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현황 진단과 혁신과제
경제위기와 노조무력화 시도에 맞서 총노동전선 구축과 민주노총 전면 혁신을 기치로 단결하자
현재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좌우 스펙트럼을 넘어 전체 민중운동진영이 절박하게 공유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위기를 나타내는 여러 지표나 징후가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 투쟁역량의 위축, 사회적 영향력의 감소가 대표적 사례다. 민주노총이 처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계급성 또는 계급적 대표성의 위기로 집약된다. 즉 노동조합 활동이 협소한 의미에서 조합원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그치고 있거나 그마저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의 권리를 대변하거나 노동자 대중을 조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위기의 효과는 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한다. 정권과 자본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의 이기주의가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한다며 맹공을 펼치고, 이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노동자 대중조차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의 벽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혁신논의만 해도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2000년 10월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대표: 민주노총 2기 보궐 단병호 위원장), 2005년 9월 조직혁신위원회(대표: 민주노총 4기 강승규 수석부위원장)가 구성되었고, 실태조사와 설문조사, 수차례의 워크숍과 토론회, 수개월의 전국순회토론회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2000년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보고서는 2000년대 노동운동의 전략 좌표와 조직문화 개선 중심으로 7대 전략을 제시했지만, 일부 활동가들은 ‘단병호 위원장 재집권 프로젝트’라는 식으로 인식하여 보이콧했고, 조직적인 논란과 갈등으로 인해 의결단위에 공식 사업계획을 제출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되었다. 또한 2005년 조직혁신위원회 보고서는 산별노조 건설과 지도집행력 강화 중심으로 6대 혁신과제를 제출했지만, 9월 대의원대회에서 산별건설 특위와 결의문을 채택하고 조직혁신위를 계속 가동하기로 하였으나, 조직혁신위원장이었던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고 이수호 집행부가 중도하차함에 따라 중도반단 되었다. 그리고 최근 민주노총의 임원 성폭력 사건으로 이석행 집행부가 중도하차하고 비상대책위원회(임성규 위원장)가 주도하여 2009년 3월 민주노총 혁신대토론회 개최 이후 4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09년 노동운동혁신위원회(대표: 민주노총 5기 보궐 임성규 위원장)를 구성하여 혁신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 정기대의원대회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렇듯 민주노총의 내적인 혁신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 정리해고 강행,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통해 금속과 공공 등 대기업 노동조합의 투쟁 예봉을 꺾고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도입,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골자로 하는 노조법 개악을 통해 민주노조운동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조직하지 못한 채 계속 힘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리더십과 사회적 위상은 더욱 크게 흔들리고 있다.
2010년 초에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열릴 예정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는 계급적 단결을 복원하기 위한 중장기적 전망과 사업계획을 입안, 집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민주노총의 모든 공식조직과 비공식조직(정파) 간 토론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권과 자본의 복수노조 도입, 전임자임금지급금지 등 공세에 맞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노동권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총노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필사의 각오를 세워야 한다. 민주노총 선거는 이러한 역사적으로 엄중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상호비난이 아닌 명확한 평가와 비판, 단결과 연대의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현황 진단 및 평가
총평
민주노총의 건설 과정은 정권과 자본의 무단적 탄압으로 1987년 이후로 노동자 투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전노협이 약화된 조건에서 합법화된 업종회의와 제조업 대공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전노협의 전투적이며 연대지향적인 지역 중심의 운동 구조를 약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제도적인 교섭’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업종별 연맹체계를 중심으로 출범하였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당선된 1기 권영길-권영목 집행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을 표방했다. 사회변혁적 지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개혁적 노선으로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은 현재까지 민주노조운동의 핵심 전략인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리고 사회적 대화(노사정협의회)를 통한 제도화’라는 화두를 제기했다. 1997년 IMF 이후 배석범 직무대행(당시 민주노총은 권영길 위원장의 대선후보 출마로 인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었다)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근로자파견제, 정리해고제를 포함한 ‘사회협약’에 조인한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광범위한 반발로 사퇴했다.
이후 2기 이갑용-고영주 집행부, 2기 보궐 단병호-이수호 집행부, 3기 단병호-이홍우 집행부로 이어지며 소위 현장파 혹은 중앙파 집행부가 집권했으나 큰 틀에서는 민주노총 1기 집행부의 기조가 관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성격(진보정당, 계급정당)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으나 계급정당, 계급적 변혁적 산별노조(혹은 투쟁하는 산별노조)를 제기한 좌파세력들은 자신의 입장에 근거한 일관된 실천전략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했다. 2기, 3기 집행부는 1기 집행부를 포함한 민주노총의 주류 세력의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대한 비판과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강조하며 당선되었으나 민주노총 내부의 세력관계, 주체적 역량, 지도력의 문제로 인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와 탈퇴의 반복하고, 총파업 투쟁에서 계속 동요하면서 지도집행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로서 1기 집행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을 계승하는 4기 이수호-이석행 집행부, 4기 보궐 조준호-김태일 집행부, 5기 이석행-이용식 집행부가 당선되었다. 이 기간 동안인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 의원을 배출하면서 외형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하였으나 2007년 대선투쟁의 패배와 당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리되며 노동자 정치세력화 전략이 심각한 위기 처했다. 또한 주요 전략이었던 산별노조 건설이 정체, 후퇴상황에 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나 4기 이수호-이석행 집행부 시기에는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둘러싼 조직 갈등이 소위 강경파의 대의원대회 단상점거라는 극단적 형태로 폭발하였고, 핵심 임원인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 5기 이석행-이용식 집행부도 핵심 임원의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중도하차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위기, 투쟁동력의 소실, 주요한 전략으로서 산별노조 건설노선의 심각한 위기, 정치세력화 노선의 실패로 표출되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으며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과 공기업 대사업장은 조합주의와 자기방어적인 실리주의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① 노사협조주의적인 제도화 전략과 현장의 조합주의, 실리주의의 강화
노동자의 권리를 획득하고 사회구조를 변혁하기 위한 무기로서 노동조합운동에서 ‘운동(투쟁)과 제도화’, ‘계급적 단결과 권익’이 함께 결합되지 못할 때는 언제나 파괴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권리를 제도화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제도화의 과정이 노동조합의 역동성과 투쟁력을 축소시키는 과정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스스로 발밑을 허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권익’으로 표현되는 고용, 임금, 복지를 쟁취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일부만의 실리로 귀결되어 계급적 단결을 약화시킨다면 이 역시 비극적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지난 민주노총의 역사는 이를 실증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자본주의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민주노총의 주류 세력들은 운동(투쟁)과 계급적 단결을 확대, 강화하는 것은 도외시하였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를 통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등을 포함한 사회협약에 조인한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민주노총 내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들의 집권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계기로 하여 노동자들의 투쟁과 단결, 연대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보다는 정권, 자본과의 일정한 협력과 타협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획득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이 ‘진보정당을 통한 의회진출과 제도화’, ‘산별노조를 통한 교섭의 제도화’, ‘사회적 교섭과 노사협조주의’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고, 현장의 투쟁력과 역동성을 조직하기보다는 ‘사회적 교섭 틀’의 구성과 선거에서의 득표에만 집착해왔다. 이러한 전략은 자신의 주관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구조의 금융투기화와 노동유연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인 정권의 하위 파트너로 스스로 기능하였고,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권과 자본의 전략에 무기력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증폭하고 패배주의를 확산시켜왔다. 이러한 민주노총 활동의 지난 10여 년 간의 누적효과가 민주노총, 노동조합으로 단결과 집단적 해결의 전망을 갖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의 이해만을 사고하거나 나만의 실리에 집착하는 경향을 확대시켜온 것이다.
② 산별노조운동의 위기
민주노총은 산하 조합원의 3/4 이상이 산별노조 소속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의 목표로 제기해왔던 산별중앙교섭의 제도화, 기업을 넘어 산업 차원의 단결의 강화,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의 강화라는 과제들이 모두 난관에 봉착해 있다. 오히려 산별연맹 시절보다 현장의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실리적, 도구적 인식이 확대되었다. 또한 산별노조의 건설과정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켰으며, 총연맹 지역본부의 산별노조 지역본부와 지부에 대한 관장력이 현격히 약화되었다.
산별노조의 핵심전략으로 채택해왔던 중앙교섭의 경우, 특별법에 의해 노동3권을 심각히 제약당하고 있는 전교조, 공무원노조를 논외로 하더라도 주요 산별노조 모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2006년 주요 대공장 사업장이 산별로 전환하면서 15만 금속노조를 출범했으나 현대, 기아, 대우 등 완성차 사용자측의 완강한 거부와 대기업 기업지부의 단위사업장 중심의 교섭구조 유지 입장으로 인해 사실상 중앙교섭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구 금속노조 시절의 지역지부 집단교섭도 무력화되어 가고 있다. 공공노조의 경우도 공공기관(전국네트워크 사업장)의 대정부 교섭이 관건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교섭거부라는 장벽에 막혀 공동투쟁을 통한 돌파가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한편 노무현 정부 내부 노동계 출신 인사의 일정한 지원과 협력 하에서 병원사용자협의와의 산별교섭과 협약체결을 진행해왔던 보건의료노조도 최근 병원사용자협의의 해산으로 인해 산별교섭이 무력화될 상황에 처해 있다.
또한 산별노조 조직체계 문제에 관련해서도 심각한 내부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2009년 9월까지 기업지부를 지역지부로 전환하기로 하였으나, 완성차를 중심으로 한 기업지부의 반발로 인해 전환이 2년 유예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미조직노동자 조직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1사 1조직’사업은 전조직적으로 결의되었고 80개 사업장(35%)에서 규약 변경을 시행하였으나 현대차지부의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로 인해 조직적 확산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타타대우상용차의 경우 규약 변경과 320명의 조직화에 이어 매년 10%의 단계적 정규직화, 성과급 동등적용, 노조활동 보장 등 차별을 축소해 나가고 있고 캐피코, 동원금속에서는 식당, 경비, 청소노동자의 조직화와 단계적 정규직화가 실현되는 소중한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아차지부의 경우 ‘1사 1조직’ 규약 변경을 통해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과 단결을 확대하기보다는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와 투쟁이 억압되는 방식으로 통합이 진행되면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2006년 공공운수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과도적 조직으로 출범한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경우에는 공공노조가 2008년 9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양 산업노조 합병을 통한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결의했으나, 2009년 운수노조의 대의원대회에서 통합산별노조 추진방침이 또 다시 성원 부족으로 유예되면서 난항에 처해 있다. 이런 조건에서 과도조직으로서 공공노조도 공공기관(전국단위 기업지부), 단위 기업지부, 초업종지역지부 간의 조건과 입장의 차이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업별 노조를 넘어 초기업적 단결을 형성하고, 공동투쟁으로 노동자간 격차를 축소하자는 산별노조 건설의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재 산별노조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산별노조를 혁신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표를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그 동안 산별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 첫째로는 한국사회의 구조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독일, 스웨덴과 같은 중북부 유럽국가의 산별노조를 이상적 모델로 산별건설을 추진해온 점이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들 나라와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독일은 1차 대전 후 혁명적 정세에서 산별노조가 계급타협을 추구하면서 산별교섭을 인정받았고, 산업자본이 은행지배를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통합하여 동종 업종 자본가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통일되었으며, 역사적인 코포라티즘 체제가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조건을 가진 영국이나 미국, 일본, 중부 유럽(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방식의 노조운동 형태가 발전해왔다. 한국의 경우는 자본의 조직방식으로는 일본과 유사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노조운동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재벌기업간, 원하청간에 격차가 유지되는 기업별 노조가 고착될 우려가 크다. 이를 역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안, 즉 원청(재벌)-하청,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과 공동투쟁을 통한 격차 축소가 관건이다. 둘째로는 ‘산별완성’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조직형식적인 산별건설에 대해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소위 ‘묻지마 산별’,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적인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그 동안 산별노조 건설과정은 특정한 모델과 교섭구조를 창출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를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합의와 현장 조합원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은 채 일정을 박아 놓고 조직건설을 밀어붙이는 식으로 추진되었다. 이런 조직형식적인 산별건설 과정은 ‘기업지부’를 해소하면 ‘기업별 의식’이 극복할 수 있다는 사고로 극단화되었다. 따라서 산별노조의 조직화도 산별노조가 건설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왜곡 선전되거나, 단순히 ‘조직이 커지면 자기 사업장의 투쟁에도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실리주의적으로 추진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산별노조가 형식적으로 건설되어도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교섭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투쟁력과 역동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상식이 무시되었다. 따라서 그 동안 특정한 모델을 이상화한 조직형식적인 ‘산별완성’을 넘어서 조합원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기 위한 산별노조 혁신과 강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인 산업 구조, 정권과 자본의 정책, 조합원의 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조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산업, 업종 차원의 공동투쟁, 원청-하청 간 공동투쟁, 정규직-비정규직 간 공동투쟁을 형성하고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가장 관건적이다.
③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
민주노총은 1996년 말 총파업 투쟁의 패배가 의회 내에서 노동자를 지지, 지원하는 정치세력의 결여로 인해 발생했다고 평가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일환으로 합법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했다. 민주노총은 1997년 ‘국민승리21’을 결성하고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여 대선투쟁을 전개했다. 1998년 1월 ‘진보정당 추진위’가 결성되고,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했다. 이 과정에서 1998년 노동법 개정에서 정치활동금지 조항이 삭제된 것도 중요한 정치적 계기로 작동했다. 민주노동당은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시행 이후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2명, 지역구 광역의원 2명을 당선시키며,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지지율 8.1%를 확보하며 국고보조금을 확보함과 동시에 제3당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또한 2004년 총선에서 정당지지율 13%를 확보하여 지역구 2명, 비례대표 8명을 당선시키며 국고보조금 확보와 함께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낳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외형적 성공의 이면에는 지역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소위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 갈등이 당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로 형성되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과 대중운동의 혁신, 정치적 재조직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 획득(세액공제, 득표)에 주로 의존했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10명이 의회에 진출한 이후 모든 관심이 원내로 쏠리는 가운데 ‘의회주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당의 인력과 재정의 배치가 의정지원 쪽에 심하게 쏠려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고 대중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면서 ‘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사당화(私黨化) 경향이 강화되었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역구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파 간 경쟁구조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문제점은 2007년 권영길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과정과 11월 중앙위에서 당내 다수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6표제 비례대표제 선거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사건을 계기로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참담한 패배 이후,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을 중심으로 한 당내 논쟁과 갈등이 폭발되었다. 2008년 1월 중앙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하였으나 2월 3일 임시당대회에서 상당한 갈등과 논란 끝에 이른바 ‘일심회’ 관계자 제명 건이 부결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심상정 비대위’가 총사퇴하고 민주노총 전현직 임원 45명이 탈당선언을 하면서 탈당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이는 배타적 지지단체인 민주노총으로까지 이어져 조합원들의 탈당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은 2개의 정당으로 분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의 분당 과정에서 민주노총 이석행 지도부의 모습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에 대한 반성과 노동자운동의 단결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기에 급급했다. 이미 분당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통일단결’을 주장하면서도 “분당 추진한 사람부터 솎아내야”한다거나 “진보신당과 연대할 생각이 없다” 등 갈등을 부추기는 태도와 발언들이 이어졌고 일부지역에서 진보신당을 표적으로 한 공천도 강행했다. 대규모 탈당사태에 맞서 “총선시기 평생당원 1천명, 당원 1만 명 조직하겠다”며 민주노동당 평생당원 모집, 사업장 차원의 집단 당원 가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패권적인 방침에 대한 조합원들은 반응은 싸늘했다. 민주노총 차원의 총선투쟁기금 모금액은 3,200여만 원에 불과했다. 2008년 총선 결과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3석(5.6% 득표)을 합쳐 5석을 확보하여 2004년 총선에 비해 의석이 반으로 줄어 독자적 입법발의권이 없어졌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양당 모두 기존 민주노동당의 부정적 경향이 확대되었다. 각 지역 차원에서 분당으로 인한 활동가들의 분리와 이탈로 인해 지역운동에 대한 진보정당의 역할은 상당히 취약해졌다. 그나마 운동역량이 상대적으로 두터운 서울지역조차도 대중동원력이 눈에 보이게 취약해지면서 지역 차원에서도 선거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위상이 약화되면서 한편으로는 정치노선에 입각한 진보정당의 전략적 공조보다는 야4당 공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경제위기 하에서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구조적 대안과 이념적 지향, 총노동전선을 강화하기보다는 소위 생활정치로 표현되는 득표전략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민주노총도 대중적 역량이 취약한 현실을 구실로 하여 야4당 공조를 실리주의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5기 보궐선거로 당선된 임성규 위원장은 지난 3월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민주노총 추진위원회’(통추위)를 제안하고 지난 9월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세력의 단결과 통합 촉구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러한 제안과 시도는 진보정당의 통합을 요구하는 대다수 조합원들의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낮은 지지율과 사회적 위상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이 무력화된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 논쟁을 촉발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단결과 통합을 촉구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평가에 기반을 두지 못하고 6월 지방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목적에 집착하면서 양당 간의 소모적인 정치공세와 부정적인 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을 포함한 제 정치세력과 함께 ‘선거와 득표’를 중심으로 한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세계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이념을 제시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지역적 기반의 강화, 민중연대 전선을 강화하는 ‘사회운동정당’으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혁신, 강화시키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전망을 분명히 천명해야만 단기적으로도 선거공간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제 정치세력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과 연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④ 사회적 교섭과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과 관련한 논쟁은 크게 네 국면에서 나타났다. 첫 번째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참여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노개위를 탈퇴하였으나 신한국당이 노동악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하여 1996-97년 총파업을 진행했다. 두 번째는 IMF 경제위기 직후 김대중 당선자의 제안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1998년 2.6 사회협약에 조인한다. 이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에 합의한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로 2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 배석범 직무대행이 사퇴하여, 단병호 금속노련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비상대책위가 출범했다. 단병호 위원장은 총파업을 결의하였으나 곧 총파업을 철회하였다. 세 번째는 1998년 이갑용 위원장 당시 국면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와 탈퇴를 반복했다. 5월 중앙위에서 ‘정리해고제 철폐와 재벌해체를 담은 중앙교섭 5대 요구안’을 중심으로 노정협상 요구하고, 5월 28일-29일 총파업을 진행했다. 그 후에 노정협상 진행과정에서 6월 노사정위에 참여했으나, 7월 양대노총이 정부의 일방적 금융 및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항의하여 노사정위 불참 선언을 발표했고, 7월 양대노총 위원장의 노사정위원장과의 합의에 따라 노사정위를 복귀했다. 다시 12월에는 일방적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강행과 교원노조 합법화 등 합의사항 불이행에 맞서 단식농성 돌입하고 노사정위 불참 선언을 발표하고 1999년 2월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노사정위 탈퇴를 공식 결정했다. 네 번째는 2004년 이수호 위원장 당시 사회적 교섭의 추진이다. 2005년부터 사회적 교섭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1월 20일에 열린 대의원대회는 사회적 교섭 안건에 대한 찬반토론이 격렬하게 이어지다가 무산되었다. 이어 3월 14일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는 이 안건을 놓고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고, 급기야 단상점거와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결국 민주노총은 당시 논의가 막 시작된 비정규직법안에 대해서만 정부와 협상한다는 전제를 두고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기로 한다. 다섯 번째는 2006년 조준호 위원장 당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의 9.11 야합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여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에 관한 논의를 진행한다. 그러나 2006년 9월 11일 타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노총과 경총, 노동부의 기습적인 야합이 벌어진다.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업무 유지의무 부과와 대체근로 허용이 합의된다.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하고 한국노총과 연대 중단, 총파업을 선언한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은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하였다.
