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노동조합법의 영향과 대응방향
사회운동과 실리주의, 기로에 선 노동자 운동
반노동자 법에 맞서 싸우며 성장한 민주노조운동과 2010년 개정 노조법
지난 2월 10일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이하 면제위)가 발족할 것으로 보인다. 면제위는 4월 말까지 전임자의 숫자와 활동 시간 상한선을 정한다. 면제위가 상한선을 정하고 나면 단체협약이 만료되는 사업장은 이 기준에 따라 전임자에 관해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정부가 예전에 진행한 연구를 근거로 전임자 수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준비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 노조법은 기업 내 복수노조를 형식적으로 허용하지만 소수노조의 교섭을 제한하고, 교섭단위에 대한 자본의 개입을 허용한다. 사실상 복수노조 허용법이 아니라 어용노조 육성법인 셈이다. 더군다나 기업별 교섭을 명시화함으로써 산별노조의 산별교섭 범위까지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노동자운동의 대응은 지금까지 매우 미흡했다. 민주노총이 개정 노조법 통과 즈음 벌인 투쟁은 간부 1박2일 상경투쟁 정도가 전부였다. 신임 집행부가 올 상반기 총력 투쟁을 약속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정 노조법이 당장 조합원의 노동조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 개정 노조법이 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체감도가 아직 낮다는 점, 법이 시행되더라도 자기 사업장은 대처할 수 있다는 일부 대공장 노조의 안일함 등 노조법 투쟁을 둘러싼 여러 조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흥망성쇠는 노동법 관련 투쟁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 노동3권부터 초기업노조 설립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싸우지 않고 쟁취한 것이 없으며 이 투쟁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은 대중적 힘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반대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정리해고, 파견근로 등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노동법 개악을 받아들였을 때 노조는 힘을 잃었다. 조직률이 정체하고 노조의 사회적 위상까지 흔들리는 지금, 노동자운동이 이번 노조법 개악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이후 노동자운동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할 것이다. 여러 악조건에도 민주노조 운동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개정 노조법에 맞선 싸움을 만들어야 한다.
개정 노조법의 영향: 노조의 사회운동에 관한 제도적 봉쇄
개정 노조법은 크게 두 가지를 담고 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명시와 이에 대한 예외 조항으로 전임자의 유급 활동 시간과 범위 규정, 그리고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기업 차원의 교섭 방법(창구단일화 방법)이다. 전자는 올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고, 후자는 2011년 7월부터 시행된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법률 조항은 사실 1997년 3월에 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법률은 두 조항에 대해 부칙으로 2001년 12월 31일 이후 시행되도록 하였으나, 1999년, 2003년, 2006년 세 차례에 걸쳐 시행이 유예되었었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 및 근로시간면제: 사회운동을 제거하는 노동조합 업무에 대한 제도적 규정
개정 노조법 24조에 따르면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노동조합 업무에만 종사하는” 노동조합 전임자는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안 된다. 다만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정한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임금 손실 없이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 …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 관리 업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2월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은 근로시간면제한도 규정을 더욱 개악하여 총시간만이 아니라 인원수까지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말미암아 당장 올해부터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는 현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근로시간면제 한도에 관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 24조의 2 조항에 의해 구성되는 근로시간면제위는 노동계, 경영계가 추천하는 각 5명의 위원과 정부가 추천하는 5명의 공익위원으로 구성된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차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측 공익위원 중 3명이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결정할 수 있다. 예전 노사정위의 경험을 보아도 그러하다.
정부가 시간과 인원수 한도를 통해 줄일 전임자 수준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정부가 전임자 규모를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3년 수준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약 20% 이상 줄어들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8년 전임자 1인당 조합원은 149.2명이며, 1993년은 183.4명이다.) 정부 측 공익위원으로 추천될 것으로 보이는 노사정위 공익위원들의 의견대로 결정된다면 전임자 1인당 조합원 수가 300명, 즉 현재 전임자의 50% 수준이 될 것이다. 경총의 경우 1,000명당 1명, 즉 80% 이상 감축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노총과의 관계, 시행 첫해라는 점 등으로 볼 때 전임자 수 감축은 20~50%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4월 말까지 근로시간면제위의 한도 결정이 이루어지면 산별노조, 기업노조는 한도 내에서 단체협약을 교섭해야 한다. 민주노총 내 단체협약의 상당수가 짝수 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장 올해부터 많은 사업장에서 전임자 관련 교섭이 이루어진다. 금속노조의 경우 올해 단협이 만료되는 사업장이 80%에 이른다.
▶ 중소사업장 노조 약화에 따른 노동자 단결 문제
두 번째는 노동자운동의 단결과 관련된 것이다. 근로시간면제위가 조합원 수 범위에 따라 전임자 한도 수를 정하게 될 텐데 노동조합의 규모, 재정상황, 기업 내 역관계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이 단결된 투쟁으로 정부와 자본에 맞서 싸우지 못한다면, 노조 간 격차가 터 커질 수도 있으며, 중소사업장 노조가 고립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유급 전임자 및 채용 활동가가 200여 명에 달하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8개 사업장이 2명의 전임자를 가지고 지회로 편제되어 활동하는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회의 상황이 다르다. 현대차지부가 줄어든 전임자 수를 가지고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처지라면 남부지회의 경우 전임자 수가 1명만 줄어도 지회 유지 자체가 곤란해질 수 있는 처지다.
한편 현장 교섭력이 매우 약한 중소사업장 노동조합들은 벌써부터 전임자와 관련한 공격을 받고 있다. 많은 사업장들에서 연초 노사 상견례부터 사업주들이 올해부터는 전임자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것 아니냐며 강한 압박을 하고 있다. 개정 노조법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근로시간면제를 할 수도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는 구조다. 자본가들이 교섭 시 현장에서 들이댈 수 있는 강한 무기인 셈이다. 대한상의, 경총 등은 연초부터 회원사들을 상대로 전임자임금지급과 관련하여 “원칙은 임금지급금지”라면서 민주노총의 특별단체협약 요구를 무시할 것을 교육하고 있다.
