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숭배와 핵 폐기 운동
핵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 정의로운 세계,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국제회의 보고서
각국 정부 대표는 2010년 5월 3일부터 5월 28일까지 뉴욕 국제연합에서 개최된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에 참가했다. 하지만 이때 정부 대표들만 뉴욕에 집결했던 것이 아니다. 공식 NPT 평가회의가 열리기 직전 주말 동안 핵 폐기 운동가들이 <핵 없는 세계, 평화로운 세계, 정의로운 세계,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국제회의>(2010년 4월 30일~5월 1일)를 조직했다. 국제회의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렸다. 8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이틀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과 전체토론에 참석했다. 미국의 주최자와 국제기획위원회는 유럽과 아시아의 활동가를 참가시키기 위해 노력했고(국제 참가자를 우선 배려했다), 야심찬 의제를 설정했다. <미국친우봉사회>(AFSC)의 평화안보 프로그램 국장이자 국제회의를 조직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맡았던 조셉 거슨은 회의 첫째 날 총회에서 이번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윤곽을 제시했다. 1) 핵무기 폐지 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분석을 공유하고 NPT 평가회의 대응책을 조율하고 장기적인 운동 건설 전략을 계획한다. 2) 핵무기 폐지를 위한 운동과 평화, 경제정의, 환경의 지속성을 위한 운동과 통합한다. 3) NPT 평가회의가 <핵무기협약> 협상에 동의하도록 촉구한다. 이 글은 국제 핵 폐기 운동의 강점과 약점, 잠재력을 검토하기 위해서 국제회의에서 제시된 주요 내용을 요약할 것이다.
개막 총회
국제회의는 4월 30일 개막 총회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 비니 버로우즈는 킹 목사가 1964년에 오슬로 대학에서 행한 연설을 인용하며 회의 분위기를 띄웠다. “정신적 도덕적 후진성은 현대 인류가 처한 최고의 딜레마다. 이는 더 큰 세 가지 문제로 표현된다. 각각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그것은 인종적 부정의, 빈곤, 전쟁이다.” 그녀의 깊은 목소리는 킹 목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낭독을 마친 후 리버사이드 교회의 아놀드 토마스 목사는 참가자를 환영하면서 킹 목사의 신념이었던 비폭력 원칙을 환기시켰다. 그는 비폭력 문화를 고취하는 것이야말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달성하는 열쇠라고 제시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테루니 타나카는 나가사키 핵폭격의 생존자로서의 경험과 미국 핵폭격의 사후 효과로 죽거나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 시민들의 곤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핵무기의 잔학성’을 고발하면서 그가 속한 단체가 <핵무기협약>을 지지한다고 천명했고 NPT 국가들이 2000년 평가회의에서 그 개요가 제시된 ‘13단계 핵군축 실질조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의 집행국장인 존 버로우즈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 보유고를 감축하기 위해 합의한 최근 조치와 NPT 체제에 대한 일반적 비판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가 비(非)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예방적인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했고, 양국의 핵무기 준비태세는 거의 변함이 없으며, 양국이 ‘3원 핵전력’(전략폭격기, 지상발사 미사일, 핵미사일 잠수함)을 현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NPT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 각각에 적용되는 이중기준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으며, 핵보유국이 핵군축을 해야 한다는 임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없다. 핵을 보유하지만 NPT 참가국이 아닌 국가를 고려하면 더 큰 모순이 존재한다. 핵물질을 거래하는 인도는 NPT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예외로 인정되지만, NPT 가입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조사가 가해지고 있다. 버로우즈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가 개발한 <핵무기협약> 모델에는 단 하나의 기준, 즉 핵무기의 비보유라는 기준만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첫 날의 가장 흥미로운 발표는 프린스턴 대학의 <동남아시아 평화안보 프로젝트> 국장인 지아 미안의 발표 ‘핵무기, 자본주의,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맞서다’였다. 미안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핵무기는 세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덜 중요하다”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이 핵 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연간 50억 달러를 지출하지만 이는 전체 국방예산의 10%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위기 시기에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려면 핵 예산을 삭감해야할 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고 전쟁 체제를 전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과 금융규제는 현상유지를 의미할 뿐이며 경제위기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은 아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재분배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불평등에 맞서는 것이다. 핵무기 문제로 돌아와서 미안은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우리의 투쟁은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나 일부 핵탄두의 감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NPT 6조(핵군축)의 이행에 대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군사력, 권력, 폭력에 대한 것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에 대한 것이다.”
