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연맹 선거 이후 민주적 계급적 운동진영에 대한 제언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동맹이 필요하다
김영훈 신임 집행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공무원노조, 전교조, 철도노조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더욱 드세고 금호타이어, 한진중공업에서는 대규모 정리해고가 시작되었다. 개악 노조법을 근거로 자본은 벌써부터 현장에서 단협 개악을 획책하고 있다. 총연맹 집행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가 한국 노동자운동의 처지다. 이제 모든 노조와 정파들이 총연맹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투쟁해야 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반복되는 선거 결과와 공허한 혁신론
그런데 정권과 자본에 맞선 투쟁과 더불어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또 있다. 바로 노동조합운동 혁신이다. 6기 임원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내외적인 혁신 요구가 많았다. 5기 지도부의 성폭력 사건과 이명박 정권과의 투쟁에서 바닥을 드러낸 총연맹의 지도력을 보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이대로 총연맹을 두었다가는 정권과 자본에 맞선 싸움 이전에 민주노조 운동이 서서 말라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선거에서 혁신의 모멘텀은 보기 힘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기권(무효)표가 많았고, 투표율이 낮았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간 민주노총 운동을 책임졌던 세력이 예전과 비슷한 득표율로 다시 당선되었다. 정파적 이해를 감춘 통합후보론은 논점을 흐렸고, 총연맹 혁신과 관련한 실제 쟁점들은 제대로 제기조차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선거 자체만 놓고 보면, 정파적 선호가 분명한 대의원 간접 선거라는 한계, 기존 집행부 세력 교체를 내세운 선본에 대한 신뢰 부족,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혁신안들, 총연맹 자체에 대한 낮은 기대 수준 등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구도가 비단 이 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0년이 넘게 매번 선거 때마다 비슷한 패턴의 투표, 선거운동, 정파 공조가 반복되었고, 결과 역시 비슷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 기획’만으로 진정성 있는 혁신 논의와 지도력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혁신과 투쟁을 내세운 지도부가 세워진 것은 특수한 정세 속에서만 가능했다. 선거결과는 민주노조 운동 내 뿌리를 밖은 사회적 합의주의, 실리주의 노선의 힘을 보여주며, 반대로 혁신을 주장하는 민주적 계급적 운동 진영의 대중적 허약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올바른 지도력 구축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토대가 필요하다.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동맹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선거가 끝나고 6기 집행부가 출범한 지금, 이제 민주노조 운동의 올바른 지도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대적인 노동조합 개혁 운동이다. 정권과 자본을 대상으로 한 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자체를 대상으로 한 운동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운동이 역동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비례하여 총연맹에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에게는 민주노조 운동의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 낼 자원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자본에 맞서는 사회운동 조직임과 동시에 기본적으로 사용자와 임금, 노동조건을 교섭하는 제도적 기구이다.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노동조합은 운동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기 위한 1980년대 남한 민주노조운동, 기존 노조들의 정파적 분열과 권위적 현장 통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이탈리아 공장 평의회 운동이 예이다. 상층 관료 중심으로 정치권 로비에만 매몰된 노조운동을 개혁하기 위한 1990년대 중반의 미국 국제서비스노조의 조직화 운동, 그리고 가장 최근 내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을 뿌리 뽑고 노동조합 운동을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중추적 기관으로 재정립하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남아공노총이 벌인 정풍 운동도 대표적 예라 할 것이다.
노조 개혁 운동은 기존 노조 운동의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지도력도 형성했다. 어용 노조 개혁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전노협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평의회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트렌틴 지도부, 미국 서비스노조 조직화 운동에서 만들어진 스턴 지도부와 승리를 위한 변화 노조 역시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지도력이다.
