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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3-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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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단속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이야기할 때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반대운동과 이명박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반대한다

최윤정 | 정책위원
산부인과 불법 낙태 근절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프로라이프의사회는 2월 3일, 불법 낙태혐의가 포착된 병원 세 곳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다음 날 서울중앙지검은 프로라이프의사회가 고발한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2008년 12월에 출범한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사랑하는 산부인과의사들 모임)는 2009년 10월 낙태근절운동을 개시하면서 12월 초 타과 의사와 일반인도 참여하는 낙태근절운동본부를 설립하고 12월 말에는 프로라이프의사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들은 태아 생명 보호를 모토로 걸고 “어떠한 경우에도 임신과 출산, 육아를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할 수 있는 사회토양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낙태시술을 하지 않고도 걱정없이 소신껏 병원운영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의료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낙태근절운동을 벌이고 있다.
프로라이프의사회는 올해 1월 1일부터 낙태 시술 병원을 제보받기 시작했으며 정부 또한 불법 낙태 시술 의료기관에 대해서 강력한 단속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작년 11월 말 대통령 직속기관인 미래기획위원회의 ‘제1차 저출산대응전략회의’에 참석하여 낙태 문제 해결을 촉구했으며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낙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전재희 복지부 장관도 앞으로 낙태를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최근의 낙태 고발과 이에 대한 적극적 수사는 프로라이프의사회의 강력한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몸과 출산을 여성이 말하지 못하는 현실

그런데 문제는 태아의 생명 존중이라는 슬로건에 여성의 존재는 삭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낙태근절 운동에서 여성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설계하는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아이 낳는 기계’이거나 원치 않는 임신 시 생명을 빼앗는 범죄자, 살인자로 등장하고 있다. 여성들이 현재 처한 현실에서 그녀들의 필요와 요구에 봉사해야 할 의사들이 무슨 권리로 여성들의 삶을 통째로 바꿔버릴 임신과 출산에 대해 통제하려 하는가. 여성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는 귀를 막은 채 의사들은 지식과 권위를 남용하며 여성들의 삶에 대한 선택과 권리에 메스를 들이대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국가는 ‘저출산 대책’을 빙자하여 낙태반대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여성들이 자신의 상황과 요구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낙태=범죄’, ‘낙태=살인’이라는 구도 하에서는 여성들이 왜 낙태를 하게 되는지,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성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여성이 아무리 낙태를 둘러싼 자신의 얘기를 하더라도 ‘범죄, 살인의 경위’를 설명하는 것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 자체가 여성들에게 매우 폭력적이다.
진정 낙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려면 생명을 잉태하는 주체로서의 여성, 낙태를 결정하는 주체로서의 여성들이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때서야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된다. 그 공간에서 비로소 우리는 낙태가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권리로서 여성의 재생산과 그 권리가 보장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권리라는 쟁점 자체가 들어설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들의 권리를 말하기 이전에 우선 그 권리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프로라이프의사회와 정부는 낙태 단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미국의 신보수주의, 한국의 프로라이프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출산을 장려하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자는 구호 아래 진행되는 낙태 근절 운동은 미국의 신보수주의 운동과 내용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은 ‘로우 대 웨이드’ 사건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을지 결정하는 것은 미국인의 사생활 권리에 속한다는 논리에 근거해 낙태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림으로써 낙태를 합법화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에 처음 나타난 친가족 운동은 페미니즘에 의해 이미 획득된 낙태권을 문제 삼으면서 이를 제한하려는 프로라이프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낙태권에 대한 공격을 시발점으로 가족, 성욕, 재생산에 대하여 페미니즘이 정치화했던 의제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친가족 운동은 레이건, 부시 시대에 대중적인 토대를 확립하였고 영국의 대처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수렴되었다. 미국에서 친가족 운동으로 결집한 우파는 공화당의 정책을 반페미니즘, 반동성애, 반낙태로 전환시켰다.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친가족 정책에 반대했지만 선거 이후 클린턴 역시 가족의 가치를 옹호했다. 영국의 블레어 수상 또한 가족을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친가족적 흐름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약화되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개별 가족에 전가하려는 흐름에 다름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적 안정은 행복한 가족에 달려있고 가족의 행복은 자기희생적인 여성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의 슬로건을 내걸고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는 1997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실질 가족임금 삭감, 여성노동의 주변화(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 가사, 양육노동의 여성 전가로 여성의 출혈판매가 강요되었다. 이는 출산율 저하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더해 ‘프로라이프’ 운동은 당장 아이까지 더 낳으라고 하고 있다. 미국의 친가족 정책이든 한국의 프로라이프 운동이든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적 위기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은 동일하다.

