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투쟁에 함께 한 사회진보연대와 서울지역연대운동
77일의 옥쇄파업, 한 달의 서울지역 연대운동
쌍용차 옥쇄파업이 50여 일에 이르던 7월 초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서울상황실이 꾸려졌다. 경찰에 의한 공장봉쇄가 시작된 지 일주일, 공장으로 고립되는 전선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각 지역에서 쌍용차 투쟁에 연대하는 흐름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고민으로 서울지역 지원대책위(이하 서울지대위)도 결성됐다. 여기에 사회진보연대도 함께했다. 이번 <사회운동>에는 쌍용차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에 긴밀하게 결합하고 서울지역 연대를 확산하기 위해 활동한 한 달의 소회와 간략한 평가를 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마감이 코앞에 닥치도록 시작이 너무 어려웠다. 비교적 가까이에서 이 투쟁의 주체들을 만나면서 77일의 옥쇄파업을 준비해왔던 주체들의 노력, 투쟁 과정에서의 자부심과 상처, 그리고 옥쇄파업 종료 후의 고통 등 그들의 심정을 접할 수 있었고 그만큼 쉽게 투쟁에 대해 말하기 어려웠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영웅적인 투쟁’이라 하기엔 모든 것을 걸고 싸운 지부와 조합원들에게나, 헌신적으로 결합한 운동진영에게 너무나 큰 상처가 남았다. 또한 쉽게 ‘패배했다’고 하기엔 주체역량이 취약한 우리 운동 조건에서 그 자체로 너무나 당당하고 영웅적인 투쟁이었다.
77일 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은 극한의 위험으로 내몰렸다. 단수, 가스 차단, 음식과 의약품, 의료진 차단, 단전 등 압박 조치와 구사대, 용역깡패, 경찰특공대의 무시무시한 합동 진압작전. 하지만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 차단된 공장에서,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거대한 폭력에 맞서 당당하게 싸웠던 노동자들. 평범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조직하고 단련시키는지, 극한의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오랜 시간 헌신한 쌍용차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아래로부터 조금씩, 아무리 조그만 일이라도 원칙을 지키며 일군 성과가 대중 투쟁에서 발휘되는 지도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느꼈다.
물리적 역량의 부족으로 77일의 옥쇄파업은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운 싸움이 시작됐다. 한상균 지부장은 구속자 최소화 등 노사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하며 8월 13일부터 옥중단식을 하고 있다. 단일 투쟁에서 역대 최다 구속자수를 기록하고 있는 강압수사에 한 조합원은 자결을 시도했다. 많은 이들이 부상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생계가 막막하다. 정부와 사측은 이 기회에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탈퇴를 밀어붙여 앞으로의 싸움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려 한다. 옥쇄파업 이후의 투쟁을 보위하는 것과 함께, 쌍용차 투쟁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투쟁에서 외국자본의 구조조정과 청산, 경제위기 하 노동권 박탈, 이명박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과 극악한 폭력에 맞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전체 운동진영의 태세를 정비하고 사활을 건 투쟁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의 진정성을 온 몸으로 보여준 쌍용차 파업투쟁에 대해 여러 평가들이 제출되고 있다. (<사회운동> 이번 호에 사회진보연대의 입장과 분석이 실려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투쟁을 준비하는 전조직적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이 글에서는 쌍용차 투쟁에 함께 한 사회진보연대와 서울지대위 활동을 돌아보려 한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비가 지금 오네요.”
8월 6일 한상균 지부장의 담화문 마지막 구절이다. 공장을 나설 때 잠깐 내린 빗줄기, 쌍용차 투쟁에 애정과 관심이 있었던 사람 모두가 눈물 나게 아팠다. 살갗을 녹이는 최루액 세례에도 씻을 수 없었던 조합원들은 간절히 비를 기다렸다. 메말라가는 공장 밖을 지키던 많은 이들도 비가 쏟아지길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지부장이 말한 ‘비’는 말 그대로 ‘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힘 있는 연대의 빗줄기, 사실은 그게 아니었을까. 주체들의 결연한 투쟁에 비해 연대의 움직임이 미약했다는 것이 여러 평가의 공감대가 아닌가 한다. 쌍용차 투쟁을 경제위기 하 고용 문제, 초민족 자본의 먹튀와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권 쟁취 투쟁의 전선을 만드는 계기로 삼고자하는 흐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 주체들의 도덕적 의지를 묻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투쟁을 통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전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현재 역량을 적나라하게 확인한 데서 오는 뼈아픈 평가다.
