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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11-12. 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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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중도실용주의의 본질

반이명박 민주대연합 누가 왜 추진하는가

구준모 | 정책위원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 상승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이후 최근까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정운찬 총리 임명 및 ‘친서민’ 행보가 부각되면서 일부 여론조사(9월 12-13일 한길 리서치 조사 등)에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50%를 넘었다. 10월 여론조사에서는 기관 간에 다소 편차가 있으나 9월보다 약간 하락하거나 유사한 수준에서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10%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명박 후보의 대선 득표율이 48.7%였고, 취임 직후의 가장 높은 지지도가 50% 중반 정도였음을 기억한다면 집권 2년차 하반기에 반등한 지지도가 상당기간 유지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 상승의 원인은 무엇일까. 강조점에 차이가 있지만 부동산 가격 및 주가의 상승으로 나타난 지표상의 경기회복과 이른바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자기 자산 가격의 상승을 희망하며 그에게 한 표를 던졌다. 따라서 중도실용과 유능한 CEO 대통령을 표방한 그에게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 약속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에 예상치 못한 광우병 촛불집회와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해 그러한 약속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거대한 대중운동으로 나타난 민심이반 때문에 집권초기에 누릴 수 있는 지지와 그에 따른 권능을 많은 부분 활용하기 어려웠다. 촛불집회의 여진이 사라질 때쯤에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파고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중간 자산계층 및 중도세력의 지지 획득을 핵심 목표로 추구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수구보수세력의 결집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강경한 대북정책과 사회운동 및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주요 이슈로 활용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30% 수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한국경제의 반등이 가시화되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고환율로 인한 무역흑자, 외국인 투자자의 귀환, 저금리 및 풍부한 유동성이 자산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경제적인 호조건에 더해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약속했던 친서민 중도실용 행보를 전면에 내세우고, 상징적으로 정운찬을 총리로 영입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이미지에 덧씌워진 때는 한 꺼풀 더 벗겨졌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이러한 지지는 공고한 것인가? 정권의 성격변화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의 성격과 효과 문제. 둘째 한국경제의 전망에 관한 문제.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이 존재하느냐는 문제. 과연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또는 새로운 정당이 유의미한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이명박 민주대연합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유일한 대안인가. 각각을 살펴보자.

중도실용과 서민정책의 실체

이명박 정부가 서민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미소재단을 통한 마이크로 크레디트, 보금자리 주택, 등록금 후불제가 대표적이다. 이 정책이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의 기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 서민정책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대부분의 비판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듯이 22조 원이 투여되는 4대강 정비 사업, 부자감세, 부동산 경기 부양, 공기업 구조조정 추진 등 그동안 비판 받았던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더군다나 자본시장통합법, 보험업법, 지주회사법의 개정 등을 통해 금융과 재벌 중심으로 한국경제를 성장시키고,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는 흔들림 없이 추진될 계획이다. 따라서 일부 계층에 대한 몇 가지 지원 정책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가 변화했다고 보기는 도저히 어렵다.
그렇다면 서민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운동진영 일각은 이명박 정부의 서민행보를 대중운동의 압력에 의한 불가피한 유화조치라고 본다. 혼란스럽고 자의적인 해석이다. 이명박 정부는 각종 단체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금속노조 붕괴 공작, 공무원노조 불법화에서 드러나듯이 운동진영을 구시대 이익집단으로 매도하고 탄압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용산참사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운동에 대한 유화조치는 없다. 친서민행보의 본격화에는 광우병 촛불집회 1주년이 조용히 지나면서 대중적 저항의 부활에 대한 우려가 진정된 점,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려고 한 점, 일정한 지지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경제지표가 호전되어 정책추진의 기반이 마련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조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정권의 기반을 안정화하고 지지를 늘리기 위해 몇 가지 정책을 부각시켜 ‘정치상품’으로 기획했다. 중도실용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원래 기조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좀 더 근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정책들은 신자유주의 정부의 불가피한 보완물이다.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은 그 성격을 따지자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인민주의 정권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활용한 ‘목표수혜’(target benefit) 정책과 유사하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빈곤과 배제가 확산된다. 특수한 계층에 집중되는 이러한 빈곤과 배제의 문제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 정권의 지지를 획득할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목표수혜 정책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조차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정치적 안전성을 위해 빈곤감축정책을 제안한다. 빈민에 대한 원조는 재정균형을 위협하지 않는 작은 비용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으로 간주된다. 특히 국가기구의 제도적 매개를 활용하지 않고 대신 부자와 빈자의 자발적 연대를 강조한다. 또 참여와 자기원조라는 수사를 통해 지원의 조건으로서 빈민층의 적극적인 노력이 강조된다. 이명박 정부가 금융권과 재벌로부터 각각 1조 원씩을 조달해 2조 원 규모로 만들겠다는 미소재단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목표수혜 정책은 자신의 잠재적인 지지층이 될 수 있는 계층의 불만을 다스리고 경제적인 이해를 만족시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중 주택가격의 50~70% 수준에서 제공되는 보금자리 주택은 수도권에서 주택을 구하기 힘들지만 일정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보금자리 주택 공급이라는 명분으로 그린벨트가 해제되어 부동산 투기가 조장되는 등 부동산 거품 확산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등록금 후불제 역시 교육의 시장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높은 등록금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불만을 가진 가계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보편주의적 수사인 ‘서민’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회의 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특수한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신자유주의를 지속적으로 관철시키는 속에서 위기를 관리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완 정책은 계속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이 이명박 정부가 목표한 바를 달성할 수 있을지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경제위기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한국경제의 중장기 항로

