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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9-10.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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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와 노동조합의 대응

류주형 | 노동자운동연구소(준) 교육실장
[편집자주] 이 글은 지난 8월 14-15일 개최된 사회운동학교의 발표문을 대폭 축약한 것이다. 원문은 8월 31일자로 발간된 노동자운동연구소(준) 이슈리포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노동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2009년 하반기 이후 잠시나마 반등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이던 경제위기는 올해 들어 유럽 재정위기로 그 모순이 파생되면서 더블딥 또는 장기 불황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이 글은 경제위기 아래 2008-09년 세계 각국의 정책대응, 그리고 이에 대한 각국 노동조합의 대응을 평가하면서 한국 노동자운동에 대한 시사점을 추출한다.

2007-09년 세계 경제위기와 실업

아래에서는 올해 초 발간된 「2010년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 전망」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노동자계급에 끼친 영향을 개괄해보겠다. 필요할 경우 OECD 고용 통계 월보를 보충한다.
OECD 추계에 따르면 2007-09년 경제위기 기간 동안 회원국 실업자가 50% 증가했다. 특히 2008년 3/4분기에서 2010년 1/4분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실업률은 급격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4월 현재 OECD 평균 실업률은 8.7%, 전체 실업자 수는 4억 6천 5백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동년 말 예상 실업률은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수치로, 지난 1973-74년 경제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그림1> 참조).

<그림 1> 경기침체 발생 시점 이후 분기별 실업률 궤적 비교
자료: OECD, 2010. 가로축 단위는 분기.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실업률은 경제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 그리스발 재정위기의 충격으로 유럽연합과 유로존의 최근 실업률은 유럽통합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표1> 참조). 예외적으로 실업률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는 독일의 경우, 조업시간단축제와 같은 위기대책에 힘입은 결과로 분석된다.

<표 1> OECD 주요국 2010년 4월 실업률

OECD 회원국 가운데 스페인(19.7%), 슬로박(14.1%), 아일랜드(13.2%), 포르투갈(10.8%), 헝가리(10.4%), 프랑스(10.1%) 등이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4.1%), 일본(5.1%)이 낮은 수준에 속했으며, 한국의 경우 3.7%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미국은 9.9%, 유로존 16개국은 10.1%, 선진7개국(G7)은 8.4%를 기록했다(<그림2> 참조).

<그림 2> OECD 회원국 실업률 시기별 비교: 2007년 12월-2010년 3월.
자료: OECD, 2010.

세계 각국의 실업률은 향후에도 최소한 1년 정도 계속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경제위기의 효과가 노동시장에 시차를 두고 발현될뿐더러,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국가수준의 특별위기 지원책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러한 대책이 조만간 종료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보면, 금융·주택시장의 붕괴가 불황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던 나라, 가령 스페인·미국·아일랜드 등에서 실업률이 크게 상승했다. 집단별로 보면, 임시직과 청년층ㆍ저숙련ㆍ이민자 등 취약계층에서 실업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경제위기가 청년실업에 미친 영향이 막대했는데, 2009년 말 기준 OECD 평균 청년실업률은 2007년 말에 비해 5.3% 포인트 증가한 18.8%를 기록했다. 2010-11년 중 청년실업률은 20% 내외가 될 전망이다. 산업별로 보면, 광업·제조업·건설업 등 특정 산업 부문에서 대량 실업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림 3> 주요국의 한계노동자와 불완전노동자를 포함한 확장 실업률
자료: OECD, 2010.
UR1: 장기실업자, UR3: 실업자, UR5: 실업자+한계노동자, UR6: 실업자+한계노동자+불완전노동자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가 노동자계급에 끼친 충격은 공식 실업률의 증가로만 설명할 수 없다. 2009년 말 현재 OECD 회원국의 경우, 한계노동자(marginally attached workers)와 불완전노동자(underemployed workers) 수를 합치면 공식 실업률의 두 배를 상회한다(<그림3> 참조).

<표 2> 유사실업자의 정의
ㆍ불완전노동자: 경제적 이유로 법정 주당노동시간 이하로 근무한 상용직 노동자 또는 상용직 일자리를 원하고 있는 파트타임 노동자
ㆍ한계노동자: 과거 4주 동안 구직을 하지 않았으나,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노동자.
ㆍ실망실업자(discouraged workers): 취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현재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노동자로, 한계노동자의 하위 범주. 구직단념자라고도 함.