미안의 발표는 핵 감축이란 문제를 군사주의나 경제위기와 같은 더 폭넓은 이슈와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하지만 전쟁과 인종주의, 경제적 부정의의 상호관련성을 분석한 미안의 발표보다는 핵무기를 도덕성의 문제로 다루는 (즉 인도주의 대 비인도주의) 타나카의 발표나 킹의 비폭력 원칙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맞춘 토마스의 발표가 회의의 전반적 분위기를 지배했다.
워크숍
이튿날 오전과 오후에 여러 워크숍이 동시에 개최되었다. 그 중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참여한 두 개의 워크숍을 소개한다.
핵억지를 폭로하자
이 워크숍은 ‘핵억지’라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하고자 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핵시대평화재단>(미국)의 데이비드 크리거는 핵억지 개념이란 보복 위협이 적국의 공격을 중지시킬 것이라는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억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복 위협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하며, 상대방이 그 위협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위협을 당하는 자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논리에는 결함이 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필요조건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나 특히 테러리스트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는 핵보복 위협에 항상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그는 미국이 핵위협 위계의 최상층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미국이 “위협을 멈추면 다른 어떤 누구도 핵억지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국제연합 핵군축국의 정무관 랜디 라이델은 그가 생각하기에 반핵운동가가 활용할 수 있는 국제연합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국제연합 헌장이 1) 군축, 2) 군비통제, 3) 갈등 조정을 요청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46년 국제연합은 군축을 화학무기, 핵무기, 생물학무기의 제거로 정의했다. 그는 문제가 군축 약속의 결여가 아니라 구체적인 조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하부구조의 결핍이라고 말했다. 국가들은 평화 전담 부서를 필요로 하며 NPT는 그것을 운영하기 위한 관리기구를 필요로 한다. 워크숍 전반에 걸쳐 발표자와 사회자는 핵억지 개념이 ‘물신’(맹목적 숭배대상)이라고 칭했다. 핵 물신은 미국과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 핵 프로그램을 합리화하면서 대량파괴의 실질적 가능성을 은폐한다.
NPT를 넘어서: 핵 폐기 운동의 건설 전략
이 워크숍에는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온 발표자가 참여했고, 그들은 각 국가의 핵 프로그램 상태와 반핵운동가의 요구에 대해 토론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일본 원수폭금지국민회의(원수금)에서 온 나가히사 와다와 원수폭금지협의회(원수협)에서 온 히로시 타카였다. 와다는 과거 미국의 핵폭격과 현재 일본 전역에서 가동 중인 53개 핵발전소가 건강과 환경에 끼친 지속적 영향을 폭로하며 일본 운동의 요구를 소개했다. 반면 타카는 미국정부가 핵군축을 주도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미국 활동가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며 핵 폐지를 위한 풀뿌리 조직과 정부의 협력을 포함하는 국제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는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을 수용한 것이 일본의 비핵 3원칙(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일본 영토 내로 반입하지 않는다) 정신과 모순된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에 이어 프랑스 <평화운동>의 피에르 비이야르와 영국 <핵군축을 위한 캠페인>의 데이비드 웹은 유럽과 세계에서 진행 중인 핵군축의 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이야르는 오바마 정부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은 과거 미국 행정부에 비해 상당한 변화를 의미하며 NPT 평가회의 내에서 중동 비핵지대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군축을 지원하고 최근의 긍정적 변화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광범위한 대중교육 프로그램을 주창했다. 데이비드 웹은 영국 정치 내에서 핵무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록 최근에 영국 의회는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폐기하는 대신에 이를 대체하는 신규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지만, 영국과 유럽연합 의회 내에서 새로운 핵무기 체계 창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정 강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평화행동>(미국)의 케빈 마틴은 핵 폐기 운동을 위해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일단은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이 비준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조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요구를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1) 핵무기 복합체에 대한 재정지원의 축소, 2) 일방적 무기 감축을 위한 행정명령, 3) 핵무기 경계태세의 완화, 4) 중동 비핵지대에 대한 미국의 지지. 마틴은 다른 발표자에 비해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지만 그의 발언을 대체로 미국 활동가와 연관된 것이었다.
