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학교 “2009 세계경제정세”
일시적 회복 후 장기화될 경제위기, 노동자운동의 전망은 무엇인가
사회진보연대 2009 여름사회운동학교가 8월 22~23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날에는 대불황기의 미국경제, 대불황기 미국의 사회정치 및 노동자ㆍ여성운동, 경제위기에 대한 민중운동의 대응진단과 제언에 대해 강연과 토론을 진행했다. 둘째 날에는 윤소영 교수가 2009년 세계경제정세에 대해 강연하였다. 여기서는 둘째 날 강연과 토론을 소개하기로 한다. 윤소영 교수는 6시간에 걸친 강연에서 2009년 3월 이후 금융위기가 다소 진정된 이후 연준과 재무부의 추가적 정책대응과 금융위기가 은행위기, 나아가 증시붕괴와 달러위기로 심화되면서 더블딥(이중침체)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였다. 또 뒤메닐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시하는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과 그에 대한 대안을 소개하면서 금융위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에 대한 민중운동의 대응방향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연준의 수량완화정책과 재무부의 구제금융
윤소영 교수는 먼저 2009년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경제정책을 소개했다. 신용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연준은 가격완화정책으로서 기준금리를 0.25-0%까지 인하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금리는 마이너스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완화정책 이후에 수량완화정책을 추가로 시행한다. 수량완화정책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를 늘리는 것으로 연준의 이번 수량완화정책은 자산의 구성을 변화시킨다는 면에서 1990년대 일본의 수량완화정책에 비해 비전형적이다. 연준의 수량완화정책의 핵심은 대기업, 중소기업 및 소비자에 대한 대부에 있는데 이는 연준이 최종대부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최초대부자의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연준법은 ‘비상위급상황’에서 은행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증권회사와 같은 비은행 금융회사 및 심지어 기업과 소비자에게 직접 대부할 수 있는 연준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연준이 이렇게 최초대부자로서의 역할까지 한 것은 이 권한을 적용한 것으로서 이는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초다. 즉 수량완화정책은 연준과 재무부의 대응이 대불황에 대한 그것과 맞먹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대불황에 대한 대응을 시사하는 또 다른 예로 구제금융을 들었는데 이는 1932년에 설립된 재건금융공사(RFC)를 부활시킨 것이다. 재무부는 7000억 달러 규모의 1차 구제금융에 이어 2009년 2월 2차 구제금융으로 2조 달러의 금융안정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2월 씨티그룹은 구제금융을 통해 재무부가 보유하게 된 450억 달러의 우선주 중에서 250억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하고, 동시에 재무부는 씨티그룹의 이사진 교체를 요구했다. 루비니, 포젠, 존슨 등 예전부터 국유화를 주장했던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사실적 국유화에서 법률적 국유화로의 변화라고 해석하고, 이제 부분 국유화를 전면 국유화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들이 주장하는 국유화의 핵심은 국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 청산과 관리자 교체를 통해 지배구조를 반전시키는 데 있다.
또 이들은 겸업화를 부분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겸업은행의 상징인 씨티그룹은 국유화되면서 상업은행 및 투자은행 본업을 담당하는 씨티코프(건전자산)만 남고 보험업무, 증권유통중개, 자산운용업무를 담당하는 씨티홀딩스(부실자산)는 매각될 예정이다. 그러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상존함으로써 겸업화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루부니, 포젠, 존슨은 겸업화와 인수합병, 구제금융과 국유화 등을 통해 금융위기를 해결하려는 연준과 재무부의 정책이 은행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루비니, 포젠, 존슨 등이 주장하는 국유화는 엄밀히 말하면 은행의 겸업화 해체 후 건전성을 회복한 후 다시 사유화한다는 의미에서 사전사유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조치를 연준과 재무부가 실행할 가능성은 낮다.
윤소영 교수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진정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제로금리정책, 수량완화정책과 함께 구제금융, 스트레스테스트다. 올해 2월에서 4월까지 연준은 은행의 자본건전성에 대해 평가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했고 5월에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경기침체가 악화될 경우에도 은행위기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사실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는 이미 구제금융을 받았기 때문에 필요한 증자규모가 적을 따름이고 다른 대개의 은행에 대해서는 증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스트레스테스트에서의 자산평가는 금융회계표준위원회가 기존의 시가평가제를 원가평가제(장부평가)로 전환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 만약 은행자산을 시가로 평가했다면 결과는 훨씬 부정적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사실상 개별은행이 자신의 회계장부를 조작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현재의 부실을 은폐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허용했다.
