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5-6.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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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대결하기

류주형 | 정책위원장
결국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충분히 예견됐기 때문일까,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그러나 유럽의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유럽 5위 경제권 스페인의 경제여건이 매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각국 정부는 재정위기 해결책으로 긴축재정이라는 극약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긴축은 그 자체로 내핍, 즉 성장과 고용의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반면 엄격한 긴축을 지원 조건으로 부과하는 구제금융은 대상국 금융기관의 파산이 지원국 금융기관의 부실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국주의적 술책이다. 수천만, 수억 명의 유럽 민중들이 2010년부터 ‘자본의 위기 전가 반대’를 핵심 구호로 파업과 시위를 펼치는 이유다.
긴축이라는 극약처방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것이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재정위기란 단순히 말하자면 세수가 줄어든 반면 세출이 늘어난 결과다. 하지만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성장이 후퇴하고 고용이 축소된 결과 세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다. 대신 정부가 위기 대처를 위해 써야 할 돈은 늘어났다. 적자재정을 지속할 수밖에 없어서 각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했다. 이때 기초체력이 부족한 나라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국채금리가 폭등하여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중앙정부’가 세금을 걷어 재정위기에 빠진 ‘지방정부’를 지원할 수 없는 ‘국가’다. 환언하면, 유로라는 공동 화폐를 쓰지만 공동의 재정정책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유럽연합의 경제정책은 유럽의회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따라서 유럽 민중의 민주적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 또는 혹자의 표현대로 ‘국가 없는 국가주의’야말로 오늘 유럽 위기의 배경을 이룬다.
지금까지 유럽 통합 찬성론자들은 단일환율의 적용으로 환리스크가 사라져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고 교역도 크게 확대된 것을 중요한 성과로 지적해왔다. 실제로 유로존 탄생 이후 유럽연합 주변국의 국채금리는 독일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수렴했다. 그 결과 금융자본이 대거 유입되어 산업의 금융화와 서비스화를 촉진했다. 독일 등 유럽연합 중심국에 비해 기술력과 생산력이 열위에 놓인 이들 주변국의 제조업은 붕괴했다. 그 결과 무역적자가 누적되고 성장잠재력이 고갈됐다. 반대로 중심국은 주변국에 대한 무역흑자와 자본수출로 막대한 수익을 누렸다.
이렇듯 아일랜드와 남부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유럽연합의 구조적 결함이 세계 금융위기라는 정세적 요인과 결합, 폭발한 결과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의 위기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손쉬운 답은 통합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유럽 통합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해서 유럽연합의 해체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유럽 민중들을 세계화의 위험에 더 큰 강도로 노출시켜 상호 파괴적 경쟁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원인요법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유럽’을 향한 사회운동의 대장정 속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다.

이번 <특집>은 유럽연합과는 또 다른 세계화-지역화의 사례로서 ‘자유무역협정’을 다루었다. 한미 FTA와 한EU FTA 국회 비준이 임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먼저 류주형은 1997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 장기침체의 원인과 양상을 분석하면서,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를 추구하는 FTA가 금융세계화의 모순을 한층 심화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임필수는 FTA에 대한 민중의 대안을 모색한다. ‘노동표준’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자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부록으로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경제전략을 실었다.
한미 FTA나 한EU FTA 국회 비준을 둘러싸고 최근 민주당이 보이는 행태는 기회주의의 전형이다. 그런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 제휴’가 2012년 총선·대선에 즈음한 사회운동의 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사회운동의 정치적 전망은 이대로 실종되는가. 『사회운동』은 통권 100호를 기념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특별 <좌담>을 개최했다. 이현대 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 김태연 노동전선 집행위원장, 임승철 혁신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정종권 진보신당 전 부대표 등이 토론자로 참석해주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발전적 재편에 관해 심도 깊은 고민을 들려준 토론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제언>으로는 통합 산별 출범을 앞두고 있는 공공운수노조(준)의 상황을 진단하고 조언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와 함께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주최한 두 번의 월례 워크숍을 <지상중계> 형식으로 기사화했다. 앞으로도 현장의 모범 사례를 정기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지난 호에 이어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정세를 <기획>으로 다뤘다. 조은석·임월산은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민주화 혁명 속에서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분석한다. 임필수는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에 대해 국제 좌파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지 논쟁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복지국가 담론 비판’ 마지막 <기획연재>에서 최윤정은 선거연합의 한 방편으로 제기되는 ‘복지동맹론’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분석>에서 수열은 일본 지진-핵 사태 경과를 세세히 추적하면서 반핵운동이 대단히 긴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시론>에서 박하순은 물가상승에 대한 통화긴축적 대응을 비판하면서 대신 노동자들의 공세적인 임금인상 투쟁을 역설한다. <서평>으로는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정치의 발견』 그리고 ‘일제 시대 사회주의 운동가’에 대한 세 개의 기사를 싣는다.
이번 호부터 신설된 <지역과 현장>에서는 공공노조 서경지부 집단 교섭 투쟁 경과와 경기 지역총파업 흐름을 소개한다.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경향 각지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할 것을 약속드린다. 끝으로 이번 호 <회원칼럼>으로는 『사회운동』에 대한 여러 독자들의 감상을 실었다. 편집부에게 따가운 질책과 따뜻한 격려를 고루 보내주신 회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자본주의 위기의 징후들이다. 곳곳에서 저항과 도전이 거세게 분출되고 있지만, 아직 ‘임계질량’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진보 학자들도 당분간 ‘차악’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등장했다는 웃지 못 할 외신도 들려온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와 정면으로 대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 누군가의 말처럼, 좋았던 옛 것이 아니라 나쁜 새로운 것에서 출발할 용기가 있는가. 이는 통권 100호를 맞이한 『사회운동』의 새로운 편집장으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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