월 파산하여, 정부 구제금융을 통해 은행으로 전환되었다. 지맥은 지금도 미국 내 3-4위를 다투는 부실 은행으로 남아있다.
요컨대 현 지엠 파산의 주범은 노조가 아니라 지엠 자본 스스로가 만들어 낸 금융 투기였으며, 이 부실을 전 세계 노동자들이 해고와 임금 삭감을 통해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실리주의적 노조주의와 그 결과
이 과정에서 전미자동차노조는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한국언론들은 200억 달러에 달하는 전미자동차노조의 퇴직자건강보험기금(VEBA)의 엄청난 금액을 예로 들며 강성노조가 회사에 큰 부담을 주었다고 한다. 정말 그러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정반대다. 전미자동차노조는 1990년대 후반부터 회사의 해외공장 건설과 인원감축에 동의하며 약간의 떡고물을 받아 냈을 뿐이고, 그나마 이 약간의 이익도 2009년 회사 회생안에 합의하면서 대부분 뱉어내야 할 형편에 내몰렸다.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은 2007년 자동차업체들의 퇴직자건강보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미자동차노조가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기존에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던 퇴직자건강보험료를 자동차 업체가 출연하고 전미자동차노조가 관리하는 기금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엠의 경우 이러한 단체협상에 따라 2007년 46억 달러에 달하던 퇴직자 건강보험부담금이 2010년 2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였다. 반대로 전미자동차노조의 경우 기금 운영에 대한 리스크를 떠안게 되었다. 다시 말해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은 사측의 비용 감소 계획이었지 노동자가 무리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이러한 퇴직자 건강보험에 대한 요구는 임금 인상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퇴직자건강보험에 대한 단체협상을 제1과제로 생각할 정도였다.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퇴직은 곧바로 건강보험의 해지였고, 병원 이용비가 매우 비싸 보험 없이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서 건강보험과 관련한 요구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이러한 대가로 신규 취업자에 대해 임금 삭감과 대규모 정리해고를 합의했다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2003년 단체협상에서 최소고용수준(BMM)을 대폭 단축하며 약 8,900여 명에 대한 해고는 물론 생산 공정의 외주화 수준을 대폭 확대하는 데 합의하였다. 심지어 2007년 단체협상에서는 30만 명에 달하는 인원감축과 신규 취업자(비조합원)에 대한 임금 삭감, 2010년 이후부터는 신규 취업자에 대해 업계 최저 수준의 임금 적용을 합의하였다. 이들의 경우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의 수혜 대상도 아님은 물론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미국 전체 노동자는 고사하고, 동종 업계에서도 비조합원의 희생을 바탕으로 일부 조합원에 대해서만 고용, 임금, 복지에 관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2002년 기준으로 지엠의 평균 조합원 연령은 50세에 육박했고, 1985년 3,200명에 달하던 신규 조합원은 1992년 191명, 2002년 375명 수준으로 하락했다. 1980년 150만 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2008년 40만 명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조합원만의 실리를 챙겨온 전미자동차노조는 과연 실제로 이득을 보았을까? 현재 전미자동차노조는 2008년 경제 위기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자건강보험과 거래된 100만 명에 가까운 퇴직자의 건강보험기금 200억 달러 중에서 현재 110억 달러는 지엠 지분(보통주)으로, 65억 달러는 우선주로, 25억 달러는 채권으로 회사에 묶여 버렸다.
25억 달러의 채권을 제외하면 190억 달러는 언제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며, 최악의 경우 지엠과 함께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금 유지를 위해 이자 수입 혹은 배당(우선주 배당률 9%)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사측의 추가 구조조정안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면 건강보험 수혜자가 늘어 기금이 문제가 생기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자와 배당도 챙길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실리주의는 이렇게 2009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목을 조르는 사슬이 되었다.
전미자동차노조의 현재가 한국 자동차 노조에 던지는 교훈
이상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자동차노조는 영리한 척 조합원의 실리를 챙긴 듯 보였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비조합원들에 대한 희생은 결국 자동차노조가 지닌 힘의 약화로 이어졌고, 자동차노조는 세계적 경제 위기 와중에 회사가 금융 투기를 통해 만들어 놓은 부실을 책임져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전미자동차노조의 교훈은 한국 자동차노조에게 의미심장하다. 현재 쌍용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대 기아 대우 자동차 노동조합은 여전히 자신의 고용 유지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는 단시간에 해결될 수도 없으며 또한 특정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의 고용 유지를 위해 ‘조용히’ 숨죽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는 더욱 큰 고통으로 닥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내 사업장의, 우리 조합원의 고용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에 관한 표준을 대폭 상승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 회사가 망해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며, 자본이 저질러 놓은 부실을 자본 스스로 책임지게 만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전미자동차노조는 강성했기 때문에 회사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실리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자본의 부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사례는 더욱 강한 투쟁이 왜 필요한지를, 더욱 넓은 연대와 단결이 왜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6월 1일 지엠이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제출하였다. 지엠은 1908년 설립되어 1931년부터 2008년 초까지 세계 자동차 시장 1위의 자리를 지킨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었다. 또한 지엠은 자동차 회사 그 이상이기도 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대기업의 생산 경영 방식, 초국적 기업의 현대적 형태를 만든 것이 바로 지엠이기 때문이다. 1923년부터 1946년까지 지엠 회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슬론은 생산에서 유통까지를 회사 내에서 통합하는 법인기업의 수직 통합, 여러 사업을 별도 회계로 관리하는 다사업부제, 생산 노동 관리만이 아니라 마케팅, 회계, 재무 관리 등을 아우르는 통합 경영 등을 만들어내며 현대적인 초국적 법인 기업의 모태를 만들어 냈고, 미국 기업의 세계 제패를 이끌었다.
