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복지국가론 비판
사회투자전략론과 스웨덴 모델의 잘못된 조합
복지담론이 ‘대세’인 듯하다. 각 정당과 정치인마다 내세우는 복지담론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진보언론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담론 중 하나가 역동적 복지국가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매개로 진보진영이 대통합을 이루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는 2010년 2월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를 결성하는 것으로 가시화되었다. 일부는 복지국가 담론이 확대되도록 정책을 가다듬는 데 더 집중하자며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을 출범했다. 포럼의 주요 인사들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제안하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07년 7월 창립 당시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양극화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진보세력의 대안으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현재 100여 명의 전문가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며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논리와 전략>(2010, 도서출판 밈), <복지국가혁명>(2007, 도서출판 밈) 등에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영국식 자유주의 복지국가나 독일식 조합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아니라 북유럽식 보편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지향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은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의 4대 영역으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를 언급한다. 1)보편적 복지는 가난한 일부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하는 국민 모두가 복지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2)적극적 복지는 국민 개개인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인적, 사회적 자본을 확대, 강화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화, 이를 통한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성의 증대가 포함된다. 3)공정한 경제는 시장 만능주의가 아니라 시장과 경제제도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개입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화, 공정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구축, 산업자본에 조응하는 생산적?장기적 금융자본 체계, 금융의 공공성과 중소기업 지원체계, 협력적 노사관계와 노동권의 신장, 연대적?누진적 조세제도 등의 확립이 요구된다. 4)혁신적 경제로 지식기반경제를 제시하며 이것이 달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생산영역의 혁신을 언급한다.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응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사회 모델로 제시하면서 전체 사회구조, 의료, 육아, 노인, 빈곤, 장애인, 교육, 금융, 노동, 조세개혁에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장의 바탕에는 노동유연성을 수용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유연성을 수용하되 보편적 복지라는 안전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이 각 영역에서 제시하는 정책은 검토해볼만한 내용이 많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유연화를 제어할 수 없다면, 다양한 정책들은 보기 좋은 선물세트에 불과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먼저 역동적 복지국가담론의 ‘계보’가 무엇인지 추적하고,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맥락에서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가 조합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검토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언급한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변형될 수밖에 없었던 스웨덴 모델의 한계를 짚어본다.1)
사회투자전략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말은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 유럽이사회에서 등장했다. 리스본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리스본 전략은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경제로의 성장과 함께 사회통합과 고용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유럽’을 천명했다. 이는 지식기반경제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Magnusson, 2010). 그 구체적 방안은 유연안정성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로의 복지모델의 개혁이다. 유연안정성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합성어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이동의 증가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소득 및 사회적 안정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정책이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 또한 지식기반경제로의 변화, 생산의 혁신, 유연안정성을 제시한다.)
유럽이사회의 입장은 사회투자전략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투자전략론은 사회투자국가론과는 구분되는 사회투자담론의 또 하나의 축으로 에스핑-안델센, 테일러-구비,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이후의 유럽위원회 등이 이런 입장이며 적극적 사회정책론, 적극적 복지국가론으로도 불린다(김영순, 2007).