불행히도 워크숍 동안에 지역을 넘어서 연대를 구축하고 공동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참가자가 다양했지만 국제회의 전반에서 이런 취약성이 드러났다. 몇몇 개인이 국제총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프랑스, 인도, 이스라엘, 한국의 전쟁 상황이나 핵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검토했지만 그 형식은 심도 깊은 분석이나 국제운동의 건설을 위한 의미 있는 대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폐막 총회
국제회의의 마지막 행사는 폐막 총회였다. 폐막 총회에서는 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 국제평화위원회 의장인 소코로 고메즈, 히로시마 시장 타다토시 아키바를 포함한 몇몇 연사들이 800명의 참석자를 앞에 두고 연설을 했다. 회의 주최자와 여러 참가자가 볼 때 폐막총회와 회의 전체의 하이라이트가 반기문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비핵화를 위한 참석자들의 활동에 찬사를 보내며 발언을 시작했다. “나는 인류의 가장 숭고한 소망, 곧 세계 평화를 말하고 그것을 위해 항의하고 그 기치를 표방하는 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오늘 밤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이어서 NPT 체제에 찬사를 보냈다. “NPT는 40년 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그 후로 NPT는 비확산 체제와 우리의 핵군축 노력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단지 몇 개 국가만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NPT가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덕이 매우 컸습니다.” 그는 이어서 미국에 찬사를 보냈다. “예를 들면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비핵국가가 NPT를 준수하는 한 핵무기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맹세했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비판한 후 청중에게 “여러분의 훌륭한 활동을 지속하시고 앞으로도 양심의 소리가 되어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며 연설을 마쳤다. 그의 연설은 모든 청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한국 참가자들만 제외한다면.
소코로 고메즈는 반기문 총장 바로 다음에 연사로 나섰고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었다. 핵 폐기를 위한 투쟁은 “기본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녀는 NPT의 특징이 “불균형과 불평등”이라고 비판했고, NPT가 군축과 핵에너지 이용의 위험성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NPT 체제가 사실상 핵무기 독점을 동결했고, 핵군축이라는 약속은 단순한 치장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의 한계와 미국이 발표한 글로벌 신속타격 프로그램을 더욱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녀는 이란과 북한이 제국주의적 의도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적인 혐의를 받고 있지만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한 범죄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메즈의 발표는 반기문의 연설이 보여준 오류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녀는 NPT를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적법한 구조로 간주하는 것이나, NPT가 국가들의 재래식 전력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불균형을 함께 다루지 않고 핵무기의 폐기를 모색하는 것이나, 미국의 세계적 군사 지배를 고려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회의 주최자가 반기문의 연설 바로 뒤의 발표자로 고메즈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총회 사회자는 두 연설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고메즈는 기립박수를 받지 않았다.
평가
국제회의는 몇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 NPT 평가회의 개막을 앞두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요구하는 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특히 국제회의가 끝난 후 5월 2일 약 15,0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대중시위가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둘째, 국제회의가 국제기획위원회에 의해 조직되었고 이 회의에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국제 협력에서 드문 사례다.(최소한 미국 운동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마지막으로 국제회의는 활동가들이 핵무기 프로그램과 다양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다만, 두 가지 약점에는 주목해야 한다. 첫째, 큰 규모의 비정부기구(NGO)와 연구소가 과잉 대표되었고 핵시설이나 핵정책에 대항해 현장 조직화를 수행하는 풀뿌리 집단의 대표성이 부족했다. 이는 운동 행위자가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취해야 할 활동을 국제연합과 NPT 평가회의의 틀 내로 제한시킨다. 풀뿌리 운동의 대표성 부족은 국제회의의 형식 문제와 함께 운동 건설 전략에 관한 구체적인 대화를 어렵게 했다.
둘째, 핵무기에 대한 비판을 군사주의에 대한 더 광범위한 분석에 결합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발표자들 사이에서 불균등했고 전반적으로 불충분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하여 핵무기 보유 국가의 군사적 지배를 통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해 누구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의 결핍은 핵 폐기 운동을 더 광범위한 평화운동 또는 현재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위해 벌어지는 투쟁과 연결시키기 위한 논의를 어렵게 했다.
결론
첫 번째 워크숍에서 몇몇 발표자는 ‘핵억지’가 물신이고, 미국과 영국이 안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핵무기 개발을 통해 벌어지는 현실적 위협을 은폐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물신숭배 비판은 중요하며, 핵 폐기 운동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운동 내에서는 핵무기를 국가 간 이해관계나 군사지배 체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하기보다는 핵무기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로 보는 두드러진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향이 국제회의에서 보편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지배적 흐름이었고, 이틀간에 벌어진 대화의 효과성을 제한했다.
