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의 새로운 핵전략과 2010년 NPT 평가회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계’를 표방한 <프라하 선언>(2009년 4월)은 많은 사람들을 기대에 부풀게 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정책을 고수했던 부시 행정부와는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다.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대체할 수 있는 추가 협정 논의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희망은 더욱 커졌다. 오랜 세월 지지부진했던 핵 강국의 군축 조치를 통해 진정 ‘핵 없는 세계’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과는 달리 미국의 핵전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지난 4월 발표된 미국의 2010년 <핵태세검토 보고서>, 워싱턴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본 미국의 태도는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완된 핵 통제 질서를 다잡기 위한 제스처에 가깝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NPT
원자력의 상업적 이용은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들었고, 1949년 소련에 이어 1952년에는 영국까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1953년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 원자력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이를 감시하여 무기 제조를 방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원자력 발전은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고안된 에너지원이 아니라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라는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막기 위한 일종의 타협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핵보유국들의 의도를 국제적으로 보증한 것이 바로 <핵비확산조약>(NPT)이다. NPT는 핵보유국들이 보유한 핵무기를 줄여나가고(핵군축), 핵보유국이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비보유국)에 핵무기 및 관련 기술을 넘겨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동시에 비보유국은 핵무기 보유 시도를 하지 않으며(수평적 확산의 금지), 평화적 원자력 활동을 위해 함께 협력한다는 것(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요 내용으로 1970년 5월 출발했다.
그러나 NPT체제는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핵보유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적/질적 개량)에는 아무런 제어 효과가 없고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만 강조되는 불평등한 조약(심지어는 의결에서조차 핵보유국은 비토권을 지닌다. 조약 개정 절차를 명시한 NPT 8조 2항은 당사국 과반수 찬성의 전제로 핵보유국 전체의 찬성을 명시하고 있다)이었다. 또한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 역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해 NPT체제는 처음부터 불안정한 것이었다. 결국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핵보유국들의 핵경쟁은 지속되었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한국, 북한 등의 핵보유 시도는 계속 확대되었다.
NPT 평가회의
NPT는 발효 5년이 되는 해부터 평가회의를 통해 각 조항별 이행을 점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NPT 당사국들은 1975년부터 매 5년마다 핵비확산 의무, 핵군축 상황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조약의 주요 구성요소별 이행 상황을 평가하고 있다. 또 조약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검토하고 있다. NPT 평가회의의 역사는 NPT 체제에 내재된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NPT 조약은 발효 25년이 되는 1995년에 조약을 무기한, 혹은 일정 기간 연장할지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NPT 평가회의의 역사를 서술의 편의상 연장을 결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1975년~1990년
NPT 평가회의는 1975년 5월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당시 96개 당사국 중에서 58개국이 참가했으며, 비당사국이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스라엘 등도 참관 자격으로 참가했다. 비보유국들은 핵보유국들이 약속한 핵무기 감축과 폐기, 핵실험 중지 등 군축의무 이행에 진전이 없으며, 미소 양국이 오히려 핵군비를 증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미국과 소련은 <전략무기감축협정>(SALT)과 <심해저조약>(SBT) 등을 실적으로 내세우면서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가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1980년 평가회의에서는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었다. <77그룹>(UN 내의 개발도상국 연합으로, 1963년 76개 국가들의 대 선진국 협상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비공식 모임으로 출발했다)은 핵보유국들이 보유한 핵무기의 숫자와 폭발 실험 횟수가 증가한 현실을 비판하며 SALT2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또한 NPT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촉진하기보다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1980년 평가회의는 핵군축과 비보유국의 안전보장 문제에 대한 심각한 의견 대립으로 1985년에 3차 평가회의를 개최한다는 것만 확인하고, 평가회의의 성과를 보여주는 최종선언문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된다.
1990년에 열린 4차 평가회의에서는 1985년 2월 NPT에 가입한 북한이 처음으로 본회의에 참가했다. 비동맹그룹을 중심으로 한 비보유국들은 1995년으로 예정된 ‘NPT 연장 결정’과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체결을 연계시키려했으나 핵보유국들은 별개의 사안이라 맞섰다. 결국 관련국들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아 최종선언문 채택에 실패했다.