그동안 역사에서 보이듯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틀’을 중심으로 한 상층의 제도화 전략은 정권과 자본이 노동유연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제로 활용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서는 서구의 코퍼러티즘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동측면에서 보완하기 위한 ‘공급중시 코퍼러티즘’으로 변모했다. 더구나 한국과 같은 반주변 국가에서는 국가가 합의를 위해 양보할 것도 별로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조 운동의 전략적 전환의 문제고, 이 노선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사정 교섭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전술의 문제다. 지난 논쟁은 노사정 교섭과 관련된 모든 쟁점을 “전부 아니면 전무”로 환원하며 논의를 지나치게 과열되게 만들었다. 일정한 정세에서는 노사정 교섭에 노동조합이 참여할 수도 있다. 혹은 교섭을 오히려 전술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반대론자 앞에서는 노사정위원회를 전술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처럼 변명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전략적인 방향이라고 주장하면서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다. 사실 민주노총의 입장은 전략적인 수준에서 노조운동의 노선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다’라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공허한 변명이었다. 논의 과열의 책임은 민주노총 집행부에 있었다. 결국 쟁점이 이렇게 형성된 탓에 노사정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아니라 특정 정세에서 필요할 수 있는 노사정교섭의 전술적 활용마저도 모두 ‘논외’가 되었다.
⑤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의 한계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의 약화와 함께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모두 비정규직 조직화를 최우선의 과제로 천명하였으나,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와 관련 제도의 개악이 시도되면서 비정규직 관련 권리와 제도는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왔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정리해고자와 근로제 파견제’ 합의라는 치명적인 오류를 필두로 하여 매 시기의 비정규직 관련 법 제도 개악국면에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권리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왔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축소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민주노총은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이기주의’라는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출되었다.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단순히 조합원의 양적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정권과 자본의 노동비용 축소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통제, 노동조합 무력화에 맞서 약화된 조직의 투쟁력과 조직력, 계급대표성을 재건하기 위한 사활적인 조직혁신 과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민주노총의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첫째, 주요 대공장의 사내하청 조직화와 투쟁의 과정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과 단결의 강화, 비정규직의 주체화의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과 갈등,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투쟁과 요구를 대리하거나 억압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이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확대된 격차, 고용불안의 공포를 배경으로 한 정규직의 이기주의, 대공장지부 집행부의 노선과 투쟁의지, 하청지회의 주요 활동가의 정치적 성향 등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대공장에서의 정규직-비정규직(원청-하청노동자)의 공동요구와 공동투쟁, 그를 통한 계급적 단결은 향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격과 전망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라는 측면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특히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방침은 조직형식적인 완성이나 조합원의 양적 확대를 넘어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과 공동투쟁, 현장의 투쟁력 강화라는 원칙적 입장에 근거해서 추진해야 한다.
둘째,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전조직적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총연맹의 지역본부, 산별노조 지역본부와 지역지부 대부분은 소속 조직에 대한 사업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며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을 제대로 전개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전조직적 차원에서 총연맹-산별-지역본부-단위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재정과 전담 조직화 담당자를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조직적 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지역의 주요 사업장이 미조직 조직화에 주체로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금속의 경우 지역, 공단에 밀집되어 있는 중소영세사업장의 조직화의 성과가 미미한데 지역지회 강화(재정, 인력 지원)와 자발적 현장진출 활동가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집중적인 조직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차원에서 제기되었으나 조직화된 비정규직들도 자신의 조합적 이해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일부 지역일반노동조합과 공공노조 지역지부에서 상대적으로 자기 사업장을 넘는 공동투쟁 기풍이 형성되어 있으나, 상당수 노조에서는 자기 사업장의 이해에 매몰되거나 대리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이것은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사업장의 규모의 영세성이나 신분적 불안정성, 장시간 근무형태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이 많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노조나 산별노조의 지역지부와 지역지회의 부족한 인력과 과다한 교섭으로 인해 일상적 교육 학습을 비롯해 조합원 의식화 사업을 진행하기에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업종이나 지역에서는 전략적으로 집단교섭을 쟁취하기 위한 조직화 방식을 취하거나, 현장에서 교섭을 소화할 수 있도록 현장 역량을 키워내야 한다. 또한 산별 지역지부의 경우 총연맹이나 산별 지역본부와 지역지부의 역량을 강화하여 교육 학습 등 조합원 의식화와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편 민주노총의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전략조직화 사업’이다. 민주노총은 2005년 전략조직화를 위해 5대 조직화 핵심영역(유통, 공공, 사내하청, 건설일용, 특수고용)을 설정하고, 50억 기금모금과 신규 조직활동가 24명 배치, 총연맹과 산별연맹의 전담부서와 인력확보, 미조직비정규특별위원회 구성을 결의했다. 전략조직화 사업은 민주노총과 노동운동 내부에서 미조직 비정규 운동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러 산별노조(연맹)와 지역본부에서 미조직 비정규 사업에 보다 많은 인적 물적 역량을 배치하고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전략조직화 사업은 50억 기금모금 중 22억 밖에 모금하지 못했던 것을 비롯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선 5대 영역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전략조직 대상 속에서 실제 전략조직화를 진행하기 위한 대상의 집중과 선택이 제대로 되지 못함으로 인해 조직화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이는 총연맹이 주관하는 전략조직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각 영역에 대한 전략 조직화 계획, 조직 활동가에 대한 점검과 훈련이 산별연맹과 각 개인에게 맡겨지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둘째, 조합원의 양적인 확장을 넘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일환이라는 전략조직화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지 못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조직화 선정과정에서부터 총연맹이 직접 주관하여 산업구조와 미조직 노동자 분포 등 객관적 조건과 함께 전략조직화를 주진하는 주체인 지역본부, 해당 산별본부ㆍ지역지부의 역량, 조직화 사업의 경험, 연대운동의 역량을 검토하고 해당 전략 조직화 사업의 구체적 목표와 계획을 명확히 했어야 했다. 산별과 지역본부의 조직 활동가 몇 명으로 한 영역에서 제대로 조직화를 진행하기 어려우며, 각 조직 활동가은 각자 영역에서의 경험과 내용을 쌓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산별 지역본부, 지역지부와 총연맹 지역본부의 조직혁신사업의 강화라는 관점을 분명히 세우고, 5개 영역 중 지역중심의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로 전략조직화의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또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지역본부의 논의로 이관될 경우 산별노조 지역본부/지역지부 간 경쟁이 과열되지 않도록 총연맹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객관적인 근거와 주체적인 역량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대상을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점검, 지원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2009년 경제위기 대응 평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2008년 하반기부터 경제위기에 접어들었으며 한국 역시 급격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의 손실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경제위기에 대한 고통분담, 노사화합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며 해고 및 계약해지, 임금동결, 조업단축과 잔업특근 축소로 임금삭감을 감행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 1만 명, 공기업 1만 9천 명 등 인력감축과 ‘기간제 사용기간 4년으로 연장, 파견대상 확대,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한 정규직 고용불안 심화’ 등 노동유연화 정책을 전면화하는 법 개악을 추진하고 최저임금조차 삭감을 시도했다. 또한 기만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을 통해 청년인턴, 해외봉사와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기간제와 단시간 노동자를 확대했다.
민주노총은 2009년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일할 권리와 노동기본권 쟁취 비상투쟁본부’를 결성하고 산별대표자회의와 지역본부장단회의를 중심으로 투쟁본부를 운영하며 3월 산별연맹 임단협 투쟁 조기돌입 선포 등 투쟁계획을 수립했다. 2009년 주요 요구로 △총고용 보장확대 및 사회안전망 강화 △반노동 반민주 반평화통일 MB정책 폐기 △신자유주의 극복대안 수립을 제출했으며,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총고용 유지 확대와 사회임금 확대, 실업 대책을 핵심 요구로 내세웠다. 하지만 2월 6일 민주노총의 핵심 임원 성폭력 사건으로 이석행 위원장이 사퇴하고, 2월 11일 임성규 공공운수연맹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 (4월 1일 대의원대회에서 임성규 비대위원장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한다.) 경제위기 대응 초기부터 민주노총의 도덕성이 심각히 훼손되어 사회적인 영향이 급격히 축소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2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용안정특별법 제정을 통한 일자리 지키기 △임금삭감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공공부문 100만 개 좋은 일자리 창출 △모든 국민에게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4대 요구를 제출하며 대정부, 대자본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은 2월 23일 한국노총과 경총, 정부와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경제위기 극복 노사민정 합의’를 추진했다. ‘노동자의 임금삭감’이라는 고통전가와 ‘기업의 고용유지’를 교환하는 내용이었다. 이 합의서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2월 25일 전경련은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모여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까지 삭감하기로 하고 기존 직원의 임원삭감을 통해 만들어진 자금으로 신규 직원이나 직원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의 핵심 투쟁동력인 금속노조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정권과 자본의 고통분담, 노사화합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는 가운데, ‘공생협약’과 정갑득 위원장의 ‘일자리나누기를 통한 노동자양보론’이 <중앙일보>를 비롯해 보수언론을 통해 보도됨에 따라 현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1월 7일 열린 금속노조 중앙위원회에서 대다수 중앙위원들과 현장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좌초되긴 하였으나, 이러한 사건은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직 내적인 갈등과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공공운수연맹 역시 2008년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통합이 좌절로 조직력이 이완된 상태였고, 주요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이 ‘공공기관 4차 선진화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다수 공공기관노조들은 자연감소(정년퇴직)와 희망퇴직, 회사간부의 구조조정을 통해 3-4년 간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현장의 긴장감이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전반이 경제위기라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적으로 투쟁태세를 거의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2009년 민주노총의 경제위기 대응은 전반적으로 무기력했으며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우선, 민주노총의 경제위기 대응 계획은 요구의 적실성을 떠나 대중투쟁 동력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투쟁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투쟁동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일방적 지침이 아니라 구체적인 산별노조, 단위사업장의 현실진단에 근거하여 어떻게 투쟁 동력을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자체가 부재했다. 그 나마 ‘총고용 보장’의 제도적 요구를 사회적으로 쟁점화할 수 있는 유력한 계기였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분쇄투쟁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날로부터 210일, 공장점거 파업을 기준으로 77일 간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한 대응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투쟁을 엄호하기 위한 자동차 범대위 구성도 당초 금속에서 4월 말에 제안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과의 사전논의와 조율과정이 길어지면서 6월 초에야 결성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투쟁의 핵심이었던 금속노조의 무기력함이다. 금속노조는 연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금속노조 사회선언’ 등을 통해 ‘모든 해고 금지, 총고용 보장’을 핵심요구로 설정했고, 금속노조 소속의 다수 구조조정 사업장이 발생했음에도 쌍용차 단위사업장만의 현안을 넘어 전국적, 사회적 쟁점화를 위한 기획, 실천을 조직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왜곡된 사회구조를 폭로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관점과 요구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금융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가 남한사회를 세계적 금융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기 위한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했다. 한국사회는 수출입 의존도가 90%가 넘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유출입에 취약한 경제이다. 따라서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을 억제하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외환거래세, 자본이득세, 각종 펀드의 산업자본 다수 지분 획득 금지 등 금융자본을 억제, 통제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적 요구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금융투기거품을 키우는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완화 정책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의 폐지,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현행의 사회구조를 변혁하지 않고는 초민족자본에 의한 부의 수탈과 초민족자본의 급속한 이탈에 따른 경제 붕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노총은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과 요구안의 구성에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민주노총은 현 경제위기를 세계적 차원의 이윤율 하락과 같은 구조적 원인에서 찾는 게 아니라 소비위축에 따른 실물경제의 위기, 즉 시장왜곡이나 분배의 실패라는 일시적 불합리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재정지원 확대 → 고용창출 → 내수확대 → 경기회생’이라는 선순환 경제구조의 수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세계적 차원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정책의 변화를 통해 경제위기가 해결 가능하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사회구조의 변혁 없이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가 가능한 것으로 호도함으로써 근본적인 대응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불철저한 인식은 민주노총의 주요 요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위해 고용안정특별법을 제안하는 데, 고용유지지원금의 확대와 해고회피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하지만 개별기업들이 이러한 유인책만으로 해고를 자제할 것이라는 기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결코 충족될 수 없다. 고용보장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해고나 계약해지 권한을 강제적으로 제약해야 한다. 이는 정책적 요구가 아니라 강력한 대중투쟁에 근거하지 않고는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 요구도 독일의 폭스바겐사의 28.5시간 도입(하루 7시간 4일)과 프랑스의 오브리법 도입(주 35시간제)의 예에서 보이듯이 결과적으로 비전형적인 실노동시간 증가와 노동자들의 단결력 약화로 귀결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나 한국사회처럼 원하청 구조가 확대된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정규직 일자리의 증가가 아니라 저비용 하청의 증가로 이어질 뿐이다. 더구나 변형시간근로제가 점점 확산되는 상황에서 법정 일일 노동시간이 아니라 주당 노동시간, 연간 노동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변형근로시간제의 도입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 밖에도 정권과 자본이 강력히 노동유연화를 관철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지원금 요구가 얼마나 현실적인가? 수천억 원의 주식배당, 이자지불을 제외하고 기업의 재투자를 위한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경제위기 하의 주식배당금, 금융소득 및 이자소득, 외환차액으로 인한 자본이전 소득 등에 대한 과세와 환수방안을 제기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사내유보금 문제는 사용내역 공개를 통해 사회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할 사항이다.) 이렇듯 민주노총의 제반 요구를 제출함에 있어서 정책이 대중투쟁을 통해 실현되었을 경우 효과를 명확히 고려하여 정확하게 설득력 있는 요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보민중진영 연대체나 자동차범대위 등 경제위기 대응에 맞서는 태세를 구축함에 있어서 반MB 전선의 기조와 현실적인 영향력을 크다는 이유로 참여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야 4당과의 공조(원내 영향력이 큰 민주당 중심)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민주노총이 반MB 전선에만 집착할 경우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핵심적인 정치적 방향을 유실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운동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 운동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파괴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위기진단과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 검토
민주노총의 위기와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은 크게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이데올로그, 현장조직을 포함한 민주노조운동 내 정치조직, 단위 현장 등 세 차원에서 각기 다른 입장과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이데올로그들 중 세계자본주의 이윤율 하락에 따른 구조적 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사회변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은 일부 소수에 그치고 있다. 대다수 입장은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변화한 시대적 조건에서 ‘87년 식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장하며, 이념적 대안으로 ‘사회민주주의, 제3의 길’(김형기, 경북대 교수), ‘유럽의 사민주의 모델’(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개방적 시장경제와 짝을 이루는 노동운동’(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투쟁 일변도가 아니라 참여 전술’(김유선), ‘최대강령적 요구방식의 전투적 노동운동 아니라 여론의 압력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성취해나가는 운동방식’(최영기)을 강조하면서 이명박 정권 하에서 실제 활용 가능성은 의심하면서도 ‘노사정 3자 기구의 활용 가능성’(김유선), ‘제도적 참여와 능동적 협력’(최영기)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현장조직을 포함한 대다수 정치조직들의 이념과 노선은 이와는 결을 달리한다. 한편 단위 현장 조합원들을 특정한 이념과 노선으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체로 현장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투쟁력, 사회적 영향력, 조직률)의 약화와 함께 노조를 통한 집단적 해결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경제위기에 따른 고용불안에 대한 공포를 배경으로 패배주의와 실리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이러한 패배주의와 실리주의의 이면에 항상적인 고용불안, 임금과 복지의 삭감, 노동조건의 하락 속에서 고통과 불만이 응축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민주노총 1기, 4기, 5기를 관통하여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국현장노동자회’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노동운동연구소, 현장조직의 입장을 중심으로 검토하도록 한다.