쌍용차 투쟁에서 사회진보연대의 활동
사회진보연대는 쌍용차투쟁에 기여하기 위해 정책 생산과 직접적인 연대활동, 서울지역에서의 지원활동 등 많은 역량을 투여했다. 많은 이들이 다치고 연행되기도 했다. 점거 파업 이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 한 것에 비해 꽤 많은 활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쌍용차 투쟁을 돌아보며 핵심 정세에 결합하는 사회진보연대 활동을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투쟁에 있어 사회진보연대의 조직적 결합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늘 있었다. 조직적 결합력이라 하면 투쟁의 핵심 쟁점 정선과 정책 생산, 유효한 연대틀 구성과 개입, 구체적 활동 방식, 회원들의 운동 기획 등 여러 과정을 포함한다.
활발한 정책선전활동
1월 8일 쌍용차 법정관리 신청 이후부터 사회진보연대는 쌍용차 문제의 경과와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조정 저지 투쟁전선 형성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위기 하 세계적인 자동차산업의 위기 속에서 GM대우를 비롯해 향후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연달아 이어질 구조조정의 폭과 수위를 줄이고 생존권을 방어하는 데 있어 쌍용차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의미가 지대했다. GM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자동차산업의 전망과 한국의 문제를 분석하고 노동자운동의 요구를 정선하기 위한 연구 활동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노조 파업으로 인한 기업 파산’ 논리에 대해 쌍용차 사측과 정부의 처지, 세계 경제위기 하 자동차산업의 여건 등을 바탕으로 파산협박과 뉴쌍용 설립의 비현실성을 분석하고 선전할 수 있었다. 또 점거파업 종료 후 남겨진 쟁점을 분석하고 전국적 해고 반대 투쟁과 금속노조의 계급적 강화라는 과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장기적인 전망에 입각해 활발하고 구체적인 정책선전활동을 했다.
조직적 결합력 제고를 위한 논의과정 형성
하지만 쌍용차지부의 전체 투쟁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은 관련 연대단위를 통해 중요한 투쟁 일정에 결합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향후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쌍용차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되 투쟁의 전선을 외국계 자본과 정부의 책임 문제로 형성하기 위한 실질적 운동을 만드는 과정에 힘을 모으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사회진보연대 내에서도 쌍용차 투쟁의 향방에 대한 토론 제기가 많았는데, 정책연구가 회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대응 계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미흡했다. 사회진보연대의 정책연구와 선전 활동이 조직의 긴장감과 입장의 통일성을 높이고 지역과 현장의 운동 기획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내용 생산과 유통, 논의 과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쌍용차 투쟁에 결합하고 주체들을 만나는 과정은 큰 자극이었다. 그만큼 쌍용차 조합원들의 의식은 가파른 상승세였고 연대운동의 역할에 대한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6월 말까지도 많은 회원들이 투쟁에 참석하거나 자기 공간에서 관련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감동적인 순간, 결의와 긴장을 높여야 할 중요한 순간에 더 많은 회원들과 연대가 함께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내가 살면서 언제 또 이런 투쟁에 함께할 수 있을까’하는 감동의 순간은 늘 더 많은 이들과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후회를 동반했다. 실제 투쟁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은 메일이나 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중요한 시점에 집중력을 발휘하고 이를 통해 운동과 조직 내에 긴장이 확산되는 과정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정세적 중요성과 당위를 역설하는 것을 넘어 회원 활동의 집중력을 배가하기 위해 논의구조와 활동 방식 변화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원들의 자발적 결의가 촉발한 긴장
6월 26-27일 사측과 용역깡패 진입에 뒤이은 공장 봉쇄는 활동에 많은 제약이 되었다. 운동 전반적으로 쌍용차 평택공장에 결합하는 것 외의 여론전이나 지역별 연대운동 흐름이 부족했고, 위력적인 공장 앞 연대투쟁을 전개할 수 없는 조건 때문이었다. 또한 많은 회원들이 평택 투쟁에 결합하기에 거리와 시간 상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상 공장 밖과 다른 지역 모두에서 적절한 투쟁의 공간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 파업투쟁에 밀접하게 결합한 몇몇 활동가들의 자발적 결의가 사회진보연대의 활동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선도적 결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사회진보연대의 정세적 투쟁 결합, 노동자운동 현장과 밀착한 활동에서 여전히 공백인 지점들에 대한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쌍용차 투쟁 결합에 있어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전체 민중운동의 연대 형성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입장을 제출하고, 현장과 호흡하며 밀접한 활동을 벌이려 했던 점은 이후 투쟁에서도 성과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서울지대위 활동과 서울지역 연대운동
평택공장으로 한정되고 있는 투쟁전선을 뚫고 나가기 위한 서울 상황실 구성. 이는 어려운 공장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상황실 구성에 이어 서울지역에서 뜻을 함께하는 노조, 당, 학생, 사회단체가 모여 서울지대위를 구성했다. 사회진보연대도 쌍용차 투쟁의 전국적 쟁점화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또 서울지역 연대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기간 논의의 연장선에서 함께 했다.