핵무기 숭배를 비판하는 것은 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냐는 문제와 관계없이 대량 살상과 파괴를 위해 고안된 핵무기의 근본적 부도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지아 미안이 지적했듯이, “군사력, 권력, 폭력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는 것”이다. 남한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비핵화 요구가 남한의 대북 적대 정책의 종결, 남한 국방예산의 감축,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의 제거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핵우산의 제거 요구는 남한, 미국, 일본의 전략적 군사동맹 비판이라는 맥락 속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핵 폐기 운동은 더 광범위한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개막 총회
국제회의는 4월 30일 개막 총회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평화운동가 비니 버로우즈는 킹 목사가 1964년에 오슬로 대학에서 행한 연설을 인용하며 회의 분위기를 띄웠다. “정신적 도덕적 후진성은 현대 인류가 처한 최고의 딜레마다. 이는 더 큰 세 가지 문제로 표현된다. 각각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그것은 인종적 부정의, 빈곤, 전쟁이다.” 그녀의 깊은 목소리는 킹 목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낭독을 마친 후 리버사이드 교회의 아놀드 토마스 목사는 참가자를 환영하면서 킹 목사의 신념이었던 비폭력 원칙을 환기시켰다. 그는 비폭력 문화를 고취하는 것이야말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달성하는 열쇠라고 제시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테루니 타나카는 나가사키 핵폭격의 생존자로서의 경험과 미국 핵폭격의 사후 효과로 죽거나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 시민들의 곤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핵무기의 잔학성’을 고발하면서 그가 속한 단체가 <핵무기협약>을 지지한다고 천명했고 NPT 국가들이 2000년 평가회의에서 그 개요가 제시된 ‘13단계 핵군축 실질조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의 집행국장인 존 버로우즈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 보유고를 감축하기 위해 합의한 최근 조치와 NPT 체제에 대한 일반적 비판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가 비(非)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예방적인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했고, 양국의 핵무기 준비태세는 거의 변함이 없으며, 양국이 ‘3원 핵전력’(전략폭격기, 지상발사 미사일, 핵미사일 잠수함)을 현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NPT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 각각에 적용되는 이중기준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으며, 핵보유국이 핵군축을 해야 한다는 임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없다. 핵을 보유하지만 NPT 참가국이 아닌 국가를 고려하면 더 큰 모순이 존재한다. 핵물질을 거래하는 인도는 NPT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예외로 인정되지만, NPT 가입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조사가 가해지고 있다. 버로우즈는 <핵정책에 관한 법률가 위원회>가 개발한 <핵무기협약> 모델에는 단 하나의 기준, 즉 핵무기의 비보유라는 기준만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첫 날의 가장 흥미로운 발표는 프린스턴 대학의 <동남아시아 평화안보 프로젝트> 국장인 지아 미안의 발표 ‘핵무기, 자본주의,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맞서다’였다. 미안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핵무기는 세 가지 문제 중에서 가장 덜 중요하다”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이 핵 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연간 50억 달러를 지출하지만 이는 전체 국방예산의 10%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위기 시기에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려면 핵 예산을 삭감해야할 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고 전쟁 체제를 전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과 금융규제는 현상유지를 의미할 뿐이며 경제위기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은 아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재분배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불평등에 맞서는 것이다. 핵무기 문제로 돌아와서 미안은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우리의 투쟁은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나 일부 핵탄두의 감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NPT 6조(핵군축)의 이행에 대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군사력, 권력, 폭력에 대한 것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에 대한 것이다.”
미안의 발표는 핵 감축이란 문제를 군사주의나 경제위기와 같은 더 폭넓은 이슈와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하지만 전쟁과 인종주의, 경제적 부정의의 상호관련성을 분석한 미안의 발표보다는 핵무기를 도덕성의 문제로 다루는 (즉 인도주의 대 비인도주의) 타나카의 발표나 킹의 비폭력 원칙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맞춘 토마스의 발표가 회의의 전반적 분위기를 지배했다.
워크숍
이튿날 오전과 오후에 여러 워크숍이 동시에 개최되었다. 그 중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참여한 두 개의 워크숍을 소개한다.