더불딥 논쟁
이어 윤 교수는 3월 이후 금융위기가 진정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불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경기침체가 종료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경기침체의 진행을 두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8개월 지속된 후 경기가 회복되는 V자형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루비니는 1974-75년과 같이 경기침체가 18-24개월 지속되는 U자형, 또는 1930년대와 같은 L자형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달리 포젠은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후 다시 침체가 반복되는 W자형, 즉 더블딥을 주장한다. 더블딥에 대한 원인을 둘러싼 논쟁은 다양한데 포젠은 구제금융과 스트레스테스트가 근본처방이 아니라 대증요법이기 때문에 위기를 일시적으로 지연할 뿐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특히 1932년의 일시 회복이 1933년 초 은행위기의 폭발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2009년 말에 금융 위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이후 2010년 말이나 2011년 말에 은행위기기 폭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로금리정책, 수량완화정책을 언제 퇴각시킬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한창 진행 중이다. 민간금융기관들의 자산항목으로 잡혀있던 부실자산들을 중앙은행의 자산으로 옮겨놓는 것이 버냉키의 해법인데 이것이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젠은 통화를 너무 빠르게 환수하는 경우 더블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 예로 미국은 1980-81년 출구전략이 너무 빨리 시행되어 당시 일시 회복 후 1981-82년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은 바 있다. 버냉키는 당분간 출구전략이 시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루비니는 또 출구전략이 너무 늦게 시행돼도 더블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화투입량이 너무 많으면 재무부증권의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이와 동시에 달러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무부증권을 비롯한 국공채는 국민소득 대비 40%에서 80%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후 최고치다. 윤 교수는 이렇게 비중이 증가한 재무부증권의 가격이 폭락한다면 증시가 붕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제경제연구소의 클라인과 윌리엄슨은 더블딥의 원인으로 이중적자와 달러위기를 들고 있다. 2009년에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빠르게 감소함으로 인해 무역적자의 규모는 감소하겠지만 재정적자는 국민소득의 2%에서 12%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2008년 8월 이후 강세로 반전한 달러가치가 계속 강세를 유지한다면 수출 감소가 더 심화되면서 이중적자가 악화될 것이고 또 민간적자가 상승하면서 2006년과 비슷한 삼중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 민간적자)가 재발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예측이다.
결국 이번 금융위기는 해결이 아니라 진정되었을 뿐이라는 것이 더블딥 논쟁의 핵심이다. 버냉키는 이번 금융위기의 특징이 신용위기와 은행위기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증권화와 겸업화로 각종 증권과 파생금융상품이 은행자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시가 충격을 받으면 민간 경제의 자산이 충격을 받게 된다. 이를 구제금융으로 완화하기 위해 민간의 부실자산을 정부의 부실자산으로 옮기게 되면 그 결과 국가신임도가 떨어지고 재무부증권이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것이 곧 달러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미-중전략경제대화와 주요20개국 2차 정상회담
은행위기, 삼중적자, 증시 및 달러 폭락의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미국 경제는 최종적으로 붕괴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세력은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해 몇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중전략경제대화와 G20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미-중 전략경제대화와 주요 20개국 회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조관계를 형성해 현 위기에 단기적, 그리고 중장기적인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경제연구소 소장 버그스텐은 달러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G2, 즉 미국과 중국의 합의가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이에 그는 2007년에 달러의 평가절하와 위안의 평가절상(‘아시아판 플라자합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포젠은 달러위기와 안보위기의 결합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는 금융세계화의 위기와 군사세계화의 위기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7월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는 재무부증권의 발행규모와 달러가치의 안정성을 핵심의제로 논의하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신장위구르 사태와 더불어 이란 및 북한의 핵문제를 다루었다.