1995년 NPT 연장회의
NPT의 연장을 결정하는 1995년 평가회의에는 당시 178개 당사국 중 175개국이 참가했고, 10개 국가와 8개 정부간 기구(UN, IAEA, EC 등) 및 195개 NGO가 참관 자격으로 참가했다. 1995년 평가회의는 NPT 체제의 분수령이었다. 핵보유국들의 군축 의무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소극적 안전보장’ 문제 또한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1974년 인도의 핵실험과 1994년 이른바 ‘1차 북핵위기’는 비보유국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NPT를 얼마나 연장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NPT 체제 자체의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결국 ‘1차 북핵위기’는 제네바합의를 통해 봉합되고, 핵보유국들은 CTBT에 합의하게 된다. 평가회의에서는 핵보유국의 군축 의무를 규정한 NPT 6조가 완전히 이행되지는 않았지만 긍정적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와 함께 NPT 무기한 연장이 결정되었다. 비보유국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달래는 수준에서 위기가 봉합된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핵군축 일정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선언문은 채택되지 못했다.
이후
NPT 체제의 불안정성은 해결되지 않았다. 핵보유국의 군축 의무 이행은 지지부진했다. 1999년 미국은 CTBT의 의회비준을 거부했으며, 미사일방어망 계획을 추진하면서 핵 경쟁을 부추겼다. 인도의 추가 핵실험에 이어 파키스탄도 핵실험 대열에 합류하면서 비보유국들을 자극했다.
2005년 평가회의에서는 비보유국들의 불만이 극적으로 터져 나왔다. 비보유국들은 1995년과 2000년에 약속한 핵보유국의 핵군축 이행을 요구했고, 이란을 비롯한 비동맹 국가들은 소극적 안전보장의 명시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9/11 테러를 이유로 핵 확산 차단만을 강조했다. 미국은 NPT의 비확산 의무 이행 강화와 이란 등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속적인 사찰, 북한과 이란, 리비아에 민감한 원자력 기술을 제공한 국제 밀매조직에 대한 조사 등을 요구했다. 또한 소극적 안전보장 명시를 거부하고, 2000년 평가회의에서 제시된 ‘13단계 핵군축 프로그램’에 대한 강제적 후속조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결국 회의 개막 후 의제 설정도 못한 채 10여 일을 허비하다 핵군축, 핵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3개 의제에 대한 분야별 합의를 시도했으나 참여국 간 첨예한 입장 대립으로 협상을 포기하게 되었다.
미국의 전략
핵보유국의 ‘핵무기 감축 의무’와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는 NPT 체제의 두 축이다. 그러나 NPT 체제에는 핵보유국의 군축 의무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IAEA의 안전조치, UN의 경제 제재 등으로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만이 강제될 뿐이다. 결국 NPT 체제는 절멸의 무기를 바탕으로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할 뿐이다. 2005년 평가회의의 파행 후 ‘NPT 무용론’이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다른 비보유국들의 이탈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NPT 체제가 붕괴할 경우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다. 산업용 원자력 기술의 핵무기 전용은 인도의 핵실험으로 이미 오래 전에 증명되었고, 인류의 눈앞에 핵무기의 공포가 등장한 이후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 수많은 국가가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971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부토 총리가 ‘온 국민이 풀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폭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파키스탄처럼, 지금과 같은 절대적 전력 차이는 수많은 국가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멸의 무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드는 유인이 된다. 강대국들이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진행한 전쟁과 학살은 결국 절멸의 무기라는 부메랑을 타고 되돌아온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의 핵전략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강력한 비확산 체제의 유지
따라서 비보유국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강력한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에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미국이 핵무기와 핵테러의 확산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다루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지난 4월 13일, ‘핵안보정상회의’의 결과로서 발표된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공동성명>은 핵 테러리즘이 국제 안보에 가장 도전적인 위협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강력한 핵 안보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최근 발표된 미국의 2010년 <핵태세검토 보고서>(NPR)가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을 ‘핵심 계획’으로 지목한 것과 동일하다. 이번 NPR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 이란의 핵 의욕을 좌절시키고 IAEA 안전조치를 강화하며, 핵 물질 밀거래를 차단하고 NPT 의무 위반 국가들에 대해 조치를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북한과 이란 같은 이탈세력(outlier)에 대한 압박을 통해 NPT 체제로부터의 추가적인 이탈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상징적 수준의 핵군축
다음으로 핵군축 부분을 보자. 지난 4월 미국과 러시아가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체결했다. 협정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는 보유하고 있는 전략탄두를 1,500-1,675개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양대 핵보유국의 협상으로 핵군축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2012년을 목표 시한으로 설정하고 있는 <전략공격무기감축협정>(SORT)에 제시된 감축 목표(1,700-2,200개)와 비교했을 때 그리 큰 감축은 아니다.