사회투자국가론은 1990년대 말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가 신자유주의도 전통적 사민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제시했던 것으로 그 핵심은 복지가 갖는 투자적 성격, 생산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전통적 복지국가론과 다른 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과세와 지출 대신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인적 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득보장을 선별적 제공한다(김영순, 2007). 전통적 복지국가담론이 복지를 시민권으로 봤다면 사회투자국가론은 ‘시민의 권리는 의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렇듯 사회투자국가론은 복지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정의한다. 반면, 사회투자전략론은 권리 개념과 같은 전통적 복지국가의 가치를 여전히 옹호하면서 복지지출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회투자전략론이 사회투자국가론과 다른 점은 소득보장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투자국가론과 사회투자전략론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이 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두 전략 모두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화정책, 노동유연화, 경제개방 확대를 수용한다. 다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역사적, 경제적 조건의 차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사회투자국가론이 부각되었고,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투자전략론이 등장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투자국가론자마저 사회투자전략이 사회투자국가론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천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다고 지적한다(양재진). 복지프로그램 내용 면에서 배치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보육, 교육, 장기요양 등 보살핌서비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
신자유주의에 의해 변형된 복지전략인 사회투자국가론이나 사회투자담론의 핵심에는 노동의 유연안정성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 역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유연안정성 추구를 명시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완전 고용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복지’가 시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고용은 복지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많은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직접 임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국가들이 전후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협약에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가로 복지를 확대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후 케인즈주의 경제에서 완전고용 원칙 하에 고용을 통해 소득을 획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출’의 형태로 제공되는 간접임금은 완전고용에 비해 부차적인 위상을 가졌다. 현재 ‘복지’가 중요한 위상으로 제기되는 것은 케인즈주의 이후 신자유주의로 넘어오면서 완전고용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요구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기되는 것이 유연안정성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말하는 ‘복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제한 뒤 적응력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복지’이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보편적’ 복지라 일컬어지더라도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의 위험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보완적’이다.
신보수주의가 빈곤층을 노동시장에서 영구배제시킴으로써 이들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택했다면 신자유주의는 배제된 실업자를 근로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경쟁의 계기를 마련한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실업자와 빈민이 자신의 노동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노동에 참여할 것을 자극한다는 더 적극적인 목표를 가진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신자유주의에 적합하게 일자리의 이동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근로연계복지처럼 강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능력강화(empowerment)라는 ‘자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또 목표대상도 등록된 실업자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비용과 지속시간도 다양하다.
이러한 전략은 노동자들의 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을 키우는 것을 일관된 목표로 설정한다. 고용경쟁력은 실업의 상태에서 훈련을 통해서 기술을 연마하고 다음 일자리를 더 잘 찾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실업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노동력의 질을 유지, 향상시켜야 하며 가급적 신속하게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저임금의 일자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들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과 복지수급 사이에 계속 머물게 된다. 즉, 고용경쟁력을 증가시키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노동연계복지를 적극 활용했는데 노동당이 선호했던 경제학자 라야드에 따르면 임금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산업예비군이 존재해야 하며 경쟁은 임금하향 합박을 유지하는 열쇠다. 산업예비군의 규모가 클수록 경쟁의 잠재적인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실업자다. 장기실업자는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실업자는 임금하향 압박에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산업예비군에 대한 자본가들의 관심은 언제든 다시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는 단기 실업자의 존재이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훈련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잠재적인 산업예비군’ 또는 ‘예비실업자’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잠재적 산업예비군’의 규모는 커지고 따라서 산업예비군의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실업률에 의존하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많으면 임금의 하향압박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1995년에서 2001년 동안 미국에서는 실업률은 4%대로 비교적 낮게 유지되었지만 임금상승률은 낮았고 물가도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실업률이 낮더라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정리해고의 활성화로 인해 노동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노동조합의 강력한 임금인상 요구가 없었기 때문이다(박상현, 2009). 과거에는 실업률이 하락하면 임금상승이 가속화되고 그에 따라 기업이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지만 1990년대에는 낮은 실업률이 임금과 가격의 상승을 유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일자리의 유연성 확보와 같은 노동시장의 ‘재편’으로 비교적 ‘높은’ 고용에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단기실업자와 예비실업자군의 존재는 일자리를 두고 노동자간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만든다. 또 외부적 유연성이든, 내부적 유연성이든, 노동유연화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제어하지 않은 채 보편적 복지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라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허황된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스웨덴 모델
노동정책의 목표를 완전고용이 아니라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한다는 것은 정책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이다. 전후 케인즈주의에서 사회정책은 재정정책의 일부로 통합되어서 성장에 대한 관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박상현, 2009). 전후 각국별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결합되는 양상은 달랐지만 국가가 시민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한다는 원리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서 제도화되었다. 소득 보장을 위한 일차적 수단은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합의가 존재했다. 따라서 완전고용은 미국에서 스웨덴에 이르는 다양한 나라들에서 지향해야 할 일종의 ‘원칙’이었다.