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
한노사연은 ‘새로운 사회협약’(고용주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단체교섭의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한다는 독일식 파트너십 모델을 주창한다. 나아가 한노사연이 제시하는 산별노조의 임금, 고용 의제도 자연스럽게 ‘유연안정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독일식 노동조합 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다. 즉 노동조합이 대량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임금삭감을 동반하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시간 계좌제(변형근로제의 완성판), 임금피크제와 같은 노동유연화를 수용하되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도록 기업과 합의를 이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쌍용차 사태를 거치면서 독일식 모델이 마치 정리해고의 대안인 것처럼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사회협약을 통해 유연안정성을 수용한다는 것은 1998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를 합의한 후 조합원으로부터 일어난 반발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공연하게 실현되기 힘들다. 한노사연 소장이었던 김금수 씨가 2003~2006년 노사정위원장을 맡으며 사회적 파트너십을 추진하였으나 사실상 중도 좌초되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고용안정과 노동유연화를 맞바꾼다는 전략이 이른바 ‘유연안정성’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노사정위원회가 민주노총이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건 간에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 노동유연화라는 정부와 기업의 전략이 관철되는 도구로 작동했다.
결국 한노사연의 노선을 따르다보면 민주당의 재집권→친노동적 정치환경 조성→제도 개선→사회적 파트너십 형성, 산별교섭력 확보, 조직화 자원 확보라는 전략이 유일한 경로가 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노사정위원회가 무력화된 상태고, 설사 민주당이 재집권하더라도 특히나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정세를 고려하면 과거 노무현정부의 경험처럼 결코 민주노총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을 펼 수 없는 상황이므로 문제해결의 경로가 소실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노사연의 대안은 매우 은폐된 형태로 노동조합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② 한국노동연구소의 한국노동의 위기와 재구성
한노연은 현재 민주노총의 위기를 민주노총 전 조직에 걸친 구조적 위기로 규정하고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 조직체계 및 조직운영, 조직민주주의 및 조직문화, 정책과 사업, 운동 주체 형성 및 재생산, 노동자 의식과 생활문화 전반의 문제로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라는 민주노총의 두 가지 핵심 전략이 좌초할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는 노동자 내부 격차의 문제,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전망을 확보하지 못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노연은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하여 ‘공공, 민간제조업 부문의 양대 부문 중심의 대산별 체제로의 편제’와 ‘산별 기초조직으로서 지역지부 편제’, ‘산별 중앙교섭’을 핵심적 과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속산별의 지역지부로의 재편이 기업지부의 반발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고, 공공운수 통합산별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지난 ‘조직형식주의’적 산별노조 건설운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현실을 고려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속, 공공 등 주요 산별노조의 중앙교섭이 사실상 불가한 조건에 처하면서 단계적, 입체적 교섭전략으로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과제와 쟁점까지 다루지 않았으나 한노연이 여기서 제시한 산별노조, 현장, 총연맹,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단과 혁신과제에서 큰 틀에서 동의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다만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큰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 관련하여 대부분의 현장조직들이 지역본부가 산별본부/지부를 관장하지 못하면서(산별노조 중심의 구조로 인해 산별노조 중앙에서 지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현실) 지역본부가 업종과 기업을 넘는 지역노동운동의 구심으로 역할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한노연은 이에 반해, 지역본부가 ‘대관(對官) 업무, 정치사업, 지역연대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적 평가를 제기하고 있다. 한노연이 제기하는 지역본부를 둘러싼 과열경쟁이나 사업의 독점 문제는 지역본부를 운영하는 집행부의 정치적 성향과 왜곡된 운동기풍의 문제에서 접근해야 할 사항이지 지역본부가 지역노동운동의 구심으로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는 역할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과 관련하여 민주노총 중심의 총단결과 산별노조(연맹)으로의 권한이양을 병렬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데, 지역본부에 대한 접근의 시각의 연장이라면 후자의 경향으로 입장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인 노동유연화, 노조 무력화 공세에 맞서 총노동전선의 강화를 위해서는 산별노조의 혁신과 강화의 방향 또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총단결의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③ 주요 현장조직의 입장
민주노총의 위기에 대해서 일부 강조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다수 현장조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경제주의/실리주의’, 사회변혁적인 지향의 약화, 조합원의 신뢰약화와 지도력의 붕괴 등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노동전선의 경우 민주노총 주류 세력의 민주노총 선거에서의 어용세력과의 연합의 문제, 남북정권 간의 선언과 협약 중심의 통일운동, 민주연합노선(시민운동과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과 민생민주국민회의에 참여한 문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각 현장조직들이 제출한 민주노총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은 혁신의 기조와 방향에서부터 구체적인 실천과제까지 추상수위와 구체성의 수위가 다르다. 또한 정해진 쟁점에 대한 입장을 제출한 것이 아니어서 내용의 포괄범위도 상이하다. 따라서 공통의 혁신과제인 사회변혁적 이념과 노선의 정립, 총노동전선의 구축, 총연맹의 강화와 지역본부의 강화, 조직형식적인 산별노조 건설과정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산업, 업종별 공동투쟁을 통한 현장의 강화와 입체적인 교섭전략 마련, 현장 일상활동의 강화와 교육의 강화 등에 대해서는 합의를 바탕으로 책임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출된 문제의식과 다양한 혁신과제에 대해서는 현장조직들이 상호 간에 검토하여 혁신과제를 풍부화,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주요한 논쟁지점을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전국회의가 조직형식적 산별건설 과정을 비판하며 제안하고 있는 ‘과도한 구획정리나 대산별적 통합은 무리한 설계’라는 입장은 논쟁의 여지가 존재한다.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등 주장하고 있는 대산별노조 건설의 지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지, 현재적 시점에서 일정박기 식이 아니라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력을 강화함을 통해 충분한 합의와 동의에 기반을 두어 대산별을 지향하자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산별노조에서 이탈하여 별도의 산별을 건설하는 등 갈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조직 내 논쟁과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전국회의가 제출하고 있는 ‘총파업전술, 전국집중투쟁, 상경투쟁의 남발’ 역시 ‘현장/지역/산별단위 투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투쟁전술을 배치’한다는 기조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으나 정세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총파업이나 전국집중 투쟁을 자제하는 것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을 수는 없다. 더욱이 노동전선 등 많은 현장조직들이 민주노총 4기-5기 집행부의 투쟁회피, 노사협조적 활동에 대해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입장은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을 일반론적으로 제출하기보다는 현실투쟁을 앞장서 책임지면서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전술운영과정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셋째, ‘비정규연맹’, ‘비정규, 이주, 장애인 의결기관 할당제’는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현재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틀을 통해 내용적, 실천적으로 비정규직의 투쟁력을 제고하고 정규직-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활성화하는 방향에서 문제를 접근해야한다. 민주노총 내의 ‘비정규연맹’과 같이 독자적 조직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칫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조직적 갈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비정규, 이주, 장애인 의결기관 할당제’도 민주노총 사업과 체계에서 비정규, 이주, 장애인의 요구를 실현하고 조직화, 주체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제기하지 않을 경우 여성할당제의 예에서 보이듯이 제도 도입의 성과에 안주하여 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을 등한시한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 노동전선의 ‘배타적 지지방침의 실질적 폐기와 변혁적 노동자정치운동의 확대강화’와 관련하여 근거와 입장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경쟁하는 여러 정치세력이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특정한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서는 안 되고, 조합원들의 정치적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는 관점이라면 동의하기 힘들다. 현재 민주노총의 현실이 한나라당, 민주당 등에 대한 상당한 지지가 실존하는 조건에서 이러한 운동을 공식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방편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데 자신의 역량을 투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노동자정당의 성격과 활동이 의회주의, 선거주의에 갇히지 않고 ‘사회운동정당’으로서 역할 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흐름 등 현존하는 정당들 중 일부 정당에 대해서 배타적 지지를 하는 것으로 인해 다른 정치세력들의 현장 정치활동이 억압당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다섯째,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와 관련해서도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파적 이해의 차원에서 현재의 대의원선거 방식을 유지하자는 입장이 있을 수도 있으나, 금속노조 직선제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장의 조건에서 직선제가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리라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직선제의 도입을 주장한다면, 직선제를 계기로 현장을 바꾸어내고 계급적 단결을 확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의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동안 운동과정에서 형성된 현장조직 상호 간의 불신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불신의 바탕에는 현장조직 대부분에서 조직의 입장과 조직원의 실천의 괴리가 상존했다는 사실이 깔려있다. 어느 조직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현재까지 활동과정에서 좀 더 투쟁기풍을 가지고 있는 조직과 노사협조적 운동의 모습을 보여 왔던 조직들의 차이는 명확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현장조직들이 자신의 이해득실을 위해 인맥조직으로 조직을 운영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노선과 입장에 충실한 조직적 원칙과 기풍을 세우고 이를 지키지 않는 조직원들은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상호 간에 자기혁신이 동반될 때 진정성 있게 정파 간의 논의와 통합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어느 현장조직도 민주노총을 독자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실존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투쟁력 강화를 중심으로 한 현장조직 간의 신뢰회복과 단결의 강화는 매우 관건적인 문제이다.
민주노총의 혁신 과제
‘실리주의’를 넘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화운동으로!
당분간 세계경제가 일정한 회복양상을 보인다 하더라도,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자본주의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극복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예상된다.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경향이 역전될 정도로 산업에서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미국을 대체해서 새로운 자본주의 생산방식으로 무장한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약간의 이윤율 증대를 가져왔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그 심각한 모순을 드러냈으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조건으로 인해 다른 방식의 탈출구를 찾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주류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더블딥’(이중경기침체) 논란이나, 일각에서 2010년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최종적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이러한 심각한 위기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이명박 정부와 자본의 전략은 명확하다. G20을 필두로 하여 세계적 차원의 공조와 함께 한미FTA를 필두로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을 확대하고,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완화 정책 등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또한 전면적인 노동유연화 정책과 함께 향후 정책시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제조업과 공공부문 대사업장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의 전면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 일각에서는 ‘새로운 사회협약’이 노동운동 활성화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민주노총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돌아볼 때,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이 가진 폐해는 너무도 심각하다. 정권과 자본과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실리 획득을 목표로 한 운동은 당장의 실리획득에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위기의 시대를 맞아 ‘단기적인 실리’를 집착하기보다는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적 이념과 노선을 수립하고 노동자, 민중운동의 계급적 단결의 구심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초민족화된 세계자본주의 조건에서 한국사회의 변혁은 국제주의적 시야와 전략이 없이는 현실화될 수 없다. 국제노총 회의 참석, 국제금융무역기구 회의에 대한 일회적 대응, 국내 현안에 대한 국제적 지원요청, 외국 현안에 대한 지원이라는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적 수준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와 전쟁, 생태파괴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전략적 운동구상을 구체화화해야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 하에서 공격당하고 있는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운동은 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총노동전선의 구축과 총연맹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운동의 강화
정권과 자본은 지난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모든 성과를 무력화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고용, 임금, 복지 등 직접적인 성과에 대한 공격을 넘어 이를 가능하게 했던 노동자들의 단결의 구심으로서 ‘노동조합’ 운동 자체를 파괴, 무력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반면 민주노총의 상황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지도부로서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주요 산별노조 또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정권과 자본의 공격은 전방위적인 데 반해 민주노총의 활동방식은 산별노조와 단위 사업장의 틀을 못 넘어서고 있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총노동전선의 구축이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공공운수연맹(공공노조, 운수노조)을 포함한 주요 산별노조 간에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의 원칙과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산별노조의 시기집중 임단투조차 제대로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어떻게 투쟁동력을 형성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금속, 공공의 핵심 투쟁을 전국전선으로 확장하는 것과 동시에 시기집중을 포함하여 임단협 투쟁에 대한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이 중요할 것이다. 임단협이 포괄하는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투쟁을 기획해야 하며, 최저임금과 같은 노동조건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투쟁에서 총연맹이 전체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동력 형성과 주요 산별노조의 핵심 투쟁을 전국화하는 것과 동시에 경제위기 하에서 노동자 민중들의 노동권 생존권 보장과 전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제도적 요구들을 정선하여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또한 전국적인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해서는 지역연대운동의 구심으로서, 총연맹 활동의 집행기구로서 지역본부의 위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노조 조직화, 정세대응을 높일 수 있는 지역 연대의 활성화를 위해서 지역본와 산별지역본부/지부와 통합적 운영 및 공동기획ㆍ공동집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 지역본부에 대한 인력, 재정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제도적 요구의 전면화
세계경제는 일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하락과 이에 따른 중소형 은행 부도, 약간 회복양상을 보이던 주택가격의 하락으로의 반전 가능성, 유럽 국가들의 정부부채 및 재정적자 확대와 유럽은행들의 대규모 부실, 중국의 과잉투자와 거품 논란 등이 이런 불안을 낳고 있는 요소다. 한국경제는 원화가치 하락, 중국의 예상을 뛰어넘은 대규모 경기부양 및 성장,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심각한 위기국면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벗어나고 있으나 대외변수에 여전히 취약한 경제체질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투기적 유출입으로 인해 환율 급등락과 투기거품 형성 및 붕괴가 단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초민족적 자본의 투기적 유출입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 대규모로 유출될 뿐만 아니라 소위 먹튀 자본의 이탈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와 고용불안이 잇따르고 있다. 따라서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을 억제하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한편 경제위기에 대한 부담은 노동자에게 손쉽게 전가되었고 대외변수의 불안정성은 한국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고 갔다. 우선 경제위기는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을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중층화된 하청구조와 대규모 비정규직 고용은 경제위기에 노동의 유연성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노조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많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또한 장시간 노동(연장근로나 특근)을 통해 낮은 통상임금을 보전해 오고 있는 노동자들은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작업량과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심각한 임금하락을 경험하였다.
