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동아시아의 글로벌 파트너십과 군사동맹의 강화
한미연합훈련
지난 7월 25일부터 4일간 동해 상에서 한국과 미국의 연합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 7함대 소속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아시아 최대 상륙함인 한국 해군의 독도함을 비롯해 한미양국 군함과 잠수함 등 모두 20여 척, 그리고 F-22 전투기 4대를 비롯해 200여 대의 항공기가 참여했다. 통상적인 해상훈련에 동원되는 항공기가 보통 20여 대 정도라고 하니 이번 훈련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부 언론은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동승하여 훈련 내용과 분위기를 소개하는 등, 한국 언론은 이례적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한-미 연합군은 이번 훈련이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의 성격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한국 국방부는 훈련의 목적에 대해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동맹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연말까지 매달 연합 훈련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동해에서의 연합훈련이 끝난 지 보름여 만인 8월 16일부터 26일까지 ‘을지 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진행되었고, 9월에는 서해에서 대(對)잠수함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한편 이번 한미연합훈련에는 최초로 일본 자위대가 훈련을 참관했다. 이번 참관은 일본 측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대령 등 장교 4명이 조지워싱턴호에 탑승해 훈련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번 한미연합훈련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미연합훈련 계획이 발표되자 북한은 7월 24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미연합훈련에 맞서 “핵억제력에 기초한 우리 식 보복성전을 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훈련이 실시되고 있던 7월 27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적들의 억제력 과시에 선군으로 다져진 더 크고, 무서운 억제력으로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월 21일 “중국은 외국 군함과 군용기가 황해(서해) 및 기타 중국의 근해에 진입해 중국의 안보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7월 26일 밤 인천과 마주한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북해함대 소속 100여 대의 군용기가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27일 포병부대가 서해 근처에서 대규모 신형 장거리 다연장 로켓 발사 훈련을 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미국의 대북제재
한편 미국은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에 착수했다. 7월 2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천안함 사건 후속대응으로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와 1874호를 더욱 엄격히 시행하여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도발행위를 중단시킬 다양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며, 개인과 은행 자산을 동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와 1874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현재 행정명령 13382호에 따라 북한의 원자력총국과 조선단군무역회사 등 23개 북한 기관 및 기업과 김동명 단천상업은행장을 제재대상으로 지정 중인데, 이를 새롭게 확대/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9월 애국법 311조를 적용했던 ‘BDA식 금융제재’ 방식과는 달리 UN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더 강화해 포괄적인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행정명령을 발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 통해 행정부 차원에서 제재 대상을 선정하고, 제3국 금융기관에 거래 중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3국 금융기관이 대북제재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금융기관을 통해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북 금융제재를 지휘하고 있는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조정관이 8월 초 한국을 비롯, 일본과 중국 등을 순방했다. 중국 정부와 금융기관이 미국의 조치에 얼마나 협력하느냐가 대북제재 조치의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데, 세계 금융시장과의 연계를 고려했을 때 중국이 미국의 요청을 쉽게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응
북한은 천안함 사건은 한국 측의 모략이며 자신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 이후인 5월 30일, 평양시 김일성 광장에서 ‘미국과 이명박 역적패당의 반공화국 대결모략책동을 폭로/규탄하는 평양시 군중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북한 주민 10만여 명과 조선노동당 고위급 인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노동당 평양시당의 최영림 책임비서는 보고를 통해 “괴뢰패당이 외세와 공조해 응징과 보복의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인다면 즉시 한계 없는 보복타격, 강력한 물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또, 북한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7월 26일에 열린 정전협정 체결 57주년 중앙보고대회 연설에서 “새롭게 발전된 핵 억제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미제와 이명박 패당이 새로운 침략 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는 핵 억제력을 포함한 군사적 잠재력을 총폭발시켜 적들에게 진짜 전쟁이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발전된 핵 억제력’은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이나 핵실험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진영은 전반적으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조작’이라는 판단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에 걸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정부와 합동조사단은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해왔다. 