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5-6.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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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_좌담_박윤기.pdf

돌봄노동자들의 노동 현황과 투쟁 과제

박윤기 심선혜 차승희 |
일시: 2010년 4월 16일 오후 3시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사회: 이소형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참석: 박윤기 장애인 활동보조인, 심선혜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 보육분회 분회장, 차승희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간병분회 사무장
정리: 방민희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

지금까지 여성이 가정 내에서 무급으로 수행해 온 돌봄노동이 사회서비스란 이름으로 정부 정책화되고 제도화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올해로 2년째로 접어들고 있으며 장애인장기요양제도와 간병의 제도화가 시범 시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형 어린이집’을 늘려가는 추세다. 심지어 한나라당도 무상보육이 중요하다고 열변한다. 그동안 열심히 누군가를 보살피고 돌보고 간호했지만 ‘사랑’과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간주되어왔던 여성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에는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과, 그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삭제되어 있다. 사회서비스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위기 대응책으로,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제도화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재생산 위기의 부담이 다시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 사회서비스 시장 육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정부 정책은 여성노동이 하찮고 부차적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도의 취지가 시장 육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저임금의 고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돌봄노동과 사회서비스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일방적인 전략에 맞서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돌봄노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돌봄노동 문제를 제기할 투쟁 주체의 조직화에서부터 출발할 것을 제안한다. 생산과 재생산을 나누고, 재생산을 사적인 영역으로 구분하여 여성에게 떠맡기며 평가절하했던 역사와 단절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가치가 인정받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받고, 돌봄노동과 관련된 제도는 보편적인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마구잡이로 시장에 내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번 <사회운동>에서는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개최했던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의 후속사업으로 각 분야의 돌봄노동자를 초청하여 돌봄노동의 현황과 운동과제를 살펴보았다. 이번 좌담에서는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돌봄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향후 노동자 운동에서 돌봄노동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주요한 투쟁 과제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돌봄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주체들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이후 <사회운동>에 소개할 예정이다. 본문의 각주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정리자가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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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개최된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에서 요양보호사, 간병노동자, 활동보조인, 보육교사들은 돌봄노동의 현실을 폭로하고,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요구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돌봄노동을 가족과 여성에게 떠넘겨온 사회적 인식과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돌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회적 책임이 필요함을 알리는 첫 발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이 중요한 문제임을 알릴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첫 발걸음을 시작으로 미래를 돌보는 사람들인 돌봄노동자들의 현황을 알리고 이후 투쟁을 결의하자는 의미에서 돌봄노동자 좌담회를 기획하였습니다.

돌봄노동의 의미. 내가 하는 노동, 왜 소중한가?

사회자: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평소 느끼신 바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선혜: 그동안은 어린이집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만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돌봄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일을 할 때 기술적인 부분이나 일을 잘 해서 인정받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면, 돌봄노동을 알게 된 이후로는 철학이 생긴 것 같아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요람, 즉 인생의 초기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들에게 돌봄을 제공한다는 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책임감도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까 나의 노동조건, 내 컨디션이 돌봄의 질을 크게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누적되는 스트레스가 아이들 때문이 아닌데 아이들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돌봄의 가치를 알게 된 이후에는 이것이 나 혼자의 문제거나, 아이들에게 풀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돌봄을 하는 행위를 노동으로 인정으로 받고, 그 가치가 인정받아야지 돌봄의 질도 높아지고, 나 혼자 죄책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거죠. 그래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요구도 더욱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박윤기: 장애인활동보조 일을 시작할 때는 사실 불쌍하다, 안쓰럽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면서 비장애인인 내가 좀 더 장애인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해보니, ‘장애인도 사람이다’,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대입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분을 만나기도 했는데, 나랑 똑같구나, 단지 장애가 장애일 뿐 ‘장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활동보조의 의미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 동등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데 보조를 하는 것이지요.
차승희: 아까 보육이 요람이라면 우리는 무덤 쪽이지요(웃음). 어딘가 아파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사람이 병원에 와서 우리의 간병을 통해 회복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고, 큰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는 제3의 의료진이라는 이야기를 해요. 그만큼 간병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거지요. 그래서 돌봄이라는 단어와 의미가 참 좋아요. 의지가 있는데 본의 아니게 혼자서 움직일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간병인들의 돌봄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한 비판