2012-13년을 전후로 한 더블딥에 대비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주요20개국(G20)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이다. 올해 4월에 개최된 2차 G20 정상회담에서는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외환위기 이후 주변화된 국제통화기금(IMF)을 재건하려고 시도했다. 그 내용은 국제통화기금의 지분 및 의결권에서 유럽의 비중을 축소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관례적으로 유럽 출신이 총재에 선출되는 과정을 개방하여 지배구조를 탈유럽화하게 된다면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EBC)의 영향력으로서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외환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된 독일식 신보수주의가 약화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국제통화기금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인출권기금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 진보주의자들이 해석하듯 중국이 달러에 대해 도전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특별인출권의 가치를 결정하는 비중은 달러 44%, 유로 34%, 파운드 11%, 엔 11% 등으로 위안화 비중은 현저히 낮은데다 특별인출권이 금을 제외한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에도 미달한다. 즉 특별인출권이 달러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중국이 제안한 특별인출권기금은 달러를 과잉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그 달러를 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으로 태환할 수 있는 대체계정을 부활시키자고 한 미국의 제안을 수용한 것일 뿐이다.
뒤메닐의 금융위기 분석과 대안
다음으로 윤 교수는 뒤메닐의 금융위기 분석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전개했다. 윤 교수가 <금융위기와 사회운동노조>(공감, 2008)에서 밝힌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은 뒤메닐의 분석을 셰네의 분석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윤 교수에 따르면 자신이 이전부터 주장했듯이 20세기 미국경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뒤메닐의 <이윤율의 경제학>(1993)과 아리기의 <장기 20세기>(1994)를 결합해야 한다. 그런데 뒤메닐의 입장은 2000년 <위기와 탈위기> 이후 변화하고 있으며 아리기의 입장 또한 1999년 <현대세계체계의 카오스와 거버넌스> 이후 변화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윤율의 경제학>에서 뒤메닐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상승추세를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의 하락 추세와 대비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1990년대 이후에 이윤율이 상승추세로 반전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그런데 <위기와 탈위기>에서는 1990년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이윤율이 상승추세에 있다고 기정사실화한다. 뒤메닐은 <위기와 탈위기>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발생하는 실물경제의 ‘수익성 위기’와 이윤율이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금융의 ‘헤게모니 위기’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1890년대와 1970년대는 수익성 위기이고 1930년대와 현재는 헤게모니 위기라는 것이다. 뒤메닐은 현재 금융위기의 대안으로 ‘새로운 뉴딜’과 ‘새로운 브레튼우즈’를 주장하는데 이는 뒤메닐이 현재의 상황을 1930년대 상황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론이다.
윤 교수는 뒤메닐이 이윤율의 운동을 수학적, 구조적 방법 대신 주로 통계적, 경험적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상승이라는 추계가 나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이윤율 하락의 이론궤도를 간과하는 것으로서 현실궤도와 이론궤도 사이에는 괴리가 있고 그 괴리의 원인으로서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뒤메닐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대안에 있으며 뒤메닐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개연성이 없으므로 관리자계급의 헤게모니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비판했다. 뒤메닐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을 위해 관리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인정함으로서 관리자-노동자계급동맹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사민주의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정세적으로 뒤메닐의 주장이 일리가 있으나 문제는 그가 사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정세적 문제가 아니라 원칙적 문제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메닐-아리기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둘러싼 100년의 논쟁을 해결하는데 기여한다는 윤 교수의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뒤메닐과 아리기의 기여를 선별하여 새로이 종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뒤메닐이 통계적으로 분석한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상승 경향이라는 현실궤도는 이론궤도와 구분되어야 하고 이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윤율 하강에 대한 반작용 요인으로서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을 적용해야 한다.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은 하나의 축적체계가 물질적 확장에서 금융적 확장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또 다른 축적체계가 새롭게 형성됨으로서 헤게모니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대공황이 영국 축적체계의 최종적 위기였다면 이 시기에 미국 축적체계가 새로운 물질적 확장을 통해 영국의 축적체계를 대체함으로서 자본주의는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축적체계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헤게모니를 이어받을 수 있는 축적체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2~3년간 잠시 경기가 회복되는 듯하다 장기 불황으로 빠지는 더블딥의 가능성은 곧 자본주의의 장기적 위기 국면을 의미한다.
