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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1-2.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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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와 세계안보

수열 | 정책위원
연평도사태를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격화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겠다며 나날이 강경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간간이 대화와 협상 가능성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2010년이 지나가는 마지막 주에도 남한 곳곳에서는 또 한 차례의 대규모 군사훈련이 진행되어 한반도 위기가 어디까지 악화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낙담만 하기에는 이르다. 지난 12월 22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두언, 남경필 의원 등이 현 정부 대북정책의 재검토를 촉구하고 이윤성, 이경재 의원 등이 반대편에 서면서 대북정책을 놓고 한나라당이 분열 양상을 보였다. 여당 내부에서도 현재 강경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대북정책에 대한 제어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여당 일부 의원이 이러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이 연평도사태라는 안보위기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한반도 긴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다는 것이고, 이것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견제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이 반전평화운동 진영에 부여하는 임무는 막중하다. 우선은 현재의 한반도 위기 상황이 촉발된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내야 한다. 북한의 이번 공격은 점점 더 극단적인 형태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긴장 고조 사이클의 반영이다. 그리고 이에 대응해 진행되고 있는 군사력 증강, 동맹 강화의 흐름이 이러한 긴장 고조 사이클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더욱더 극단적인 형태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결국 그 피해는 오롯이 민중들의 것이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시야를 한반도에서 확장해 현재 한반도 문제가 놓인 객관적인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위기의 새로운 국면

이번 연평도사태는 이전의 서해상 교전과 커다란 차이점을 지닌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2009년 11월에 서해에서 벌어진 3차례의 교전 사태는 모두 외양상 ‘우발적 충돌’의 형태를 띤다. 남북 양측의 애초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교전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 것은 북측의 NLL 침범을 남측이 저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의도하지 않은 전투라는 의미다. 이러한 우발적 충돌은 급박한 상황에서 발생한 ‘실수’나 ‘자위적 행위’로 인식되며, 여기에는 ‘보복’이나 ‘응징’과 같은 추가적 군사행동의 요구가 끼어들기 힘들다.
그러나 이번 연평도사태는 다르다.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서북도서 인근에서 진행된 해상 사격훈련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하더라도, 바다에 떨어진 포탄과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포격이 동일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눈에 보이는 급박한 상황에서 발생한 실수나 자위적 행위로 인식되기보다는 ‘사전에 계획된 도발’로 이해된다. 이러한 인식은 보복이나 응징과 같은 추가적 군사행동을 부추기는 목소리로 드러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한반도에 전혀 새로운 위험이 등장하게 됨을 뜻한다.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된 무력 행위를 통한 국지전 발발 가능성이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력 증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해상에서 반복된 우발적 충돌조차 남북 상호 간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켜 왔고, 이러한 신뢰 손상은 상호 간의 적대 정책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근거로 작동해 왔다.1) 몇 년 전부터 일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언급되어 온 ‘북한의 서북도서 기습점령 시나리오’가 연평도사태 이후 대중매체를 통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상황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 간 교류가 지속되면서 ‘북한 위협’이 일종의 ‘가상적’ 존재가 되었다면, 이번 연평도사태는 그러한 북한 위협을 다시 ‘실질적’ 존재로 돌려놓았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이명박 정부는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2011년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6.2% 증가한 31조 4,031억 원으로 확정되었다. 서해5도의 전력 보강 예산은 심의과정에서 애초 제출된 안보다 2,613억 원이 불어난 4,207억 원이 편성되었다. 서해5도 일부를 대만의 금문도와 같은 군사요새로 만들고 군사력을 한층 증강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합동참모본부와 방위사업청이 작성한 <서북도서 전력보강계획>에는 K-9 자주포 20문을 비롯해 무인항공기 운용, 북한 해안포에 대응하기 위한 정밀유도타격무기의 추가 보강 계획이 담겨 있다.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인 집속탄을 사용하는 다연장로켓포도 추가될 예정이다. 최근 국방선진화위원회가 청와대에 보고한 국방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5천 명 수준인 서해 지역 해병대 병력을 1만 명이 넘는 사단급 부대로 전환하고, 육해공군 및 해병대 전력을 모두 포함한 ‘서해5도 사령부’가 신설될 전망이다.
북한의 대응 역시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추측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북한의 의도는 일종의 충격요법을 통해 교착 상태에 빠진 6자회담, 즉 북한의 체제 보장을 위한 협상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대북전문가들을 불러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궁극적으로는 체제 보장을 위해) 더욱 강력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3차 핵실험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충돌, 여기에 더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국지적 도발 가능성, 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군사력 증강,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점점 더 극단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대응 방식. 그리고 여기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움직임이 더해진다. 실로 한반도 위기의 새로운 국면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장기 표류 가능성