이에 따라 ‘천안함 사건 진실규명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나 ‘남-북-미-중의 합동 재조사’, 천안함 관련 미국의 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복잡하다. 한겨레신문이 지난 5월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지방선거에 활용하고 있다거나 남북 간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과반수를 차지하지만, 정부 발표를 신뢰하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대응이 적절하다는 의견 또한 과반수를 차지한다. 천안함 사건 조사에 대한 의혹이 충분히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대응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현실, 북한을 비롯하여 주변 국가들을 크게 자극하는 한미연합훈련에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
서해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1999년, 2002년, 2009년에 남북 간 교전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 3번의 교전 이외에도 수많은 충돌 사건이 일어났다. 서해 교전사태는 남과 북이 인정하는 군사분계선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해서 발생했다. 19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은 육상에 관한 경계는 설정했지만 해상에 관한 경계는 정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남북 간에 서해경계선에 관한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북방한계선(NLL)을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하지만, NLL은 1958년 미국이 군사분계선이 없는 지역에서 한국 해군의 임의 행동(북침)을 규제하려고 만든 작전 통제선에 불과하다.
인터넷을 비롯해 수많은 경로를 통해 천안함 조사에 대한 의혹이 쏟아져 나와도 대중들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며, 제공된 정보로 분명한 판단을 내리기도 힘들다. 결국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논의는 조각이 많이 빠져버린 퍼즐 맞추기가 되어 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효과다. 앞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이 불거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지난번에도, 그리고 그 지난번에도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해왔으므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은 상대방을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하게 하며 상호 간의 신뢰를 형성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는 더욱 군사적인 대응을 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군사력 증강의 알리바이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연기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국방개혁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위협이 높아졌으므로 군사작전의 변화는 물론, 군사장비와 무기 체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를 신속하게 정리했으며 잠수함 전력 증강을 준비하고 있다. 7월 25일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이 올해 연말에 개정할 ‘방위계획대강’에서 해상자위대의 잠수함을 현재의 18척(교육훈련용 2척 포함)에서 20척대로 늘리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일본은 1976년 방위대강에서 잠수함 척수를 16척으로 정한 이후 노후화된 경우에만 교체해왔다. 또한 일본과 미국 정부가 미사일방어망(MD)의 해상배치형 요격미사일(SM3 block2A)을 제 3국에 수출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이 요격미사일을 수출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에 ‘무기 수출 3원칙’을 완화할 것을 요청했으며, 일본 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작년 10월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과의 미일 국방장관회담에서 무기수출 3원칙을 재검토해 신형미사일의 유럽 수출을 가능하게 해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과 일본의 강경파들은 자국 핵 무장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북한의 핵실험은 자국의 핵 무장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천안함 사건은 주변 국가들이 군사력을 한층 높이는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실제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부차적인 쟁점이 된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격침된 것이건, 다른 이유에서 침몰된 것이건 간에, 한국 입장에서는 전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혹은 공백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을 높이게 되고, 이것이 한미연합훈련과 같은 형태의 무력시위로 드러난다. 이번 한미연합훈련 때 기자들을 조지워싱턴호에 동승시키면서까지 이례적으로 훈련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하도록 한 것에서 이러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된다.