이명박 정부의 단편적인 정책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이 정부가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항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려고 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전에 한국경제 앞에 놓인 조건을 간략하게 가늠해보자.
최근의 한국경제의 회복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완화에 따라 신흥시장으로의 투자가 재개된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한국은 고환율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출 감소가 적었고 수입의 더 많은 축소로 인해 불황형 흑자를 기록하면서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보자면 최근의 반등세는 신흥시장의 거품에 힘입은 바가 크고, 향후 세계적인 수준에서 은행위기와 달러위기의 가능성이 상존해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오히려 현재의 회복을 떠받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천문학적인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잠재된 위기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세계경제의 일부인 한국경제 역시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내적으로 고용부진이 장기화되고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도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업률은 크게 오르지 않고 있지만 구직단념자 등 비경제활동인구의 숫자가 매월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취업자 수가 계속 줄어 작년 대비 1분기에 14만 개, 2분기에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줄었다. 특히 경기침체가 내수부문에 집중되어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이 부문 실업률이 7%를 돌파했다. 물론 대기업 부도가 발생하지 않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인해 고용사정이 단기간에 크게 악화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호적인 대외조건으로 V자 형으로 회복한 외환위기 이후와는 달리 현재는 경기회복력이 미미해서 내년 성장률이 3%대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고용창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편 올해 노동자 임금인상이 제한되어서 임금이 명목기준으로 2008년보다 감소했고, 실질소득도 감소했다. 결국 고용부진의 장기화와 실질소득 감소로 민간소비의 부진이 계속되고 민중의 생활고도 가중될 것이다. 고환율과 저유가 등 한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교역조건의 변화도 예상된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국제 경제질서 재편 과정에 깊숙이 참가하고 그 속에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한국경제의 미래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시아의 역할을 핵심적인 것으로 본다.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아시아는 이미 세계 산출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그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엄청난 양의 외환을 달러 환류의 형태로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의 비중이 줄고 미국에 우호적인 아시아태평양권 국가가 대거 포함된 G20이 G8을 대체하고, 미중전략경제대화(G2)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미국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세계 패권으로서의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핵심 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내부의 경제 협력을 막고, 대신 미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를 건설하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이러한 세계 경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맡고 있는 역할은 신흥국의 위치에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의 배격과 자유무역의 원칙을 강조했고, 도하라운드가 조속히 재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자랑한 내년 G20 정상회의 한국 개최는 이러한 충견계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이라는 상황에서 다시 미국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수행해서 수혜를 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중장기 전망에 대한 토론과 판단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민중운동의 입장이 없다면 단기적인 경제상황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 변화에 민중운동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토론은 당연히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구조적 위치와 신자유주의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한다.