국가 인구조절 정책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몸

이제까지 국가가 낙태를 용인하다가 이제와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여성의 재생산을 인구조절 정책의 대상이자 도구라는 관점을 견지한 채 인구조절정책을 출산억제에서 출산장려로 기조를 전환한 것이다. 여성이 출산을 할지 말지 결정할 권리는 국가정책에 종속되었으며 여성의 몸은 국가의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인구가 많으면 피임을 위한 난관수술이나 자궁 내 장치로, 인구가 적으면 ‘강제적 임신과 출산’으로 국가의 개입과 규제의 대상이 되어왔다.
낙태의 법적 지위는(명문상 의미 뿐 아니라 실질적 의미를 포함해서) 국가의 출산정책과 조우해왔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지배하에 일본 형법이 들어오면서 1912년 낙태에 대한 처벌 규정이 처음 생기게 되었는데 당시 일본형법은 기독교 윤리관에 기초한 19세기 근대국가의 형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47년 해방 직후 산아제한 분위기와 전쟁 후 인구증가가 공익이라는 생각이 공존하면서 낙태죄를 유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가 1953년 해방 이후 최초 형법에 낙태죄가 유지되었다.
1961년에는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가족계획이 처음 채택되었다. 국가는 가족계획사업 10개년 계획 하에 인구증가율을 감소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가족계획에 대한 지도와 교육사업 및 지원사업을 실시했다. 국민들이 이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인구증가 억제에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1962년 이래 낙태 시술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정부는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으로 낙태 시술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로써 한국에서 낙태 시술이 크게 성행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가족계획사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낙태의 일부합법화를 시도하는데 1973년 모자보건법은 동법 제8조에서 낙태시술 허용사유를 확대하면서 법적 완화가 이루어진다. 이후 정부는 1976년, 1982년, 1985년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 사유를 확장하려고 하지만 종교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이를 추진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출산율은 1960년 6.0명이던 것이 1970년에는 4.53, 1983년에는 인구대치수준인 2.1명으로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80년대 후반 피임도구의 무료공급을 중지하였고 1996년 출산억제정책을 인구자질 향상정책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1999년 출산율은 1.5명, 2001년에는 1.30명, 2002년 1.17명으로 더욱 낮아졌다. 정부는 2003년 보건복지부 주도하에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안을 서둘러 마련하였고, 2005년, 2006년에 걸쳐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는 정책들이 생산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에 세운 대통령직속기관인 미래기획위원회는 작년 11월 저출산 종합대책으로 불법 낙태 단속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 변화를 보면 낙태의 문제가 태아의 생명존중을 위해 일관되게 제기되었다기 보다는 인구조절의 맥락에 따라 출산억제정책 시에는 묵인했다가 출산장려정책 시에는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출산정책은 변해왔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출산정책 속에 여성의 재생산권리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의 인구조절정책은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 재생산을 관리하기 위해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하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한국 자본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노동력의 양적, 질적 관리를 위해 여성의 몸은 수도꼭지 조절하듯 피임 아니면 임신을 강요받았다. 사상 초유의 출산율 저하는 노동자들이 더 낮은 임금, 더 긴 노동시간, 더 힘든 노동강도를 향해 밑바닥으로 출혈경쟁을 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을 무시한 채 국가와 사회는 여성의 몸을 착취하면서 더 강력하게 노동력 재생산 관리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낙태의 음성화가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세계보건기구는 낙태합법화 여부보다는 성교육의 부재, 피임법에 대한 무지, 부성애 결핍, 통합적 건강보호체계의 미비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낙태시술 빈도를 높이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연간 낙태율은 이는 1000명당 평균 29.8명으로 미국(21.1명)이나 영국(17.8명)보다 높지만 미국이나 영국은 한국보다 더 포괄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또 카톨릭 전통이 강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낙태를 다른 대륙보다 엄격하게 처벌하고 현재까지도 사회적 금기로 여기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들보다 낙태시술 빈도가 오히려 더 높다. 더군다나 낙태가 불법화된 국가들의 경우 다른 나라로 가서 낙태 시술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낙태 빈도가 낮다고 해서 믿을 만한 것도 아니다.
