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하나로’, 어떻게 볼 것인가
병원 자본 통제 없는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
6월 7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1만1천원의 기적’이라고 하여, 1만 1천원 더 내서 ‘건강보험 하나로’ 마음 놓고 병원을 이용하자는 말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는 작년부터 진행되어 온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에 대중적 이름과 형식을 붙인 것이다.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이하 보장성 강화 운동)이 제안된 배경은 민간의료보험이 성장하면서 건강보험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세적인’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넘어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민간보험에 대한 유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환자가 직접 지출하는 의료비를 낮추어야 한다. 즉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적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공적재원은 크게 지역, 직장 가입자의 총 보험료와 국고지원을 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1만1천원의 기적’이라는 상자를 열어보면 이는 ‘기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강화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일인당 1만 1천 원(가구당 2만 8천 원)을 먼저 내놓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또 공급기관 통제 없는 공적재원 마련으로는 본인부담 경감에 한계가 있다. 현재 보건의료체계는 민간 의료기관에 수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의료행위를 규제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의료기관의 이윤추구경향을 통제하지 못한다. 시민회의는 공적재원 확충을 지렛대 삼아 보장성 강화를 위한 공급구조 개편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시민회의는 그 지렛대를 잘못된 방향으로 틀고 있다.
운동진영은 실질적인 본인부담을 덜 수 있는 체계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운동의 ‘목표’다. 재정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사회는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며 공적재원 확충이 마치 기적을 이뤄내는 요술봉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동의 현황
획기적 보장성 강화 운동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까지 경과
2009년부터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운동’(이하 보장성 강화 운동)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2009년 4월 보건의료노조와 공공노조사회보험지부가 공동주관했던 국회토론회에서 이진석 교수가 이 안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 운동이 제안하는 내용은 선제적 보험료 인상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것이다.
대부분 운동 진영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정당성에 공감하였으나 일부는 이 운동의 전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다. 근거는 보장성 강화에는 동의하나 보험료 인상을 먼저 제안하는 방식은 노동자민중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근거는 보장성확대만으로는 안 되고 공급체계의 개편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보장성 강화 운동 진영도 그 중요성을 인지하여 기존 안에 수정과 보완을 더했다. 그러나 수정과 보완은 기존 안의 골격을 유지한 채 형식적으로 정책안을 추가하는 수준이었다.
2009년 ‘의료민영화저지를위한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출범 과정에서 획기적 보장성 강화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들을 수용하여 보완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범국본은 보장성 강화 운동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고, 의료민영화 반대 활동을 주요 목표로 하는 연대체로 출범하였다. 보장성 강화 운동 진영은 범국본을 통해 이 운동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자 독자적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띄운 것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제안 내용
시민회의의 제안은 ‘보험료를 인상하여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기존의 보장성 강화 운동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기존 안에 비해 이번 제안에서 달라진 점은 포괄수가제, 주치의제도 등 의료체계 개편관련 내용을 대부분 빼고 건강보험 재정 확충과 그에 따른 보장성 강화 주장에 집중한 점이다. 구체목표로 ‘환자의 연간 본인부담 총액 상한을 100만원으로!’라는 슬로건을 제기하고 있다. 시민회의 제안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표1].
“우리나라 국민들 중 누구든 어떤 질병에 걸리더라도 연간 본인부담금 총액이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한다. 이는 병원진료비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국가 평균인 90% 이상으로 강화하면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현재 건강보험 비급여로 방치되어 있는 진료서비스를 모두 급여로 전환해야 하고, 급여비 중 본인부담률도 하향조정해야 한다. 급여확대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시민회의의 제안에는 환자의 본인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전략이 부족하다. 공급기관 통제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시민회의의 정책을 세부적으로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회의의 구체안을 보면 이들의 문제인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표 1]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제안하는 건강보험 급여 확대 프로그램
공급체계의 문제
시민회의의 내용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현재 의료공급기관을 중심으로 비용의 흐름을 살펴보자. 이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야 시민회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운동의 요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은 의료행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에 대해 일부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해진 수가를 지급받고 일부는 환자에게서 법정본인부담금을 받는다. 한편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환자가 전액을 부담한다. 이것이 비급여본인부담인데, 비급여에는 법정비급여와 임의비급여가 있다. 법정비급여는 MRI, 초음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 비급여라고 규정된 항목들이고 임의비급여는 규정되어 있지 않은 항목들이다. 임의비급여에는 질병이 위중한 경우 시도해보는 신의료기술이나 식약청 허가를 벗어난 약제 등이 있다.
[그림 1] 재정 투입을 통해 의료서비스 및 제약 공급기관을 거쳐 의료서비스가 산출되는 과정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은 금지되어 있지만 실제로 의료기관 대부분이 이윤을 추구하는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병원은 급여항목에 해당하는 의료행위 각각에 대해 보험을 청구하기 때문에 심사에서 삭감되지 않는 선에서 의료행위를 늘리려는 유인을 갖는다. 급여항목의 의료행위가 증가하면 환자의 법정본인부담도 증가한다. [표2]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건강보험부담과 법정본인부담이 계속 증가한다. 한편 수가와 심사로 통제하지 않는 비급여는 병원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효자 노릇을 한다. 따라서 병원은 비급여를 늘리려는 유인을 강하게 갖는다. [표2]에서 비급여본인부담이 대체로 증가하고 있다.