또한 이번 협정의 핵탄두 계산법에 따라 실제 핵전력의 축소 규모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이번 협정의 탄두 계산법이 핵무기를 탑재한 핵폭격기 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핵폭격기 수만 줄이면 탑재된 핵탄두 모두 감축된 것으로 계산하도록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유사시에 신속 배치할 수 있는 능력만 확보한다면, 사실상 단 한 개의 핵탄두의 ‘폐기’ 없이도 목표치 달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핵전력 축소로 인한 전력 누수를 막기 위해 장거리 폭격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등의 ‘3원 전략 핵전력’은 유지하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와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덧붙여 미사일 방어망의 지속적인 추진과 재래식 전력의 증강 가능성 또한 열어두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비보유국에 대한 안전보장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소극적 안전보장’은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NPT에 가입한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핵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비보유국들이 소극적 안전보장의 명문화나 별도의 국제 협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핵보유국들은 NPT 의무 준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소극적 안전보장’은 오래도록 갈등적 쟁점이 되어왔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2010 NPR 발표 후 나온 언론 보도들이 대부분 ‘소극적 안전보장’에 관한 명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동안 미국이 취해 왔던 태도를 바꾼 것이라 보기는 힘들며 일종의 ‘명분 쌓기’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소극적 안전보장을 요구해 온 비보유국들을 NPT 체제에 묶어 두기 위한 유인책인 것이다. 실제 미국은 1978년 제1차 군축특별총회, 1995년 NPT 연장회의 등을 앞두고 소극적 안전보장에 대해 상징적 수준의 선언을 했지만, 구체적 형태로 추진한 바는 없다. 이는 미국이 ‘핵무기 선제 사용’ 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한된 조건‘ 내에서 ’핵무기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간 미국이 고수해온 입장이다.
2010 NPT 평가회의에 주목한다
지난 해 4월 ‘프라하 선언’에서부터 최근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까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드라이브는 핵군축과 비확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처럼 비쳤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느슨해진 NPT체제를 추스르기 위해 그동안 비보유국들이 주장해 온 내용을 상징적 수준에서 수용하는 제스처를 취할 뿐이다. 오히려 이를 빌미로 핵보유국들의 독점적 지위를 재확립하고, 군사적 패권을 유지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추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강력한 타격 능력의 유지, 강제력을 띤 차단 조치, 고립과 제재는 결코 핵무기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NPT의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행하고 있는 학살과 이에 대항한 테러, 그리고 이어지는 보복 공격과 또 다른 테러라는 죽음의 사슬처럼, 군사력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절멸의 무기에 대한 유혹은 커지게 된다.
2010년 NPT 평가회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2000년에 합의된 ‘13개 핵군축실질조치’에 대한 평가와 미국-러시아의 핵군축 상황, 핵무기 비확산과 핵물질에 대한 국제적 통제 방안, NPT 탈퇴 절차 강화 등의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여기에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가 중심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 러시아는 'New START'와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성과로 내세우며 강력한 확산 차단 정책과 이탈 세력에 대한 제재 방안을 추진해 갈 것이다.