사측과 경찰이 공장을 더욱 압박해올수록 여론을 움직이고 정부의 책임을 제기할 수 있는 전체 운동의 실천이 절실했다. 하지만 복잡한 연대운동 구조 속에서 쌍용차투쟁에 유리한 여론 형성과 대정부 투쟁은 취약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어려운 현실과 더불어 민중운동의 갈등적인 연대질서에서 기인한다. 쌍용차 투쟁과 관련한 여러 연대체가 있었지만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이들의 중심에서 투쟁의 집중과 확산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 조율과정에서 충분한 합의를 모으지 못한 여러 연대체들이 서로 교류하지 못해 각자의 역할을 살리고 공동의 위력적 실천을 조직하는 양자 모두가 어려웠다.
서울지역에서는 그간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중심으로 갈등적 연대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쌍용차투쟁과 같은 정세는 연대운동의 질적 상승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정세적 투쟁에서 서로의 입장을 놓고 토론하고 공동 활동의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연대 활성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7월 8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금속노조 서울지부를 중심으로 구로역 광장에서 진행된 촛불문화제는 쌍용차문제로 열린 서울지역 운동 최초의 대중집회였다. 그 후 서울지대위가 결성되고 주 1회 구로역 집회와 여러 선전활동을 할 수 있었다.
서울지역단위들의 자발적 활동을 모아낸 서울지대위
공장 봉쇄가 본격화된 후에야 지부의 요청으로 뒤늦게 서울지대위를 꾸린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공권력 전면투입으로 투쟁이 평택에 집중된 상황에서 서울지역 활동은 평택 상황 선전과 주 1회 집회 이상의 자기 기획을 갖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체 운동의 유기적 연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지역의 노동조합, 정당, 학생, 사회단체들의 자발적인 활동들이 지대위로 모이고 더 나은 투쟁을 함께 고민할 수 있었던 점은 지대위 활동의 성과다. 매일같이 서울과 평택을 오가야 했던 상황에서도 여러 운동단위들이 자기 지역과 노조, 학교에서 활동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급하게 준비된 구로역 광장 집회에도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여러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선전전들도 모여서 규모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지부의 상황실 구성을 계기로 서울지역 여러 단위들이 힘을 모은 결과였다.
