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6ㆍ2 지방선거 대응 평가
6ㆍ2 지방선거가 끝난 후 평가가 분분하다. 그러나 선거과정이 그랬듯이 평가에서도 ‘MB심판에 대한 대중의 민심’, ‘민주대연합의 승리’라는 진단 이외의 다른 쟁점들은 여전히 잠복되거나 억압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른바 반MB연합에 비판적이거나 거리두기를 했던 세력, 조직들은 평가에 신중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그 과정과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낼 효과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 선거 직후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완주를 두고 형성된 여론지형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전주곡처럼 들린다. 선거전술로서 진보대연합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운동의 독자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포함하는 주장들도 이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대연합 구도가 형성되는 데 기여했던 정치적ㆍ정책적 쟁점들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시도들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이미 드러났듯이, 이와 같은 정치지형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운동방향이 민주대연합을 넘어서려는 시도에 대해 상당한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 평가는 향후 전개될 정세와 정치지형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국적 구도와 몇 개의 단일 이슈 중심의 ‘신자유주의 네거티브 선거’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대체로 민주당의 완승, 한나라당의 대패로 요약된다.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은 7석, 정당 비례대표 35.1%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6석, 정당 비례대표 39.8%를 얻었다. 그리고 친민주당 성향 무소속 후보가 경남과 제주 광역단체장으로 당선되었다. 의석수만으로는 아주 큰 차이가 아니지만, 이전 지방정부 수권정당이 한나라당 일색이었던 현실에 비추어 상당한 변화라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과거의 지방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1개 지방정부를 수권하였다. 민주당이 광주와 전남 두 곳을, 열린우리당이 전북 한 곳을 수권하였고, 제주는 무소속 당선이었다. 의석수만 놓고 보자면, 이번 선거에 비할 데 없는 한나라당의 완승이었다.
또한 2002년의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직선제가 본격화된 1987년 이후 치러진 모든 종류의 선거를 망라하여 가장 큰 폭의 표차를 만들며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광역단체장 선거를 통해 획득한 표는 총 880만 표로 487만 표를 얻은 민주당을 393만 표만큼 앞섰다. 그 결과 광역단체장 의석은 한나라당 11석, 민주당 4석, 자유민주연합 1석으로 배분되었다. 2002년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정당 투표를 기준으로 해도 한나라당은 859만 표, 민주당은 479만 표로 380만 표 차를 벌였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정작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방선거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몇 가지 경향성이다. 우선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단연 우세하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도 정권심판론이 회자되는데, 이는 이번 선거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역대 총선결과를 함께 놓고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며, 특히 정권 말기에 선거가 치러질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이 투표성향이 일관되게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2년 선거가 가장 대표적이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같은 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정권심판론은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의 주도력을 확인해 주기보다는, 대중의 일관된 정치적 경향성이 해체되고 정치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를 규정할 만한 고유한 특징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과거의 지방선거는 대체로 집권정당 심판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지역별 발전전략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몇 개의 단일이슈 중심의 전국적 구도가 유지되었다. 물론 각 지역마다 특수한 지역적 쟁점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세종시 논란 등 몇 개의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전국적 구도가 확고하게 짜인 것이 이번 지방선거였다. 전국적 쟁점에 근거해 오히려 지역적 쟁점이 확장되기도 했는데,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사회운동의 고민을 돌아보면 이와 같은 차이는 명확해진다. 당시 사회운동의 활동은 한미 FTA 반대운동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회운동 주체들이 선거공간을 활용하여 이러한 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역별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선거지형 속에서 전국적 사안을 쟁점화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차이는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 이슈, 그리고 선거구도의 정치적 성격을 말해준다.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집회·시위의 자유(서울광장)란 쟁점은 민주당과 개혁주의 세력들의 입장에서 한나라당과는 평행선을 달리는 정치적 소재지만, 진보진영과도 이미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반면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 파병문제, 노동법 개악 등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입장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일말의 공유지반도 없는 수많은 이슈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것도 쟁점화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그리 많지 않은 정책적 차이가 매우 과장·극대화된 신자유주의 세력들간의 네거티브 선거였다고 집약해 볼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근거를 더 보태자면 선거의 속성상 집권여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위해 빠질 수 없었던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문제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이는 경제위기가 쟁점화되는 순간 민주당이 내놓을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선거구도는 민주당과 개혁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들에 의해 기획·주도되었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구성된 5+4 연석회의에서 선거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정책적 의제들을 ‘필터링’했던 과정을 상기해보자.