신흥경제국의 경우, 이번 경제위기의 충격이 국제무역 및 자본이동의 감소를 통해 이전되었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고용률이 감소했다. 노동력의 대부분이 노동시장제도와 사회보장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비공식노동의 비중이 매우 큰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실업이 증가하고 비공식 부문으로 노동력이 유입된 결과 소득이 감소하고 빈곤률이 상승하고 있다. 또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임금이 삭감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가재정의 제약으로 인해 사회정책이 미비할 뿐만 아니라 빈곤률과 비공식노동 비중이 높기 때문에 사회정책 프로그램의 실효성에서도 제약이 따르고 있다. 신흥국 경제위기의 효과는 이러한 ‘비공식노동’과 ‘빈곤 함정’으로 인해 더 길게 지속될 전망이다.
2010년 들어 그리스발 재정위기로 유럽연합이 위기에 빠지고 미국도 하반기 들어 다시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있어 고용-실업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많은 실업자들이 장기간 실업을 경험하면서 순환적 실업의 급증이 구조적 실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특히 각국은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전례 없이 높아진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는 가운데 고용-실업 난을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세계 각국의 경제위기 대응

세계 각국은 대량실업에 직면하여 경기부양책을 통한 고용 유지·창출과 노동신축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1930년대 대불황 이래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국은 대규모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추진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고용보조금 지원, 공공부문 고용창출, 실업급여, 기타 사회부조 개정을 통한 실직자의 소득 보조 등 고용을 유지·창출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 조업시간단축이나 일시해고(layoff)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늘어났으며, 기술훈련과 구직 지원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다(<표3> 참조).

<표 3> 2009년 OECD 회원국 노동정책
자료: OECD, 2009.

이와 함께 각국 정부는 대량실업에 대한 포괄적 대안으로 노동신축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를 제시하고 있다. 본래 ‘일자리 나누기’란 경영난에 처한 기업이 정리해고를 실시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지킨다는 개념이다. 이때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여 임금 삭감을 수용해야 한다. 이번 경제위기 동안 일부 국가에서는 단체협약이나 노사정합의를 통해 사용자나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삭감 분을 분담하기도 했는데, 유럽 국가들의 조업시간 단축제나 부분실업급여제, 일본의 고용조정금조성제가 이와 관련된 정책이다. 최근 일자리 나누기 개념은 교대제 재편, 일시 휴직, 교육휴가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한편 일자리 나누기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직무분할(job sharing)’ 방법도 있는데, 이는 가령 1일 8시간의 풀타임 일자리를 두 개의 4시간 파트타임 일자리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각국의 노동신축화 정책을 특별히 ‘일자리 나누기’에 국한하여 그 관행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경우 일시해고와 재고용(recall)이 자유롭기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고, 다만 1980년대 이후 임금 동결ㆍ삭감을 통한 고용유지 타협 관행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비해 해고 비용이 높은 독일의 경우, 오래전부터 다양한 노동신축화 제도를 통해 ‘내부적 신축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산업ㆍ기업 특수적 숙련을 증진시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네덜란드 역시 상용직 파트타임을 중심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전반적인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은 가운데, 특히 상용직 파트타임의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통적으로 해고 대신 잔업시간 조정, 전적 제도 등을 통해 노동시간의 신축성을 확보해왔지만,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의 확대로 방향을 대폭 전환했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독일과 같은 대륙유럽 국가에 비해서 해고가 자유로운 대신 실업보호가 발달하여 일자리 나누기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동결ㆍ반납, 혹은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해 청년층을 채용하는 ‘임금 삭감’의 방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일자리 나누기 개념은 불황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조합의 양보교섭 개념과 호응하게 된다.
그럼 이제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각국에서 도입된 노동신축화 사례들을 살펴보자.
이번 경제위기에서 독일은 조업시간단축 또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방식으로 고용조정을 실시했다. 1993년 폴크스바겐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이런 방식은 이번 위기 시기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전형성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노조나 직장협의회와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하여 정리해고의 방식의 고용조정 대신 정부의 지원 아래 조업시간단축제와 노동시간계좌제 등의 기제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노동정책을 대량해고와 외주화와 같은 ‘외부적 신축화’에 대비하여 ‘내부적 신축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파견근로자 및 기간종업원에 대한 해고와 신규사원의 내정이 취소되는 등 고용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개정된 노동자파견법 상 제조업체에서 체결된 파견근로계약 대부분이 2009년 중 만료되었는데, 경제위기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파견근로자를 비용부담이 큰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음에 따라 대량 해고로 이어진 것이다(<표4> 참조).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2009년 1월 제1노총(CGIL)을 제외한 나머지 6개 노총들과 1993년 체결된 단체교섭 관련 기본협약을 개정했다. 이번에 체결된 노사정 타협안은 △실질임금의 보존을 위한 새로운 물가지표 도입 △가변급 교섭에 세금·연금의 공제와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 도입 △집권화된 교섭의 경제적·규범적 부분에서 구조조정에 대항하거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거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예비조항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CGIL은 이 협약이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의도가 숨어있다며 협약 체결에 반대했다. CGIL은 △부족한 임금인상분을 성과급에 연동해서 인상하던 관행을 폐지함으로써 임금 감소와 격차 확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물가인상률에서 에너지 수입이 제외되어 있으며 △예외조항으로 인해 노동자 보호가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CGIL은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과 단체협약 개혁안을 비판하면서 2009년 4월 총파업과 가두시위(270만 명 참가) 전개했다.