케인즈주의에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보완하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에서 경제정책에 종속적이 되었다. 완전고용은 포기되고 사회정책이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정책이 축소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증가한 부분이 있는데 문제는 사회정책의 목표가 이전과 달리 경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정책은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신축성이라는 목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유연화+보편적 복지’라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틀에서 ‘보편적 복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완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 패러다임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신자유주의 프레임이라 할지라도 사회정책은 집권정당에 따라 재량이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핵심 정책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제시하는 정책 패키지들은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의 상황,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맹목은 스웨덴 모델을 표방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들은 비교자본주의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영미식, 독일식, 북유럽 자본주의 등을 비교하며 그 중에서 더 나은 모델을 찾자고 한다. 자본주의 국가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자본주의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세계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보편적이지도 않다. 북유럽식 자본주의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일부이고, 고에너지 고소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파괴적이다. 스웨덴을 모델로 놓고 추종하는 것은 미국을 대체한 다른 버전의 근대화론에 불과한 것이다.
스웨덴을 바라보는 이들은 스웨덴 모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와해되는 과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모범으로 한국에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스웨덴과 사회경제적 조건도 다르고 역사적 경험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다만 “스웨덴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여, 이것을 우리나라의 조건과 상황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토종’형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수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여러 제도와 체계를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예컨대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려면 현재의 체계에서 복지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정책의 조합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스웨덴이 그러한 체계를 갖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는데 각 정책의 특수한 조합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또 어떻게 쇠퇴했는지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스웨덴은 중앙집중적 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서 실업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완전고용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복지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은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분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운동의 자생적인 투쟁들을 억압하면서 계급 간 타협을 했던 결과물로서 복지제도가 탄생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모델이 안착화되기 전까지 노동자 파업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송호근, 1997). 스웨덴의 노동자 파업은 ‘잦은 빈도×장기적 지속’의 유형이어서 그 충격이 상당했다. 스웨덴의 경우 1900년 초반에서 1930년대까지 폭발했던 노동자 파업은 1938년 살쮀바덴 협약으로 ‘무마’되었다. 살쮀바덴 후 노동자투쟁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살쮀바덴 협약은 노사간 타협을 통해 ‘노사 분쟁을 평화적이고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맺은 협약으로 노사분쟁 처리 절차를 명문화한 협약이다. 또한 살쮀바덴 협약을 통해 노동조합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다.
노조가 중앙집권화를 추진한 주요 이유는 제조업 중심의 제1노총(LO) 내부의 전투적 분파가 계속적으로 임금인상을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정이환, 2006). 1930년대 초 LO 내 입장은 수출부문과 내수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LO내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했던 금속노조는 수출 부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치열한 국제 경쟁 대문에 임금 인상에 제약이 있었고 노조 스스로 임금 억제의 필요성에 합의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수 부문인 건설 노조는 전투적인 노선을 견지하며 임금인상 투쟁을 지속했다. LO는 산하 노조의 독자적 교섭권을 인정해왔지만 1933년 건설부문 대규모 파업을 전환점으로 그 전통은 깨지고 만다. 당시 사민당 정부는 공공 건설을 통한 고용 창출을 추진 중이었는데 건설업의 파업은 이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당시 연정 파트너였던 농민당은 사민당의 공황극복정책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건설업의 파업을 종식시키라고 요구했다. LO는 처음에는 건설업 파업을 지지하다 이러한 압력들로 인해 결국 지지를 철회하게 된다. 이로 인해 LO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살쮀바덴 협약 이후 LO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LO의 중앙집권화 조치 중 하나는 조합원의 인준 투표 없이 지도부가 교섭과 타결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게 한 것이었다. 이는 노조 내부의 전투적 노선이 협상 타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산하 노조의 주체적 투쟁을 차단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중앙집중적 교섭체계가 확립되는 과정에는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과정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중앙집권화된 교섭은 연대임금정책을 작동시키는 틀이었고, 연대임금정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짝을 이루어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이루게 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인구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이며 이는 연대임금정책과 결합될 때 재정조달이 가능하다.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통해 낮은 생산성 부문의 자연도태로 인해 발생한 취약 노동계층을 공적 지원을 통하여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전시킴으로써 자본집약적 부문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렌-마이드네르 모델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완전 고용을 달성하는 기제다. 따라서 이 모델은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을 강하게 억제하는 것을 전제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래 스웨덴의 경제가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연대임금정책의 효율성은 약화되었으며 연대임금정책은 숙련노동자의 임금양보를 지속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송호근, 1997). 결국 1983년 LO가 중앙단위 교섭에서 이탈함으로써 중앙집중적 교섭체계는 붕괴했고 연대임금정책은 유명무실화되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인구의 4%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인데 1995년 실업률이 13%에 달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실업자들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흡수할 수 없게 되었다.