▶ 노동조합 활동가의 사회운동에 대한 제약
마지막으로 노조 간부들의 역할과 관련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은 단순히 전임자의 수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유급 노조 간부의 업무에 관한 것도 규정하고 있다. 법으로 아예 노조간부는 흔히 실리주의라고 비판받는 내용만을 하라는 것이다.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 유지관리 업무”라는 문구로 다소 두루뭉술하게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부, 사법기관, 언론 등의 노조 투쟁에 대한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이러한 조항이 앞으로 노조 간부들의 활동을 상당히 제약할 것이다.
당장 상급단체 파견부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자 문제를 논의했던 노사정위 공익위원들부터 자본가단체에 이르기까지 상급단체 파견은 노동조합 유지 관리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산별노조는 기업노조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근거 역시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데, 이들에게 노조 전임자는 기업이 지불하는 노무 비용이기 때문에 애당초 산업별노조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의도가 관철되어 유급 전임자들이 기업에 묶인다면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공공노조를 비롯하여 민주노총 지역본부까지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문제는 장기적으로 이러한 법적 제약이 노동조합 활동가 역할에 대한 노동자운동 진영의 인식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민주노조 운동이 여러모로 실리주의적으로 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서 노동운동 간부는 여러 사회운동의 이슈(보편적인 노동권, 평화, 민주주의 등)에 참여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존중한다. 하지만 실리주의 운동이 확장되어가는 가운데 노조 간부 활동에 대한 법적 규제까지 더해진다면 이러한 대의명분조차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정권과 자본이 앞으로 유무급을 상관하지 않고 현장 노동자들의 노조 운동 자체를 봉쇄할 여지도 있다. 정부가 만든 유급 기준은 이러한 점에서 일종의 노조 활동 관례처럼 확장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만들어 놓은 유급 전임자의 기준을 가지고 향후 유무급을 넘어 노동자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급 전임자(노조 업무 종사자, 노조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유급 기준과 어긋나는 여러 활동들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 정부의 아전인수, 전임자에 대한 오해와 국외 사례
정부는 외국의 예를 들어 전임자임금지급금지가 마치 세계적 표준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노동부가 상급단체 파견은 노조 재정으로 하는 것이라며 제시한 독일의 사례를 보자. 독일이 산별노조 파견자에 대해 노조 재정으로 처리 가능한 것은 우선 법적으로 보장되는 강력한 산별교섭과 경영참가가 보장되는 작업장위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집중화된 전국교섭과 지역교섭은 노동조합 교섭 업무의 상당 부분을 해결해주며, 유급 근로 시간 면제가 주어지는 작업장 위원회의 위원들은 노조와 조합원 사이에 가교가 되어 준다. 더군다나 한국과 달리 노조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도 여러 방면에서 노조 업무를 줄여준다. 산별교섭은 고사하고 노조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일관하는 한국 상황과 비교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노동부가 또 다른 예로 든 프랑스 역시 비슷하다. 프랑스는 법으로 보장하는 전국적 대표 노조들이 쟁취한 협약이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되어 적용된다. 협약의 확대적용은 고사하고, 존재하는 단체협약도 무시하기 일쑤며 각종 법적 소송으로 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한국과는 천지차이다. 또한 프랑스의 현장 노동자들은 조합대표, 종업원대표, 기업위원회 위원, 지역분쟁조정위원회 노동자 대표 등 다양한 경로로 노동자 운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여러 수준으로 근로시간 면제가 주어진다. 노동자 운동 관련 활동 시간으로 따지면 절대 적지 않다.
복수노조허용 및 창구단일화: 복수노조 허용에서 어용노조 육성으로
개정 노조법 29조의 1, 2, 3, 4항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단일화를 규정한다. 29조의 2에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하며, 노동조합 간 자율교섭으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지 못한 경우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된다. 과반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전체 조합원의 10% 이상인 노조들이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하며, 이마저도 구성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강제로 비례대표를 결정한다. 그리고 예외 조항으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결정하는 기한 내에 사용자가 동의한 경우 창구단일화를 거치지 않고 노조별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
개정 노조법의 29조는 요약하면, 초기업노조를 배제하며 사용자와 정부가 입맛대로 개입할 수 있는 복수노조 설립과 교섭창구단일화 방안이다. 복수노조 난립으로 교섭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간단한 논리로 그동안 자본이 원했던 갖가지 독소 조항들을 모두 집어넣은 것이다.
▶ 초기업 노조 무력화
먼저, 법안 자체가 기업 교섭 프레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법안은 교섭의 단위로 기업(사업 또는 사업장)을 규정한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가 지금까지 진행해 온 산별중앙교섭은 사용자가 마음먹고 사업장에 어용노조라도 만들면 그 순간부터 교란된다. 개정 노조법은 교섭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 교섭단위를 먼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사측이 어용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방해하기 시작하면 노동조합 간 자율교섭부터 노동위원회 결정까지 최장 67일이 소요된다. 십 수 개의 사업장만 이런 식으로 교란해도 중앙교섭은 물론이고 시기 집중 교섭까지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다. 개정 노조법은 철저한 기업별 교섭 프레임으로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산업별 교섭을 근간부터 흔든다.
▶ 사측과 정부의 개입
강제적인 기업별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은 사실상 복수노조 허용이 아니라 정부와 사측의 교섭단위 결정 개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은 복수노조 간 자율교섭으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결정하지 못할 때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노동조합이 대표노조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일부 대공장 노조를 제외하고는 이미 존재하는 민주노조도 사측의 탄압으로 매년 고생하는 상황에서 사측에 의한 어용노조 육성은 불 보듯 뻔하다. 더군다나 법안은 29조 1의 1항에서 사용자가 동의한 경우 교섭 창구 단일화를 하지 않고 노조별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사용자가 개입할 여지를 확대해 놓았다.
