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확산 정책과 한미동맹의 현주소
세계적 파트너십의 제도적 완성
지난 10월 13일부터 이틀간 처음으로 한국이 주관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훈련이 실시됐다. 13일에는 한국, 미국, 일본을 비롯해 14개국 대표들이 참가해 국가별 PSI 정책과 해상차단 절차를 논의하는 비공개 세미나가 열렸다. 14일에는 한국 해군 구축함 2척과 지원함 2척, 해경 경비정 3척을 비롯해 미 해군의 이지스함과 일본 자위대 구축함 2척 등이 참가하는 해상차단 훈련이 부산 앞바다에서 실시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은 PSI의 운영위원회라 할 수 있는 운영전문가그룹에 참여하기로 결정, 향후 PSI 관련 훈련과 활동이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PSI는 반확산 정책의 대표적 예다. ‘반(反)확산’이라는 개념은 9.11 테러 이후 급부상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품의 수출통제가 중심이 되는 기존의 ‘비확산’ 정책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에 한계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불량국가나 집단의 대량살상무기 능력 자체를 와해시킨다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PSI 적극 참여, 이란 제재 동참 등 미국이 주도하는 반확산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어찌 보면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 영해에 일본 자위대를 들여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실익도 없이 한국 기업에 피해만 주는 것으로 보이는 이란 제재 조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PSI, 이란 제재, 한미안보협의회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PSI
PSI는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의 흐름을 중간에서 ‘차단’한다는 것으로, 기존의 소극적인 수출통제만으로는 불량국가 간 또는 불량국가와 테러리스트 집단 간의 대량살상무기 거래를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종의 국제 협력체제다. 2003년 5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안, 같은 해 9월 11개국(네덜란드, 독일, 미국, 스페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일본,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이 ‘PSI 차단원칙’에 관한 합의문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가 이동하는 것을 PSI 참여국들이 공동으로 차단하는 것이 합의문의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참여국 간에 정보가 공유되며, △관련해 훈련이나 실제 작전이 벌어질 때 물자나 군대지원 같은 협조를 해야 하고, △PSI 체제와 일관되게 자국의 법을 손봐야 하며, △PSI와 관련된 국제법이 논의될 때 PSI가 강화되는 쪽으로 의견을 내야 한다. PSI에는 2010년 현재 9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지난 해 5월 26일부터 정식 참여하고 있다.
PSI는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필요시 무력 사용도 불사하는 공격적인 조치다. 그러나 의혹만으로 해당국의 승인 없이 제3국이 공해상의 선박을 차단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해양법 협약 87조는 공해상에서는 해적행위와 같은 범죄행위를 하지 않은 선박을 멈추거나 검색할 수 없는 자유항행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동 협약 17, 19, 23조는 공해는 물론 어떤 나라의 영해라 할지라도, 그 나라에 피해(조업, 오염, 정보수집, 군사훈련 등)를 주지 않는 한 방해를 받지 않고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권리인 무해통항권을 보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군사인원과 무기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정전협정 2조 13항과, 적대행위와 봉쇄를 금지하고 있는 동 협정 2조 14-16항에도 위배된다. 해상에서의 국경이 정해지지 않아 군사적 충돌이 반복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력 사용까지 불사하는 차단 조치는 정치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 한국 정부는 PSI 정식 참여가 아닌 옵저버 자격을 유지해왔다. 지난 2006년 10월 국회에 출석한 유명환 당시 외교부 1차관은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PSI를 이행한다면 군사적 대치 상황에 있어서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난 해 4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발사한 4월 5일,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PSI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 것이므로 정부는 전면 참가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 밝혔다. 인공위성과 장거리 미사일은 기술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고조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UN의 제재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며 북한이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이를 빌미로 이명박 정부는 PSI 전면 참여를 강행했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
PSI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핵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올해 4월 6일 발표된 미국의 2010년 <핵태세검토 보고서>(NPR)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NPR은 향후 5-10년간 유지될 미국의 핵정책과 전략, 목표와 전력 태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전략과 핵억지력, 비확산과 핵군축 등 핵에 관련된 기본 입장이 결정된다. 냉전 이후 1994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발표된 이번 NPR이 ‘핵심 계획’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이다. 이를 위해 핵 물질 밀수의 탐지, 차단 능력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확보, 사용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거나 허용하는 행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핵 물질 밀수의 탐지와 차단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PSI다. 핵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일종의 ‘깡패 짓’이 헤게모니 국가의 정책상 핵심적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NPR 발표 직후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국제적으로 관철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4월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핵 테러리즘은 국제 안보에 가장 도전적인 위협 중의 하나이며, 강력한 핵 안보 조치는 테러리스트, 범죄자, 혹은 다른 비승인 행위자들이 핵 물질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밝혔다. 또한 “불법적인 핵 거래에 대해 효과적으로 예방, 대응하기 위해 국가 간 협력…(중략)…핵 탐지, 수사, 법 강화, 신기술 개발과 같은 관련 영역에서 양자, 다자간 체제를 통해 국제법, 절차 관련 정보와 전문 지식을 공유할 것”이라 밝혔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핵 없는 세계’는 이른바 불량 국가나 테러 집단이 핵무기를 입수하여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위협하며, 기존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권 지위를 침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핵 테러 없는 세계’라는 것이 밝혀졌다. 더불어 2012년 서울에서 두 번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로 합의되면서 한국이 미국의 반확산 정책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과 한국