이렇게 한반도의 긴장은 점점 격화되는 반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의 시계 제로’라는 한 언론의 헤드라인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의 위기가 극적으로 해소될 조짐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 핵문제를 풀 수 있는 핵심적인 열쇠라 얘기되는 6자회담 역시 마찬가지다. 연평도사태 직후 중국이 6자회담 수석 대표회담을 제안하면서 6자회담이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군사적 대응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기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제안에 이명박 정부가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고,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은 요원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보다 깊은 곳에 있다. 6자회담 당사국들의 부정적인 입장도 문제지만, 더욱 큰 난관은 6자회담 자체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6자회담이 중단된 것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검증조치를 두고 북한과 미국이 극명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26일 북한은 6자회담 프로세스의 2단계 과정에 따라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검증조치 중에서 특히 시료채취 여부를 두고 북한과 나머지 참여국간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원자로에서 인출한 사용후 연료봉 시료, 재처리시설에서 방출된 액체 폐기물 시료, 원자로 건물 내외의 환경 시료 등을 채취해 분석하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량, 재처리 횟수, 원자로 가동 주기, 재처리 기간, 심지어 플루토늄의 품질까지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시료채취는 다음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며 완강히 맞섰다. 이후 2008년 12월에 북미회동과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이 개최되었으나 검증방법에 대한 합의 도출에는 결국 실패했다.
이렇게 중단된 6자회담 프로세스는 오바마 정부 들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이 로켓 발사를 실행하고, 5월 25일에 2차 핵실험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2009년 2월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행한 연설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 계획을 제거할 진정한 준비가 되어있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고 기존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와 경제적인 필요사항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북미 간 직접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양자 직접대화와 6자회담을 준비하는 시기에 북한이 미사일, 핵 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계기로 한층 더 강화된 대북제재를 가하면서 6자회담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대가로 어떤 새로운 인센티브(예를 들어 제재 완화)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방침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북한은 2009년에 “우라늄 농축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폐연료봉 재처리로 추출된 플루토늄이 무기화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2010년 11월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위해 중국이 ‘책임있는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약진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동안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공화당이 장악하게 된 하원의 국제관계위원장으로 유력한 로스레티넌 의원은 ‘2010 북한 제재와 외교적 비승인법안’을 발의했던 인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종합하자면 6자회담 2단계에서 가장 난제였던 북한 핵 신고서 검증방안이 2008년 말에 합의 도출에 실패했고, 2010년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했기 때문에 6자회담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국면에 도달했다. 북한은 핵 신고서 제출 당시까지 우라늄 농축 사실을 부인했었기에 2008년에 제출된 핵 신고서는 이미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6자회담 프로세스가 다시 시작되려면 북한이 신고서를 완전히 새로 작성해야 하고, 또한 이를 검증하는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면에서 6자회담 재개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당사국 간 어떠한 합의도 없는 상황이다. 6자회담의 입구와 출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어, 북한의 핵 문제를 둘러싼 문제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중국2)