천안함 사건의 출구
따라서 천안함 침몰의 원인 규명이라는 논점을 어느 정도 상대화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 세력이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군사적 긴장은 한층 고조되고, 대북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여론은 높아간다.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의 분단과 군사적 적대 행위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결과를 낳게 된 맥락으로서 한반도의 대치 상태와 대북 적대 정책, 미국의 패권전략을 폭로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인식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즉 NLL 문제와 같은 정전 협정의 문제가 어느 순간에건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정전 체제를 실질적인 종전/평화 체제로 전환할 논의의 출발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 당시 사회운동이 취했던 전략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실험 자체보다는 미국의 패권 전략과 북한을 핑계로 자국의 핵무장 의도를 노골화했던 한국과 일본의 정책을 더욱 비판했다. 북한의 핵무장은 그 자체로 비판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다른 문제들을 압도하지 않도록 북한에 대한 입장을 일정 상대화했다. 핵실험이라는 ‘사건 그 자체’의 비판보다, 그러한 결과를 낳게 된 ‘역사적 맥락’과 핵 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한반도 위기를 적확하게 폭로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이루는 대중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데에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글로벌 파트너십
아시아로, 아시아로!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열린 17차 아세안안보포럼과 43차 아세안외무장관회의 및 확대외무장관회의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상회의’ 가입이 논의되었다.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 미국이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은 다자주의 틀에 참여해 본 예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동아시아정상회의 참여는 미국의 기존 외교정책 노선과 큰 차이점을 보이는 이례적 행보다. 가입 결정은 2010년 10월 말에 열리는 17차 아세안정상회의에서 내려지게 되는데 별 무리 없이 승인될 전망이다. 가입이 결정되면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공식적인 개입 채널을 확보하게 된다.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7월 22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인도네시아를 방문, “미국은 인도네시아 군부의 개혁성과를 바탕으로 코파수스와 점진적인 안보협력활동을 개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파수스는 인도네시아의 특수부대로 1990년대 수하르토 집권 시절 고문과 암살 행위를 자행했고, 동티모르 민병대 학살의 배후로 알려져 있다. 또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말레이시아와 별도 회담을 개최했으며, 7월 13일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와 베트남 전쟁 이후 첫 최고위급 접촉인 외교장관 회담을 워싱턴에서 진행했다. 말레이시아는 반미주의자였던 마하티르 전 총리 집권 시절 관계가 소원해졌고,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베트콩의 보급로 차단을 위해 라오스에 수백만 발의 폭탄을 투하하면서 등을 돌렸다. 이밖에 북한과의 핵협력 의혹을 받고 있는 미얀마와 대화를 재개했고, 인도 특수부대와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반테러 협약을 체결했다.
신아시아 정책구상
2009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도쿄 산토리홀에서 ‘신아시아 정책구상’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태평양을 ‘글로벌 현안의 협력자’로, G20 정상회의를 ‘균형성장을 위한 새전략’으로 정의했다. 이와 함께 아프팍 및 글로벌 비확산체제, 한반도 비핵화 등에서 중국과의 협력 극대화를 제안하며 중국과의 갈등과 경쟁을 지양하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실용적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 말했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행보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미국과 전 세계가 직면해 있는 문제, 즉 경제위기 극복과 대테러 전쟁의 출구전략을 위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 동아시아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이 부실 금융기관에 7천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제공한 것처럼 위기 극복을 위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추가로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데, 미국으로 상품과 자본을 수출해 온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 국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동아시아 경제의 상호연관성은 더욱 깊어지게 되고 동아시아의 협조와 안정적 관리는 미국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대테러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외국군이 2천 명을 넘어서면서 아프간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들은 자국 내 철군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네덜란드가 8월 1일부터 철군을 시작했으며, 캐나다도 국내 여론에 밀려 조기 철군이 점쳐진다. 유럽 국가들의 협조가 점차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기대할 곳은 동아시아 밖에 없다.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미국과 별도 회담을 진행한 말레이시아가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에 의료진을 파병한 것이나, 한국이 오쉬노 부대를 파병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파트너십과 군사동맹의 강화