스웨덴 모델은 1980년대 ‘제3의 길’ 정책을 통해 경제정책의 자유주의화를 진행시키며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이후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사회복지정책 및 노동시장정책에도 시장원리 요소를 도입하게 된다(신정완, 2009). 스웨덴 정부는 1985년 대출상한규제를 철폐하고, 조세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나 경기과열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제3의 길 정책은 실패로 끝난다. 신임 재무부는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적 정책목표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는 완전고용을 포기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정책목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가 되면 스웨덴은 고평가된 크로나화에 대한 환투기 공격으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한다. 1993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기조로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1994년 집권한 사민당은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이는 스웨덴 사민당도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통화주의적 합의를 수용하게 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시점의 스웨덴 모델은 복지삭감, 완전고용 포기, 조세개혁 등 자신의 복지국가 원칙을 폐기하면서 신자유주의에 ‘적응’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조세기반의 보편적 복지는 침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1~1992년 보수당 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기업 및 자본에 대한 세금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소득세와 소비세를 올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는 조세개혁이 있었다. 1994년 사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즉시 기업과 자본에 대한 세금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를 다시 올렸지만 임금생활자의 세금부담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에서 꼭 직접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면서 간접세가 높은 복지국가의 예로 스웨덴을 들지만, 사실 이는 1991~1992년 노동계급에게 더 많이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진행된 조세개혁의 부정적인 결과이다.
스웨덴은 1991년까지 GDP의 20%에 달하는 복지지출비를 감당하면서도 흑자재정을 유지해왔지만 복지수혜층의 수적 증가로 복지지출비가 급속히 증대하고, 국제경쟁력의 하락, 인플레, 실업 등이 중첩되어 정부재정은 1995년 GNP 13%에 달하는 적자상태에 직면한다(송호근, 1997). 이에 사민당은 기업가와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인상 외에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복지지출비 삭감을 단행하였다. 1994년 이후 현재까지 스웨덴의 복지지출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어 2007년 복지지출은 1980년 수준이 되었다. 결국 스웨덴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웨덴은 자신의 호황기 모델이 침식해가는 과정에서 그 잔재로 신자유주의적 위기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결론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평등과 빈곤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은 같으면서도 처방은 다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사회변화가 더 많은 사회적 위험을 낳고 있기 때문에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는 하면서도 복지의 확대를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드는 그 요인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잘못된 처방을 제시한다. 복지는 없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복지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폐해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에 대한 대중들의 ‘묵종’을 이끌어냈다는 데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보편적 복지‘라는 슬로건이 민중들의 생존을 불안정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하도록 하고, 금융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의 유연화를 수용하는 복지국가담론은 노동자 민중의 대안일 수 없다. 현 시기 대안은 더 많은 복지를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실업, 빈곤,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 사회의 상은 그러한 투쟁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의 노동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은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노동자민중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1) 단, 이 글에서 ‘보편적 복지’는 주로 구조조정의 위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복지의 의미가 주로 반영되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노동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양육, 노인 등 전반적인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포괄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07년 7월 창립 당시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양극화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진보세력의 대안으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현재 100여 명의 전문가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며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논리와 전략>(2010, 도서출판 밈), <복지국가혁명>(2007, 도서출판 밈) 등에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영국식 자유주의 복지국가나 독일식 조합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아니라 북유럽식 보편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지향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은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의 4대 영역으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를 언급한다. 1)보편적 복지는 가난한 일부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하는 국민 모두가 복지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2)적극적 복지는 국민 개개인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인적, 사회적 자본을 확대, 강화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화, 이를 통한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성의 증대가 포함된다. 3)공정한 경제는 시장 만능주의가 아니라 시장과 경제제도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개입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화, 공정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구축, 산업자본에 조응하는 생산적?