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현장> 노동 빈곤층의 고된 삶과 최저임금투쟁
5월의 어떤 주말, 동자동에 있는 쪽방 중에서도 가장 시설이 고약하기로 유명한 한 쪽방에서 금철(가명, 54세)아저씨를 처음 만났다. 금철아저씨는 파주에 공장을 만드는 건설일용직 노동자다. 백령도 출신인 아저씨의 첫 직장은 15살에 학비를 벌기위해 토요일마다 학교를 빠지고 가던 해안가 공사장이었다. 그 때부터 시작해 시멘트로 만드는 물건이라면 건물이고 전봇대고 안 만들어 본 것이 없다. 깡마른 아저씨의 손바닥은 유달리 두껍다. 누가 봐도 ‘일손’이라고 부를 그 손으로 오랫동안 시멘트를 만지며 살았다.
“내가 바람을 폈어. 노동하던 사람이 무슨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겠다고... 나 그때 골드카드도 만든 적 있어요. 골드카드. 기가 막히게 만들어줘요. 그럴싸한 과장, 차장 명함을 만들어줘요. 그럴싸한 회사에. 그러면 은행 카드회사 직원이 그거 모르겠어요. 가란지. 은행이랑 카드회사랑 짜고 했다는 거예요. 은행직원이 그거 모르겠어요? 보면. 고등학교도 못나온 놈이 어떻게 부장, 과장이 돼.”
아저씨 나이 42세에 다단계에 빠졌던 일을 아저씨는 ‘바람을 폈다’라고 표현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깜빡 속았다. 카드회사들은 직업도 없고 학력도 없는 아저씨에게 계속 대출을 해줬다. 이렇게 아저씨가 이십 년 이상 일하며 일궈왔던 삶은 단 이 년 사이에 사라졌다.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부인과 이혼을 하고 거리로 나와 살기 시작해 십년이 흘렀다. 건설일용직 일을 계속 하며 돈을 갚아나갔다. 지인들에게 빌린 2천만원을 이제 겨우 갚았지만, 카드회사 빚은 도저히 못 갚을 것 같다고 하셨다.
빈곤사회연대 사무실로 걸려오는 파산상담전화, 수급상담전화의 당사자들은 이런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이들이 가난해진 원인은 다양하다. 재개발로 인해 평생 일궈온 집에서 쫓겨나 더 열악한 못한 주거나 일자리로 밀려난 것, IMF때 사업에 실패해 아무리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과 싸우고 있는 것, 중산층으로 살았지만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게 된 뒤 차츰 가난해 진 것.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가 일을 했거나 혹은 지금도 일하는 중이다.
빈곤을 생산하는 노동의 고된 사이클: 낮은 임금과 잦은 해고
빈곤사회연대는 최저임금투쟁을 고민하며 노동경험을 중심으로 빈곤층의 삶을 조사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4,5월에 걸쳐 7명의 수급/비수급 빈곤층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21살의 청년부터 70세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지금까지의 노동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빈곤층으로 유입된 결정적인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불안정하거나 임금이 낮은 노동시장에 장시간 노출되었다는 점은 같았다.
Q: “인건비가 낮은 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A: “어, 힘들지. 왜냐면 인건비가 싸니까. 생활하다보면 일하는 사람들 일주일에 한 오일정도밖에 못해 사실은. (하루 일하고 생활하면) 돈 사만 원도 안남아, 그러다보면. 그러니까 하루 이틀 (일 못 구하고) 다니다 보면 돈이 안 남는 거지, 사실. 소주 한잔 먹다 보면 밥 못 먹고. 아침엔 일 나가야하고. 피곤한 거지. 그러니까 5일도 못 하는 거야. 사실은. 다른 사람도 다 그렇지 뭐. 걔들이 많이 하는 애들이 5일이야. 근데 그 사람들이 5일 해도 힘들지. 남는 게 없잖아.”
-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이진구씨(가명, 59세)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은 임금이 낮아 계속 일을 하겠다는 의욕마저 뺏는다. 일당으로 받는 오만원 남짓한 돈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기보단 현재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진구씨는 술을 좋아한다. 돈을 모아보려고 노력한 적도 많지만 몇 달을 힘 다해 모아봤자 몇 주만 일을 못나가도 병원비며 방값이며 금세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애써 모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방에서 소주 한잔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고 일이나 늦지 않게 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모아도 모이지 않는 돈이라는 것을 이미 인생에서의 많은 실패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지하던 삶이 무너지게 되는 것은 이 정도의 임금도 벌지 못할 때와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는 때이다. 40여년 화물차를 운전했던 김종남(70세, 가명)할아버지는 6년 전, 허리가 매우 안 좋아졌고 일어날 수 없었다. 통장에 있던 2000만원은 움직이지 않는 25톤 트럭의 유지비와 할부금, 치료비를 내는데 다 사용했다. 그래도 모자란 생활비와 치료비를 위해 1000만원 가량을 대출 받았다. 여전히 일은 할 수 없었지만 빚쟁이들은 자꾸 집으로 찾아왔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종로의 한 지하철역에 몸을 누이기 시작했다. 집도 돈도 차도 없이 아픈 몸과 빚만 남았다.
