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 청소노동자들은 어떻게 노동조합의 주체가 되었는가
“청소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 평가와 과제”
[편집자 주] 노조페미니즘팀에서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여성노동자 조직화 과정에 대한 분석과 제언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청소노동자를 시작으로 간병·요양노동자, 제조업 여성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논의를 제안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추진 중인 공공노조 서경지부의 청소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 공공노조의 간병·요양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 서울남부지역 공단노동자 조직화사업에서 여성노동과 여성노동자 조직화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다만 각 글의 구성, 서술 방식은 단일하지 않을 수 있다. 청소노동자의 경우는 진행한 사업을 일단락 짓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반면 간병·요양노동자와 제조업 여성노동자에 대한 글은 향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전략조직화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작성될 것이다.
대다수 여성노동자가 처한 고용불안과 저임금 문제는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가치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예로부터 여성이 집안에서, 무급으로 수행해 온 일의 연장인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청소노동자, 가정관리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등의 임금노동 형태로 드러나지만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심지어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있거나, 인격적 대우는커녕 언어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일도 많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분석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전체 노동자로 포괄되지 않는 여성노동자의 경험과 노동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여성노동자가 고유하게 겪는 노동 현장과 노동조합활동에서의 난점과 특수성을 발견하며, 이에 대해 무감각했던 기존의 노동자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의 연재를 통해 전체 여성노동자의 삶과 주체화 과정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점이 되었으면 한다. 또 현재 추진 중인 전략조직화 사업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만들어지길 희망해 본다.
* 노조페미니즘팀은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의 구체적 경로를 모색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전체 노동자운동에서 여성사업에 대한 문제의식과 활동 평가를 기반으로 노동조합 활동에서 여성사업 기획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기획 연재는 격월로 진행되는 <노동위원회 연속워크샵>을 기반으로 작성될 것이다.
통계로 보는 청소노동자
노동부 산하 기관 한국고용정보원의 「산업별 직업별 고용구조조사(2009」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는 426개의 직업 중 403,976명을 차지하여, 직업순위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임금노동자 중에서는 다섯 번째로 종사자가 많기도 하다. 이는 청소노동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노동임을 의미한다. 그 중 남성이 66,380명(17.5%)이고, 여성이 313,543명(82.5%)으로 여성이 절대적으로 많다. 연령을 살펴보면 50세 이상이 82.1%를 차지하는데, 고령 노동자가 많은 직업임이 한 눈에 드러난다. 가구주인 경우는 남성이 91.7%, 여성이 50.6%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도 절반 정도 됨을 알 수 있다. 반면 학력은 중졸 이하가 76.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고용은 상용직 50.6%이고, 임시직 41.0%, 일용직 8.5%인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상용직의 의미가 통상적인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의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정년이 보장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균임금은 81.8만원이다. (남성 101.8만원, 여성이 77.6만원. 여성노동자 임금이 남성노동자의 76.3%에 불과하다.) 평균임금에는 각종 임금항목(수당)이 포함된다. 2009년 당시 최저임금이 시간당 4천원, 주 40시간 기준으로 83.6만원(주 44시간 기준 90.4만원)이었으므로, 대부분이 최저임금 위반사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주당 근로시간은 남성이 45.7시간, 여성이 44.0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보다 많이 근무하고 있었다. 청소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전체 426개 직업 중 낮은 순위로 일곱 번째를 차지한다.
고령의 여성, 청소노동자가 되다
“내가 60이 넘었는데 어디 할 건 없고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 뭐 방법이 없더라고…. 그래서 동네 아줌마한테 어디 돈 벌데 없냐고 하니깐, 여기서 해보라고 해서 와봤거든.”
“환갑이 다 되도록 가정주부였다가 남편의 은퇴로 일을 시작했지. 다른 일은 다 나이 때문에 못해. 식당 아니면 청소일인데, 식당은 쉬는 날도 없잖아”
“20년 넘게 경리일을 하고 오십이 다 돼 일을 찾다가 학교로 왔다.”
“30년 동안 식당에서 부엌일을 하고 음식을 나르다가 4대 보험이 된다는 말에 학교 청소노동자 됐어요.”