장기적 금융자본 체계, 금융의 공공성과 중소기업 지원체계, 협력적 노사관계와 노동권의 신장, 연대적?누진적 조세제도 등의 확립이 요구된다. 4)혁신적 경제로 지식기반경제를 제시하며 이것이 달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생산영역의 혁신을 언급한다.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응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사회 모델로 제시하면서 전체 사회구조, 의료, 육아, 노인, 빈곤, 장애인, 교육, 금융, 노동, 조세개혁에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장의 바탕에는 노동유연성을 수용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유연성을 수용하되 보편적 복지라는 안전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이 각 영역에서 제시하는 정책은 검토해볼만한 내용이 많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유연화를 제어할 수 없다면, 다양한 정책들은 보기 좋은 선물세트에 불과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먼저 역동적 복지국가담론의 ‘계보’가 무엇인지 추적하고,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맥락에서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가 조합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검토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언급한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변형될 수밖에 없었던 스웨덴 모델의 한계를 짚어본다.1)
사회투자전략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말은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 유럽이사회에서 등장했다. 리스본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리스본 전략은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경제로의 성장과 함께 사회통합과 고용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유럽’을 천명했다. 이는 지식기반경제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Magnusson, 2010). 그 구체적 방안은 유연안정성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로의 복지모델의 개혁이다. 유연안정성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합성어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이동의 증가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소득 및 사회적 안정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정책이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 또한 지식기반경제로의 변화, 생산의 혁신, 유연안정성을 제시한다.)
유럽이사회의 입장은 사회투자전략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투자전략론은 사회투자국가론과는 구분되는 사회투자담론의 또 하나의 축으로 에스핑-안델센, 테일러-구비,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이후의 유럽위원회 등이 이런 입장이며 적극적 사회정책론, 적극적 복지국가론으로도 불린다(김영순, 2007).
사회투자국가론은 1990년대 말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가 신자유주의도 전통적 사민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제시했던 것으로 그 핵심은 복지가 갖는 투자적 성격, 생산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전통적 복지국가론과 다른 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과세와 지출 대신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인적 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득보장을 선별적 제공한다(김영순, 2007). 전통적 복지국가담론이 복지를 시민권으로 봤다면 사회투자국가론은 ‘시민의 권리는 의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렇듯 사회투자국가론은 복지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정의한다. 반면, 사회투자전략론은 권리 개념과 같은 전통적 복지국가의 가치를 여전히 옹호하면서 복지지출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회투자전략론이 사회투자국가론과 다른 점은 소득보장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투자국가론과 사회투자전략론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이 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두 전략 모두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화정책, 노동유연화, 경제개방 확대를 수용한다. 다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역사적, 경제적 조건의 차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사회투자국가론이 부각되었고,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투자전략론이 등장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투자국가론자마저 사회투자전략이 사회투자국가론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천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다고 지적한다(양재진). 복지프로그램 내용 면에서 배치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보육, 교육, 장기요양 등 보살핌서비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
신자유주의에 의해 변형된 복지전략인 사회투자국가론이나 사회투자담론의 핵심에는 노동의 유연안정성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 역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유연안정성 추구를 명시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완전 고용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복지’가 시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고용은 복지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많은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직접 임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국가들이 전후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협약에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가로 복지를 확대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후 케인즈주의 경제에서 완전고용 원칙 하에 고용을 통해 소득을 획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출’의 형태로 제공되는 간접임금은 완전고용에 비해 부차적인 위상을 가졌다. 현재 ‘복지’가 중요한 위상으로 제기되는 것은 케인즈주의 이후 신자유주의로 넘어오면서 완전고용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요구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기되는 것이 유연안정성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말하는 ‘복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제한 뒤 적응력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복지’이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보편적’ 복지라 일컬어지더라도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의 위험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보완적’이다.