서울 상황실과 지대위는 평택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선전하고, 상경조합원들과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의 투쟁을 알려내고, 서울지역 단위들에 연대를 요청하고, 사회 각계의 지지와 국제연대를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 활동의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실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서울지역에 기존 운동 흐름이 부족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활동이 어려웠고, 상경한 조합원들의 활동 공간을 열어주고 지원하는 일도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7월 20일 공권력이 전면 투입된 후 공장은 매일같이 전쟁터였지만 공장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폭력에 대해, 파산협박과 노조 공격에 대해 상황을 공유하고 평택으로 모이는 것 외에 다른 실천을 조직하지 못했다. 서울지역 운동의 특징(전국적 집중 사안에서 지역 활동의 독자적 상이 모호한 문제)과 서울지역의 연대질서가 정비되지 못한 조건에서 급박한 순간에 최소한의 대응이 가능한 선전 체계나 공동 실천의 틀이 부재했다. 수면가스를 살포해 진압하겠다는 사측의 작전이 폭로됐을 때, 공권력 투입 소식으로 지부 간부의 부인이 자결했을 때, 헬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최루액을 폭포처럼 쏟아 붓고, 테이저건이 조합원의 볼을 관통하고, 경찰특공대가 사냥하듯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이를 피하던 한 조합원이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도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현실은 상황실을 비롯해 모든 연대단위에게 큰 무력감을 마주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서울지역 연대운동 활성화를 위한 장기적 계획과 끈기있는 실천
쌍용차 투쟁을 돌아보며, 서울지역운동이 전체운동의 현재적 갈등을 극복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면 중요한 순간에 정파를 넘어서는 입장과 실천을 제기하는 부위가 되도록 끈기있는 논쟁과 실천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동시에 서울지역 운동의 자기 동력 형성을 위해 민주노총 서울본부, 각 연맹 서울지부 조합원들과 당, 학생단체 등 대중단위의 활동가들을 투쟁의 주체로 조직할 수 있는 일상적 공동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전국에 걸친 갈등적 운동질서가 몇몇 상층 조직 간 논의로 해소될 수는 없다. 따라서 여러 경로로 연대운동 활성화를 고민하고 있는 서울지역 운동단위들이 입장차를 좁혀가는 토론과 일상적 선전활동, 공동의 정세적 대응을 통해 전체 민중운동의 연대질서 재구축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이에 기여하는 구체적 과제와 자기 역할을 고민하고 추진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싸움에 나설 것인가
옥쇄파업이 종료되자마자 보수언론의 공세가 더욱 극심해졌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공장에 식량과 생수가 풍족하게 남아있다는 기사였다. 가스와 전기 차단으로 조리가 어려운 조건을 차치하더라도 상식적으로 500여 조합원들이 사나흘 버틸 수 있는 식량에 불과했다. 다만 며칠이라도 더 버티고자 아끼고 또 아껴둔 것인데 일촉즉발의 참사 위기 앞에 공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현실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한 줄기 빗방울, 한 줌 빛이 되어 메마른 공장을 적시고 불 꺼진 공장에 빛을 밝힐 수 있길 바랐지만 힘이 모자랐던 우리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처음 쌍용차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을 때 모두가 여기까지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주체의 조건도, 투쟁의 전망도, 운동 전반의 분위기도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싸움이었다. 정권과 자본의 거대한 탄압에 맞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며 이어온 77일의 옥쇄파업. 이는 향후 지속될 경제위기 하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방어 투쟁에서 우리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싸워갈 것인지, 그 향방을 토론하는데 중대한 쟁점을 던져주었다.
77일의 투쟁을 마무리하며 한상균 지부장은 ‘더 이상 노동자들이 피 흘리지 않도록, 아쉽지만 우리의 분노와 열정을 새로운 투쟁, 새로운 노동자의 역사를 위해 충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쌍용차지부는 사측과 정부의 금속노조 탈퇴와 노조파괴 공작, 살인적인 수사, 다시 이어질 매각과 구조조정에 맞서 노조활동재개라는 어려운 싸움을 다시 시작했디. 전체 노동자운동에게도 쌍용차 77일의 투지를 딛고 설 과제가 남았다. 쌍용차 투쟁을 어떻게 평가하고 새로운 싸움에 나설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두가 진지하고 치열하게 답해야 할 때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쌍용차 투쟁에서 드러난 운동의 현실과 사회진보연대 활동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논의구조와 운동방식을 개선하고 노동자운동과 더욱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또 하반기 노동자운동의 단결을 위한 요구로 제출한 ‘한시적 해고금지특별법’의 과제를 현실화하고, 향후 노동자운동 혁신과 연대운동 재정비에 기여할 활동의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끝으로 서울에서의 한 달여 동안 쌍용차 투쟁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결의를 보여주며 때로는 소소한 대화로, 때로는 솔직한 술 한 잔으로, 언제나 쌍용차지부의 현황과 고민을 최대한 공유하고 연대 단위의 의견을 존중했던 상황실장 동지와 조합원 동지들께 감사와 결의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쌍용차 옥쇄파업이 50여 일에 이르던 7월 초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서울상황실이 꾸려졌다. 