[표 2]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건강보험 보장성, 건강보험부담, 법정본인부담, 비급여본인부담의 추이(‘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자료 재구성)
건강보험부담은 2004년에서 2007년 누적 49%가 증가했지만(주로 보험료 인상을 통해) 그에 비해 보장성은 61.3%에서 64.6%로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건강보험부담이 증가하는 동시에 법정본인부담과 비급여본인부담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장성=(건강보험부담)/(법정본인부담+비급여+건강보험부담). 이는 건강보험부담이 늘더라도 본인부담이 함께 증가한다면 보장성 확대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1]에서 블랙박스 내의 각 주체들의 영리추구행위가 확대될수록 비용 증가는 가속화된다(물론 GDP 증가에 따라 국민의 의료수요도 증가한다). 그에 따라 국민들의 부담도 늘어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의료비 지불제도로 포괄수가제를 고려할 수 있다. 포괄수가제는 개별 의료행위 증가의 유인을 막기 위해 의료행위 내용에 관계없이 어떤 질병을 치료하는데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의 이윤추구 경향이 통제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포괄수가제 도입은 과소진료, 또는 수가가 더 높은 질환으로의 과잉진단 등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또는 일 년 예산을 책정하는 총액예산제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재정을 확충하고, 이러한 정책들을 도입하더라도 비급여를 통제하지 못하면 보장성은 제대로 강화될 수 없다. 결국 문제의 주요 원인은 의료공급기관의 소유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중심인데다 그러한 병원들을 통제할 시스템조차 미흡하다는 것이다. 당장 병원의 소유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이윤 추구의 ‘샘물’인 비급여 통제를 비롯한 병원자본의 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비급여 통제 요구는 병원의 이윤 추구에 반대하는 운동 전략으로서 유효하며 보건의료운동 단위들은 이미 이러한 문제제기를 해오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시민회의 전략의 문제점
운동의 전략은 문제의 현상을 일시적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문제가 심화되는 경향에 대한 반경향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회의는 문제가 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획기적 보장성 강화운동의 내용을 도식화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표 3]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동의 전략 도식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위 모델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그림에서 표시된 단계 ①②③의 문제점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선제적 보험료 인상, 합당한가
선제적 보험료 인상은 합당하지 않다. 월 1인 당 보험료는 2004년 3만 3천 원에서 2008년 5만 원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총 보험료는 15.6조 원에서 25.0조 원으로, 60% 증가했다. 반면 국고지원은 3.5조에서 4.0억으로, 단지 16% 증가했을 뿐이다. 전체 건강보험료 수입에서 국고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18%에서 2008년 14%로 감소했다[표4], [그림2]. 지난 7년 동안 정부는 법률로 규정된 국고지원금을 과소지원했고 그 누적액이 3조 69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 옳은가? 1만 1천 원 인상이라고 하지만 이는 1인당 기준이고, 가구당으로 하면 평균 2만 8천 원이다.
[표 4] 2008년 건강보험통계연보
시민회의는 보험료를 인상하면 의료법에 근거하여 사용자부담, 국고지원이 자동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대로라면 왜 그동안 보험료가 인상된 비율만큼 국고지원은 늘지 않았는가. 시민회의는 국가와 자본에 기대지 않고 국민들이 먼저 나선다는 점에서 이번 전략이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노동자 민중의 당연한 요구이다. 시민회의의 복지 패러다임 전환은 ‘노동자 민중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일 뿐이다.
[그림 2] 보험료와 국고지원 인상 현황
시민회의는 정율제로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고소득층에서 부담하는 월 보험료 액수가 저소득층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보험료를 전체적으로 인상하면 고소득층의 부담이 더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장 많이 혜택을 보는 것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고소득층 인구는 소수이기 때문에 저소득, 중산층 가구의 보험료 합이 총 보험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08년 직장보험 통계를 보면 보수월액을 1~20분위(1분위가 최하소득, 20분위가 최고소득구간)로 나누었을 때 1~10분위의 보험료 합이 총 보험료의 88.5%를 차지한다. 보험료 인상을 통한 재정 확충의 대부분은 결국 저소득층, 중산층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정율제를 유지하는 한 고소득층의 인상 절대 액이 더 많을지라도 확충된 재정에 대한 고소득층의 기여비율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공적재원을 확충하려면 누진제를 도입해서 고소득층의 기여비율을 높이는 것이 재분배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살펴볼 바와 같이, 현재 의료체계가 공공재정이 병원자본과 제약자본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은 노동자 민중의 부담을 늘려 병원, 제약 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보험료의 전반적 인상은 운동의 요구(누진제, 국고지원 확대, 공급체계 개편 등)를 선제적으로 요구하면서 추후에 고려해볼 수 있는 ‘카드’이지 선제적으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적재원 확충으로 본인부담이 경감될 수 있는 구조인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현재 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이 제한적이기 때문에(약 64%)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민간보험 가입의 유인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이 등이 2009년 11월에 발표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확충 및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전략개발연구’는 시민회의 운동의 주요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그림3-1]과 같이 국민의료비(전체의료비)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공공의료비는 그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차액인 사적 부담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공공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늘리면 국민의료비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고 사적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공공의료비 비율이 증가하면 국민의료비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들면서 공공의료비를 대폭 확충시킴으로써 국민의료비 증가추세를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림 3-1] 국민의료비와 공공의료비 추이
공공의료비 비율이 증가하면 국민의료비 증가율이 줄어든다는 근거로 시민회의는 OECD 국가들을 분석한 자료(이견직, 정영호, 2002)를 든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 공공의료비 비율 증가가 국민의료비 증가율의 감소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국가들은 GDP가 상위에 속하는 유럽선진국, 영미국가들로 한국은 포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자료에서 비교하는 OECD 국가들의 평균 공공병상 비율은 73%인 반면, 우리나라는 10%에 불과하다(OECD, 2010). 이런 공급구조 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공적재원 확충으로 전체의료비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 국가들 중 공공병상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들도 있다(벨기에 34%, 독일49%, 일본 26.3%, 네덜란드 0%). 그러나 이들 국가들 중 병원 신설, 병상 감축/추가 규제가 지역 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되지 않고 있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는 이런 규제조차 없다(OECD, 2010).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증가 추세는 지금의 민간중심적인 공급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어쨌든 공공의료비와 전체의료비의 격차를 줄여서 사적부담을 줄여보자고 하는 것이 시민회의의 주장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먼저 전체 의료비 지출 곡선에 [그림 3-2]와 같이 추세선을 그려보자. 그리고 시민회의가 제안하는 대로 공공재정 확충을 y1년차에 (불가능하지만) 15조를 늘린다고 가정해보자. 다음 해에는 (격차를 점차 줄여나가기는커녕) y1년차에 줄였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첫 해에 확충했던 것만큼의 공공재정을 추가해야 한다. 그때 가서 또 다시 ‘1만 1천원’ 더 내자고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결국 전체 국민의료비 증가율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그림 3-2] 국민의료비와 공공의료비 추이, 국민의료비 증가 추세선
시민회의는 공적재원이 병원의 이윤추구에 활용되고 있는 현재 구조에서 공적재원 확충을 통해 전체 의료비를 어떻게 통제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을 제시해야 하며, 그 내용이 운동의 목표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병원자본 통제 방안 없는 ‘보장성 강화’
앞에서 우리는 현 보건의료제도 문제의 핵심적 원인이 ‘의료기관의 영리추구성’이고 이를 억제하는 방안으로 비급여 통제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시민회의는 병원의 협조 없이는 보건의료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병원의 이해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회의 전략은 자본에게도 ‘웃으면서’ 제안할 수 있는 안이다. 그러나 병원 자본과 환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강보험이란 허상이다. 자본은 보건의료체계를 이윤창출의 영역으로 구축하려 하고 민중은 보편적 권리로서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민회의는 병원자본과의 적대관계를 덮어두고 병원 통제 방안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단지 ‘통제 방안을 명시하지 않은’ 문제가 아니라 현 보건의료문제의 핵심적 원인을 보지 않는 문제이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면서 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보장성 강화를 위해 기본적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여기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고 불필요한 비급여의 발생을 차단하는 방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회의 전략은 이를 모두 결여하고 있다.