물론 남한 노동자운동에서 민주노총 건설 이후 노동조합 개혁과 관련한 흐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업별 노조 극복을 위한 산별노조 건설 운동, 총연맹 강화와 노조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총연맹 직선제 규약 개정 운동, 민주노조의 계급 대표성 재구축을 위한 전략조직화사업 등 여러 수준에서 노조 개혁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운동들은 현재 정체되었거나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 노조 모델에 대한 몰정세적 맹신, 조합원들의 상태와 동떨어진 상층 지도부만의 의지, 진정성이 빠진 채 당위적으로만 추진된 사업 방향 등 여러 원인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들 속에 빠진 한 가지 핵심 문제가 있다. 노동조합 변화를 이끌어 낼 자원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기계를 만들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설계도만이 아니라 기계를 만들 재료와 움직일 동력원이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지금까지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운동들은 그럴싸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에 비해 정작 그 운동을 시작하고 확대하기 위한 자원을 만드는 것에는 지나치게 소홀했다. 이러한 평가는 이번 총연맹 임원 선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난 10년 간 집행부를 비판하며 새로운 혁신의 지도력을 주장한 세력은 정작 그 혁신에 필요한 동력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프로그램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최초의 동력은 우선 노동조합 운동의 변화를 바라는 세력들의 동맹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존재하는 활동가 자원도 하나의 운동으로 모아내지 못하면서 ‘아래로부터, 대중으로부터’를 반복적으로 되뇌는 것은 불필요한 수사에 불과하다. 소금물에서 소금 결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 크기 이상의 씨앗이 있어야 하듯이, 아래로부터의 혁신 운동이 있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활동가 운동이 있어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 운동 내 상황에서 최소 규모 이상의 씨앗을 특정 정파 혼자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남한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운동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초(超)정파적 운동(반(反)정파 운동이 아니다.)과 다양한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동맹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실리주의적 노동조합을 바꾸어 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고 정파의 경계를 넘어 활동가들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권, 평화, 여성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자원들도 노동조합 개혁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
노동조합은 남한에서 진보를 만들어 온 여러 사회운동의 자원을 받아들이기 위해 공장 밖으로 나가야 하고, 여러 사회운동 진영은 남한 민중운동의 가장 큰 기반인 노동조합을 사회운동 기관으로 바꾸어 내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향해야 한다.
1970년대 이탈리아 평의회 운동은 청년들의 68혁명으로 분출한 자원을 초정파적 노조 개혁 운동으로 받아들였고, 1980년대 남한 민주노조 운동은 민주화 운동의 힘을 노조 민주화 운동의 동맹으로 삼았다. 1990년대 미국 서비스노조의 개혁 운동은 지역의 인종차별철폐운동, 여성운동, 소비자운동과 함께 조직화 동력을 만들었고, 2000년대 남아공노총의 개혁운동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발하는 전선 내 모든 세력의 힘을 모았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2010년 노동조합 사수 투쟁을 노동조합 개혁 운동의 계기로 만들어 가자
이명박 정권의 거센 노조 탄압은 노동조합 운동을 뿌리 채 흔들고 있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공공부문 선진화 저지 투쟁, 조합원 자격 등을 문제 삼아 진행되고 있는 전교조, 공무원노조, 철도노조에 대한 탄압은 민주노조에게 사회운동을 포기하라는 정권의 메시지다. 열악한 노조 운동 조건 속에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조합 간부 숫자를 줄이고 나아가 사회운동 참여를 가로막으며, 초기업적 교섭과 복수노조를 원천봉쇄하는 개악 노조법은 노동조합 운동을 법적으로 사회운동으로부터 분리시키겠다는 정권의 강력한 의도를 담고 있다.
정권의 탄압 강도를 볼 때, 적당히 소극적 대응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1979년 대처 정부가 추진한 노조 탄압과 노조법 개악을 노동당의 정권 재탈환과 일부 조항의 변경만으로 극복하려 했던 영국 노동운동이 결국 사회운동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노조 자체의 유지에도 실패했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반대로 산별노조 불법화, 3자 개입 금지, 노조설립제한 등을 내용으로 한 1980년대 신군부의 개악 노동법을 민주노조의 연대 투쟁, 반독재 선봉 투쟁으로 극복하며 성장한 전노협 운동의 경험 다시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이미 노조 탄압을 운동으로 극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10년 노조의 사회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노동조합 개혁 운동은 정권의 노조 탄압에 맞서는 남한 노동자운동의 해법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노동조합은 실리주의에 빠져 있는 현재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혁신하는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운동을 다시 사회운동으로 개혁하는 것이 정권의 노조 탄압에 맞서는 최고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조합 정파들, 사회운동 세력들의 동맹은 이 운동의 시작이다. 우리에게는 정권의 노조 탄압을 노조 개혁을 위한 기회로 만들 동맹이 필요하다. 특히 그동안 실리주의적 노조운동을 비판해 왔던 민주적 계급적 운동 진영이 이 동맹을 가장 먼저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응당 총연맹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정권과 맞서 싸우는 일에 한 치의 분열도 없어야 함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10년,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로 정권과 자본에 맞선 전투를 시작하자.