<표 4> 일본 주요 대기업의 고용조정 현황
자료: 김명중, 2009.

프랑스에서도 2008년 제1노총(CGT)을 제외한 노사간 협약에 따라 ‘노동시장 현대화 법’이 시행되었다. 본 법안은 해고조건을 완화하고 기업 수요에 대한 노동력의 상시 연계를 위한 개별 서비스 확보를 주축으로 한다. 이중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근로계약 합의 파기제도는 노사 당사자의 협의에 의하여 근로계약 해지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일단 협의가 확정되면 노동자들은 이에 관하여 다툴 수 없을 뿐더러 협의의 확정 및 법적 효과는 사법적 영역이 아닌 행정적 영역에서 통제가 이루어지게 된다. 사용자와 정부는 지금까지 도입에 실패했던 근로계약 부분에 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을 환영하고 있다. 반면 CGT는 협약이 사용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담고 있으며 근로자 보호 사항은 미약하다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했다.
영국의 경우 2010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보수당-자유당 연정이 기존 노동당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을 보다 강화하면서 경제위기를 빌미로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있다. 신축노동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평등법(차별 시정 정책)과 파견노동자 동등대우 원칙을 개정 내지 삭제할 예정이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 폭을 제한하고 향후 수년간 30만-70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2010년 말에서 2011년 초 사이에 실업급여 범위 확대, 실업급여기준 완화, 조업시간단축제의 확대와 같은 위기 대응 수단이 종료될 예정이다. 많은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 대책의 경우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도입한 조업시간단축제의 경우 포괄 노동자 범위는 일부 상용직과 무기계약 노동자로 한정되어 있다. 반면 일용직을 비롯한 대부분의 비정규직의 경우 조업시간단축제의 적용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에도 파견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부분 실업, 또는 조업단축에 대한 임금보전 보조금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또한 조업시간단축제가 임금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효과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없지만, 대체로 생산감소에 따른 실질임금 삭감의 효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우, 주로 파견직과 같은 비정규직이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의 집중적인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임금신축성을 높이는 방안이 노사정 협약으로 체결되었다. 프랑스도 합의해지라는 보다 신축적인 해고 방안을 법제화했고, 영국도 기존의 법안을 개악하여 노동신축화를 강화하는 과정이다.