① 비급여 통제
시민회의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를 급여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한다.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는 법정 비급여 중 환자의 부담이 큰 항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입원의 경우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전체 비급여서비스 비용의 약 40%를 차지하고 종합병원 이상에서는 선택진료비가 약 20%를 차지한다(허순임, 2007). 그러나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는 모두 그동안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면서 ‘부당하게’ 늘어왔던 비용이다. 환자의 진료와 관련이 없고, 병원의 수입을 위해 부당하게 환자들에게 부담을 지웠던 것이므로 규제를 강화해 그 비용을 줄여야지, ‘부당한 수익’을 건강보험재정으로 충당해 주는 것은 맞지 않다. 선택진료비를 급여화 해주고 추후에 병원이 수입원으로 또 다른 ‘부당한’ 비급여를 만들어내면 그것 또한 급여화해 줄 것인가.
선택진료비는 폐지되거나 최소한 규제가 강화되어야 하고 상급병실료는 신설, 증축하는 병원에 70% 이상을 다인실 병상으로 하는 것을 시작으로 규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공급기관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물론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병원수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경우 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공공적 의료서비스에 대해 정부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비급여 서비스를 급여화하는 것과 정부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같은 비용이 들더라도 공급기관의 통제에 있어서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비급여의 급여화는 개별적 의료행위에 대한 재정적 규제를 높일 수 있지만, 공공적 의료서비스 전반에 대한 정부지원은 병원의 공공적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더 포괄적인 규제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표2]에서 설명한 대로, 건강보험부담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49% 증가했지만(주로 보험료 인상을 통해) 그에 비해 보장성은 61.3%에서 64.6%로 3.3%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건강보험부담이 증가하는 동시에 법정본인부담과 비급여본인부담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장성=(건강보험부담)/(법정본인부담+비급여본인부담+건강보험부담)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부담이 늘더라도 본인부담(법정+비급여)이 함께 증가한다면 보장성 확대효과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새로 발생할 잠재적인 비급여 진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요구가 필수적이다.
시민회의는 “연간 본인부담금 총액이 100만 원이 넘으면 이를 초과하는 비용에 대해서 건강보험이 전액 부담”하는 의료보험상한제를 제안한다. 하지만 고액의 치료비를 발생시키는 비급여를 통제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상한제가 될 수 없고,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유인을 떨어뜨릴 수 없다.
② 대형민간병원 통제, 공공병원/중소병원 지원 확대
병원자본 통제를 위해서는 대형병원의 병상 확충 과잉경쟁을 규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각 시도별로 해당 지역 병원들의 총 병상 수를 제한하는 지역병상총량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 규제를 통해 공적재원이 전체의료비 증가율을 제어하는 효과를 조금이나마 기대할 수 있다.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이들 병원의 치료성적과 치료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의료 서비스 수준의 지역적 격차를 줄여가야 하는데, 기존의 수도권 대형병원들에 대한 규제와 함께 지방 국립대를 포함한 공공병원을 육성하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 기존의 재정지원의 문제는 양적으로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공공병원들의 재정독립성을 빌미로 공공의료서비스는 파편적으로 상대화시키고 다른 부분에서는 ‘이윤 획득’을 위한 효율성 추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공공병원이 제대로 공공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재정지원이 필요하며 경영난에 있는 중소병원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시민회의는 공적재원의 사용에 있어서 이러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보건의료운동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요구들이기 때문이다. 시민회의의 전략은 공공재정을 확보하는 방법과 공공재정을 사용하는 방법 모두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공적재원은 누진제도입과 국고지원 확대를 통해 확충해야 하며 그렇게 확충한 재정은 공급기관 통제를 현실화하는 데 써야 한다.
병원의 이윤 추구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면 보장성을 강화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과 보장성 강화 투쟁은 별도의 다른 투쟁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운동이 분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과 같이 공공재원이 병원/제약 자본에 먹이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민회의와 같은 방식으로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운동은 이들 자본의 이해와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민회의의 운동전략은 현재 의료민영화저지 투쟁과 상승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보장성 확대를 위한 공급기관 통제를 보장성확대 운동과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유효한 요구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운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진행되는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개별적 운동들이 서로 같은 지향을 가지고 통합적 힘을 발휘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보론] 보험료인상을 통한 공공재정확충은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운동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운동의 관련 단위를 크게 병원노동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자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은 현재 민주노총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의료연대분과(이하 의료연대분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전국사회보험지부(이하 사회보험지부)로 조직되어 있다. 이들 중 보건의료노조와 사회보험지부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을 추진하려는 입장이다.
