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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9-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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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와 외주화에 맞선 KBS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방민희 | 여성국장
비정규직 확산과 일상적 해고는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고용만큼은 안정될 것이라 생각했던 공공기관마저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위기 속에서 더 두드러지고 있다. 해고와 임금삭감, 무급휴직, 간접고용으로 전환 등 자본은 노동자들을 불안한 상태로 내몰며 경제위기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같은 자본의 계획에 2007년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이 활용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고, 오히려 계약해지나 외주화로 비정규직 해고가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법 시행 이후 처음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한 KBS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어느덧 두 달을 훌쩍 넘었다. 그들의 투쟁은 KBS가 국민의 방송이라 자처하며 유포한 환상을 철저히 깨뜨리고 있다. 경영 악화 책임 전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회피, 공기업이 앞장 선 대량해고. 이런 문제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공영방송 KBS다.

KBS 경영개혁단의 ‘연봉계약직 운영방안’

공영방송 KBS는 “현행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고용한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 전환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지금 KBS는 최근 2년 간 적자가 1000억 원을 넘어서는 등 경영 합리화가 불가피해 정규직 전환 여력이 없다”며 계약직 노동자들을 순차적으로 해고하고 있다. 애초부터 정규직 전환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비정규직 개악에 관한 국회 공방에서 한나라당 유예안을 기대했던 KBS다. 정부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6월 30일과 7월 30일을 기점으로 60여 명이 해고됐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지난 6월 발표한 KBS 연봉계약직 운영방안에 따르면 420명의 계약직 노동자 중 89명이 해고되고, 239명이 해고 후 자회사로 이관되거나 외주화된다. 이를 제외한 92명만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거나 연봉계약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해고와 자회사 이관, 외주화를 통해 정규직 전환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이다.
사측이 내놓은 경영합리화의 주요 골자는 자회사와 외부업체로의 이관이다. 사측은 기존 자회사인 비즈니스, 아트비전, KBS-i로 87명, 신설자회사로 122명을 이관시키고 시청자상담업무를 담당하는 30명 전원을 외주화할 계획이다. 그리고 전적동의서를 쓰지 않는 노동자는 전원 해고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책임회피용일 뿐이다. KBS는 구체적 계획도 없이 노동자들에게 일단 신설자회사로 전적하라고 한다. 자회사로의 전적은 노동자들을 더욱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면서 고용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자회사 전환과 간접고용으로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는 KBS

자회사는 기존회사를 몇 개의 기업으로 나누어 운영하는 것으로 분사와 비슷한 형태다. 대부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자회사 전환이 추진된다. 경제위기나 경영적자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려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목적이다. 따라서 자회사의 노동조건은 모회사에 비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열악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KBS도 비용 절감을 통한 경영 혁신을 위해 자회사 이관을 추진하고 있다. “자회사 정규직이 되면 인사에서 승진이 가능하고 현행 연봉이 보장되며 복리후생비와 성과급 혜택 등 처우가 지금보다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사탕발림과 달리 기존 자회사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KBS의 자회사인 KBS 미디어도 아웃소싱을 빙자해 해고를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신설자회사의 경우 대량 해고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막기 위해 3주 만에 만든 것이다 보니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전적 대상자들조차 신설 자회사의 상황과 노동 조건을 알지 못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자회사 전환 계획은 노동자들에게 전혀 반갑지 않다. 오히려 고용불안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몇 가지 사례는 이런 우려를 입증해준다.

