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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5-6.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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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건설, 의미와 과제

박준도 | 노동위원장
민주노총 내 두 번째 규모(약 14만 명)의 산별 연맹인 공공운수연맹은 산별노조 건설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공공부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운수산업부문과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등에서 복잡한 조직구성만큼 복잡한 논쟁을 겪어왔다.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경로에 대해서도 따라서 논쟁이 거듭되었다.
2011년 4월 현재, 공공운수연맹은 공공운수노조건설준비위원회(이하 ‘공공운수노조(준)’)로 운영되고 있다. 그 산하의 공공노조, 운수노조와 다수의 기업별노조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약칭‘공공운수노조’)로 통합하는 일정이 상정되어 있다. 출범 시 규모, 통합이 예정된 조직의 통합완료 일정은 다소 조정이 있을 수 있으나 대강의 윤곽이 드러나는 중이다. 현재 추산으로는 2011년 6월 하순 출범시 약 5만여 명에서 시작하여 2011년 중 약 8만여명 규모의 단일한 산별노조로 통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 사회보험(건강보험, 국민연금), 가스,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병원,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공공기관노조가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그리고 화물연대, 민주버스, 민주택시 등 운수노동자, 최근 활발한 투쟁과 조직확대를 경험하고 있는 청소용역 등 다수의 공공부문 직·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함께 포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공공운수노조 건설의 의미를 검토하고, 이에 따라 어떤 운동과제가 있을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관련 활동가들의 토론, 현장 조합원 토론이 더 진행되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이후 논의를 위한 출발선의 문제 제기다.


공공부문, 운수부문, 그리고 공공운수노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부문을 정의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논쟁사항이었다. 공공부문은 정부가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공공기관(public sector)을 의미하는가, 혹은 서비스의 성격이 공공적인 영역, 즉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를 의미하는가? 이러한 논쟁은 결국 공공노조의 전체명칭,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이 보여주는 것처럼 후자로 합의되었다. 이는 공공부문 노조가 단지 소유관계상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만이 아니라 서비스 성격을 매개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에 따라 그 경계가 모호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수 포괄할 가능성도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공공기관에 대한 지배, 통제와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가혹하게 진행됨에 따라 공공기관 노조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 쟁점은 뒤에서 언급할 공공기관 노조운동의 방향과 연관된 문제이다.
한편, 운수부문은 여객 교통, 물류 운수 부문을 포괄하며, 교통·물류망에 개입함으로써 강력한 투쟁력을 실현하고자 한다. 운수노조 설립과정에서 핵심적인 추동력 중 하나는 철도와 화물연대의 연대파업을 통해 물류망을 마비시킬 수 있는 투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적기생산방식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물류 자체가 직접적 생산공정과 긴밀하게 결합함에 따라 이 부문은 노동자에 대한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벌어지면서도 동시에 산업에서 전략적 중요성과 구조적 힘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철도공사는 가장 큰 공기업 중 하나이면서도, 교통·물류 운수부문에서도 가장 큰 사업자라는 점에서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진다. 따라서 철도노조(운수노조 철도본부)는 공공부문에서도 운수부문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공운수노조라는 기획은 철도를 매개로 공공기관노조와 운수부문노조가 결합하여 투쟁력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공공기관 정체성과 운동방향