한국의 민중운동
이어 윤 교수는 이런 국면에서 민중운동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견을 표명했다. 민중운동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이를 테면 우리은행만 제외한 모든 은행과 지엠대우나 쌍용자동차가 외국자본의 수중에 넘어간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외국계 기업에 대한 구제금융에 대해 정리해고 반대라는 조건만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정치적으로는 올바를지 몰라도 경제학적으로는 맞지 않다. 왜냐하면 정리해고가 위기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고 오히려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소유자 청산과 관리자 교체 같은 지배구조의 변화와 은행의 겸업화 해체나 자동차회사의 국체하청 탈피 등을 핵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엠대우나 쌍용자동차의 경우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정리해고의 규모를 둘러싼 논쟁만 집중되는 동안 지배구조의 변화와 국제하청의 탈피를 통해 독자생존이 가능한가 아니면 외국인에 의한 인수합병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쟁점은 주변화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민중운동이 이러한 쟁점을 제기했지만 사회적인 여론과 쟁점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한계에 대해 추가적인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
또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과 기업의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의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에도 재건금융공사와 정리신탁공사가 신설되었다. 이는 모두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증자를 위한 것이다. 문제는 70-80조 원에 달하는 구제금융기금이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및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 금융위원회의 소관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배구조의 변화나 은행의 겸업화 해체와 같은 구조조정의 조건도 없이 외국계 은행의 파산을 예방하기 위한 구제금융이 제공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노동자운동의 투쟁 방향은 금융화와 같은 거시적 쟁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윤 교수는 주장했다. 1997-98년 민주노총은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이 부재한 채 이들에 하나하나 합의해왔다. 또 윤 교수는 우리경제를 내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일견의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 자산이 대부분이 외국인 소유고 특히 자동차산업의 경우 국제하청기업화되었기 때문에 이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윤 교수는 현재 한계적인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민주노총을 재건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결국 대안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고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노총 약화의 원인은 이념의 부재 때문이며 이념을 재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왜 투쟁하는지 인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이를테면 경제투쟁을 하더라도 기본적 목표는 직접적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며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를 당장 없앨 수는 없더라도 왜 그런 격차가 생기는지 노동자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경제위기 회복의 기미가 나타나는 가운데 더블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나 경제위기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하는 것은 운동의 전망을 마련하는데 더 없이 중요할 것이다. 윤소영 교수의 강의는 그런 면에서 2009년 하반기 경제정세의 긴박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장기적 경기침체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구체적인 경로를 모색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몫일 것이다. 과학적인 정세 인식을 바탕으로 이후에 다가올 또 다른 위기에 대비하는 실천들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연준의 수량완화정책과 재무부의 구제금융
윤소영 교수는 먼저 2009년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경제정책을 소개했다. 신용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연준은 가격완화정책으로서 기준금리를 0.25-0%까지 인하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금리는 마이너스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완화정책 이후에 수량완화정책을 추가로 시행한다. 수량완화정책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를 늘리는 것으로 연준의 이번 수량완화정책은 자산의 구성을 변화시킨다는 면에서 1990년대 일본의 수량완화정책에 비해 비전형적이다. 연준의 수량완화정책의 핵심은 대기업, 중소기업 및 소비자에 대한 대부에 있는데 이는 연준이 최종대부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최초대부자의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연준법은 ‘비상위급상황’에서 은행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증권회사와 같은 비은행 금융회사 및 심지어 기업과 소비자에게 직접 대부할 수 있는 연준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연준이 이렇게 최초대부자로서의 역할까지 한 것은 이 권한을 적용한 것으로서 이는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초다. 즉 수량완화정책은 연준과 재무부의 대응이 대불황에 대한 그것과 맞먹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윤소영 교수는 대불황에 대한 대응을 시사하는 또 다른 예로 구제금융을 들었는데 이는 1932년에 설립된 재건금융공사(RFC)를 부활시킨 것이다. 재무부는 7000억 달러 규모의 1차 구제금융에 이어 2009년 2월 2차 구제금융으로 2조 달러의 금융안정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2월 씨티그룹은 구제금융을 통해 재무부가 보유하게 된 450억 달러의 우선주 중에서 250억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하고, 동시에 재무부는 씨티그룹의 이사진 교체를 요구했다. 루비니, 포젠, 존슨 등 예전부터 국유화를 주장했던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사실적 국유화에서 법률적 국유화로의 변화라고 해석하고, 이제 부분 국유화를 전면 국유화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들이 주장하는 국유화의 핵심은 국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 청산과 관리자 교체를 통해 지배구조를 반전시키는 데 있다.