고령여성은 경제활동에서 배제되는 위축을 경험하다 별다른 선택지 없이 청소노동을 시작한다. 보통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은 청소노동을 시작하기 전 자영업, 노점, 공장노동자, 전업주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다가 청소노동을 하게 되는데 일을 시작하는 나이는 평균 51.6세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 여성은 가사와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성별분업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의 노동은 저평가되며 저임금 역시 당연시된다. 청소노동 또한 그러한 인식의 연장에 있다. 통계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노동자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의 경우는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용돈벌이’나 가계에 ‘보탬’이 되는 수준을 넘어서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저임금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 관리자로부터 시달려야 하는 각종 (언어/성)폭력과 위협도 심각한 수준이다. 노동기본권은 물론 인권의 사각지대에까지 내몰려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해고위협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노동자라는 고용형태는 너무나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노동조건일지라도 ‘내가 이 나이 먹어서 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점을 너무나 잘 아는 (남성)관리자들은 청소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욕설을 내뱉고, 상납을 받기도 하면서 청소노동자들의 불만을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노동조합과 처음 만나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는 7,853명으로 전체 청소노동자의 2.0%이다. 매우 낮은 가입률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여성비정규직노조(구 여성연맹), 여성노조, 일반노조, 공공노조 등으로 조직되어 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에는 약 1,000명 정도의 청소노동자들이 있는데, (고려대, 연세대, 연세재단빌딩, 이화여대, 홍익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프레스센터, 롯데손해보험빌딩분회 등)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조합원이 된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는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만, 대부분 이전의 노동조합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폭력적이고 과격한 것’, ‘빨갱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언론의 노동조합 죽이기, 레드컴플렉스 등이 조합원들에게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구체적으로는 ‘교육’이나 자신의 권리를 찾아 ‘투쟁’하는 과정을 거치며 노동조합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가족들의 지지 또한 대체로 부정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작년 12월 노조를 결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비정규직이란 걸 알았죠. 그 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글자(뜻)도 몰랐고 슬픔과 아픔도 몰랐어요. TV에 비정규직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렸어요. 이제까지 우리가 파견근로자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거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 달라졌어요. 내 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는 노동조합하는 사람이 재단 이사장보다 더 위대해보여요. 20년만 젊다면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 큰 아들은 “신여사님 대단하셔”라면서 농담을 해요. 우리 며느리도 “몇 개월 사이에 우리 어머니가 많은 걸 배우셨다”며 놀라워하죠. 밥 한 끼 권리 외치면서 캠페인하는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저는 개의치 않아요.”
통계 등의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고 난 후 달라진 점, 제일 좋은 점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임금인상이나 고용안정, 주5일제 시행과 같은 노동환경 개선이다. 또한 비슷하게 많은 대답이 나오는 것으로 평소 눈치 보기 바빴던 관리자들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더 이상 숨죽여 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을 가장 크고 좋은 변화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피해 다니기 바빴던, 나를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관리자들과 큰 소리로 싸워보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그야말로 ‘맞짱’ 뜨는 일은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슴이 방망이질 쳐지는 가장 떨리는 순간이자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은 대부분 임단협을 중심으로 한 임금인상투쟁이 핵심이다. 뿐만 아니라 미화사업장의 경우는(대부분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1년이나 2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해마다 고용과 관련된 크고 작은 투쟁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 투쟁 또한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투쟁이다. 조합원들은 반복되는 투쟁과 잦은 일정에 지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그만큼 ‘자연적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투쟁과 각종 일정들을 빡빡이 소화하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일상 활동이 다채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관례적으로라도 하는 간부교육 등은 대상의 특수성 때문에 기획조차 되지 못하였다. 이는 청소노동자들이 조합원이 된 이후 각종 일정에는 열심히 ‘참가’ 혹은 ‘동원’되나 주체로서 활동하는 데에는 부족한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일례로 핵심사업인 임단협 과정만 보더라도 현장간부들이 교섭위원으로 선출은 되지만, 노동조합의 체계나 역할, 단체교섭의 의미 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없다보니 지부임원이나 간부들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전략조직화 사업을 시작하다 - 교육을 통해 주체로 거듭나기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 그중에서도 청소용역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공공노조의 <대학 비정규직 전략조직화사업>은 2009년부터 시작했다. 사업은 크게 미조직사업, 간부육성사업, 여론사업 등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전략조직화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미조직 청소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조합원과 간부들이 미조직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소노동자를 조직하더라도 전담활동가가 아닌 기 조직된 청소노동자가 청소노동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단에서는 고민 끝에 미화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기획하였다. 활동하고 있는 미화사업장 핵심간부들을 대상으로 월 1회, 4시간 집합교육의 형태로 총 7개월 동안 진행하는 교육이었다.