동어반복이지만 ‘핵 없는 세계’는 핵이 ‘없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핵 자체를 폐기하지 않고서는 핵 확산을 차단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압도적 핵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핵보유국들의 적극적인 군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절멸의 공포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절멸의 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자위력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결국 절멸의 공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출발점임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원전 세일즈’나, 테러 대응만을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 유치는 세계적 핵폐기 운동에 역행하는 조치일 뿐이다. 인류 전체의 생명을 담보로 위태롭게 지속되고 있는 죽음의 경쟁을 멈추기 위한 민중의 교류와 연대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번 NPT 평가회의를 계기로 전 세계 반핵평화활동가들이 뉴욕에 모인다. 세계 300여 조직들이 함께 4월 30일-5월 1일 국제회의와 5월 2일 국제 행동의 날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미국의 핵 정책의 문제점을 알려내고, 민중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힘찬 움직임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차기 핵안보정상회의가 2012년 서울에서 개최된다.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NPT 체제로 복귀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결국 2012년의 핵안보정상회의는 한반도의 평화와 핵문제에 있어 결절점이 될 것이다. 진정 ‘핵 없는 세계’를 향한 반전평화운동 진영의 장기적인 전망과 행동이 필요한 시기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과는 달리 미국의 핵전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지난 4월 발표된 미국의 2010년 <핵태세검토 보고서>, 워싱턴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본 미국의 태도는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완된 핵 통제 질서를 다잡기 위한 제스처에 가깝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NPT
원자력의 상업적 이용은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들었고, 1949년 소련에 이어 1952년에는 영국까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1953년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 원자력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이를 감시하여 무기 제조를 방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원자력 발전은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고안된 에너지원이 아니라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라는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막기 위한 일종의 타협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핵보유국들의 의도를 국제적으로 보증한 것이 바로 <핵비확산조약>(NPT)이다. NPT는 핵보유국들이 보유한 핵무기를 줄여나가고(핵군축), 핵보유국이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비보유국)에 핵무기 및 관련 기술을 넘겨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동시에 비보유국은 핵무기 보유 시도를 하지 않으며(수평적 확산의 금지), 평화적 원자력 활동을 위해 함께 협력한다는 것(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요 내용으로 1970년 5월 출발했다.
그러나 NPT체제는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핵보유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적/질적 개량)에는 아무런 제어 효과가 없고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만 강조되는 불평등한 조약(심지어는 의결에서조차 핵보유국은 비토권을 지닌다. 조약 개정 절차를 명시한 NPT 8조 2항은 당사국 과반수 찬성의 전제로 핵보유국 전체의 찬성을 명시하고 있다)이었다. 또한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 역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해 NPT체제는 처음부터 불안정한 것이었다. 결국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핵보유국들의 핵경쟁은 지속되었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한국, 북한 등의 핵보유 시도는 계속 확대되었다.
NPT 평가회의
NPT는 발효 5년이 되는 해부터 평가회의를 통해 각 조항별 이행을 점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NPT 당사국들은 1975년부터 매 5년마다 핵비확산 의무, 핵군축 상황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조약의 주요 구성요소별 이행 상황을 평가하고 있다. 또 조약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검토하고 있다. NPT 평가회의의 역사는 NPT 체제에 내재된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NPT 조약은 발효 25년이 되는 1995년에 조약을 무기한, 혹은 일정 기간 연장할지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NPT 평가회의의 역사를 서술의 편의상 연장을 결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1975년~1990년
NPT 평가회의는 1975년 5월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당시 96개 당사국 중에서 58개국이 참가했으며, 비당사국이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스라엘 등도 참관 자격으로 참가했다. 비보유국들은 핵보유국들이 약속한 핵무기 감축과 폐기, 핵실험 중지 등 군축의무 이행에 진전이 없으며, 미소 양국이 오히려 핵군비를 증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미국과 소련은 <전략무기감축협정>(SALT)과 <심해저조약>(SBT) 등을 실적으로 내세우면서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가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1980년 평가회의에서는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었다. <77그룹>(UN 내의 개발도상국 연합으로, 1963년 76개 국가들의 대 선진국 협상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비공식 모임으로 출발했다)은 핵보유국들이 보유한 핵무기의 숫자와 폭발 실험 횟수가 증가한 현실을 비판하며 SALT2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또한 NPT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촉진하기보다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1980년 평가회의는 핵군축과 비보유국의 안전보장 문제에 대한 심각한 의견 대립으로 1985년에 3차 평가회의를 개최한다는 것만 확인하고, 평가회의의 성과를 보여주는 최종선언문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된다.
1990년에 열린 4차 평가회의에서는 1985년 2월 NPT에 가입한 북한이 처음으로 본회의에 참가했다. 비동맹그룹을 중심으로 한 비보유국들은 1995년으로 예정된 ‘NPT 연장 결정’과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체결을 연계시키려했으나 핵보유국들은 별개의 사안이라 맞섰다. 결국 관련국들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아 최종선언문 채택에 실패했다.