할아버지는 왜 가난해졌는지에 대한 자신의 진단으로 몸이 아프게 된 것을 꼽는다. 60이 넘어서도 새로 나온 차를 구입할 정도로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아프게 될 줄은 몰랐다. 할부금도 다 내지 못한 거대한 트럭은 한 달에 150만원을 꼬박꼬박 잡아먹었다. 의료보험 혜택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돈을 벌고 있을 때 의료보험이나 적금을 들기 위해 시도해봤다. 하지만 수입과 거처가 일정치 않으니 적금이나 보험을 들었다가도 자꾸만 해약하기 일쑤였다. 지출해야 하는 돈은 바로바로 계산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통장에 넣어두는 것이 아저씨가 했던 유일한 재테크였다.
박선연(가명, 62세)씨는 2005년 현재의 동거인을 만난 뒤 둘이 삼년간 600만원을 모아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했다. 당시에는 돈을 더 많이 모아 더 잘 살 수 있길 바랐지만 62세인 본인과 60세인 동거인이 청소노동을 통해 돈을 모으기는 적잖이 어렵다. 둘이 일을 할 땐 한 사람 봉급은 모두 저금을 하고 있지만 둘 중 하나나 둘 다 일을 쉬게 될 때 이 돈을 쓰기 시작하니 생각만큼 돈이 모이지 않는 것이다. 더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될 나이가 찾아올까봐 마음이 급하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가 생각할 때 월급이 적더라도 좀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생각이 들지. 일 좀 해서 돈 벌어도 또 떨어지고 나면 갖고 있던 거 또 쓰니까.”
가난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우발적인 사건의 충격을 완충할만한 사적인 네트워크도, 공적인 부조도 갖고 있지 않다. 불안정한 삶과 저임금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삶에 위기는 너무 쉽게 자주 찾아온다. 이혼이나 해고, 단 몇 백 만원의 지출도 치명적이다. 다음 달의 월세와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노후를 대비한 적금을 깨는 순간부터 삶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언제나 당장 지출해야 하는 돈들은 많고 미래를 대비할 여분은 부족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계층 실직자의 소득원천을 분석하였을 때 연금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7.2%로 15개국 평균인 42.0%보다 턱없이 낮았으며, 실업급여라고 응답한 사람은 0%로 아예 없었다.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다녀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볼 때 빈곤층의 과거 직업경험이 안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나라 전 계층의 실직자 소득원천 중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6.8%인데 반해 15개국 평균은 50.0%인 것으로 나타나 연금의 울타리 자체가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기본권 확보가 빈곤을 줄인다
빈곤의 문제가 사라진 듯 화려함이 가득한 도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현재는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도 언젠가 내가 늙으면, 병이 생기면, 갑자기 일하던 직장을 잃으면 어떡하나 염려하며 가난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 현재 빈곤에 대한 대부분의 정책들은 매우 강력하게 근로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라는 강력한 주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빈곤층이 일을 해왔거나 지금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난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30대 그룹의 자산이 1000조를 넘어 3년간 54.2%나 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경제위기에 우는 소리를 하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하청업체의 목을 조르고, 최저임금을 인하하자며 핏대를 세우던 대기업들이 엄청난 성장을 일구어냈다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때 삶과 꿈을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갈 곳이 없고, 청년들은 빚 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작년 최저임금은 ‘길 가다 우연히 주울 수도 있는’ 110원 인상에 그쳤다. 부모님이 집을 마련해주지 않은 신혼부부들은 집이 있는 사람들보다 돈 모으기가 훨씬 더디며, 월급만 받아 잘 살 날을 꿈꾸는 사람들은 바보취급 당한다.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나는 제일 후회하는 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95년 쯤에 집 한 채 마련했으면 지금처럼은 안 살 거 같다는 거야. 아니면 아이엠에프 터질 때 남편이 보증만 잘못 안 섰어도 20년 동안 일하면서 내 차 한 대 없진 않겠지. 그래도 완전 최빈곤층, 이렇게 안 되고 사는 건 내 남편이나 나나 몸은 안 아프니까 그런 건데, 나이 더 들면 어떨지 몰라.”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며 20여년 구로의 전기 공장에서 일을 해온 43세 여성노동자에게 들었던 이 이야기가 많이 생각났다. 오랜 기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이 분이 바라는 것은 계속 일 할 수 있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애 낳았을 때 빼면 쉬어본 적도 없다’는 이 분이 아직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43세인 지금도 ‘언제나 0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 느껴야 하나? 이러한 불합리를 끝내는 투쟁을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 경험을 통해 적절하지 않은 일자리와 임금, 주거가 빈곤을 심화시키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빈곤사회연대는 계속 조사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저임금의 노동과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내가 바람을 폈어. 노동하던 사람이 무슨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겠다고... 나 그때 골드카드도 만든 적 있어요. 골드카드. 기가 막히게 만들어줘요. 그럴싸한 과장, 차장 명함을 만들어줘요. 그럴싸한 회사에. 그러면 은행 카드회사 직원이 그거 모르겠어요. 가란지. 은행이랑 카드회사랑 짜고 했다는 거예요. 은행직원이 그거 모르겠어요? 보면. 고등학교도 못나온 놈이 어떻게 부장, 과장이 돼.”
