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공격을 둘러싼 국제 좌파의 의견 분열에 대한 우리의 시각
제국주의 강대국의‘ 인도주의적 군사개입’, 과연 실현 가능한가?
2011년 3월 17일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 제재 2차 결의안(1973호)을 전격 통과시켰다. 안보리에는 15개 이사국이 참가했고 찬성 10, 기권 5로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기권한 5개국은 러시아, 중국, 독일, 브라질, 인도다. 결의안의 핵심은 민간인과 민간인 거주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그 외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이란 허가받지 않은 어떤 항공기도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뜻한다. 유엔은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하는 군대를 지정하며 그 군대는 항공기를 격추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유엔의 감시활동을 방해하는 어떤 적대행위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지상군에 대한 공습도 가능하다.
실제로 ‘오디세이 여명’ 작전이 시작되자 그 목표는 비행금지구역이 아니라 차량금지구역을 설정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나아가 군사작전의 목적은 유엔이 인정한 민간인 보호가 아니라 유엔이 명시하지 않은 정권교체인 것처럼 보였다. 카다피가 정전을 제안하자 오바마는 카다피가 반정부세력으로부터 탈환한 아즈다비야, 미스라타, 알자와위야 세 도시로부터 철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프랑스 제트기는 카다피의 차량을 공격했고 미국의 미사일은 대공방어시설과 트리폴리에 있는 지휘통제시설을 파괴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의 군사작전은 부시에 비해 훨씬 영리해 보인다. 미국은 리비아 공격에 참가한 서방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공습을 단행했고 오바마의 요구는 가장 비타협적이다. 오바마는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고, 미국의 유엔 대표 수잔 라이스는 유엔 결의안 1973호에 “필요한 모든 조치”라는 조항을 추가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의 폭격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려 했고 다른 국가들에 공을 돌리려 했다. 프랑스가 첫 번째 폭탄을 투하했으며 미국은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권을 나토에 이양했다. 미국은 아랍과 유럽이 리비아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관리는 유럽이 리비아 석유의 대부분을 소비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은 리비아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외부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강요했다면 오바마가 추구하는 정권교체는 리비아 토착 세력에 의한 것이고 서방은 단지 리비아인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 정부가 경솔하게도 맨 선두에서 앞장섰다면 오바마는 가장 후위에서 지휘하고 있다.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둘러싼 국제 좌파의 의견 분열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두고 국제좌파는 심각한 의견 분열을 겪었다. 질문은 간단하다. 리비아 공격은 카다피 정권이 가하고 있는 반정부세력에 대한 맹공을 중단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략적 이익에 따른 침략일 뿐인가.
프랑스의 경우 녹색당이 리비아의 국가과도위원회(NTC)를 승인하고 그들이 요청하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는 데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프랑스공산당, 좌파당, 반자본주의신당도 동참했다. 이에 대해 다른 입장을 지닌 좌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좌파정당의 요구를 완수하기 위해 군사공격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즉 사르코지가 좌파의 대행자냐고 비꼰 것이다.
반면 유럽좌파당은 ‘리비아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나토의 개입이 민중봉기에 도움이 되지도 시민들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리비아 문제에 군사적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적·외교적 발의가 필요하다’, ‘카다피 군과 리비아 반정부군뿐만 아니라 나토군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을 요구한다. 리비아에 국제 정치·외교 사절단과 시민 감시단을 파견하는 것은 평화를 향한 구체적인 진일보일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된 후 입장을 변경한 경우도 있다. 공습에 참여한 덴마크의 적녹동맹은 서방의 군사개입이 민간인 보호에서 내전으로 바뀌고 있고 유엔과 덴마크 정부는 휴전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비아 군사작전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취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한국의 진보신당도 3월 1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군사개입에 대해 ‘국제사회가 이렇게 미적거리는 동안 반정부 시위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조속히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라고 촉구했고, 3월23일 반전평화연대가 주최한 ‘다국적군의 리비아 폭격 규탄 기자회견’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제부터 좌파가 제시한 입장을 ▲즉각적인 리비아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 ▲비행금지구역은 지지하지만 강대국의 리비아 점령은 반대하는 입장,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구별하여 각각의 논거를 살펴보겠다. 우선 리비아 반정부운동을 민주주의 운동으로 규정하면서도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지지하는 입장부터 살펴보자. 필자는 세 번째 입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둔다. (반정부세력의 일부 핵심집단이 과거 카다피를 축출하려는 서방과 은밀한 관련을 맺고 있고 서방의 내전교사로 인해 리비아 사태가 확대된 것이므로 반정부운동을 민주주의 운동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검토하겠다.)