시민회의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보건의료정책 개혁에 대한 전략이지만, 그 영향은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에게 직접적ㆍ간접적으로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회의가 채택한 전략에 대한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 사이의 입장 차이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전략의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시민회의의 전략이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 그리고 그 전략에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운동이 합류했을 때 가져올 효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의 전략
시민회의의 전략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건강보험료 인상, 건강보험료 인상분과 그에 따른 정부ㆍ자본 부담의 자연 증가분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의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한 본인부담 경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시민회의는 이를 통해 민간의료보험 확대의 저지와 국민건강권의 향상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보장성 강화와 민간의료보험 확대 저지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할 수 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일단 보험료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건강보험공단의 재정 안정화와 건강보험공단의 위상 강화를 기대할 수는 있다. 이전부터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이유로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를 압박했는데, 이는 올 초 건강보험공단 측이 재정적자를 이유로 연봉제 확대, 성과연봉제 강화, 저성과 간부 인사조치 등을 시행하려고 한 데서도 드러난다. 사회보험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사회보험지부와 사용자간 타협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고, 조합원의 고용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보험료 인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강화와 보장성 강화는 병원 자본의 수익 창출을 확대할 수도 있다. 보장성 강화를 통해서 미충족된 의료수요의 현실화가 얼마간 이루어질 것이며, 특히 비급여에 대한 통제가 거의 없는 현재 상황에서 비급여 부분이 급여화되면 과잉진료가 유발되고 새로운 비급여 부분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의 급여화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의사결정과정에 비추어볼 때 확충된 재정의 상당부분이 수가 인상에 쓰일 것이다. 이는 대형병원 노동조합에게는 사용자측과의 타협의 가능성 확대와 간호인력 확충, 병원 노동자의 고용 안정 등을 기대하게 한다. 결국 사회보험지부 조합원이나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의 입장에서 시민회의의 전략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서 국민의 건강권을 확대하는 한편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합하는 일거양득의 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동자운동의 목표와 원칙
노동자운동의 일차적인 목표는 조합원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므로 그 의미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자간 경쟁을 극복하고 더 큰 단결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은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과제를 비조합원에게까지 확대하는 것, 또 한편으로는 전체 노동자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운동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 등이 될 것이다.
위와 같은 노동자운동의 원칙은 어떤 부문을 막론하고 관철되어야 한다. 보건의료노동자운동은 그간 조합원의 고용안정, 노동조건 개선과 더불어 노동조합의 외연 확대, 보건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의료보험통합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활동, 병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활동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실천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해와 사회운동적 과제를 결합할 수 있는 노동자운동의 전략이다. 시민회의의 전략 역시 노동자운동의 두 가지 목표에 비추어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회의 전략이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보험료 인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동자운동의 전략이 장기적으로도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있는가. 자본과 노동의 계급투쟁에서 수익성이나 재정 안정화 논리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이다. 수익성, 재정안정화 같은 논리에 종속되면 수세적인 대응으로 실천의 영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의 계급투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이나 건강보험 재정위기 국면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공공기관 구조조정>
IMF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은 공기업 2만 8천여 명, 출연위탁기관 1만 3천여 명 인원감축을 시작으로 사유화, 통폐합, 자회사매각 등을 통해서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공공기관 선진화 프로젝트 역시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연장선에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선진화를 통해 공공부문의 예산과 인력을 절감한다는 이데올로기 하에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 ‘도덕적 해이’를 부각시키는 마녀사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는데, 금융위기로 인한 자본의 위기를 공적 자금 지원 등을 통해 해결하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재정적자를 공공부문 예산 삭감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이윤율 저하의 국면에서 공공부문 사유화를 통해 국내 독점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재정 위기는 공공부문 노동자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또 재정 위기에 대한 대안을 공공부문 노동자가 제시하더라도 고용 안정화, 노동조건 향상을 얻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임금삭감,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수로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위기 국면을 살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2001년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왔을 때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본인부담금 인상과 보험료 인상, 건강보험공단 구조조정이었다. 그리고 정리해고와 퇴직금 누진제 폐지, 노동조합 탈퇴 종용 등을 시도했다. 올해 건강보험 재정 위기 국면에서도 똑같이 정부는 보장성 축소와 보험료 인상, 공단 구조조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재정위기의 원인>
재정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정부가 의료전달체계의 해체를 가져오는 진료권 폐지, 지역별 병상수 제한 폐지,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 방기 등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정부 지원을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병원자본과 보험자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재정 불안을 가져왔다. 병원의 이윤 추구 경향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 것이 재정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병원의 이윤 추구는 병원의 주된 비용인 노동비용의 절약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결국 병원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한다. 그런데 국가는 재정위기의 원인은 더 키우면서 그 책임을 공단 노동자들에게 씌우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건강보험 재정 위기의 본질적 원인을 밝히고 정부ㆍ자본의 책임을 묻는 한편 노동자 생존권 요구를 꾸준히 제기하여 정부ㆍ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며 조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고용안정, 노동권 확보는 노동자운동의 조직적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자본의 수익 확대, 혹은 재정의 안정화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타협의 여지를 넓히려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유효할지 몰라도 노동자운동의 올바른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비단 공공부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병원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화 외주화 등은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온 상수이며 대형병원이 재정안정화 수익창출을 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고용이 안정화되고 정규직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노동을 불안정화해서 더 큰 수익을 창출하려는 것이 자본의 전략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병원의 대형자본화, 금융자본화하는 경향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고용위기는 지속적으로 심화될 것이다.
시민회의 전략이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요구가 될 수 있는가
시민회의의 전략이 전체 노동자계급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우선 시민회의의 전략이 정말 획기적인 보장성 강화와 민간의료보험 억제, 국민건강권의 향상을 가져올 것인지가 문제다. 비급여 부분에 대한 통제, 수가구조의 개혁,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등 공급구조에 대한 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재정정책만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도 획기적 보장성 강화와 실질적인 진료비 하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도 보험료 인상분에 비례하는 보장성 강화를 누리지 못하여 건강보험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황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문제는 선제적 보험료 인상과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 전략이 가지는 문제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 적자를 핑계로 보장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운동 진영이 먼저 보험료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시민회의 측에서는 보험료 인상에 대한 합의를 얻어낸다면 이것을 토대로 정부와 자본을 압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보험료 인상에 대한 합의가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보장성 강화와 관련한 정책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보험료 인상은 받아들이면서 그에 합당한 정부ㆍ자본의 책임은 회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조선일보에서는 보험료 인상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정부와 자본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을 들면서 보장성 강화에 대해서는 과도한 요구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병원자본과의 합의를 통해서 보장성 강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다. 보장성 강화를 통해서 민간의료보험의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대형병원자본은 이미 보험자본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수익성 논리에 종속되지 말고 재정위기의 발생원인인 영리추구적 의료행위와 의료민영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노동권을 지켜내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이하 보장성 강화 운동)이 제안된 배경은 민간의료보험이 성장하면서 건강보험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세적인’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넘어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민간보험에 대한 유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환자가 직접 지출하는 의료비를 낮추어야 한다. 즉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적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공적재원은 크게 지역, 직장 가입자의 총 보험료와 국고지원을 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1만1천원의 기적’이라는 상자를 열어보면 이는 ‘기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강화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일인당 1만 1천 원(가구당 2만 8천 원)을 먼저 내놓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또 공급기관 통제 없는 공적재원 마련으로는 본인부담 경감에 한계가 있다. 현재 보건의료체계는 민간 의료기관에 수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의료행위를 규제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의료기관의 이윤추구경향을 통제하지 못한다. 시민회의는 공적재원 확충을 지렛대 삼아 보장성 강화를 위한 공급구조 개편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시민회의는 그 지렛대를 잘못된 방향으로 틀고 있다.