1995년 NPT 연장회의
NPT의 연장을 결정하는 1995년 평가회의에는 당시 178개 당사국 중 175개국이 참가했고, 10개 국가와 8개 정부간 기구(UN, IAEA, EC 등) 및 195개 NGO가 참관 자격으로 참가했다. 1995년 평가회의는 NPT 체제의 분수령이었다. 핵보유국들의 군축 의무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소극적 안전보장’ 문제 또한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1974년 인도의 핵실험과 1994년 이른바 ‘1차 북핵위기’는 비보유국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NPT를 얼마나 연장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NPT 체제 자체의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결국 ‘1차 북핵위기’는 제네바합의를 통해 봉합되고, 핵보유국들은 CTBT에 합의하게 된다. 평가회의에서는 핵보유국의 군축 의무를 규정한 NPT 6조가 완전히 이행되지는 않았지만 긍정적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와 함께 NPT 무기한 연장이 결정되었다. 비보유국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달래는 수준에서 위기가 봉합된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핵군축 일정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선언문은 채택되지 못했다.
이후
NPT 체제의 불안정성은 해결되지 않았다. 핵보유국의 군축 의무 이행은 지지부진했다. 1999년 미국은 CTBT의 의회비준을 거부했으며, 미사일방어망 계획을 추진하면서 핵 경쟁을 부추겼다. 인도의 추가 핵실험에 이어 파키스탄도 핵실험 대열에 합류하면서 비보유국들을 자극했다.
2005년 평가회의에서는 비보유국들의 불만이 극적으로 터져 나왔다. 비보유국들은 1995년과 2000년에 약속한 핵보유국의 핵군축 이행을 요구했고, 이란을 비롯한 비동맹 국가들은 소극적 안전보장의 명시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9/11 테러를 이유로 핵 확산 차단만을 강조했다. 미국은 NPT의 비확산 의무 이행 강화와 이란 등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속적인 사찰, 북한과 이란, 리비아에 민감한 원자력 기술을 제공한 국제 밀매조직에 대한 조사 등을 요구했다. 또한 소극적 안전보장 명시를 거부하고, 2000년 평가회의에서 제시된 ‘13단계 핵군축 프로그램’에 대한 강제적 후속조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결국 회의 개막 후 의제 설정도 못한 채 10여 일을 허비하다 핵군축, 핵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3개 의제에 대한 분야별 합의를 시도했으나 참여국 간 첨예한 입장 대립으로 협상을 포기하게 되었다.
미국의 전략
핵보유국의 ‘핵무기 감축 의무’와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는 NPT 체제의 두 축이다. 그러나 NPT 체제에는 핵보유국의 군축 의무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IAEA의 안전조치, UN의 경제 제재 등으로 비보유국의 비확산 의무만이 강제될 뿐이다. 결국 NPT 체제는 절멸의 무기를 바탕으로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할 뿐이다. 2005년 평가회의의 파행 후 ‘NPT 무용론’이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다른 비보유국들의 이탈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NPT 체제가 붕괴할 경우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다. 산업용 원자력 기술의 핵무기 전용은 인도의 핵실험으로 이미 오래 전에 증명되었고, 인류의 눈앞에 핵무기의 공포가 등장한 이후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 수많은 국가가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971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부토 총리가 ‘온 국민이 풀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폭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파키스탄처럼, 지금과 같은 절대적 전력 차이는 수많은 국가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멸의 무기 개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드는 유인이 된다. 강대국들이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진행한 전쟁과 학살은 결국 절멸의 무기라는 부메랑을 타고 되돌아온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의 핵전략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강력한 비확산 체제의 유지
따라서 비보유국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강력한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에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미국이 핵무기와 핵테러의 확산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다루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지난 4월 13일, ‘핵안보정상회의’의 결과로서 발표된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공동성명>은 핵 테러리즘이 국제 안보에 가장 도전적인 위협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강력한 핵 안보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최근 발표된 미국의 2010년 <핵태세검토 보고서>(NPR)가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을 ‘핵심 계획’으로 지목한 것과 동일하다. 이번 NPR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 이란의 핵 의욕을 좌절시키고 IAEA 안전조치를 강화하며, 핵 물질 밀거래를 차단하고 NPT 의무 위반 국가들에 대해 조치를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북한과 이란 같은 이탈세력(outlier)에 대한 압박을 통해 NPT 체제로부터의 추가적인 이탈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상징적 수준의 핵군축
다음으로 핵군축 부분을 보자. 지난 4월 미국과 러시아가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체결했다. 협정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는 보유하고 있는 전략탄두를 1,500-1,675개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양대 핵보유국의 협상으로 핵군축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2012년을 목표 시한으로 설정하고 있는 <전략공격무기감축협정>(SORT)에 제시된 감축 목표(1,700-2,200개)와 비교했을 때 그리 큰 감축은 아니다.