이러한 점에서 지엠 파산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한 기업의 파산 이상이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자본주의 몰락의 상징이다. 해외 언론들은 지엠의 파산을 알리며 미국의 영광과 함께한 지엠의 흥망성쇠를 따져보며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되돌아보는 특집 기사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20세기 미국 자본주의를 끝낸 것은 노조?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국내 언론들에 의해서는 참으로도 기이한 의미로 변화된다. 지엠 파산이 가지는 역사적, 경제적 의미보다는 강성 노조가 기업을 파산하게 만들었다는 고리타분한 레퍼토리가 핵심 이슈로 보도되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도대체 무엇이 지엠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강경노조는 기업 채산성을 크게 악화시켰다”라고 연일 주장하고 있고, <매일경제>는 “무엇보다 회사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한 노조 측 요구와 투쟁이 결국 회사를 망하게 한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러한 지엠 보도 말미에는 한국의 강성노조 역시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빠뜨리지 않는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 기업을 노동조합이 부셔버렸으니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노동자운동이 세계를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 미국에서 중심기업 지엠을 노동조합이 쓰러뜨린 것이 아닌가?
물론 국내언론들의 이러한 보도는 사실을 왜곡해도 이만저만 왜곡한 것이 아니다. 지엠이 파산까지 이른 것에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스스로 만들어 낸 금융화가 그 핵심에 있다. 수십 년 동안 양보교섭과 실리주의로 일관한 전미자동차노조는 회사를 망가뜨린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했다.
금융화와 지엠의 성장 그리고 파산
지엠이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에 제출한 회생 계획은 자신의 문제점 중 첫 번째로 지맥(GMAC)이라는 지엠의 금융 자회사를 지적했다. 지엠의 자동차할부금융을 담당하던 지맥이 부실화되면서 자동차 할부금융 서비스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와 달리 사측도, 관리 당국도 지엠 부실과 관련하여 지적하는 첫 항은 노조가 아니라 금융회사이다.
지엠 자동차 판매의 80% 가까이 할부금융 대출을 해주던 지맥은 2008년 말 그 비율이 6%까지 하락했다. 할부금융을 동반한 자동차 구매 혹은 리스가 대다수인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할부금융의 중단은 사실상의 자동차 판매 중단과 같은 의미다. 지엠이 다른 자동차 업계에 비해서도 매출 감소가 더욱 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할부금융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유독 왜 다른 자동차 업체들과 달리 지엠의 할부금융서비스가 크게 문제가 되었을까? 이는 지맥이 1990년대 후반부터 벌였던 사업과 관련이 있다. 1919년에 설립되어 90년 동안 지엠의 할부금융을 담당하던 지맥은 1998년 주택 모기지 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하며 모기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6년 말부터 주택가격이 하락하며 지맥 전체가 부실화되기 시작했다. 지엠은 심지어 2006년 지맥을 이용하여 초국적 사모펀드인 서버러스와 함께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기 위한 금융작전을 펼치기도 하며 갖가지 금융 투기를 벌였다.
예를 들면 지엠은 다음과 같이 장사를 했다. 지맥을 통해 연봉이 2000만 원인 노동자 A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고 1억 짜리 집을 사도록 한다. 그리고 그 노동자에게 앞으로 2년 후에는 그 집이 1억 5천만 원 정도로 상승할 것이니, 3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할부로 사도록 권유한다. 그래도 2천만 원이 남으니 노동자 A는 주택 모기지 이자, 자동차 할부금융 이자를 모두 공제해도 큰 이득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A는 아무런 비용 없이 자동차를 공짜로 얻고 이득까지 올리는 것이다! 물론 집값이 상승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런데 2006년 말부터 집값이 하락하더니 2007년 말에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A는 자동차 할부금융도 주택 모기지 이자도 갚을 도리가 없어졌고, 세계 48개국에서 이러한 장사를 하던 지맥은 당연히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지엠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보다도 더욱 크게 금융 부분을 키워왔고, 그것이 2008년 금융 위기 과정에서 지엠 전체를 파산으로 몰고 간 것이다. 2004년 지엠의 총이익 360억 달러 중 80%인 290억 달러가 지맥을 통해 거둔 수익이었지만, 2006년부터 지맥은 지엠 순손실의 주범이 되기 시작했고, 2008년 중반에는 아예 할부금융을 거의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맥은 2008년 12월 파산하여, 정부 구제금융을 통해 은행으로 전환되었다. 지맥은 지금도 미국 내 3-4위를 다투는 부실 은행으로 남아있다.