교육을 조직적으로 제안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지부에서 전체 간부들을 한데 모아 노동교실 같은 교육을 해 온 적은 있지만 특정 직종(미화 업종과 같은)만 따로 분리해 교육을 했던 적은 없었다. 가장 큰 우려는 50-60대 중·고령 여성간부들이, ‘아줌마’ 혹은 ‘할머니’ 조합원들이 그 긴 시간에 이르는 교육을 소화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힘들고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짜는 것도 어려운 고민이었다. 실제로 교육 초기 미화간부들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발표)해야 하거나 토론하는 교육을 낯설어했으며, 교육이 끝나자마자 제대로 된 뒤풀이도 함께 하지 못하고 가족들 저녁 챙겨주어야 한다며 쏜살같이 교육장을 빠져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교육생들의 열의는 매우 높았다. 교육이 진행될수록 발표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전반적인 교육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8남매 중 큰 딸로 태어나서 집안 일만 한다고 공부를 못해 아쉬워요”
“10년만 젊었으면 더 없이 사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더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
교육준비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게 고려했던 점은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살아오면서 교육기회는 물론 사회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발표할 기회가 적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강사에 의존한 강의중심교육은 무리였다. 그래서 매 교육마다 50분 안팎의 강의와 참여형 토론을 배치하였고, 같은 교육주제라 할지라도 다른 형태의 두 세 차례 토론을 거칠 수 있게 하였다([참고 1]). 강의 또한 청소노동자 현실과 정서가 반영될 수 있도록 강사를 조직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몇 차례의 기획회의를 거쳤다. 교육 주제는 노동자 의식, 외국의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례, 청소노동자의 일과 건강, 역사로 보는 노동운동사 등 다양하였지만, 매 주제의 교육내용마다 미조직사업의 동기부여와 주체로서 작게나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접목시키려 노력하였다. 이를테면 교육 말미에 노동조합 소개 및 가입안내가 적힌 포켓티슈 3개씩을 교육생들에게 나눠주고, 다음 교육 때까지 3명의 미조직노동자를 만나서 포켓티슈를 건네며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을 숙제로 결의하는 식이다.