또한 이번 협정의 핵탄두 계산법에 따라 실제 핵전력의 축소 규모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이번 협정의 탄두 계산법이 핵무기를 탑재한 핵폭격기 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핵폭격기 수만 줄이면 탑재된 핵탄두 모두 감축된 것으로 계산하도록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유사시에 신속 배치할 수 있는 능력만 확보한다면, 사실상 단 한 개의 핵탄두의 ‘폐기’ 없이도 목표치 달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핵전력 축소로 인한 전력 누수를 막기 위해 장거리 폭격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등의 ‘3원 전략 핵전력’은 유지하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와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덧붙여 미사일 방어망의 지속적인 추진과 재래식 전력의 증강 가능성 또한 열어두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비보유국에 대한 안전보장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소극적 안전보장’은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NPT에 가입한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핵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비보유국들이 소극적 안전보장의 명문화나 별도의 국제 협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핵보유국들은 NPT 의무 준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소극적 안전보장’은 오래도록 갈등적 쟁점이 되어왔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2010 NPR 발표 후 나온 언론 보도들이 대부분 ‘소극적 안전보장’에 관한 명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동안 미국이 취해 왔던 태도를 바꾼 것이라 보기는 힘들며 일종의 ‘명분 쌓기’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소극적 안전보장을 요구해 온 비보유국들을 NPT 체제에 묶어 두기 위한 유인책인 것이다. 실제 미국은 1978년 제1차 군축특별총회, 1995년 NPT 연장회의 등을 앞두고 소극적 안전보장에 대해 상징적 수준의 선언을 했지만, 구체적 형태로 추진한 바는 없다. 이는 미국이 ‘핵무기 선제 사용’ 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한된 조건‘ 내에서 ’핵무기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간 미국이 고수해온 입장이다.
2010 NPT 평가회의에 주목한다
지난 해 4월 ‘프라하 선언’에서부터 최근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까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드라이브는 핵군축과 비확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처럼 비쳤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느슨해진 NPT체제를 추스르기 위해 그동안 비보유국들이 주장해 온 내용을 상징적 수준에서 수용하는 제스처를 취할 뿐이다. 오히려 이를 빌미로 핵보유국들의 독점적 지위를 재확립하고, 군사적 패권을 유지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추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강력한 타격 능력의 유지, 강제력을 띤 차단 조치, 고립과 제재는 결코 핵무기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NPT의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행하고 있는 학살과 이에 대항한 테러, 그리고 이어지는 보복 공격과 또 다른 테러라는 죽음의 사슬처럼, 군사력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절멸의 무기에 대한 유혹은 커지게 된다.
2010년 NPT 평가회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평가회의에서는 2000년에 합의된 ‘13개 핵군축실질조치’에 대한 평가와 미국-러시아의 핵군축 상황, 핵무기 비확산과 핵물질에 대한 국제적 통제 방안, NPT 탈퇴 절차 강화 등의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여기에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가 중심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 러시아는 'New START'와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성과로 내세우며 강력한 확산 차단 정책과 이탈 세력에 대한 제재 방안을 추진해 갈 것이다.
동어반복이지만 ‘핵 없는 세계’는 핵이 ‘없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핵 자체를 폐기하지 않고서는 핵 확산을 차단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압도적 핵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핵보유국들의 적극적인 군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절멸의 공포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절멸의 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자위력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결국 절멸의 공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출발점임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원전 세일즈’나, 테러 대응만을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 유치는 세계적 핵폐기 운동에 역행하는 조치일 뿐이다. 인류 전체의 생명을 담보로 위태롭게 지속되고 있는 죽음의 경쟁을 멈추기 위한 민중의 교류와 연대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번 NPT 평가회의를 계기로 전 세계 반핵평화활동가들이 뉴욕에 모인다. 세계 300여 조직들이 함께 4월 30일-5월 1일 국제회의와 5월 2일 국제 행동의 날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미국의 핵 정책의 문제점을 알려내고, 민중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힘찬 움직임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차기 핵안보정상회의가 2012년 서울에서 개최된다.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NPT 체제로 복귀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결국 2012년의 핵안보정상회의는 한반도의 평화와 핵문제에 있어 결절점이 될 것이다. 진정 ‘핵 없는 세계’를 향한 반전평화운동 진영의 장기적인 전망과 행동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 군축을 !
