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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3-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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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EU FTA는 전 세계 민중에게 재앙이다

의약품접근권 파괴하는 인도-EU FTA

권미란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유럽의 새로운 FTA정책과 지적재산권

2월 17일 유럽의회는 한-EU FTA를 통과시켰다. 또 3월에는 인도-EU FTA를 체결할 예정이다. 유럽연합은 상대국에 따른 매우 신축적인 교역협상을 맺던 과거의 FTA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모두 철폐하려는 새로운 FTA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한국과 인도다. 유럽연합은 FT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이 최우선사항이고, 특히 효과적인 지재권 집행이 최고 관심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1) 위조방지무역협정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초국적기업들이 지재권 침해를 빌미로 사법절차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민,형사소송을 손쉽게 제기하도록 하고, 과다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제네릭을 위조품으로 간주하여 압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복수국가간무역협정이 위조상품 유통 문제의 해결을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다. 바로 위조방지무역협정(ACTA: Anti-Couterfeiting Trade Agreement)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소수 선진국이 협상을 주도하고 있으며, 2008년 6월부터 한국 정부도 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ACTA는 소수 선진국들이 지재권 강화를 통해 얻는 흑자폭을 더 늘리기 위한 국제규범을 만들겠다는 것이지, 위조상품의 유통을 막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위조상품은 현행 국제조약에서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ACTA는 수출국이나 수입국의 지재권을 침해하지 않더라도 환적(in-transit, 운송중인 화물을 옮겨 실음) 국가에서 지재권 침해가 문제될 여지가 있으면 세관의 압류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08~2009년에 유럽을 거쳐 브라질로 가는 인도산 제네릭(복제약)을 유럽에서 위조품으로 취급하며 압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의약품은 수출국(인도)과 수입국(브라질)에서 지재권 침해 문제가 없는 의약품인데, 네덜란드에서 환적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 세관에 의해 압류당하였다. 이는 유럽이 요구하는 지재권 집행조치와 ACTA의 전초전으로서 전면 실시될 경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인도와 브라질은 2010년 5월 12일 네덜란드와 유럽연합을 상대로 WTO에 제소한 상태이다.

2) 자료독점권

유럽이 의약품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의약품에 대한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특허권이고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153개국이 가입한 트립스 협정(TRIPs,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 따라 최소 20년의 특허보호기간이 보장된다. 자료독점권은 의약품 판매승인을 받을 때 제출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임상시험자료를 제네릭 제약회사가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제네릭 판매를 지연시켜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이 부여되면 특허가 없는 혹은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일지라도 판매독점권이 생기게 되어 제네릭 생산과 수출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강제실시와 같은 특허권의 공공적 사용도 못하게 된다.

유럽은 미국과 경쟁적으로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유럽의 초국적제약사들이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기는 상황과 보건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네릭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 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약품단일시장을 완성하기위해 2001년부터 유럽약사법의 포괄적 개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은 자료독점기간에 집중되었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물질특허가 의약품독점을 보장하는데 불충분하다고 여겨 이를 보상하기 위해 1987년에 자료독점권을 도입했다. 트립스 협정 이후 유럽 각국은 대부분 20년 동안 특허권을 보호하고 있으나, 자료독점기간과 관련해서는 그리스의 6년에서부터 프랑스의 10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폴란드 등의 신흥 유럽회원국들은 대부분 6년의 자료독점기간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흥 회원국들은 자료독점기간을 확대하면 그들 국가의 보건의료예산에 지나친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2003년 12월 유럽의회는 8+2+1 공식을 따르는 자료독점기간을 결정했다.

8+2+1이라는 공식은 8년의 자료 독점, 2년의 마케팅 독점, 그리고 추가적 1년은 새로운 적응증에 대한 자료 독점기간을 뜻한다. 8년이 경과한 후 2년 동안 자료공개를 허용하여 제네릭을 생산하고 그 판매허가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판매하지는 못하도록 제한하였다. 만약 8년의 자료독점 기간 내에 새로운 치료적응증(new therapeutic indications)을 허가받으면 자료독점기간은 1년 더 확대될 수 있다. 즉 판매독점기간은 최대 11년이다. 8+2+1의 기간이 끝나야 제네릭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유럽의 새 약사법은 2005년 11월부터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료독점권의 확대와 통일화를 이룬 유럽연합은 미국의 자료독점권보다 더 강력한 공식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신흥제약시장과 미국, 유럽 제약회사들의 위기감