간부교육은 철저히 ‘학교’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청소노동자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절, 남아선호 시대를 살며 배움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세대들이기에 학교식 운영을 통해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입학식, 교장, 출석부, 담임선생님, 숙제, 시험, 방학, 졸업여행, 교육생의 이름이 적힌 노트 선물 등은 조합원들이 즐겁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기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3년차에 접어든 간부교육은 실제로 교육을 이수한 간부들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조합원들 말마따나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교육일지라도 교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노조 활동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간부교육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인으로는 첫째, 단체협약에 조합원들의 교육시간이 확보되어 있었고, 지부에서도 이를 적극 활용하여 안정적인 교육시간을 만들어낸 점. 둘째, 전략조직화 사업 기금을 통한 충분한 예산확보. 셋째, 조합원들의 정서와 조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교육기획 등을 꼽을 수 있다. 더불어 <따뜻한 밥 한 끼 권리 캠페인>이나 지부의 투쟁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전략조직화 사업이 탄력을 받는 속에 교육이 이루어진 것도 활기차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여성 특유의 친화력으로 새로운 노동자들을 만나다
청소노동자가 조직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분류된다. 고려대, 성신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처럼 학생들과 연대 사업을 통한 조직화 방식, 덕성여대, 동덕여대처럼 원청 노조(대학노조)와의 연대를 통한 방식, 기 조직된 조합원들과의 연계 및 투쟁의 입소문을 통한 자연발생적 조직화 방식이 대표적으로 조직화 되는 과정이다. 전략조직화 사업단에서는 이 중 학생들과의 연대 사업을 통한 조직화 과정을 주요 조직화 방식으로 선정하고 이화여대와 홍익대분회가 출범함으로써 이를 유의미한 경로로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청소노동자가 청소노동자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유효한 조직화 방식이라는 것도 확인하였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휴게실의 위치부터 파악하는 것으로 조직화 사업은 시작된다. 해당 대학의 학생들과 사업담당자가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2-3회에 걸쳐 정기적으로 휴게실을 방문하고 기본적인 실태조사를 수행하며, 노동자들을 직접 설득하는 시간이 조직화 과정 중 가장 긴 시기이자 중요한 과정이다. 학교의 크기나 노동자 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이 시간 동안 노동자들의 주요 불만지점을 파악하고, 진심으로 노동자들과 토론하여 이후 분회 간부로까지 활동할 수 있는 (핵심)주체가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간부교육을 이수한 분회 핵심간부들과 적극적인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조직화 프로그램 등을 배치하였다.
‘새벽출근선전전’은 출퇴근길 선전전으로 조직화에 성공한 미국 SEIU노조의 사례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언니·동생이 되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딱 맞는 조직화 방식이기도 하였다. 미화조합원들은 첫 차를 타고 출근하는 미조직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비슷한 처지에 대한 공감부터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내는 것까지 어떠한 활동가들보다 조직활동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휴게실 방문사업에서도 간부들의 역할은 컸는데, 잦은 방문은 아니었지만 연세대분회 간부들이 이화여대 조직화 단계에, 이화여대 간부들이 홍익대 조직화 단계에 함께 하면서 미조직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새로 조직된 조합원들을 바라보며 갖게 되는 분회 간부들의 자긍심과 애정은 남달랐다.
나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노동조합
저임금, 간접고용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폭로하고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시작한 <청소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캠페인단 활동은 전략조직화 사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이다. 캠페인 활동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언론을 통해 조명되면서 우호적인 여론형성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캠페인단에서 진행했던 여러 사업은 단순히 우호적인 여론형성을 넘어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환경, 권리, 나아가 삶의 문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발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교육과는 또 다른 주체화 과정이었다.
유령이 아닌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언했던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조합원들은 틈틈이 연습했던 풍물을 연주했다. 합창단을 만들어 가사를 개사한 노래공연을 직접 준비하기도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대회의 모든 발언을 채우기도 했다. 한 발 나아가 조합원이 직접 사회까지 보았던 <청소노동자 노래자랑>은 청소노동자들의 일상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또 다른 주체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성공적인 실험이었다. 일하면서 작게 흥얼거렸던 노래는 노래자랑이라는 무대를 만나 나의 일과 삶을 그리고의 나의 장기를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훌륭한 기제가 되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 '맞아맞아 꼴불견 베스트5' 등을 이야기할 때는 지나가던 시민들도 청소노동자들과 하나가 되는 분위기였다. 엄마의 무대를 위해 손수 피켓을 만든 딸의 응원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실험들은 ‘직접고용 쟁취하자’가 아닌 ‘학교랑 우리랑 직거래 합시다’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의 생생한 표현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나는 정말로 노래 부르는 것 빼고는 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침 노동조합에서 노래자랑을 한 대자나요. 그래서 얼른 신청했지요. 그런데 내가 은상을 탔다는거 아니겠어요! 나는 정말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거에요. 내가 노동조합 아니면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나는 정말 노조만나서 인생 대박터졌어요. 이번 간부 교육도 정말 열심히 들을거에요.”
대학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은 2개 대학 조직화에 성공하며 미조직사업으로서의 성과를 충분히 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몇몇 대학을 조직화 거점으로 선정해 집중적인 조직화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몇 개의 대학에서 노동조합 깃발이 더 휘날릴지도 모른다. 대학 뿐 아니라 빌딩, 관공서 등으로 조직화 범위를 확대해나가기 위한 실험과 노력도 진행 중이다.