반이명박연합, 누가 왜 추진하는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반사이익을 누리고자 한 민주당 등 전 집권세력과 이에 편승하여 운동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 일부 민중운동은 이명박 정부 정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양자는 반이명박이라는 틀 속에서 이명박 정부와의 대당을 통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지를 구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낮은 지지도와 민중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 및 대중운동의 사기저하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실에서 반이명박연합이 드러나는 방식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전 집권세력은 이명박 정부를 반민주 보수세력, 더 심하게는 독재나 파시즘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행보를 본격화하자 이들은 상당한 자기 혼란에 빠진 듯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의 아프간 파병 방침이 발표된 후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노무현 정부 시절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군 파병이 이뤄졌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나 등록금 후불제처럼 시민단체나 운동진영에서 제기한 정책의 일부를 수용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은 가짜 서민정책이고 자신들이 진짜 서민의 대변자임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이런 구도에는 진보정당도 동참하고 있다. 원조 민생정당임을 내세우는 진보신당은 신종플루 특진비 폐지, 은행 휴일연체료 환수, 통신비 인하 운동에 나서면서 그 활동이 민생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서민’, ‘민생’ 정치의 핵심에는 바로 ‘유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만족시켜주겠다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하겠다,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숨겨진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야말로 이명박 정부가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가장 잘 조직해온 것이 아닌가. (심지어 차기 대권의 가장 강력한 후보자인 박근혜는 국민이 행복한 정치를 모토로 삼고 있다. 한층 노골적이고 강력한 민생정치의 판본이다.) 일부 운동세력은 진짜 민생정치 담론이 이명박 정부식 민생정치의 실상을 드러내고, 재벌과 보수세력의 기득권 등 한국 사회에 내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짜 민생정치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 속에서 실제 한국사회를 주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문제는 총체적인 정치적 전략으로 다뤄지지 않고 단편적인 정책대안으로 격하된다.
반이명박연합의 또 다른 형태는 대중적인 저항이 조직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민주당을 활용하자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수세적 태도는 이른바 MB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대국회 투쟁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광우병 촛불집회의 열기가 사그라진 후에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막는 길은 국회에서 민주당을 활용해서 각종 악법의 통과를 저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했던 세력이 민생민주국민회의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실상 한미FTA, 금융자유화, 복지 정책 등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집권세력에서 의석이 많지 않은 야당으로 추락한 자신의 지위 때문에 국회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맺고 있는 대립과 충돌이 격렬해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권력을 둘러싼 당파적 마찰일 뿐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세력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작은 차이, 큰 대결’을 할 수밖에 없다. 그 활동을 통해 ‘민주화 세력’으로서의 자신의 추락한 위신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 민주당에게, 시민단체와 일부 민중운동의 외곽 지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에게 이들이 필요치 않거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민주당은 연대는 물론이고 관련성을 ‘부담없이’ 부정할 것이다.) 반면 이 과정에 동참하는 진보정당은 국회에서 민주당에 비해 조금 더 급진적인 주장이나 투쟁을 하는 세력 정도로 비친다. 결국 민주당 2중대라는 비난을 다시 자초한다.
반이명박연합의 마지막 형태는 ‘민주대연합’으로 제기되는 선거연합이다. 특히 과거 민주화 운동의 명망가나 시민단체 인사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담론화하고 있다.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단체 어느 세력도 한국의 개혁진보 진영을 대표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판짜기가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이 주장이 등장한 배경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특수를 누린 시민단체의 사면초가 상황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집행자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지난 집권세력과 동일하지만 정치 스타일의 측면에서 인민주의적 요소보다는 억압적인 보수주의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단체 및 노동조합의 기득권에 대한 공격과 억압, 반대세력에 대한 강력한 탄압과 도덕적 비난을 통해서 정권에 대한 지지를 공고히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를 추구하기보다는 억압적 국가기구를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권의 각종 위원회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던 시민단체의 주요 활동 경로가 대부분 차단되었다. 대중적 토대 없이 협력적 정권과 언론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던 집단에게 이러한 상황은 재앙에 가깝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정권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진보정당의 일부 인사들도 이러한 흐름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집권정당, 통치정당 모델로 설정하면 계급적 기반이나 사회운동보다는 유연한 선거연합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그들 스스로가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의 입지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거연합이 전면적인 수준에서 가시화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민주대연합으로 제기되는 외풍에 대해서 단호한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계급적 기반인 노동자운동과 민중운동의 독자성 확보를 경시한다면 토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는 반이명박연합의 근저에는 억압적인 보수정권이 등장한 상황에서 과거 집권세력이나 시민단체와의 상층 연대를 통해 활동공간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다. 그러나 만족될 수 없는 기대 속에서 민중운동의 주체적 투쟁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상대화되고 있다. 10ㆍ28 재보선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전선은 민주당과 그 주변세력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고 있다. 한국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통한 심판은 당선 가능한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곤 한다. 따라서 될 사람을 찍자는 ‘비판적 지지’(사실상 무조건 지지) 논리가 재현되면서 반이명박연합은 사실상 민주당에 대한 지원군이 된다. 민주당은 이러한 구도 속에서 민주, 평화 세력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고 정권 탈환을 노리고 있다.