낙태 접근권을 제한하는 것은 낙태를 줄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미 낙태시술을 원하는 여성이 시술병원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출산을 택하지 않는 여성들은 낙태시술을 하기 위해 더욱 음성화된 경로를 찾아 위험한 시술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루마니아에서는 낙태가 불법화되기 시작한 1965년부터 1984년까지 100,000건의 출산 당 모성사망률이 21건에서 128건으로 증가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1970~1976년 사이 5,000건의 낙태 당 사망률이 30에서 5로 줄었다.
낙태의 법적 지위는 여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명문상 낙태가 불법이지만 고발이나 처벌이 드물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합법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167개국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낙태의 법적 허용범위가 1) ‘여성의 생명이 위급할 때만’ 2) ‘1의 경우 + 여성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로울 때’ 3) ‘2의 경우 + 강간이나 근친상간일 경우’까지인 경우 안전하지 않은 낙태는 여성 1000명 당 23~25건이었고 낙태 허용범위가 4) ‘3의 경우 + 태아 기형인 경우‘인 경우 10으로 감소했고 5) ‘4의 경우 +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6) ‘5의 경우 + 산모의 요청에 따라’인 경우에는 0~2건으로 급감했다. 또 165개국을 대상으로 했을 때 낙태 시술로 인한 산모 사망은 낙태 허용 범위가 1, 2, 3, 4인 경우 각각 10만 건의 출산 당 각각 34, 55, 30, 10을 나타냈고 낙태허용범위가 5) 사회경제적 요인, 6) 여성의 요청에 따라 확대되었을 경우 낙태시술로 인한 모성사망은 각각 0, 1로 감소했다.
낙태 시술 자체는 훈련된 전문인에 의해 시행되었을 때는 비교적 안전한 시술이지만 훈련된 전문가에 의한 시술일지라도 합병증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음성적으로 비전문인이 임의로 시행할 경우 합병증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 낙태는 다량의 출혈이나 쇼크, 자궁 내 감염, 불임 등을 야기할 수 있으며 질 열상, 자궁 천공 등의 생식기 손상 뿐 아니라 방광이나 장에 손상을 줄 수도 있다. 낙태시술을 하는 의료기관, 의료인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면 여성들의 낙태접근권은 심각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억지로, 고통스럽게 지속하거나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목숨을 거는 경우는 주로 안전한 시술을 위해 고비용을 부담하거나 외국으로 원정 낙태를 갈 수 없는 빈곤여성들이 될 것이다. 일례로 멕시코 페미니스트들은 공공연히 “부유층 여성들은 낙태하고 빈곤층 여성들은 죽는다”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부유층 여성들은 비밀스런 낙태나 외국에서의 낙태에 고비용을 들여 사회적 금기를 비껴갈 수 있는 반면 빈곤층 여서들은 위험한 자가 인공낙태를 시도함으로써 출혈이 발생해 사망에 이르는 것을 비유한 것이었다.