따라서 동아시아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경제/군사적 협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문제는 미국에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동아시아정상회의 가입은 동아시아 지역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공식적인 채널 확보의 문제다. 클린턴 미 국무부 장관은 아세안외무장관회의에서 ‘미국 전략의 핵심 요소는 지역 협의체와 글로벌 협의체를 강화하는 데 있다’면서, 동아시아정상회의가 ‘지역의 정치-안보 협의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중 전략경제대화나 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통해 중국을 비롯, 동아시아 지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트너십 강화는 군사동맹의 강화로 뒷받침된다. 지난 5월 미국은 일본과 괌에 F-22 전투기를 전진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 국방부가 배포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랭리공군지기에 있던 F-22 전투기 12대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로, 뉴멕시코주 홀러먼공군기지에 있던 F-22 전투기 12대는 오키나와 가데나공군기지로 전진 배치된다. 이로써 미군은 1시간 내에 북한 전 지역에서 작전 수행이 가능해진다. 미국은 하와이-괌-일본-한국을 연결하는 군사허브를 구축하고 군사능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이는 해외주둔미군의 재배치,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핵잠수함의 상시 배치,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의 근거지로서 괌 기지의 강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하와이, 괌, 일본, 한국은 미군이 동아시아에서 영구히 주둔하기 위한 거점으로서 그 규모가 커지고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평화운동의 과제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반복과 동북아시아 각국의 군사력 증강, 대북제재와 적대 정책의 강화. 천안함 사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일종의 기시감을 받게 된다. 지속되는 적대 정책과 군사적 충돌의 반복, 그리고 이를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과 적대 정책의 강화라는 악순환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적대 정책과 군사력 증강 그 자체가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위협적인 군사훈련과 작전계획, 군사력 증강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즉시 조직해나가야 한다.
더불어 정전협정 체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1990년대 후반 이래 벌어진 세 차례의 서해교전은 본질적으로 정전협정상 서해 군사분계선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은 남북 간 신뢰 구축을 저해하고 상호 적대적인 정책을 유지 강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정전협정의 문제를 적극 제기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갈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아시아 주둔미군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해야 한다. 미군의 영구주둔은 한반도에 항시적인 전쟁위협이 존재하게 됨을 뜻한다. 외국 군대의 철수와 남북의 근본적 군축이 정전협정 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 정착의 출발임을 강조해야 한다.
지난 7월 25일부터 4일간 동해 상에서 한국과 미국의 연합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 7함대 소속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아시아 최대 상륙함인 한국 해군의 독도함을 비롯해 한미양국 군함과 잠수함 등 모두 20여 척, 그리고 F-22 전투기 4대를 비롯해 200여 대의 항공기가 참여했다. 통상적인 해상훈련에 동원되는 항공기가 보통 20여 대 정도라고 하니 이번 훈련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부 언론은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동승하여 훈련 내용과 분위기를 소개하는 등, 한국 언론은 이례적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한-미 연합군은 이번 훈련이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의 성격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한국 국방부는 훈련의 목적에 대해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동맹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연말까지 매달 연합 훈련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동해에서의 연합훈련이 끝난 지 보름여 만인 8월 16일부터 26일까지 ‘을지 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진행되었고, 9월에는 서해에서 대(對)잠수함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한편 이번 한미연합훈련에는 최초로 일본 자위대가 훈련을 참관했다. 이번 참관은 일본 측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대령 등 장교 4명이 조지워싱턴호에 탑승해 훈련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번 한미연합훈련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미연합훈련 계획이 발표되자 북한은 7월 24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미연합훈련에 맞서 “핵억제력에 기초한 우리 식 보복성전을 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훈련이 실시되고 있던 7월 27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적들의 억제력 과시에 선군으로 다져진 더 크고, 무서운 억제력으로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월 21일 “중국은 외국 군함과 군용기가 황해(서해) 및 기타 중국의 근해에 진입해 중국의 안보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7월 26일 밤 인천과 마주한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북해함대 소속 100여 대의 군용기가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27일 포병부대가 서해 근처에서 대규모 신형 장거리 다연장 로켓 발사 훈련을 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미국의 대북제재