민중운동의 과제

그렇다면 민중운동은 어떻게 이러한 함정을 벗어날 수 있나? 서민정책, 민생정치는 진보정당의 이념적 지향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반이명박연합을 명분으로 하는 선거공학에 몰두해서는 이른바 캐스팅보트의 역할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중운동은 노동자운동의 재건, 민중운동 간 연대활동의 강화, 진보정당의 사회운동적 성격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 파업에 대한 탄압과 구속에 이어서 금속노조 탈퇴 공작으로 민주노총의 핵심조직을 제거하려고 한다. 또한 공무원노조 불법화, 공기업노조에 대한 통제와 엄격한 법적용으로 노동조합 조직과 활동 전반을 옥죄고 있다. 올 하반기 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시행이 예정되어 있는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의 경우에도 교섭창구단일화나 유급근로면제 제도를 도입해서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키고 일상활동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노동조합 전반에 대한 이명박 정부와 자본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 투쟁하지 못할 경우 민중운동의 가장 중요한 대중적 토대가 무너질 것이다. 한국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이념과 목표를 분명히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단결을 꾀하고,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등 당면 공세에 대한 대응 외에도 민주노조운동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민중연대의 해소와 한국진보연대의 출범, 진보정당의 분화, 반이명박연합이라는 교란요인으로 인해서 흐트러졌던 민중운동 간 연대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민중운동의 일각은 시민단체와의 연대 강화를 투쟁의 출구로 삼았다. 민생민주국민회의 활동이 그러한 시도를 대표했다. 하지만 대중운동에 기반을 두지 않고 상층정책 연대에 매몰되었고, 반이명박이라는 구호나 민주/반민주, 민생/반민생이라는 퇴행적 구도 속에서 무엇을 목표로 투쟁하는지가 모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민주노총과 전농 등 대중단체를 중심으로 민중운동 단위가 모인 <이명박 심판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공동투쟁본부>는 민중운동 간 연대의 기풍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조 탄압 및 노동법 개악, 아프간 파병, G20 정상회담 등 산적한 과제에 대해서 민중운동이 단호한 대중투쟁을 일궈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정당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활동의 일부이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계급적 토대와 이념적 지향을 상실하고 매년 반복되는 선거일정에 쫓기고 선거공학에 매몰되어 민주당 등과의 연합에 힘을 소진한다면 진보정당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진보정당이 사회적 저항의 조직화보다는 집권을 중단기 목표로 삼는다면 이러한 경향은 강화될 것이다. 또한 복수의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운동 속에서 협력하기보다는 반목하고,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언론 노출을 강조할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일례로 몇년 전 진보정당은 공히 악화되고 확산되는 비정규직 문제에 주력할 것을 약속했지만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 속에서 그 문제를 위해 활발히 활동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중적인 투쟁이 활성화되고 확산될 때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 상승도 동반된다는 상식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보론] 10ㆍ28 재보선 결과와 반이명박연합