반복되는 선거 결과와 공허한 혁신론
그런데 정권과 자본에 맞선 투쟁과 더불어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또 있다. 바로 노동조합운동 혁신이다. 6기 임원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내외적인 혁신 요구가 많았다. 5기 지도부의 성폭력 사건과 이명박 정권과의 투쟁에서 바닥을 드러낸 총연맹의 지도력을 보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이대로 총연맹을 두었다가는 정권과 자본에 맞선 싸움 이전에 민주노조 운동이 서서 말라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선거에서 혁신의 모멘텀은 보기 힘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기권(무효)표가 많았고, 투표율이 낮았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간 민주노총 운동을 책임졌던 세력이 예전과 비슷한 득표율로 다시 당선되었다. 정파적 이해를 감춘 통합후보론은 논점을 흐렸고, 총연맹 혁신과 관련한 실제 쟁점들은 제대로 제기조차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선거 자체만 놓고 보면, 정파적 선호가 분명한 대의원 간접 선거라는 한계, 기존 집행부 세력 교체를 내세운 선본에 대한 신뢰 부족,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혁신안들, 총연맹 자체에 대한 낮은 기대 수준 등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구도가 비단 이 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0년이 넘게 매번 선거 때마다 비슷한 패턴의 투표, 선거운동, 정파 공조가 반복되었고, 결과 역시 비슷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 기획’만으로 진정성 있는 혁신 논의와 지도력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혁신과 투쟁을 내세운 지도부가 세워진 것은 특수한 정세 속에서만 가능했다. 선거결과는 민주노조 운동 내 뿌리를 밖은 사회적 합의주의, 실리주의 노선의 힘을 보여주며, 반대로 혁신을 주장하는 민주적 계급적 운동 진영의 대중적 허약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올바른 지도력 구축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토대가 필요하다.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동맹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선거가 끝나고 6기 집행부가 출범한 지금, 이제 민주노조 운동의 올바른 지도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대적인 노동조합 개혁 운동이다. 정권과 자본을 대상으로 한 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자체를 대상으로 한 운동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운동이 역동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비례하여 총연맹에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에게는 민주노조 운동의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 낼 자원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자본에 맞서는 사회운동 조직임과 동시에 기본적으로 사용자와 임금, 노동조건을 교섭하는 제도적 기구이다.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노동조합은 운동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기 위한 1980년대 남한 민주노조운동, 기존 노조들의 정파적 분열과 권위적 현장 통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이탈리아 공장 평의회 운동이 예이다. 상층 관료 중심으로 정치권 로비에만 매몰된 노조운동을 개혁하기 위한 1990년대 중반의 미국 국제서비스노조의 조직화 운동, 그리고 가장 최근 내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을 뿌리 뽑고 노동조합 운동을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중추적 기관으로 재정립하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남아공노총이 벌인 정풍 운동도 대표적 예라 할 것이다.
노조 개혁 운동은 기존 노조 운동의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지도력도 형성했다. 어용 노조 개혁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전노협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평의회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트렌틴 지도부, 미국 서비스노조 조직화 운동에서 만들어진 스턴 지도부와 승리를 위한 변화 노조 역시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지도력이다.