신보수주의가 빈곤층을 노동시장에서 영구배제시킴으로써 이들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택했다면 신자유주의는 배제된 실업자를 근로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경쟁의 계기를 마련한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실업자와 빈민이 자신의 노동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노동에 참여할 것을 자극한다는 더 적극적인 목표를 가진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신자유주의에 적합하게 일자리의 이동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근로연계복지처럼 강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능력강화(empowerment)라는 ‘자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또 목표대상도 등록된 실업자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비용과 지속시간도 다양하다.
이러한 전략은 노동자들의 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을 키우는 것을 일관된 목표로 설정한다. 고용경쟁력은 실업의 상태에서 훈련을 통해서 기술을 연마하고 다음 일자리를 더 잘 찾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실업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노동력의 질을 유지, 향상시켜야 하며 가급적 신속하게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저임금의 일자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들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과 복지수급 사이에 계속 머물게 된다. 즉, 고용경쟁력을 증가시키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노동연계복지를 적극 활용했는데 노동당이 선호했던 경제학자 라야드에 따르면 임금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산업예비군이 존재해야 하며 경쟁은 임금하향 합박을 유지하는 열쇠다. 산업예비군의 규모가 클수록 경쟁의 잠재적인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실업자다. 장기실업자는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실업자는 임금하향 압박에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산업예비군에 대한 자본가들의 관심은 언제든 다시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는 단기 실업자의 존재이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훈련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잠재적인 산업예비군’ 또는 ‘예비실업자’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잠재적 산업예비군’의 규모는 커지고 따라서 산업예비군의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실업률에 의존하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많으면 임금의 하향압박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1995년에서 2001년 동안 미국에서는 실업률은 4%대로 비교적 낮게 유지되었지만 임금상승률은 낮았고 물가도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실업률이 낮더라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정리해고의 활성화로 인해 노동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노동조합의 강력한 임금인상 요구가 없었기 때문이다(박상현, 2009). 과거에는 실업률이 하락하면 임금상승이 가속화되고 그에 따라 기업이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지만 1990년대에는 낮은 실업률이 임금과 가격의 상승을 유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일자리의 유연성 확보와 같은 노동시장의 ‘재편’으로 비교적 ‘높은’ 고용에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단기실업자와 예비실업자군의 존재는 일자리를 두고 노동자간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만든다. 또 외부적 유연성이든, 내부적 유연성이든, 노동유연화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제어하지 않은 채 보편적 복지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라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허황된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스웨덴 모델
노동정책의 목표를 완전고용이 아니라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한다는 것은 정책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이다. 전후 케인즈주의에서 사회정책은 재정정책의 일부로 통합되어서 성장에 대한 관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박상현, 2009). 전후 각국별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결합되는 양상은 달랐지만 국가가 시민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한다는 원리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서 제도화되었다. 소득 보장을 위한 일차적 수단은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합의가 존재했다. 따라서 완전고용은 미국에서 스웨덴에 이르는 다양한 나라들에서 지향해야 할 일종의 ‘원칙’이었다.
케인즈주의에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보완하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에서 경제정책에 종속적이 되었다. 완전고용은 포기되고 사회정책이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정책이 축소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증가한 부분이 있는데 문제는 사회정책의 목표가 이전과 달리 경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정책은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신축성이라는 목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유연화+보편적 복지’라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틀에서 ‘보편적 복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완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 패러다임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신자유주의 프레임이라 할지라도 사회정책은 집권정당에 따라 재량이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핵심 정책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제시하는 정책 패키지들은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의 상황,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맹목은 스웨덴 모델을 표방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들은 비교자본주의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영미식, 독일식, 북유럽 자본주의 등을 비교하며 그 중에서 더 나은 모델을 찾자고 한다. 자본주의 국가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자본주의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세계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보편적이지도 않다. 북유럽식 자본주의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일부이고, 고에너지 고소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파괴적이다. 스웨덴을 모델로 놓고 추종하는 것은 미국을 대체한 다른 버전의 근대화론에 불과한 것이다.