운동진영은 실질적인 본인부담을 덜 수 있는 체계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운동의 ‘목표’다. 재정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사회는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며 공적재원 확충이 마치 기적을 이뤄내는 요술봉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동의 현황
획기적 보장성 강화 운동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까지 경과
2009년부터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운동’(이하 보장성 강화 운동)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2009년 4월 보건의료노조와 공공노조사회보험지부가 공동주관했던 국회토론회에서 이진석 교수가 이 안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 운동이 제안하는 내용은 선제적 보험료 인상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것이다.
대부분 운동 진영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정당성에 공감하였으나 일부는 이 운동의 전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다. 근거는 보장성 강화에는 동의하나 보험료 인상을 먼저 제안하는 방식은 노동자민중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근거는 보장성확대만으로는 안 되고 공급체계의 개편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보장성 강화 운동 진영도 그 중요성을 인지하여 기존 안에 수정과 보완을 더했다. 그러나 수정과 보완은 기존 안의 골격을 유지한 채 형식적으로 정책안을 추가하는 수준이었다.
2009년 ‘의료민영화저지를위한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출범 과정에서 획기적 보장성 강화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들을 수용하여 보완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범국본은 보장성 강화 운동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고, 의료민영화 반대 활동을 주요 목표로 하는 연대체로 출범하였다. 보장성 강화 운동 진영은 범국본을 통해 이 운동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자 독자적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띄운 것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제안 내용
시민회의의 제안은 ‘보험료를 인상하여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기존의 보장성 강화 운동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기존 안에 비해 이번 제안에서 달라진 점은 포괄수가제, 주치의제도 등 의료체계 개편관련 내용을 대부분 빼고 건강보험 재정 확충과 그에 따른 보장성 강화 주장에 집중한 점이다. 구체목표로 ‘환자의 연간 본인부담 총액 상한을 100만원으로!’라는 슬로건을 제기하고 있다. 시민회의 제안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표1].
“우리나라 국민들 중 누구든 어떤 질병에 걸리더라도 연간 본인부담금 총액이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한다. 이는 병원진료비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국가 평균인 90% 이상으로 강화하면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현재 건강보험 비급여로 방치되어 있는 진료서비스를 모두 급여로 전환해야 하고, 급여비 중 본인부담률도 하향조정해야 한다. 급여확대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시민회의의 제안에는 환자의 본인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전략이 부족하다. 공급기관 통제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시민회의의 정책을 세부적으로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회의의 구체안을 보면 이들의 문제인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표 1]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제안하는 건강보험 급여 확대 프로그램
공급체계의 문제
시민회의의 내용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현재 의료공급기관을 중심으로 비용의 흐름을 살펴보자. 이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야 시민회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운동의 요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은 의료행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에 대해 일부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해진 수가를 지급받고 일부는 환자에게서 법정본인부담금을 받는다. 한편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환자가 전액을 부담한다. 이것이 비급여본인부담인데, 비급여에는 법정비급여와 임의비급여가 있다. 법정비급여는 MRI, 초음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 비급여라고 규정된 항목들이고 임의비급여는 규정되어 있지 않은 항목들이다. 임의비급여에는 질병이 위중한 경우 시도해보는 신의료기술이나 식약청 허가를 벗어난 약제 등이 있다.
[그림 1] 재정 투입을 통해 의료서비스 및 제약 공급기관을 거쳐 의료서비스가 산출되는 과정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은 금지되어 있지만 실제로 의료기관 대부분이 이윤을 추구하는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병원은 급여항목에 해당하는 의료행위 각각에 대해 보험을 청구하기 때문에 심사에서 삭감되지 않는 선에서 의료행위를 늘리려는 유인을 갖는다. 급여항목의 의료행위가 증가하면 환자의 법정본인부담도 증가한다. [표2]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건강보험부담과 법정본인부담이 계속 증가한다. 한편 수가와 심사로 통제하지 않는 비급여는 병원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효자 노릇을 한다. 따라서 병원은 비급여를 늘리려는 유인을 강하게 갖는다. [표2]에서 비급여본인부담이 대체로 증가하고 있다.