여러 노조가 난립하여 과반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정부가 교섭대표단 구성에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 29조 2의 5항은 교섭대표단이 구성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이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최근 더욱 보수화하고 있는 노동위원회의 성향을 보면 판결이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 불리하게 결정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무노조 혹은 어용노조 사업장에 사용자가 꺼리는 민주노조가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존재조차 부정당할 비정규직 노조
비정규직 노조는 노조 존재 자체가 부정될 가능성이 크다. 비정규직 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창구단일화로 가게 되면 결국 사업장 내에서 비정규직 노조는 교섭권을 가진 과반수 노조의 처분을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법안은 29조의 3에서 “사업장에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하여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노동위원회는 노동관계 당사자의 양쪽 또는 어느 한 쪽의 신청을 받아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노동위원회 성향을 볼 때 노동위원회가 비정규직 노조의 교섭을 창구단일화에서 분리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 국외 사례
정부는 미국과 프랑스의 예를 들어 마치 교섭 창구 단일화가 세계적 표준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앞의 노조 전임자 문제와 같은 아전인수와 다름없다.
미국의 배타적 교섭 대표제는 선진 제도가 아니라 애초의 법안 취지가 악용되고 있는 대표적 노동악법이다. 현재 미국노총(AFL-CIO), 승리를 위한 변화 연맹(Change to Win Federation) 모두가 법안 개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 1935년 와그너 법에 의해 규정된 배타적 교섭 대표 제도는 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승인한 노조 대표가 노조 교섭과 관련한 전권을 가지는 제도이다. 노조 또는 사용자가 30% 이상의 사업장 노동자 서명(수권카드)을 받아 노동관계위원회에 교섭대표선거를 신청하면, 위원회가 적합성 심사를 벌인 이후 사업주로부터 선거권자 명부를 받아 투표를 실시, 과반수 득표를 한 조합이 대표권을 획득한다. 애초 법안은 사용자의 교섭 회피를 줄이기 위해 전제 노동자의 투표를 통해 사용자에게 교섭을 강제하고, 조합원 직접 투표를 통해 당시 다수 존재하던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기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법안은 사용자들이 노동자 정보를 독점하여 대표 선거를 어용노조 정당화에 이용하고, 배타적 교섭대표(창구단일화)를 통해 신규노조 설립 자체를 방해하면서 미국의 대표적 노동악법으로 변질하였다. 노동조합들은 민주당 대통령 시기마다 개정을 요구했으나 번번이 공화당에 막혀 개정시키지 못했다. 현재 승리를 위한 변화 연맹은 사측의 개입을 차단하고 신규노조 설립을 자유롭게 가능하게 할 노동조합에 대한 종업원자유선택법률(Employee Free Choice Act)을 의회에 통과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한국 창구단일화를 프랑스와 비교하는 것은 더욱 가당치도 않다. 우선 프랑스의 단체협약은 기본적으로 산별교섭으로 체결된다. 모든 사업장에서 노조 설립이 허용된 5개 대표노조는 각각 혹은 공동으로 사용자 단체와 산별협약을 체결한다. 이들 대표 노조가 체결한 산별협약은 조합원뿐만 아니라 산업 내 모든 노동자에게 효력이 확장 적용된다. 확장되는 효력은 각 노조가 체결한 협약 중에 노동자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조항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5개 대표노조가 각각 산별 교섭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공동 교섭의 효과를 갖는다.
그리고 기업별 교섭은 산별협약의 유리한 조항을 악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 기업에 있는 복수의 대표노조들 지부는 결과적으로 최선의 산별 교섭 조항들로 이루어진 확장 효력 하에서 교섭을 진행하기 때문에 통상 다수의 노조가 존재하더라도 공동으로 교섭단을 꾸려 기업별 교섭을 체결한다. 2004년 노조법 개정으로 이전과 달리 법률에 근거한 기업 내 대표 노조가 기업별 교섭의 배타적 지위를 확보하지만, 이 자체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갈등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 노조법 개악에 대한 실리적 대응과 노조의 몰락
노조법을 개악하여 노동자운동을 파괴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다수 존재한다. 특히 자본의 천국인 미국과 영국의 예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반공주의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업고 1947년 태프트-하틀리법을 통해 노조의 이념과 운동을 제약했다. 영국은 1979년 대처 정부 등장을 계기로 대대적인 노동법 개악에 나섰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노동운동은 전쟁 기간 억제된 임금과 고용조건에 대해 일제히 분노를 터뜨리며 1946~47년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벌였다. 대표적으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지엠을 상대로 1945년 겨울부터 113일간 파업을 펼쳤다. 정부와 자본은 이에 대해 노조법 개악으로 맞섰는데, 상원의원 로버트 태프트가 주도한 노사관계법은 노조의 연대 파업, 정치적 파업, 다른 사업장에 대한 연대 투쟁을 금지했다. 그리고 연방정부에 의한 직권중재, 대통령에 의한 파업 중단 명령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에게 노동조합의 대표적 교섭권을 거부하고 새로 선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아예 노조의 손과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한편 당시 미국 노총 및 금속산별노조의 대응은 매우 수세적이었고, 실리주의적이었다. 미국노조의 가장 강력한 부위였던 전미자동차노조는 노조법 개악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기업 지불 능력에 따른 임금 인상’이라는 투쟁 전략을 수립했는데, 노조가 기업과 정부에 협조할 테니 기업은 지불 능력이 되는 만큼은 성실하게 임금을 인상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전쟁 이전까지 유지되던 산업별 임금 정책을 포기했다. 당시 전쟁을 거치며 많은 수익을 올린 완성차(지엠, 포드, 크라이슬러)업체 노동자에게는 적합할 수 있으나, 수백 개의 중소 부품업체 노동자에게는 오히려 임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이었다. 또한 연대파업, 연대투쟁을 금지하려는 정부 정책과 조응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전미자동차노조의 이러한 정책을 환영했고,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의 수익을 조사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비즈니스 노조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노조 노선은 이렇게 노조법에 대한 적응과 실리주의적 대응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 노선은 그 어떤 사회운동적 과제와도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미국 내에서도 대공장 정규직 이기주의로 매도되며 고립되기 일쑤였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계속 낮아져 2008년에는 10%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으로까지 낮아졌다. 2009년 전미자동차노조가 3만여 명의 조합원을 해고로 잃고 3조원이 넘는 노조의 퇴직자건강보험기금마저 사측에 빼앗겨도 아무도 노조를 동정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처 정부는 단계적으로 노조법을 개악하며 노동조합 운동의 기반을 흔들었다. 1980년 고용법 개정에서는 노동조합의 연대투쟁과 연대파업을 불법화했고, 1982년에는 영국 노조의 근간을 이루었던 클로즈드숍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1984년에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여 파업에 대한 노조의 면책권을 제한했고, 노조의 정치자금 조성 역시 여러 조건을 달았다. 1988년 고용법에서는 노조원이 노조의 파업에 참가하지 않아도 노조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으며, 자기 사업장 외 모든 투쟁(Secondary picketing)에 대해서는 연대할 수 없도록 하였다. 