사회자: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돌봄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이런 돌봄노동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저출산 고령화 시대, 경제위기 시대라며 수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돌봄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시범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장기요양제도, 공보육을 강화한다는 서울형 어린이 집, 간병의 제도화에 대해 각 당사자들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심선혜: 서울시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서울형 어린이집’ 포스터 아시죠? 할아버지가 여자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사진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울시에서 정말 보육에 신경을 쓰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게 서울형 어린이집입니다. 저출산 위기와 연관되어 보육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됩니다. 저도 그런 고민을 합니다. 아이를 대책 없이 막 낳으라는 것보다는 있는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있는 어린이집은 대부분 민간 어린이집입니다. 서울 같은 경우에 100개 중 10개만 국공립이고 90개는 민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부모들은 질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지만, 서울시에서는 갑자기 국공립을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니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수준으로 높이겠다고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걸 만들고 재정을 투여하고 있습니다. 재정 투여는 저렴한 보육료와 보육교사의 인건비 지원이 핵심인데요,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정지원만으로 질이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 몇 푼 지원이 바로 질 향상으로 연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운영하는가, 즉 관리감독과 문제의 원인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기본적인 습관을 익히게 하는 등 교사들이 하루에 정말 많은 일을 하는데, 그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린이집이 시설장의 독단적인 운영에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울형 어린이집은 회계 투명화와 CCTV를 다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 합니다. 회계 투명화야 필요합니다. 그런데 CCTV가 안심보육에 도움이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동과 교사의 인권침해는 차치하고서라도, CCTV를 달아서 감시한다고 해서 교사 1인이 수많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발생하게 되는 안전사고가 방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력확충과 같은 근본적인 해결방안보다는 손쉽고 빠르고 자극적인 방법, 그리고 오히려 교사들의 스트레스를 높여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게 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결국 보육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정책이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승희: 간병제도화는 간병인들의 염원이었습니다. 간병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라서 24시간이라는 초유의 장시간노동에 최저임금도 못 받는 신세입니다. 심지어 밥을 사먹는 것도 부담이 되어 집에서 밥을 얼려 싸와서 병원 복도나 배선실, 혹은 환자 곁에서 눈치 보면서 녹여먹는 정도입니다.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밥은 기본적으로 시켜주는데, 우리는 그나마도 해결이 안 됩니다. 환자를 보다가 감염이 되고 다치더라도 간병인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예방은커녕 산재처리조차 안 되는 열악한 조건에 처해있습니다. 병원에서 필수적인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 인정 못 받는 문제, 이건 병원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병제도의 사회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는 간병을 제도화를 한다면서 MRI와 같이 비급여화하고 오히려 민간보험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환자들도 보험 얼마짜리에 들었는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지고, 간병인들의 임금도 낮아지는 것이 민간보험 도입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대안으로 간병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건강보험에 간병을 포함시켜서 급여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윤기: 현재 장애인장기요양제도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시범사업이 그대로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장기요양제도의 핵심이 시장화이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해 질 것이라 걱정이 큽니다.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중에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라고 할까봐 염려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수입도 일정하지 않고, 4대 보험의 혜택도 그림의 떡입니다. 실업급여나 퇴직금을 실제로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현재 중개기관에서 25%의 중개수수료를 떼고 있는데 시장자율화가 되면, 센터나 중개기관은 수수료를 올리겠지요? 그러면 저임금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또 이용자 수와 이용자들의 사용시간에 비해 활동보조인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인데, 정부의 시장화 속에서 취업 경쟁 때문에 우리 권리는 이야기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하에서 일을 하는 요양보호사도 마찬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도가 시장화되는 상황에서 장애인 요양 서비스의 질은 당연히 하락할 것입니다.