[표 2]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건강보험 보장성, 건강보험부담, 법정본인부담, 비급여본인부담의 추이(‘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자료 재구성)
건강보험부담은 2004년에서 2007년 누적 49%가 증가했지만(주로 보험료 인상을 통해) 그에 비해 보장성은 61.3%에서 64.6%로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건강보험부담이 증가하는 동시에 법정본인부담과 비급여본인부담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장성=(건강보험부담)/(법정본인부담+비급여+건강보험부담). 이는 건강보험부담이 늘더라도 본인부담이 함께 증가한다면 보장성 확대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1]에서 블랙박스 내의 각 주체들의 영리추구행위가 확대될수록 비용 증가는 가속화된다(물론 GDP 증가에 따라 국민의 의료수요도 증가한다). 그에 따라 국민들의 부담도 늘어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의료비 지불제도로 포괄수가제를 고려할 수 있다. 포괄수가제는 개별 의료행위 증가의 유인을 막기 위해 의료행위 내용에 관계없이 어떤 질병을 치료하는데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의 이윤추구 경향이 통제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포괄수가제 도입은 과소진료, 또는 수가가 더 높은 질환으로의 과잉진단 등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또는 일 년 예산을 책정하는 총액예산제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재정을 확충하고, 이러한 정책들을 도입하더라도 비급여를 통제하지 못하면 보장성은 제대로 강화될 수 없다. 결국 문제의 주요 원인은 의료공급기관의 소유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중심인데다 그러한 병원들을 통제할 시스템조차 미흡하다는 것이다. 당장 병원의 소유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이윤 추구의 ‘샘물’인 비급여 통제를 비롯한 병원자본의 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비급여 통제 요구는 병원의 이윤 추구에 반대하는 운동 전략으로서 유효하며 보건의료운동 단위들은 이미 이러한 문제제기를 해오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시민회의 전략의 문제점
운동의 전략은 문제의 현상을 일시적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문제가 심화되는 경향에 대한 반경향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회의는 문제가 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획기적 보장성 강화운동의 내용을 도식화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표 3]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동의 전략 도식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위 모델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그림에서 표시된 단계 ①②③의 문제점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선제적 보험료 인상, 합당한가
선제적 보험료 인상은 합당하지 않다. 월 1인 당 보험료는 2004년 3만 3천 원에서 2008년 5만 원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총 보험료는 15.6조 원에서 25.0조 원으로, 60% 증가했다. 반면 국고지원은 3.5조에서 4.0억으로, 단지 16% 증가했을 뿐이다. 전체 건강보험료 수입에서 국고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18%에서 2008년 14%로 감소했다[표4], [그림2]. 지난 7년 동안 정부는 법률로 규정된 국고지원금을 과소지원했고 그 누적액이 3조 69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 옳은가? 1만 1천 원 인상이라고 하지만 이는 1인당 기준이고, 가구당으로 하면 평균 2만 8천 원이다.
[표 4] 2008년 건강보험통계연보
시민회의는 보험료를 인상하면 의료법에 근거하여 사용자부담, 국고지원이 자동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대로라면 왜 그동안 보험료가 인상된 비율만큼 국고지원은 늘지 않았는가. 시민회의는 국가와 자본에 기대지 않고 국민들이 먼저 나선다는 점에서 이번 전략이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노동자 민중의 당연한 요구이다. 시민회의의 복지 패러다임 전환은 ‘노동자 민중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일 뿐이다.
[그림 2] 보험료와 국고지원 인상 현황
시민회의는 정율제로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고소득층에서 부담하는 월 보험료 액수가 저소득층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보험료를 전체적으로 인상하면 고소득층의 부담이 더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장 많이 혜택을 보는 것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고소득층 인구는 소수이기 때문에 저소득, 중산층 가구의 보험료 합이 총 보험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08년 직장보험 통계를 보면 보수월액을 1~20분위(1분위가 최하소득, 20분위가 최고소득구간)로 나누었을 때 1~10분위의 보험료 합이 총 보험료의 88.5%를 차지한다. 보험료 인상을 통한 재정 확충의 대부분은 결국 저소득층, 중산층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정율제를 유지하는 한 고소득층의 인상 절대 액이 더 많을지라도 확충된 재정에 대한 고소득층의 기여비율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공적재원을 확충하려면 누진제를 도입해서 고소득층의 기여비율을 높이는 것이 재분배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살펴볼 바와 같이, 현재 의료체계가 공공재정이 병원자본과 제약자본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은 노동자 민중의 부담을 늘려 병원, 제약 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보험료의 전반적 인상은 운동의 요구(누진제, 국고지원 확대, 공급체계 개편 등)를 선제적으로 요구하면서 추후에 고려해볼 수 있는 ‘카드’이지 선제적으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적재원 확충으로 본인부담이 경감될 수 있는 구조인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현재 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이 제한적이기 때문에(약 64%)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민간보험 가입의 유인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이 등이 2009년 11월에 발표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확충 및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전략개발연구’는 시민회의 운동의 주요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그림3-1]과 같이 국민의료비(전체의료비)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공공의료비는 그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차액인 사적 부담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공공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늘리면 국민의료비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고 사적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공공의료비 비율이 증가하면 국민의료비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들면서 공공의료비를 대폭 확충시킴으로써 국민의료비 증가추세를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림 3-1] 국민의료비와 공공의료비 추이
공공의료비 비율이 증가하면 국민의료비 증가율이 줄어든다는 근거로 시민회의는 OECD 국가들을 분석한 자료(이견직, 정영호, 2002)를 든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 공공의료비 비율 증가가 국민의료비 증가율의 감소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국가들은 GDP가 상위에 속하는 유럽선진국, 영미국가들로 한국은 포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자료에서 비교하는 OECD 국가들의 평균 공공병상 비율은 73%인 반면, 우리나라는 10%에 불과하다(OECD, 2010). 이런 공급구조 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공적재원 확충으로 전체의료비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 국가들 중 공공병상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들도 있다(벨기에 34%, 독일49%, 일본 26.3%, 네덜란드 0%). 그러나 이들 국가들 중 병원 신설, 병상 감축/추가 규제가 지역 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되지 않고 있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는 이런 규제조차 없다(OECD, 2010).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증가 추세는 지금의 민간중심적인 공급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어쨌든 공공의료비와 전체의료비의 격차를 줄여서 사적부담을 줄여보자고 하는 것이 시민회의의 주장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먼저 전체 의료비 지출 곡선에 [그림 3-2]와 같이 추세선을 그려보자. 그리고 시민회의가 제안하는 대로 공공재정 확충을 y1년차에 (불가능하지만) 15조를 늘린다고 가정해보자. 다음 해에는 (격차를 점차 줄여나가기는커녕) y1년차에 줄였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첫 해에 확충했던 것만큼의 공공재정을 추가해야 한다. 그때 가서 또 다시 ‘1만 1천원’ 더 내자고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결국 전체 국민의료비 증가율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그림 3-2] 국민의료비와 공공의료비 추이, 국민의료비 증가 추세선
시민회의는 공적재원이 병원의 이윤추구에 활용되고 있는 현재 구조에서 공적재원 확충을 통해 전체 의료비를 어떻게 통제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을 제시해야 하며, 그 내용이 운동의 목표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병원자본 통제 방안 없는 ‘보장성 강화’
앞에서 우리는 현 보건의료제도 문제의 핵심적 원인이 ‘의료기관의 영리추구성’이고 이를 억제하는 방안으로 비급여 통제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시민회의는 병원의 협조 없이는 보건의료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병원의 이해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회의 전략은 자본에게도 ‘웃으면서’ 제안할 수 있는 안이다. 그러나 병원 자본과 환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강보험이란 허상이다. 자본은 보건의료체계를 이윤창출의 영역으로 구축하려 하고 민중은 보편적 권리로서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민회의는 병원자본과의 적대관계를 덮어두고 병원 통제 방안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단지 ‘통제 방안을 명시하지 않은’ 문제가 아니라 현 보건의료문제의 핵심적 원인을 보지 않는 문제이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면서 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보장성 강화를 위해 기본적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여기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고 불필요한 비급여의 발생을 차단하는 방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회의 전략은 이를 모두 결여하고 있다.