세계 주요 노조의 경제위기 대응: 지역ㆍ국가별 유형

이번 절에서는 노동조합의 경제위기 대응 사례를 유럽 노조의 코포러티즘, 미국 노조의 민주당 공조, 남반구 노조의 정치세력화로 유형화하여 살펴보겠다.
우선, 개별 민족국가 수준에서 볼 때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는 정부와 사용자 간에 거시적 타협이 이뤄졌다. 정부는 노조에 대해 고통스러운 개혁과정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대신 노조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형국이다. 기업 수준에서 볼 때, 노사 ‘고통분담’이 제조업 부문에서 특징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유럽에서는 단기 노동시간 조정 조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노동관계 입법, 실업 급여, 기업 지원 등에 있어 노사정 3자 합의 기구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유럽에서는 노사정 3자간 논의가 재활성화 됐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과거에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대화’가 제기되었고, 이는 일국 수준에서 노사정협약으로 귀결되었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의 노사정협약은 전형적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이었다. 최근 경제위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이 발견되고 있는데, 경제위기 대응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로 인해 ‘거시대화’는 노동신축화를 주요 의제로 한 3자 협상이 주를 이뤘다.
유럽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특히 일시 해고, 노동시간 단축, ‘부분실업 기금’(프랑스), ‘조업시간단축제’(독일) 등의 조치가 국가별로 다양하게 도입되었다. 이 조치들은 정부 재정지원을 토대로, 노조가 일정한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대신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노사정 타협책이다. 이 조치들은 위기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일 뿐만 아니라 회복 이후를 대비하는 조치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노사 모두의 합의를 원만하게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사간 또는 노사정 협약을 통해 위기에 대응한 사례들을 보면, 대개 위기가 일시적이라는 가정 아래 임시 조치에 합의한 것이 특징이다. 경제위기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이러한 임시 조치는 정부 재정이나 기업의 노동비용, 노동자의 임금 수입 모두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작년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는 대량해고와 임금삭감은 물론 긴축재정으로 인한 저성장-고실업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편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해고 비용이 높지 않고 노조가 분절화되어 있고 단체교섭이 분권화되어 있는 영국·아일랜드 또는 동유럽에서는 조업단축과 같은 위기 조치들이 주로 기업 차원 단체교섭을 통해 시행되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대선 국면에서 미국 노동조합의 주된 전략은 오바마의 친노동정책에 대한 지지와 로비였다. 2008년 대선에서 미국노총(AFL-CIO)과 2005년 미국노총으로부터 분리한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은 공히 오바마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오바마 당선과 친노동계 인사인 힐다 솔리스(Hilda Solis)의 노동부장관 발탁 등으로 한껏 고무된 노조가 오마바 정부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lyment Free Choice Act, EFCA)의 입법화였다.
그러나 현재 노동조합의 오바마 정부에 대한 낙관주의에는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 단적으로, 노조의 대정부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노동자자유선택법과 이주제도 개혁은 줄곧 유예되어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자체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공식 실업률이 10%를 상회하고, 금융위기의 충격은 주택문제 등 노동자계급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노조 내부의 분열도 큰 위기 요소다. 대표적으로 미국 노동조합의 대표적 조직인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조직 내분과 부패 스캔들이 노조운동의 정당성을 침식하고 있다. 이는 SEIU의 조직화 중심 전략의 이면에 도사린 실용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 한편 노조는 오바마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여 이들을 조직화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노동조합의 조직률 제고라는 목표에 종속되어 있을 뿐 이주노동자의 주체역량 강화라는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끝으로, 북반구 주류 노조운동의 퇴조기에 사회운동 노조주의로 새롭게 주목받은 브라질노총(CUT)과 남아공노총(COSATU)의 최근 경제위기 대응 현황을 살펴보자. 이 두 노조는 남반구 노조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정치세력화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먼저 브라질노총의 경우, 주요 관심사는 2010년 대선 승리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브라질노총을 위시한 노동자운동은 룰라 정부가 수행한 재분배 정책과 노동조합에 호의적인 정치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사고해왔다. 대선과 별개로 브라질 노동자운동이 2010년에 집중하려 하는 것은 노동조합 교섭의 포괄범위를 확대하고, 작업장 수준에서 현장 활동을 안정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노동당에 의해 8년째 유지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여전히 보수당이 다수당인 관계로 대부분의 노조 관계법이 예전 수준에서 개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브라질노총의 상황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모순을 보여준다. 브라질노총의 ‘신노조주의’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브라질노동자당(PT)은 룰라의 대선 도전이 번번이 실패하자,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집권 전략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당은 중간계급을 포괄하는 계급연합 전략을 추구하였고, 노동조합 역시 노동자들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호응하여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했다. 브라질이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2002년에 다시 경제위기에 직면할 때 노동자당은 경제위기 담론을 발전시켜 변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위기의 심화를 부정하며 사회안정과 현상유지를 추구했다. 그 결과 2002년 집권한 룰라 정부에서 은행 및 기업 국유화와 같은 좌파 고유의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다. 물론 룰라 정부의 우경화는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제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된 외채 규모, 공공 부채와 재정적자 누적, 무역수지 악화와 산업 기반 훼손과 같은 경제 여건은 노동당 집권의 원인인 동시에 룰라 정부 정책대안의 제약 요소가 되었다. 또는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 사회정책과 통화주의적 긴축재정 정책 사이의 모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노총에서는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와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사이의 대립이 첨예해졌다. 일부 좌파는 브라질노총으로부터 분리해서 별도의 노총을 결성했다. 브라질노총 좌파는 노총이 룰라 정부의 방어와 2010년 대선 승리를 위해 룰라 정부의 프레임을 답습하는 것이 개량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2005년 타보 음베키가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대표하여 대통령이 된 이후 ANC 내에서 심각한 좌우 분파 투쟁이 발생했다. 음베키는 ANC의 좌익 노선을 비판하며,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남아공노총 내부 노선 투쟁 속에서 좌파 진영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결과 2007년에는 남아공공산당(SACP)과 노총의 공식적 사회 개혁 노선이었던 성장 고용 재분배에 관한 정책(GEAR, Growth, Employment And Redistribution)을 폐지하고 폴로콰네(Polokwane)선언이라 불리는 계급투쟁 기반의 이행 노선으로 좌선회한 상태다.
남아공노총은 현 경제위기를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진단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관점에 입각하여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남아공노총의 이러한 입장은 2007년 극렬한 ANC내 좌우 대결을 겪은 이후 노총 내 좌익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2009년 9월 개최된 남아공노총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이러한 내부 노선 투쟁을 반영하듯이 ANC, SACP, 노총 내 우파를 견제하기 위한 각종 결의들을 제출하고 있다. 가령 국민회의 지도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안들, 노총 내부에서 의회ㆍ노동자회사 등에 파견된 간부들에 대한 소환권과 통제, 부패에 대한 감시 방안들,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한 중간 간부들의 육성 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이어 남아공노총은 지난 해 10월 금융 위기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여, “노동자들이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데 비용을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전투력과 조직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남아공 내 경제 정책 및 전 세계 노동조합 운동과의 연대에 보다 정교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제위기 대응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공노총은 중앙은행(Reserve Bank)의 통화 정책 기조를 인플레이션 관리 최우선에서 고용과 복지 중심 기조로 변경하는 데 성공하였다.