대처 정부는 이 밖에도 노동조합의 연대를 금지하는 여러 조항을 신설하여 노동조합을 기업별 체계에 고립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영국노총의 대응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처 정부의 노조법 개악이 매해 계속되는 가운데 터진 1984년 탄광파업은 영국노총(TUC)의 방관 속에서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고, 영국노총은 투쟁과 연대보다는 노동당 재집권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과 선거 운동에 모든 힘을 쏟았다. 1980년대 내내 노동당은 선거에서 졌고, 영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979년 55%에서 2005년 26%로 반토막이 났다.
2010년 개정 노조법에 대한 대응: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자
자본의 의도는 명확하다. 위의 영국과 미국 사례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자본이 노동조합과 관련하여 공격하는 첫 번째 목표는 노동조합 ‘운동’의 제거다. 개정 노조법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역할을 제한함으로써 아래로부터 노조 간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내고, 창구단일화를 통해 초기업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은 물론 정부와 사용자의 노조 개입력을 높인다. 1947년 태프트-해틀리 법과 1980년 영국 고용법 개정이 가장 먼저 노동조합의 연대투쟁을 금지했던 것과 비슷한 논리다.
자본의 의도가 이러할진대, 노동자운동의 대응 역시 단기적인 전임자 수 확보, 단체교섭과 관련한 기존 노조의 기득권 보호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갑을 모두 내놓으라는 강도에게 차비만 달라고 구걸하는 꼴이다.
물론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한국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당장 개정 노조법을 투쟁으로 재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노조법 투쟁을 어떠한 관점에서 계획할 것이냐다. 개정 노조법을 단순한 전임자와 단체교섭 조정과 관련한 것으로 본다면 이 투쟁은 시작부터 실패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지금 당장 큰 투쟁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개정 노조법에 대한 투쟁을 자본이 노리는 것과 정반대로 노조를 강화하기 위한, 즉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접근해나간다면 당분간은 어려운 조건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미국이나 영국이 거쳤던 길과는 다른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정 노조법에 맞선 투쟁은 이러한 점에서 개정 노조법의 문제점을 전 조합원에게 분명하게 알려내고 앞으로의 투쟁을 조직해나가는 교육 사업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조합원들에게 노조법 개정안은 여전히 노조 전임자 숫자 조정 수준에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없이 노동 기본권도 없으며, 노동조합의 사회운동 없이 노동조합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대국민적으로 확인하게 할 수 있는 범사회적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당장 2009년 경제 위기 와중에 큰 피해를 본 저임금 노동자층의 획기적 임금 개선을 목표로 하는 대대적인 최저임금 인상 투쟁이 계기가 될 수 있다. 통상 6월에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산별교섭도 전국교섭도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가장 광범위하게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투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쟁 중 하나이다. 6.2 지방선거가 존재하는 만큼 지역자치단체 수준에서도 이슈로 만들 수 있는 지역 최저임금 관련 의제를 개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7월 노조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노조법을 비판하는 매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4월 초부터 본격화될 금속노조 조기단협 투쟁, 단협이 해지된 철도 발전 가스 등 공공부문 노조들의 노조 사수 투쟁을 총연맹 수준에서 함께 만들어 갈 기획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노조법이 노리는 바가 모든 노조가 개별화되는 것이니만큼 이에 맞선 투쟁은 총연맹 차원에서 얼마만큼 단결력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당장 3월부터 근로시간면제위에 대한 참가 여부가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근로시간면제위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참가하여 조그만 실리라도 챙기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현재 개정 노조법 투쟁을 노조 전임자 숫자와 창구단일화 교섭 절차 정도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 노조법에 대한 투쟁은 조그만 실리를 주고 받는 투쟁이 아니라 한국에서 민주노조의 역할이 결린 투쟁이다. 개정 노조법 위에서 근로시간 면제 상한선을 정하는 것에 그치는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투쟁의 정당성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3~4월 근로시간면제위 결정 이후에는 기업 혹은 산별 차원의 단협 교섭이 진행될 것이다. 노동부는 산하 지방 기관에 근로시간면제위 결정 이전에 노조와 교섭하지 말도록 사측을 지도하도록 방침을 내렸다. 금속노조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4월까지 자본은 교섭을 회피할 것으로 보인다. 올 해 내내 단협 관련 노사 교섭이 여러 수준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노조는 전임자를 유지하고 장기 투쟁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조합비 인상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7월부터 법이 시행되지만,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지난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투쟁 전술을 동반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노조법에 대한 이해와 노동운동의 나아갈 바에 대한 동의가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10일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이하 면제위)가 발족할 것으로 보인다. 면제위는 4월 말까지 전임자의 숫자와 활동 시간 상한선을 정한다. 