한편 미국은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에 착수했다. 7월 2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천안함 사건 후속대응으로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와 1874호를 더욱 엄격히 시행하여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도발행위를 중단시킬 다양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며, 개인과 은행 자산을 동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와 1874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현재 행정명령 13382호에 따라 북한의 원자력총국과 조선단군무역회사 등 23개 북한 기관 및 기업과 김동명 단천상업은행장을 제재대상으로 지정 중인데, 이를 새롭게 확대/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9월 애국법 311조를 적용했던 ‘BDA식 금융제재’ 방식과는 달리 UN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더 강화해 포괄적인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행정명령을 발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 통해 행정부 차원에서 제재 대상을 선정하고, 제3국 금융기관에 거래 중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3국 금융기관이 대북제재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금융기관을 통해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북 금융제재를 지휘하고 있는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조정관이 8월 초 한국을 비롯, 일본과 중국 등을 순방했다. 중국 정부와 금융기관이 미국의 조치에 얼마나 협력하느냐가 대북제재 조치의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데, 세계 금융시장과의 연계를 고려했을 때 중국이 미국의 요청을 쉽게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응
북한은 천안함 사건은 한국 측의 모략이며 자신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 이후인 5월 30일, 평양시 김일성 광장에서 ‘미국과 이명박 역적패당의 반공화국 대결모략책동을 폭로/규탄하는 평양시 군중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북한 주민 10만여 명과 조선노동당 고위급 인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노동당 평양시당의 최영림 책임비서는 보고를 통해 “괴뢰패당이 외세와 공조해 응징과 보복의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인다면 즉시 한계 없는 보복타격, 강력한 물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또, 북한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7월 26일에 열린 정전협정 체결 57주년 중앙보고대회 연설에서 “새롭게 발전된 핵 억제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미제와 이명박 패당이 새로운 침략 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는 핵 억제력을 포함한 군사적 잠재력을 총폭발시켜 적들에게 진짜 전쟁이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발전된 핵 억제력’은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이나 핵실험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진영은 전반적으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조작’이라는 판단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에 걸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정부와 합동조사단은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해왔다. 이에 따라 ‘천안함 사건 진실규명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나 ‘남-북-미-중의 합동 재조사’, 천안함 관련 미국의 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복잡하다. 한겨레신문이 지난 5월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지방선거에 활용하고 있다거나 남북 간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과반수를 차지하지만, 정부 발표를 신뢰하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대응이 적절하다는 의견 또한 과반수를 차지한다. 천안함 사건 조사에 대한 의혹이 충분히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대응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현실, 북한을 비롯하여 주변 국가들을 크게 자극하는 한미연합훈련에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
서해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1999년, 2002년, 2009년에 남북 간 교전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 3번의 교전 이외에도 수많은 충돌 사건이 일어났다. 서해 교전사태는 남과 북이 인정하는 군사분계선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해서 발생했다. 19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은 육상에 관한 경계는 설정했지만 해상에 관한 경계는 정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남북 간에 서해경계선에 관한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북방한계선(NLL)을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하지만, NLL은 1958년 미국이 군사분계선이 없는 지역에서 한국 해군의 임의 행동(북침)을 규제하려고 만든 작전 통제선에 불과하다.