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를 민주당이 거부하여 협상이 지체될 때마다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중재자를 자임했다. 그러나 중재의 내용은 번번이 민심을 명분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주문이었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역설적 지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현장의 정치활동 붕괴, 정치방침 수립의 어려움이 항상 거론되어 왔다. 그를 극복하기 위한 취지로 진보정당 대통합운동이 작년부터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민주노총의 대응은 혼란과 무기력 그 자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올 3월 경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수많은 논쟁과 수정 과정을 거쳐 5월 중순 경 최종 확정되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쟁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가 복수 출마할 경우, 특히 그 중에 진보정당의 후보가 독자출마와 ‘반MB연합 후보’로 나뉠 경우의 방침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논의는 5+4 연석회의의 합의사항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기초의원이나 비례의원의 경우 복수의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추천, 지지를 열어두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외 부문의 경우 양쪽 모두 지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민주당 후보인 반MB연대 후보 지지를 열어두는 방향으로 정치방침을 수정해 나갔다. 이러한 방침 아래서 진보정당 통합을 위한 서약서나 광역단체장 복수 출마의 경우 조합원에 한해 지지후보로 결정한다는 단서조항은 형식적인 의미 이상을 가지질 수 없었으며, 실제로 각 지역에서 쉽게 무력화되었다.
이러한 정치방침이 사실상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다는 사실은 민주노총 지역본부마다 지지후보가 결정된 과정이나 실제 진행된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16개 광역단체장 후보에 대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이 세 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결정한 지역 5곳(강원, 경기, 경북, 전남, 충북), 복수 출마로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지역 7곳(광주, 대구, 대전, 서울, 울산, 인천, 전북), 마지막으로 지지후보가 없는 곳(경남, 부산, 제주, 충남). 이 중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두 번째 그룹은 대부분 진보신당이 독자 출마를 한 지역이다. 그리고 지지후보가 없는 지역은 대부분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모두 출마하지 않은 지역이다.
지지후보를 결정한 첫 번째 경우도 내막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경기의 경우 민주노총 경기본부가 심상정 후보 지지를 형식적으로는 결정했으나, 실제로는 정책협약식을 통해 유시민 후보를 지지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강원의 경우 민주노동당 후보가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결정되었으나 중도 사퇴하여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였다. 그리고 대구와 전남의 경우 민주노동당 후보가 지지후보로 결정되었으나, 알다시피 이들 지역은 민주노동당의 독자출마가 전체 선거 판세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곳들이다. 따라서 온전한 의미에서의 민주노총 지지후보는 충북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충북의 경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3개 진보정당이 합의를 통해 진보신당의 후보를 단일후보로 추대하였고 민주노총 충북본부도 지지후보로 승인하였다. 그러나 실제 득표율은 대구의 5.61%, 전남의 10.86%에도 한참 못 미치는 2.84%에 불과했다. 노동조합 기층의 실제 선거활동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상황전개를 되짚어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대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시민단체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민주노총이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선거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정치방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선거 시기 소속 조직과 조합원들의 정치활동 방향과 지침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각 지역 본부들이 선거연합 전술을 판단하는 데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였다. 즉 이번 선거에서의 이른바 야권연대, 민주대연합의 실제 내용이 후보연합전술을 의미하고,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각기 다른 판단을 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각 지역본부가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활동’과 ‘비공식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활동’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범공공부문 노조의 적극적 선거대응과 ‘보편적 복지’ 쟁점
산별노조들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에 많은 관심을 두고, 나아가 직간접적인 선거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곳은 단연,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각기 시국선언 참여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 노조활동에 대한 전면적 탄압이 지속되던 가운데, 민주노동당에 대한 후원금 납부를 빌미로 한 대대적인 징계가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징계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는 교육감과 광역단체장 및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노조탄압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선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면, 보건의료노조는 자신의 운동과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선거에 능동적으로 개입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일이년 전부터 쟁점화시켜 온 ‘보호자 없는 병실’을 비롯하여 의료민영화, 영리병원, 의료법 개악 반대를 정책요구로 내걸고 이를 수용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이들 세 노조의 선거활동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전제 하에서 ‘당선 가능한 후보’에 대한 지지·지원에 집중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 지지 경향이 강했던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민주노동당이 ‘민주대연합’에 가담하자, 공개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지원활동을 벌였다. 