2009년 11월 아시아 순방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은 첫 방문지인 일본에서 ‘신아시아 정책구상’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태평양 국가’이며, 아시아와 미국은 태평양에 의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로 묶여 있다면서, 아시아 태평양을 ‘글로벌 현안의 협력자’로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일본, 한국과 같은 기존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전략은 ‘적극적인 개입’으로 특징지어진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커트 캠벨은 신미국안보센터에서 2008년 6월 발간된 ‘균형의 힘: 아시아에서의 미국’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은 ‘균형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정책 추구가 아니라 새로운 세력들의 부상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중국이 글로벌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전까지 중국은 향후 미국의 경쟁 상대로 성장 가능한, 일종의 ‘위협 요소’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중국이 지역 강국으로는 성장하되 미국의 패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기조였다. 미일동맹 강화, 인도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였다. 따라서 이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경제 부분에서의)관여와 (안보 부분에서의)견제로 특징지어진다. 오바마 정부의 기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경제 분야에서 글로벌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보다 밀접한 협력 관계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에 상응하여 중국에 대한 견제 역시 강화되고 있다.
아시아 순방 중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2009년 11월 17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미중관계를 ‘전략적인 상호 신뢰’ 관계로 정의하며, 경제협력과 글로벌 경제회복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중국이 경제문제, 안보문제, 기후문제 등 국제적인 역할을 하고, 미국은 중국의 발전성을 인정하고 부상을 환영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앞서 설명한 ‘신아시아 정책구상’에서도 드러난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팍 및 글로벌 비확산체제, 한반도 비핵화 등에서 중국과의 협력 극대화를 제안하며 중국과의 갈등과 경쟁을 지양하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실용적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 말했다. 미국과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인 경제위기 극복과 대테러 전쟁의 출구전략을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협조와 안정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 생산의 중심지인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 주고 있으며, 가장 많은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그렇게 호의적인 양상을 띠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 문제에서는 이른바 ‘환율 전쟁’, 안보 문제에서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같은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대만 문제, 티베트 문제와 같은 민족 갈등과 인권 문제 등 위험 요소가 많다. 한반도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미중 갈등 요소다.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적 유산으로 인해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뿌리 깊은 갈등 요소가 존재하고, 유럽 지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는 달리 지역의 군사안보 문제를 정리할 직접적인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지역의 영유권 문제나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놓고 수많은 갈등이 촉발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빠른 시일 내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 요소가 오랜 기간 동안 동아시아 지역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외 정책과 북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늘상 긴밀하게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혈맹’, ‘순치’(脣齒)로 표현될 정도로 굳건했던 북중 관계는 냉전이 끝나고 급견한 변화를 맞았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하면서 중국은 ‘두 개의 조선’, ‘등거리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기존의 한반도 정책이 북한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두 개의 조선’을 ‘같은 거리’에 놓고 상대한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양국 관계는 급속하게 경색되었다. 그러다가 1999년 4월, 중국의 외교부 장관이었던 탕자쉬안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중국의 주도로 양국 관계는 다시 호전되었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이후 중국이 UN의 ‘1718호 대북제재안’에 찬성하면서 북중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많을 때에는 한 해 10차례가 넘게 진행되던 양국 간의 주요 고위급 회담이 2007년에는 단 2차례, 2008년에는 4차례에 그쳤다. 그러다가 조중수교 60주년을 맞은 2009년에 ‘조중 우호의 해’를 천명하며 다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상황을 보면 이러한 부침을 겪은 후에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보다 공고해 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북한의 존재가 중국에 이익이 된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표1> 북한과 중국의 주요 고위급 회담 횟수
연도200520062007200820092010.5월 까지
횟수81124137