인터넷을 비롯해 수많은 경로를 통해 천안함 조사에 대한 의혹이 쏟아져 나와도 대중들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며, 제공된 정보로 분명한 판단을 내리기도 힘들다. 결국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논의는 조각이 많이 빠져버린 퍼즐 맞추기가 되어 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효과다. 앞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이 불거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지난번에도, 그리고 그 지난번에도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해왔으므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은 상대방을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하게 하며 상호 간의 신뢰를 형성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는 더욱 군사적인 대응을 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군사력 증강의 알리바이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연기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국방개혁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위협이 높아졌으므로 군사작전의 변화는 물론, 군사장비와 무기 체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를 신속하게 정리했으며 잠수함 전력 증강을 준비하고 있다. 7월 25일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이 올해 연말에 개정할 ‘방위계획대강’에서 해상자위대의 잠수함을 현재의 18척(교육훈련용 2척 포함)에서 20척대로 늘리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일본은 1976년 방위대강에서 잠수함 척수를 16척으로 정한 이후 노후화된 경우에만 교체해왔다. 또한 일본과 미국 정부가 미사일방어망(MD)의 해상배치형 요격미사일(SM3 block2A)을 제 3국에 수출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이 요격미사일을 수출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에 ‘무기 수출 3원칙’을 완화할 것을 요청했으며, 일본 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작년 10월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과의 미일 국방장관회담에서 무기수출 3원칙을 재검토해 신형미사일의 유럽 수출을 가능하게 해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과 일본의 강경파들은 자국 핵 무장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북한의 핵실험은 자국의 핵 무장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천안함 사건은 주변 국가들이 군사력을 한층 높이는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실제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부차적인 쟁점이 된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격침된 것이건, 다른 이유에서 침몰된 것이건 간에, 한국 입장에서는 전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혹은 공백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을 높이게 되고, 이것이 한미연합훈련과 같은 형태의 무력시위로 드러난다. 이번 한미연합훈련 때 기자들을 조지워싱턴호에 동승시키면서까지 이례적으로 훈련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하도록 한 것에서 이러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된다.
천안함 사건의 출구
따라서 천안함 침몰의 원인 규명이라는 논점을 어느 정도 상대화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 세력이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군사적 긴장은 한층 고조되고, 대북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여론은 높아간다. 천안함 사건은 한반도의 분단과 군사적 적대 행위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결과를 낳게 된 맥락으로서 한반도의 대치 상태와 대북 적대 정책, 미국의 패권전략을 폭로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인식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즉 NLL 문제와 같은 정전 협정의 문제가 어느 순간에건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정전 체제를 실질적인 종전/평화 체제로 전환할 논의의 출발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 당시 사회운동이 취했던 전략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실험 자체보다는 미국의 패권 전략과 북한을 핑계로 자국의 핵무장 의도를 노골화했던 한국과 일본의 정책을 더욱 비판했다. 북한의 핵무장은 그 자체로 비판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다른 문제들을 압도하지 않도록 북한에 대한 입장을 일정 상대화했다. 핵실험이라는 ‘사건 그 자체’의 비판보다, 그러한 결과를 낳게 된 ‘역사적 맥락’과 핵 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한반도 위기를 적확하게 폭로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이루는 대중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데에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글로벌 파트너십
아시아로, 아시아로!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열린 17차 아세안안보포럼과 43차 아세안외무장관회의 및 확대외무장관회의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상회의’ 가입이 논의되었다.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 미국이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은 다자주의 틀에 참여해 본 예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동아시아정상회의 참여는 미국의 기존 외교정책 노선과 큰 차이점을 보이는 이례적 행보다. 가입 결정은 2010년 10월 말에 열리는 17차 아세안정상회의에서 내려지게 되는데 별 무리 없이 승인될 전망이다. 가입이 결정되면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공식적인 개입 채널을 확보하게 된다.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7월 22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인도네시아를 방문, “미국은 인도네시아 군부의 개혁성과를 바탕으로 코파수스와 점진적인 안보협력활동을 개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파수스는 인도네시아의 특수부대로 1990년대 수하르토 집권 시절 고문과 암살 행위를 자행했고, 동티모르 민병대 학살의 배후로 알려져 있다. 또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말레이시아와 별도 회담을 개최했으며, 7월 13일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와 베트남 전쟁 이후 첫 최고위급 접촉인 외교장관 회담을 워싱턴에서 진행했다. 말레이시아는 반미주의자였던 마하티르 전 총리 집권 시절 관계가 소원해졌고,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베트콩의 보급로 차단을 위해 라오스에 수백만 발의 폭탄을 투하하면서 등을 돌렸다. 이밖에 북한과의 핵협력 의혹을 받고 있는 미얀마와 대화를 재개했고, 인도 특수부대와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반테러 협약을 체결했다.