즉각적인 리비아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
먼저 ‘비행금지 구역 설정과 이행은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논자도 카다피 세력의 패배는 서방이 아니라 반드시 리비아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반정부 세력은 비대칭적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카다피는 공군력에서 월등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서방의 군사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서방의 군사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빨리 군사개입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정부 세력의 핵심부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향후 서방의 군사개입을 축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논자는 대체로 인권을 지지하기 위해 외부의 군사개입을 요청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그 논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외부의 군사개입은 유엔 헌장에 담긴 제재 조항이나 최근에 선언된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ion)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즉 기본 인권 보호라는 원칙이 민족주권에 대한 존중이라는 원칙과 최소한 동등하다는 것이다. 둘째, 심지어 그러한 군사개입이 불법적이더라도 그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법률보다 우선권을 지닌다. 셋째, 동기보다 그 결과가 훨씬 더 중요하다. 즉 군사행동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군사행동 배후에 있는 서방국의 이기적 동기보다 우선시해야 한다. 넷째, ‘결과에서의 정의’ 또는 장기적으로 정의를 보장한다는 것은 군사개입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권을 보장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방국은 얼마나 오랫동안 비행금지구역을 유지할지, 어떤 다른 형태의 군사개입(곧 지상군 투입)이 시작되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다섯째, 이러한 군사개입이 다른 중동, 북아프리카 정부에 대한 서방의 태도와 비견하여 모순적이고 선택적이라고 하더라도, 무엇이 문제인가. 리비아에 군사개입을 하는 것은 모순에 처하지 않기 위해 개입하지 않는 것에 비해 긍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은 지지하지만, 강대국의 리비아 점령은 반대한다는 입장
다음으로는 ‘민간인 보호를 위한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지지하되 군사개입이 강대국의 리비아의 점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입장도 서방의 군사개입이 궁극적으로는 석유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군사개입에 대해 서방이 역사적으로 보인 이중기준이 어떤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도 인정한다. 예를 들어 2008-09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공습이나 최근 바레인 사례처럼 친서방 정부에 대해서는 끝없이 관대한 서방의 위선을 보라. 그리고 유엔 결의안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의지를 제한하는 충분한 안전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카다피 군대에 의한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서는 유엔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좌파가 추상적 원칙이나 혁명적 공문구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수많은 주민이 죽음의 위험에 닥쳐 있는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찰의 본질과 이중기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강력범죄가 벌어질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경찰을 부르는 것을 비난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따라서 그것은 좌파가 유엔 결의와 리비아 공격이 민간인 보호라는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비아의 민중도 지상군 투입을 의미하는 군사개입과 비행금지구역을 구분하고 있고, 서방 강대국의 군사행위가 지닌 위험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행동을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제시한 논자는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된 후에는 ‘폭격 중단’과 ‘봉기세력에게 무기 전달’을 구호로 제시하기도 했다. 즉 임박한 대량살상이라는 긴급한 상황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평상시의 입장을 기각했지만 현재 그러한 긴급 상황이 지나갔기 때문에 봉기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토가 엄격하게 비행금지구역을 이행하고 있고 카다피가 대량살상을 자행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약화된 반면 리비아 봉기세력은 핵심지역에서 대중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둘째, 서방의 지상군이 리비아를 점령하지 않는 한 외부 세력이 리비아의 정치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그런데 현재 유엔 결의안은 리비아에 대한 무기수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봉기세력의 능력을 제한하고 제국주의 국가가 리비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리비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한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도 강조점에 따라 몇 가지 경향으로 나타난다.