따라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 민중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요구와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를 동시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 완화와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경제위기 시에 노동자의 노동권 생존권 보장의 핵심 요소로서 고용과 임금과 관련하여 제도적인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 경제위기 하에서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 ‘당장의 적자 기업에서 과거 누적 흑자를 활용한 고용유지’, ‘공공부분 인력 구조조정 반대’, ‘부도 가능 사업장에서 정부의 지원을 통한 고용 유지’, ‘해고 및 계약해지를 제한하는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이는 전사회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의 일환으로 ‘해고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개별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하되 전국적으로 투쟁력을 집중해서 이런 법 제도적 요구를 쟁취해 낸다면 고용문제를 일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이고, 이런 투쟁이 일정하게 성공한다면 이후에도 지속될 개별사안의 투쟁에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한편 임금과 관련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산별노조 내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적절한 수준의 정액임금 인상, 특별(성과)상여금 방식이 아닌 기본급 중심의 임금인상, 임금의 최저선을 끌어올리는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으로 요구를 정식화하고 투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사회구조를 투기화, 불안정화하여 노동권을 위협하는 금융화에 대한 비판과 통제장치의 마련, 초민족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 억제와 통제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요구를 전면화해야 한다. (상업은행들의 투자업무 제한 및 중단, 겸업화 금지, 신용의 증권화 금지, 자본시장통합법 폐지, 금산분리 완화 반대, 한국은행에 대한 정부 통제 및 금융감독 권한 부여, 외환거래세 도입, 외환거래자유화 제한, 자본이득세, 초민족적 자본의 인수합병 참여 제한, 각종 구조조정 기금 운용에 대한 감시와 통제장치 확보 등.)
‘조직형식주의’를 넘어 계급적 단결을 중심으로 산별노조의 혁신과 강화
기간 조직형식 중심의 산별노조운동의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업별 노조를 넘어 초기업적 단결을 형성하고, 공동투쟁으로 노동자간 격차를 축소하자는 산별노조 건설의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조직형식주의’를 넘어 조합원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기 위한 산별노조 혁신과 강화방안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산별노조의 혁신과 강화는 민주노조 총단결 혹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민주노총 강화와 지역운동의 구심으로서 지역본부, 지구협의 강화라는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산별 중앙이 총연맹 차원의 총노동전선 구축에 복무할 수 있도록 공동기획과 투쟁의 집중, 이를 위한 제도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본부, 지구협을 중심으로 산별노조 지역본부, 지역지부와의 통합적 운영을 통해 산업, 업종, 기업규모 등 각종 차이를 넘어 실질적이고 계급적인 단결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경우 구체적인 산업구조, 정권과 자본의 정책, 조합원의 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조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산업, 업종 차원의 공동투쟁, 원청-하청 간의 공동투쟁,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는 가장 관건적이다. 또한 이미 중앙교섭이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서 노조가 투쟁으로 자본을 강제하여 교섭구조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공동투쟁을 중심으로 입체적인 교섭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한축으로는 주요 완성차지부를 중심으로 원-하청의 공동요구와 공동투쟁의 모범을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다른 한축으로는 형식화된 지부 집단교섭에 대한 중앙 차원의 투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투쟁은 향후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핵심 투쟁에 대한 전략적 공동기획을 통해 사회적, 전국적 투쟁전선을 강화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기업지부의 해소와 관련해서도 무리한 재편으로 인한 조직 갈등을 확대하기보다는 공동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완성차지부와의 공동투쟁 기획을 통해 산별노조의 현실적 필요성을 조합원들에게 확인시키는 방식으로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 ‘1사 1조직’의 경우도 타타대우상용차, 캐피코, 동원금속 등 모범사례와 기아자동차지부에서의 조직 갈등의 사례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외형적 조직 확대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 강화하는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2006년 공공운수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과도적 조직으로 출범한 공공노조/운수노조의 경우 운수노조가 통합산별건설을 결의하지 못하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과도조직으로서 공공노조도 공공기관(전국단위 기업지부), 단위 기업지부, 초업종지역지부 간의 조건과 입장의 차이로 인해 내부적 조직재편을 둘러싼 논쟁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통합산별노조 건설이 불투명할 경우, 과도조직으로서의 공공노조 또한 존립의 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실질적인 통합산별노조 건설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공공노조는 산별교섭과 관련해서도 한축으로는 공공기관(전국네트워크 대사업장)의 대정부 교섭이 관건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교섭거부라는 장벽에 막혀 공동투쟁을 통한 돌파가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지부의 경우 규모의 영세성과 집단교섭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업장 교섭에 대부분의 활동력이 투여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에 맞서 공동투쟁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지역지부의 경우 조직화 과정에서부터 집단교섭을 염두에 두고 조직하거나 현장의 교섭역량을 키워내는 등 다각도로 과다한 교섭의 문제를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공공노조의 역량을 고려할 때 공공부문 선진화에 맞선 투쟁과 지역지부의 강화를 위해서는 총연맹, 총연맹 지역본부ㆍ지구협과의 긴밀한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공공노조 내부 조직체계 재편과 관련해서는 공공기관지부와 지역지부 간의 논쟁구도 방식으로 비화되지 않아야 한다. 한축으로는 공공기관지부에 대한 중앙의 사업을 강화하고, 다른 한축으로는 ‘지역본부’ 형식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실질적으로 지역지부를 강화하고 지역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중앙과 지역지부의 긴밀한 논의와 실천계획의 마련이 중요하다.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사회운동정당’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을 포함한 제 정치세력과 함께 ‘선거와 득표’를 중심으로 한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과 대중운동의 혁신 및 정치적 재조직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실리획득(세액공제, 득표)에 주로 의존했다. 특히나 2004년 총선 이후 ‘의회주의’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즉 ‘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국회의원 당선의 현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역구의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파 간 경쟁구조도 심화되었다. 이런 당의 문제점이 확대되어 당의 분열로 이어진 것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양당 모두 기존 민주노동당의 부정적 경향이 확대되었다. 각 지역 차원에서 분당으로 인한 활동가들의 분리와 이탈로 인해 지역운동에 대한 진보정당의 역할은 상당히 취약해졌다. 사회적으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사회적 위상의 약화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라는 조건에서 진보정당의 전략적 공조와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하기보다는 야 4당 공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민주노총 추진위원회’(통추위) 활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평가에 기반을 두지 못하고 6월 지방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목적에 집착하면서 양당의 간의 소모적인 정치공세와 부정적인 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노동자에 공격을 노골화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이념을 제시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지역적 기반의 강화, 민중연대 전선을 강화하는 ‘사회운동정당’으로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전망 하에서 단기적으로도 선거공간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제 정치세력들이 경제위기 하의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과 연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현실에서 부정당하고 있는 배타적 지지방침과 관련해서는 단순한 방침 폐기여서는 곤란하며 민주노총이 ‘사회운동정당’으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중심축과 경로를 제시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흐름 등의 정치활동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방침’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의 혁신과 강화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단순히 조합원의 양적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정권과 자본의 노동비용 축소와 정규직-비정규직의 분할통제, 노동조합 무력화에 맞서 약화된 조직의 투쟁력과 조직력, 계급대표성을 재건하기 위한 사활적인 조직혁신의 과제이다. 전조직적 차원에서 총연맹-산별-지역본부-단위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재정과 전담 조직화 담당자를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조직적 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지역의 주요 사업장이 미조직 조직화에 주체로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대공장에서의 정규직-정규직(원청-하청노동자)의 공동요구와 공동투쟁, 그를 통한 계급적 단결은 향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격과 전망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라는 측면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특히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방침은 조직형식적인 완성이나 조합원의 양적 확대를 넘어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과 공동투쟁, 현장의 투쟁력 강화라는 원칙적 입장에 근거해서 추진해야 한다. 또한 금속의 경우 지역, 공단에 밀집되어 있는 중소영세사업장의 조직화의 성과가 미미한데 지역지회 강화(재정, 인력 지원)와 자발적 현장진출 활동가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집중적인 조직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차원에서 제기되었으나 조직화된 비정규직들도 자신의 조합적 이해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상활동과 교육 학습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노조나 산별 지역지부와 지역지회의 부족한 인력과 과다한 교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가능한 업종이나 지역에서는 전략적으로 집단교섭을 쟁취하기 위한 조직화 방식을 취하거나, 현장에서 교섭을 소화할 수 있도록 현장 역량을 키워내야 한다. 또한 산별 지역지부의 경우 총연맹이나 산별 지역본부ㆍ지부의 역량을 강화하여 교육 학습 등 조합원 의식화와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1기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통해 조합원의 양적인 확장을 넘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일환으로서 전략조직화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산별 지역본부ㆍ지역지부와 총연맹 지역본부의 조직혁신사업의 강화라는 관점을 분명히 하고, 5개 영역 중 지역중심의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로 전략조직화의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조직화의 선정과정에서부터 총연맹이 직접 주관하여 산업구조 및 미조직 노동자 분포 등 객관적 조건과 함께 전략조직화를 주진하는 주체인 지역본부, 해당 산별본부와 지역지부의 역량, 조직화 사업의 경험, 연대운동의 역량 등 검토하고 해당 전략 조직화 사업의 구체적 목표와 계획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지역본부의 논의로 이관될 경우 산별노조 본부/지부 간 경쟁이 과열되지 않도록 총연맹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객관적인 근거와 주체적인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대상을 선정, 지속적으로 사업을 점검, 지원해야 한다. 전략조직화 사업의 책임 있는 집행과 민주노총의 미조직ㆍ비정규직 사업의 강화를 위해서 기금모금 등 재정마련 계획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
최근 민주노총 임원의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 규약 제정과 이를 통한 사건처리,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 등 제반의 조치가 취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 배제적 문화가 지배적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민주노총의 여성사업을 상징하는 여성할당제(부위원장, 중앙위원, 대의원 30%)도 당초 민주노총 내 여성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할당된 숫자조차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은 몇 가지 제도의 도입이나 전문가들의 정책대안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착취(가족관계에서 재생산노동의 전담자이자 최종적 책임자, 생계보조자로서의 위치로 인한 사회적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착취)를 양산하는 자본주의를 변혁함과 동시에 여성억압을 구조화한 가족관계와 남녀관계를 변혁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 요컨대 민주노총이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노동해방과 함께 여성해방의 과제를 전조직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민주노총의 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를 정식화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이래, 여성정책은 여성인력 활용과 이를 뒷받침하는 일-가정 양립 지원이라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정책은 여성에게 가사노동 전담자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노동조건의 하락과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어려워진 가족생계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임금 일자리 정책에 대한 비판과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상징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은 핵심적으로 제기해야 할 요구다. 또한 여성의 저임금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족제도를 매개로 한 성차별,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여성이 이중적인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가사(재생산)노동의 사회화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가족제도의 변혁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여성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억압적인 제도의 철폐를 요구해야 하며, 정세적으로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서 여성노동자의 시각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여성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조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여성조합원들이 노조운동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업을 기획해야 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과 일상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사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조직 내 여성 차별적, 배제적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 해결로 국한되지 않는 일상적인 노조의 활동과 문화에 대한 평가와 혁신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여성문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조합원들의 일상 활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토론진행 할 수 있는 기획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또한 노조의 단체협상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성차별적, 배제적 문화를 혁신하는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특별기구방식의 사업이 아니라 여성위원회를 강화하고 기존의 사업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여성위원회는 여성사업 담당자로 국한되지 않는 여성 활동가와 간부 육성, 여성조합원을 주체화 하는 대중적 사업의 기획, 미조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남녀 모든 조합원의 작업장/가족/노조의 활동과 구조, 그 내에서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실태 파악,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 관점 하에서 여성조합원의 요구의 정식화 등 제반 사업을 기획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기조를 명확히하는 민중연대전선의 강화와 지역연대운동의 강화
전국민중연대의 내부적 이견이 표출되면서 민중운동 내부의 충분한 동의와 합력 없이 소위 자민통 진영에서 2007년 진보진영의 총단결체를 표방한 한국진보연대(준)를 출범시키면서부터 민중운동 내부의 갈등과 불신이 증폭되어 왔다. 이런 이유로 서울,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현재까지 지역진보연대 구성이 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신뢰 있게 진행되던 지역연대체가 갈등을 빚으며 해산하기도 했다. 2008년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를 중심으로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추진하면서 민주노총 대부분의 연대사업에서 좌파/현장파는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때마다 한국진보연대 가입을 둘러싼 갈등으로 거듭되는 파행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9년 민주노총은 ‘메이데이 조직위원회’ 구성과 공동활동을 거쳐, 민중진영의 공동투쟁을 위한 한시적인 공동투쟁체로서 ‘노동탄압분쇄, 민중생존권, 민주주의 쟁취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구성하여 민중운동진영의 공동투쟁을 위한 노력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참여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중심으로 한 연대사업 방향, 최근 반MB 기조 하에서 민주당과의 연대강화라는 사업방향으로 인해 지속적인 갈등이 있어왔다. 공동행동의 경우, 민주노총-한국진보연대-참여연대-민주당과의 창구 역할을 못 넘어서고 있는 민생민주국민회의를 중심으로 하면서 ‘공동행동’ 자체는 부차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다.
민주노총은 8월 민중운동진영에게 ‘이명박 퇴진을 위한 진보민중진영 공동투쟁본부 건설’을 제안하여 워크숍과 수차례 회의를 거쳐 10월 진보민중진영의 공동투쟁체로서 ‘이명박 심판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공동투쟁본부’(약칭 ‘반MB 공투본’) 결성했다. ‘반MB 공투본’의 건설은 조직 내 갈등을 수반했던 한국진보연대 중심의 연대를 넘어 진보민중진영의 공동투쟁기구를 결성했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반MB 공투본’은 느슨한 한시적 투쟁체에 머물고 있을 뿐, 효과적인 투쟁기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향후 ‘반MB 공투본’을 지역과 부문을 아우르는 상설연대체로 발전시키기에는 내부적 합의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정권과 자본의 격렬한 공세가 예상되는 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중운동의 단결의 수준을 한층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민주노총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차원의 대불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경제위기 시기 노동권을 중심으로 대중투쟁요구를 정선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 계급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 민중운동의 단결 투쟁을 펼치는 데 선도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중연대전성을 강화함에 있어서 명확한 반신자유주의 기조 속에서 대중적 투쟁동력을 형성하고 노동자 민중운동의 단결을 강화하는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년 지자체 선거 등을 염두에 두고 반MB 기조만을 강조하면서 시민운동, 민주당과의 연대를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면 또 다시 노동자 민중운동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민주노총은 전국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에 근거한 연대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에서 새로운 상설연대체로서 인천지역연대(준), 서울연대(준)가 결성되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서울의 경우 소지역별(지구협) 단위에서도 지역연대를 복원,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모아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연대운동을 복원하여 지역 정치활동과 미조직사업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활동가조직의 혁신과 소통, 연대의 강화
민주노조운동에서 특정한 정치적 이념과 노선을 가지고 운동을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정치세력, 즉 정파(현장조직을 포함한 활동가조직)의 역할을 너무도 중요하다. 정파 없는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은 사고할 수 없다. 현재 정파에 대한 대중적 불신은 정파를 없애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파가 정파다울 때, 즉 정치세력으로서 이념과 노선에 근거한 정치활동을 제대로 펼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2009년 3월 민주노총 혁신대토론회에서 보여지 듯 현재 대다수 정파의 민주노조운동 혁신과 재건의 입장은 몇몇 쟁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통의 입장으로 수렴되고 있다. 정파활동이 민주노총 혁신의 걸림돌로 비판받는 이유는 주류 정파의 ‘계급적 단결을 약화시키는 실리주의적 노선’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정파 내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파의 입장과 정파 구성원들의 실제 실천 활동 간의 커다란 괴리에 있다. ‘자기방어적 실리주의’와 ‘패배주의’에 갇혀 있는 현장의 조건, 조합원들의 의식과 문화 속에서 각 정파의 입장이 사실상 조직원들 안에서도 자신의 운동과 실천의 지침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 조건 하에서 정파들이 이념과 노선에 근거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자기 혁신이 지체되면서 노조 집행 권력을 둘러싼 정파 간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세 가지 지점에서 정파들의 혁신이 요구된다. 첫째, 어느 정파도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라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정파 내부의 원칙과 기풍의 수립 위한 전면적인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둘째,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각 정파 혁신세력들 간의 소통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사회의 객관적 현실, 노동자대중의 의식과 조건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공동투쟁의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상호 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현장에 걸쳐 실질적인 단결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신뢰와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합원 교육의 강화와 지역ㆍ현장 일상 활동의 복원
현재 노동자대중과 조합원들은 세계적 경제위기 하에서 해고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조합원의 심리가 민주노조운동의 집단적 운동을 통한 승리의 전망을 찾을 수 없는 조건에서 극도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투쟁을 통한 승리의 경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와 함께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비판,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노조를 통한 단결,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운동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과 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동조합 체계를 통한 교육뿐만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형성하는 학습소모임, 문예소모임의 결성과 활성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대중, 조합원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현장토론과 정치실천을 일상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 내에 만연되어 있는 대리주의, 소위 자판기노조라 불리는 활동을 지양하고 조합원을 주체화하기 위해서는 현장과 지역 차원의 다양한 정치적 실천을 개발하고 참여토록 해야 한다. 현장 토론을 통해 공동의 요구를 함께 마련하고 간부ㆍ대의원의 현장토론 조직화, 현장 선전전을 일상화해야 한다. 지역적 차원에서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주1회 정치페인 등을 적극 조직하여 조합원이 구경꾼이 아니라 노조활동의 주체로서 역할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혁신논의만 해도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2000년 10월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대표: 민주노총 2기 보궐 단병호 위원장), 2005년 9월 조직혁신위원회(대표: 민주노총 4기 강승규 수석부위원장)가 구성되었고, 실태조사와 설문조사, 수차례의 워크숍과 토론회, 수개월의 전국순회토론회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2000년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보고서는 2000년대 노동운동의 전략 좌표와 조직문화 개선 중심으로 7대 전략을 제시했지만, 일부 활동가들은 ‘단병호 위원장 재집권 프로젝트’라는 식으로 인식하여 보이콧했고, 조직적인 논란과 갈등으로 인해 의결단위에 공식 사업계획을 제출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되었다. 또한 2005년 조직혁신위원회 보고서는 산별노조 건설과 지도집행력 강화 중심으로 6대 혁신과제를 제출했지만, 9월 대의원대회에서 산별건설 특위와 결의문을 채택하고 조직혁신위를 계속 가동하기로 하였으나, 조직혁신위원장이었던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고 이수호 집행부가 중도하차함에 따라 중도반단 되었다. 그리고 최근 민주노총의 임원 성폭력 사건으로 이석행 집행부가 중도하차하고 비상대책위원회(임성규 위원장)가 주도하여 2009년 3월 민주노총 혁신대토론회 개최 이후 4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09년 노동운동혁신위원회(대표: 민주노총 5기 보궐 임성규 위원장)를 구성하여 혁신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 정기대의원대회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렇듯 민주노총의 내적인 혁신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 정리해고 강행,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통해 금속과 공공 등 대기업 노동조합의 투쟁 예봉을 꺾고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도입,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골자로 하는 노조법 개악을 통해 민주노조운동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조직하지 못한 채 계속 힘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리더십과 사회적 위상은 더욱 크게 흔들리고 있다.