선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산별노조가 주로 범공공부문의 노조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공공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이 지속되고, 최근에는 노동조합을 아예 무력화시키려는 집중포화가 이어져 왔던 상황과 관련되는 문제다. 이러한 조건에서 기층의 대응력과 활동력이 축소·붕괴된 노조의 경우 상당한 타협과 정부가 제시하는 노동조합 노선에 대한 적응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사실상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은 이전 민주당 정부 집권시절에도 정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탄압 양상은 노조의 활동력이 상당 부문 붕괴된 가운데 그 ‘체감도’가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현재의 집중적인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선거나 정치권의 권한과 같은 제도적 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층의 활동력을 복구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공세적인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매우 우려스러운 결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이번 지방선거가 민주노총 특히 범공공부문 노조들 내에 이른바 ‘보편적 복지’ 쟁점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노총 내에서의 복지 관련 논의는 ‘사회연대전략’ 논쟁 당시의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 제안처럼 전사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확산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 담론, 그리고 그 정책과제로 기획·제기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실’ 사업,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 당시 예고편으로 등장하여 이제 본격적인 활동이 개시되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사업은 이전의 논쟁지형을 훨씬 초과하는 쟁점들을 내재하고 있다.(건강보험 하나로 쟁점은 이 책 중 ‘건강보험 하나로, 어떻게 볼 것인가’(최윤정, 김동근)를 참조하라) 보편적 복지 담론이 그 내용 면에서 몇 년 전 사회연대전략의 재판인 듯 보이지만, 그 주체나 추진 방식은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사회연대전략이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 내부에 복지 확대를 위한 정책적 우선순위나 경로창출 방식을 제안한 것이었다면(물론 좁은 의미에서 볼 때), 현재 제기되고 있고 특히 지방선거 이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보편적 복지 논의는 정치세력의 재편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 기획의 성격이 강하다. 즉 민주대연합 구도를 지속해 나가려는 민주당 개혁세력과 시민단체들에게 보편적 복지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과 제휴할 수 있는 유력한 매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이미 무상급식, 보호자 없는 병실, 기초노령 연금의 현실화 등 노동자운동 내의 복지 관련 요구를 상당부분 수렴하였다. 대부분의 정책과제들이 민주당의 기존 입장과는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것들이다. 선거 이후 민주대연합을 적극 추진했던 여러 정치세력들은 ‘보편적 복지’를 내건 다양한 시도를 활성화하고 있다. 이부영, 이수호, 주대환 등이 주축이 되어 최근 구성된 ‘(가칭)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대표적이다. 또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비롯하여 보편적 복지 담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그룹들은 지방선거 이후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책적 쟁점을 다루는 데 노동자운동이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지형과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복지확대에 대한 낙관적 기대나 개별 정책과제에 대한 지지 차원으로만 최근의 보편적 복지 논의에 접근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범공공부문 노조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시적인 입장과 활동을 드러내지 않은 공공노조의 경우 ‘보편적 복지’ 노선에 대한 지지 경향이 강한 만큼 현재와 같은 논의지형이 어떤 방향으로든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공공노조뿐 아니라, 지방선거에 비해 전국적 차원의 정책적 쟁점화가 더 용이한 총선, 대선 등 중앙선거 일정을 준비하면서 범공공부문 노동조합을 포섭, 순치하기 위한 개혁세력의 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전국적 정치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지역의 시민단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대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은 지역에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많은 지역에서 중앙의 5+4 연석회의에 소속된 시민단체과 계통성을 확보하면서 시민단체간 연대구조가 형성되고, 중앙의 활동을 모사하여 공동의 지역정책 의제를 제안하고 선거연합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중앙의 논의가 그러했듯 지역의 활동 역시 실제로는 진보정당, 야권후보들간의 후보연합전술을 중재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몇몇 지역에서는 ‘풀뿌리 정치 강화’를 기조로 지역의 진보적인 의제를 구축하고 진보진영 내부의 통합력에 근거한 유의미한 선거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오히려 예외적일 만큼 지역에서의 후보단일화 바람은 거셌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앙의 논의에 비해서 훨씬 통합력과 강제력 있는 후보연합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전국 최초의 ‘야권단일화’에 이어, 최초의 ‘수도권 진보정당 구청장 당선’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인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알려져 있듯이 인천은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 간의 ‘진보대연합’ 합의 역시 가장 최초로 이루어진 곳이다.) 지역 내의 정치구도, 정치세력간의 관계와 영향력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추상적인 원칙과 기준 중심의 중앙의 논의보다 후보조정 논의에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요컨대 시민단체들의 정치 활동은 낙천낙선운동이 꾸준히 진화해온 결과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연합, 그리고 후보 발굴 사업을 통한 자체 후보출마 등 과거 어느 선거보다 매우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추동한 동인은 과연 무엇일까? 이른바 ‘공동정부’ 구성 등을 내세우며 당선자 인수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통해 그 일단이 이미 드러났다. 또한 더욱 세부적인 양상은 앞으로 지방정부 운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개입방식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우선하여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과 자원에 관계된 문제다.