평가와 시사점

실업에 대한 차악의 대안으로서 신축적 안전성
최근 경제위기 시기 유럽 노조의 대응은 대체로 교섭 대응을 통해 정리해고의 수준을 완화하거나 노동신축화를 수용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숙련노동력(‘ 인적자본’)을 유지함으로써 경기 호전 시 내부적 신축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자본의 논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독일에서는 △산업 차원의 단체협약을 통해 실시될 수 있는 노동시간 단축 △기업 차원의 단체협약으로 확립된 노동시간 계좌제를 통한 조업시간 단축 △그리고 국가 차원의 노동시장 제도를 통한 임금보존 등 다양한 조치가 연결되어 실시되고 있다. 즉 경제위기와 대량실업에 대한 차악의 대안으로서 유럽의 노조들은 ‘신축적 안전성’(flexicurity)을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축성’와 ‘안전’의 합성어로서 ‘신축적 안전성’(flexicurity) 개념은 노동시장의 신축화와 노동의 이동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소득 및 사회적 안전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의미한다. 신축적 안전성의 기본 원칙은 유럽연합의 성장 및 고용 전략의 중심적 요소와 같은 맥락에 있다. 또한 신축적 안전성은 높은 수준의 노동력 훈련에 기반을 두고 있고, 사회적 파트너의 역할과 관련하여 고용안전성과 노동시장 분절화 감축과 결합된 신축성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은행, 세계노동기구(ILO)와 같은 국제기구들도 경제위기와 실업에 대한 해법으로 신축적 안전성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일자리의(job) 안전성보다는 노동자의 고용 또는 ‘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의 안전성을 강조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신축적 노동시장을 장려하고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변화에 적응하는 수단, 즉 노동시장에 머무르면서 노동 생애를 진보시킬 수단이 주어졌을 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축적 안전성 모델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조하는 한편 평생 학습과 훈련을 추동하고 구직자 지원, 남녀평등을 포함한 노동시장 내 기회 균등을 지지한다.
최근 금속노조는 독일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난 고용안정협정을 경제위기에 대한 유효한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요지는 독일의 고용안정협정이 △기업위기에 대한 노사의 공동인식에 기반하고 노동자의 연대적 실천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일자리안정과 산업입지역량의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사의 전략적 타협의 산물이다 △산별교섭체계와 법제도적 보완조치가 병행되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독일 노사관계의 전통(특히 유럽 통합 과정에서 독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에 대해 맹목적이라는 문제도 있을뿐더러 경제위기 아래 고용안정의 대가로 노동신축화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동시간 계좌제는 연간 단위의 변형근로제라고 볼 수 있고, 초과근무 수당을 사실상 폐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 효과가 서구에 비해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다. 장시간의 잔업ㆍ특근을 통해 부족한 임금을 보충하던 상황에서 잔업ㆍ특근만 줄어도 노동시간 감소율에 비해 임금 감소율이 훨씬 더 클 것이고 노동자는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노동시장 내에서 ‘이동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동자 스스로 기술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대안은 결국 독일식 ‘사회적 파트너십’ 모델로 귀결되는데, 이는 ‘새로운 사회협약’을 통해 단체교섭의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한다는 구상과 연결되고 있다. 한편 신축적 안전성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곤 하는 ‘네덜란드 모델’은, 특히 여성노동력 활용을 목표로 파트타임 일자리 확대를 통해 ‘일과 가사의 양립’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맞벌이 부부의 ‘1.5 job’).