2010년 초에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열릴 예정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는 계급적 단결을 복원하기 위한 중장기적 전망과 사업계획을 입안, 집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민주노총의 모든 공식조직과 비공식조직(정파) 간 토론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권과 자본의 복수노조 도입, 전임자임금지급금지 등 공세에 맞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노동권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총노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필사의 각오를 세워야 한다. 민주노총 선거는 이러한 역사적으로 엄중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상호비난이 아닌 명확한 평가와 비판, 단결과 연대의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현황 진단 및 평가
총평
민주노총의 건설 과정은 정권과 자본의 무단적 탄압으로 1987년 이후로 노동자 투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전노협이 약화된 조건에서 합법화된 업종회의와 제조업 대공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전노협의 전투적이며 연대지향적인 지역 중심의 운동 구조를 약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제도적인 교섭’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업종별 연맹체계를 중심으로 출범하였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당선된 1기 권영길-권영목 집행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을 표방했다. 사회변혁적 지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개혁적 노선으로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은 현재까지 민주노조운동의 핵심 전략인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리고 사회적 대화(노사정협의회)를 통한 제도화’라는 화두를 제기했다. 1997년 IMF 이후 배석범 직무대행(당시 민주노총은 권영길 위원장의 대선후보 출마로 인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었다)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근로자파견제, 정리해고제를 포함한 ‘사회협약’에 조인한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광범위한 반발로 사퇴했다.
이후 2기 이갑용-고영주 집행부, 2기 보궐 단병호-이수호 집행부, 3기 단병호-이홍우 집행부로 이어지며 소위 현장파 혹은 중앙파 집행부가 집권했으나 큰 틀에서는 민주노총 1기 집행부의 기조가 관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성격(진보정당, 계급정당)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으나 계급정당, 계급적 변혁적 산별노조(혹은 투쟁하는 산별노조)를 제기한 좌파세력들은 자신의 입장에 근거한 일관된 실천전략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했다. 2기, 3기 집행부는 1기 집행부를 포함한 민주노총의 주류 세력의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대한 비판과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강조하며 당선되었으나 민주노총 내부의 세력관계, 주체적 역량, 지도력의 문제로 인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와 탈퇴의 반복하고, 총파업 투쟁에서 계속 동요하면서 지도집행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로서 1기 집행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을 계승하는 4기 이수호-이석행 집행부, 4기 보궐 조준호-김태일 집행부, 5기 이석행-이용식 집행부가 당선되었다. 이 기간 동안인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 의원을 배출하면서 외형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하였으나 2007년 대선투쟁의 패배와 당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리되며 노동자 정치세력화 전략이 심각한 위기 처했다. 또한 주요 전략이었던 산별노조 건설이 정체, 후퇴상황에 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나 4기 이수호-이석행 집행부 시기에는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둘러싼 조직 갈등이 소위 강경파의 대의원대회 단상점거라는 극단적 형태로 폭발하였고, 핵심 임원인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 5기 이석행-이용식 집행부도 핵심 임원의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중도하차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위기, 투쟁동력의 소실, 주요한 전략으로서 산별노조 건설노선의 심각한 위기, 정치세력화 노선의 실패로 표출되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으며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과 공기업 대사업장은 조합주의와 자기방어적인 실리주의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① 노사협조주의적인 제도화 전략과 현장의 조합주의, 실리주의의 강화
노동자의 권리를 획득하고 사회구조를 변혁하기 위한 무기로서 노동조합운동에서 ‘운동(투쟁)과 제도화’, ‘계급적 단결과 권익’이 함께 결합되지 못할 때는 언제나 파괴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권리를 제도화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제도화의 과정이 노동조합의 역동성과 투쟁력을 축소시키는 과정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스스로 발밑을 허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권익’으로 표현되는 고용, 임금, 복지를 쟁취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일부만의 실리로 귀결되어 계급적 단결을 약화시킨다면 이 역시 비극적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지난 민주노총의 역사는 이를 실증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자본주의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민주노총의 주류 세력들은 운동(투쟁)과 계급적 단결을 확대, 강화하는 것은 도외시하였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를 통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등을 포함한 사회협약에 조인한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민주노총 내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들의 집권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계기로 하여 노동자들의 투쟁과 단결, 연대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보다는 정권, 자본과의 일정한 협력과 타협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획득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이 ‘진보정당을 통한 의회진출과 제도화’, ‘산별노조를 통한 교섭의 제도화’, ‘사회적 교섭과 노사협조주의’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고, 현장의 투쟁력과 역동성을 조직하기보다는 ‘사회적 교섭 틀’의 구성과 선거에서의 득표에만 집착해왔다. 이러한 전략은 자신의 주관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구조의 금융투기화와 노동유연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인 정권의 하위 파트너로 스스로 기능하였고,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권과 자본의 전략에 무기력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증폭하고 패배주의를 확산시켜왔다. 이러한 민주노총 활동의 지난 10여 년 간의 누적효과가 민주노총, 노동조합으로 단결과 집단적 해결의 전망을 갖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의 이해만을 사고하거나 나만의 실리에 집착하는 경향을 확대시켜온 것이다.
② 산별노조운동의 위기
민주노총은 산하 조합원의 3/4 이상이 산별노조 소속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의 목표로 제기해왔던 산별중앙교섭의 제도화, 기업을 넘어 산업 차원의 단결의 강화,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의 강화라는 과제들이 모두 난관에 봉착해 있다. 오히려 산별연맹 시절보다 현장의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실리적, 도구적 인식이 확대되었다. 또한 산별노조의 건설과정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켰으며, 총연맹 지역본부의 산별노조 지역본부와 지부에 대한 관장력이 현격히 약화되었다.
산별노조의 핵심전략으로 채택해왔던 중앙교섭의 경우, 특별법에 의해 노동3권을 심각히 제약당하고 있는 전교조, 공무원노조를 논외로 하더라도 주요 산별노조 모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2006년 주요 대공장 사업장이 산별로 전환하면서 15만 금속노조를 출범했으나 현대, 기아, 대우 등 완성차 사용자측의 완강한 거부와 대기업 기업지부의 단위사업장 중심의 교섭구조 유지 입장으로 인해 사실상 중앙교섭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구 금속노조 시절의 지역지부 집단교섭도 무력화되어 가고 있다. 공공노조의 경우도 공공기관(전국네트워크 사업장)의 대정부 교섭이 관건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교섭거부라는 장벽에 막혀 공동투쟁을 통한 돌파가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한편 노무현 정부 내부 노동계 출신 인사의 일정한 지원과 협력 하에서 병원사용자협의와의 산별교섭과 협약체결을 진행해왔던 보건의료노조도 최근 병원사용자협의의 해산으로 인해 산별교섭이 무력화될 상황에 처해 있다.
또한 산별노조 조직체계 문제에 관련해서도 심각한 내부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2009년 9월까지 기업지부를 지역지부로 전환하기로 하였으나, 완성차를 중심으로 한 기업지부의 반발로 인해 전환이 2년 유예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미조직노동자 조직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1사 1조직’사업은 전조직적으로 결의되었고 80개 사업장(35%)에서 규약 변경을 시행하였으나 현대차지부의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로 인해 조직적 확산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타타대우상용차의 경우 규약 변경과 320명의 조직화에 이어 매년 10%의 단계적 정규직화, 성과급 동등적용, 노조활동 보장 등 차별을 축소해 나가고 있고 캐피코, 동원금속에서는 식당, 경비, 청소노동자의 조직화와 단계적 정규직화가 실현되는 소중한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아차지부의 경우 ‘1사 1조직’ 규약 변경을 통해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과 단결을 확대하기보다는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와 투쟁이 억압되는 방식으로 통합이 진행되면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2006년 공공운수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과도적 조직으로 출범한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경우에는 공공노조가 2008년 9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양 산업노조 합병을 통한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결의했으나, 2009년 운수노조의 대의원대회에서 통합산별노조 추진방침이 또 다시 성원 부족으로 유예되면서 난항에 처해 있다. 이런 조건에서 과도조직으로서 공공노조도 공공기관(전국단위 기업지부), 단위 기업지부, 초업종지역지부 간의 조건과 입장의 차이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업별 노조를 넘어 초기업적 단결을 형성하고, 공동투쟁으로 노동자간 격차를 축소하자는 산별노조 건설의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재 산별노조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산별노조를 혁신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표를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그 동안 산별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 첫째로는 한국사회의 구조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독일, 스웨덴과 같은 중북부 유럽국가의 산별노조를 이상적 모델로 산별건설을 추진해온 점이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들 나라와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독일은 1차 대전 후 혁명적 정세에서 산별노조가 계급타협을 추구하면서 산별교섭을 인정받았고, 산업자본이 은행지배를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통합하여 동종 업종 자본가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통일되었으며, 역사적인 코포라티즘 체제가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조건을 가진 영국이나 미국, 일본, 중부 유럽(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방식의 노조운동 형태가 발전해왔다. 한국의 경우는 자본의 조직방식으로는 일본과 유사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노조운동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재벌기업간, 원하청간에 격차가 유지되는 기업별 노조가 고착될 우려가 크다. 이를 역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안, 즉 원청(재벌)-하청,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과 공동투쟁을 통한 격차 축소가 관건이다. 둘째로는 ‘산별완성’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조직형식적인 산별건설에 대해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소위 ‘묻지마 산별’,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적인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그 동안 산별노조 건설과정은 특정한 모델과 교섭구조를 창출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를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합의와 현장 조합원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은 채 일정을 박아 놓고 조직건설을 밀어붙이는 식으로 추진되었다. 이런 조직형식적인 산별건설 과정은 ‘기업지부’를 해소하면 ‘기업별 의식’이 극복할 수 있다는 사고로 극단화되었다. 따라서 산별노조의 조직화도 산별노조가 건설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왜곡 선전되거나, 단순히 ‘조직이 커지면 자기 사업장의 투쟁에도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실리주의적으로 추진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산별노조가 형식적으로 건설되어도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교섭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투쟁력과 역동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상식이 무시되었다. 따라서 그 동안 특정한 모델을 이상화한 조직형식적인 ‘산별완성’을 넘어서 조합원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기 위한 산별노조 혁신과 강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인 산업 구조, 정권과 자본의 정책, 조합원의 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조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산업, 업종 차원의 공동투쟁, 원청-하청 간 공동투쟁, 정규직-비정규직 간 공동투쟁을 형성하고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가장 관건적이다.
③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
민주노총은 1996년 말 총파업 투쟁의 패배가 의회 내에서 노동자를 지지, 지원하는 정치세력의 결여로 인해 발생했다고 평가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일환으로 합법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했다. 민주노총은 1997년 ‘국민승리21’을 결성하고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여 대선투쟁을 전개했다. 1998년 1월 ‘진보정당 추진위’가 결성되고,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했다. 이 과정에서 1998년 노동법 개정에서 정치활동금지 조항이 삭제된 것도 중요한 정치적 계기로 작동했다. 민주노동당은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시행 이후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2명, 지역구 광역의원 2명을 당선시키며,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지지율 8.1%를 확보하며 국고보조금을 확보함과 동시에 제3당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또한 2004년 총선에서 정당지지율 13%를 확보하여 지역구 2명, 비례대표 8명을 당선시키며 국고보조금 확보와 함께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낳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외형적 성공의 이면에는 지역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소위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 갈등이 당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로 형성되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과 대중운동의 혁신, 정치적 재조직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 획득(세액공제, 득표)에 주로 의존했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10명이 의회에 진출한 이후 모든 관심이 원내로 쏠리는 가운데 ‘의회주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당의 인력과 재정의 배치가 의정지원 쪽에 심하게 쏠려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에 맞서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고 대중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면서 ‘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사당화(私黨化) 경향이 강화되었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역구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파 간 경쟁구조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문제점은 2007년 권영길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과정과 11월 중앙위에서 당내 다수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6표제 비례대표제 선거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사건을 계기로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참담한 패배 이후,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을 중심으로 한 당내 논쟁과 갈등이 폭발되었다. 2008년 1월 중앙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심상정 비대위’가 출범하였으나 2월 3일 임시당대회에서 상당한 갈등과 논란 끝에 이른바 ‘일심회’ 관계자 제명 건이 부결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심상정 비대위’가 총사퇴하고 민주노총 전현직 임원 45명이 탈당선언을 하면서 탈당 흐름이 가속화되었다. 이는 배타적 지지단체인 민주노총으로까지 이어져 조합원들의 탈당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은 2개의 정당으로 분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의 분당 과정에서 민주노총 이석행 지도부의 모습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에 대한 반성과 노동자운동의 단결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기에 급급했다. 이미 분당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통일단결’을 주장하면서도 “분당 추진한 사람부터 솎아내야”한다거나 “진보신당과 연대할 생각이 없다” 등 갈등을 부추기는 태도와 발언들이 이어졌고 일부지역에서 진보신당을 표적으로 한 공천도 강행했다. 대규모 탈당사태에 맞서 “총선시기 평생당원 1천명, 당원 1만 명 조직하겠다”며 민주노동당 평생당원 모집, 사업장 차원의 집단 당원 가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패권적인 방침에 대한 조합원들은 반응은 싸늘했다. 민주노총 차원의 총선투쟁기금 모금액은 3,200여만 원에 불과했다. 2008년 총선 결과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3석(5.6% 득표)을 합쳐 5석을 확보하여 2004년 총선에 비해 의석이 반으로 줄어 독자적 입법발의권이 없어졌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양당 모두 기존 민주노동당의 부정적 경향이 확대되었다. 각 지역 차원에서 분당으로 인한 활동가들의 분리와 이탈로 인해 지역운동에 대한 진보정당의 역할은 상당히 취약해졌다. 그나마 운동역량이 상대적으로 두터운 서울지역조차도 대중동원력이 눈에 보이게 취약해지면서 지역 차원에서도 선거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위상이 약화되면서 한편으로는 정치노선에 입각한 진보정당의 전략적 공조보다는 야4당 공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경제위기 하에서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구조적 대안과 이념적 지향, 총노동전선을 강화하기보다는 소위 생활정치로 표현되는 득표전략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민주노총도 대중적 역량이 취약한 현실을 구실로 하여 야4당 공조를 실리주의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5기 보궐선거로 당선된 임성규 위원장은 지난 3월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민주노총 추진위원회’(통추위)를 제안하고 지난 9월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세력의 단결과 통합 촉구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러한 제안과 시도는 진보정당의 통합을 요구하는 대다수 조합원들의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낮은 지지율과 사회적 위상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이 무력화된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 논쟁을 촉발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단결과 통합을 촉구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평가에 기반을 두지 못하고 6월 지방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목적에 집착하면서 양당 간의 소모적인 정치공세와 부정적인 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을 포함한 제 정치세력과 함께 ‘선거와 득표’를 중심으로 한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세계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이념을 제시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지역적 기반의 강화, 민중연대 전선을 강화하는 ‘사회운동정당’으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혁신, 강화시키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전망을 분명히 천명해야만 단기적으로도 선거공간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제 정치세력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과 연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④ 사회적 교섭과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과 관련한 논쟁은 크게 네 국면에서 나타났다. 첫 번째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참여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노개위를 탈퇴하였으나 신한국당이 노동악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하여 1996-97년 총파업을 진행했다. 두 번째는 IMF 경제위기 직후 김대중 당선자의 제안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1998년 2.6 사회협약에 조인한다. 이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에 합의한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로 2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 배석범 직무대행이 사퇴하여, 단병호 금속노련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비상대책위가 출범했다. 단병호 위원장은 총파업을 결의하였으나 곧 총파업을 철회하였다. 세 번째는 1998년 이갑용 위원장 당시 국면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와 탈퇴를 반복했다. 5월 중앙위에서 ‘정리해고제 철폐와 재벌해체를 담은 중앙교섭 5대 요구안’을 중심으로 노정협상 요구하고, 5월 28일-29일 총파업을 진행했다. 그 후에 노정협상 진행과정에서 6월 노사정위에 참여했으나, 7월 양대노총이 정부의 일방적 금융 및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항의하여 노사정위 불참 선언을 발표했고, 7월 양대노총 위원장의 노사정위원장과의 합의에 따라 노사정위를 복귀했다. 다시 12월에는 일방적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강행과 교원노조 합법화 등 합의사항 불이행에 맞서 단식농성 돌입하고 노사정위 불참 선언을 발표하고 1999년 2월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노사정위 탈퇴를 공식 결정했다. 네 번째는 2004년 이수호 위원장 당시 사회적 교섭의 추진이다. 2005년부터 사회적 교섭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1월 20일에 열린 대의원대회는 사회적 교섭 안건에 대한 찬반토론이 격렬하게 이어지다가 무산되었다. 이어 3월 14일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는 이 안건을 놓고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고, 급기야 단상점거와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결국 민주노총은 당시 논의가 막 시작된 비정규직법안에 대해서만 정부와 협상한다는 전제를 두고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기로 한다. 다섯 번째는 2006년 조준호 위원장 당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의 9.11 야합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여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에 관한 논의를 진행한다. 그러나 2006년 9월 11일 타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노총과 경총, 노동부의 기습적인 야합이 벌어진다.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업무 유지의무 부과와 대체근로 허용이 합의된다.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하고 한국노총과 연대 중단, 총파업을 선언한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은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하였다.