전략조직화 사업이 조직화 과정에 전담활동가를 배치하는 등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여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집중적 투자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들을 별도의 특화된 사업이 아닌 지부의 자산으로, 일상 활동으로 녹여내는 것은 향후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조직화의 성과’ 이외에도 중요한 부분은, 처음부터 사업을 통해 미화 조합원들을 노동조합의 주체로 세워내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는 것, 그에 따른 사업의 기획과 집행을 했으며 실제로 그러한 실험을 통해 미화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의 주체로서 성장하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가 지부 활동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은 많은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화 조합원들의 연령 등을 고려하면 다른 젊은 조합원들에 비해 활동주기가 짧을 수밖에 없고 활동의 제약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조합원들보다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난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자신한다. 하기에 앞으로도 조합원들의 가능성을 믿고 보다 진일보한 투쟁과 사업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전략 조직화 사업은 조합원과 분회 간부들이 조직활동가로서 자기 역할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한다.
조합원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하지만 이미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엄혹한 정세 속에서도 그 어떤 노동자들보다 생동감 넘치게, 활기찬 노동조합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고,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우리는 전국의 40만 청소노동자가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동조합의 주체가 되는 그날까지, ‘더 많은 우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대다수 여성노동자가 처한 고용불안과 저임금 문제는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가치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예로부터 여성이 집안에서, 무급으로 수행해 온 일의 연장인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청소노동자, 가정관리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등의 임금노동 형태로 드러나지만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심지어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있거나, 인격적 대우는커녕 언어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일도 많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분석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전체 노동자로 포괄되지 않는 여성노동자의 경험과 노동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여성노동자가 고유하게 겪는 노동 현장과 노동조합활동에서의 난점과 특수성을 발견하며, 이에 대해 무감각했던 기존의 노동자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의 연재를 통해 전체 여성노동자의 삶과 주체화 과정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점이 되었으면 한다. 또 현재 추진 중인 전략조직화 사업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만들어지길 희망해 본다.
* 노조페미니즘팀은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의 구체적 경로를 모색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전체 노동자운동에서 여성사업에 대한 문제의식과 활동 평가를 기반으로 노동조합 활동에서 여성사업 기획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기획 연재는 격월로 진행되는 <노동위원회 연속워크샵>을 기반으로 작성될 것이다.
통계로 보는 청소노동자
노동부 산하 기관 한국고용정보원의 「산업별 직업별 고용구조조사(2009」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는 426개의 직업 중 403,976명을 차지하여, 직업순위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임금노동자 중에서는 다섯 번째로 종사자가 많기도 하다. 이는 청소노동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노동임을 의미한다. 그 중 남성이 66,380명(17.5%)이고, 여성이 313,543명(82.5%)으로 여성이 절대적으로 많다. 연령을 살펴보면 50세 이상이 82.1%를 차지하는데, 고령 노동자가 많은 직업임이 한 눈에 드러난다. 가구주인 경우는 남성이 91.7%, 여성이 50.6%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도 절반 정도 됨을 알 수 있다. 반면 학력은 중졸 이하가 76.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고용은 상용직 50.6%이고, 임시직 41.0%, 일용직 8.5%인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상용직의 의미가 통상적인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의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정년이 보장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균임금은 81.8만원이다. (남성 101.8만원, 여성이 77.6만원. 여성노동자 임금이 남성노동자의 76.3%에 불과하다.) 평균임금에는 각종 임금항목(수당)이 포함된다. 2009년 당시 최저임금이 시간당 4천원, 주 40시간 기준으로 83.6만원(주 44시간 기준 90.4만원)이었으므로, 대부분이 최저임금 위반사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주당 근로시간은 남성이 45.7시간, 여성이 44.0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보다 많이 근무하고 있었다. 청소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전체 426개 직업 중 낮은 순위로 일곱 번째를 차지한다.
