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하기 위하여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자
드디어 돌봄노동자들이 나섰다!
2010년 10월 16일 서울 보신각에서 <전국돌봄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2010년 3월 6일 개최되었던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의 후속대회로 3월의 결의와 연대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또 그간 개별적으로 진행되어온 제도 대응 투쟁과 노동권 보장 투쟁의 성과를 이어나가기 위한 자리였다. 사회서비스 제도는 저출산 고령 사회의 위기대응책이자 경제위기 시대의 일자리 정책으로 2006년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은 노동자 민중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보장과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확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사회서비스 제도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불능력에 따라 제공함으로써 보편적 제도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재생산의 위기 부담이 또다시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노동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돌봄노동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돌봄노동자들이 나서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자 고무적인 일이다. 이들의 투쟁이 당사자들이 모인 단 한 번 집회로 그치지 않으려면 <전국돌봄노동자대회>의 문제의식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 내에서 점차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투쟁이 현재 어느 위치에 왔는지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권리로 요구해 온 돌봄노동의 사회화
지금처럼 정부가 국가경쟁력 강화니 일자리 창출이니 하며 사회서비스라는 말을 남발하기 이전부터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여러 사회운동 단체의 투쟁이 있었다.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활동보조 서비스의 대상제한 폐지, 생활시간보장, 자부담 폐지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또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간병서비스 제도 마련을 위한 투쟁도 있었다. 간병서비스를 환자와 가족의 부담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에서 의료급여로 지급되도록 하고, 그동안 비공식부문으로만 존재했던 간병노동자 역시 병원에 직접 고용된 병원노동자로 공식화하도록 요구해왔다. 이 외에도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등과 같은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실천들이 있었다.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정부는 사회서비스 제도를 확충해 돌봄의 사회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고용, 복지 정책 하에서 사회서비스는 시장화되고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해졌다. 사회서비스 제도는 돌봄노동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또 정부는 ‘중고령 여성노동자에게 적합한 여성친화적 일자리’라든지, ‘경제위기시기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하여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값싼 일자리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이는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이는 돌봄노동자가 제대로 된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활동보조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이 1시간의 서비스 신청을 한다고 했을 때 시급 6,000원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활동보조인이 6,000원 벌이를 위해 왕복 2시간과 교통비를 지출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사회서비스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돌봄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하고, 각 제도마다 문제점이 많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를 개선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경제위기하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자리 찍어내기에만 바쁘다. 일자리 늘리기의 내용을 보면 더 문제다. 단시간 노동, 비정규직, 파견 노동 등 노동의 형태를 다양화하는 노동유연화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과 고용을 유연화하여 불안정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새롭게 늘리겠다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도 불안정한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지난 5월 6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발표한 사회서비스 육성 및 선진화 방안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고용 없는 성장 추세 속에서 사회서비스 분야가 일자리 창출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 하에 간병, 보육 등 돌봄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사회서비스를 일자리 ‘수’ 늘리기로만 접근할 뿐,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비공식영역의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하지만 비급여 항목에 포함한다는 것, 돌봄서비스 제공기관 육성을 위해 제공기관 지정제를 등록제로 전환하여 진입규제를 완화한다는 것, 보육 바우처 지원방식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보육료 지원을 효율화한다는 것,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재정누수 방지를 위해 ‘재가요양서비스 자동청구 시스템 사업’(RFID)을 도입하여 서비스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겠다는 것이 각 분야별 주요 내용이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돌봄서비스의 육성이란 결국 노동자들의 노동통제를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관련 민간 업체의 난립과 시장화를 부추기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후퇴할 것이다.
‘여성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를 넘어서기 위하여
전체 사회운동의 과제가 되지 못하고 있는 돌봄의 문제
정부는 저출산-고령 사회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며 사회서비스를 통해 여성인력을 활용할 조건을 만들고,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생색내고 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정부에 비해 운동진영의 대응은 그리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체 노동자운동은 돌봄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성의 문제라거나 복지차원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미조직된 돌봄노동자들을 왜,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 계획조차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운동진영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과 공명하며 일자리 창출로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회서비스 확충과 일자리 창출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왜 공적 영역에서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일자리 창출 담론에만 그친다면, 오히려 불안정한 일자리 양산에 동조하거나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돌봄노동의 사회화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가 아니라 시장화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로만 귀결될 것이다.