중앙의 시민단체들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정치적 협력관계가 이명박 정부 들어 해체된 이후 그를 상쇄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 기획을 추진해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지방선거를 압도한 몇몇의 정치적 단일 이슈 역시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경우 시민단체의 정치적 지위나 지방정부 및 개혁세력과 분점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 그리고 선점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정책이슈가 중앙에 비해 매우 협소하다. 또한 이러한 조건을 극복해 나갈 만한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역량도 대체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단적으로 촛불집회를 통해 쟁점화 된 정치적·정책적 의제들이 지역 차원에서는 좀처럼 대중적으로 확장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의 시민단체들 대부분은 일관된 운동노선을 정립하지 못하고, ‘풀뿌리 자치운동-지역적 의제개발’과 ‘정책적 개입 중심의 상층운동’ 사이를 실용적으로 오간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지방정부 수권이 장기화되고 이명박 정부 집권 아래서 시민단체들의 활동기반은 점차 축소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
이러한 조건에서 시민단체들이 유용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운동경로는 중앙으로부터 형성되는 전국적 구도와 정치적 쟁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차원에서 지방정부를 비롯한 제도적 영역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주력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 시민단체의 그러한 활동방식과 정치적 지향이 결합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제공했다.
이른바 민주대연합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단호한 태도와 입장
앞서 짚은 내용들은 민주노총이 이번 지방선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 주요 쟁점에 대한 평가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구조적인 문제와 운동 과제에 대한 평가가 심도 깊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쟁점들이 포함될 것이다. 우선 민주노총이 근 십여 년에 걸쳐 추진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현재적 진단과 평가는 어떠한가? 이번 지방선거는 진보정당의 양적 성장, 선거활동 중심으로 추진되어온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분당이라는 정치적 조건 아래서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계기였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어떠한 정치세력화운동인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며,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사회운동 조직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시 놓칠 수 없는 쟁점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운동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영향력과 정치적 지위는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사회운동 조직은 극도의 무기력, 무능력을 드러냈다. 지역의 정치자원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분점하기 위한 시민단체 주도의 활동경향과 단절하고, 지역 노동자운동, 사회운동 정치력을 강화하는 운동 전략에 대한 모색이 다시금 본격화되어야 한다.
셋째, 노동자 운동, 사회운동의 운동과제들이 자유주의적 정치쟁점에 포섭되거나 억압되지 않기 위한 정치적 기획과 대응역량의 구축이라는 과제가 있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노동권의 요구를 정치 쟁점화하기 위한 더욱 공세적인 운동기획은 물론, 개혁주의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는 정책적 이슈를 다룰 때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부차화하거나 분리하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모색되어야 한다.
결국 이와 같은 쟁점과 과제는 이른바 ‘민주대연합’, 그리고 그 실체로서 제안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사회개혁과 정치재편 논의에 대한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할 것이냐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로 간의 크지 않은 차이를 과장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쟁점들을 은폐·축소하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일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단호한 비판이 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그 과정과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낼 효과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 선거 직후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완주를 두고 형성된 여론지형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전주곡처럼 들린다. 선거전술로서 진보대연합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운동의 독자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포함하는 주장들도 이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대연합 구도가 형성되는 데 기여했던 정치적ㆍ정책적 쟁점들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시도들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이미 드러났듯이, 이와 같은 정치지형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운동방향이 민주대연합을 넘어서려는 시도에 대해 상당한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 평가는 향후 전개될 정세와 정치지형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국적 구도와 몇 개의 단일 이슈 중심의 ‘신자유주의 네거티브 선거’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대체로 민주당의 완승, 한나라당의 대패로 요약된다.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은 7석, 정당 비례대표 35.1%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6석, 정당 비례대표 39.8%를 얻었다. 그리고 친민주당 성향 무소속 후보가 경남과 제주 광역단체장으로 당선되었다. 의석수만으로는 아주 큰 차이가 아니지만, 이전 지방정부 수권정당이 한나라당 일색이었던 현실에 비추어 상당한 변화라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과거의 지방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1개 지방정부를 수권하였다. 민주당이 광주와 전남 두 곳을, 열린우리당이 전북 한 곳을 수권하였고, 제주는 무소속 당선이었다. 의석수만 놓고 보자면, 이번 선거에 비할 데 없는 한나라당의 완승이었다.