고령의 여성, 청소노동자가 되다
“내가 60이 넘었는데 어디 할 건 없고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 뭐 방법이 없더라고…. 그래서 동네 아줌마한테 어디 돈 벌데 없냐고 하니깐, 여기서 해보라고 해서 와봤거든.”
“환갑이 다 되도록 가정주부였다가 남편의 은퇴로 일을 시작했지. 다른 일은 다 나이 때문에 못해. 식당 아니면 청소일인데, 식당은 쉬는 날도 없잖아”
“20년 넘게 경리일을 하고 오십이 다 돼 일을 찾다가 학교로 왔다.”
“30년 동안 식당에서 부엌일을 하고 음식을 나르다가 4대 보험이 된다는 말에 학교 청소노동자 됐어요.”
고령여성은 경제활동에서 배제되는 위축을 경험하다 별다른 선택지 없이 청소노동을 시작한다. 보통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은 청소노동을 시작하기 전 자영업, 노점, 공장노동자, 전업주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다가 청소노동을 하게 되는데 일을 시작하는 나이는 평균 51.6세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 여성은 가사와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성별분업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의 노동은 저평가되며 저임금 역시 당연시된다. 청소노동 또한 그러한 인식의 연장에 있다. 통계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노동자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의 경우는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용돈벌이’나 가계에 ‘보탬’이 되는 수준을 넘어서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저임금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 관리자로부터 시달려야 하는 각종 (언어/성)폭력과 위협도 심각한 수준이다. 노동기본권은 물론 인권의 사각지대에까지 내몰려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해고위협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노동자라는 고용형태는 너무나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노동조건일지라도 ‘내가 이 나이 먹어서 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점을 너무나 잘 아는 (남성)관리자들은 청소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욕설을 내뱉고, 상납을 받기도 하면서 청소노동자들의 불만을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노동조합과 처음 만나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는 7,853명으로 전체 청소노동자의 2.0%이다. 매우 낮은 가입률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여성비정규직노조(구 여성연맹), 여성노조, 일반노조, 공공노조 등으로 조직되어 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에는 약 1,000명 정도의 청소노동자들이 있는데, (고려대, 연세대, 연세재단빌딩, 이화여대, 홍익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프레스센터, 롯데손해보험빌딩분회 등)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조합원이 된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는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만, 대부분 이전의 노동조합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폭력적이고 과격한 것’, ‘빨갱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언론의 노동조합 죽이기, 레드컴플렉스 등이 조합원들에게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구체적으로는 ‘교육’이나 자신의 권리를 찾아 ‘투쟁’하는 과정을 거치며 노동조합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가족들의 지지 또한 대체로 부정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작년 12월 노조를 결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비정규직이란 걸 알았죠. 그 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글자(뜻)도 몰랐고 슬픔과 아픔도 몰랐어요. TV에 비정규직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렸어요. 이제까지 우리가 파견근로자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거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 달라졌어요. 내 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는 노동조합하는 사람이 재단 이사장보다 더 위대해보여요. 20년만 젊다면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 큰 아들은 “신여사님 대단하셔”라면서 농담을 해요. 우리 며느리도 “몇 개월 사이에 우리 어머니가 많은 걸 배우셨다”며 놀라워하죠. 밥 한 끼 권리 외치면서 캠페인하는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저는 개의치 않아요.”