① 비급여 통제
시민회의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를 급여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한다.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는 법정 비급여 중 환자의 부담이 큰 항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입원의 경우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전체 비급여서비스 비용의 약 40%를 차지하고 종합병원 이상에서는 선택진료비가 약 20%를 차지한다(허순임, 2007). 그러나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는 모두 그동안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면서 ‘부당하게’ 늘어왔던 비용이다. 환자의 진료와 관련이 없고, 병원의 수입을 위해 부당하게 환자들에게 부담을 지웠던 것이므로 규제를 강화해 그 비용을 줄여야지, ‘부당한 수익’을 건강보험재정으로 충당해 주는 것은 맞지 않다. 선택진료비를 급여화 해주고 추후에 병원이 수입원으로 또 다른 ‘부당한’ 비급여를 만들어내면 그것 또한 급여화해 줄 것인가.
선택진료비는 폐지되거나 최소한 규제가 강화되어야 하고 상급병실료는 신설, 증축하는 병원에 70% 이상을 다인실 병상으로 하는 것을 시작으로 규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공급기관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물론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병원수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경우 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공공적 의료서비스에 대해 정부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비급여 서비스를 급여화하는 것과 정부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같은 비용이 들더라도 공급기관의 통제에 있어서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비급여의 급여화는 개별적 의료행위에 대한 재정적 규제를 높일 수 있지만, 공공적 의료서비스 전반에 대한 정부지원은 병원의 공공적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더 포괄적인 규제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표2]에서 설명한 대로, 건강보험부담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49% 증가했지만(주로 보험료 인상을 통해) 그에 비해 보장성은 61.3%에서 64.6%로 3.3%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건강보험부담이 증가하는 동시에 법정본인부담과 비급여본인부담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장성=(건강보험부담)/(법정본인부담+비급여본인부담+건강보험부담)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부담이 늘더라도 본인부담(법정+비급여)이 함께 증가한다면 보장성 확대효과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새로 발생할 잠재적인 비급여 진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요구가 필수적이다.
시민회의는 “연간 본인부담금 총액이 100만 원이 넘으면 이를 초과하는 비용에 대해서 건강보험이 전액 부담”하는 의료보험상한제를 제안한다. 하지만 고액의 치료비를 발생시키는 비급여를 통제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상한제가 될 수 없고,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유인을 떨어뜨릴 수 없다.
② 대형민간병원 통제, 공공병원/중소병원 지원 확대
병원자본 통제를 위해서는 대형병원의 병상 확충 과잉경쟁을 규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각 시도별로 해당 지역 병원들의 총 병상 수를 제한하는 지역병상총량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 규제를 통해 공적재원이 전체의료비 증가율을 제어하는 효과를 조금이나마 기대할 수 있다.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이들 병원의 치료성적과 치료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의료 서비스 수준의 지역적 격차를 줄여가야 하는데, 기존의 수도권 대형병원들에 대한 규제와 함께 지방 국립대를 포함한 공공병원을 육성하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 기존의 재정지원의 문제는 양적으로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공공병원들의 재정독립성을 빌미로 공공의료서비스는 파편적으로 상대화시키고 다른 부분에서는 ‘이윤 획득’을 위한 효율성 추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공공병원이 제대로 공공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재정지원이 필요하며 경영난에 있는 중소병원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시민회의는 공적재원의 사용에 있어서 이러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보건의료운동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요구들이기 때문이다. 시민회의의 전략은 공공재정을 확보하는 방법과 공공재정을 사용하는 방법 모두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공적재원은 누진제도입과 국고지원 확대를 통해 확충해야 하며 그렇게 확충한 재정은 공급기관 통제를 현실화하는 데 써야 한다.
요구안
1) 누진제 도입, 국고지원 확대
2) 공급기관 통제
① 비급여 통제
- 선택진료비 폐지
- 상급병실 기준 강화
- 새로운 비급여 발생에 대한 통제 강화
② 민간대형병원 통제, 공공병원/중소병원 지원
- 병원 신설/증축 규제 강화, 지역병상총량제
- 공공병원, 중소병원 정부지원 확대
병원의 이윤 추구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면 보장성을 강화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과 보장성 강화 투쟁은 별도의 다른 투쟁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운동이 분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과 같이 공공재원이 병원/제약 자본에 먹이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민회의와 같은 방식으로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운동은 이들 자본의 이해와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민회의의 운동전략은 현재 의료민영화저지 투쟁과 상승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보장성 확대를 위한 공급기관 통제를 보장성확대 운동과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유효한 요구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운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진행되는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개별적 운동들이 서로 같은 지향을 가지고 통합적 힘을 발휘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보론] 보험료인상을 통한 공공재정확충은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운동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운동의 관련 단위를 크게 병원노동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자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은 현재 민주노총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의료연대분과(이하 의료연대분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전국사회보험지부(이하 사회보험지부)로 조직되어 있다. 이들 중 보건의료노조와 사회보험지부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을 추진하려는 입장이다.