단체교섭의 분권화와 양보교섭
이러한 노조운동의 코포러티즘은 20세기 서구 노조주의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한다. 유럽 노조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임금정책을 수용함으로써 성장기 동안 생산성 증가에 따른 임금 인상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아들였으며, 그 대가로 국가를 매개로 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장시키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서 독일 코포러티즘 모델은 강력한 국가주도 산업화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중상주의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불황기 임금정책을 수용하는 노조는 노동자 내핍 강제기구로 전환되어 지속적인 임금억제를 정당화하게 된다. 이에 대한 자구노력으로 노조는 직업훈련을 담당함으로써 숙련을 향상시키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통해 내부노동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또 높은 조직률과 강력한 중앙교섭을 바탕으로 하는 연대임금 및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특징지어지는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 역시 재정확대가 아니라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인플레 없는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이에 대한 반경향으로 나타난 금융화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기초로 한 자본과 노동의 타협의 물질적 조건 및 제도를 해체하고 그 결과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를 동반해왔다. 산업이윤율의 하락으로 인한 생산의 침체와 금융비용의 증가에 직면하여 경영자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을 재배치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고임금과 실업의 동시적 원인으로 노동조합의 경직성이 지적되고, 고용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용 및 임금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확립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시장의 신축성을 높이고 노동의 이동성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부가되었다.
그러나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대체로 고용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양보교섭을 선택했다. 이는 자본축적의 성장기에 인정받았던 노조의 교섭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불황기에 기존 노조의 헤게모니의 물질적 토대가 해체되고 상대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양적ㆍ질적으로 증가하면서, 노조는 더 이상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기존의 제도적 관행을 유지하려는 노조의 노력은 종종 노동자운동 내에서 내핍과 고통분담을 강제하는 역설로 드러났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 내부의 이질성과 분절화가 심화되고 있다.
미국노총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대체로 선임권 규정과 같은 기존의 제도적 안정성을 유지한 가운데 임금과 같은 쟁점에서 일정한 양보를 제공하는 양보교섭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기본적으로 노조의 교섭력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키며, 그 결과 조합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도 점차 축소시키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교섭력 증대가 관건이 되고, 교섭력 증대의 전제 조건인 조직률 상승이 주요한 목표가 된다. 이는 영미권에서 종종 ‘신노조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조직화 노선으로 수렴되었다. 조직화 노선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노조간 통합, 특히 군소 노조의 흡수를 통한 조직률 증가 전략이다. 이러한 시도는 종종 전국적 규모의 ‘조직화 학교’나 ‘지역 사회 캠페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이념적 혁신 없이 조직률 상승이라는 실용적 목표에 종속된 조직화노선은 앞서 SEIU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문제를 파생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단체교섭의 분권화 양상이 뚜렷해졌다. 가령 독일은 전체 단체교섭에서 기업별 협약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대 대폭 증가했고(1990년 27%→2000년 39%), 노조가 없어서 단협 적용을 받지 않는 기업 또는 직장협의회도 없는 기업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사용자단체의 조직률 하락과 병행한다. 또 산별협약에서 기업 수준 노사에 근로조건 결정권의 일부를 위임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1980년대에는 노동시간에 대해, 1990년대에는 임금에 대해 개방 조항이 적용). 이 과정에서 노조는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신축성 확대를 교환하고 숙련 향상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자초하고 있다. 1995년 ‘일자리를 위한 동맹’, 1998년 ‘일자리, 직업훈련, 경쟁력을 위한 동맹’과 같은 사회협약이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스웨덴의 경우 제조업 중심의 제1노총(LO)의 독점적 지위가 축소되고 사무직노총(TCO)-전문직노총(SACO)과의 중앙 단체교섭이 분리되면서 연대임금 정책이 붕괴했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유럽 노조의 대응은 대체로 위기와 일정한 조정기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코포러티즘으로 수렴되어 왔다. 특히 유럽통화동맹으로의 이행기인 1990년대 말에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신 사회협약이 체결되면서 국가적 수준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이(혹은 경쟁적 코포라티즘) 확립되었다. 이 사회협약의 특징은 △생산성 증가 이하로 임금 수준을 유지하고, △산업부문에서 기업수준으로 임금협상을 부분적 개방하고, △높은 임금편차를 수용하는 것을 기초로 임금 억제 정책을 노조가 승인하고, △그 토대 위에서 노동시장의 신축화와 사회보장 및 조세제도를 친기업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코포러티즘인가 단체교섭의 초민족화인가