핵억지를 폭로하자
이 워크숍은 ‘핵억지’라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하고자 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핵시대평화재단>(미국)의 데이비드 크리거는 핵억지 개념이란 보복 위협이 적국의 공격을 중지시킬 것이라는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억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복 위협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하며, 상대방이 그 위협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위협을 당하는 자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논리에는 결함이 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필요조건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나 특히 테러리스트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는 핵보복 위협에 항상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그는 미국이 핵위협 위계의 최상층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미국이 “위협을 멈추면 다른 어떤 누구도 핵억지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국제연합 핵군축국의 정무관 랜디 라이델은 그가 생각하기에 반핵운동가가 활용할 수 있는 국제연합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국제연합 헌장이 1) 군축, 2) 군비통제, 3) 갈등 조정을 요청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46년 국제연합은 군축을 화학무기, 핵무기, 생물학무기의 제거로 정의했다. 그는 문제가 군축 약속의 결여가 아니라 구체적인 조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하부구조의 결핍이라고 말했다. 국가들은 평화 전담 부서를 필요로 하며 NPT는 그것을 운영하기 위한 관리기구를 필요로 한다. 워크숍 전반에 걸쳐 발표자와 사회자는 핵억지 개념이 ‘물신’(맹목적 숭배대상)이라고 칭했다. 핵 물신은 미국과 영국과 같은 국가에서 핵 프로그램을 합리화하면서 대량파괴의 실질적 가능성을 은폐한다.
NPT를 넘어서: 핵 폐기 운동의 건설 전략
이 워크숍에는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온 발표자가 참여했고, 그들은 각 국가의 핵 프로그램 상태와 반핵운동가의 요구에 대해 토론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일본 원수폭금지국민회의(원수금)에서 온 나가히사 와다와 원수폭금지협의회(원수협)에서 온 히로시 타카였다. 와다는 과거 미국의 핵폭격과 현재 일본 전역에서 가동 중인 53개 핵발전소가 건강과 환경에 끼친 지속적 영향을 폭로하며 일본 운동의 요구를 소개했다. 반면 타카는 미국정부가 핵군축을 주도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미국 활동가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며 핵 폐지를 위한 풀뿌리 조직과 정부의 협력을 포함하는 국제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는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을 수용한 것이 일본의 비핵 3원칙(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일본 영토 내로 반입하지 않는다) 정신과 모순된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자에 이어 프랑스 <평화운동>의 피에르 비이야르와 영국 <핵군축을 위한 캠페인>의 데이비드 웹은 유럽과 세계에서 진행 중인 핵군축의 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이야르는 오바마 정부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은 과거 미국 행정부에 비해 상당한 변화를 의미하며 NPT 평가회의 내에서 중동 비핵지대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군축을 지원하고 최근의 긍정적 변화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광범위한 대중교육 프로그램을 주창했다. 데이비드 웹은 영국 정치 내에서 핵무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비록 최근에 영국 의회는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폐기하는 대신에 이를 대체하는 신규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지만, 영국과 유럽연합 의회 내에서 새로운 핵무기 체계 창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정 강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평화행동>(미국)의 케빈 마틴은 핵 폐기 운동을 위해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일단은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이 비준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조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요구를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1) 핵무기 복합체에 대한 재정지원의 축소, 2) 일방적 무기 감축을 위한 행정명령, 3) 핵무기 경계태세의 완화, 4) 중동 비핵지대에 대한 미국의 지지. 마틴은 다른 발표자에 비해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지만 그의 발언을 대체로 미국 활동가와 연관된 것이었다.
불행히도 워크숍 동안에 지역을 넘어서 연대를 구축하고 공동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참가자가 다양했지만 국제회의 전반에서 이런 취약성이 드러났다. 몇몇 개인이 국제총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프랑스, 인도, 이스라엘, 한국의 전쟁 상황이나 핵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검토했지만 그 형식은 심도 깊은 분석이나 국제운동의 건설을 위한 의미 있는 대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폐막 총회
국제회의의 마지막 행사는 폐막 총회였다. 폐막 총회에서는 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 국제평화위원회 의장인 소코로 고메즈, 히로시마 시장 타다토시 아키바를 포함한 몇몇 연사들이 800명의 참석자를 앞에 두고 연설을 했다. 회의 주최자와 여러 참가자가 볼 때 폐막총회와 회의 전체의 하이라이트가 반기문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비핵화를 위한 참석자들의 활동에 찬사를 보내며 발언을 시작했다. “나는 인류의 가장 숭고한 소망, 곧 세계 평화를 말하고 그것을 위해 항의하고 그 기치를 표방하는 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오늘 밤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이어서 NPT 체제에 찬사를 보냈다. “NPT는 40년 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그 후로 NPT는 비확산 체제와 우리의 핵군축 노력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단지 몇 개 국가만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NPT가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덕이 매우 컸습니다.” 그는 이어서 미국에 찬사를 보냈다. “예를 들면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비핵국가가 NPT를 준수하는 한 핵무기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맹세했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비판한 후 청중에게 “여러분의 훌륭한 활동을 지속하시고 앞으로도 양심의 소리가 되어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며 연설을 마쳤다. 그의 연설은 모든 청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한국 참가자들만 제외한다면.