한편, 공공운수노조 건설은 공공부문과 운수부문의 통합이라는 의미 이전에, 미완의 공공노조를 완성하자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애초 공공노조는 2006년 건설 당시 최소한 5만 명 이상의 조직규모를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3만 명 수준으로 출범하였다. 그만큼 다수의 산별 미전환노조가 연맹에 남아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들도 주로 공공기관노조들이었다(대표적으로 서울지하철노조·서울도시철도노조 등 지방공기업과 과학기술노조·연구전문노조 등 출연연구기관노조, 그밖에 발전산업노조·지적공사노조 등 공기업노조들이 있다). 따라서 현재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에서 기존에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았던 공공기관 기업별노조들을 산별노조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기존에 산별노조에 합류하지 않는 공공기관노조도 산별노조 전환을 다시 검토하는 중이다. 공공운수노조 건설을 추진하는 주체들의 설득이 주요한 요인이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지난 수년간 정부에 의한 공공기관 노사관계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통해 인력감축과 임금·노동시간 신축화 등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이에 대한 대응은 개별 기업별로는 어려우며, 공동의 대정부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따라서 공공운수노조의 산별노조 건설사업의 과제 중 공공기관과 관련된 교섭구조 마련, 구조조정 대응이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공공기관노조들이 요청하는 과제를 산별노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공공운수노조(준) 내에서 공공기관특성협의회(공공노협)의 활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공공기관노조들에게 있어서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공동대응이 산별교섭의 추진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사업이 추진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쟁점이 있다. 현재 공공운수노조(준)은 이러한 사업을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은 물론 민주당 국회의원을 포함한 ‘의정포럼’, 사회공공연구소,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한겨레경제연구소, 야 4당 정책연구소 등과 함께하는 ‘싱크탱크’와 연대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개별연봉제, 유연근무제 등에 대한 대응사업, 투쟁도 전개하고 있으나 방점은 정치대응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정치대응은 민주노총과 유사하게 2012년 정권교체기에 의미 있는 개입, 정권교체를 통해 정책 변화를 실현한다는 기조를 가진다.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지배개입를 받기 때문에, 국가정책에 대한 개입은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제도적 개입을 위한 다양한 사업은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정치 대응 자체를 노조 사업의 중심에 놓는 활동방향에 대해서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러한 방식의 활동은 노조의 기층 조직력을 침식하면서, 조합원 운동보다는 상층조직의 대응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추구하게 되어 노조라기보다는 일종의 로비 조직으로 변모하게 된다. 둘째 민주당 등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연대활동은 결국 신자유주의 정책을 뒷문으로 수용하는 것이 된다. 셋째, 이러한 정치대응은 핵심파트너인 민주당 등과 정치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다. (더 구체적인 비판은 [사회화와 노동] 513호(2011.04.07.) “야권연대는 만병통치약인가-민주노총의 야권연대와 공공운수노조(준)의 의정포럼 비판” 참고).
공공운수노조(준) 안에서 공공기관 노조가 가지는 비중을 볼 때, 공공기관 쟁점에 대한 대응방식은 공공운수노조 전체의 운동방향을 규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막아내는 데 있어서 다양한 전술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노동조합 기층 현장조직의 투쟁을 전제할 때 의미가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전술활용에서도 전체 노동자운동의 과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 시기의 단기적인 전술적 필요가 전략을 대체하고 단기의 성과에 몰두하는 극도의 실용주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노동자운동의 일반적 과제를 (사실상) 폐기하는 방식의 사업을 (단지 ‘전술’일 뿐이라고 해도)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조직 발전 전망

한편,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은 기존의 산별노조에 대한 평가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주로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경험이다. 그런데 그 평가는 썩 후하지 않다.
2006년, 공공노조와 운수노조가 설립될 당시, 특히 공공기관 노조에 대해 산별노조 건설의 주된 설득논리는 규모 있는 조직적 단결을 통한 대정부 교섭과 투쟁, 미조직 비정규직조직화를 통한 조직확대, 사회공공성 운동의 전면화 등이었다. 그중에서 공공기관의 정규직 노조는 전자를 핵심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은 투쟁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산별노조라는 조직형태의 완성을 통해서 자동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처럼 선전되었다. 산별노조에 재정과 권한을 집중해주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유포되었다.