유럽 통합 과정에서 유럽 각국이 민족국가 수준에서 임금 억제 정책이 실행 가능했던 것은 대량실업으로 인한 노조의 협상력 저하와 같은 조건 외에도 유럽화폐동맹의 ‘제도화된 화폐주의’가 바닥을 향한 경쟁을 추동했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수준의 사회협약-경쟁적 코포러티즘과 함께 기업 수준에서는 양보협약-경쟁적 기업동맹을 통한 ‘조직화된 분권화’가 일반화되었다. 즉 탈규제화된 금융시장, 강화된 시장경쟁, 대량실업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자본-노동 간(해외이전ㆍ투자재배치ㆍ해고위협), 초민족적법인기업 내부의 본부-자회사 간(생산성ㆍ임금ㆍ노동시간ㆍ작업조직 벤치마킹 강제), 주주-경영진 간(주주가치지향 단기 실적주의) 세력 관계의 변화를 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유럽 차원에서는 초민족적 수준에서 자본의 구조적 우위를 강조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유럽의 ‘상징적 코포러티즘’이 작동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이후 환율변동이 경제에 미치는 파괴적 효과가 지속되자, 화폐공급과 금융에 대한 탈규제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자 하는 통화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1978년 도입된 유럽화폐제도(EMS)는 회원국간 환율을 고정시킴으로써 환율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설정했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이 유럽화폐동맹(EMU)을 위해 제시한 경제정책 수렴기준은 민족국가 화폐주권의 소멸을 의미했다. 반면 화폐동맹에 상응하는 재정동맹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기술력과 생산성이 열세인 국가가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신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유럽화폐동맹이 부과하는 조건 속에서, 노동비용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격이나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한 요소로 간주되었으므로 국가들은 저마다 노동조건의 사회적 덤핑이나 임금덤핑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 산하 각종 기구에서도 경쟁 지향적 단체교섭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연합이사회(European Council)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ttee)가 기초한 ‘확대경제가이드라인’을 채택했는데, 이는 임금인상을 생산성 성장 이하로 억제하고 지리적·직종별로 임금을 차등화하는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이와 더불어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이 임금 억제 정책에서 이탈할 경우 통화수단에 제한을 가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 노조들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처했다. 한편으로 유럽의 화폐ㆍ경제적 통합은 임금과 노동조건에 경쟁을 부과하면서 점점 더 단체교섭의 기초 기능을 침식했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상위적 유럽 단체교섭 체계는 가까운 미래에서 출현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후반 무렵, 유럽 노조들은 단체교섭 정책에서 국경을 넘어서는 노조 간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단체교섭의 유럽화를 향한 새로운 접근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체교섭의 유럽화에 관한 초기의 이론적·정치적 논쟁은 대부분 유럽의 ‘사회적 대화’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유럽의 사회적 대화의 내용적 빈곤과 법적 완결성의 한계는 노조(사회·노동 표준에 대한 경쟁적 탈규제에 대항한 민족상위적 보호)와 사용자 단체(사회적 규제를 회피하고 국가간 경쟁을 활용한 이점을 누리고자 함)가 근본적으로 유럽의 사회적 대화에 대해 상이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와중에 1990년대 말 유럽금속연맹(EMF)을 비롯한 가맹 조직들의 발의에 따라 유럽노조연맹은 생산의 초민족화가 진전되면서 임금교섭이 더 이상 일국이나 특정 산업부문 이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유럽차원의 ‘단체교섭 조정’을 새로운 ‘유럽의 노사관계 체계’에 관한 주요 결의사항 중 하나로 채택하였다. 유럽노조연맹은 각국 단체교섭에 대한 권고사항을 담고 있는 단체교섭 조정을 위한 ‘유럽 가이드라인’을 채택, △정규 임금인상은 이윤과 임금 간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총임금 인상에 분배되는 생산성 비율을 최대화하면서 최소한 인플레이션을 초과해야 하며 △생산성 향상 잔여분은 단체협상의 여타 의제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임금이 평행적으로 인상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노조연맹은 이 가이드라인이 다음 목표에 부합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확대경제정책가이드라인과 유럽중앙은행의 화폐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수준에서 노조들이 임금협상의 일반 지침을 가질 수 있고 ‘거시경제적 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유럽에서 사회적ㆍ임금 덤핑과 임금의 분기를 막을 수 있고, △유럽 내에서도 임금 지불이 쉽게 비교될 수 있는 단일통화지역에서 임금 요구안을 조정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생활조건을 상향 수렴할 수 있다. 이러한 ‘임금 공식’의 활용은, 임금인상이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노조로 하여금 유럽 수준에서 임금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또한 가이드라인은 유럽에서 단체협상 결과에 대한 비교평가를 위한 분명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유럽노조연맹이 ‘사회적 유럽’을 상징적 매개로 하여 노동3권의 초민족화를 추구하는 것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양하기 위한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통합의 신자유주의적 본질과 코포러티즘의 잠재적 위험을 차치하더라도, 유럽 차원의 노사관계가 그 목적과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실상 유럽연합은 사회적 파트너로서 어떤 권위 있는 대화당사자(즉 노사정)도 없으므로 최소한의 실체를 가진 정교한 형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운동과 결합하지 못하면 현실과 괴리되면서 거버넌스의 하위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노조운동의 이념과 지향