한국이 미국의 반확산 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시행된 이란 제재 조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지난 7월 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포괄적 이란제재법’에 서명하면서 추가적인 이란 제재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월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 이행 관련 조처’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이란혁명수비대를 포함 이란의 단체와 기관 102곳과 개인 24명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 조처로 한국의 모든 기관과 개인은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는 금융제재 대상자와 어떠한 금융거래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이번 조처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것일 뿐이라 주장하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제재를 통해 영업정지 조치를 당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번 조치가 실질적으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폐쇄로 가는 수순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핵심적으로 이번 이란 제재가 미국의 아인혼 제재조정관이 한국-일본-중국을 방문한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정책에 적극 동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을 살펴보자.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이란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거나 정유제품 및 정제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의 미국 시장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란의 주요 재정 수입원인 에너지 부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기업을 미국 금융시장에서 배제하여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효과를 높이겠다는 노림수다. 미국은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첫 번째 경제제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란에 다양한 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과 미국을 제외한 유럽이나 중국 등 교역 라인의 다양화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란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제3국 기업의 이란 거래, 특히 에너지 생산과 관련된 부분의 투자를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포괄적 이란제재법이 1996년 발효된 ‘이란제재법’에 더해 ①물품, 서비스, 기술 등을 제공하여 이란의 정제유 국내 생산에 기여한 경우, ②이란에 정제유를 제공하거나 이란의 정제유 수입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에 관여한 경우를 제재 대상에 추가하여 △미국 내 외환시장 접근 금지, △미국 은행 시스템 접근 금지, △미국 내 자산거래 금지를 명시한 것에서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다.
한미안보협의회의와 한미동맹
지난 10월 8일 워싱턴에서 4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열렸다. SCM은 한반도 안보와 관련된 제반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 회의다. 이번 회의에서 한미 양국의 국방장관은 <전략동맹2015>, <한미 국방협력지침>, <전략기획지침>에 합의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전략동맹2015>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대비한 새로운 동맹 군사구조, 연합방위능력 제고, 주한미군 재배치, 방위비 분담 등에 대한 추진계획과 발전방안을 담고 있다.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라 양국 간 새로운 동맹 체제를 확립하고 긴밀한 군사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한미 국방협력지침>은 2009년 6월에 발표된 ‘한미동맹 미래비전’을 국방 분야에서 구체화시킨 것인데, 한반도에서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동시에 지역 및 세계 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협력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의 군사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전략기획지침>은 국방부 차원에서 작전계획 수립과 발전의 준거를 제시하는 문서로, 향후 한미군사위원회는 이 지침에 입각해 작전계획 작성과 관련한 전략 지시를 양국 합참에 하달하게 된다. 이번 지침은 기존의 작전계획을 대체하여 북한의 비대칭위협, 국지도발, 전면전 등 광범위한 위협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작전계획5015>를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SCM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불안정 사태’를 처음으로 언급하여 북한 급변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빌미로 전시가 아닌 평시에 선제적인 군사작전을 펼친다는 <개념계획5029>가 실제 작전계획으로 발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양국 간의 이러한 합의는 변화된 한미동맹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공동성명 7항은 ‘양 장관은 평화유지활동, 안정화 및 재건지원, 인도적 지원 및 재난 구조를 통한 협력을 포함하여 상호관심사항인 광범위한 범세계적 안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을 계속 증진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고 적시했다. 한미동맹은 이제 그 개념에 있어서도 한반도의 방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반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이는 한국 정부가 작년 말 국회의 사전 동의 없이도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한 일명 ‘PKO 신속파견법’을 제정하고, 올해 7월 1일에는 1천여 명(예비지정부대와 별도지정부대를 포함하면 3천여 명) 규모의 파병전담부대를 만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제 한국 군대는 세계 안보의 증진이라는 명목 아래 더욱 적극적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행하는 전쟁과 학살, 폭력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한국 군대가 한반도 방어라는 굴레를 벗고,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유지의 첨병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글로벌화’가 제도적으로도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강화는 한반도에 매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공격적인 작전계획의 수립과 이를 바탕으로 거듭되는 위협적 군사훈련, PSI와 같은 고립ㆍ제재 조치는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증폭시키고, 상호 