요컨대 현 지엠 파산의 주범은 노조가 아니라 지엠 자본 스스로가 만들어 낸 금융 투기였으며, 이 부실을 전 세계 노동자들이 해고와 임금 삭감을 통해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실리주의적 노조주의와 그 결과
이 과정에서 전미자동차노조는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한국언론들은 200억 달러에 달하는 전미자동차노조의 퇴직자건강보험기금(VEBA)의 엄청난 금액을 예로 들며 강성노조가 회사에 큰 부담을 주었다고 한다. 정말 그러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정반대다. 전미자동차노조는 1990년대 후반부터 회사의 해외공장 건설과 인원감축에 동의하며 약간의 떡고물을 받아 냈을 뿐이고, 그나마 이 약간의 이익도 2009년 회사 회생안에 합의하면서 대부분 뱉어내야 할 형편에 내몰렸다.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은 2007년 자동차업체들의 퇴직자건강보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미자동차노조가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기존에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던 퇴직자건강보험료를 자동차 업체가 출연하고 전미자동차노조가 관리하는 기금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엠의 경우 이러한 단체협상에 따라 2007년 46억 달러에 달하던 퇴직자 건강보험부담금이 2010년 2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였다. 반대로 전미자동차노조의 경우 기금 운영에 대한 리스크를 떠안게 되었다. 다시 말해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은 사측의 비용 감소 계획이었지 노동자가 무리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이러한 퇴직자 건강보험에 대한 요구는 임금 인상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퇴직자건강보험에 대한 단체협상을 제1과제로 생각할 정도였다.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퇴직은 곧바로 건강보험의 해지였고, 병원 이용비가 매우 비싸 보험 없이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서 건강보험과 관련한 요구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이러한 대가로 신규 취업자에 대해 임금 삭감과 대규모 정리해고를 합의했다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2003년 단체협상에서 최소고용수준(BMM)을 대폭 단축하며 약 8,900여 명에 대한 해고는 물론 생산 공정의 외주화 수준을 대폭 확대하는 데 합의하였다. 심지어 2007년 단체협상에서는 30만 명에 달하는 인원감축과 신규 취업자(비조합원)에 대한 임금 삭감, 2010년 이후부터는 신규 취업자에 대해 업계 최저 수준의 임금 적용을 합의하였다. 이들의 경우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의 수혜 대상도 아님은 물론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미국 전체 노동자는 고사하고, 동종 업계에서도 비조합원의 희생을 바탕으로 일부 조합원에 대해서만 고용, 임금, 복지에 관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2002년 기준으로 지엠의 평균 조합원 연령은 50세에 육박했고, 1985년 3,200명에 달하던 신규 조합원은 1992년 191명, 2002년 375명 수준으로 하락했다. 1980년 150만 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2008년 40만 명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조합원만의 실리를 챙겨온 전미자동차노조는 과연 실제로 이득을 보았을까? 현재 전미자동차노조는 2008년 경제 위기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자건강보험과 거래된 100만 명에 가까운 퇴직자의 건강보험기금 200억 달러 중에서 현재 110억 달러는 지엠 지분(보통주)으로, 65억 달러는 우선주로, 25억 달러는 채권으로 회사에 묶여 버렸다.
25억 달러의 채권을 제외하면 190억 달러는 언제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며, 최악의 경우 지엠과 함께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금 유지를 위해 이자 수입 혹은 배당(우선주 배당률 9%)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사측의 추가 구조조정안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면 건강보험 수혜자가 늘어 기금이 문제가 생기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자와 배당도 챙길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실리주의는 이렇게 2009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목을 조르는 사슬이 되었다.
전미자동차노조의 현재가 한국 자동차 노조에 던지는 교훈
이상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자동차노조는 영리한 척 조합원의 실리를 챙긴 듯 보였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비조합원들에 대한 희생은 결국 자동차노조가 지닌 힘의 약화로 이어졌고, 자동차노조는 세계적 경제 위기 와중에 회사가 금융 투기를 통해 만들어 놓은 부실을 책임져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전미자동차노조의 교훈은 한국 자동차노조에게 의미심장하다. 현재 쌍용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대 기아 대우 자동차 노동조합은 여전히 자신의 고용 유지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는 단시간에 해결될 수도 없으며 또한 특정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의 고용 유지를 위해 ‘조용히’ 숨죽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는 더욱 큰 고통으로 닥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내 사업장의, 우리 조합원의 고용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에 관한 표준을 대폭 상승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 회사가 망해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며, 자본이 저질러 놓은 부실을 자본 스스로 책임지게 만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전미자동차노조는 강성했기 때문에 회사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실리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자본의 부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사례는 더욱 강한 투쟁이 왜 필요한지를, 더욱 넓은 연대와 단결이 왜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