사(제약산업 전문 리서치)에 따르면 2009년 세계의약품 시장 규모는 8,370억 달러(약 1,068조 원)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2008년 456억 달러)의 약 17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IMS Health는 향후 10년간 의약품시장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2009년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북미는 38.5%, 유럽 29.8%, 일본 10.8%, 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12.7%, 남미 5.5%, 기타 3.4%를 차지했다. 북미, 유럽, 일본이 79%를 차지한다.

한편 북미, 유럽, 일본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2007년 86.4%). 그 이유는 미국, 유럽, 일본은 블록버스터급 신약의 특허만료, 신약승인 건수 감소, 약제비 절감을 위한 의료정책 등으로 1~2% 성장에 그친 반면, IMS 헬스가 일명 ‘파머징 마켓(Pharmerging Market, 신흥제약시장)’이라고 부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태국 등 17개국의 의약품시장이 급속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가장 큰 곳으로 중국과 인도를 주목하고 있는데, 중국은 2020년 세계 두 번째 의약품 시장으로 부상, 인도는 2015년 세계 10위권 내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시장변화에 따라 초국적제약기업들은 독점을 확대하기 위해 더욱 혈안이 되어 있고, 신흥제약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초국적제약회사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80%이상을 차지해왔던 북미, 유럽, 일본에서 팔릴 수 있는 최대의 가격으로 결정한 후 다른 국가에도 그만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그 약을 사 먹을 수 없다 해도 제약회사에겐 그만이다. 그렇다고 이 지역을 완전히 방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초국적제약기업들은 특허권보다 자료독점권을 얻기가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특허보다는 자료독점권을 통해 독점을 획득해왔다. 자료독점권은 특허권에 비해 독점기간이 짧지만, 그 효과가 같고 훨씬 간편한 절차를 거쳐 쉽게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의 환자개인 내지 공공의료가 파탄날 지경까지 이윤을 뽑아내고, 제네릭이 수출되거나 수입되는 것을 막아왔다. 개발도상국에도 FTA와 트립스-플러스 조항(트립스 협정보다 더 높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내용으로 함)을 강요하면서 특허권과 자료독점권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제네릭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세계의 약국‘인데 인도에서 이러한 조항을 적용하려 한다면 전 세계 민중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세계의 약국’과 의약품접근권 투쟁

작년 1월에 인도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처지는 많이 달랐지만 서로를 만나게 했던 키워드는 글리벡, 에이즈, FTA였다. 인도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초국적제약사 노바티스와 소송이 진행 중이고, 유럽과 FTA협상 중이었다. 우리는 2003년에 글리벡 강제실시투쟁과 2009년 에이즈치료제 ‘푸제온’ 강제실시투쟁을 한 경험이 있고, 한-미 FTA를 체결한 상태, 한-EU FTA는 협상 중이었다. 필자는 ‘세계의 약국’이라 불리는 인도가 2005년에 트립스 협정을 수용한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실은 필자는 ‘글리벡’ 강제실시 투쟁당시에 인도에 글리벡과 똑같은 제네릭(복제약)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안도했었지만, 인도의 역할이 ‘세계의 약국’ 수준인 줄 실감하지 못했다. 에이즈운동을 하게 되면서 전 세계 3300만명이 넘는 에이즈감염인들이 어떻게 치료를 받고 있는지, 인도의 제네릭이 에이즈감염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인도는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에이즈치료제의 90%를, 전 세계 에이즈치료제의 50%를 공급하고 있다. 북미, 유럽, 일본, 한국 등 소위 선진국과 몇몇 중진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인도산 에이즈치료제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는 에이즈치료제 외에도 항생제, 항암제, 혈압약, 당뇨약 등 전 세계 제네릭 의약품시장의 20%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도 제네릭의 의미란 무엇인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글리벡 투쟁 당시에 인도에 글리벡과 똑같은 제네릭을 글리벡에 비해 1/20도 안되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글리벡 투쟁의 정당성 그 자체였고, 희망이었다. “우리가 연간 약 1500달러를 내면 약을 먹을 수 있는데 왜 3600만원을 내야 하느냔 말이야. 노바티스가 돈이 없어 글리벡을 먹지 못하는 한국의 환자들을 내팽개친다해도(실제로 공급거부를 했었다) 우리에게는 인도약이 있단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요구했지만 특허청은 우리의 요구를 기각했다. 기본권이자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보다 제약사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우리는 1년에 1000억 원가량을 노바티스에 지불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낼 수 없는 개발도상국에게 인도 제네릭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 특허법의 역사와 더불어 활동가들이 특허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특허강화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하고 있었고, 약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1972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하였다. 따라서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제조공정을 달리하여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인도는 트립스협정에 따라 2005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제도를 재도입하게 되었지만 전 세계의 환자, 활동가들이 연대투쟁을 벌여 공중보건과 생명을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인도특허법에 담을 수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초국적제약사들의 영구독점전략인 ‘에버그리닝’을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인도특허법 섹션(section) 3(d)에 담겼는데, 1995년 이전에 개발된 약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치료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새로운 사용, 새로운 제형, 새로운 혼합품일지라도 특허를 얻지 못하도록 하였다. 제약자본은 특허가 강화되어야 혁신적인 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실은 치료효과가 그다지 향상되지 않은, 사소한 변형을 했을 뿐인 자신들의 신약을 ‘혁신약’이라고 부르며 독점권을 얻기 위해 특허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인도특허법이 자료독점권이나 특허-허가 연계와 같은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담고 있지 않고, 무분별하게 특허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약국’을 없애려는 인도-유럽 FTA