아저씨 나이 42세에 다단계에 빠졌던 일을 아저씨는 ‘바람을 폈다’라고 표현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깜빡 속았다. 카드회사들은 직업도 없고 학력도 없는 아저씨에게 계속 대출을 해줬다. 이렇게 아저씨가 이십 년 이상 일하며 일궈왔던 삶은 단 이 년 사이에 사라졌다.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부인과 이혼을 하고 거리로 나와 살기 시작해 십년이 흘렀다. 건설일용직 일을 계속 하며 돈을 갚아나갔다. 지인들에게 빌린 2천만원을 이제 겨우 갚았지만, 카드회사 빚은 도저히 못 갚을 것 같다고 하셨다.
빈곤사회연대 사무실로 걸려오는 파산상담전화, 수급상담전화의 당사자들은 이런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이들이 가난해진 원인은 다양하다. 재개발로 인해 평생 일궈온 집에서 쫓겨나 더 열악한 못한 주거나 일자리로 밀려난 것, IMF때 사업에 실패해 아무리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과 싸우고 있는 것, 중산층으로 살았지만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게 된 뒤 차츰 가난해 진 것.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가 일을 했거나 혹은 지금도 일하는 중이다.
빈곤을 생산하는 노동의 고된 사이클: 낮은 임금과 잦은 해고
빈곤사회연대는 최저임금투쟁을 고민하며 노동경험을 중심으로 빈곤층의 삶을 조사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4,5월에 걸쳐 7명의 수급/비수급 빈곤층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21살의 청년부터 70세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지금까지의 노동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빈곤층으로 유입된 결정적인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불안정하거나 임금이 낮은 노동시장에 장시간 노출되었다는 점은 같았다.
Q: “인건비가 낮은 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A: “어, 힘들지. 왜냐면 인건비가 싸니까. 생활하다보면 일하는 사람들 일주일에 한 오일정도밖에 못해 사실은. (하루 일하고 생활하면) 돈 사만 원도 안남아, 그러다보면. 그러니까 하루 이틀 (일 못 구하고) 다니다 보면 돈이 안 남는 거지, 사실. 소주 한잔 먹다 보면 밥 못 먹고. 아침엔 일 나가야하고. 피곤한 거지. 그러니까 5일도 못 하는 거야. 사실은. 다른 사람도 다 그렇지 뭐. 걔들이 많이 하는 애들이 5일이야. 근데 그 사람들이 5일 해도 힘들지. 남는 게 없잖아.”
-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이진구씨(가명, 59세)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은 임금이 낮아 계속 일을 하겠다는 의욕마저 뺏는다. 일당으로 받는 오만원 남짓한 돈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기보단 현재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진구씨는 술을 좋아한다. 돈을 모아보려고 노력한 적도 많지만 몇 달을 힘 다해 모아봤자 몇 주만 일을 못나가도 병원비며 방값이며 금세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애써 모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방에서 소주 한잔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고 일이나 늦지 않게 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모아도 모이지 않는 돈이라는 것을 이미 인생에서의 많은 실패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지하던 삶이 무너지게 되는 것은 이 정도의 임금도 벌지 못할 때와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는 때이다. 40여년 화물차를 운전했던 김종남(70세, 가명)할아버지는 6년 전, 허리가 매우 안 좋아졌고 일어날 수 없었다. 통장에 있던 2000만원은 움직이지 않는 25톤 트럭의 유지비와 할부금, 치료비를 내는데 다 사용했다. 그래도 모자란 생활비와 치료비를 위해 1000만원 가량을 대출 받았다. 여전히 일은 할 수 없었지만 빚쟁이들은 자꾸 집으로 찾아왔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종로의 한 지하철역에 몸을 누이기 시작했다. 집도 돈도 차도 없이 아픈 몸과 빚만 남았다.