또 이들은 겸업화를 부분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겸업은행의 상징인 씨티그룹은 국유화되면서 상업은행 및 투자은행 본업을 담당하는 씨티코프(건전자산)만 남고 보험업무, 증권유통중개, 자산운용업무를 담당하는 씨티홀딩스(부실자산)는 매각될 예정이다. 그러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상존함으로써 겸업화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루부니, 포젠, 존슨은 겸업화와 인수합병, 구제금융과 국유화 등을 통해 금융위기를 해결하려는 연준과 재무부의 정책이 은행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루비니, 포젠, 존슨 등이 주장하는 국유화는 엄밀히 말하면 은행의 겸업화 해체 후 건전성을 회복한 후 다시 사유화한다는 의미에서 사전사유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조치를 연준과 재무부가 실행할 가능성은 낮다.
윤소영 교수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진정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제로금리정책, 수량완화정책과 함께 구제금융, 스트레스테스트다. 올해 2월에서 4월까지 연준은 은행의 자본건전성에 대해 평가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했고 5월에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경기침체가 악화될 경우에도 은행위기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사실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는 이미 구제금융을 받았기 때문에 필요한 증자규모가 적을 따름이고 다른 대개의 은행에 대해서는 증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스트레스테스트에서의 자산평가는 금융회계표준위원회가 기존의 시가평가제를 원가평가제(장부평가)로 전환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 만약 은행자산을 시가로 평가했다면 결과는 훨씬 부정적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사실상 개별은행이 자신의 회계장부를 조작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현재의 부실을 은폐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허용했다.
더불딥 논쟁
이어 윤 교수는 3월 이후 금융위기가 진정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불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경기침체가 종료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경기침체의 진행을 두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8개월 지속된 후 경기가 회복되는 V자형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루비니는 1974-75년과 같이 경기침체가 18-24개월 지속되는 U자형, 또는 1930년대와 같은 L자형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달리 포젠은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후 다시 침체가 반복되는 W자형, 즉 더블딥을 주장한다. 더블딥에 대한 원인을 둘러싼 논쟁은 다양한데 포젠은 구제금융과 스트레스테스트가 근본처방이 아니라 대증요법이기 때문에 위기를 일시적으로 지연할 뿐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특히 1932년의 일시 회복이 1933년 초 은행위기의 폭발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2009년 말에 금융 위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이후 2010년 말이나 2011년 말에 은행위기기 폭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로금리정책, 수량완화정책을 언제 퇴각시킬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한창 진행 중이다. 민간금융기관들의 자산항목으로 잡혀있던 부실자산들을 중앙은행의 자산으로 옮겨놓는 것이 버냉키의 해법인데 이것이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젠은 통화를 너무 빠르게 환수하는 경우 더블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 예로 미국은 1980-81년 출구전략이 너무 빨리 시행되어 당시 일시 회복 후 1981-82년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은 바 있다. 버냉키는 당분간 출구전략이 시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루비니는 또 출구전략이 너무 늦게 시행돼도 더블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화투입량이 너무 많으면 재무부증권의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이와 동시에 달러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무부증권을 비롯한 국공채는 국민소득 대비 40%에서 80%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후 최고치다. 윤 교수는 이렇게 비중이 증가한 재무부증권의 가격이 폭락한다면 증시가 붕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제경제연구소의 클라인과 윌리엄슨은 더블딥의 원인으로 이중적자와 달러위기를 들고 있다. 2009년에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빠르게 감소함으로 인해 무역적자의 규모는 감소하겠지만 재정적자는 국민소득의 2%에서 12%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2008년 8월 이후 강세로 반전한 달러가치가 계속 강세를 유지한다면 수출 감소가 더 심화되면서 이중적자가 악화될 것이고 또 민간적자가 상승하면서 2006년과 비슷한 삼중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 민간적자)가 재발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예측이다.