경찰에 의한 공장봉쇄가 시작된 지 일주일, 공장으로 고립되는 전선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각 지역에서 쌍용차 투쟁에 연대하는 흐름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고민으로 서울지역 지원대책위(이하 서울지대위)도 결성됐다. 여기에 사회진보연대도 함께했다. 이번 <사회운동>에는 쌍용차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에 긴밀하게 결합하고 서울지역 연대를 확산하기 위해 활동한 한 달의 소회와 간략한 평가를 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마감이 코앞에 닥치도록 시작이 너무 어려웠다. 비교적 가까이에서 이 투쟁의 주체들을 만나면서 77일의 옥쇄파업을 준비해왔던 주체들의 노력, 투쟁 과정에서의 자부심과 상처, 그리고 옥쇄파업 종료 후의 고통 등 그들의 심정을 접할 수 있었고 그만큼 쉽게 투쟁에 대해 말하기 어려웠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영웅적인 투쟁’이라 하기엔 모든 것을 걸고 싸운 지부와 조합원들에게나, 헌신적으로 결합한 운동진영에게 너무나 큰 상처가 남았다. 또한 쉽게 ‘패배했다’고 하기엔 주체역량이 취약한 우리 운동 조건에서 그 자체로 너무나 당당하고 영웅적인 투쟁이었다.
77일 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은 극한의 위험으로 내몰렸다. 단수, 가스 차단, 음식과 의약품, 의료진 차단, 단전 등 압박 조치와 구사대, 용역깡패, 경찰특공대의 무시무시한 합동 진압작전. 하지만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 차단된 공장에서,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거대한 폭력에 맞서 당당하게 싸웠던 노동자들. 평범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조직하고 단련시키는지, 극한의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오랜 시간 헌신한 쌍용차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아래로부터 조금씩, 아무리 조그만 일이라도 원칙을 지키며 일군 성과가 대중 투쟁에서 발휘되는 지도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느꼈다.
물리적 역량의 부족으로 77일의 옥쇄파업은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운 싸움이 시작됐다. 한상균 지부장은 구속자 최소화 등 노사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하며 8월 13일부터 옥중단식을 하고 있다. 단일 투쟁에서 역대 최다 구속자수를 기록하고 있는 강압수사에 한 조합원은 자결을 시도했다. 많은 이들이 부상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생계가 막막하다. 정부와 사측은 이 기회에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탈퇴를 밀어붙여 앞으로의 싸움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려 한다. 옥쇄파업 이후의 투쟁을 보위하는 것과 함께, 쌍용차 투쟁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투쟁에서 외국자본의 구조조정과 청산, 경제위기 하 노동권 박탈, 이명박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과 극악한 폭력에 맞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전체 운동진영의 태세를 정비하고 사활을 건 투쟁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의 진정성을 온 몸으로 보여준 쌍용차 파업투쟁에 대해 여러 평가들이 제출되고 있다. (<사회운동> 이번 호에 사회진보연대의 입장과 분석이 실려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투쟁을 준비하는 전조직적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이 글에서는 쌍용차 투쟁에 함께 한 사회진보연대와 서울지대위 활동을 돌아보려 한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비가 지금 오네요.”
8월 6일 한상균 지부장의 담화문 마지막 구절이다. 공장을 나설 때 잠깐 내린 빗줄기, 쌍용차 투쟁에 애정과 관심이 있었던 사람 모두가 눈물 나게 아팠다. 살갗을 녹이는 최루액 세례에도 씻을 수 없었던 조합원들은 간절히 비를 기다렸다. 메말라가는 공장 밖을 지키던 많은 이들도 비가 쏟아지길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지부장이 말한 ‘비’는 말 그대로 ‘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힘 있는 연대의 빗줄기, 사실은 그게 아니었을까. 주체들의 결연한 투쟁에 비해 연대의 움직임이 미약했다는 것이 여러 평가의 공감대가 아닌가 한다. 쌍용차 투쟁을 경제위기 하 고용 문제, 초민족 자본의 먹튀와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권 쟁취 투쟁의 전선을 만드는 계기로 삼고자하는 흐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운동 주체들의 도덕적 의지를 묻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투쟁을 통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전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현재 역량을 적나라하게 확인한 데서 오는 뼈아픈 평가다.