또한 2002년의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직선제가 본격화된 1987년 이후 치러진 모든 종류의 선거를 망라하여 가장 큰 폭의 표차를 만들며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광역단체장 선거를 통해 획득한 표는 총 880만 표로 487만 표를 얻은 민주당을 393만 표만큼 앞섰다. 그 결과 광역단체장 의석은 한나라당 11석, 민주당 4석, 자유민주연합 1석으로 배분되었다. 2002년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정당 투표를 기준으로 해도 한나라당은 859만 표, 민주당은 479만 표로 380만 표 차를 벌였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정작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방선거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몇 가지 경향성이다. 우선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단연 우세하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도 정권심판론이 회자되는데, 이는 이번 선거에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역대 총선결과를 함께 놓고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며, 특히 정권 말기에 선거가 치러질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이 투표성향이 일관되게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2년 선거가 가장 대표적이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같은 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정권심판론은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의 주도력을 확인해 주기보다는, 대중의 일관된 정치적 경향성이 해체되고 정치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를 규정할 만한 고유한 특징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과거의 지방선거는 대체로 집권정당 심판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지역별 발전전략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몇 개의 단일이슈 중심의 전국적 구도가 유지되었다. 물론 각 지역마다 특수한 지역적 쟁점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세종시 논란 등 몇 개의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전국적 구도가 확고하게 짜인 것이 이번 지방선거였다. 전국적 쟁점에 근거해 오히려 지역적 쟁점이 확장되기도 했는데,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사회운동의 고민을 돌아보면 이와 같은 차이는 명확해진다. 당시 사회운동의 활동은 한미 FTA 반대운동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회운동 주체들이 선거공간을 활용하여 이러한 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역별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선거지형 속에서 전국적 사안을 쟁점화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차이는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 이슈, 그리고 선거구도의 정치적 성격을 말해준다.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집회·시위의 자유(서울광장)란 쟁점은 민주당과 개혁주의 세력들의 입장에서 한나라당과는 평행선을 달리는 정치적 소재지만, 진보진영과도 이미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반면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 파병문제, 노동법 개악 등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입장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일말의 공유지반도 없는 수많은 이슈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것도 쟁점화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그리 많지 않은 정책적 차이가 매우 과장·극대화된 신자유주의 세력들간의 네거티브 선거였다고 집약해 볼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근거를 더 보태자면 선거의 속성상 집권여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위해 빠질 수 없었던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문제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이는 경제위기가 쟁점화되는 순간 민주당이 내놓을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선거구도는 민주당과 개혁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들에 의해 기획·주도되었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구성된 5+4 연석회의에서 선거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정책적 의제들을 ‘필터링’했던 과정을 상기해보자.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를 민주당이 거부하여 협상이 지체될 때마다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중재자를 자임했다. 그러나 중재의 내용은 번번이 민심을 명분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주문이었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역설적 지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현장의 정치활동 붕괴, 정치방침 수립의 어려움이 항상 거론되어 왔다. 그를 극복하기 위한 취지로 진보정당 대통합운동이 작년부터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민주노총의 대응은 혼란과 무기력 그 자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올 3월 경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수많은 논쟁과 수정 과정을 거쳐 5월 중순 경 최종 확정되었다.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쟁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가 복수 출마할 경우, 특히 그 중에 진보정당의 후보가 독자출마와 ‘반MB연합 후보’로 나뉠 경우의 방침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논의는 5+4 연석회의의 합의사항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기초의원이나 비례의원의 경우 복수의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추천, 지지를 열어두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외 부문의 경우 양쪽 모두 지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민주당 후보인 반MB연대 후보 지지를 열어두는 방향으로 정치방침을 수정해 나갔다. 이러한 방침 아래서 진보정당 통합을 위한 서약서나 광역단체장 복수 출마의 경우 조합원에 한해 지지후보로 결정한다는 단서조항은 형식적인 의미 이상을 가지질 수 없었으며, 실제로 각 지역에서 쉽게 무력화되었다.