돌봄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실태

사회자: 보육, 간병, 장애인과 관련한 정부 정책의 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정부는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 정책 취지라 밝혔지만, 반대로 제도를 민간영역에 맡기고 시장화해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었습니다. 결국 아이, 노인, 환자, 장애인이 돌봄 서비스를 온전히 받지 못하고 돌봄의 질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현재 노동조건은 어떤지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선혜: 하도 어린이집 사고로 분쟁이 심해서, CCTV를 설치하는 것까지는 보육교사들이 수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IP-TV 생중계 시스템까지 도입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의를 하고나서 추진해야 하는 문제인데, 오히려 이거 안 해서 우리 어린이집이 서울형 어린이집 심사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내보이는 것에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또 시간도 문제예요. 하루 종일 교사가 하는 일을 쭉 뽑아봤더니 기본 10시간이 넘어갑니다. 우리가 8시간 노동을 기본이라고 하지만, 어린이집은 12시간 열려있기 때문에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밤샘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온전한 정신으로 돌볼 수 있겠습니까. 일하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형태도 노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이들을 돌보느라 앉았다 일어났다, 들었다 놨다하고 아파도 쉬지 못하고 웃으면서 일해야 해서 정신도 지치고, 급하게 밥을 먹느라 속도 망가지죠. 노동건강연대와 실태조사 한 결과 우울증 지수가 자살수위를 훨씬 웃돌게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보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최소한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러한 요구를 하면 자꾸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헌신만 강요합니다.
교사당 아이수도 문제입니다. 연령대별로 교사당 아이수가 만 0세 1:3, 만 1세 1:5, 만 2세 1:7 등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이건 최대정원이었는데 최근에는 최소정원이 되어 여기에서 더 돌보라고 요구받고 있어요.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건지, 아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니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혼자서 세 쌍둥이 볼 수 있습니까? 본다 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보육교사면 다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인간으로 본다면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대폭 줄여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말고 제대로 보라는 것은 매우 모순된 요구입니다.
차승희: 간병인들은 시간당 2500원이라는 저임금으로 보통 하루 24시간 일합니다.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최저임금과 8시간 노동을 보장 받지 못합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하루 온종일 일을 하니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이나, 안구건조증, 위장장애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적용도 못 받고 있어요. 병원에서 감염환자를 돌보다가 병이 옮아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노동권 보장, 최저임금, 산재적용, 8시간 노동시간 준수가 시급한 과제입니다.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수면시간도 보장 받아야합니다. 잠을 못자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하죠. 밤새 환자를 주무르라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그 지시에 따랐다가 병원신세를 지게 된 간병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간병인들은 노동자라기보다는 ‘돈 주고 산 사람’이라고 인식되어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환자를 돌보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1:1로 환자를 돌보는 경우가 아닌,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의 공동간병의 경우 한 명의 간병인이 정말 많은 환자들을 돌봐야 합니다. 야간에는 위 아래층을 왔다 갔다하며 혼자서 20명 넘는 환자를 돌봐야 하기도 해요. 이는 간병노동자의 노동강도 문제뿐만 아니라 환자 생명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매우 위험한 노동조건이지요. 간병제도화가 된다면 제대로 된 인력기준이 세워져야 합니다.
박윤기: 우리도 장애인 대 활동보조인 비율 1:1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반대했습니다. 건장한 신체의 장애인 같은 경우 혼자서 돌보기 어렵습니다. 필요한 경우에 한 사람 더 붙이면 안 되냐 요구를 해도 법적으로 그렇게 안 된다고 합니다. 현재 활동보조인들이 늘어서 일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죠. 요양보호사도 혼자서 노인을 돌보니 우리 활동보조인도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활동보조인은 이렇게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장애인을 혼자서 돌봐야 하는 거죠. 활동보조인의 경우 장애인 이동시 활동보조인과 함께 오지 않은 다른 장애인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장애인들이 정부에게 받은 시간이 적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을 못 쓰는 거죠. 또 시급제도 문제입니다. 좀 전에 말했듯이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활동보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활동보조인이 장애인과 연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들쭉날쭉합니다. 만약 한 달 내내 연결이 되지 않으면 한 달 수입이 없는 거지요. 게다가 이용자 장애인이나 센터의 마음에 안 드는 활동보조인의 경우에는 아예 일을 못 받습니다. 이렇게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는 시급제가 아니라, 활동보조인들이 안정된 조건에서 책임감 있게 일 할 수 있도록 월급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동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강원도 정선에 사는 활동보조인의 경우 이동시 왕복 7시간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하는 시간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더 많고, 임금은 임금대로 적은데 그나마 서울이야 사정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쳐도 지방 같은 곳은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없는 것이지요.