스웨덴을 바라보는 이들은 스웨덴 모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와해되는 과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모범으로 한국에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스웨덴과 사회경제적 조건도 다르고 역사적 경험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다만 “스웨덴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여, 이것을 우리나라의 조건과 상황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토종’형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수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여러 제도와 체계를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예컨대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려면 현재의 체계에서 복지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정책의 조합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스웨덴이 그러한 체계를 갖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는데 각 정책의 특수한 조합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또 어떻게 쇠퇴했는지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스웨덴은 중앙집중적 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서 실업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완전고용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복지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은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분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운동의 자생적인 투쟁들을 억압하면서 계급 간 타협을 했던 결과물로서 복지제도가 탄생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모델이 안착화되기 전까지 노동자 파업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송호근, 1997). 스웨덴의 노동자 파업은 ‘잦은 빈도×장기적 지속’의 유형이어서 그 충격이 상당했다. 스웨덴의 경우 1900년 초반에서 1930년대까지 폭발했던 노동자 파업은 1938년 살쮀바덴 협약으로 ‘무마’되었다. 살쮀바덴 후 노동자투쟁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살쮀바덴 협약은 노사간 타협을 통해 ‘노사 분쟁을 평화적이고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맺은 협약으로 노사분쟁 처리 절차를 명문화한 협약이다. 또한 살쮀바덴 협약을 통해 노동조합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다.
노조가 중앙집권화를 추진한 주요 이유는 제조업 중심의 제1노총(LO) 내부의 전투적 분파가 계속적으로 임금인상을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정이환, 2006). 1930년대 초 LO 내 입장은 수출부문과 내수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LO내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했던 금속노조는 수출 부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치열한 국제 경쟁 대문에 임금 인상에 제약이 있었고 노조 스스로 임금 억제의 필요성에 합의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수 부문인 건설 노조는 전투적인 노선을 견지하며 임금인상 투쟁을 지속했다. LO는 산하 노조의 독자적 교섭권을 인정해왔지만 1933년 건설부문 대규모 파업을 전환점으로 그 전통은 깨지고 만다. 당시 사민당 정부는 공공 건설을 통한 고용 창출을 추진 중이었는데 건설업의 파업은 이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당시 연정 파트너였던 농민당은 사민당의 공황극복정책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건설업의 파업을 종식시키라고 요구했다. LO는 처음에는 건설업 파업을 지지하다 이러한 압력들로 인해 결국 지지를 철회하게 된다. 이로 인해 LO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살쮀바덴 협약 이후 LO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LO의 중앙집권화 조치 중 하나는 조합원의 인준 투표 없이 지도부가 교섭과 타결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게 한 것이었다. 이는 노조 내부의 전투적 노선이 협상 타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산하 노조의 주체적 투쟁을 차단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중앙집중적 교섭체계가 확립되는 과정에는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과정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중앙집권화된 교섭은 연대임금정책을 작동시키는 틀이었고, 연대임금정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짝을 이루어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이루게 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인구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이며 이는 연대임금정책과 결합될 때 재정조달이 가능하다.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통해 낮은 생산성 부문의 자연도태로 인해 발생한 취약 노동계층을 공적 지원을 통하여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전시킴으로써 자본집약적 부문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렌-마이드네르 모델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완전 고용을 달성하는 기제다. 따라서 이 모델은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을 강하게 억제하는 것을 전제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래 스웨덴의 경제가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연대임금정책의 효율성은 약화되었으며 연대임금정책은 숙련노동자의 임금양보를 지속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송호근, 1997). 결국 1983년 LO가 중앙단위 교섭에서 이탈함으로써 중앙집중적 교섭체계는 붕괴했고 연대임금정책은 유명무실화되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인구의 4%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인데 1995년 실업률이 13%에 달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실업자들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흡수할 수 없게 되었다.