한편 주류 여성운동진영도 여전히 사회서비스 확충을 통한 ‘질 좋은’ 여성일자리 창출 구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가사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해 여성노동자를 파견하는 등 여성일자리를 알선하는 것으로 여성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성별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여성을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내몰고 있는 국가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격이다. 이러한 모습은 몇 가지 우려점이 있다. 먼저 여성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일자리를 일시적으로 늘릴 수는 있지만 여성일자리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착화되는 현실은 변화시킬 수 없다. 집안일의 연장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저평가된 영역을 다시금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로 고정함으로써 열악한 노동조건을 유지시킬 뿐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여성인력활용방안을 수용하며 저임금의 파견노동을 확산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우선적용하자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여성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여성단체들의 주장 역시 한계적이다. 돌봄노동자의 상당수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기 때문에, 돌봄노동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일부를 개선하자는 것은 실현 불가능할 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건강권을 제기하더라도 보다 구조적인 부분에서 돌봄노동을 이해하고 국가와 자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시장화와 이주화의 배경: 복지국가의 위기와 근대적 가족형태의 위기
현대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중심부 국가에서는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산업이 팽창되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을 특징으로 한 핵가족이 정착했다. 하지만 미국 헤게모니가 위기에 놓인 1970년대 이래 국가는 더 이상 복지국가의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고, 중산층의 이상적 모델이었던 근대적 가족형태 역시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어졌다. 수익성의 위기를 맞은 자본은 노동 비용을 삭감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가족임금을 제공하던 일자리를 축소하고, 임금과 고용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여성을 노동시장에 대대적으로 편입시켰다. 자연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에 따라 발생한 재생산 노동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동시에 그동안 자본에 포섭되지 않았던 재생산 관련 영역들을 이윤의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산된다. 돌봄노동의 상품화와 시장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돌봄노동자가 위계화, 이주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중심부 여성들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에 따른 재생산 노동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할 여성이 필요했고, 이주 여성노동자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는 노동력 집단이 되었다. 나아가 이주 여성노동자의 모국에서의 빈자리는 더욱 낮은 임금으로 현지 여성노동자가 채워나가게 되었다. 이런 과정은 여성 간의 위계와 성-인종 간의 불평등 문제를 동시에 안은 채로 국제적인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고, 위계체계의 하층으로 갈수록 가족 내 재생산 노동은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노출된다.
세계 경제에서 작동하는 국제적 노동분업이 단지 생산에 국한되지 않고 재생산까지 포함한다는 것과 인종, 계급, 민족을 포괄하는 여성들 간의 위계화가 돌봄의 국제이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유의미하게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의 상황: 서비스부문 육성을 통한 자본주의 위기관리 전략
미국자본주의의 형성과 서비스업의 발달과정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는 과정이 미국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추진과 함께 서비스가 팽창하고, 공공서비스가 상품화되며, 여성노동력이 대거 투입되었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서비스 부문은 1990년대 이후 10여 년 사이 급속하게 팽창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급속히 중심이 이동하면서 고용구조가 변화되었다.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고용 증가가 둔화되고,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슬림화와 아웃소싱이 이루어지며 비정규직 고용과 실업이 증가했다. 그리고 개인서비스부문은 확대되었다. 비공식부문이었던 사회서비스는 2000년대 들어 제도화 논의가 시작된다. 한국은 국가가 돌봄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한 역사도 없고, 재정책임도 매우 제한적으로 져왔다. 그러다가 돌봄서비스를 사회서비스로 제도화하는 시점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돌봄서비스의 제도화가 등장한 것은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초기에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은 여성과 노동, 복지정책을 혼합한 형태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 사회의 위기, 가족 해체, 빈곤 심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가족의 해체와 사회 불안정을 막기 위한 복지 정책으로의 기능이 필수적이었다. 동시에 저출산, 고령화라는 조건 속에서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여성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도 중요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 사회서비스 확충에 대한 민중들의 바람과는 달리 사회서비스는 시장화되고, 비용을 다시 민중들에게 전가,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확산을 초래하고 있다. 또 여성들이 이중부담에서 전혀 자유로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성별분업 구조와 이데올로기는 건드리지 않으며 여성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다.