민주노총후보, 지지후보 선정 기준 (5월 13일 중집 최종확정)
1) 본 후보 등록 전까지 진보정당 통합(추진)을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하는 정당의 후보이어야 함.
- 6차 중집에서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하는 정당’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정함.
2) 위 1)에 해당하는 소속의 진보정당 후보로서 진보정당 통합과 큰 틀의 진보정당 건설에 동의하고 실천한다는 ‘후보서약서’를 쓴 자.
3) 동일선거구 복수출마일 경우, 후보단일화 절차에 따라 선출된 자
- 통합추진을 공식화한 정당으로 선정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본 후보 등록 전까지 전 지역에서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는 질의공문을 보내 각 당의 입장을 확인하고 단일화를 촉구한다.
- 6.2 지방선거 방침 결정 정신에 의하여, 지역본부가 주도하여 후보단일화 방안을 제시하여 본 후보 등록 전까지 후보단일화를 완료한다. 단 후보단일화가 되지 않을 경우 양 후보 모두 지지 하지 않는다.
4) 교육자치 후보는 가맹 및 산하조직이 추천한 자
5) 비례대표의 경우,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단일후보일 경우 민주노총 후보/지지후보로 결정한다. 단, 양 진보정당의 복수출마의 경우에도, 민주노총 소속 현장내의 선거운동을 보장하기로 함.
6) 기초의원의 경우 복수출마라 하더라도 지역의 조건에 따라 민주노총 후보/지지후보 결정에 대해서는, 지역의 판단에 맡기는 것으로 함.
7) 5월13일 10차 중집 이후에라도, 단일화를 이룬 경우에는 민주노총 후보/지지후보로 하기로 함.
8) 진보정당이 포함되어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바 진보정당의 반MB연대와 (단일화 하지 않은) 진보정당의 후보가 양립한 경우, 확정된 심의기준 3)항을 준용하여 민주노총 후보/지지후보로 보지 아니한다. 단 민주노총의 조합원인 경우는 예외로 한다.
이러한 정치방침이 사실상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다는 사실은 민주노총 지역본부마다 지지후보가 결정된 과정이나 실제 진행된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16개 광역단체장 후보에 대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이 세 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결정한 지역 5곳(강원, 경기, 경북, 전남, 충북), 복수 출마로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지역 7곳(광주, 대구, 대전, 서울, 울산, 인천, 전북), 마지막으로 지지후보가 없는 곳(경남, 부산, 제주, 충남). 이 중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두 번째 그룹은 대부분 진보신당이 독자 출마를 한 지역이다. 그리고 지지후보가 없는 지역은 대부분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모두 출마하지 않은 지역이다.
지지후보를 결정한 첫 번째 경우도 내막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경기의 경우 민주노총 경기본부가 심상정 후보 지지를 형식적으로는 결정했으나, 실제로는 정책협약식을 통해 유시민 후보를 지지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강원의 경우 민주노동당 후보가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결정되었으나 중도 사퇴하여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였다. 그리고 대구와 전남의 경우 민주노동당 후보가 지지후보로 결정되었으나, 알다시피 이들 지역은 민주노동당의 독자출마가 전체 선거 판세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곳들이다. 따라서 온전한 의미에서의 민주노총 지지후보는 충북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충북의 경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3개 진보정당이 합의를 통해 진보신당의 후보를 단일후보로 추대하였고 민주노총 충북본부도 지지후보로 승인하였다. 그러나 실제 득표율은 대구의 5.61%, 전남의 10.86%에도 한참 못 미치는 2.84%에 불과했다. 노동조합 기층의 실제 선거활동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상황전개를 되짚어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대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시민단체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민주노총이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선거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정치방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선거 시기 소속 조직과 조합원들의 정치활동 방향과 지침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각 지역 본부들이 선거연합 전술을 판단하는 데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였다. 즉 이번 선거에서의 이른바 야권연대, 민주대연합의 실제 내용이 후보연합전술을 의미하고,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각기 다른 판단을 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각 지역본부가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활동’과 ‘비공식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활동’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범공공부문 노조의 적극적 선거대응과 ‘보편적 복지’ 쟁점
산별노조들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에 많은 관심을 두고, 나아가 직간접적인 선거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곳은 단연,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각기 시국선언 참여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 노조활동에 대한 전면적 탄압이 지속되던 가운데, 민주노동당에 대한 후원금 납부를 빌미로 한 대대적인 징계가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징계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는 교육감과 광역단체장 및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노조탄압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선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면, 보건의료노조는 자신의 운동과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선거에 능동적으로 개입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일이년 전부터 쟁점화시켜 온 ‘보호자 없는 병실’을 비롯하여 의료민영화, 영리병원, 의료법 개악 반대를 정책요구로 내걸고 이를 수용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이들 세 노조의 선거활동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전제 하에서 ‘당선 가능한 후보’에 대한 지지·지원에 집중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 지지 경향이 강했던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민주노동당이 ‘민주대연합’에 가담하자, 공개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지원활동을 벌였다. 