물론 남한 노동자운동에서 민주노총 건설 이후 노동조합 개혁과 관련한 흐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업별 노조 극복을 위한 산별노조 건설 운동, 총연맹 강화와 노조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총연맹 직선제 규약 개정 운동, 민주노조의 계급 대표성 재구축을 위한 전략조직화사업 등 여러 수준에서 노조 개혁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운동들은 현재 정체되었거나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 노조 모델에 대한 몰정세적 맹신, 조합원들의 상태와 동떨어진 상층 지도부만의 의지, 진정성이 빠진 채 당위적으로만 추진된 사업 방향 등 여러 원인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들 속에 빠진 한 가지 핵심 문제가 있다. 노동조합 변화를 이끌어 낼 자원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기계를 만들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설계도만이 아니라 기계를 만들 재료와 움직일 동력원이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지금까지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운동들은 그럴싸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에 비해 정작 그 운동을 시작하고 확대하기 위한 자원을 만드는 것에는 지나치게 소홀했다. 이러한 평가는 이번 총연맹 임원 선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난 10년 간 집행부를 비판하며 새로운 혁신의 지도력을 주장한 세력은 정작 그 혁신에 필요한 동력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프로그램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최초의 동력은 우선 노동조합 운동의 변화를 바라는 세력들의 동맹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존재하는 활동가 자원도 하나의 운동으로 모아내지 못하면서 ‘아래로부터, 대중으로부터’를 반복적으로 되뇌는 것은 불필요한 수사에 불과하다. 소금물에서 소금 결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 크기 이상의 씨앗이 있어야 하듯이, 아래로부터의 혁신 운동이 있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활동가 운동이 있어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 운동 내 상황에서 최소 규모 이상의 씨앗을 특정 정파 혼자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남한 노동조합 개혁을 위한 운동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초(超)정파적 운동(반(反)정파 운동이 아니다.)과 다양한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동맹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실리주의적 노동조합을 바꾸어 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고 정파의 경계를 넘어 활동가들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권, 평화, 여성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자원들도 노동조합 개혁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
노동조합은 남한에서 진보를 만들어 온 여러 사회운동의 자원을 받아들이기 위해 공장 밖으로 나가야 하고, 여러 사회운동 진영은 남한 민중운동의 가장 큰 기반인 노동조합을 사회운동 기관으로 바꾸어 내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향해야 한다.
1970년대 이탈리아 평의회 운동은 청년들의 68혁명으로 분출한 자원을 초정파적 노조 개혁 운동으로 받아들였고, 1980년대 남한 민주노조 운동은 민주화 운동의 힘을 노조 민주화 운동의 동맹으로 삼았다. 1990년대 미국 서비스노조의 개혁 운동은 지역의 인종차별철폐운동, 여성운동, 소비자운동과 함께 조직화 동력을 만들었고, 2000년대 남아공노총의 개혁운동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발하는 전선 내 모든 세력의 힘을 모았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2010년 노동조합 사수 투쟁을 노동조합 개혁 운동의 계기로 만들어 가자
이명박 정권의 거센 노조 탄압은 노동조합 운동을 뿌리 채 흔들고 있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공공부문 선진화 저지 투쟁, 조합원 자격 등을 문제 삼아 진행되고 있는 전교조, 공무원노조, 철도노조에 대한 탄압은 민주노조에게 사회운동을 포기하라는 정권의 메시지다. 열악한 노조 운동 조건 속에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조합 간부 숫자를 줄이고 나아가 사회운동 참여를 가로막으며, 초기업적 교섭과 복수노조를 원천봉쇄하는 개악 노조법은 노동조합 운동을 법적으로 사회운동으로부터 분리시키겠다는 정권의 강력한 의도를 담고 있다.
정권의 탄압 강도를 볼 때, 적당히 소극적 대응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1979년 대처 정부가 추진한 노조 탄압과 노조법 개악을 노동당의 정권 재탈환과 일부 조항의 변경만으로 극복하려 했던 영국 노동운동이 결국 사회운동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노조 자체의 유지에도 실패했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반대로 산별노조 불법화, 3자 개입 금지, 노조설립제한 등을 내용으로 한 1980년대 신군부의 개악 노동법을 민주노조의 연대 투쟁, 반독재 선봉 투쟁으로 극복하며 성장한 전노협 운동의 경험 다시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이미 노조 탄압을 운동으로 극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10년 노조의 사회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노동조합 개혁 운동은 정권의 노조 탄압에 맞서는 남한 노동자운동의 해법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노동조합은 실리주의에 빠져 있는 현재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혁신하는 노동조합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운동을 다시 사회운동으로 개혁하는 것이 정권의 노조 탄압에 맞서는 최고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조합 정파들, 사회운동 세력들의 동맹은 이 운동의 시작이다. 우리에게는 정권의 노조 탄압을 노조 개혁을 위한 기회로 만들 동맹이 필요하다. 특히 그동안 실리주의적 노조운동을 비판해 왔던 민주적 계급적 운동 진영이 이 동맹을 가장 먼저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응당 총연맹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정권과 맞서 싸우는 일에 한 치의 분열도 없어야 함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10년,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로 정권과 자본에 맞선 전투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