결국 이번 금융위기는 해결이 아니라 진정되었을 뿐이라는 것이 더블딥 논쟁의 핵심이다. 버냉키는 이번 금융위기의 특징이 신용위기와 은행위기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증권화와 겸업화로 각종 증권과 파생금융상품이 은행자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시가 충격을 받으면 민간 경제의 자산이 충격을 받게 된다. 이를 구제금융으로 완화하기 위해 민간의 부실자산을 정부의 부실자산으로 옮기게 되면 그 결과 국가신임도가 떨어지고 재무부증권이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것이 곧 달러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미-중전략경제대화와 주요20개국 2차 정상회담
은행위기, 삼중적자, 증시 및 달러 폭락의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미국 경제는 최종적으로 붕괴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세력은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해 몇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중전략경제대화와 G20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미-중 전략경제대화와 주요 20개국 회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조관계를 형성해 현 위기에 단기적, 그리고 중장기적인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경제연구소 소장 버그스텐은 달러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G2, 즉 미국과 중국의 합의가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이에 그는 2007년에 달러의 평가절하와 위안의 평가절상(‘아시아판 플라자합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포젠은 달러위기와 안보위기의 결합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는 금융세계화의 위기와 군사세계화의 위기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7월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는 재무부증권의 발행규모와 달러가치의 안정성을 핵심의제로 논의하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신장위구르 사태와 더불어 이란 및 북한의 핵문제를 다루었다.
2012-13년을 전후로 한 더블딥에 대비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주요20개국(G20)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이다. 올해 4월에 개최된 2차 G20 정상회담에서는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외환위기 이후 주변화된 국제통화기금(IMF)을 재건하려고 시도했다. 그 내용은 국제통화기금의 지분 및 의결권에서 유럽의 비중을 축소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관례적으로 유럽 출신이 총재에 선출되는 과정을 개방하여 지배구조를 탈유럽화하게 된다면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EBC)의 영향력으로서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외환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된 독일식 신보수주의가 약화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국제통화기금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인출권기금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 진보주의자들이 해석하듯 중국이 달러에 대해 도전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특별인출권의 가치를 결정하는 비중은 달러 44%, 유로 34%, 파운드 11%, 엔 11% 등으로 위안화 비중은 현저히 낮은데다 특별인출권이 금을 제외한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에도 미달한다. 즉 특별인출권이 달러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중국이 제안한 특별인출권기금은 달러를 과잉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그 달러를 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으로 태환할 수 있는 대체계정을 부활시키자고 한 미국의 제안을 수용한 것일 뿐이다.
뒤메닐의 금융위기 분석과 대안
다음으로 윤 교수는 뒤메닐의 금융위기 분석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전개했다. 윤 교수가 <금융위기와 사회운동노조>(공감, 2008)에서 밝힌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은 뒤메닐의 분석을 셰네의 분석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윤 교수에 따르면 자신이 이전부터 주장했듯이 20세기 미국경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뒤메닐의 <이윤율의 경제학>(1993)과 아리기의 <장기 20세기>(1994)를 결합해야 한다. 그런데 뒤메닐의 입장은 2000년 <위기와 탈위기> 이후 변화하고 있으며 아리기의 입장 또한 1999년 <현대세계체계의 카오스와 거버넌스> 이후 변화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윤율의 경제학>에서 뒤메닐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상승추세를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의 하락 추세와 대비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1990년대 이후에 이윤율이 상승추세로 반전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그런데 <위기와 탈위기>에서는 1990년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이윤율이 상승추세에 있다고 기정사실화한다. 뒤메닐은 <위기와 탈위기>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발생하는 실물경제의 ‘수익성 위기’와 이윤율이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금융의 ‘헤게모니 위기’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1890년대와 1970년대는 수익성 위기이고 1930년대와 현재는 헤게모니 위기라는 것이다. 뒤메닐은 현재 금융위기의 대안으로 ‘새로운 뉴딜’과 ‘새로운 브레튼우즈’를 주장하는데 이는 뒤메닐이 현재의 상황을 1930년대 상황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론이다.