시민회의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보건의료정책 개혁에 대한 전략이지만, 그 영향은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에게 직접적ㆍ간접적으로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회의가 채택한 전략에 대한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 사이의 입장 차이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전략의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시민회의의 전략이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 그리고 그 전략에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운동이 합류했을 때 가져올 효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의 전략
시민회의의 전략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건강보험료 인상, 건강보험료 인상분과 그에 따른 정부ㆍ자본 부담의 자연 증가분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의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한 본인부담 경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시민회의는 이를 통해 민간의료보험 확대의 저지와 국민건강권의 향상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보장성 강화와 민간의료보험 확대 저지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할 수 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일단 보험료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건강보험공단의 재정 안정화와 건강보험공단의 위상 강화를 기대할 수는 있다. 이전부터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이유로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를 압박했는데, 이는 올 초 건강보험공단 측이 재정적자를 이유로 연봉제 확대, 성과연봉제 강화, 저성과 간부 인사조치 등을 시행하려고 한 데서도 드러난다. 사회보험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사회보험지부와 사용자간 타협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고, 조합원의 고용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보험료 인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강화와 보장성 강화는 병원 자본의 수익 창출을 확대할 수도 있다. 보장성 강화를 통해서 미충족된 의료수요의 현실화가 얼마간 이루어질 것이며, 특히 비급여에 대한 통제가 거의 없는 현재 상황에서 비급여 부분이 급여화되면 과잉진료가 유발되고 새로운 비급여 부분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의 급여화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의사결정과정에 비추어볼 때 확충된 재정의 상당부분이 수가 인상에 쓰일 것이다. 이는 대형병원 노동조합에게는 사용자측과의 타협의 가능성 확대와 간호인력 확충, 병원 노동자의 고용 안정 등을 기대하게 한다. 결국 사회보험지부 조합원이나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의 입장에서 시민회의의 전략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서 국민의 건강권을 확대하는 한편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합하는 일거양득의 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동자운동의 목표와 원칙
노동자운동의 일차적인 목표는 조합원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므로 그 의미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자간 경쟁을 극복하고 더 큰 단결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은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과제를 비조합원에게까지 확대하는 것, 또 한편으로는 전체 노동자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운동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 등이 될 것이다.
위와 같은 노동자운동의 원칙은 어떤 부문을 막론하고 관철되어야 한다. 보건의료노동자운동은 그간 조합원의 고용안정, 노동조건 개선과 더불어 노동조합의 외연 확대, 보건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의료보험통합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활동, 병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활동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실천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해와 사회운동적 과제를 결합할 수 있는 노동자운동의 전략이다. 시민회의의 전략 역시 노동자운동의 두 가지 목표에 비추어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회의 전략이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보험료 인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동자운동의 전략이 장기적으로도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있는가. 자본과 노동의 계급투쟁에서 수익성이나 재정 안정화 논리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이다. 수익성, 재정안정화 같은 논리에 종속되면 수세적인 대응으로 실천의 영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의 계급투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이나 건강보험 재정위기 국면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공공기관 구조조정>
IMF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은 공기업 2만 8천여 명, 출연위탁기관 1만 3천여 명 인원감축을 시작으로 사유화, 통폐합, 자회사매각 등을 통해서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공공기관 선진화 프로젝트 역시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연장선에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선진화를 통해 공공부문의 예산과 인력을 절감한다는 이데올로기 하에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 ‘도덕적 해이’를 부각시키는 마녀사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는데, 금융위기로 인한 자본의 위기를 공적 자금 지원 등을 통해 해결하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재정적자를 공공부문 예산 삭감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이윤율 저하의 국면에서 공공부문 사유화를 통해 국내 독점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재정 위기는 공공부문 노동자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또 재정 위기에 대한 대안을 공공부문 노동자가 제시하더라도 고용 안정화, 노동조건 향상을 얻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임금삭감,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수로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위기 국면을 살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2001년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왔을 때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본인부담금 인상과 보험료 인상, 건강보험공단 구조조정이었다. 그리고 정리해고와 퇴직금 누진제 폐지, 노동조합 탈퇴 종용 등을 시도했다. 올해 건강보험 재정 위기 국면에서도 똑같이 정부는 보장성 축소와 보험료 인상, 공단 구조조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재정위기의 원인>
재정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정부가 의료전달체계의 해체를 가져오는 진료권 폐지, 지역별 병상수 제한 폐지,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 방기 등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정부 지원을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병원자본과 보험자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재정 불안을 가져왔다. 병원의 이윤 추구 경향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 것이 재정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병원의 이윤 추구는 병원의 주된 비용인 노동비용의 절약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결국 병원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한다. 그런데 국가는 재정위기의 원인은 더 키우면서 그 책임을 공단 노동자들에게 씌우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건강보험 재정 위기의 본질적 원인을 밝히고 정부ㆍ자본의 책임을 묻는 한편 노동자 생존권 요구를 꾸준히 제기하여 정부ㆍ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며 조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고용안정, 노동권 확보는 노동자운동의 조직적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자본의 수익 확대, 혹은 재정의 안정화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타협의 여지를 넓히려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유효할지 몰라도 노동자운동의 올바른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비단 공공부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병원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화 외주화 등은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온 상수이며 대형병원이 재정안정화 수익창출을 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고용이 안정화되고 정규직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노동을 불안정화해서 더 큰 수익을 창출하려는 것이 자본의 전략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병원의 대형자본화, 금융자본화하는 경향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고용위기는 지속적으로 심화될 것이다.
시민회의 전략이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요구가 될 수 있는가
시민회의의 전략이 전체 노동자계급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우선 시민회의의 전략이 정말 획기적인 보장성 강화와 민간의료보험 억제, 국민건강권의 향상을 가져올 것인지가 문제다. 비급여 부분에 대한 통제, 수가구조의 개혁,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등 공급구조에 대한 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재정정책만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도 획기적 보장성 강화와 실질적인 진료비 하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도 보험료 인상분에 비례하는 보장성 강화를 누리지 못하여 건강보험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황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문제는 선제적 보험료 인상과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 전략이 가지는 문제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 적자를 핑계로 보장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운동 진영이 먼저 보험료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시민회의 측에서는 보험료 인상에 대한 합의를 얻어낸다면 이것을 토대로 정부와 자본을 압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보험료 인상에 대한 합의가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보장성 강화와 관련한 정책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보험료 인상은 받아들이면서 그에 합당한 정부ㆍ자본의 책임은 회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조선일보에서는 보험료 인상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정부와 자본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을 들면서 보장성 강화에 대해서는 과도한 요구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병원자본과의 합의를 통해서 보장성 강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다. 보장성 강화를 통해서 민간의료보험의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대형병원자본은 이미 보험자본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수익성 논리에 종속되지 말고 재정위기의 발생원인인 영리추구적 의료행위와 의료민영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노동권을 지켜내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