면제위가 상한선을 정하고 나면 단체협약이 만료되는 사업장은 이 기준에 따라 전임자에 관해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정부가 예전에 진행한 연구를 근거로 전임자 수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준비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 노조법은 기업 내 복수노조를 형식적으로 허용하지만 소수노조의 교섭을 제한하고, 교섭단위에 대한 자본의 개입을 허용한다. 사실상 복수노조 허용법이 아니라 어용노조 육성법인 셈이다. 더군다나 기업별 교섭을 명시화함으로써 산별노조의 산별교섭 범위까지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노동자운동의 대응은 지금까지 매우 미흡했다. 민주노총이 개정 노조법 통과 즈음 벌인 투쟁은 간부 1박2일 상경투쟁 정도가 전부였다. 신임 집행부가 올 상반기 총력 투쟁을 약속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정 노조법이 당장 조합원의 노동조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 개정 노조법이 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체감도가 아직 낮다는 점, 법이 시행되더라도 자기 사업장은 대처할 수 있다는 일부 대공장 노조의 안일함 등 노조법 투쟁을 둘러싼 여러 조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흥망성쇠는 노동법 관련 투쟁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 노동3권부터 초기업노조 설립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싸우지 않고 쟁취한 것이 없으며 이 투쟁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은 대중적 힘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반대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정리해고, 파견근로 등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노동법 개악을 받아들였을 때 노조는 힘을 잃었다. 조직률이 정체하고 노조의 사회적 위상까지 흔들리는 지금, 노동자운동이 이번 노조법 개악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이후 노동자운동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할 것이다. 여러 악조건에도 민주노조 운동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개정 노조법에 맞선 싸움을 만들어야 한다.
개정 노조법의 영향: 노조의 사회운동에 관한 제도적 봉쇄
개정 노조법은 크게 두 가지를 담고 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명시와 이에 대한 예외 조항으로 전임자의 유급 활동 시간과 범위 규정, 그리고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기업 차원의 교섭 방법(창구단일화 방법)이다. 전자는 올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고, 후자는 2011년 7월부터 시행된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법률 조항은 사실 1997년 3월에 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법률은 두 조항에 대해 부칙으로 2001년 12월 31일 이후 시행되도록 하였으나, 1999년, 2003년, 2006년 세 차례에 걸쳐 시행이 유예되었었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 및 근로시간면제: 사회운동을 제거하는 노동조합 업무에 대한 제도적 규정
개정 노조법 24조에 따르면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노동조합 업무에만 종사하는” 노동조합 전임자는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안 된다. 다만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정한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임금 손실 없이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 …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 관리 업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2월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은 근로시간면제한도 규정을 더욱 개악하여 총시간만이 아니라 인원수까지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말미암아 당장 올해부터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는 현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근로시간면제 한도에 관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 24조의 2 조항에 의해 구성되는 근로시간면제위는 노동계, 경영계가 추천하는 각 5명의 위원과 정부가 추천하는 5명의 공익위원으로 구성된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차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측 공익위원 중 3명이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결정할 수 있다. 예전 노사정위의 경험을 보아도 그러하다.
정부가 시간과 인원수 한도를 통해 줄일 전임자 수준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정부가 전임자 규모를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3년 수준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약 20% 이상 줄어들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8년 전임자 1인당 조합원은 149.2명이며, 1993년은 183.4명이다.) 정부 측 공익위원으로 추천될 것으로 보이는 노사정위 공익위원들의 의견대로 결정된다면 전임자 1인당 조합원 수가 300명, 즉 현재 전임자의 50% 수준이 될 것이다. 경총의 경우 1,000명당 1명, 즉 80% 이상 감축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노총과의 관계, 시행 첫해라는 점 등으로 볼 때 전임자 수 감축은 20~50%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4월 말까지 근로시간면제위의 한도 결정이 이루어지면 산별노조, 기업노조는 한도 내에서 단체협약을 교섭해야 한다. 민주노총 내 단체협약의 상당수가 짝수 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장 올해부터 많은 사업장에서 전임자 관련 교섭이 이루어진다. 금속노조의 경우 올해 단협이 만료되는 사업장이 80%에 이른다.
▶ 중소사업장 노조 약화에 따른 노동자 단결 문제
두 번째는 노동자운동의 단결과 관련된 것이다. 근로시간면제위가 조합원 수 범위에 따라 전임자 한도 수를 정하게 될 텐데 노동조합의 규모, 재정상황, 기업 내 역관계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이 단결된 투쟁으로 정부와 자본에 맞서 싸우지 못한다면, 노조 간 격차가 터 커질 수도 있으며, 중소사업장 노조가 고립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유급 전임자 및 채용 활동가가 200여 명에 달하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8개 사업장이 2명의 전임자를 가지고 지회로 편제되어 활동하는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회의 상황이 다르다. 현대차지부가 줄어든 전임자 수를 가지고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처지라면 남부지회의 경우 전임자 수가 1명만 줄어도 지회 유지 자체가 곤란해질 수 있는 처지다.
한편 현장 교섭력이 매우 약한 중소사업장 노동조합들은 벌써부터 전임자와 관련한 공격을 받고 있다. 많은 사업장들에서 연초 노사 상견례부터 사업주들이 올해부터는 전임자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것 아니냐며 강한 압박을 하고 있다. 개정 노조법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근로시간면제를 할 수도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는 구조다. 자본가들이 교섭 시 현장에서 들이댈 수 있는 강한 무기인 셈이다. 대한상의, 경총 등은 연초부터 회원사들을 상대로 전임자임금지급과 관련하여 “원칙은 임금지급금지”라면서 민주노총의 특별단체협약 요구를 무시할 것을 교육하고 있다.