쌍용차 투쟁에서 사회진보연대의 활동
사회진보연대는 쌍용차투쟁에 기여하기 위해 정책 생산과 직접적인 연대활동, 서울지역에서의 지원활동 등 많은 역량을 투여했다. 많은 이들이 다치고 연행되기도 했다. 점거 파업 이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 한 것에 비해 꽤 많은 활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쌍용차 투쟁을 돌아보며 핵심 정세에 결합하는 사회진보연대 활동을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투쟁에 있어 사회진보연대의 조직적 결합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늘 있었다. 조직적 결합력이라 하면 투쟁의 핵심 쟁점 정선과 정책 생산, 유효한 연대틀 구성과 개입, 구체적 활동 방식, 회원들의 운동 기획 등 여러 과정을 포함한다.
활발한 정책선전활동
1월 8일 쌍용차 법정관리 신청 이후부터 사회진보연대는 쌍용차 문제의 경과와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조정 저지 투쟁전선 형성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위기 하 세계적인 자동차산업의 위기 속에서 GM대우를 비롯해 향후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연달아 이어질 구조조정의 폭과 수위를 줄이고 생존권을 방어하는 데 있어 쌍용차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의미가 지대했다. GM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자동차산업의 전망과 한국의 문제를 분석하고 노동자운동의 요구를 정선하기 위한 연구 활동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노조 파업으로 인한 기업 파산’ 논리에 대해 쌍용차 사측과 정부의 처지, 세계 경제위기 하 자동차산업의 여건 등을 바탕으로 파산협박과 뉴쌍용 설립의 비현실성을 분석하고 선전할 수 있었다. 또 점거파업 종료 후 남겨진 쟁점을 분석하고 전국적 해고 반대 투쟁과 금속노조의 계급적 강화라는 과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장기적인 전망에 입각해 활발하고 구체적인 정책선전활동을 했다.
조직적 결합력 제고를 위한 논의과정 형성
하지만 쌍용차지부의 전체 투쟁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은 관련 연대단위를 통해 중요한 투쟁 일정에 결합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향후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쌍용차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되 투쟁의 전선을 외국계 자본과 정부의 책임 문제로 형성하기 위한 실질적 운동을 만드는 과정에 힘을 모으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사회진보연대 내에서도 쌍용차 투쟁의 향방에 대한 토론 제기가 많았는데, 정책연구가 회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대응 계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미흡했다. 사회진보연대의 정책연구와 선전 활동이 조직의 긴장감과 입장의 통일성을 높이고 지역과 현장의 운동 기획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내용 생산과 유통, 논의 과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쌍용차 투쟁에 결합하고 주체들을 만나는 과정은 큰 자극이었다. 그만큼 쌍용차 조합원들의 의식은 가파른 상승세였고 연대운동의 역할에 대한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6월 말까지도 많은 회원들이 투쟁에 참석하거나 자기 공간에서 관련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감동적인 순간, 결의와 긴장을 높여야 할 중요한 순간에 더 많은 회원들과 연대가 함께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내가 살면서 언제 또 이런 투쟁에 함께할 수 있을까’하는 감동의 순간은 늘 더 많은 이들과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후회를 동반했다. 실제 투쟁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은 메일이나 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중요한 시점에 집중력을 발휘하고 이를 통해 운동과 조직 내에 긴장이 확산되는 과정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정세적 중요성과 당위를 역설하는 것을 넘어 회원 활동의 집중력을 배가하기 위해 논의구조와 활동 방식 변화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원들의 자발적 결의가 촉발한 긴장
6월 26-27일 사측과 용역깡패 진입에 뒤이은 공장 봉쇄는 활동에 많은 제약이 되었다. 운동 전반적으로 쌍용차 평택공장에 결합하는 것 외의 여론전이나 지역별 연대운동 흐름이 부족했고, 위력적인 공장 앞 연대투쟁을 전개할 수 없는 조건 때문이었다. 또한 많은 회원들이 평택 투쟁에 결합하기에 거리와 시간 상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상 공장 밖과 다른 지역 모두에서 적절한 투쟁의 공간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 파업투쟁에 밀접하게 결합한 몇몇 활동가들의 자발적 결의가 사회진보연대의 활동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선도적 결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사회진보연대의 정세적 투쟁 결합, 노동자운동 현장과 밀착한 활동에서 여전히 공백인 지점들에 대한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쌍용차 투쟁 결합에 있어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전체 민중운동의 연대 형성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입장을 제출하고, 현장과 호흡하며 밀접한 활동을 벌이려 했던 점은 이후 투쟁에서도 성과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서울지대위 활동과 서울지역 연대운동
평택공장으로 한정되고 있는 투쟁전선을 뚫고 나가기 위한 서울 상황실 구성. 이는 어려운 공장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상황실 구성에 이어 서울지역에서 뜻을 함께하는 노조, 당, 학생, 사회단체가 모여 서울지대위를 구성했다. 사회진보연대도 쌍용차 투쟁의 전국적 쟁점화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또 서울지역 연대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기간 논의의 연장선에서 함께 했다.