소코로 고메즈는 반기문 총장 바로 다음에 연사로 나섰고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었다. 핵 폐기를 위한 투쟁은 “기본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녀는 NPT의 특징이 “불균형과 불평등”이라고 비판했고, NPT가 군축과 핵에너지 이용의 위험성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NPT 체제가 사실상 핵무기 독점을 동결했고, 핵군축이라는 약속은 단순한 치장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새로운 전략핵무기감축협정의 한계와 미국이 발표한 글로벌 신속타격 프로그램을 더욱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녀는 이란과 북한이 제국주의적 의도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적인 혐의를 받고 있지만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한 범죄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메즈의 발표는 반기문의 연설이 보여준 오류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녀는 NPT를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적법한 구조로 간주하는 것이나, NPT가 국가들의 재래식 전력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불균형을 함께 다루지 않고 핵무기의 폐기를 모색하는 것이나, 미국의 세계적 군사 지배를 고려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회의 주최자가 반기문의 연설 바로 뒤의 발표자로 고메즈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총회 사회자는 두 연설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고메즈는 기립박수를 받지 않았다.
평가
국제회의는 몇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 NPT 평가회의 개막을 앞두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요구하는 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특히 국제회의가 끝난 후 5월 2일 약 15,0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대중시위가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둘째, 국제회의가 국제기획위원회에 의해 조직되었고 이 회의에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국제 협력에서 드문 사례다.(최소한 미국 운동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마지막으로 국제회의는 활동가들이 핵무기 프로그램과 다양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다만, 두 가지 약점에는 주목해야 한다. 첫째, 큰 규모의 비정부기구(NGO)와 연구소가 과잉 대표되었고 핵시설이나 핵정책에 대항해 현장 조직화를 수행하는 풀뿌리 집단의 대표성이 부족했다. 이는 운동 행위자가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해 취해야 할 활동을 국제연합과 NPT 평가회의의 틀 내로 제한시킨다. 풀뿌리 운동의 대표성 부족은 국제회의의 형식 문제와 함께 운동 건설 전략에 관한 구체적인 대화를 어렵게 했다.
둘째, 핵무기에 대한 비판을 군사주의에 대한 더 광범위한 분석에 결합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발표자들 사이에서 불균등했고 전반적으로 불충분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하여 핵무기 보유 국가의 군사적 지배를 통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해 누구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의 결핍은 핵 폐기 운동을 더 광범위한 평화운동 또는 현재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위해 벌어지는 투쟁과 연결시키기 위한 논의를 어렵게 했다.
결론
첫 번째 워크숍에서 몇몇 발표자는 ‘핵억지’가 물신이고, 미국과 영국이 안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핵무기 개발을 통해 벌어지는 현실적 위협을 은폐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물신숭배 비판은 중요하며, 핵 폐기 운동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운동 내에서는 핵무기를 국가 간 이해관계나 군사지배 체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하기보다는 핵무기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로 보는 두드러진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향이 국제회의에서 보편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지배적 흐름이었고, 이틀간에 벌어진 대화의 효과성을 제한했다.
핵무기 숭배를 비판하는 것은 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냐는 문제와 관계없이 대량 살상과 파괴를 위해 고안된 핵무기의 근본적 부도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지아 미안이 지적했듯이, “군사력, 권력, 폭력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냐는 것”이다. 남한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비핵화 요구가 남한의 대북 적대 정책의 종결, 남한 국방예산의 감축,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의 제거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핵우산의 제거 요구는 남한, 미국, 일본의 전략적 군사동맹 비판이라는 맥락 속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핵 폐기 운동은 더 광범위한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