권리로서의 여성의 재생산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낙태근절운동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이들은 낙태 근절을 위해 미혼모와 사생아, 기형아와 장애아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 제거, 공공 및 사설 보육시설의 확충, 직장 내 임산부와 워킹맘에 대한 처우 개선, 청소년 임신의 경우 남성의 책임 문제, 대국민 성교육과 피임교육 및 낙태 폐해 교육, 생명경시 풍조와 개인주의 제고 등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모든 해결책은 ‘여성이 임신을 하면 무조건 출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 관련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설계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고 여성은 임신되면 출산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모성을 전제로 하지 않은 성을 누릴 권리 혹은 모성을 거부할 권리
피임을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피임실패의 확률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임신을 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낙태에 대한 접근권은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신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은(주로 이성관계) 여성에게 위험하고 두려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즉 모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관계가 부정되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정확하게 낙태반대론의 결론이다(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 무서우면 정숙하게 살면 된다’는 것이다. 즉 ‘아이 낳을 생각 없으면 섹스하지 마라’ 내지는 ‘즐기는 여성은 당연히 그에 따르는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은 여성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역할을 강요하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의 맥락 하에 있다. 낙태접근권에 대한 제한은 따라서 여성의 몸에 대한 규제일 뿐 아니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규제이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존재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러한 역할규정을 거부할 수 있다. 여성들은 모성을 전제로 하지 않은 성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때 성의 위험(성폭력, 임신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또한 성관계로부터 철수할 자유도 있다. 많은 여성들이 성을 즐기기 위해 남성과는 달리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많은 경우 원치 않는 성관계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는 곧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생산 권리를 위한 조건으로서 피임 접근권과 양육서비스의 사회화
프로라이프의사회 뿐 아니라 국가정책연구기관이나 학자들도 낙태를 예방하기 위한 주요 방안으로 피임교육과 피임도구의 공급 그리고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안의 목적이 ‘낙태를 근절하는 것’이 되어서는 여성들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다양한 피임방법들에 대한 접근권은 낙태 근절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기 위한 도구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피임이 접근되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피임은 도리어 남성의 욕구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낙태 합법화 또한 남성이 더 손쉽게 여성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탈리아의 일부 여성운동의 입장이기도 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피임과 임신에 대한 지식과 자원을 제공하는 데 봉사해야지 프로라이프의사회처럼 여성들의 재생산권 자체를 통제해선 안 된다. 의사가 종교적 이유 등으로 낙태시술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할 수 있지만 여성의 통제권이라는 전제하에서 피임이든 출산이든 여성의 고유한 권리는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또 여성들은 또한 어떤 방식으로 피임을 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 콘돔의 피임 성공률은 현실적으로 70%밖에 되지 않지만 콘돔 사용에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 반면 피임 성공률이 95% 이상인 것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경구 피임약이나 자궁 내 장치등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아 여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여성들이 자신이 언제 어떻게 어머니가 될지 선택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근절하기 위해’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라면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출산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양육서비스를 사회화하는 것은 현재 여성들이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출산을 선택하기 어려운 것과 달리 여성이 원할 경우 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여성이 낙태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하자

낙태를 둘러싼 운동들은 대개 생명권(프로라이프) 대 선택권(프로초이스)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이는 핵심적인 갈등을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나 이 대립은 여성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태아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던 여성도 막상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거나 출산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임신을 하게 되었을 경우 낙태를 고려하게 되며 낙태를 하는 여성이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낙태를 고려하는 여성에게 생명권과 선택권에 대한 고민은 중첩되어 나타나며 결과적으로 하나를 선택하게 될지라도 그 선택 자체가 부당한 경우가 많다.
노동이 불안정해지고 사회안전망이 무너지며 양육의 책임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이 태아의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는 쉽지 않다. 또 성관계는 결혼의 틀 밖에서 자유롭게 이뤄지면서 결혼의 틀을 벗어난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사회적 낙인이 있는 상황에서 미혼 여성이 태아의 생명에 대해 고민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에게 낙태는 지금 현실에서 절박한 것이다.
여성의 삶과 태아의 생명이 본질적으로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현재와 같이 출산과 양육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여성의 삶을 너무 힘들게 만드는 조건 자체가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삶을 대립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조건 자체가 완화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에게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으며, 어느 순간에는 태아의 존재가 여성 자신에게 대립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오히려 고민해야 할 지점은 그 대립을 최소한 하는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여성 자신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충분한 숙고와 통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 여성이 재생산권리를 갖는 것이 관건이다.