첫째,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서방의 군사개입은 원천적으로 국제법 위반이며 민족주권의 침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비행금지구역은 냉전 이후의 산물이며 강대국만 활용할 수 있다. ▲비행금지구역을 강제할 수 있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공정한 국제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비행금지구역은 특정 국가의 민족주권 원칙의 위반이다. (1990년대 이라크 사례처럼 이미 정복, 매수, 강압된 정부가 그것에 동의하는 경우만 예외다.) ▲비행금지구역은 반드시 지상공격을 동반하며 이는 민간인 사상자를 초래한다. 민간인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이는 강대국의 근본적 동기가 아니다. ▲비행금지구역 적용에는 항상 강대국의 선택성과 위선이 존재한다. ▲민족 영토주권의 불가침성(영공도 포함된다.)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새겨져 있고, 오직 유엔 헌장에 의해서만 그 예외가 허용될 수 있다. (타국 군대의 공격에 대한 방어, 국제평화 위반에 대해 다른 모든 노력이 실패한 후에 취하는 최후수단.) 이러한 보편적 합의는 20세기 중반의 거대한 민주적 격변이 낳은 위대한 민주적 성취물이며 그 후 거대한 탈식민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민간인 보호 원칙은 비행금지구역뿐만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지상군 개입에도 활용될 수 있고, ‘사전 예방’이라는 명분도 활용될 수 있다.
리비아 공격은 서방국이 ‘인권이 과도하게 침해당할 경우 특정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권리’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다. 이러한 관념은 토니 블레어가 옹호한 것이지만 이라크에서 벌어진 재앙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관념이 부활한다면 서방 강대국은 자신이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라는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게 될 것이다. 서방 강대국이 이런 권리를 향유하게 된다면 세계 민중운동은 머지않아 재앙에 노출될 것이다.
둘째, 억압에 처한 민중이 자신의 폭군을 전복할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이는 곧 그들의 선택의지를 존중해야 하며 그들의 의지를 대체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군사개입을 제외한 다른 형태의 외부적 개입이나 압력, 예를 들어 외교적 압력, 제재, 무기제공이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와 지원이 민중의 권리를 대체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전복하는 것은 남아프리카 민중의 과업이며, 이란을 지배하는 샤를 전복하는 것은 이란인의 과업인 것과 같은 이치다. 서방의 군사개입은 이러한 과업을 대체하거나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은 과거 ‘인도주의’를 표방한 군사개입 사례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몇 가지 교훈을 상기해보자.
첫째, 서방의 군사개입 과정이 개입을 당하는 국가의 민중에 의해 통제될 수 있나.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방의 군사공격이 유엔이 명시한 ‘민간인 보호’라는 목적에 제한될 것인지는 반정부 세력도 심지어 유엔 안보리도 결정할 수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사작전의 목표물이나 궁극적 전쟁목적은 사실상 작전에 참여한 서방국가가 결정할 뿐이다. 실제로 반정부 세력은 군사작전의 유형, 범위, 수단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다. 결국 이미 개시된 서방 강대국의 군사공격을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반정부 세력은 이미 그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심지어 리비아 정부군을 최종적으로 격퇴하기 위해 지상군이 투입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물론 이번 안보리 결의안은 리비아 점령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서방국도 지상군 투입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계속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아프간도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그 전쟁의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둘째, 서방의 군사개입 결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가 통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민중운동의 확장에 기여했나. 현재 반정부 세력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사실상 매우 이질적인 집단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정권 담당자로 부상할 것인가? 아마도 ‘영어를 가장 잘 구사하고’, ‘미국 의회에 출석해 미국의 군사행동에 가장 깊이 감사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집단이 부상하지 않을까. 그들이야말로 서방의 석유회사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리비아의 지하자원을 제공할 의지로 충만하지 않을까. 과거 리비아 왕가의 자손이나 카다피 정부 관료 출신이라면 가장 적격일 것이다. (반정부세력에 가담한 고위급 관료에는 미국 유학생 출신이 많다. 총리 역할을 하는 마흐무드 지브릴은 피츠버그 대학 박사 출신이고 재정장관직을 담당하는 알리 타루니는 워싱턴대학 교수다.)