돌봄노동자들의 조직 현황과 활동

사회자: 저출산 고령화 시대라고 호들갑 떨며 정부가 내놓은 각종 돌봄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안을 만드는 주체는 우선 돌봄노동자들이 되어야겠지요. 주현숙 감독 영화 제목이기도 한데, ‘미래를 돌보는 사람들’이 바로 돌봄노동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전국의 돌봄노동자 수에 비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투쟁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돌봄노동자들의 조직 상황이나 조직화 관련해서 평소 갖고 계신 고민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심선혜: 서울의 보육교사가 3만 3천 명입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함께 뭉쳐서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왜 그럴까, 왜 참고만 살까, 생각해보면 보육교사의 꿈은 훗날 원장이 되는 거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만성피로에 찌들어있어서 자기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거나, 단 한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만 익숙해져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변화를 원한다면 함께 모여야 합니다. 그동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면 이제는 그런 방식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을 직접 찾아다니는 등 보육교사들을 직접 만나는 계기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보육 정책 관련해서 정부를 상대하는 싸움도 멈출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보육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입니다. 지금의 보육의 틀을 완전히 뒤엎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까지 무상교육을 들고 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단순히 보육료를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육시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게 요구하려고 합니다. 보육교사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는 채널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보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게 하는 요구를 해나가고자 합니다. 보육정책위원회 참가를 해서 보육조례를 만드는 것에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면 제대로 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시설보육에 갇히지 않는 보육 전반의 문제, 예를 들어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제기하는 것도 고민 중입니다. 보육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정에 파견이 되었을 때, 가사일까지 도맡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또 보육교사가 아이를 돌보고 교육할 때 지도와 협조가 필요한데, 무조건 한 사람에게 집에 가서 알아서 아이를 돌보라는 식이 되면 안 됩니다.
차승희: 간병인과 요양보호사가 함께 모이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도 힘쓰고 있어요. 우리가 단순히 돈 벌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우리 스스로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함께 알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개개인의 의식을 모아서 집단적으로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토론회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노동부도 찾아다니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도 있습니다.
박윤기: 지금 ‘활동보조인 권리 찾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중개기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보적인 운동단체라고 이름이 나있는 곳에서도 활동보조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민감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고민이 됩니다. 우리는 활동보조인도, 중개기관도 함께 잘해보자는 생각인데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활동보조인이 함께 모여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리 찾기 모임을 점점 확장하면서 활동보조인의 권리를 대변할 조직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봄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자: 국가와 사회가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역할을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에게 떠넘겼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성의 노동을 아무나 할 수 있는, 비숙련 노동으로 여겼던 사회적 인식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여성일자리를 늘려왔습니다. 또 이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었지요.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돌봄노동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도 해소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차승희: 고민 고민하다 보면 결국 거기에 결론이 닿습니다. 우리 여성들이 먼저 깨어야 하고, 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사회에 반영이 될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돌봄노동이 여성만의 일로 여겨지는 우리사회의 인식의 틀을 바꾸려면 돌봄노동자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심선혜: 돌봄을 사적인 영역으로 볼 것이냐, 공적인 영역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이데올로기 차원의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아이를 돌보고 노인과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정에서 책임져야 하고 국가는 일부 지원만 하면 되는 일로 여겨지면 여성은 이러한 조건에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보육료를 지자체에 내고 지자체에서 보육시설을 관리합니다. 그러다보니 임금 수준이 높아서 남성들도 보육교사 일을 많이 합니다. 일본이 잘 사는 나라라서 가능한 문제라기보다, 돌봄을 공적인 영역으로 인정할 때 이것은 여자의 일이 아니라 사회의 일로,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박윤기: 현행 복지제도 중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무료봉사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기부문화만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돌봄에 대해 희생과 봉사만 요구한다면 여성의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이후 공동 투쟁 결의와 노동운동에 바라는 점

사회자: 돌봄노동자들의 연대와 공동 투쟁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2010년 3.8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의 경험을 발판으로 하반기에 돌봄노동자 대회를 개최해 공동 투쟁을 이어가면 어떨까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세요. 또 마지막으로 돌봄노동자들의 투쟁과 관련해서 기존의 노동운동에 바라는 바가 있으시면 덧붙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차승희: 그동안은 우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자꾸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번의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의식을 계속하여 이어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간병노동자들도 우리가 행동한 것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스스로 확인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선혜: 같은 돌봄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나지 않으면, 보육교사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그런 기회가 돌봄노동의 범주에 있는 더 많은 노동자로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8 여성의 날에 그나마 사회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소중하지만, 일 년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성을 가지고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 운동에 바라는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돌봄은 우리의 삶 전반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될수록 노동자 전반의 삶의 질도 향상됩니다. 지금까지는 각자의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이었다면, 노동자 운동 전체가 우리 삶의 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활동의 시작으로서 돌봄노동자의 행동에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박윤기: 연대는 당연히 해야지요.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봐야 할 것이고, 노동자 운동 관련해서는 돌봄노동 관련한 학습이나 인식의 기회를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운동이 새롭게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인식 하에 새롭게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많은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시작으로 돌봄노동의 중요성과 사회적 책임의 필요성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또 이를 위해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돌봄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두고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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