▶ 노동조합 활동가의 사회운동에 대한 제약
마지막으로 노조 간부들의 역할과 관련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은 단순히 전임자의 수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유급 노조 간부의 업무에 관한 것도 규정하고 있다. 법으로 아예 노조간부는 흔히 실리주의라고 비판받는 내용만을 하라는 것이다.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 유지관리 업무”라는 문구로 다소 두루뭉술하게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부, 사법기관, 언론 등의 노조 투쟁에 대한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이러한 조항이 앞으로 노조 간부들의 활동을 상당히 제약할 것이다.
당장 상급단체 파견부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자 문제를 논의했던 노사정위 공익위원들부터 자본가단체에 이르기까지 상급단체 파견은 노동조합 유지 관리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산별노조는 기업노조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근거 역시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데, 이들에게 노조 전임자는 기업이 지불하는 노무 비용이기 때문에 애당초 산업별노조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의도가 관철되어 유급 전임자들이 기업에 묶인다면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공공노조를 비롯하여 민주노총 지역본부까지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문제는 장기적으로 이러한 법적 제약이 노동조합 활동가 역할에 대한 노동자운동 진영의 인식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민주노조 운동이 여러모로 실리주의적으로 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서 노동운동 간부는 여러 사회운동의 이슈(보편적인 노동권, 평화, 민주주의 등)에 참여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존중한다. 하지만 실리주의 운동이 확장되어가는 가운데 노조 간부 활동에 대한 법적 규제까지 더해진다면 이러한 대의명분조차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정권과 자본이 앞으로 유무급을 상관하지 않고 현장 노동자들의 노조 운동 자체를 봉쇄할 여지도 있다. 정부가 만든 유급 기준은 이러한 점에서 일종의 노조 활동 관례처럼 확장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만들어 놓은 유급 전임자의 기준을 가지고 향후 유무급을 넘어 노동자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급 전임자(노조 업무 종사자, 노조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유급 기준과 어긋나는 여러 활동들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 정부의 아전인수, 전임자에 대한 오해와 국외 사례
정부는 외국의 예를 들어 전임자임금지급금지가 마치 세계적 표준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노동부가 상급단체 파견은 노조 재정으로 하는 것이라며 제시한 독일의 사례를 보자. 독일이 산별노조 파견자에 대해 노조 재정으로 처리 가능한 것은 우선 법적으로 보장되는 강력한 산별교섭과 경영참가가 보장되는 작업장위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집중화된 전국교섭과 지역교섭은 노동조합 교섭 업무의 상당 부분을 해결해주며, 유급 근로 시간 면제가 주어지는 작업장 위원회의 위원들은 노조와 조합원 사이에 가교가 되어 준다. 더군다나 한국과 달리 노조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도 여러 방면에서 노조 업무를 줄여준다. 산별교섭은 고사하고 노조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일관하는 한국 상황과 비교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노동부가 또 다른 예로 든 프랑스 역시 비슷하다. 프랑스는 법으로 보장하는 전국적 대표 노조들이 쟁취한 협약이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되어 적용된다. 협약의 확대적용은 고사하고, 존재하는 단체협약도 무시하기 일쑤며 각종 법적 소송으로 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한국과는 천지차이다. 또한 프랑스의 현장 노동자들은 조합대표, 종업원대표, 기업위원회 위원, 지역분쟁조정위원회 노동자 대표 등 다양한 경로로 노동자 운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여러 수준으로 근로시간 면제가 주어진다. 노동자 운동 관련 활동 시간으로 따지면 절대 적지 않다.
복수노조허용 및 창구단일화: 복수노조 허용에서 어용노조 육성으로
개정 노조법 29조의 1, 2, 3, 4항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단일화를 규정한다. 29조의 2에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하며, 노동조합 간 자율교섭으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지 못한 경우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된다. 과반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전체 조합원의 10% 이상인 노조들이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하며, 이마저도 구성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강제로 비례대표를 결정한다. 그리고 예외 조항으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결정하는 기한 내에 사용자가 동의한 경우 창구단일화를 거치지 않고 노조별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
개정 노조법의 29조는 요약하면, 초기업노조를 배제하며 사용자와 정부가 입맛대로 개입할 수 있는 복수노조 설립과 교섭창구단일화 방안이다. 복수노조 난립으로 교섭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간단한 논리로 그동안 자본이 원했던 갖가지 독소 조항들을 모두 집어넣은 것이다.
▶ 초기업 노조 무력화
먼저, 법안 자체가 기업 교섭 프레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법안은 교섭의 단위로 기업(사업 또는 사업장)을 규정한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가 지금까지 진행해 온 산별중앙교섭은 사용자가 마음먹고 사업장에 어용노조라도 만들면 그 순간부터 교란된다. 개정 노조법은 교섭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 교섭단위를 먼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사측이 어용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방해하기 시작하면 노동조합 간 자율교섭부터 노동위원회 결정까지 최장 67일이 소요된다. 십 수 개의 사업장만 이런 식으로 교란해도 중앙교섭은 물론이고 시기 집중 교섭까지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다. 개정 노조법은 철저한 기업별 교섭 프레임으로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산업별 교섭을 근간부터 흔든다.
▶ 사측과 정부의 개입
강제적인 기업별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은 사실상 복수노조 허용이 아니라 정부와 사측의 교섭단위 결정 개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은 복수노조 간 자율교섭으로 교섭대표노동조합을 결정하지 못할 때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노동조합이 대표노조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일부 대공장 노조를 제외하고는 이미 존재하는 민주노조도 사측의 탄압으로 매년 고생하는 상황에서 사측에 의한 어용노조 육성은 불 보듯 뻔하다. 더군다나 법안은 29조 1의 1항에서 사용자가 동의한 경우 교섭 창구 단일화를 하지 않고 노조별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사용자가 개입할 여지를 확대해 놓았다.