선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산별노조가 주로 범공공부문의 노조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공공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이 지속되고, 최근에는 노동조합을 아예 무력화시키려는 집중포화가 이어져 왔던 상황과 관련되는 문제다. 이러한 조건에서 기층의 대응력과 활동력이 축소·붕괴된 노조의 경우 상당한 타협과 정부가 제시하는 노동조합 노선에 대한 적응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사실상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은 이전 민주당 정부 집권시절에도 정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탄압 양상은 노조의 활동력이 상당 부문 붕괴된 가운데 그 ‘체감도’가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현재의 집중적인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선거나 정치권의 권한과 같은 제도적 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층의 활동력을 복구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공세적인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매우 우려스러운 결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이번 지방선거가 민주노총 특히 범공공부문 노조들 내에 이른바 ‘보편적 복지’ 쟁점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노총 내에서의 복지 관련 논의는 ‘사회연대전략’ 논쟁 당시의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 제안처럼 전사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확산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 담론, 그리고 그 정책과제로 기획·제기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실’ 사업,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 당시 예고편으로 등장하여 이제 본격적인 활동이 개시되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사업은 이전의 논쟁지형을 훨씬 초과하는 쟁점들을 내재하고 있다.(건강보험 하나로 쟁점은 이 책 중 ‘건강보험 하나로, 어떻게 볼 것인가’(최윤정, 김동근)를 참조하라) 보편적 복지 담론이 그 내용 면에서 몇 년 전 사회연대전략의 재판인 듯 보이지만, 그 주체나 추진 방식은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사회연대전략이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 내부에 복지 확대를 위한 정책적 우선순위나 경로창출 방식을 제안한 것이었다면(물론 좁은 의미에서 볼 때), 현재 제기되고 있고 특히 지방선거 이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보편적 복지 논의는 정치세력의 재편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 기획의 성격이 강하다. 즉 민주대연합 구도를 지속해 나가려는 민주당 개혁세력과 시민단체들에게 보편적 복지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과 제휴할 수 있는 유력한 매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이미 무상급식, 보호자 없는 병실, 기초노령 연금의 현실화 등 노동자운동 내의 복지 관련 요구를 상당부분 수렴하였다. 대부분의 정책과제들이 민주당의 기존 입장과는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것들이다. 선거 이후 민주대연합을 적극 추진했던 여러 정치세력들은 ‘보편적 복지’를 내건 다양한 시도를 활성화하고 있다. 이부영, 이수호, 주대환 등이 주축이 되어 최근 구성된 ‘(가칭)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대표적이다. 또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비롯하여 보편적 복지 담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그룹들은 지방선거 이후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책적 쟁점을 다루는 데 노동자운동이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지형과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복지확대에 대한 낙관적 기대나 개별 정책과제에 대한 지지 차원으로만 최근의 보편적 복지 논의에 접근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범공공부문 노조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시적인 입장과 활동을 드러내지 않은 공공노조의 경우 ‘보편적 복지’ 노선에 대한 지지 경향이 강한 만큼 현재와 같은 논의지형이 어떤 방향으로든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공공노조뿐 아니라, 지방선거에 비해 전국적 차원의 정책적 쟁점화가 더 용이한 총선, 대선 등 중앙선거 일정을 준비하면서 범공공부문 노동조합을 포섭, 순치하기 위한 개혁세력의 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전국적 정치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지역의 시민단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대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은 지역에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많은 지역에서 중앙의 5+4 연석회의에 소속된 시민단체과 계통성을 확보하면서 시민단체간 연대구조가 형성되고, 중앙의 활동을 모사하여 공동의 지역정책 의제를 제안하고 선거연합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중앙의 논의가 그러했듯 지역의 활동 역시 실제로는 진보정당, 야권후보들간의 후보연합전술을 중재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몇몇 지역에서는 ‘풀뿌리 정치 강화’를 기조로 지역의 진보적인 의제를 구축하고 진보진영 내부의 통합력에 근거한 유의미한 선거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오히려 예외적일 만큼 지역에서의 후보단일화 바람은 거셌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앙의 논의에 비해서 훨씬 통합력과 강제력 있는 후보연합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전국 최초의 ‘야권단일화’에 이어, 최초의 ‘수도권 진보정당 구청장 당선’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인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알려져 있듯이 인천은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 간의 ‘진보대연합’ 합의 역시 가장 최초로 이루어진 곳이다.) 