결국 사회서비스는 경제위기와 재생산의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전략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국가와 자본이 처한 위기 지점과 그 해결을 위해 내놓은 관리 정책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운동 전략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돌봄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작은 규모로나마 이어져 온 돌봄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를 이어가고, 자본과 국가에 맞선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음의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자. 생산과 재생산영역을 분리하고 너무 당연히 재생산 노동을 여성의 일이라 여겼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유급이든 무급이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임을 확인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거나, 개별 가족이 알아서 능력에 맞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로 인식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기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운동진영이 주장해온 ‘사회화’의 구호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멈추거나 국가를 상대로 법, 제도를 요구하는 실천에 한정될 수 있다. 한편 돌봄노동의 가치를 ‘사랑과 정성의 봉사’라거나 ‘여성이 모성을 발휘하는 일’의 범주에 두면서 노동자들이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면 돌봄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것이라는 생각도 바꾸어야 한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당연히 해당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건을 상승시킬 것이다.
둘째, 돌봄노동자들의 주체화, 조직화에 힘쓰자. 돌봄노동에 대한 재인식과 사회서비스 정책 비판의 일차적 주체는 돌봄노동자들이다. 아직 많은 수가 조직되어 있지 못하지만, 각 분야별로 네트워크나 모임을 만들며 조금씩 주체화되는 모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한편 한국에 이주해서 돌봄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여성들과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 돌봄노동이 세계적 차원에서 재생산 노동의 전달(혹은 전가) 고리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지점이 돌봄노동에 대한 재인식과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이라면 돌봄의 이주 문제 역시 주목해야 한다.
셋째, 돌봄노동의 문제를 전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제기하자. 돌봄노동의 사회적 재인식, 보편적 권리로 사회서비스,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는 돌봄노동을 화두로 한 단일 이슈 투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생산과 재생산 노동을 분리하고 재생산 노동을 여성에게 떠넘겼던 것과 재생산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했던 역사 등 현재의 돌봄노동이 위치하게 된 구조 전반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 간의 연대와 단결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이 사회변혁을 위해 주요 전제로 삼아야 하는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자본의 생산-재생을 둘러싼 전략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노동자운동이 직면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가정’ 영역의 노동, ‘여성에게 적합한 일’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를 주도해야 한다. 가정관리사, 가내노동자, 요양, 간병 등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자성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 돌봄노동이 주변적이고 하찮은 ‘비숙련’ 노동으로 여겨지며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착화되었던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제공자와 이용자로 대립하는 여성노동자 간의 분할을 막고, 공동으로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돌봄노동이 공식화된 맥락과 자본의 의도, 돌봄노동의 특성 등을 연구 분석하고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는 흩어져 있는 돌봄노동자들을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가입시킴과 동시에 돌봄노동자의 투쟁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 돌봄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운동에서 적극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돌봄노동과 관련된 제도를 비판하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확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 속에, 지배계급들의 복지국가 담론 속에, 돌봄노동자의 노동의 권리가 삭제되고, 민중들의 보편적인 권리로의 돌봄에 대한 요구가 고스란히 포섭되어버리지 않도록 이후 투쟁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이번 <전국돌봄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앞으로의 투쟁을 이어나가자.