2010년 5월 1일 ‘국제평화회의’, 5월 2일 ‘핵 없는 세계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 행동 호소문
오늘날 우리 세계는 지구 온난화, 전쟁, 기아, 질병 등 전례 없는 규모의 재앙에 직면해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 이러한 재앙은 생명을 위협하고,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하루하루 죽음과 슬픔, 고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거의 전적으로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며, 그만큼의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우리에겐 전 인류의 요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부와 천혜의 자원을 관리할 정치적 의지를 계발하고, 평화롭고 정의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 전에 없는 기회가 있다.
그것은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열망이지만, 우리의 현실에선 2008년 현재 총 1조 4천 6백억 달러에 달하는 군비(살인을 위한 돈)가 쓰이고 있다. 게다가 9개의 국가들이 핵무기(전부 23,000개가 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압도적인 살상 무기들은 단지 지구를 몇 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공포를 이용한 정치적인 무기-정당성 없는 지구적 불평등을 강화하는-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무기의 근절은 비단 인류 절멸의 위협과 이런 공포의 체계를 끝낼 뿐 아니라, 우리를 비군사화의 길로 이끌어 기후 변화와 대량 빈곤을 다룰 막대한 재원을 드러내주고, 또한 인류가 염원하는 다른 영역에서 진보를 이루게 할 것이다.
1945년 미국의 일본에 대한 범죄적인 원폭투하 이래 수십 년 동안 조약, 국제적 결의안, 규칙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보유국들은 그들이 보유한 무기를 없애는 데 실패했다. 최근 시스템의 현대화와 점점 더 공격적인 핵사용 정책과 함께 이러한 무기의 지속적인 보유는 그러한 무기의 확산과 핵전쟁의 가능성을 점점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핵비확산조약>(NPT)은 비확산과 군축 모두를 요구하는 것이며, 지지하고 강화해야한다. 그러나 NPT에는 필수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가 결여되어 있다. 게다가 조약 4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이것은 평화적인 핵에너지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원자력 발전과 무기 기술의 불가분의 관계와 보건/환경에 필요한 비용을 간과하고 있다. 새롭게 출발한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조약 4조의 보장(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대체하여 원자력 발전을 중단할 수 있는 기회를 보여준다. 즉 NPT는 새로운 핵심 계획(대다수의 인류가 매우 시급하게 찾고 있는 핵무기 근절의 시간표)을 발전시킬 틀을 계속 제공한다.
2010년 5월에 열리는 NPT 평가회의는 그 구상을 현실화할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로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부시 시절 침략이 급증한 이후 오바마 정부는 우리 캠페인에 새로운 맥락을 제공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함께 한 지구적 핵무기 근절의 약속은 매우 환영할 만하고, 상호 군축을 향한 첫 단계와 핵 개발을 제한하는 조약들에 대한 지지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세계적 폐지라는 목표는 무작정 연기될 수 없으며, 반드시 규정된 시간동안, 실현 가능하고 예정된 절차가 우리를 위협하는 확산을 멈출 수 있다.
이를 위해,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와 진정한 인류의 안보 조건을 만드는 것을 돕기 위해, 우리는 2010 NPT 평가회의가 모든 핵무기의 폐기 시한을 정하는 조약, <핵무기협정>의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약속하길 요구한다.
그러한 전진은 핵 절멸의 공포가 없는 세계를 원하는 대다수 인류의 갈망을 전달하는,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러한 비전을 공유하는 이들이 5월 1일 뉴욕에서 열리는 국제평화회의와 NPT 평가회의에 청원 서명을 전달하게 되는, 5월 2일 뉴욕과 세계에서 진행될 핵 없는 세계를 향한 국제 행동의 날을 조직하는 데에 함께 하길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