중국의 대외 정책 기조는 ‘화평굴기’(和平倔起, peaceful rising)라는 말로 대표된다. 후진타오 주석이 제시한 이 개념은 2004년 3월 제11차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중국의 국가정책으로 공식화되었다. 원자바오 총리는 이 자리에서 ‘화평굴기’의 의미를 △국제사회의 평화, △개혁과 체제 개편, △개방정책과 호혜적인 경제교류, △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위협을 가하지 않으며 내정불간섭 원칙 준수 등으로 정리했다.3) 2004년 4월에 개최된 한 포럼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화평굴기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으로 소위 ‘3린 정책’을 제시했다. 3린은 이웃과 화목해야 한다는 ‘목린’(睦隣), 이웃을 평안하게 한다는 ‘안린’(安隣), 이웃을 부유하게 하는 ‘부린’(富隣)을 뜻한다. 이러한 중국의 대외 정책은 중국의 대북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첫째, 주변 국가와의 선린관계를 유지한다는 목린 정책은 북한과 우호적인 정치관계를 형성하는 정책적 기조가 되고 있다. 앞서 설명한 2006년 ‘1718호 대북제재안’에 중국이 찬성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해 직접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현한 바 있다. 더불어 ‘우리는 핵과 미사일 실험에 의한 국제적 난관을 스스로 극복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어 2007년 3월 북미회담에 참석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중국에 의지한다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며 북미 간의 직접 협상을 시도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중국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는데, 중국을 제외하고 북한과 미국이 직접 협상을 진행하거나, 북한과 미국이 관계 정상화에 이르게 된다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우호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현재 중국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낼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둘째, 안린정책은 주변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의미로, 북한체제의 존속을 위한 원조와 무역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결국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중국으로서도 북한의 비핵화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붕괴 역시 중국으로서는 커다란 위험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붕괴할 경우 중국은 미국과 맞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고, 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북한의 수많은 난민 유입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동북 3성을 중심으로 북한에서 들어온 난민은 대략 20-3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동북 3성 지역은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현재 지역 간 격차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붕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셋째, 주변 국가들과의 공동 발전을 추구한다는 부린정책은 적극적인 대북 투자를 가능하게 했다. 중국은 북한과의 연계를 통해 동북 3성 지역의 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급속한 경제 개발을 진행하면서 극심한 빈부격차와 지역 간 불균형 문제가 큰 문제로 대두되었고, 2005년에는 국내소요와 시위사태가 85,00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4) 특히나 동북 3성 지역의 상황은 심각하다. 동북지역은 원래 ‘중국 공업의 요람’으로 불릴 정도로 대규모 국유기업들이 포진한 중공업 지대였다. 그러나 중소분쟁 이후 주된 공업기지가 구소련과 떨어진 내륙지역으로 옮겨지면서 동북지역은 낙후되기 시작했고, 중국의 개혁 정책이 해안지방 중심의 개발 전략을 취하면서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중국은 2003년 10월 ‘동북 3성 재건계획’을 수립했는데,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 북한이다. 중공업 중심의 동북지역은 대량의 광물성 자원을 필요로 하며, 생산품 수출을 위한 해상 수송로도 중요하다.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나진항은 동북 3성 개발에 필수적인 여건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중국은 북한의 지하자원 수급과 항만 확보를 위해 교통 인프라 개발과 항만 개발 사업, 지하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05년에는 북한의 나진항 중 제3부두와 제4부두를 향후 50년간 이용할 수 있는 독점권 계약을 체결하고, 3600만 달러를 들여 관광시설과 산업단지조성, 도로건설 등 개발에 착수했다. 2009년 8월에는 창춘-지린-투먼을 잇는 창지투 프로젝트를 비준하고 본격적인 나진항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또한 나진항의 1번 부두 사용권을 10년간 연장해주는 조건으로 100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대북 정책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고하고, 중국의 지역 개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는, 철저하게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런데 북한에게는 중국이 유일한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UN의 ‘결의안 1874호’로 인해 전략 물자도입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제공되던 식량 공급도 크게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중국 이외의 경제협력 대상을 모색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제재가 철회되거나 축소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는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북중 관계는 남한과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대북정책에 상당부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 갈등의 심화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직접적으로는 북한을 겨냥하고 있지만, 나아가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재편은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의 갈등도 야기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위기 극복과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지만, 미국의 패권을 침식하지 않도록 견제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적 요소가 경제 분야에서는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환율 갈등으로, 안보 분야에서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드러나고 있다.
2009년 3월에는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 하이난 섬 부근 공해상에서 미국의 함정 임페커블호의 항해를 방해하며 상당 시간 동안 대치하는 사건이 있었다. 미국은 민간 함정에 대한 공격이라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중국은 임페커블호가 사실상 간첩선으로 중국에 대한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남중국해는 한국과 일본의 유조선이 중동으로부터 원유를 수송하는 주요 루트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갈등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작년 7월 베트남에서 개최된 17차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 미국의 클린턴 국무부장관은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이해와 시사군도 및 난사군도의 영토 분쟁에 대한 국제적 해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중국은 남중국해가 중국의 주권 및 영토보존과 관련된 핵심이해 사안이라고 미국에 공식 통보한 바 있다. 중국의 핵심적인 이해가 걸린 매우 민감한 부분을 미국이 직접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두고도 반복되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사태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참가하는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7월에 진행된 동해 연합훈련 때에도 중국은 이례적으로 인민해방군의 실탄 사격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최근에 진행된 서해 연합훈련 당시에도 중국은 극렬하게 반발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만이 목적이라면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조지워싱턴호가 굳이 서해에 진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009년 10월 서해상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한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왼쪽). 오른쪽은 최근 실시된 해상 훈련 도중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 중국 군함.