심지어 서방과 리비아의 새로운 지배 세력이 리비아에 통일적이며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사례처럼 최근 현실을 보더라도 서방 강대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쟁을 치른 국가에 정치적 합의와 경제적 번영은커녕 최소한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능력조차 매우 빈곤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셋째, 서방의 군사공격이 민간인 살상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주장도 신중하게 검토해보아야 한다. 서방의 군사공격이 ‘인종 청소’와 같은 극단적 폭력을 막는 데 철저히 실패한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일시적으로 억제효과가 있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서방의 군사공격에 의해 억제된 세력이 ‘반외세’라는 거대한 명분을 얻고 적대적 원한을 누적함으로써 폭력의 악순환이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 이는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상황이 웅변하는 바다. 기실 초기에는 반정부운동이 외부에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방의 보수주의자, 신보수주의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군사개입 요청에 대해 운운했을 뿐이었다. 반정부 운동 세력은 서방의 개입이 오히려 카다피 세력에게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제공하고 지지 세력을 집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비아의 미래
반정부세력의 핵심 지역인 벵가지의 최근 모습을 보면 반정부 세력이 카다피가 남기고 간 정치적 공백을 이제 부분적으로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과도위원회는 일종의 느슨한 입법부처럼 행동하고 국가과도위원회가 임명한 위기관리위원회가 그 집행부 역할을 하고 있다. 법원 일부가 다시 열려서 카다피 정권의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은행과 공항도 다시 문을 열었다. 과거가 너무 나빴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중적 동의와 참여가 압도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도자로 지목한 엘리트와 봉기를 주도한 청년들 사이에 간극이 커지고 있다. 과도정부가 주요한 자리를 임명한 주정부 건물 밖에 모여 있는 청년들은 소수 가문이 직위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주민은 과도위원회가 투명성 없이 권력과 통제를 행사하며 각자 믿을 수 있는 친척을 데려와 직위를 주는 모습이 마치 카다피 때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처음에 국가과도위원회는 자기 기관들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도 선거 출마가 제한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후 말을 바꿨다. 과도위원회 대변인은 그런 제한이 위원 30명에만 적용되고 위기관리위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거일도 언제일지 모르는 트리폴리 점령 뒤로 미루어졌다.