지역 내의 정치구도, 정치세력간의 관계와 영향력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추상적인 원칙과 기준 중심의 중앙의 논의보다 후보조정 논의에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요컨대 시민단체들의 정치 활동은 낙천낙선운동이 꾸준히 진화해온 결과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연합, 그리고 후보 발굴 사업을 통한 자체 후보출마 등 과거 어느 선거보다 매우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추동한 동인은 과연 무엇일까? 이른바 ‘공동정부’ 구성 등을 내세우며 당선자 인수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통해 그 일단이 이미 드러났다. 또한 더욱 세부적인 양상은 앞으로 지방정부 운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개입방식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우선하여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과 자원에 관계된 문제다.
중앙의 시민단체들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정치적 협력관계가 이명박 정부 들어 해체된 이후 그를 상쇄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 기획을 추진해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지방선거를 압도한 몇몇의 정치적 단일 이슈 역시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경우 시민단체의 정치적 지위나 지방정부 및 개혁세력과 분점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 그리고 선점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정책이슈가 중앙에 비해 매우 협소하다. 또한 이러한 조건을 극복해 나갈 만한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역량도 대체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단적으로 촛불집회를 통해 쟁점화 된 정치적·정책적 의제들이 지역 차원에서는 좀처럼 대중적으로 확장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의 시민단체들 대부분은 일관된 운동노선을 정립하지 못하고, ‘풀뿌리 자치운동-지역적 의제개발’과 ‘정책적 개입 중심의 상층운동’ 사이를 실용적으로 오간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지방정부 수권이 장기화되고 이명박 정부 집권 아래서 시민단체들의 활동기반은 점차 축소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
이러한 조건에서 시민단체들이 유용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운동경로는 중앙으로부터 형성되는 전국적 구도와 정치적 쟁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차원에서 지방정부를 비롯한 제도적 영역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주력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 시민단체의 그러한 활동방식과 정치적 지향이 결합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제공했다.
이른바 민주대연합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단호한 태도와 입장
앞서 짚은 내용들은 민주노총이 이번 지방선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 주요 쟁점에 대한 평가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구조적인 문제와 운동 과제에 대한 평가가 심도 깊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쟁점들이 포함될 것이다. 우선 민주노총이 근 십여 년에 걸쳐 추진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현재적 진단과 평가는 어떠한가? 이번 지방선거는 진보정당의 양적 성장, 선거활동 중심으로 추진되어온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분당이라는 정치적 조건 아래서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계기였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어떠한 정치세력화운동인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며,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사회운동 조직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시 놓칠 수 없는 쟁점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운동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영향력과 정치적 지위는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사회운동 조직은 극도의 무기력, 무능력을 드러냈다. 지역의 정치자원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분점하기 위한 시민단체 주도의 활동경향과 단절하고, 지역 노동자운동, 사회운동 정치력을 강화하는 운동 전략에 대한 모색이 다시금 본격화되어야 한다.
셋째, 노동자 운동, 사회운동의 운동과제들이 자유주의적 정치쟁점에 포섭되거나 억압되지 않기 위한 정치적 기획과 대응역량의 구축이라는 과제가 있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노동권의 요구를 정치 쟁점화하기 위한 더욱 공세적인 운동기획은 물론, 개혁주의 세력들에 의해 주도되는 정책적 이슈를 다룰 때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부차화하거나 분리하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모색되어야 한다.
결국 이와 같은 쟁점과 과제는 이른바 ‘민주대연합’, 그리고 그 실체로서 제안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사회개혁과 정치재편 논의에 대한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할 것이냐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로 간의 크지 않은 차이를 과장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쟁점들을 은폐·축소하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일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단호한 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