여성의 출산이 선택 가능한 것이 되는 사회적 조건이 형성되고, 여성이 자신의 재생산권리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 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태아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고민을 시작할 수 있으며 자신이 진정 어머니가 되고 싶은지 그렇지 않은지 성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78년 노르웨이에서 낙태의 허용 범위가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양육이 어려운 경우’에서 ‘여성이 요청할 경우’로 확대된 이후 여성들은 그 이전보다 ‘낙태를 선택하는데 더 많은 고민이 되고 더 선택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이는 당시 노르웨이의 태아생명옹호론자들이 낙태의 허용범위를 그렇게까지 확대하면 여성들이 너무 쉽게 낙태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과는 정반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여성들의 목소리로 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 스스로 여성의 권리를 이해하고 쟁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들의 몸에 대한 통제권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사회구조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요구해야 한다.

안전하고 저렴한 낙태 시술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라!
의무가 아닌 권리로서 피임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라!
양육 서비스를 시장화하지 말고 공적으로 사회화하라!
여성의 재생산권 없는 저출산 정책 중단하라!

[자료] 멕시코의 낙태합법화 운동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여성의 자발적 낙태를 완전히 허용하는 국가는 쿠바, 푸에르토리코, 가이아나 등 세 국가 정도다. 그 외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은 성폭력, 근친상간, 태아의 심각한 기형, 산모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에 한하여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멕시코는 1세기 전 가톨릭교회와 국가 간 정교분리가 헌법에 명시됨에 따라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진보적인 낙태법을 가지고 있다.
멕시코에서 낙태합법화 운동은 1970년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목표로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는 ‘자발적 모성’으로 목표를 전환하였다. 1990년대 본격적인 낙태합법화 과정을 거쳐 2007년 4월 멕시코시티 시의회에서 낙태합법화 및 비범죄화가 승인되었다.
1970년대 낙태합법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멕시코의 신페미니즘으로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멕시코시티 출신의 높은 교육을 받은 중산층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멕시코의 신페미니스트들의 낙태합법화운동은 “내 몸은 나의 것이다”를 모토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소그룹의 의식화 운동으로 진행되면서 섹슈얼리티 논의에 멕시코의 모든 여성을 포함시키기보다 극소수 레즈비언 여성들의 권리회복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신페미니즘 운동은 내부적으로 동성애자 그룹과의 갈등과 분열로 단일한 행동전략을 마련하지 못하였고 주로 개인의 실천영역에서 운동을 진행하는 한계를 보였다.
몸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했던 1970년대 낙태합법화 운동과는 달리 1980년대 멕시코의 낙태합법화 운동은 여성의 선택, 사회정의, 공공보건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인 ‘자발적 모성’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멕시코 페미니스트들은 낙태권 제한이 극빈층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국가들의 경우 여성의 자기결정권/자율권 개념보다는 건강에 대한 정보제공, 공공서비스로의 접근 가능성 등의 쟁점을 포괄하는 자발적 모성 개념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도 낙태 범죄화, 비합법화에 대응하는 논리로 몸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나 프라이버시보호와 같은 페미니스트 구호보다는 오히려 건강권, 생명권을 포함하는 사회적 정의 개념이 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여성의 자율성이나 재생산권리에 호소하는 것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광범위한 사회연대를 가로막는 경향이 있었고 생명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낙태반대론자들과 끝없는 갈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낙태합법화를 도출하기에 불리하다고 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제기하지 않는 것이 운동의 올바른 접근인가 하는 것은 고민할 여지가 있다. 