사측과 경찰이 공장을 더욱 압박해올수록 여론을 움직이고 정부의 책임을 제기할 수 있는 전체 운동의 실천이 절실했다. 하지만 복잡한 연대운동 구조 속에서 쌍용차투쟁에 유리한 여론 형성과 대정부 투쟁은 취약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어려운 현실과 더불어 민중운동의 갈등적인 연대질서에서 기인한다. 쌍용차 투쟁과 관련한 여러 연대체가 있었지만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이들의 중심에서 투쟁의 집중과 확산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 조율과정에서 충분한 합의를 모으지 못한 여러 연대체들이 서로 교류하지 못해 각자의 역할을 살리고 공동의 위력적 실천을 조직하는 양자 모두가 어려웠다.
서울지역에서는 그간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중심으로 갈등적 연대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쌍용차투쟁과 같은 정세는 연대운동의 질적 상승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정세적 투쟁에서 서로의 입장을 놓고 토론하고 공동 활동의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연대 활성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7월 8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금속노조 서울지부를 중심으로 구로역 광장에서 진행된 촛불문화제는 쌍용차문제로 열린 서울지역 운동 최초의 대중집회였다. 그 후 서울지대위가 결성되고 주 1회 구로역 집회와 여러 선전활동을 할 수 있었다.
서울지역단위들의 자발적 활동을 모아낸 서울지대위
공장 봉쇄가 본격화된 후에야 지부의 요청으로 뒤늦게 서울지대위를 꾸린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공권력 전면투입으로 투쟁이 평택에 집중된 상황에서 서울지역 활동은 평택 상황 선전과 주 1회 집회 이상의 자기 기획을 갖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체 운동의 유기적 연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지역의 노동조합, 정당, 학생, 사회단체들의 자발적인 활동들이 지대위로 모이고 더 나은 투쟁을 함께 고민할 수 있었던 점은 지대위 활동의 성과다. 매일같이 서울과 평택을 오가야 했던 상황에서도 여러 운동단위들이 자기 지역과 노조, 학교에서 활동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급하게 준비된 구로역 광장 집회에도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여러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선전전들도 모여서 규모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지부의 상황실 구성을 계기로 서울지역 여러 단위들이 힘을 모은 결과였다.