2010년 10월 16일 서울 보신각에서 <전국돌봄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2010년 3월 6일 개최되었던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의 후속대회로 3월의 결의와 연대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또 그간 개별적으로 진행되어온 제도 대응 투쟁과 노동권 보장 투쟁의 성과를 이어나가기 위한 자리였다. 사회서비스 제도는 저출산 고령 사회의 위기대응책이자 경제위기 시대의 일자리 정책으로 2006년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은 노동자 민중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보장과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확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사회서비스 제도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불능력에 따라 제공함으로써 보편적 제도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재생산의 위기 부담이 또다시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노동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돌봄노동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돌봄노동자들이 나서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자 고무적인 일이다. 이들의 투쟁이 당사자들이 모인 단 한 번 집회로 그치지 않으려면 <전국돌봄노동자대회>의 문제의식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 내에서 점차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투쟁이 현재 어느 위치에 왔는지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권리로 요구해 온 돌봄노동의 사회화
지금처럼 정부가 국가경쟁력 강화니 일자리 창출이니 하며 사회서비스라는 말을 남발하기 이전부터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여러 사회운동 단체의 투쟁이 있었다.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활동보조 서비스의 대상제한 폐지, 생활시간보장, 자부담 폐지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또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간병서비스 제도 마련을 위한 투쟁도 있었다. 간병서비스를 환자와 가족의 부담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에서 의료급여로 지급되도록 하고, 그동안 비공식부문으로만 존재했던 간병노동자 역시 병원에 직접 고용된 병원노동자로 공식화하도록 요구해왔다. 이 외에도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등과 같은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실천들이 있었다.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정부는 사회서비스 제도를 확충해 돌봄의 사회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고용, 복지 정책 하에서 사회서비스는 시장화되고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해졌다. 사회서비스 제도는 돌봄노동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또 정부는 ‘중고령 여성노동자에게 적합한 여성친화적 일자리’라든지, ‘경제위기시기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하여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값싼 일자리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이는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이는 돌봄노동자가 제대로 된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활동보조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이 1시간의 서비스 신청을 한다고 했을 때 시급 6,000원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활동보조인이 6,000원 벌이를 위해 왕복 2시간과 교통비를 지출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사회서비스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돌봄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하고, 각 제도마다 문제점이 많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를 개선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경제위기하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자리 찍어내기에만 바쁘다. 일자리 늘리기의 내용을 보면 더 문제다. 단시간 노동, 비정규직, 파견 노동 등 노동의 형태를 다양화하는 노동유연화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과 고용을 유연화하여 불안정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새롭게 늘리겠다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도 불안정한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지난 5월 6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발표한 사회서비스 육성 및 선진화 방안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고용 없는 성장 추세 속에서 사회서비스 분야가 일자리 창출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 하에 간병, 보육 등 돌봄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사회서비스를 일자리 ‘수’ 늘리기로만 접근할 뿐,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비공식영역의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하지만 비급여 항목에 포함한다는 것, 돌봄서비스 제공기관 육성을 위해 제공기관 지정제를 등록제로 전환하여 진입규제를 완화한다는 것, 보육 바우처 지원방식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보육료 지원을 효율화한다는 것,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재정누수 방지를 위해 ‘재가요양서비스 자동청구 시스템 사업’(RFID)을 도입하여 서비스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겠다는 것이 각 분야별 주요 내용이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돌봄서비스의 육성이란 결국 노동자들의 노동통제를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관련 민간 업체의 난립과 시장화를 부추기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후퇴할 것이다.
‘여성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를 넘어서기 위하여
전체 사회운동의 과제가 되지 못하고 있는 돌봄의 문제
정부는 저출산-고령 사회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며 사회서비스를 통해 여성인력을 활용할 조건을 만들고,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생색내고 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정부에 비해 운동진영의 대응은 그리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체 노동자운동은 돌봄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성의 문제라거나 복지차원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미조직된 돌봄노동자들을 왜,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 계획조차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운동진영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과 공명하며 일자리 창출로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회서비스 확충과 일자리 창출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왜 공적 영역에서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일자리 창출 담론에만 그친다면, 오히려 불안정한 일자리 양산에 동조하거나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돌봄노동의 사회화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가 아니라 시장화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로만 귀결될 것이다.