할아버지는 왜 가난해졌는지에 대한 자신의 진단으로 몸이 아프게 된 것을 꼽는다. 60이 넘어서도 새로 나온 차를 구입할 정도로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아프게 될 줄은 몰랐다. 할부금도 다 내지 못한 거대한 트럭은 한 달에 150만원을 꼬박꼬박 잡아먹었다. 의료보험 혜택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돈을 벌고 있을 때 의료보험이나 적금을 들기 위해 시도해봤다. 하지만 수입과 거처가 일정치 않으니 적금이나 보험을 들었다가도 자꾸만 해약하기 일쑤였다. 지출해야 하는 돈은 바로바로 계산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통장에 넣어두는 것이 아저씨가 했던 유일한 재테크였다.
박선연(가명, 62세)씨는 2005년 현재의 동거인을 만난 뒤 둘이 삼년간 600만원을 모아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했다. 당시에는 돈을 더 많이 모아 더 잘 살 수 있길 바랐지만 62세인 본인과 60세인 동거인이 청소노동을 통해 돈을 모으기는 적잖이 어렵다. 둘이 일을 할 땐 한 사람 봉급은 모두 저금을 하고 있지만 둘 중 하나나 둘 다 일을 쉬게 될 때 이 돈을 쓰기 시작하니 생각만큼 돈이 모이지 않는 것이다. 더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될 나이가 찾아올까봐 마음이 급하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가 생각할 때 월급이 적더라도 좀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생각이 들지. 일 좀 해서 돈 벌어도 또 떨어지고 나면 갖고 있던 거 또 쓰니까.”
가난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우발적인 사건의 충격을 완충할만한 사적인 네트워크도, 공적인 부조도 갖고 있지 않다. 불안정한 삶과 저임금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삶에 위기는 너무 쉽게 자주 찾아온다. 이혼이나 해고, 단 몇 백 만원의 지출도 치명적이다. 다음 달의 월세와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노후를 대비한 적금을 깨는 순간부터 삶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언제나 당장 지출해야 하는 돈들은 많고 미래를 대비할 여분은 부족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계층 실직자의 소득원천을 분석하였을 때 연금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7.2%로 15개국 평균인 42.0%보다 턱없이 낮았으며, 실업급여라고 응답한 사람은 0%로 아예 없었다.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다녀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볼 때 빈곤층의 과거 직업경험이 안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나라 전 계층의 실직자 소득원천 중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6.8%인데 반해 15개국 평균은 50.0%인 것으로 나타나 연금의 울타리 자체가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기본권 확보가 빈곤을 줄인다
빈곤의 문제가 사라진 듯 화려함이 가득한 도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현재는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도 언젠가 내가 늙으면, 병이 생기면, 갑자기 일하던 직장을 잃으면 어떡하나 염려하며 가난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 현재 빈곤에 대한 대부분의 정책들은 매우 강력하게 근로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라는 강력한 주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빈곤층이 일을 해왔거나 지금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난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30대 그룹의 자산이 1000조를 넘어 3년간 54.2%나 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경제위기에 우는 소리를 하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하청업체의 목을 조르고, 최저임금을 인하하자며 핏대를 세우던 대기업들이 엄청난 성장을 일구어냈다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때 삶과 꿈을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갈 곳이 없고, 청년들은 빚 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작년 최저임금은 ‘길 가다 우연히 주울 수도 있는’ 110원 인상에 그쳤다. 부모님이 집을 마련해주지 않은 신혼부부들은 집이 있는 사람들보다 돈 모으기가 훨씬 더디며, 월급만 받아 잘 살 날을 꿈꾸는 사람들은 바보취급 당한다.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나는 제일 후회하는 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95년 쯤에 집 한 채 마련했으면 지금처럼은 안 살 거 같다는 거야. 아니면 아이엠에프 터질 때 남편이 보증만 잘못 안 섰어도 20년 동안 일하면서 내 차 한 대 없진 않겠지. 그래도 완전 최빈곤층, 이렇게 안 되고 사는 건 내 남편이나 나나 몸은 안 아프니까 그런 건데, 나이 더 들면 어떨지 몰라.”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며 20여년 구로의 전기 공장에서 일을 해온 43세 여성노동자에게 들었던 이 이야기가 많이 생각났다. 오랜 기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이 분이 바라는 것은 계속 일 할 수 있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애 낳았을 때 빼면 쉬어본 적도 없다’는 이 분이 아직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43세인 지금도 ‘언제나 0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고 느껴야 하나? 이러한 불합리를 끝내는 투쟁을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 경험을 통해 적절하지 않은 일자리와 임금, 주거가 빈곤을 심화시키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빈곤사회연대는 계속 조사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저임금의 노동과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