스웨덴 모델은 1980년대 ‘제3의 길’ 정책을 통해 경제정책의 자유주의화를 진행시키며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이후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사회복지정책 및 노동시장정책에도 시장원리 요소를 도입하게 된다(신정완, 2009). 스웨덴 정부는 1985년 대출상한규제를 철폐하고, 조세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나 경기과열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제3의 길 정책은 실패로 끝난다. 신임 재무부는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적 정책목표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는 완전고용을 포기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정책목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가 되면 스웨덴은 고평가된 크로나화에 대한 환투기 공격으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한다. 1993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기조로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1994년 집권한 사민당은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이는 스웨덴 사민당도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통화주의적 합의를 수용하게 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시점의 스웨덴 모델은 복지삭감, 완전고용 포기, 조세개혁 등 자신의 복지국가 원칙을 폐기하면서 신자유주의에 ‘적응’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조세기반의 보편적 복지는 침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1~1992년 보수당 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기업 및 자본에 대한 세금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소득세와 소비세를 올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는 조세개혁이 있었다. 1994년 사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즉시 기업과 자본에 대한 세금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를 다시 올렸지만 임금생활자의 세금부담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에서 꼭 직접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면서 간접세가 높은 복지국가의 예로 스웨덴을 들지만, 사실 이는 1991~1992년 노동계급에게 더 많이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진행된 조세개혁의 부정적인 결과이다.
스웨덴은 1991년까지 GDP의 20%에 달하는 복지지출비를 감당하면서도 흑자재정을 유지해왔지만 복지수혜층의 수적 증가로 복지지출비가 급속히 증대하고, 국제경쟁력의 하락, 인플레, 실업 등이 중첩되어 정부재정은 1995년 GNP 13%에 달하는 적자상태에 직면한다(송호근, 1997). 이에 사민당은 기업가와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인상 외에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복지지출비 삭감을 단행하였다. 1994년 이후 현재까지 스웨덴의 복지지출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어 2007년 복지지출은 1980년 수준이 되었다. 결국 스웨덴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웨덴은 자신의 호황기 모델이 침식해가는 과정에서 그 잔재로 신자유주의적 위기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결론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평등과 빈곤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은 같으면서도 처방은 다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사회변화가 더 많은 사회적 위험을 낳고 있기 때문에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는 하면서도 복지의 확대를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드는 그 요인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잘못된 처방을 제시한다. 복지는 없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복지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폐해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에 대한 대중들의 ‘묵종’을 이끌어냈다는 데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보편적 복지‘라는 슬로건이 민중들의 생존을 불안정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하도록 하고, 금융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의 유연화를 수용하는 복지국가담론은 노동자 민중의 대안일 수 없다. 현 시기 대안은 더 많은 복지를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실업, 빈곤,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 사회의 상은 그러한 투쟁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의 노동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은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노동자민중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김영순, 2007. “사회투자국가가 우리의 대안인가?”, <경제와 사회>, 2007년 여름호
▫ 박상현, 2009. “20세기 관리국가의 패러다임 이행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 논문
▫ 송호근, 1997. <시장과 복지정치>, 사회비평사
▫ 신정완, 2009. “스웨덴의 ‘제3의 길’ 정책의 실패 원인: ‘정책 부조화’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경제평론> 제32호.
▫ 양재진, 2007. "사회투자국가가 우리의 대안이다.", <경세와 사회>, 2007년 가을호
▫ 이상이 외, 2010.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도서출판 밈
▫ 정이환, 2006. <현대 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 후마니타스
▫ Lars Magnusson, 2010. “After Lisbon - Social Europe at the crossroads?”, ETUI Woking Paper, 2010.1.
1) 단, 이 글에서 ‘보편적 복지’는 주로 구조조정의 위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복지의 의미가 주로 반영되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노동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양육, 노인 등 전반적인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포괄하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