여성운동이 낙태합법화를 요구했던 맥락은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낙태합법화를 요구했던 것이지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제기하지 못한 채 법과 제도의 개혁만을 달성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사상이 강한 미국의 경우 낙태합법화는 오히려 ‘개인의 프라이버시 존중’이라는 논리를 통해 가능했다. 가톨릭 전통이 강한 라틴아메리카와는 또 다른 배경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낙태를 사생활 권리로서 합법화한 것은 자유주의적 ‘개인’의 사생활 권리를 인정한 것이지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고유한 재생산권리에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멕시코에서 낙태합법화 논의가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빠울리나 사건’을 통해서였다. 빠울리나는 13세의 소녀로 성폭행을 당한 후 임신이 되었는데 당시 제한적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멕시코 낙태법으로 인해 가족들이 함께 낙태를 결정했음에도 낙태를 할 수 없었고 빠울리나는 아이를 출산해야 했다. 이어 2000년에는 보수정당인 국민행동당(PAN)이 성폭력으로 임신한 경우 합법적 낙태를 허용하는 법조항을 폐지하려고 하자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들은 합법적 낙태권을 방어하기 위해 대응하였다. 이를 계기로 낙태에 대한 보수 세력의 공세와 비판이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2003년 제도혁명당이 제출했던 낙태법 개정안은 임신 초기 12주까지 낙태합법화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낙태를 시술한 의사가 처벌되는 모순되는 부분을 담고 있었다. 이에 여성단체, 시민단체, 학술단체 등은 낙태법 재개정을 요구하였다. 이어 2007년에는 멕시코시티 시의회가 임신 초기 12주 이내에 한해 낙태합법화, 비범죄화를 통과시켰다. 시의회 의원들이 낙태법 개정안 논쟁을 진행하는 동안 의사당 밖에서는 낙태 옹호론자들과 낙태 반대론자들이 대립적인 시위를 벌였다. 2007년 낙태합법화 법안에 가장 극렬히 반대한 단체는 극단적 보수성향의 프로비다(ProVida)로 이들은 ‘생명을 위한 행진’을 주도하며 낙태합법화에 찬성하는 시의원들에게 전화로 살해협박을 하기도 했다.
로마교황청은 태아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멕시코시티의 낙태법에 대해 우려하는 서한을 멕시코 주교회의에 전달했다. 멕시코 주교단은 멕시코 헌법 4조를 근거로 “어떠한 생명도 박탈될 수 없기” 때문에 낙태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멕시코 여성연구소는 헌법 4조에 대해 “여성과 남성 모두가 자녀수와 터울 조절을 위해 자유롭고 책임있게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근거로 낙태권을 지지했다.
낙태옹호론자들은 멕시코에서 낙태 시술을 받는 여성 대부분이 어머니, 기혼자, 가톨릭 신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멕시코에서 낙태는 가톨릭 교도든 아니든, 생명을 위한 행진을 하든 안하든, 낙태법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발생되는 실제적 문제라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가톨릭 단체들 중에서도 낙태옹호론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결정권을 지지하는 여성가톨릭교도들’이라는 가톨릭 여성조직은 멕시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 6개국과 2개의 유럽국(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에서 활동하는 국제기구이다. 이 조직은 바티칸과 가톨릭교회 질서 하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 재생산권리, 낙태권과 종교적 신념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였다.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에 대한 이 조직의 입장은 페미니스트운동이 가톨릭교회와 양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또 ‘결정권을 지지하는 전국 가톨릭청년교도들의 네트워크’는 낙태법 개정과 관련해 가톨릭교회, 로마교황청, 멕시코시티 정부, 의회 시민단체 사이에 유발된 논쟁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멕시코 사회에 증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낙태 옹호론자와 낙태 반대론자들의 극한 대립상황에서 민주혁명당 소속 시의원들은 2007년 낙태법 개정이 낙태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적합한 입법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시티 시장 에브라르드는 시정부가 낙태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적 낙태시술이 여성의 생명에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낙태를 합법화했다고 주장한다.
2008년 8월 멕시코 대법원은 결국 낙태법에 대해 합헌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임신 초기 태아에 대한 생명권 불인정이라는 멕시코 헌법과 국제협약의 규정이 낙태법 비범죄화 판결의 주된 근거였다고 밝혔다. 멕시코시티의 낙태법이 합헌적이라는 판결에 따라 멕시코시티에서는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에 대해 합법화가 인정되었고 멕시코시티에서 낙태는 위생적 환경에서 무료로 시술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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