그동안 역사에서 보이듯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틀’을 중심으로 한 상층의 제도화 전략은 정권과 자본이 노동유연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제로 활용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서는 서구의 코퍼러티즘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동측면에서 보완하기 위한 ‘공급중시 코퍼러티즘’으로 변모했다. 더구나 한국과 같은 반주변 국가에서는 국가가 합의를 위해 양보할 것도 별로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조 운동의 전략적 전환의 문제고, 이 노선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사정 교섭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전술의 문제다. 지난 논쟁은 노사정 교섭과 관련된 모든 쟁점을 “전부 아니면 전무”로 환원하며 논의를 지나치게 과열되게 만들었다. 일정한 정세에서는 노사정 교섭에 노동조합이 참여할 수도 있다. 혹은 교섭을 오히려 전술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반대론자 앞에서는 노사정위원회를 전술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처럼 변명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전략적인 방향이라고 주장하면서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다. 사실 민주노총의 입장은 전략적인 수준에서 노조운동의 노선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다’라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공허한 변명이었다. 논의 과열의 책임은 민주노총 집행부에 있었다. 결국 쟁점이 이렇게 형성된 탓에 노사정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아니라 특정 정세에서 필요할 수 있는 노사정교섭의 전술적 활용마저도 모두 ‘논외’가 되었다.
⑤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의 한계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의 약화와 함께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모두 비정규직 조직화를 최우선의 과제로 천명하였으나,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와 관련 제도의 개악이 시도되면서 비정규직 관련 권리와 제도는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왔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정리해고자와 근로제 파견제’ 합의라는 치명적인 오류를 필두로 하여 매 시기의 비정규직 관련 법 제도 개악국면에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권리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왔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축소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민주노총은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이기주의’라는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출되었다.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단순히 조합원의 양적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정권과 자본의 노동비용 축소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통제, 노동조합 무력화에 맞서 약화된 조직의 투쟁력과 조직력, 계급대표성을 재건하기 위한 사활적인 조직혁신 과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민주노총의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첫째, 주요 대공장의 사내하청 조직화와 투쟁의 과정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과 단결의 강화, 비정규직의 주체화의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과 갈등,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투쟁과 요구를 대리하거나 억압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이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확대된 격차, 고용불안의 공포를 배경으로 한 정규직의 이기주의, 대공장지부 집행부의 노선과 투쟁의지, 하청지회의 주요 활동가의 정치적 성향 등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대공장에서의 정규직-비정규직(원청-하청노동자)의 공동요구와 공동투쟁, 그를 통한 계급적 단결은 향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격과 전망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라는 측면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특히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방침은 조직형식적인 완성이나 조합원의 양적 확대를 넘어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과 공동투쟁, 현장의 투쟁력 강화라는 원칙적 입장에 근거해서 추진해야 한다.
둘째,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전조직적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총연맹의 지역본부, 산별노조 지역본부와 지역지부 대부분은 소속 조직에 대한 사업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며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을 제대로 전개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전조직적 차원에서 총연맹-산별-지역본부-단위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재정과 전담 조직화 담당자를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조직적 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지역의 주요 사업장이 미조직 조직화에 주체로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금속의 경우 지역, 공단에 밀집되어 있는 중소영세사업장의 조직화의 성과가 미미한데 지역지회 강화(재정, 인력 지원)와 자발적 현장진출 활동가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집중적인 조직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차원에서 제기되었으나 조직화된 비정규직들도 자신의 조합적 이해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일부 지역일반노동조합과 공공노조 지역지부에서 상대적으로 자기 사업장을 넘는 공동투쟁 기풍이 형성되어 있으나, 상당수 노조에서는 자기 사업장의 이해에 매몰되거나 대리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이것은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사업장의 규모의 영세성이나 신분적 불안정성, 장시간 근무형태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이 많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노조나 산별노조의 지역지부와 지역지회의 부족한 인력과 과다한 교섭으로 인해 일상적 교육 학습을 비롯해 조합원 의식화 사업을 진행하기에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업종이나 지역에서는 전략적으로 집단교섭을 쟁취하기 위한 조직화 방식을 취하거나, 현장에서 교섭을 소화할 수 있도록 현장 역량을 키워내야 한다. 또한 산별 지역지부의 경우 총연맹이나 산별 지역본부와 지역지부의 역량을 강화하여 교육 학습 등 조합원 의식화와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편 민주노총의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전략조직화 사업’이다. 민주노총은 2005년 전략조직화를 위해 5대 조직화 핵심영역(유통, 공공, 사내하청, 건설일용, 특수고용)을 설정하고, 50억 기금모금과 신규 조직활동가 24명 배치, 총연맹과 산별연맹의 전담부서와 인력확보, 미조직비정규특별위원회 구성을 결의했다. 전략조직화 사업은 민주노총과 노동운동 내부에서 미조직 비정규 운동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러 산별노조(연맹)와 지역본부에서 미조직 비정규 사업에 보다 많은 인적 물적 역량을 배치하고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전략조직화 사업은 50억 기금모금 중 22억 밖에 모금하지 못했던 것을 비롯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선 5대 영역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전략조직 대상 속에서 실제 전략조직화를 진행하기 위한 대상의 집중과 선택이 제대로 되지 못함으로 인해 조직화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이는 총연맹이 주관하는 전략조직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각 영역에 대한 전략 조직화 계획, 조직 활동가에 대한 점검과 훈련이 산별연맹과 각 개인에게 맡겨지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둘째, 조합원의 양적인 확장을 넘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일환이라는 전략조직화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지 못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조직화 선정과정에서부터 총연맹이 직접 주관하여 산업구조와 미조직 노동자 분포 등 객관적 조건과 함께 전략조직화를 주진하는 주체인 지역본부, 해당 산별본부ㆍ지역지부의 역량, 조직화 사업의 경험, 연대운동의 역량을 검토하고 해당 전략 조직화 사업의 구체적 목표와 계획을 명확히 했어야 했다. 산별과 지역본부의 조직 활동가 몇 명으로 한 영역에서 제대로 조직화를 진행하기 어려우며, 각 조직 활동가은 각자 영역에서의 경험과 내용을 쌓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산별 지역본부, 지역지부와 총연맹 지역본부의 조직혁신사업의 강화라는 관점을 분명히 세우고, 5개 영역 중 지역중심의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로 전략조직화의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또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지역본부의 논의로 이관될 경우 산별노조 지역본부/지역지부 간 경쟁이 과열되지 않도록 총연맹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객관적인 근거와 주체적인 역량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대상을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점검, 지원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2009년 경제위기 대응 평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2008년 하반기부터 경제위기에 접어들었으며 한국 역시 급격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의 손실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경제위기에 대한 고통분담, 노사화합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며 해고 및 계약해지, 임금동결, 조업단축과 잔업특근 축소로 임금삭감을 감행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 1만 명, 공기업 1만 9천 명 등 인력감축과 ‘기간제 사용기간 4년으로 연장, 파견대상 확대,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한 정규직 고용불안 심화’ 등 노동유연화 정책을 전면화하는 법 개악을 추진하고 최저임금조차 삭감을 시도했다. 또한 기만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을 통해 청년인턴, 해외봉사와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기간제와 단시간 노동자를 확대했다.
민주노총은 2009년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일할 권리와 노동기본권 쟁취 비상투쟁본부’를 결성하고 산별대표자회의와 지역본부장단회의를 중심으로 투쟁본부를 운영하며 3월 산별연맹 임단협 투쟁 조기돌입 선포 등 투쟁계획을 수립했다. 2009년 주요 요구로 △총고용 보장확대 및 사회안전망 강화 △반노동 반민주 반평화통일 MB정책 폐기 △신자유주의 극복대안 수립을 제출했으며,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총고용 유지 확대와 사회임금 확대, 실업 대책을 핵심 요구로 내세웠다. 하지만 2월 6일 민주노총의 핵심 임원 성폭력 사건으로 이석행 위원장이 사퇴하고, 2월 11일 임성규 공공운수연맹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 (4월 1일 대의원대회에서 임성규 비대위원장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한다.) 경제위기 대응 초기부터 민주노총의 도덕성이 심각히 훼손되어 사회적인 영향이 급격히 축소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2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용안정특별법 제정을 통한 일자리 지키기 △임금삭감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공공부문 100만 개 좋은 일자리 창출 △모든 국민에게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4대 요구를 제출하며 대정부, 대자본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은 2월 23일 한국노총과 경총, 정부와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경제위기 극복 노사민정 합의’를 추진했다. ‘노동자의 임금삭감’이라는 고통전가와 ‘기업의 고용유지’를 교환하는 내용이었다. 이 합의서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2월 25일 전경련은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모여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까지 삭감하기로 하고 기존 직원의 임원삭감을 통해 만들어진 자금으로 신규 직원이나 직원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의 핵심 투쟁동력인 금속노조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정권과 자본의 고통분담, 노사화합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는 가운데, ‘공생협약’과 정갑득 위원장의 ‘일자리나누기를 통한 노동자양보론’이 <중앙일보>를 비롯해 보수언론을 통해 보도됨에 따라 현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1월 7일 열린 금속노조 중앙위원회에서 대다수 중앙위원들과 현장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좌초되긴 하였으나, 이러한 사건은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직 내적인 갈등과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공공운수연맹 역시 2008년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통합이 좌절로 조직력이 이완된 상태였고, 주요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이 ‘공공기관 4차 선진화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다수 공공기관노조들은 자연감소(정년퇴직)와 희망퇴직, 회사간부의 구조조정을 통해 3-4년 간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현장의 긴장감이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전반이 경제위기라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적으로 투쟁태세를 거의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2009년 민주노총의 경제위기 대응은 전반적으로 무기력했으며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우선, 민주노총의 경제위기 대응 계획은 요구의 적실성을 떠나 대중투쟁 동력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투쟁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투쟁동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일방적 지침이 아니라 구체적인 산별노조, 단위사업장의 현실진단에 근거하여 어떻게 투쟁 동력을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자체가 부재했다. 그 나마 ‘총고용 보장’의 제도적 요구를 사회적으로 쟁점화할 수 있는 유력한 계기였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분쇄투쟁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날로부터 210일, 공장점거 파업을 기준으로 77일 간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한 대응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투쟁을 엄호하기 위한 자동차 범대위 구성도 당초 금속에서 4월 말에 제안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과의 사전논의와 조율과정이 길어지면서 6월 초에야 결성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투쟁의 핵심이었던 금속노조의 무기력함이다. 금속노조는 연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금속노조 사회선언’ 등을 통해 ‘모든 해고 금지, 총고용 보장’을 핵심요구로 설정했고, 금속노조 소속의 다수 구조조정 사업장이 발생했음에도 쌍용차 단위사업장만의 현안을 넘어 전국적, 사회적 쟁점화를 위한 기획, 실천을 조직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왜곡된 사회구조를 폭로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관점과 요구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금융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가 남한사회를 세계적 금융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기 위한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했다. 한국사회는 수출입 의존도가 90%가 넘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유출입에 취약한 경제이다. 따라서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을 억제하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외환거래세, 자본이득세, 각종 펀드의 산업자본 다수 지분 획득 금지 등 금융자본을 억제, 통제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적 요구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금융투기거품을 키우는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완화 정책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의 폐지,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현행의 사회구조를 변혁하지 않고는 초민족자본에 의한 부의 수탈과 초민족자본의 급속한 이탈에 따른 경제 붕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노총은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과 요구안의 구성에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민주노총은 현 경제위기를 세계적 차원의 이윤율 하락과 같은 구조적 원인에서 찾는 게 아니라 소비위축에 따른 실물경제의 위기, 즉 시장왜곡이나 분배의 실패라는 일시적 불합리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재정지원 확대 → 고용창출 → 내수확대 → 경기회생’이라는 선순환 경제구조의 수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세계적 차원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정책의 변화를 통해 경제위기가 해결 가능하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사회구조의 변혁 없이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가 가능한 것으로 호도함으로써 근본적인 대응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불철저한 인식은 민주노총의 주요 요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위해 고용안정특별법을 제안하는 데, 고용유지지원금의 확대와 해고회피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하지만 개별기업들이 이러한 유인책만으로 해고를 자제할 것이라는 기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결코 충족될 수 없다. 고용보장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해고나 계약해지 권한을 강제적으로 제약해야 한다. 이는 정책적 요구가 아니라 강력한 대중투쟁에 근거하지 않고는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 요구도 독일의 폭스바겐사의 28.5시간 도입(하루 7시간 4일)과 프랑스의 오브리법 도입(주 35시간제)의 예에서 보이듯이 결과적으로 비전형적인 실노동시간 증가와 노동자들의 단결력 약화로 귀결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나 한국사회처럼 원하청 구조가 확대된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정규직 일자리의 증가가 아니라 저비용 하청의 증가로 이어질 뿐이다. 더구나 변형시간근로제가 점점 확산되는 상황에서 법정 일일 노동시간이 아니라 주당 노동시간, 연간 노동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변형근로시간제의 도입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 밖에도 정권과 자본이 강력히 노동유연화를 관철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지원금 요구가 얼마나 현실적인가? 수천억 원의 주식배당, 이자지불을 제외하고 기업의 재투자를 위한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경제위기 하의 주식배당금, 금융소득 및 이자소득, 외환차액으로 인한 자본이전 소득 등에 대한 과세와 환수방안을 제기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사내유보금 문제는 사용내역 공개를 통해 사회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할 사항이다.) 이렇듯 민주노총의 제반 요구를 제출함에 있어서 정책이 대중투쟁을 통해 실현되었을 경우 효과를 명확히 고려하여 정확하게 설득력 있는 요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보민중진영 연대체나 자동차범대위 등 경제위기 대응에 맞서는 태세를 구축함에 있어서 반MB 전선의 기조와 현실적인 영향력을 크다는 이유로 참여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야 4당과의 공조(원내 영향력이 큰 민주당 중심)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민주노총이 반MB 전선에만 집착할 경우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핵심적인 정치적 방향을 유실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운동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 운동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파괴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위기진단과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 검토
민주노총의 위기와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은 크게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이데올로그, 현장조직을 포함한 민주노조운동 내 정치조직, 단위 현장 등 세 차원에서 각기 다른 입장과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이데올로그들 중 세계자본주의 이윤율 하락에 따른 구조적 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사회변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은 일부 소수에 그치고 있다. 대다수 입장은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변화한 시대적 조건에서 ‘87년 식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장하며, 이념적 대안으로 ‘사회민주주의, 제3의 길’(김형기, 경북대 교수), ‘유럽의 사민주의 모델’(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개방적 시장경제와 짝을 이루는 노동운동’(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투쟁 일변도가 아니라 참여 전술’(김유선), ‘최대강령적 요구방식의 전투적 노동운동 아니라 여론의 압력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성취해나가는 운동방식’(최영기)을 강조하면서 이명박 정권 하에서 실제 활용 가능성은 의심하면서도 ‘노사정 3자 기구의 활용 가능성’(김유선), ‘제도적 참여와 능동적 협력’(최영기)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현장조직을 포함한 대다수 정치조직들의 이념과 노선은 이와는 결을 달리한다. 한편 단위 현장 조합원들을 특정한 이념과 노선으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체로 현장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투쟁력, 사회적 영향력, 조직률)의 약화와 함께 노조를 통한 집단적 해결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경제위기에 따른 고용불안에 대한 공포를 배경으로 패배주의와 실리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이러한 패배주의와 실리주의의 이면에 항상적인 고용불안, 임금과 복지의 삭감, 노동조건의 하락 속에서 고통과 불만이 응축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민주노총 1기, 4기, 5기를 관통하여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국현장노동자회’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노동운동연구소, 현장조직의 입장을 중심으로 검토하도록 한다.