한편 카다피의 핵심 정치기관이었던 벵가지 혁명위원회는 과거 3,00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이 지금도 벵가지에서 각종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카다피 군대도 이제 공중폭격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반란군처럼 위장하여 군복과 군용차량 대신 민간인 복장으로 소형트럭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사막의 들쥐’ 전략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소규모 기병대 전략을 활용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석유시설과 군사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이제 곧 사막폭풍 계절이 돌아올 것이다. 나토의 공중폭격 전략이 이제 곧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곧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나토의 지상군 투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전황에 어려움이 발생하자 반정부군 지도자들은 외부에서 비난할 대상을 찾고 있다. 지휘권이 나토로 이양된 후 나토의 공중폭격 강도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 유니스는 “나토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토에 위임한 권한을 박탈하라고 유엔 안보이사회에 요구하도록 정부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정부 세력은 점점 더 생존을 위해 외부세력에 의존하고 있고, 이에 따라 봉기는 점점 더 리비아인의 손을 떠나 다른 집단의 것이 되고 있다. 리비아인의 통제 밖에 있는 국제무대에서 벌어지는 서방 강대국의 교묘한 책략에 의해 리비아 동부 주민은 점점 더 서방 강대국이 필요로 했던 희생물이란 처지로 떨어질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실제로 ‘오디세이 여명’ 작전이 시작되자 그 목표는 비행금지구역이 아니라 차량금지구역을 설정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나아가 군사작전의 목적은 유엔이 인정한 민간인 보호가 아니라 유엔이 명시하지 않은 정권교체인 것처럼 보였다. 카다피가 정전을 제안하자 오바마는 카다피가 반정부세력으로부터 탈환한 아즈다비야, 미스라타, 알자와위야 세 도시로부터 철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프랑스 제트기는 카다피의 차량을 공격했고 미국의 미사일은 대공방어시설과 트리폴리에 있는 지휘통제시설을 파괴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의 군사작전은 부시에 비해 훨씬 영리해 보인다. 미국은 리비아 공격에 참가한 서방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공습을 단행했고 오바마의 요구는 가장 비타협적이다. 오바마는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고, 미국의 유엔 대표 수잔 라이스는 유엔 결의안 1973호에 “필요한 모든 조치”라는 조항을 추가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의 폭격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려 했고 다른 국가들에 공을 돌리려 했다. 프랑스가 첫 번째 폭탄을 투하했으며 미국은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권을 나토에 이양했다. 미국은 아랍과 유럽이 리비아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관리는 유럽이 리비아 석유의 대부분을 소비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은 리비아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외부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강요했다면 오바마가 추구하는 정권교체는 리비아 토착 세력에 의한 것이고 서방은 단지 리비아인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 정부가 경솔하게도 맨 선두에서 앞장섰다면 오바마는 가장 후위에서 지휘하고 있다.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둘러싼 국제 좌파의 의견 분열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두고 국제좌파는 심각한 의견 분열을 겪었다. 질문은 간단하다. 리비아 공격은 카다피 정권이 가하고 있는 반정부세력에 대한 맹공을 중단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략적 이익에 따른 침략일 뿐인가.
프랑스의 경우 녹색당이 리비아의 국가과도위원회(NTC)를 승인하고 그들이 요청하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는 데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프랑스공산당, 좌파당, 반자본주의신당도 동참했다. 이에 대해 다른 입장을 지닌 좌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좌파정당의 요구를 완수하기 위해 군사공격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즉 사르코지가 좌파의 대행자냐고 비꼰 것이다.
반면 유럽좌파당은 ‘리비아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나토의 개입이 민중봉기에 도움이 되지도 시민들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리비아 문제에 군사적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적·외교적 발의가 필요하다’, ‘카다피 군과 리비아 반정부군뿐만 아니라 나토군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을 요구한다. 리비아에 국제 정치·외교 사절단과 시민 감시단을 파견하는 것은 평화를 향한 구체적인 진일보일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된 후 입장을 변경한 경우도 있다. 공습에 참여한 덴마크의 적녹동맹은 서방의 군사개입이 민간인 보호에서 내전으로 바뀌고 있고 유엔과 덴마크 정부는 휴전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비아 군사작전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취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한국의 진보신당도 3월 1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군사개입에 대해 ‘국제사회가 이렇게 미적거리는 동안 반정부 시위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조속히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라고 촉구했고, 3월23일 반전평화연대가 주최한 ‘다국적군의 리비아 폭격 규탄 기자회견’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제부터 좌파가 제시한 입장을 ▲즉각적인 리비아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 ▲비행금지구역은 지지하지만 강대국의 리비아 점령은 반대하는 입장,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구별하여 각각의 논거를 살펴보겠다. 우선 리비아 반정부운동을 민주주의 운동으로 규정하면서도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지지하는 입장부터 살펴보자. 필자는 세 번째 입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둔다. (반정부세력의 일부 핵심집단이 과거 카다피를 축출하려는 서방과 은밀한 관련을 맺고 있고 서방의 내전교사로 인해 리비아 사태가 확대된 것이므로 반정부운동을 민주주의 운동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검토하겠다.)