폭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군대가 된다는 것은 일찍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위협에 놓이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투쟁이 파병된 군대의 철군만이 아니라 한미동맹 자체를 끝장내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SI는 반확산 정책의 대표적 예다. ‘반(反)확산’이라는 개념은 9.11 테러 이후 급부상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품의 수출통제가 중심이 되는 기존의 ‘비확산’ 정책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에 한계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불량국가나 집단의 대량살상무기 능력 자체를 와해시킨다는 적극적인 개념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PSI 적극 참여, 이란 제재 동참 등 미국이 주도하는 반확산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어찌 보면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 영해에 일본 자위대를 들여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실익도 없이 한국 기업에 피해만 주는 것으로 보이는 이란 제재 조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PSI, 이란 제재, 한미안보협의회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PSI
PSI는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의 흐름을 중간에서 ‘차단’한다는 것으로, 기존의 소극적인 수출통제만으로는 불량국가 간 또는 불량국가와 테러리스트 집단 간의 대량살상무기 거래를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종의 국제 협력체제다. 2003년 5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안, 같은 해 9월 11개국(네덜란드, 독일, 미국, 스페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일본,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이 ‘PSI 차단원칙’에 관한 합의문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가 이동하는 것을 PSI 참여국들이 공동으로 차단하는 것이 합의문의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참여국 간에 정보가 공유되며, △관련해 훈련이나 실제 작전이 벌어질 때 물자나 군대지원 같은 협조를 해야 하고, △PSI 체제와 일관되게 자국의 법을 손봐야 하며, △PSI와 관련된 국제법이 논의될 때 PSI가 강화되는 쪽으로 의견을 내야 한다. PSI에는 2010년 현재 9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지난 해 5월 26일부터 정식 참여하고 있다.
PSI는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필요시 무력 사용도 불사하는 공격적인 조치다. 그러나 의혹만으로 해당국의 승인 없이 제3국이 공해상의 선박을 차단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해양법 협약 87조는 공해상에서는 해적행위와 같은 범죄행위를 하지 않은 선박을 멈추거나 검색할 수 없는 자유항행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동 협약 17, 19, 23조는 공해는 물론 어떤 나라의 영해라 할지라도, 그 나라에 피해(조업, 오염, 정보수집, 군사훈련 등)를 주지 않는 한 방해를 받지 않고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권리인 무해통항권을 보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군사인원과 무기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정전협정 2조 13항과, 적대행위와 봉쇄를 금지하고 있는 동 협정 2조 14-16항에도 위배된다. 해상에서의 국경이 정해지지 않아 군사적 충돌이 반복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력 사용까지 불사하는 차단 조치는 정치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 한국 정부는 PSI 정식 참여가 아닌 옵저버 자격을 유지해왔다. 지난 2006년 10월 국회에 출석한 유명환 당시 외교부 1차관은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PSI를 이행한다면 군사적 대치 상황에 있어서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난 해 4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발사한 4월 5일,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PSI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 것이므로 정부는 전면 참가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 밝혔다. 인공위성과 장거리 미사일은 기술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고조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UN의 제재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며 북한이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이를 빌미로 이명박 정부는 PSI 전면 참여를 강행했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
PSI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핵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올해 4월 6일 발표된 미국의 2010년 <핵태세검토 보고서>(NPR)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NPR은 향후 5-10년간 유지될 미국의 핵정책과 전략, 목표와 전력 태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전략과 핵억지력, 비확산과 핵군축 등 핵에 관련된 기본 입장이 결정된다. 냉전 이후 1994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발표된 이번 NPR이 ‘핵심 계획’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이다. 이를 위해 핵 물질 밀수의 탐지, 차단 능력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확보, 사용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거나 허용하는 행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핵 물질 밀수의 탐지와 차단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PSI다. 핵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일종의 ‘깡패 짓’이 헤게모니 국가의 정책상 핵심적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NPR 발표 직후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국제적으로 관철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4월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핵 테러리즘은 국제 안보에 가장 도전적인 위협 중의 하나이며, 강력한 핵 안보 조치는 테러리스트, 범죄자, 혹은 다른 비승인 행위자들이 핵 물질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밝혔다. 또한 “불법적인 핵 거래에 대해 효과적으로 예방, 대응하기 위해 국가 간 협력…(중략)…핵 탐지, 수사, 법 강화, 신기술 개발과 같은 관련 영역에서 양자, 다자간 체제를 통해 국제법, 절차 관련 정보와 전문 지식을 공유할 것”이라 밝혔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핵 없는 세계’는 이른바 불량 국가나 테러 집단이 핵무기를 입수하여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위협하며, 기존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권 지위를 침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핵 테러 없는 세계’라는 것이 밝혀졌다. 더불어 2012년 서울에서 두 번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로 합의되면서 한국이 미국의 반확산 정책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과 한국