10ㆍ28 재보선 결과 민주당이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3석을 얻고 한나라당이 강릉과 양산에서 2석을 얻었다. 한나라당이 우세하던 수원 장안에서 8,000여 표차로 패하고, 전통적 강세 지역인 양산에서 지지율 4.0%p 차로 근근이 승리하는 등 그 내용은 한나라당에게 더욱 나쁘다. 따라서 민주당의 승리이자 한나라당의 완패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한나라당이 완패한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꼽힌다. 첫째 재보선 자체가 정권에 대한 견제심리와 불만이 응축되어 여당이 매우 불리하다. DJP 공조로 선거를 치른 1998년 3월 재보선 이후에 집권당이 재보선에서 이긴 사례는 없으며, 2003년 이후 이번 선거 전까지 실시된 재보선 27곳에서 여당이 단 1곳에서도 당선되지 못했다. 둘째, 한나라당 내의 역학관계가 작용하면서 박근혜 의원이 선거운동을 돕지 않았고 세종시 발언 등으로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미쳤다. 셋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한나라당의 지지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나마도 기반이 공고한 것이 아니었다. 친서민정책은 선전과 이미지 형성의 효과는 있었으나 실제로 국민들에게 체감되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의 친서민정책들이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82.3%가 “별 도움이 안 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넷째, 세종시 논란, 노조전임자금지/복수노조허용으로 인한 노동계와의 갈등, 김제동 및 손석희 씨의 방송 하차 등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독단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되는 시점이어서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의 지원을 받으며 안산 상록을에 무소속 출마한 임종인 후보는 15.6%의 득표를 얻었다. 반면 당선된 민주당 김영환 후보는 41.17%를 얻었다. 임종인 후보가 선거기간 중 20% 중반의 지지를 얻었고 김영환 후보가 이보다 약간 앞서는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부동층의 상당수가 김영환 후보에게 투표했고 임종인 후보 지지층의 일부도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여 김영환 후보에게 투표했음을 알 수 있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선거 결과보다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추진 과정에서 드러났던 문제가 더 크게 평가되고 있다. 애초 이 지역에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이 일찌감치 임종인 후보 지지를 밝히고, 반이명박 단일후보를 위해 민주당이 공천을 하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민주당 후보가 결정된 후에도 단일화를 먼저 제안한 쪽은 임종인 후보 측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협상에 미온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합의에 도달한 후에는 임종인 후보가 합의 사실을 먼저 밝혔다는 이유로 민주당이 합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막판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단일화에 발 벗고 나섰다. 그는 “민주당이 안산에서 임종인 후보로의 단일화를 받아들이면, 전국적 범위의 반MB연대 실현을 위해 민주노동당 후보 출마 지역에서 과감하게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고 밝히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단일화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안산 상록을의 사례에서 선거를 목적으로 한 반이명박연합의 실체를 몇 가지 평가해 볼 수 있다. 첫째, 당선가능 여부를 일차적 잣대로 삼는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지분은 크지 않다. 안산 상록을에서 민주당이 단일화에 미온적이었고 결국 거부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독자적으로 당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도 진보정당은 스타급 정치인 출마가 확실시되는 수도권 광역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울산 등 경남 산업지대 몇 군데를 제외하면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이 선거연합을 위해 양보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둘째, 반이명박 선거연합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시민단체 일각의 주문은 그 실행 경로가 모호하다. 시민단체의 내년 지방선거 개입을 목적으로 최근 출범한 ‘희망과 대안’의 경우도 민주당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다. 하승창 희망과 대안 상임운영위원은 “(민주당) 후보가 버텨버리면 우리는 운신의 폭이 좁다”며 후보단일화를 위한 중재나 압력의 수단이 마땅치 않음을 고백했다(프레시안, 10/29). 셋째, 독자적인 정치 활동보다는 반이명박연합에 힘을 쏟은 진보정당이 얻은 것이 거의 없다.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훼손당하고 내부 논란이 야기될 위험이 예상되는 데도 임종인 후보로의 단일화를 위해서 다른 곳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얻은 것이 없었다. 이에 정성희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은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깨졌고 진보대연합의 절박성을 느끼게 해줬다”고 평가했고, 심상정 진보신당 전대표도 “진보진영의 연대와 단결을 중심으로 반MB대안을 결집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레디앙, 10/29). 따라서 작은 성과가 있다면 민주당과의 반이명박 선거연합보다는 진보진영의 단결을 우선순위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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