게다가 산별노조 건설 이후 수년간 제대로 된 대정부 투쟁과 교섭을 실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산별노조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었다. 운수노조의 경우에도 핵심적인 건설 이유였던 철도본부와 화물연대본부의 공동투쟁이 성사되지 못하고, 철도본부의 탄압(100억 원대의 손해배상, 200여 명의 해고자)에 따른 조합비 미납과 재정부족 때문에 조직운영이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조건이 반영되어, 공공운수노조 건설 과정에서 산별노조를 강화하기보다는 조직적 단결의 정도를 약화, 후퇴시키자는 목소리가 오히려 커지게 되었다. 산별노조 중앙에 납부하는 조합비 수준을 낮추고 여러 권한을 기업별조직에 부여하자는 주장이다. 어차피 산별노조를 통해 애초에 가졌던 기대를 실현하기가 어려운 이상, (부분적으로) 과거의 연맹과 같은 조직형태로 위상을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따라, 공공운수노조를 설계, 운영할 경우, 실제로 단일노조로서 지향은 약화하고 기업별노조의 연합체인 기존의 ‘연맹’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인력과 재정의 집중, 권한의 집중도를 줄이면서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을 지원하거나 대정부 교섭·투쟁을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전략적인 영역에서 신규 조직확대사업을 추진하거나 영세 사업장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년간 공공노조와 운수노조를 통해 조직확대를 달성한 영역이 주로 지역지부 등 초기업지부를 통한 중소 영세, 비정규직 사업장 노동자였다. 노동조합을 통해 계급적 연대를 확대한 조직적 성과다. 그러나 산별노조의 약화는 이러한 성과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 할 것이고, 노조운동의 사회적 정당성도 침식될 것이다.
조직적 집중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주로 기업별 공공기관노조의 전환을 촉진하고, 이에 대한 포괄범위를 확대하자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조직적 권한과 인력, 재정의 집중 없이 포괄범위 확대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은 정치대응과 같은 것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의 관행을 산별적, 초기업적인 것으로 확대하고, 따라서 계급적 연대가 쉽도록 단결을 확대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산별노조를 왜 건설하고자 했느냐는 취지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의 위기, 어떤 산별노조를 지향하는가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건설에서 미완의 기획을 다시 현실화하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다시 실행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공공노조가 자신의 정체성을 ‘공공서비스부문’으로 확장하면서 미조직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와 사회운동과 결합을 실현하려 했던 과정, 운수노조가 강력한 조직적 연대를 통해 대정부, 대자본 투쟁력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과정은 쉽게 기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각 산별노조는 나름의 방식으로 기업별 운영을 지양하고 초기업적인 단결을 확대해왔는데, 이 역시 중단 없이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는 변화된 상황을 고려하여 일부 조정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취지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정당하다면 그것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무엇이었는지를 평가하고, 이후 실제로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조직형태, 재정과 인력의 배치, 권한의 배분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2006년부터 2009년경까지 계속된 조직형식적 논쟁을 그대로 재연할 필요는 없다. (주로 유럽대륙의 산별노조 모델을 염두에 둔) ‘완성된’ 산별노조 모델을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를 논쟁하는 것은 오히려 산별노조의 운동방향을 상대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조직형식을 먼저 구현하면 운동내용이 변화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운수노조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에서 조직형태와 운영방안은 중요한 쟁점이기는 하지만 조직형식적 논쟁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명칭은 ‘산별노조’라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연합체 조직에 불과하며, 초기업적 운영보다는 기업별 운영을 고착화하고, 더구나 기존의 산별노조 발전전망마저 크게 훼손한다면, 공공운수노조를 건설하고자 한 애초의 취지는 크게 손상될 것임은 분명하다. 기업별노조들이 산별노조의 지부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것은 산별노조의 건설취지가 유지될 때에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기업별노조들에게 산별노조의 전망을 제시하는 데도 ‘기업별노조 때와 다를 것이 별로 없다’라고 설득하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하려 한다면, 그것은 산별노조로서 조직발전을 도모하던 조직들이 수년간의 고된 노력조차 퇴행시키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로 단결하는 조직들의 공동투쟁 전망을 세워야 한다. 노동조합들의 단결은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또는 그러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 스스로도 조직된다. 공공부문의 주요한 산별조직이 건설되어온 역사는 이를 방증한다. 1994~1995년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에 반대하는 공공부문노조들의 공동투쟁으로 연대운동이 발전한 결과 공공부문 노동조합대표자회의 등을 거쳐 (구)공공연맹이 건설되었다. 전지협 투쟁을 통해 민철노련이 건설되었다. 2002년 기간산업사유화저지공투본 투쟁의 성과로 철도, 발전, 가스 등 주요 공기업노조들이 민주화되고 공공연맹으로 단결했다.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건설은 이러한 연대투쟁에 더욱 힘을 모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공공운수노조 건설에서도 그러한 투쟁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과제가 합의되지 않는다면, 상층기구의 정치대응이 노조사업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고, 아래로부터 연대를 강화하는 산별노조는 영영 먼 미래의 일이 되고 만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경우 산별노조는 딱 그러한 사업에 필요한 정도의 연대체로 머물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에 대한 현장활동가들의 비판과 우려는 정당한 측면이 있다.