한국이 미국의 반확산 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시행된 이란 제재 조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지난 7월 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포괄적 이란제재법’에 서명하면서 추가적인 이란 제재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월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 이행 관련 조처’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이란혁명수비대를 포함 이란의 단체와 기관 102곳과 개인 24명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 조처로 한국의 모든 기관과 개인은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는 금융제재 대상자와 어떠한 금융거래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이번 조처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것일 뿐이라 주장하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제재를 통해 영업정지 조치를 당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번 조치가 실질적으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폐쇄로 가는 수순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핵심적으로 이번 이란 제재가 미국의 아인혼 제재조정관이 한국-일본-중국을 방문한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정책에 적극 동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을 살펴보자.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이란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거나 정유제품 및 정제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의 미국 시장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란의 주요 재정 수입원인 에너지 부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기업을 미국 금융시장에서 배제하여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효과를 높이겠다는 노림수다. 미국은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첫 번째 경제제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란에 다양한 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과 미국을 제외한 유럽이나 중국 등 교역 라인의 다양화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란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제3국 기업의 이란 거래, 특히 에너지 생산과 관련된 부분의 투자를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포괄적 이란제재법이 1996년 발효된 ‘이란제재법’에 더해 ①물품, 서비스, 기술 등을 제공하여 이란의 정제유 국내 생산에 기여한 경우, ②이란에 정제유를 제공하거나 이란의 정제유 수입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에 관여한 경우를 제재 대상에 추가하여 △미국 내 외환시장 접근 금지, △미국 은행 시스템 접근 금지, △미국 내 자산거래 금지를 명시한 것에서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다.
한미안보협의회의와 한미동맹
지난 10월 8일 워싱턴에서 4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열렸다. SCM은 한반도 안보와 관련된 제반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 회의다. 이번 회의에서 한미 양국의 국방장관은 <전략동맹2015>, <한미 국방협력지침>, <전략기획지침>에 합의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전략동맹2015>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대비한 새로운 동맹 군사구조, 연합방위능력 제고, 주한미군 재배치, 방위비 분담 등에 대한 추진계획과 발전방안을 담고 있다.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라 양국 간 새로운 동맹 체제를 확립하고 긴밀한 군사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한미 국방협력지침>은 2009년 6월에 발표된 ‘한미동맹 미래비전’을 국방 분야에서 구체화시킨 것인데, 한반도에서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동시에 지역 및 세계 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협력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의 군사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전략기획지침>은 국방부 차원에서 작전계획 수립과 발전의 준거를 제시하는 문서로, 향후 한미군사위원회는 이 지침에 입각해 작전계획 작성과 관련한 전략 지시를 양국 합참에 하달하게 된다. 이번 지침은 기존의 작전계획을 대체하여 북한의 비대칭위협, 국지도발, 전면전 등 광범위한 위협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작전계획5015>를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SCM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불안정 사태’를 처음으로 언급하여 북한 급변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빌미로 전시가 아닌 평시에 선제적인 군사작전을 펼친다는 <개념계획5029>가 실제 작전계획으로 발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양국 간의 이러한 합의는 변화된 한미동맹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공동성명 7항은 ‘양 장관은 평화유지활동, 안정화 및 재건지원, 인도적 지원 및 재난 구조를 통한 협력을 포함하여 상호관심사항인 광범위한 범세계적 안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을 계속 증진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고 적시했다. 한미동맹은 이제 그 개념에 있어서도 한반도의 방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반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이는 한국 정부가 작년 말 국회의 사전 동의 없이도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한 일명 ‘PKO 신속파견법’을 제정하고, 올해 7월 1일에는 1천여 명(예비지정부대와 별도지정부대를 포함하면 3천여 명) 규모의 파병전담부대를 만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제 한국 군대는 세계 안보의 증진이라는 명목 아래 더욱 적극적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행하는 전쟁과 학살, 폭력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한국 군대가 한반도 방어라는 굴레를 벗고,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유지의 첨병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글로벌화’가 제도적으로도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강화는 한반도에 매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공격적인 작전계획의 수립과 이를 바탕으로 거듭되는 위협적 군사훈련, PSI와 같은 고립ㆍ제재 조치는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증폭시키고, 상호 폭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군대가 된다는 것은 일찍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위협에 놓이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투쟁이 파병된 군대의 철군만이 아니라 한미동맹 자체를 끝장내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