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
한노사연은 ‘새로운 사회협약’(고용주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단체교섭의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한다는 독일식 파트너십 모델을 주창한다. 나아가 한노사연이 제시하는 산별노조의 임금, 고용 의제도 자연스럽게 ‘유연안정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독일식 노동조합 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다. 즉 노동조합이 대량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임금삭감을 동반하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시간 계좌제(변형근로제의 완성판), 임금피크제와 같은 노동유연화를 수용하되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도록 기업과 합의를 이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쌍용차 사태를 거치면서 독일식 모델이 마치 정리해고의 대안인 것처럼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사회협약을 통해 유연안정성을 수용한다는 것은 1998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를 합의한 후 조합원으로부터 일어난 반발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공연하게 실현되기 힘들다. 한노사연 소장이었던 김금수 씨가 2003~2006년 노사정위원장을 맡으며 사회적 파트너십을 추진하였으나 사실상 중도 좌초되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고용안정과 노동유연화를 맞바꾼다는 전략이 이른바 ‘유연안정성’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노사정위원회가 민주노총이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건 간에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 노동유연화라는 정부와 기업의 전략이 관철되는 도구로 작동했다.
결국 한노사연의 노선을 따르다보면 민주당의 재집권→친노동적 정치환경 조성→제도 개선→사회적 파트너십 형성, 산별교섭력 확보, 조직화 자원 확보라는 전략이 유일한 경로가 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노사정위원회가 무력화된 상태고, 설사 민주당이 재집권하더라도 특히나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정세를 고려하면 과거 노무현정부의 경험처럼 결코 민주노총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을 펼 수 없는 상황이므로 문제해결의 경로가 소실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노사연의 대안은 매우 은폐된 형태로 노동조합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② 한국노동연구소의 한국노동의 위기와 재구성
한노연은 현재 민주노총의 위기를 민주노총 전 조직에 걸친 구조적 위기로 규정하고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 조직체계 및 조직운영, 조직민주주의 및 조직문화, 정책과 사업, 운동 주체 형성 및 재생산, 노동자 의식과 생활문화 전반의 문제로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라는 민주노총의 두 가지 핵심 전략이 좌초할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는 노동자 내부 격차의 문제,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전망을 확보하지 못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노연은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하여 ‘공공, 민간제조업 부문의 양대 부문 중심의 대산별 체제로의 편제’와 ‘산별 기초조직으로서 지역지부 편제’, ‘산별 중앙교섭’을 핵심적 과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속산별의 지역지부로의 재편이 기업지부의 반발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고, 공공운수 통합산별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지난 ‘조직형식주의’적 산별노조 건설운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현실을 고려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속, 공공 등 주요 산별노조의 중앙교섭이 사실상 불가한 조건에 처하면서 단계적, 입체적 교섭전략으로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과제와 쟁점까지 다루지 않았으나 한노연이 여기서 제시한 산별노조, 현장, 총연맹,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단과 혁신과제에서 큰 틀에서 동의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다만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큰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 관련하여 대부분의 현장조직들이 지역본부가 산별본부/지부를 관장하지 못하면서(산별노조 중심의 구조로 인해 산별노조 중앙에서 지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현실) 지역본부가 업종과 기업을 넘는 지역노동운동의 구심으로 역할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한노연은 이에 반해, 지역본부가 ‘대관(對官) 업무, 정치사업, 지역연대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적 평가를 제기하고 있다. 한노연이 제기하는 지역본부를 둘러싼 과열경쟁이나 사업의 독점 문제는 지역본부를 운영하는 집행부의 정치적 성향과 왜곡된 운동기풍의 문제에서 접근해야 할 사항이지 지역본부가 지역노동운동의 구심으로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는 역할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과 관련하여 민주노총 중심의 총단결과 산별노조(연맹)으로의 권한이양을 병렬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데, 지역본부에 대한 접근의 시각의 연장이라면 후자의 경향으로 입장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인 노동유연화, 노조 무력화 공세에 맞서 총노동전선의 강화를 위해서는 산별노조의 혁신과 강화의 방향 또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총단결의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③ 주요 현장조직의 입장
민주노총의 위기에 대해서 일부 강조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다수 현장조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경제주의/실리주의’, 사회변혁적인 지향의 약화, 조합원의 신뢰약화와 지도력의 붕괴 등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노동전선의 경우 민주노총 주류 세력의 민주노총 선거에서의 어용세력과의 연합의 문제, 남북정권 간의 선언과 협약 중심의 통일운동, 민주연합노선(시민운동과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과 민생민주국민회의에 참여한 문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각 현장조직들이 제출한 민주노총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은 혁신의 기조와 방향에서부터 구체적인 실천과제까지 추상수위와 구체성의 수위가 다르다. 또한 정해진 쟁점에 대한 입장을 제출한 것이 아니어서 내용의 포괄범위도 상이하다. 따라서 공통의 혁신과제인 사회변혁적 이념과 노선의 정립, 총노동전선의 구축, 총연맹의 강화와 지역본부의 강화, 조직형식적인 산별노조 건설과정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산업, 업종별 공동투쟁을 통한 현장의 강화와 입체적인 교섭전략 마련, 현장 일상활동의 강화와 교육의 강화 등에 대해서는 합의를 바탕으로 책임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출된 문제의식과 다양한 혁신과제에 대해서는 현장조직들이 상호 간에 검토하여 혁신과제를 풍부화,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주요한 논쟁지점을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전국회의가 조직형식적 산별건설 과정을 비판하며 제안하고 있는 ‘과도한 구획정리나 대산별적 통합은 무리한 설계’라는 입장은 논쟁의 여지가 존재한다.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등 주장하고 있는 대산별노조 건설의 지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지, 현재적 시점에서 일정박기 식이 아니라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력을 강화함을 통해 충분한 합의와 동의에 기반을 두어 대산별을 지향하자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산별노조에서 이탈하여 별도의 산별을 건설하는 등 갈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조직 내 논쟁과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전국회의가 제출하고 있는 ‘총파업전술, 전국집중투쟁, 상경투쟁의 남발’ 역시 ‘현장/지역/산별단위 투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투쟁전술을 배치’한다는 기조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으나 정세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총파업이나 전국집중 투쟁을 자제하는 것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을 수는 없다. 더욱이 노동전선 등 많은 현장조직들이 민주노총 4기-5기 집행부의 투쟁회피, 노사협조적 활동에 대해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입장은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을 일반론적으로 제출하기보다는 현실투쟁을 앞장서 책임지면서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전술운영과정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셋째, ‘비정규연맹’, ‘비정규, 이주, 장애인 의결기관 할당제’는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현재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틀을 통해 내용적, 실천적으로 비정규직의 투쟁력을 제고하고 정규직-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활성화하는 방향에서 문제를 접근해야한다. 민주노총 내의 ‘비정규연맹’과 같이 독자적 조직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칫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조직적 갈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비정규, 이주, 장애인 의결기관 할당제’도 민주노총 사업과 체계에서 비정규, 이주, 장애인의 요구를 실현하고 조직화, 주체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제기하지 않을 경우 여성할당제의 예에서 보이듯이 제도 도입의 성과에 안주하여 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을 등한시한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 노동전선의 ‘배타적 지지방침의 실질적 폐기와 변혁적 노동자정치운동의 확대강화’와 관련하여 근거와 입장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경쟁하는 여러 정치세력이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특정한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서는 안 되고, 조합원들의 정치적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는 관점이라면 동의하기 힘들다. 현재 민주노총의 현실이 한나라당, 민주당 등에 대한 상당한 지지가 실존하는 조건에서 이러한 운동을 공식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방편으로 ‘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데 자신의 역량을 투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노동자정당의 성격과 활동이 의회주의, 선거주의에 갇히지 않고 ‘사회운동정당’으로서 역할 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흐름 등 현존하는 정당들 중 일부 정당에 대해서 배타적 지지를 하는 것으로 인해 다른 정치세력들의 현장 정치활동이 억압당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다섯째,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와 관련해서도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파적 이해의 차원에서 현재의 대의원선거 방식을 유지하자는 입장이 있을 수도 있으나, 금속노조 직선제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장의 조건에서 직선제가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리라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직선제의 도입을 주장한다면, 직선제를 계기로 현장을 바꾸어내고 계급적 단결을 확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의 혁신과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동안 운동과정에서 형성된 현장조직 상호 간의 불신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불신의 바탕에는 현장조직 대부분에서 조직의 입장과 조직원의 실천의 괴리가 상존했다는 사실이 깔려있다. 어느 조직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현재까지 활동과정에서 좀 더 투쟁기풍을 가지고 있는 조직과 노사협조적 운동의 모습을 보여 왔던 조직들의 차이는 명확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현장조직들이 자신의 이해득실을 위해 인맥조직으로 조직을 운영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노선과 입장에 충실한 조직적 원칙과 기풍을 세우고 이를 지키지 않는 조직원들은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상호 간에 자기혁신이 동반될 때 진정성 있게 정파 간의 논의와 통합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어느 현장조직도 민주노총을 독자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실존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투쟁력 강화를 중심으로 한 현장조직 간의 신뢰회복과 단결의 강화는 매우 관건적인 문제이다.
민주노총의 혁신 과제
‘실리주의’를 넘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화운동으로!
당분간 세계경제가 일정한 회복양상을 보인다 하더라도,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자본주의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극복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예상된다.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경향이 역전될 정도로 산업에서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미국을 대체해서 새로운 자본주의 생산방식으로 무장한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약간의 이윤율 증대를 가져왔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그 심각한 모순을 드러냈으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조건으로 인해 다른 방식의 탈출구를 찾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주류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더블딥’(이중경기침체) 논란이나, 일각에서 2010년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최종적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이러한 심각한 위기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이명박 정부와 자본의 전략은 명확하다. G20을 필두로 하여 세계적 차원의 공조와 함께 한미FTA를 필두로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을 확대하고,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완화 정책 등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또한 전면적인 노동유연화 정책과 함께 향후 정책시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제조업과 공공부문 대사업장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의 전면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 일각에서는 ‘새로운 사회협약’이 노동운동 활성화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민주노총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돌아볼 때,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이 가진 폐해는 너무도 심각하다. 정권과 자본과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실리 획득을 목표로 한 운동은 당장의 실리획득에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위기의 시대를 맞아 ‘단기적인 실리’를 집착하기보다는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적 이념과 노선을 수립하고 노동자, 민중운동의 계급적 단결의 구심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초민족화된 세계자본주의 조건에서 한국사회의 변혁은 국제주의적 시야와 전략이 없이는 현실화될 수 없다. 국제노총 회의 참석, 국제금융무역기구 회의에 대한 일회적 대응, 국내 현안에 대한 국제적 지원요청, 외국 현안에 대한 지원이라는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적 수준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와 전쟁, 생태파괴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전략적 운동구상을 구체화화해야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 하에서 공격당하고 있는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운동은 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총노동전선의 구축과 총연맹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운동의 강화
정권과 자본은 지난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모든 성과를 무력화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고용, 임금, 복지 등 직접적인 성과에 대한 공격을 넘어 이를 가능하게 했던 노동자들의 단결의 구심으로서 ‘노동조합’ 운동 자체를 파괴, 무력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반면 민주노총의 상황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지도부로서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주요 산별노조 또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정권과 자본의 공격은 전방위적인 데 반해 민주노총의 활동방식은 산별노조와 단위 사업장의 틀을 못 넘어서고 있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총노동전선의 구축이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공공운수연맹(공공노조, 운수노조)을 포함한 주요 산별노조 간에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의 원칙과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산별노조의 시기집중 임단투조차 제대로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어떻게 투쟁동력을 형성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금속, 공공의 핵심 투쟁을 전국전선으로 확장하는 것과 동시에 시기집중을 포함하여 임단협 투쟁에 대한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이 중요할 것이다. 임단협이 포괄하는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투쟁을 기획해야 하며, 최저임금과 같은 노동조건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투쟁에서 총연맹이 전체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동력 형성과 주요 산별노조의 핵심 투쟁을 전국화하는 것과 동시에 경제위기 하에서 노동자 민중들의 노동권 생존권 보장과 전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제도적 요구들을 정선하여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또한 전국적인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해서는 지역연대운동의 구심으로서, 총연맹 활동의 집행기구로서 지역본부의 위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노조 조직화, 정세대응을 높일 수 있는 지역 연대의 활성화를 위해서 지역본와 산별지역본부/지부와 통합적 운영 및 공동기획ㆍ공동집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 지역본부에 대한 인력, 재정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제도적 요구의 전면화
세계경제는 일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하락과 이에 따른 중소형 은행 부도, 약간 회복양상을 보이던 주택가격의 하락으로의 반전 가능성, 유럽 국가들의 정부부채 및 재정적자 확대와 유럽은행들의 대규모 부실, 중국의 과잉투자와 거품 논란 등이 이런 불안을 낳고 있는 요소다. 한국경제는 원화가치 하락, 중국의 예상을 뛰어넘은 대규모 경기부양 및 성장,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심각한 위기국면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벗어나고 있으나 대외변수에 여전히 취약한 경제체질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투기적 유출입으로 인해 환율 급등락과 투기거품 형성 및 붕괴가 단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초민족적 자본의 투기적 유출입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 대규모로 유출될 뿐만 아니라 소위 먹튀 자본의 이탈에 따른 대규모 정리해고와 고용불안이 잇따르고 있다. 따라서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을 억제하고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한편 경제위기에 대한 부담은 노동자에게 손쉽게 전가되었고 대외변수의 불안정성은 한국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고 갔다. 우선 경제위기는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을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중층화된 하청구조와 대규모 비정규직 고용은 경제위기에 노동의 유연성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노조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많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또한 장시간 노동(연장근로나 특근)을 통해 낮은 통상임금을 보전해 오고 있는 노동자들은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작업량과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심각한 임금하락을 경험하였다.
따라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 민중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요구와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를 동시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 완화와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경제위기 시에 노동자의 노동권 생존권 보장의 핵심 요소로서 고용과 임금과 관련하여 제도적인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 경제위기 하에서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 ‘당장의 적자 기업에서 과거 누적 흑자를 활용한 고용유지’, ‘공공부분 인력 구조조정 반대’, ‘부도 가능 사업장에서 정부의 지원을 통한 고용 유지’, ‘해고 및 계약해지를 제한하는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이는 전사회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의 일환으로 ‘해고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개별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하되 전국적으로 투쟁력을 집중해서 이런 법 제도적 요구를 쟁취해 낸다면 고용문제를 일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이고, 이런 투쟁이 일정하게 성공한다면 이후에도 지속될 개별사안의 투쟁에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한편 임금과 관련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산별노조 내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적절한 수준의 정액임금 인상, 특별(성과)상여금 방식이 아닌 기본급 중심의 임금인상, 임금의 최저선을 끌어올리는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으로 요구를 정식화하고 투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사회구조를 투기화, 불안정화하여 노동권을 위협하는 금융화에 대한 비판과 통제장치의 마련, 초민족 금융자본의 투기적인 유출입 억제와 통제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요구를 전면화해야 한다. (상업은행들의 투자업무 제한 및 중단, 겸업화 금지, 신용의 증권화 금지, 자본시장통합법 폐지, 금산분리 완화 반대, 한국은행에 대한 정부 통제 및 금융감독 권한 부여, 외환거래세 도입, 외환거래자유화 제한, 자본이득세, 초민족적 자본의 인수합병 참여 제한, 각종 구조조정 기금 운용에 대한 감시와 통제장치 확보 등.)