즉각적인 리비아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
먼저 ‘비행금지 구역 설정과 이행은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논자도 카다피 세력의 패배는 서방이 아니라 반드시 리비아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반정부 세력은 비대칭적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카다피는 공군력에서 월등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서방의 군사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서방의 군사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빨리 군사개입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정부 세력의 핵심부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향후 서방의 군사개입을 축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논자는 대체로 인권을 지지하기 위해 외부의 군사개입을 요청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그 논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외부의 군사개입은 유엔 헌장에 담긴 제재 조항이나 최근에 선언된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ion)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즉 기본 인권 보호라는 원칙이 민족주권에 대한 존중이라는 원칙과 최소한 동등하다는 것이다. 둘째, 심지어 그러한 군사개입이 불법적이더라도 그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법률보다 우선권을 지닌다. 셋째, 동기보다 그 결과가 훨씬 더 중요하다. 즉 군사행동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군사행동 배후에 있는 서방국의 이기적 동기보다 우선시해야 한다. 넷째, ‘결과에서의 정의’ 또는 장기적으로 정의를 보장한다는 것은 군사개입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권을 보장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방국은 얼마나 오랫동안 비행금지구역을 유지할지, 어떤 다른 형태의 군사개입(곧 지상군 투입)이 시작되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다섯째, 이러한 군사개입이 다른 중동, 북아프리카 정부에 대한 서방의 태도와 비견하여 모순적이고 선택적이라고 하더라도, 무엇이 문제인가. 리비아에 군사개입을 하는 것은 모순에 처하지 않기 위해 개입하지 않는 것에 비해 긍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은 지지하지만, 강대국의 리비아 점령은 반대한다는 입장
다음으로는 ‘민간인 보호를 위한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지지하되 군사개입이 강대국의 리비아의 점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입장도 서방의 군사개입이 궁극적으로는 석유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군사개입에 대해 서방이 역사적으로 보인 이중기준이 어떤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도 인정한다. 예를 들어 2008-09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공습이나 최근 바레인 사례처럼 친서방 정부에 대해서는 끝없이 관대한 서방의 위선을 보라. 그리고 유엔 결의안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의지를 제한하는 충분한 안전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카다피 군대에 의한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서는 유엔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좌파가 추상적 원칙이나 혁명적 공문구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수많은 주민이 죽음의 위험에 닥쳐 있는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찰의 본질과 이중기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강력범죄가 벌어질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경찰을 부르는 것을 비난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따라서 그것은 좌파가 유엔 결의와 리비아 공격이 민간인 보호라는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비아의 민중도 지상군 투입을 의미하는 군사개입과 비행금지구역을 구분하고 있고, 서방 강대국의 군사행위가 지닌 위험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행동을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제시한 논자는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된 후에는 ‘폭격 중단’과 ‘봉기세력에게 무기 전달’을 구호로 제시하기도 했다. 즉 임박한 대량살상이라는 긴급한 상황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평상시의 입장을 기각했지만 현재 그러한 긴급 상황이 지나갔기 때문에 봉기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토가 엄격하게 비행금지구역을 이행하고 있고 카다피가 대량살상을 자행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약화된 반면 리비아 봉기세력은 핵심지역에서 대중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둘째, 서방의 지상군이 리비아를 점령하지 않는 한 외부 세력이 리비아의 정치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그런데 현재 유엔 결의안은 리비아에 대한 무기수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봉기세력의 능력을 제한하고 제국주의 국가가 리비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리비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한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도 강조점에 따라 몇 가지 경향으로 나타난다.