운수노조 건설에서 철도-화물의 공동투쟁이라는 기획처럼, 공공노조 건설에서 공공기관노조의 연대투쟁이라는 기획을 했던 것처럼, 공공부문과 운수부문의 조직들이 함께 단결하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투쟁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단지 ‘전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투쟁조직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산별노조 건설의 전제조건으로서 구체적인 투쟁일정을 당장 확정하거나 혹은 건설 직후에 산별 전면파업을 선언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조직형식 논쟁이 아니라 그러한 투쟁의 전망제시, 조직화 과정이 바로 산별노조 건설과정이 되어야 한다.
한편, 2011년 공공운수노조(준) 정기대의원대회에는 비록 논의 중인 자료이기는 하나, ‘중기사업계획’ 초안이 제출되었다. 이 ‘중기사업계획(초안)’은 현재 정세에 대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로 보고, 전쟁과 변혁이 확대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 초안이 제시하는 정세 분석은 경제위기의 원인 분석 등에서 일부 쟁점이 있으나, 현재의 경제위기가 체제위기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분석에 따른 사업계획(‘중기사업방향’의 본문)이나 실제 공공운수노조의 건설 사업은 이것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출범하는 지금 시점은 자본주의 성장기의 노자간 양보를 통한 안정적 교섭체계가 가능했던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세계 경제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가혹한 노동에 대한 포섭과 배제가 이루어지는 시기다. 1998년에 이미 경험했듯이 경제위기 정세는 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자본의 노동에 대한 분할 통제를 공고히 한다. 자본주의 성장을 기반으로 한 계급타협(혹은 그에 적합한 노동자 조직형태로서의 산별노조)보다는 20세기 초반 노동운동이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해가며 미숙련 노동자의 일반노조, 산별노조를 통한 정치적 경제적 힘을 공세적으로 키워가던 시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계급적 단결을 확대한다는 의미의 산별노조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2007-2009년 경제위기 이후 이러한 전망은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 추진해야 할 산별노조의 형태는 코포라티즘 체제하에 제도화된 산별교섭을 실현하는 유럽대륙의 산별노조 형태와는 다를 것이다. 오히려 더 이념적으로 급진적이고 연대 지향적이며, 미조직 비정규직(미숙련) 노동자에게 열려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에서 ‘21세기 초 정세에 적합한’ 노조를 추구한다면, 나날이 온건해지는 자신의 노선에 대한 알리바이로서만 ‘사회변혁’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조 운동의 이념을 혁신하고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공유하기 위한 사업, 새로운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 신자유주의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계획과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또한, 보수야당까지 함께 하는 정치대응을 중심으로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는 조합원과 함께하는 연대투쟁을 우선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산별노조가 충분히 자신이 제시한 전망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대차대조표가 애초의 전망이 부적절하다거나 포기해도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라는 변화된 정세에 따라 산별노조의 과제는 새롭게 토론되어야 한다. 기존에 많이 논의되던 서구 산별노조의 모델을 조직형식적으로 적용하려 한다거나, 혹은 그러한 모델의 실패를 산별노조라는 초기업노조 활동 전망 자체의 오류로 등치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공운수노조의 전망을 새롭게 세운다면, 그것은 기존의 산별노조와도 산별연맹과도, 기업별노조와도 다른 것이겠지만, 후퇴된 것이 아니라 전진된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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