서울 상황실과 지대위는 평택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선전하고, 상경조합원들과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의 투쟁을 알려내고, 서울지역 단위들에 연대를 요청하고, 사회 각계의 지지와 국제연대를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 활동의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실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서울지역에 기존 운동 흐름이 부족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활동이 어려웠고, 상경한 조합원들의 활동 공간을 열어주고 지원하는 일도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7월 20일 공권력이 전면 투입된 후 공장은 매일같이 전쟁터였지만 공장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폭력에 대해, 파산협박과 노조 공격에 대해 상황을 공유하고 평택으로 모이는 것 외에 다른 실천을 조직하지 못했다. 서울지역 운동의 특징(전국적 집중 사안에서 지역 활동의 독자적 상이 모호한 문제)과 서울지역의 연대질서가 정비되지 못한 조건에서 급박한 순간에 최소한의 대응이 가능한 선전 체계나 공동 실천의 틀이 부재했다. 수면가스를 살포해 진압하겠다는 사측의 작전이 폭로됐을 때, 공권력 투입 소식으로 지부 간부의 부인이 자결했을 때, 헬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최루액을 폭포처럼 쏟아 붓고, 테이저건이 조합원의 볼을 관통하고, 경찰특공대가 사냥하듯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이를 피하던 한 조합원이 추락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도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현실은 상황실을 비롯해 모든 연대단위에게 큰 무력감을 마주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서울지역 연대운동 활성화를 위한 장기적 계획과 끈기있는 실천
쌍용차 투쟁을 돌아보며, 서울지역운동이 전체운동의 현재적 갈등을 극복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면 중요한 순간에 정파를 넘어서는 입장과 실천을 제기하는 부위가 되도록 끈기있는 논쟁과 실천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동시에 서울지역 운동의 자기 동력 형성을 위해 민주노총 서울본부, 각 연맹 서울지부 조합원들과 당, 학생단체 등 대중단위의 활동가들을 투쟁의 주체로 조직할 수 있는 일상적 공동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전국에 걸친 갈등적 운동질서가 몇몇 상층 조직 간 논의로 해소될 수는 없다. 따라서 여러 경로로 연대운동 활성화를 고민하고 있는 서울지역 운동단위들이 입장차를 좁혀가는 토론과 일상적 선전활동, 공동의 정세적 대응을 통해 전체 민중운동의 연대질서 재구축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이에 기여하는 구체적 과제와 자기 역할을 고민하고 추진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싸움에 나설 것인가
옥쇄파업이 종료되자마자 보수언론의 공세가 더욱 극심해졌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공장에 식량과 생수가 풍족하게 남아있다는 기사였다. 가스와 전기 차단으로 조리가 어려운 조건을 차치하더라도 상식적으로 500여 조합원들이 사나흘 버틸 수 있는 식량에 불과했다. 다만 며칠이라도 더 버티고자 아끼고 또 아껴둔 것인데 일촉즉발의 참사 위기 앞에 공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현실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한 줄기 빗방울, 한 줌 빛이 되어 메마른 공장을 적시고 불 꺼진 공장에 빛을 밝힐 수 있길 바랐지만 힘이 모자랐던 우리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처음 쌍용차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을 때 모두가 여기까지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주체의 조건도, 투쟁의 전망도, 운동 전반의 분위기도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싸움이었다. 정권과 자본의 거대한 탄압에 맞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며 이어온 77일의 옥쇄파업. 이는 향후 지속될 경제위기 하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방어 투쟁에서 우리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싸워갈 것인지, 그 향방을 토론하는데 중대한 쟁점을 던져주었다.
77일의 투쟁을 마무리하며 한상균 지부장은 ‘더 이상 노동자들이 피 흘리지 않도록, 아쉽지만 우리의 분노와 열정을 새로운 투쟁, 새로운 노동자의 역사를 위해 충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쌍용차지부는 사측과 정부의 금속노조 탈퇴와 노조파괴 공작, 살인적인 수사, 다시 이어질 매각과 구조조정에 맞서 노조활동재개라는 어려운 싸움을 다시 시작했디. 전체 노동자운동에게도 쌍용차 77일의 투지를 딛고 설 과제가 남았다. 쌍용차 투쟁을 어떻게 평가하고 새로운 싸움에 나설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두가 진지하고 치열하게 답해야 할 때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쌍용차 투쟁에서 드러난 운동의 현실과 사회진보연대 활동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논의구조와 운동방식을 개선하고 노동자운동과 더욱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또 하반기 노동자운동의 단결을 위한 요구로 제출한 ‘한시적 해고금지특별법’의 과제를 현실화하고, 향후 노동자운동 혁신과 연대운동 재정비에 기여할 활동의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끝으로 서울에서의 한 달여 동안 쌍용차 투쟁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결의를 보여주며 때로는 소소한 대화로, 때로는 솔직한 술 한 잔으로, 언제나 쌍용차지부의 현황과 고민을 최대한 공유하고 연대 단위의 의견을 존중했던 상황실장 동지와 조합원 동지들께 감사와 결의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