여러 노조가 난립하여 과반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정부가 교섭대표단 구성에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 29조 2의 5항은 교섭대표단이 구성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가 이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최근 더욱 보수화하고 있는 노동위원회의 성향을 보면 판결이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 불리하게 결정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무노조 혹은 어용노조 사업장에 사용자가 꺼리는 민주노조가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존재조차 부정당할 비정규직 노조
비정규직 노조는 노조 존재 자체가 부정될 가능성이 크다. 비정규직 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창구단일화로 가게 되면 결국 사업장 내에서 비정규직 노조는 교섭권을 가진 과반수 노조의 처분을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법안은 29조의 3에서 “사업장에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하여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노동위원회는 노동관계 당사자의 양쪽 또는 어느 한 쪽의 신청을 받아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노동위원회 성향을 볼 때 노동위원회가 비정규직 노조의 교섭을 창구단일화에서 분리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 국외 사례
정부는 미국과 프랑스의 예를 들어 마치 교섭 창구 단일화가 세계적 표준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앞의 노조 전임자 문제와 같은 아전인수와 다름없다.
미국의 배타적 교섭 대표제는 선진 제도가 아니라 애초의 법안 취지가 악용되고 있는 대표적 노동악법이다. 현재 미국노총(AFL-CIO), 승리를 위한 변화 연맹(Change to Win Federation) 모두가 법안 개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 1935년 와그너 법에 의해 규정된 배타적 교섭 대표 제도는 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승인한 노조 대표가 노조 교섭과 관련한 전권을 가지는 제도이다. 노조 또는 사용자가 30% 이상의 사업장 노동자 서명(수권카드)을 받아 노동관계위원회에 교섭대표선거를 신청하면, 위원회가 적합성 심사를 벌인 이후 사업주로부터 선거권자 명부를 받아 투표를 실시, 과반수 득표를 한 조합이 대표권을 획득한다. 애초 법안은 사용자의 교섭 회피를 줄이기 위해 전제 노동자의 투표를 통해 사용자에게 교섭을 강제하고, 조합원 직접 투표를 통해 당시 다수 존재하던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기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법안은 사용자들이 노동자 정보를 독점하여 대표 선거를 어용노조 정당화에 이용하고, 배타적 교섭대표(창구단일화)를 통해 신규노조 설립 자체를 방해하면서 미국의 대표적 노동악법으로 변질하였다. 노동조합들은 민주당 대통령 시기마다 개정을 요구했으나 번번이 공화당에 막혀 개정시키지 못했다. 현재 승리를 위한 변화 연맹은 사측의 개입을 차단하고 신규노조 설립을 자유롭게 가능하게 할 노동조합에 대한 종업원자유선택법률(Employee Free Choice Act)을 의회에 통과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한국 창구단일화를 프랑스와 비교하는 것은 더욱 가당치도 않다. 우선 프랑스의 단체협약은 기본적으로 산별교섭으로 체결된다. 모든 사업장에서 노조 설립이 허용된 5개 대표노조는 각각 혹은 공동으로 사용자 단체와 산별협약을 체결한다. 이들 대표 노조가 체결한 산별협약은 조합원뿐만 아니라 산업 내 모든 노동자에게 효력이 확장 적용된다. 확장되는 효력은 각 노조가 체결한 협약 중에 노동자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조항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5개 대표노조가 각각 산별 교섭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공동 교섭의 효과를 갖는다.
그리고 기업별 교섭은 산별협약의 유리한 조항을 악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 기업에 있는 복수의 대표노조들 지부는 결과적으로 최선의 산별 교섭 조항들로 이루어진 확장 효력 하에서 교섭을 진행하기 때문에 통상 다수의 노조가 존재하더라도 공동으로 교섭단을 꾸려 기업별 교섭을 체결한다. 2004년 노조법 개정으로 이전과 달리 법률에 근거한 기업 내 대표 노조가 기업별 교섭의 배타적 지위를 확보하지만, 이 자체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갈등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 노조법 개악에 대한 실리적 대응과 노조의 몰락
노조법을 개악하여 노동자운동을 파괴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다수 존재한다. 특히 자본의 천국인 미국과 영국의 예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반공주의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업고 1947년 태프트-하틀리법을 통해 노조의 이념과 운동을 제약했다. 영국은 1979년 대처 정부 등장을 계기로 대대적인 노동법 개악에 나섰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노동운동은 전쟁 기간 억제된 임금과 고용조건에 대해 일제히 분노를 터뜨리며 1946~47년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벌였다. 대표적으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지엠을 상대로 1945년 겨울부터 113일간 파업을 펼쳤다. 정부와 자본은 이에 대해 노조법 개악으로 맞섰는데, 상원의원 로버트 태프트가 주도한 노사관계법은 노조의 연대 파업, 정치적 파업, 다른 사업장에 대한 연대 투쟁을 금지했다. 그리고 연방정부에 의한 직권중재, 대통령에 의한 파업 중단 명령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에게 노동조합의 대표적 교섭권을 거부하고 새로 선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아예 노조의 손과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한편 당시 미국 노총 및 금속산별노조의 대응은 매우 수세적이었고, 실리주의적이었다. 미국노조의 가장 강력한 부위였던 전미자동차노조는 노조법 개악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기업 지불 능력에 따른 임금 인상’이라는 투쟁 전략을 수립했는데, 노조가 기업과 정부에 협조할 테니 기업은 지불 능력이 되는 만큼은 성실하게 임금을 인상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전쟁 이전까지 유지되던 산업별 임금 정책을 포기했다. 당시 전쟁을 거치며 많은 수익을 올린 완성차(지엠, 포드, 크라이슬러)업체 노동자에게는 적합할 수 있으나, 수백 개의 중소 부품업체 노동자에게는 오히려 임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이었다. 