이러한 미중 갈등은 한국의 대중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의 관영지 <환구신보>는 지난 6월 24일자 사설에서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급행열차를 올라타고 싶고,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분열증’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자신들의 이해에 맞추어 언제든지 태도를 바꾸는 ‘환검술’”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2월 18일 서해에서 발생한 중국어선 전복 사건을 둘러싼 갈등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으로 파악된다. 사건이 발생하고 3일 뒤인 21일,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어떤 해역에서든 어선에 충돌해 인명 피해를 내면 안 되는 일”이라고 밝혀, 중국 어선이 한국의 경비함을 들이받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한국 조사 결과와 상충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 현장에서 구조된 중국 선원 세 명을 기소하지 않기로 하면서 서둘러 중국과의 갈등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의 반응은 거세다. 중국 언론들은 24일 중국 어선들이 한국 해경함과 대치하는 사진들을 보도했다. 한국 해경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 사진에는 한국의 쾌속정이 중국 어선에 승선하기 위해 주변을 맴돌거나 해경함이 중국 어선에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보도에는 ‘유약한 소국인 한국인이 감히 중국을 건드렸다’, ‘한국산 차와 가전제품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식의 격한 댓글들이 올라왔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미중 경쟁구도와 맞물려 있다. 남중국해 문제와 한미연합훈련 사례가 명확히 보여주듯이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한반도와 주변 지역이 미중 패권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갈등도 점차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물신적인 태도는 동아시아 지역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과 한반도