한편 주류 여성운동진영도 여전히 사회서비스 확충을 통한 ‘질 좋은’ 여성일자리 창출 구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가사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해 여성노동자를 파견하는 등 여성일자리를 알선하는 것으로 여성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성별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여성을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내몰고 있는 국가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격이다. 이러한 모습은 몇 가지 우려점이 있다. 먼저 여성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일자리를 일시적으로 늘릴 수는 있지만 여성일자리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착화되는 현실은 변화시킬 수 없다. 집안일의 연장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저평가된 영역을 다시금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로 고정함으로써 열악한 노동조건을 유지시킬 뿐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여성인력활용방안을 수용하며 저임금의 파견노동을 확산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우선적용하자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여성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여성단체들의 주장 역시 한계적이다. 돌봄노동자의 상당수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기 때문에, 돌봄노동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일부를 개선하자는 것은 실현 불가능할 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건강권을 제기하더라도 보다 구조적인 부분에서 돌봄노동을 이해하고 국가와 자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시장화와 이주화의 배경: 복지국가의 위기와 근대적 가족형태의 위기
현대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중심부 국가에서는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산업이 팽창되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을 특징으로 한 핵가족이 정착했다. 하지만 미국 헤게모니가 위기에 놓인 1970년대 이래 국가는 더 이상 복지국가의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고, 중산층의 이상적 모델이었던 근대적 가족형태 역시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어졌다. 수익성의 위기를 맞은 자본은 노동 비용을 삭감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가족임금을 제공하던 일자리를 축소하고, 임금과 고용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여성을 노동시장에 대대적으로 편입시켰다. 자연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에 따라 발생한 재생산 노동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동시에 그동안 자본에 포섭되지 않았던 재생산 관련 영역들을 이윤의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산된다. 돌봄노동의 상품화와 시장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돌봄노동자가 위계화, 이주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중심부 여성들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에 따른 재생산 노동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할 여성이 필요했고, 이주 여성노동자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는 노동력 집단이 되었다. 나아가 이주 여성노동자의 모국에서의 빈자리는 더욱 낮은 임금으로 현지 여성노동자가 채워나가게 되었다. 이런 과정은 여성 간의 위계와 성-인종 간의 불평등 문제를 동시에 안은 채로 국제적인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고, 위계체계의 하층으로 갈수록 가족 내 재생산 노동은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노출된다.
세계 경제에서 작동하는 국제적 노동분업이 단지 생산에 국한되지 않고 재생산까지 포함한다는 것과 인종, 계급, 민족을 포괄하는 여성들 간의 위계화가 돌봄의 국제이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유의미하게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의 상황: 서비스부문 육성을 통한 자본주의 위기관리 전략
미국자본주의의 형성과 서비스업의 발달과정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는 과정이 미국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추진과 함께 서비스가 팽창하고, 공공서비스가 상품화되며, 여성노동력이 대거 투입되었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서비스 부문은 1990년대 이후 10여 년 사이 급속하게 팽창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급속히 중심이 이동하면서 고용구조가 변화되었다.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고용 증가가 둔화되고,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슬림화와 아웃소싱이 이루어지며 비정규직 고용과 실업이 증가했다. 그리고 개인서비스부문은 확대되었다. 비공식부문이었던 사회서비스는 2000년대 들어 제도화 논의가 시작된다. 한국은 국가가 돌봄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한 역사도 없고, 재정책임도 매우 제한적으로 져왔다. 그러다가 돌봄서비스를 사회서비스로 제도화하는 시점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돌봄서비스의 제도화가 등장한 것은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초기에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은 여성과 노동, 복지정책을 혼합한 형태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 사회의 위기, 가족 해체, 빈곤 심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가족의 해체와 사회 불안정을 막기 위한 복지 정책으로의 기능이 필수적이었다. 동시에 저출산, 고령화라는 조건 속에서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여성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도 중요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 사회서비스 확충에 대한 민중들의 바람과는 달리 사회서비스는 시장화되고, 비용을 다시 민중들에게 전가,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확산을 초래하고 있다. 또 여성들이 이중부담에서 전혀 자유로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성별분업 구조와 이데올로기는 건드리지 않으며 여성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다.
결국 사회서비스는 경제위기와 재생산의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전략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국가와 자본이 처한 위기 지점과 그 해결을 위해 내놓은 관리 정책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운동 전략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돌봄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작은 규모로나마 이어져 온 돌봄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를 이어가고, 자본과 국가에 맞선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음의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자. 생산과 재생산영역을 분리하고 너무 당연히 재생산 노동을 여성의 일이라 여겼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유급이든 무급이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임을 확인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거나, 개별 가족이 알아서 능력에 맞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로 인식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기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운동진영이 주장해온 ‘사회화’의 구호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멈추거나 국가를 상대로 법, 제도를 요구하는 실천에 한정될 수 있다. 한편 돌봄노동의 가치를 ‘사랑과 정성의 봉사’라거나 ‘여성이 모성을 발휘하는 일’의 범주에 두면서 노동자들이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면 돌봄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것이라는 생각도 바꾸어야 한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당연히 해당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건을 상승시킬 것이다.