윤 교수는 뒤메닐이 이윤율의 운동을 수학적, 구조적 방법 대신 주로 통계적, 경험적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상승이라는 추계가 나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이윤율 하락의 이론궤도를 간과하는 것으로서 현실궤도와 이론궤도 사이에는 괴리가 있고 그 괴리의 원인으로서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뒤메닐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대안에 있으며 뒤메닐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개연성이 없으므로 관리자계급의 헤게모니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비판했다. 뒤메닐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을 위해 관리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인정함으로서 관리자-노동자계급동맹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사민주의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정세적으로 뒤메닐의 주장이 일리가 있으나 문제는 그가 사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정세적 문제가 아니라 원칙적 문제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메닐-아리기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둘러싼 100년의 논쟁을 해결하는데 기여한다는 윤 교수의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뒤메닐과 아리기의 기여를 선별하여 새로이 종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뒤메닐이 통계적으로 분석한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상승 경향이라는 현실궤도는 이론궤도와 구분되어야 하고 이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윤율 하강에 대한 반작용 요인으로서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을 적용해야 한다.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은 하나의 축적체계가 물질적 확장에서 금융적 확장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또 다른 축적체계가 새롭게 형성됨으로서 헤게모니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대공황이 영국 축적체계의 최종적 위기였다면 이 시기에 미국 축적체계가 새로운 물질적 확장을 통해 영국의 축적체계를 대체함으로서 자본주의는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축적체계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헤게모니를 이어받을 수 있는 축적체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2~3년간 잠시 경기가 회복되는 듯하다 장기 불황으로 빠지는 더블딥의 가능성은 곧 자본주의의 장기적 위기 국면을 의미한다.
한국의 민중운동
이어 윤 교수는 이런 국면에서 민중운동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견을 표명했다. 민중운동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이를 테면 우리은행만 제외한 모든 은행과 지엠대우나 쌍용자동차가 외국자본의 수중에 넘어간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외국계 기업에 대한 구제금융에 대해 정리해고 반대라는 조건만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정치적으로는 올바를지 몰라도 경제학적으로는 맞지 않다. 왜냐하면 정리해고가 위기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고 오히려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소유자 청산과 관리자 교체 같은 지배구조의 변화와 은행의 겸업화 해체나 자동차회사의 국체하청 탈피 등을 핵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엠대우나 쌍용자동차의 경우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정리해고의 규모를 둘러싼 논쟁만 집중되는 동안 지배구조의 변화와 국제하청의 탈피를 통해 독자생존이 가능한가 아니면 외국인에 의한 인수합병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쟁점은 주변화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민중운동이 이러한 쟁점을 제기했지만 사회적인 여론과 쟁점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한계에 대해 추가적인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
또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과 기업의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의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에도 재건금융공사와 정리신탁공사가 신설되었다. 이는 모두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증자를 위한 것이다. 문제는 70-80조 원에 달하는 구제금융기금이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및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 금융위원회의 소관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배구조의 변화나 은행의 겸업화 해체와 같은 구조조정의 조건도 없이 외국계 은행의 파산을 예방하기 위한 구제금융이 제공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노동자운동의 투쟁 방향은 금융화와 같은 거시적 쟁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윤 교수는 주장했다. 1997-98년 민주노총은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이 부재한 채 이들에 하나하나 합의해왔다. 또 윤 교수는 우리경제를 내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일견의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 자산이 대부분이 외국인 소유고 특히 자동차산업의 경우 국제하청기업화되었기 때문에 이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윤 교수는 현재 한계적인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민주노총을 재건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결국 대안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고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노총 약화의 원인은 이념의 부재 때문이며 이념을 재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왜 투쟁하는지 인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이를테면 경제투쟁을 하더라도 기본적 목표는 직접적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며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를 당장 없앨 수는 없더라도 왜 그런 격차가 생기는지 노동자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경제위기 회복의 기미가 나타나는 가운데 더블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나 경제위기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하는 것은 운동의 전망을 마련하는데 더 없이 중요할 것이다. 윤소영 교수의 강의는 그런 면에서 2009년 하반기 경제정세의 긴박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장기적 경기침체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구체적인 경로를 모색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몫일 것이다. 과학적인 정세 인식을 바탕으로 이후에 다가올 또 다른 위기에 대비하는 실천들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