현재 미국의 군사전략은 2010년 2월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4개년 국방검토 보고서>(QD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0 QDR이 밝힌 미국의 핵심 방위 전략은 △‘오늘날의 전쟁’에서의 승리, △분쟁의 방지와 억지,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적국 격퇴 능력 구비, △미군 능력 유지 및 향상으로 요약된다.
우선 여기서 ‘오늘날의 전쟁’이란 현재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말하는 것으로, 기존의 국가 간 전쟁과 구별되는 새로운 분쟁 양상을 뜻한다. 9·11 직후 발표된 2001년 QDR부터 이런 새로운 분쟁양상에 대한 대응이 강조되고 있다. 2010 QDR은 ‘미국이 현재 전쟁 중에 있는 국가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면서 ‘중단기적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 ‘중장기적으로 알카에다와 이들의 동맹 세력들을 아프가니스탄과 여타 지역에서 격퇴할 목적의 작전이 지속적으로 요구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QDR의 이런 언급은 오바마가 밝힌 20011년부터 단계적 철군이 변경될 수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다른 지역에까지 확산되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NATO가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4년 연장한 것도 이러한 판단에 무게를 싣게 한다.
둘째, 분쟁의 방지와 억지 부분은 ‘미국의 국익에 대한 위협의 등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외교, 경제개발, 국방력과 함께 정보력, 법집행, 경제적 수단을 통합적으로 운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 동반자 국가들에 대한 적의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핵 능력을 국방의 핵심 요소로 유지하며, 동맹국 및 동반자 국가들과의 제휴 아래 보다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분쟁 예방 및 억지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QDR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핵테세검토 보고서>(NPR)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지만, 핵무기는 여전히 미국 국방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마시일방어체제(MD)와 대량살상무기 대응체계 등 기존의 군사적 도구들을 유지, 발전시킬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셋째, 적국 격퇴 능력의 구비는 분쟁의 억지가 실패하는 경우를 대비해 적을 효과적으로 격퇴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QDR은 ‘중장기적으로 미군은 시간대가 겹치는 다수의 전장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작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1990년대 미국의 군사전략이 양대 전쟁에서의 승리(win-win) 전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번 QDR은 ‘다수의 전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작전’이 ‘겹치는 시간대’에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오늘날의 전쟁’이 확장된 지역에서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강조한 부분과 맞물려, 다양한 지역에서의 분쟁 개입을 시사한다.
넷째는 미군의 능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것이다. 지원병 제도에 기초하고 있는 미군은 10년째 진행된 대테러 전쟁으로 인해 병력 순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정 기간 전장에 파견되었던 군인이 후방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병력 순환제도가 전쟁의 장기화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5) 이에 따라 2010 QDR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군인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지속가능한 병력 순환제로의 전환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군사력 보강이 필요할 경우 민간원정전력을 확대시킬 것’이라 밝히고 있다. 민간원정전력은 해외 파병을 위해 무장하고 훈련받는 민간인 집단으로, 2009년 1월부터 미국 국방부는 이 집단을 조직했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주한미군의 재편이다. 이번 QDR은 주한미군이 ‘전진배치’에서 ‘전진주둔’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최근 ‘주한미군의 근무정상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근무주기를 3년으로 늘이고 가족과 함께 근무하는 ‘동반근무’ 형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되면 평택은 1,400만㎡ 규모의 기지에 7만여 명의 미군 병사와 가족이 상주하는 거대 군사기지가 될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의 변화를 의미한다. QDR은 전진주둔 전환이 완료되면 ‘한반도의 미군 전력이 다른 지역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한미군의 주된 임무였던 대북 억제는 대부분 한국군으로 옮겨지고, 주한미군은 세계의 다양한 분쟁지역에 파견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둘째, 주한미군의 이러한 변화는 또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를 전제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동아시아 주둔미군이 세계 다양한 분쟁지역으로 차출된다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영향력이 감소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미국은 그동안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글로벌화를 추진해왔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사태를 계기로 한미일 3국의 통합적인 군사훈련을 시도하면서 한미일 삼각동맹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번 QDR이 분쟁의 억지를 위해 경제적 수단을 포함해 미사일방어체제나 대량살상무기 대응체계를 강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이란 제재와 같이 미국의 패권을 관철시키기 위한 경제제재를 비롯해 MD체제, PSI의 확장에 적극적인 역할을 동맹국들에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중국과의 갈등을 심화시켜 한반도의 긴장이 격화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전 세계적 차원의 분쟁 개입이다. 이번 QDR은 동맹국 및 동반자 국가들과의 제휴를 강조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선 광범위한 지역에서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감안했을 때, 향후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하는 횟수와 그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한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에 파병하기로 결정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번 파병이 사실상 원전 수출의 대가성 파병으로 향후 파병이 가능한 조건을 엄청나게 확장시켰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파병 조건의 확장, 국회의 사전 동의 없이도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한 PKO 신속파견법, 파병 전담부대의 창설은 이후 한국 군대가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첨병으로 활약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작업이었다. 파병된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희생된, 지난 10년의 테러와의 전쟁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위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위협에 우리가 놓일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핵경쟁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은 더욱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핵 문제를 지렛대로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체제 보장을 위해 3차 핵실험과 같이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의 대응은 매우 우려스럽다.
최근 진행된 42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미사일방어(MD) 체제와 더불어 미국의 핵우산 정책은 ‘절대적인 핵 우위’ 정책의 표상이다. 미국은 상징적 수준에서 핵 군축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올해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을 통해 핵 선제 공격 옵션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며, 오바마 정부는 향후 10년 간 핵무기 시스템을 개량하는 데에 8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핵우위 정책, 이른바 ‘승리하는 핵전쟁 전략’은 절멸의 위협을 가중시키고, 결국 세계 각국의 핵개발 욕구를 크게 자극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은 한미안보협의회의 산하에 확산정책위원회를 신설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대응을 더욱 강화하고, 그 확산정책위원회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 배치를 검토하겠다(김태영 전 국방장관의 11월 22일 국회발언)고 한다. 지금 당장 한반도에 미국의 핵무기 배치가 현실화되기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위협 정책은 북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핵무기 경쟁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세계 어느 나라의 군사력도 미국의 군사력을 능가할 수 없다. 따라서 전쟁 위협이 고조될수록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즉 미국의 핵우위 정책이 유지하고 한반도에서 핵우산 정책을 더욱 강화할수록 북한의 위기의식은 고조되고, 비핵화와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북한의 핵실험 당시를 기억해보면 알 수 있듯, 북한의 핵개발이 진척될수록 주변 국가들은 이를 빌미로 자국의 핵경쟁을 정당화하려 할 것이다. 일본은 현재 45톤 이상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자회담 프로세스를 중단시킨 북한의 플로토늄 추출량에 대한 의혹이 최대 약 16kg의 격차(북한의 신고는 44kg, 미국의 최대 추정치는 60kg)였던 것과 비교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수출과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핵무기 개발 가능성 때문에 미국에서조차 부정적일 정도다.
종합하자면 미국의 핵우위 정책이 유지되고 대북 압박정책이 강화될수록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주변 국가들을 자극해 동아시아 핵 경쟁의 실현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반전평화운동 세력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국의 한반도 핵정책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전평화운동의 과제