그렇다면 경제위기 시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이념과 지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노동조합은 일차적으로 방어적 조직이다. 즉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착취에 맞서 임금인상·노동시간단축·노동조건개선이 노조의 일상적 방어투쟁의 과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어투쟁의 방식이다. 즉 노동조합의 활동이 연대지향적인 방식인가, 아니면 자기중심적 방식인가라는 쟁점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방어투쟁의 특정한 방식은 ‘노조주의’를 통해 표현된다. 노조주의는 특정한 조직형태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이념과 노선을 포함한다. 노조주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동반하지만 ‘정치노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조합 내에서 노동자대중이 어떤 형태로 스스로를 조직하며, 활동가들은 어떠한 지향과 활동방식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지침에 가깝다. 따라서 노조주의는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의 조직과 활동 노선을 포함한다. 즉 노조주의는 노동조합 일반에 관한 특정한 이론이나 관념을 동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조주의 내에서 사회운동적인 요소를 추출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대중 내부의 계급적 통일성을 증가시키고, 내적 배제를 제거한다는 기본적 이념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이념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감으로써 노동자 전체의 통일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전략으로 나타나며, 종종 노동조합으로 포괄되지 않는 실업자 운동이나 여타 민중부문과의 연계 전략을 동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이나 양보교섭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을 자초하는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례로, 전미자동자차노조(UAW)는 경제위기가 가시화된 2007년 단체협약에서 기존보다 낮은 임금에 합의했다. 이로써 UAW 가입 노동자 고용에 드는 비용은 미국 내 조업 중인 아시아계 자동차 회사인력의 수준과 동일하거나 적은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 조항이 현 조합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되 현 UAW 조합원의 퇴직에 따른 신규 대체인력 채용 시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UAW는 저비용의 ‘미래 노동계약’을 마련함으로써 현 조합원의 생활수준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기업을 살릴 급부를 제공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일 폴크스바겐의 경우, 정규직에 대한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가로 세계 전역의 공장에서 다수의 비정규직이 해고되기도 했다.
2007-09년 세계 금융위기와 최근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의 재정위기가 폭발하면서 노조의 대응은 더욱 방어적으로 경도되는 인상이다. 특히 노조의 대응이 개별 기업이나 민족국가 수준에서 고착되면서 세계화ㆍ지역화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을 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념적 전망의 소실과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노조의 이념적·조직적 혁신 전략이 역시 아직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과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0년 들어 발발한 남부유럽 재정위기는 해당 국가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과 함께 유럽 각국의 긴축재정으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 나아가 유럽 금융기관의 부실 확대로 인한 세계적 금융위기 가능성을 동시에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가 2007-09년 금융위기에 이어 다시 한 번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단기간 안에 경기침체가 재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윤율 궤도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기가 재발하면서 경제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설령 경기가 일정하게 회복된다 하더라더 ‘고용 없는 성장’이 되리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민중적 대안의 모색이 노조운동의 부활에서 결정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이념 속에서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는 단체교섭의 행위자로서 노조가 사회·정치운동의 주체로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민족국가적 전략과 세계적 전략 사이의 가교를 놓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금융위기에 대한 세계 사회운동의 국제적 대응 속에서 노조는 초민족적 수준의 노동의 대표이자 사회ㆍ정치적 행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밖에 중국 노동자들의 최근 투쟁 사례서 보듯이 초민족적법인기업에 대한 각국 노조의 공동 대응과 국제적 네트워크의 건설이 시급한 과제로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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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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