또한 연대파업, 연대투쟁을 금지하려는 정부 정책과 조응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전미자동차노조의 이러한 정책을 환영했고,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의 수익을 조사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비즈니스 노조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노조 노선은 이렇게 노조법에 대한 적응과 실리주의적 대응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 노선은 그 어떤 사회운동적 과제와도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미국 내에서도 대공장 정규직 이기주의로 매도되며 고립되기 일쑤였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계속 낮아져 2008년에는 10%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으로까지 낮아졌다. 2009년 전미자동차노조가 3만여 명의 조합원을 해고로 잃고 3조원이 넘는 노조의 퇴직자건강보험기금마저 사측에 빼앗겨도 아무도 노조를 동정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처 정부는 단계적으로 노조법을 개악하며 노동조합 운동의 기반을 흔들었다. 1980년 고용법 개정에서는 노동조합의 연대투쟁과 연대파업을 불법화했고, 1982년에는 영국 노조의 근간을 이루었던 클로즈드숍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1984년에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여 파업에 대한 노조의 면책권을 제한했고, 노조의 정치자금 조성 역시 여러 조건을 달았다. 1988년 고용법에서는 노조원이 노조의 파업에 참가하지 않아도 노조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으며, 자기 사업장 외 모든 투쟁(Secondary picketing)에 대해서는 연대할 수 없도록 하였다. 대처 정부는 이 밖에도 노동조합의 연대를 금지하는 여러 조항을 신설하여 노동조합을 기업별 체계에 고립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영국노총의 대응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대처 정부의 노조법 개악이 매해 계속되는 가운데 터진 1984년 탄광파업은 영국노총(TUC)의 방관 속에서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고, 영국노총은 투쟁과 연대보다는 노동당 재집권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과 선거 운동에 모든 힘을 쏟았다. 1980년대 내내 노동당은 선거에서 졌고, 영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979년 55%에서 2005년 26%로 반토막이 났다.
2010년 개정 노조법에 대한 대응: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자
자본의 의도는 명확하다. 위의 영국과 미국 사례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자본이 노동조합과 관련하여 공격하는 첫 번째 목표는 노동조합 ‘운동’의 제거다. 개정 노조법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역할을 제한함으로써 아래로부터 노조 간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내고, 창구단일화를 통해 초기업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은 물론 정부와 사용자의 노조 개입력을 높인다. 1947년 태프트-해틀리 법과 1980년 영국 고용법 개정이 가장 먼저 노동조합의 연대투쟁을 금지했던 것과 비슷한 논리다.
자본의 의도가 이러할진대, 노동자운동의 대응 역시 단기적인 전임자 수 확보, 단체교섭과 관련한 기존 노조의 기득권 보호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갑을 모두 내놓으라는 강도에게 차비만 달라고 구걸하는 꼴이다.
물론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한국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당장 개정 노조법을 투쟁으로 재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노조법 투쟁을 어떠한 관점에서 계획할 것이냐다. 개정 노조법을 단순한 전임자와 단체교섭 조정과 관련한 것으로 본다면 이 투쟁은 시작부터 실패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지금 당장 큰 투쟁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개정 노조법에 대한 투쟁을 자본이 노리는 것과 정반대로 노조를 강화하기 위한, 즉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접근해나간다면 당분간은 어려운 조건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미국이나 영국이 거쳤던 길과는 다른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정 노조법에 맞선 투쟁은 이러한 점에서 개정 노조법의 문제점을 전 조합원에게 분명하게 알려내고 앞으로의 투쟁을 조직해나가는 교육 사업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조합원들에게 노조법 개정안은 여전히 노조 전임자 숫자 조정 수준에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없이 노동 기본권도 없으며, 노동조합의 사회운동 없이 노동조합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대국민적으로 확인하게 할 수 있는 범사회적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당장 2009년 경제 위기 와중에 큰 피해를 본 저임금 노동자층의 획기적 임금 개선을 목표로 하는 대대적인 최저임금 인상 투쟁이 계기가 될 수 있다. 통상 6월에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산별교섭도 전국교섭도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가장 광범위하게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투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쟁 중 하나이다. 6.2 지방선거가 존재하는 만큼 지역자치단체 수준에서도 이슈로 만들 수 있는 지역 최저임금 관련 의제를 개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7월 노조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노조법을 비판하는 매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4월 초부터 본격화될 금속노조 조기단협 투쟁, 단협이 해지된 철도 발전 가스 등 공공부문 노조들의 노조 사수 투쟁을 총연맹 수준에서 함께 만들어 갈 기획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노조법이 노리는 바가 모든 노조가 개별화되는 것이니만큼 이에 맞선 투쟁은 총연맹 차원에서 얼마만큼 단결력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당장 3월부터 근로시간면제위에 대한 참가 여부가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근로시간면제위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참가하여 조그만 실리라도 챙기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현재 개정 노조법 투쟁을 노조 전임자 숫자와 창구단일화 교섭 절차 정도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 노조법에 대한 투쟁은 조그만 실리를 주고 받는 투쟁이 아니라 한국에서 민주노조의 역할이 결린 투쟁이다. 개정 노조법 위에서 근로시간 면제 상한선을 정하는 것에 그치는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투쟁의 정당성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3~4월 근로시간면제위 결정 이후에는 기업 혹은 산별 차원의 단협 교섭이 진행될 것이다. 노동부는 산하 지방 기관에 근로시간면제위 결정 이전에 노조와 교섭하지 말도록 사측을 지도하도록 방침을 내렸다. 금속노조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4월까지 자본은 교섭을 회피할 것으로 보인다. 올 해 내내 단협 관련 노사 교섭이 여러 수준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노조는 전임자를 유지하고 장기 투쟁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조합비 인상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7월부터 법이 시행되지만,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지난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투쟁 전술을 동반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노조법에 대한 이해와 노동운동의 나아갈 바에 대한 동의가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