최근 심화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지루하게 진행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협상의 진행과 중단이라는 반복은 우리에게 한반도 위기가 개선되지는 않더라도 일정한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다는 인식을 남겼다. 그러나 연평도사태는 한반도 문제가 결코 현상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갈등이 점점 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사고하고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국가 간 협상이나 힘겨루기를 지켜볼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중 패권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민중의 평화적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긴장을 크게 고조시키고 있는 군사훈련을 중단시키고 한국의 군사력 증강의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호전적인 작전계획과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군사훈련은 결국 상대방을 자극해 더욱 강력한 대응을 유도하고,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역사적 요인이다. ‘통상적’인 훈련조차 연평도사태와 같은 참극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며 군사훈련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연평도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위기의 모든 책임을 이전 정권의 대북 정책과 북한의 호전적 행위로 돌리며 대북적대정책, 군사력 증강을 거침없이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력 증강은 격화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의 반영이지만, 또한 그러한 한반도 위기를 격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대응은 또 다른 충돌을 불러올 씨앗일 뿐 아니라, 전쟁 실현 가능성을 크게 높여 작은 충돌조차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핵 경쟁이 실현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의 절대적인 핵우위 정책은 결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북한을 유도하고, 이를 빌미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을 자극해 동아시아 핵경쟁의 실현을 앞당기고 있다. 북한의 핵 보유를 포함해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수출과 핵연료 재처리 시도, 일본의 헌법 개정 문제 등에 대한 평화운동의 적극적인 사고와 발언이 필요하다.


1) 실제 2002년 교전사태를 계기로 해군의 서해 교전수칙은 원래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에서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축되었다. 본문으로

2)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에 관해서는 수열, 「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동아시아의 글로벌 파트너십과 군사동맹의 강화」, 사회운동 2010년 9-10월호(통권 96호)를 참고하라. 본문으로

3) 화평굴기가 대외적으로는 중국 위협론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보통 ‘화평발전’으로 표현된다. 중국 내적으로는 대국으로 성장하면 어느 정도의 패권주의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뜻의 ‘대국굴기’라는 표현이 사용되곤 한다. 본문으로

4) 2002년 3월에 중국 랴오닝과 랴오양에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는데, 이 사건은 지방관료 출신으로 중국경제의 불균형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던 후진타오 정부가 동북 3성 개발 정책을 추진하는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본문으로

5) 2009년 11월 미국의 텍사스 포트후드 육군기지에서 니달 말릭 하산 소령이 총기를 난사하여 13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의관이었던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다 돌아온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전쟁에 대한 반감을 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배후 조종에 의한 테러라는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미군 당국은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이 사건은 전쟁의 장기화가 군인들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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