첫째,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서방의 군사개입은 원천적으로 국제법 위반이며 민족주권의 침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비행금지구역은 냉전 이후의 산물이며 강대국만 활용할 수 있다. ▲비행금지구역을 강제할 수 있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공정한 국제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비행금지구역은 특정 국가의 민족주권 원칙의 위반이다. (1990년대 이라크 사례처럼 이미 정복, 매수, 강압된 정부가 그것에 동의하는 경우만 예외다.) ▲비행금지구역은 반드시 지상공격을 동반하며 이는 민간인 사상자를 초래한다. 민간인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이는 강대국의 근본적 동기가 아니다. ▲비행금지구역 적용에는 항상 강대국의 선택성과 위선이 존재한다. ▲민족 영토주권의 불가침성(영공도 포함된다.)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새겨져 있고, 오직 유엔 헌장에 의해서만 그 예외가 허용될 수 있다. (타국 군대의 공격에 대한 방어, 국제평화 위반에 대해 다른 모든 노력이 실패한 후에 취하는 최후수단.) 이러한 보편적 합의는 20세기 중반의 거대한 민주적 격변이 낳은 위대한 민주적 성취물이며 그 후 거대한 탈식민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민간인 보호 원칙은 비행금지구역뿐만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지상군 개입에도 활용될 수 있고, ‘사전 예방’이라는 명분도 활용될 수 있다.
리비아 공격은 서방국이 ‘인권이 과도하게 침해당할 경우 특정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권리’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다. 이러한 관념은 토니 블레어가 옹호한 것이지만 이라크에서 벌어진 재앙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관념이 부활한다면 서방 강대국은 자신이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라는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게 될 것이다. 서방 강대국이 이런 권리를 향유하게 된다면 세계 민중운동은 머지않아 재앙에 노출될 것이다.
둘째, 억압에 처한 민중이 자신의 폭군을 전복할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이는 곧 그들의 선택의지를 존중해야 하며 그들의 의지를 대체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군사개입을 제외한 다른 형태의 외부적 개입이나 압력, 예를 들어 외교적 압력, 제재, 무기제공이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와 지원이 민중의 권리를 대체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전복하는 것은 남아프리카 민중의 과업이며, 이란을 지배하는 샤를 전복하는 것은 이란인의 과업인 것과 같은 이치다. 서방의 군사개입은 이러한 과업을 대체하거나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은 과거 ‘인도주의’를 표방한 군사개입 사례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몇 가지 교훈을 상기해보자.
첫째, 서방의 군사개입 과정이 개입을 당하는 국가의 민중에 의해 통제될 수 있나.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방의 군사공격이 유엔이 명시한 ‘민간인 보호’라는 목적에 제한될 것인지는 반정부 세력도 심지어 유엔 안보리도 결정할 수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사작전의 목표물이나 궁극적 전쟁목적은 사실상 작전에 참여한 서방국가가 결정할 뿐이다. 실제로 반정부 세력은 군사작전의 유형, 범위, 수단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다. 결국 이미 개시된 서방 강대국의 군사공격을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반정부 세력은 이미 그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심지어 리비아 정부군을 최종적으로 격퇴하기 위해 지상군이 투입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물론 이번 안보리 결의안은 리비아 점령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서방국도 지상군 투입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계속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아프간도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그 전쟁의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둘째, 서방의 군사개입 결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가 통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민중운동의 확장에 기여했나. 현재 반정부 세력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사실상 매우 이질적인 집단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정권 담당자로 부상할 것인가? 아마도 ‘영어를 가장 잘 구사하고’, ‘미국 의회에 출석해 미국의 군사행동에 가장 깊이 감사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집단이 부상하지 않을까. 그들이야말로 서방의 석유회사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리비아의 지하자원을 제공할 의지로 충만하지 않을까. 과거 리비아 왕가의 자손이나 카다피 정부 관료 출신이라면 가장 적격일 것이다. (반정부세력에 가담한 고위급 관료에는 미국 유학생 출신이 많다. 총리 역할을 하는 마흐무드 지브릴은 피츠버그 대학 박사 출신이고 재정장관직을 담당하는 알리 타루니는 워싱턴대학 교수다.)