신아시아 정책구상
2009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도쿄 산토리홀에서 ‘신아시아 정책구상’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태평양을 ‘글로벌 현안의 협력자’로, G20 정상회의를 ‘균형성장을 위한 새전략’으로 정의했다. 이와 함께 아프팍 및 글로벌 비확산체제, 한반도 비핵화 등에서 중국과의 협력 극대화를 제안하며 중국과의 갈등과 경쟁을 지양하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실용적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 말했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행보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미국과 전 세계가 직면해 있는 문제, 즉 경제위기 극복과 대테러 전쟁의 출구전략을 위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 동아시아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이 부실 금융기관에 7천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제공한 것처럼 위기 극복을 위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추가로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데, 미국으로 상품과 자본을 수출해 온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 국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동아시아 경제의 상호연관성은 더욱 깊어지게 되고 동아시아의 협조와 안정적 관리는 미국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대테러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외국군이 2천 명을 넘어서면서 아프간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들은 자국 내 철군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네덜란드가 8월 1일부터 철군을 시작했으며, 캐나다도 국내 여론에 밀려 조기 철군이 점쳐진다. 유럽 국가들의 협조가 점차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기대할 곳은 동아시아 밖에 없다.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미국과 별도 회담을 진행한 말레이시아가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에 의료진을 파병한 것이나, 한국이 오쉬노 부대를 파병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파트너십과 군사동맹의 강화
따라서 동아시아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경제/군사적 협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문제는 미국에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동아시아정상회의 가입은 동아시아 지역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공식적인 채널 확보의 문제다. 클린턴 미 국무부 장관은 아세안외무장관회의에서 ‘미국 전략의 핵심 요소는 지역 협의체와 글로벌 협의체를 강화하는 데 있다’면서, 동아시아정상회의가 ‘지역의 정치-안보 협의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중 전략경제대화나 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통해 중국을 비롯, 동아시아 지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트너십 강화는 군사동맹의 강화로 뒷받침된다. 지난 5월 미국은 일본과 괌에 F-22 전투기를 전진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 국방부가 배포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랭리공군지기에 있던 F-22 전투기 12대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로, 뉴멕시코주 홀러먼공군기지에 있던 F-22 전투기 12대는 오키나와 가데나공군기지로 전진 배치된다. 이로써 미군은 1시간 내에 북한 전 지역에서 작전 수행이 가능해진다. 미국은 하와이-괌-일본-한국을 연결하는 군사허브를 구축하고 군사능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이는 해외주둔미군의 재배치,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핵잠수함의 상시 배치,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의 근거지로서 괌 기지의 강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하와이, 괌, 일본, 한국은 미군이 동아시아에서 영구히 주둔하기 위한 거점으로서 그 규모가 커지고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평화운동의 과제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반복과 동북아시아 각국의 군사력 증강, 대북제재와 적대 정책의 강화. 천안함 사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일종의 기시감을 받게 된다. 지속되는 적대 정책과 군사적 충돌의 반복, 그리고 이를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과 적대 정책의 강화라는 악순환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적대 정책과 군사력 증강 그 자체가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위협적인 군사훈련과 작전계획, 군사력 증강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즉시 조직해나가야 한다.
더불어 정전협정 체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1990년대 후반 이래 벌어진 세 차례의 서해교전은 본질적으로 정전협정상 서해 군사분계선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은 남북 간 신뢰 구축을 저해하고 상호 적대적인 정책을 유지 강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정전협정의 문제를 적극 제기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갈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아시아 주둔미군의 문제점을 적극 제기해야 한다. 미군의 영구주둔은 한반도에 항시적인 전쟁위협이 존재하게 됨을 뜻한다. 외국 군대의 철수와 남북의 근본적 군축이 정전협정 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 정착의 출발임을 강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