그러나 초국적제약기업은 인도특허법에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포함시키려고 끊임없이 소송과 로비를 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2006년 1월에 글리벡 특허가 거절되자 인도특허법 섹션 3(d)가 트립스협정에 위배된다고 2006년 5월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7년 8월과 2009년 6월에 각각 노바티스의 소송을 거절하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노바티스는 섹션 3(d)조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2009년 8월에 대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한 바이엘사는 항암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인도 시플라사가 판매허가를 받자 특허-허가 연계제도를 도입하고 시플라사의 판매허가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대법원까지 끌고간 바이엘사의 소송은 2010년 12월에 대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법원은 특허제도와 의약품규제제도는 별개이고, 인도법 하에서는 의약품규제기구가 특허약의 제네릭 판매허가를 막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시플라사의 판매허가 여부는 바이엘사가 이미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로슈사 또한 항암제 ‘타세바’에 대해 특허-허가 연계를 주장하다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바 있다. 2008년에 시플라사가 타세바와 같은 제네릭을 시판하자 로슈사는 특허-허가연계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고 시플라사는 특허무효소송으로 맞대응했다. 2009년 4월에 고등법원은 시플라사의 판매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고, 2009년 8월에 대법원은 로슈의 소송을 기각했다. 현재 특허소송은 진행 중이다. 인도에 있는 초국적기업들의 연합인 OPPI(Organisation of Pharmaceutical Producers of India)는 자료독점권, 특허-허가연계, 섹션 3(d)의 개정을 촉구하는 로비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초국적제약기업의 요구를 한방에 관철시키려는 것이 인도-EU FTA이다. 인도정부와 유럽연합은 의약품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에 대한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고 3월에 체결을 할 예정이다. 지재권조항에 대한 대립 때문에 유럽연합이 이번 FTA에 유럽식 자료독점권을 비롯하여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다 포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자료독점권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세계의 약국’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초국적제약회사가 노리는 것은 인도의 특허요건에 미달하는, 임상적 효과가 더 낫지도 않은 약들에 대해 더 수월한 방식으로 독점을 획득하여 제네릭의 생산을 막고 비싼 약값을 받으려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은 인도처럼 특허요건이 엄격한 나라에서 특허가 없는 약에조차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인도에서는 글리벡 외에도 에이즈치료제 ‘칼레트라’, ‘비레드’ 등이 섹션 3(d)에 따라 특허가 거절되었고, 제네릭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특허가 거절된 약들에 자료독점권이 주어진다면 자료독점기간동안 제네릭 판매,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이 말은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의 민중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주제어
경제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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