둘째, 돌봄노동자들의 주체화, 조직화에 힘쓰자. 돌봄노동에 대한 재인식과 사회서비스 정책 비판의 일차적 주체는 돌봄노동자들이다. 아직 많은 수가 조직되어 있지 못하지만, 각 분야별로 네트워크나 모임을 만들며 조금씩 주체화되는 모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한편 한국에 이주해서 돌봄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여성들과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 돌봄노동이 세계적 차원에서 재생산 노동의 전달(혹은 전가) 고리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지점이 돌봄노동에 대한 재인식과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이라면 돌봄의 이주 문제 역시 주목해야 한다.
셋째, 돌봄노동의 문제를 전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제기하자. 돌봄노동의 사회적 재인식, 보편적 권리로 사회서비스,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는 돌봄노동을 화두로 한 단일 이슈 투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생산과 재생산 노동을 분리하고 재생산 노동을 여성에게 떠넘겼던 것과 재생산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했던 역사 등 현재의 돌봄노동이 위치하게 된 구조 전반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 간의 연대와 단결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이 사회변혁을 위해 주요 전제로 삼아야 하는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자본의 생산-재생을 둘러싼 전략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노동자운동이 직면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가정’ 영역의 노동, ‘여성에게 적합한 일’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를 주도해야 한다. 가정관리사, 가내노동자, 요양, 간병 등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자성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 돌봄노동이 주변적이고 하찮은 ‘비숙련’ 노동으로 여겨지며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착화되었던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제공자와 이용자로 대립하는 여성노동자 간의 분할을 막고, 공동으로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돌봄노동이 공식화된 맥락과 자본의 의도, 돌봄노동의 특성 등을 연구 분석하고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는 흩어져 있는 돌봄노동자들을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가입시킴과 동시에 돌봄노동자의 투쟁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 돌봄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운동에서 적극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돌봄노동과 관련된 제도를 비판하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확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 속에, 지배계급들의 복지국가 담론 속에, 돌봄노동자의 노동의 권리가 삭제되고, 민중들의 보편적인 권리로의 돌봄에 대한 요구가 고스란히 포섭되어버리지 않도록 이후 투쟁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이번 <전국돌봄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앞으로의 투쟁을 이어나가자.
돌봄노동자대회에 제출된 주체별 요구안
보육노동자
1. 보육공공성 실현
- 국공립 보육시설 전면 확충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 수립
- 국공립 보육시설의 단계적 직영화
2. 보육현장 인력 충원
- 8시간 노동인정에 근거한 2교대제 실시
- 보육노동자가 소수의 영유아에게 집중할 수 있는 노동구조 마련
- 보육교사/취사부 외 노동자들(사무인원, 청소인원 등)의 직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공식적인 일자리로 인정
3. 보육노동자 저임금 개선
- 국공립 시설과 민간 시설의 임금격차 해소
- 2010년 모든 보육노동자 임금 최소 10% 인상
4. 보육정책 결정 과정에 보육노동자 대표참가 보장
5. 보육노동자의 노동권 인정
6. 장애유아통합보육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조건 개선
요양보호사
1.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위반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
2. 보건복지부는 요양보호사 처우개선안을 마련할 것
3. 장시간 노동 근절, 8시간 노동 보장, 요양보호사 인력 확충
4. 근골격계 질환, 산재예방
5. 성희롱 예방, 요양보호사 안정보장
6. 가족가사업무, 부당한 업무 근절
7. 월급제 시행, 저임금 불안정노동 해결
8. 81만 명 요양보호사에게 생계형 일자리 제공
9. 시험제가 아니라 재교육이 우선, 보수교육 방안 제출
간병노동자
1. 간병서비스의 공식화 및 건강보험 급여화
2. 파견 대상 제외, 병원에서의 직접고용
3. 산재보험 등 간병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4.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문제 해결
5. 식사와 휴게공간 보장
활동보조인
1. 활동보조인, 코디네이터 지자체 직접고용
2. 월급제 도입
- 기본급 인정, 경력인정, 호봉 도입
3.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 기간 명시 삭제, 4대 보험, 수당, 퇴직금 명시
4. 장애유형에 대한 교육, 노동권 교육 의무화, 이용자에 대한 교육 의무화
5. 이동시간 노동시간으로 인정, 이용자를 위한 차량 이용 시 유류비 지급
6. 단말기, 동그리 실시간 결제 문제점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