심지어 서방과 리비아의 새로운 지배 세력이 리비아에 통일적이며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사례처럼 최근 현실을 보더라도 서방 강대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쟁을 치른 국가에 정치적 합의와 경제적 번영은커녕 최소한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능력조차 매우 빈곤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셋째, 서방의 군사공격이 민간인 살상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주장도 신중하게 검토해보아야 한다. 서방의 군사공격이 ‘인종 청소’와 같은 극단적 폭력을 막는 데 철저히 실패한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일시적으로 억제효과가 있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서방의 군사공격에 의해 억제된 세력이 ‘반외세’라는 거대한 명분을 얻고 적대적 원한을 누적함으로써 폭력의 악순환이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 이는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상황이 웅변하는 바다. 기실 초기에는 반정부운동이 외부에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방의 보수주의자, 신보수주의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군사개입 요청에 대해 운운했을 뿐이었다. 반정부 운동 세력은 서방의 개입이 오히려 카다피 세력에게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제공하고 지지 세력을 집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비아의 미래
반정부세력의 핵심 지역인 벵가지의 최근 모습을 보면 반정부 세력이 카다피가 남기고 간 정치적 공백을 이제 부분적으로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과도위원회는 일종의 느슨한 입법부처럼 행동하고 국가과도위원회가 임명한 위기관리위원회가 그 집행부 역할을 하고 있다. 법원 일부가 다시 열려서 카다피 정권의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은행과 공항도 다시 문을 열었다. 과거가 너무 나빴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중적 동의와 참여가 압도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도자로 지목한 엘리트와 봉기를 주도한 청년들 사이에 간극이 커지고 있다. 과도정부가 주요한 자리를 임명한 주정부 건물 밖에 모여 있는 청년들은 소수 가문이 직위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주민은 과도위원회가 투명성 없이 권력과 통제를 행사하며 각자 믿을 수 있는 친척을 데려와 직위를 주는 모습이 마치 카다피 때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처음에 국가과도위원회는 자기 기관들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도 선거 출마가 제한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후 말을 바꿨다. 과도위원회 대변인은 그런 제한이 위원 30명에만 적용되고 위기관리위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거일도 언제일지 모르는 트리폴리 점령 뒤로 미루어졌다.
한편 카다피의 핵심 정치기관이었던 벵가지 혁명위원회는 과거 3,00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이 지금도 벵가지에서 각종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카다피 군대도 이제 공중폭격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반란군처럼 위장하여 군복과 군용차량 대신 민간인 복장으로 소형트럭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사막의 들쥐’ 전략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소규모 기병대 전략을 활용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석유시설과 군사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이제 곧 사막폭풍 계절이 돌아올 것이다. 나토의 공중폭격 전략이 이제 곧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곧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나토의 지상군 투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전황에 어려움이 발생하자 반정부군 지도자들은 외부에서 비난할 대상을 찾고 있다. 지휘권이 나토로 이양된 후 나토의 공중폭격 강도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 유니스는 “나토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토에 위임한 권한을 박탈하라고 유엔 안보이사회에 요구하도록 정부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정부 세력은 점점 더 생존을 위해 외부세력에 의존하고 있고, 이에 따라 봉기는 점점 더 리비아인의 손을 떠나 다른 집단의 것이 되고 있다. 리비아인의 통제 밖에 있는 국제무대에서 벌어지는 서방 강대국의 교묘한 책략에 의해 리비아 동부 주민은 점점 더 서방 강대국이 필요로 했던 희생물이란 처지로 떨어질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