‘조직형식주의’를 넘어 계급적 단결을 중심으로 산별노조의 혁신과 강화
기간 조직형식 중심의 산별노조운동의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업별 노조를 넘어 초기업적 단결을 형성하고, 공동투쟁으로 노동자간 격차를 축소하자는 산별노조 건설의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조직형식주의’를 넘어 조합원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기 위한 산별노조 혁신과 강화방안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산별노조의 혁신과 강화는 민주노조 총단결 혹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민주노총 강화와 지역운동의 구심으로서 지역본부, 지구협의 강화라는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산별 중앙이 총연맹 차원의 총노동전선 구축에 복무할 수 있도록 공동기획과 투쟁의 집중, 이를 위한 제도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본부, 지구협을 중심으로 산별노조 지역본부, 지역지부와의 통합적 운영을 통해 산업, 업종, 기업규모 등 각종 차이를 넘어 실질적이고 계급적인 단결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경우 구체적인 산업구조, 정권과 자본의 정책, 조합원의 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조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산업, 업종 차원의 공동투쟁, 원청-하청 간의 공동투쟁,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는 가장 관건적이다. 또한 이미 중앙교섭이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서 노조가 투쟁으로 자본을 강제하여 교섭구조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공동투쟁을 중심으로 입체적인 교섭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한축으로는 주요 완성차지부를 중심으로 원-하청의 공동요구와 공동투쟁의 모범을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다른 한축으로는 형식화된 지부 집단교섭에 대한 중앙 차원의 투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투쟁은 향후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핵심 투쟁에 대한 전략적 공동기획을 통해 사회적, 전국적 투쟁전선을 강화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기업지부의 해소와 관련해서도 무리한 재편으로 인한 조직 갈등을 확대하기보다는 공동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완성차지부와의 공동투쟁 기획을 통해 산별노조의 현실적 필요성을 조합원들에게 확인시키는 방식으로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 ‘1사 1조직’의 경우도 타타대우상용차, 캐피코, 동원금속 등 모범사례와 기아자동차지부에서의 조직 갈등의 사례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외형적 조직 확대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 강화하는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2006년 공공운수 통합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과도적 조직으로 출범한 공공노조/운수노조의 경우 운수노조가 통합산별건설을 결의하지 못하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과도조직으로서 공공노조도 공공기관(전국단위 기업지부), 단위 기업지부, 초업종지역지부 간의 조건과 입장의 차이로 인해 내부적 조직재편을 둘러싼 논쟁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통합산별노조 건설이 불투명할 경우, 과도조직으로서의 공공노조 또한 존립의 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실질적인 통합산별노조 건설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공공노조는 산별교섭과 관련해서도 한축으로는 공공기관(전국네트워크 대사업장)의 대정부 교섭이 관건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교섭거부라는 장벽에 막혀 공동투쟁을 통한 돌파가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지부의 경우 규모의 영세성과 집단교섭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업장 교섭에 대부분의 활동력이 투여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에 맞서 공동투쟁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지역지부의 경우 조직화 과정에서부터 집단교섭을 염두에 두고 조직하거나 현장의 교섭역량을 키워내는 등 다각도로 과다한 교섭의 문제를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공공노조의 역량을 고려할 때 공공부문 선진화에 맞선 투쟁과 지역지부의 강화를 위해서는 총연맹, 총연맹 지역본부ㆍ지구협과의 긴밀한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공공노조 내부 조직체계 재편과 관련해서는 공공기관지부와 지역지부 간의 논쟁구도 방식으로 비화되지 않아야 한다. 한축으로는 공공기관지부에 대한 중앙의 사업을 강화하고, 다른 한축으로는 ‘지역본부’ 형식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실질적으로 지역지부를 강화하고 지역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중앙과 지역지부의 긴밀한 논의와 실천계획의 마련이 중요하다.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사회운동정당’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을 포함한 제 정치세력과 함께 ‘선거와 득표’를 중심으로 한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과 대중운동의 혁신 및 정치적 재조직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실리획득(세액공제, 득표)에 주로 의존했다. 특히나 2004년 총선 이후 ‘의회주의’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즉 ‘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국회의원 당선의 현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역구의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파 간 경쟁구조도 심화되었다. 이런 당의 문제점이 확대되어 당의 분열로 이어진 것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양당 모두 기존 민주노동당의 부정적 경향이 확대되었다. 각 지역 차원에서 분당으로 인한 활동가들의 분리와 이탈로 인해 지역운동에 대한 진보정당의 역할은 상당히 취약해졌다. 사회적으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사회적 위상의 약화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라는 조건에서 진보정당의 전략적 공조와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하기보다는 야 4당 공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민주노총 추진위원회’(통추위) 활동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평가에 기반을 두지 못하고 6월 지방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목적에 집착하면서 양당의 간의 소모적인 정치공세와 부정적인 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노동자에 공격을 노골화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이념을 제시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지역적 기반의 강화, 민중연대 전선을 강화하는 ‘사회운동정당’으로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전망 하에서 단기적으로도 선거공간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제 정치세력들이 경제위기 하의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과 연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현실에서 부정당하고 있는 배타적 지지방침과 관련해서는 단순한 방침 폐기여서는 곤란하며 민주노총이 ‘사회운동정당’으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중심축과 경로를 제시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흐름 등의 정치활동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방침’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의 혁신과 강화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단순히 조합원의 양적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정권과 자본의 노동비용 축소와 정규직-비정규직의 분할통제, 노동조합 무력화에 맞서 약화된 조직의 투쟁력과 조직력, 계급대표성을 재건하기 위한 사활적인 조직혁신의 과제이다. 전조직적 차원에서 총연맹-산별-지역본부-단위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재정과 전담 조직화 담당자를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조직적 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지역의 주요 사업장이 미조직 조직화에 주체로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대공장에서의 정규직-정규직(원청-하청노동자)의 공동요구와 공동투쟁, 그를 통한 계급적 단결은 향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격과 전망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라는 측면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특히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방침은 조직형식적인 완성이나 조합원의 양적 확대를 넘어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과 공동투쟁, 현장의 투쟁력 강화라는 원칙적 입장에 근거해서 추진해야 한다. 또한 금속의 경우 지역, 공단에 밀집되어 있는 중소영세사업장의 조직화의 성과가 미미한데 지역지회 강화(재정, 인력 지원)와 자발적 현장진출 활동가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집중적인 조직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차원에서 제기되었으나 조직화된 비정규직들도 자신의 조합적 이해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상활동과 교육 학습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노조나 산별 지역지부와 지역지회의 부족한 인력과 과다한 교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가능한 업종이나 지역에서는 전략적으로 집단교섭을 쟁취하기 위한 조직화 방식을 취하거나, 현장에서 교섭을 소화할 수 있도록 현장 역량을 키워내야 한다. 또한 산별 지역지부의 경우 총연맹이나 산별 지역본부ㆍ지부의 역량을 강화하여 교육 학습 등 조합원 의식화와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1기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통해 조합원의 양적인 확장을 넘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일환으로서 전략조직화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산별 지역본부ㆍ지역지부와 총연맹 지역본부의 조직혁신사업의 강화라는 관점을 분명히 하고, 5개 영역 중 지역중심의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로 전략조직화의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조직화의 선정과정에서부터 총연맹이 직접 주관하여 산업구조 및 미조직 노동자 분포 등 객관적 조건과 함께 전략조직화를 주진하는 주체인 지역본부, 해당 산별본부와 지역지부의 역량, 조직화 사업의 경험, 연대운동의 역량 등 검토하고 해당 전략 조직화 사업의 구체적 목표와 계획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지역본부의 논의로 이관될 경우 산별노조 본부/지부 간 경쟁이 과열되지 않도록 총연맹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객관적인 근거와 주체적인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대상을 선정, 지속적으로 사업을 점검, 지원해야 한다. 전략조직화 사업의 책임 있는 집행과 민주노총의 미조직ㆍ비정규직 사업의 강화를 위해서 기금모금 등 재정마련 계획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
최근 민주노총 임원의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 규약 제정과 이를 통한 사건처리,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 등 제반의 조치가 취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 배제적 문화가 지배적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민주노총의 여성사업을 상징하는 여성할당제(부위원장, 중앙위원, 대의원 30%)도 당초 민주노총 내 여성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할당된 숫자조차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은 몇 가지 제도의 도입이나 전문가들의 정책대안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착취(가족관계에서 재생산노동의 전담자이자 최종적 책임자, 생계보조자로서의 위치로 인한 사회적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착취)를 양산하는 자본주의를 변혁함과 동시에 여성억압을 구조화한 가족관계와 남녀관계를 변혁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 요컨대 민주노총이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노동해방과 함께 여성해방의 과제를 전조직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민주노총의 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를 정식화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이래, 여성정책은 여성인력 활용과 이를 뒷받침하는 일-가정 양립 지원이라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정책은 여성에게 가사노동 전담자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노동조건의 하락과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어려워진 가족생계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임금 일자리 정책에 대한 비판과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상징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은 핵심적으로 제기해야 할 요구다. 또한 여성의 저임금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족제도를 매개로 한 성차별,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여성이 이중적인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가사(재생산)노동의 사회화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가족제도의 변혁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여성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억압적인 제도의 철폐를 요구해야 하며, 정세적으로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서 여성노동자의 시각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여성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조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여성조합원들이 노조운동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업을 기획해야 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과 일상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사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조직 내 여성 차별적, 배제적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 해결로 국한되지 않는 일상적인 노조의 활동과 문화에 대한 평가와 혁신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여성문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조합원들의 일상 활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토론진행 할 수 있는 기획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또한 노조의 단체협상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성차별적, 배제적 문화를 혁신하는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특별기구방식의 사업이 아니라 여성위원회를 강화하고 기존의 사업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여성위원회는 여성사업 담당자로 국한되지 않는 여성 활동가와 간부 육성, 여성조합원을 주체화 하는 대중적 사업의 기획, 미조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남녀 모든 조합원의 작업장/가족/노조의 활동과 구조, 그 내에서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실태 파악,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 관점 하에서 여성조합원의 요구의 정식화 등 제반 사업을 기획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기조를 명확히하는 민중연대전선의 강화와 지역연대운동의 강화
전국민중연대의 내부적 이견이 표출되면서 민중운동 내부의 충분한 동의와 합력 없이 소위 자민통 진영에서 2007년 진보진영의 총단결체를 표방한 한국진보연대(준)를 출범시키면서부터 민중운동 내부의 갈등과 불신이 증폭되어 왔다. 이런 이유로 서울,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현재까지 지역진보연대 구성이 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신뢰 있게 진행되던 지역연대체가 갈등을 빚으며 해산하기도 했다. 2008년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를 중심으로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추진하면서 민주노총 대부분의 연대사업에서 좌파/현장파는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때마다 한국진보연대 가입을 둘러싼 갈등으로 거듭되는 파행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9년 민주노총은 ‘메이데이 조직위원회’ 구성과 공동활동을 거쳐, 민중진영의 공동투쟁을 위한 한시적인 공동투쟁체로서 ‘노동탄압분쇄, 민중생존권, 민주주의 쟁취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구성하여 민중운동진영의 공동투쟁을 위한 노력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참여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중심으로 한 연대사업 방향, 최근 반MB 기조 하에서 민주당과의 연대강화라는 사업방향으로 인해 지속적인 갈등이 있어왔다. 공동행동의 경우, 민주노총-한국진보연대-참여연대-민주당과의 창구 역할을 못 넘어서고 있는 민생민주국민회의를 중심으로 하면서 ‘공동행동’ 자체는 부차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다.
민주노총은 8월 민중운동진영에게 ‘이명박 퇴진을 위한 진보민중진영 공동투쟁본부 건설’을 제안하여 워크숍과 수차례 회의를 거쳐 10월 진보민중진영의 공동투쟁체로서 ‘이명박 심판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공동투쟁본부’(약칭 ‘반MB 공투본’) 결성했다. ‘반MB 공투본’의 건설은 조직 내 갈등을 수반했던 한국진보연대 중심의 연대를 넘어 진보민중진영의 공동투쟁기구를 결성했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반MB 공투본’은 느슨한 한시적 투쟁체에 머물고 있을 뿐, 효과적인 투쟁기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향후 ‘반MB 공투본’을 지역과 부문을 아우르는 상설연대체로 발전시키기에는 내부적 합의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정권과 자본의 격렬한 공세가 예상되는 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중운동의 단결의 수준을 한층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민주노총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차원의 대불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경제위기 시기 노동권을 중심으로 대중투쟁요구를 정선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 계급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 민중운동의 단결 투쟁을 펼치는 데 선도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중연대전성을 강화함에 있어서 명확한 반신자유주의 기조 속에서 대중적 투쟁동력을 형성하고 노동자 민중운동의 단결을 강화하는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년 지자체 선거 등을 염두에 두고 반MB 기조만을 강조하면서 시민운동, 민주당과의 연대를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면 또 다시 노동자 민중운동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민주노총은 전국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에 근거한 연대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에서 새로운 상설연대체로서 인천지역연대(준), 서울연대(준)가 결성되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서울의 경우 소지역별(지구협) 단위에서도 지역연대를 복원,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모아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연대운동을 복원하여 지역 정치활동과 미조직사업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활동가조직의 혁신과 소통, 연대의 강화
민주노조운동에서 특정한 정치적 이념과 노선을 가지고 운동을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정치세력, 즉 정파(현장조직을 포함한 활동가조직)의 역할을 너무도 중요하다. 정파 없는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은 사고할 수 없다. 현재 정파에 대한 대중적 불신은 정파를 없애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파가 정파다울 때, 즉 정치세력으로서 이념과 노선에 근거한 정치활동을 제대로 펼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2009년 3월 민주노총 혁신대토론회에서 보여지 듯 현재 대다수 정파의 민주노조운동 혁신과 재건의 입장은 몇몇 쟁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통의 입장으로 수렴되고 있다. 정파활동이 민주노총 혁신의 걸림돌로 비판받는 이유는 주류 정파의 ‘계급적 단결을 약화시키는 실리주의적 노선’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정파 내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파의 입장과 정파 구성원들의 실제 실천 활동 간의 커다란 괴리에 있다. ‘자기방어적 실리주의’와 ‘패배주의’에 갇혀 있는 현장의 조건, 조합원들의 의식과 문화 속에서 각 정파의 입장이 사실상 조직원들 안에서도 자신의 운동과 실천의 지침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 조건 하에서 정파들이 이념과 노선에 근거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자기 혁신이 지체되면서 노조 집행 권력을 둘러싼 정파 간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세 가지 지점에서 정파들의 혁신이 요구된다. 첫째, 어느 정파도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라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정파 내부의 원칙과 기풍의 수립 위한 전면적인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둘째,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각 정파 혁신세력들 간의 소통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사회의 객관적 현실, 노동자대중의 의식과 조건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공동투쟁의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상호 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현장에 걸쳐 실질적인 단결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신뢰와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합원 교육의 강화와 지역ㆍ현장 일상 활동의 복원
현재 노동자대중과 조합원들은 세계적 경제위기 하에서 해고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조합원의 심리가 민주노조운동의 집단적 운동을 통한 승리의 전망을 찾을 수 없는 조건에서 극도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투쟁을 통한 승리의 경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와 함께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비판,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노조를 통한 단결,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운동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과 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동조합 체계를 통한 교육뿐만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형성하는 학습소모임, 문예소모임의 결성과 활성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대중, 조합원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현장토론과 정치실천을 일상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 내에 만연되어 있는 대리주의, 소위 자판기노조라 불리는 활동을 지양하고 조합원을 주체화하기 위해서는 현장과 지역 차원의 다양한 정치적 실천을 개발하고 참여토록 해야 한다. 현장 토론을 통해 공동의 요구를 함께 마련하고 간부ㆍ대의원의 현장토론 조직화, 현장 선전전을 일상화해야 한다. 지역적 차원에서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주1회 정치페인 등을 적극 조직하여 조합원이 구경꾼이 아니라 노조활동의 주체로서 역할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