① 손쉬운 설립과 폐업, 일방적인 자회사 전환
1997년 경제위기를 지나며 외주, 분사화는 일반화 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고 설립과 폐업이 손쉬운 것이 문제가 된다. SBS 미디어넷의 경우 노동자들에게 외주제작업체로 전적할 것을 강요하고 노조가 이를 거부하자 전원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그런데 이 외주제작업체라는 것은 SBS가 출자하여 만든 회사로 자체 설비나 조직을 갖추지 못한 서류상 회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2006년 KTX 여승무원들 사례도 비슷하다. 철도공사는 KTX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을 ‘한국철도유통(구 홍익회)’에서 ‘KTX관광레저(자회사)’로 강제 이관시키려 했고, 이에 여성 노동자들은 위탁철회와 직접고용을 위해 3년 가까이 투쟁을 벌여왔다. 이후 ‘KTX관광레저(코레일투어로 명칭변경)’는 독자적인 사업이 없는 부실 자회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②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1998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윤전노동자들을 분사시키며 임금을 무려 30~50% 삭감했다. 이후 그 노동자들은 1년짜리 연봉계약직으로 전환되었고 지속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자회사에서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임금삭감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③ 구조조정 정리대상 1순위
자회사의 특징 중 하나가 구조조정 계획에서 정리 1순위라는 것이다. 1997년 KT는 100% 출자로 한국통신산업개발을 만들었지만 2001년 공기업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이를 e-미래통신으로 매각했다. 당시 노조는 3년간 고용안정을 약속받고 민영화에 합의했지만 사업 일부 폐지, 용역기간 단축, 인원 감축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또 민영화된 KT와 민영화된 자회사는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되었고, KT는 자회사에 비용절감을 이유로 낮은 금액으로 계약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약속받은 3년만 보장 받고 쫓겨났다. 남아있던 정규직도 부당 해고되었다. 결국 구조조정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분사화된 자회사의 노동자들은 편리한 해고대상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현재 3년의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KBS의 약속 역시 어느 순간엔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KBS는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하지만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존 자회사들과 허겁지겁 만든 신설 자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줄 수 없다. 또 위의 사례들처럼 구조조정 하에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자회사의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언제 어떻게 잘려나갈지 모른다.
한편 자본이 임의로 핵심과 비핵심 업무를 나누어 평가하고,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하는 문제도 있다. KBS 시청자 서비스팀은 견학, 상담, 안내 등의 업무를 하는 곳으로 전원 여성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시청자 서비스팀은 원래 파견업무였으나 상시업무이기에 2006년 직접고용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비핵심 업무라며 외주화하겠다는 것이다. 핵심과 비핵심의 기준을 회사의 입맛에 따라 나누고, 특히 여성 직종을 비핵심 업무로 평가 절하하여 외주화하고 간접 고용하는 문제가 KBS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KBS도 피해갈 수 없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자회사 전환 및 외주화는 저임금의 불안정 노동을 심화시키며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KBS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회사로 이관된 후에도 안정된 일자리의 정규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이 20개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반기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계획’을 점검한 결과 올해 하반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률은 1.9%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는 비정규직법 2년 기간제한이 시행된 데 따른 부담과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방안에 따른 정원감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의 주요 내용은 공공기관 민영화, 인력과 예산 등의 경영효율화, 자회사 지분 매각, 청산이나 폐지 및 통폐합 추진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의 해고와 외주화가 심화될 것이고, 평가제도와 퇴출시스템에 따른 노동강도와 현장통제가 강화될 것이다. 또 청년인턴 채용을 자율화하고 대졸초임을 노사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삭감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런 계획 하에 정부가 예산을 통제하며 직접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나서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막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해고해서 기업을 살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수익성 논리에 따라 공공기관을 재편하겠다고 정부가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KBS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자회사 역시 어느 순간 통폐합의 도마 위에서 오를지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경영전략 속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이나 권리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KBS 계약직 노동자들이 고용을 보장받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과 불안정 노동의 확산에 맞선 투쟁이 필수적이다.

KBS 기간제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를 위하여

적게는 2년 많게는 10년 이상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들이 받아야 하는 대우는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부당해고가 아니다. 지금껏 공영방송 KBS는 일자리가 희망이라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하지만 흑자 경영을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KBS는 공영방송으로의 책무조차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비정규직악법에 동조하며 노동자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KBS는 이익집단의 행세를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해고하고, 외주화하고, 자회사로 강제 이관하는 만행을 즉각 중단하고 전원 정규직화해야 한다.
이를 촉구하기 위해 KBS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이 필요하다. KBS 계약직 노동자들은 처음 ‘기간제 사원협회’로 시작했다. 하지만 사측에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노동권을 행사할 수 없자 스스로를 조직하며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단결, 투쟁, 노동조합과 같은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지금은 해고와 고용불안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긴 싸움이 될 지라도 끝내 승리하겠다던 조합원들의 결의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현재 사측이 전적을 강요하고, 노동자들 간의 단결을 가로막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럴수록 동요하지 말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야 한다. KBS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자를 죽여 기업을 살리려고 하는 이명박 정권과 자본의 총공세에 맞선 싸움의 일부이다. 해고와 노동권 박탈에 맞선 투쟁에 함께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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