통계 등의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고 난 후 달라진 점, 제일 좋은 점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임금인상이나 고용안정, 주5일제 시행과 같은 노동환경 개선이다. 또한 비슷하게 많은 대답이 나오는 것으로 평소 눈치 보기 바빴던 관리자들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더 이상 숨죽여 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을 가장 크고 좋은 변화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피해 다니기 바빴던, 나를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관리자들과 큰 소리로 싸워보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그야말로 ‘맞짱’ 뜨는 일은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슴이 방망이질 쳐지는 가장 떨리는 순간이자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은 대부분 임단협을 중심으로 한 임금인상투쟁이 핵심이다. 뿐만 아니라 미화사업장의 경우는(대부분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1년이나 2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해마다 고용과 관련된 크고 작은 투쟁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 투쟁 또한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투쟁이다. 조합원들은 반복되는 투쟁과 잦은 일정에 지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그만큼 ‘자연적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투쟁과 각종 일정들을 빡빡이 소화하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일상 활동이 다채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관례적으로라도 하는 간부교육 등은 대상의 특수성 때문에 기획조차 되지 못하였다. 이는 청소노동자들이 조합원이 된 이후 각종 일정에는 열심히 ‘참가’ 혹은 ‘동원’되나 주체로서 활동하는 데에는 부족한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일례로 핵심사업인 임단협 과정만 보더라도 현장간부들이 교섭위원으로 선출은 되지만, 노동조합의 체계나 역할, 단체교섭의 의미 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없다보니 지부임원이나 간부들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전략조직화 사업을 시작하다 - 교육을 통해 주체로 거듭나기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 그중에서도 청소용역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공공노조의 <대학 비정규직 전략조직화사업>은 2009년부터 시작했다. 사업은 크게 미조직사업, 간부육성사업, 여론사업 등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전략조직화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미조직 청소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조합원과 간부들이 미조직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소노동자를 조직하더라도 전담활동가가 아닌 기 조직된 청소노동자가 청소노동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단에서는 고민 끝에 미화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기획하였다. 활동하고 있는 미화사업장 핵심간부들을 대상으로 월 1회, 4시간 집합교육의 형태로 총 7개월 동안 진행하는 교육이었다.
교육을 조직적으로 제안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지부에서 전체 간부들을 한데 모아 노동교실 같은 교육을 해 온 적은 있지만 특정 직종(미화 업종과 같은)만 따로 분리해 교육을 했던 적은 없었다. 가장 큰 우려는 50-60대 중·고령 여성간부들이, ‘아줌마’ 혹은 ‘할머니’ 조합원들이 그 긴 시간에 이르는 교육을 소화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힘들고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짜는 것도 어려운 고민이었다. 실제로 교육 초기 미화간부들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발표)해야 하거나 토론하는 교육을 낯설어했으며, 교육이 끝나자마자 제대로 된 뒤풀이도 함께 하지 못하고 가족들 저녁 챙겨주어야 한다며 쏜살같이 교육장을 빠져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교육생들의 열의는 매우 높았다. 교육이 진행될수록 발표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전반적인 교육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8남매 중 큰 딸로 태어나서 집안 일만 한다고 공부를 못해 아쉬워요”
“10년만 젊었으면 더 없이 사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더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
교육준비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게 고려했던 점은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살아오면서 교육기회는 물론 사회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발표할 기회가 적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강사에 의존한 강의중심교육은 무리였다. 그래서 매 교육마다 50분 안팎의 강의와 참여형 토론을 배치하였고, 같은 교육주제라 할지라도 다른 형태의 두 세 차례 토론을 거칠 수 있게 하였다([참고 1]). 강의 또한 청소노동자 현실과 정서가 반영될 수 있도록 강사를 조직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몇 차례의 기획회의를 거쳤다. 교육 주제는 노동자 의식, 외국의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례, 청소노동자의 일과 건강, 역사로 보는 노동운동사 등 다양하였지만, 매 주제의 교육내용마다 미조직사업의 동기부여와 주체로서 작게나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접목시키려 노력하였다. 이를테면 교육 말미에 노동조합 소개 및 가입안내가 적힌 포켓티슈 3개씩을 교육생들에게 나눠주고, 다음 교육 때까지 3명의 미조직노동자를 만나서 포켓티슈를 건네며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을 숙제로 결의하는 식이다.
간부교육은 철저히 ‘학교’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청소노동자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절, 남아선호 시대를 살며 배움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세대들이기에 학교식 운영을 통해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입학식, 교장, 출석부, 담임선생님, 숙제, 시험, 방학, 졸업여행, 교육생의 이름이 적힌 노트 선물 등은 조합원들이 즐겁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기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3년차에 접어든 간부교육은 실제로 교육을 이수한 간부들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조합원들 말마따나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교육일지라도 교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노조 활동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간부교육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인으로는 첫째, 단체협약에 조합원들의 교육시간이 확보되어 있었고, 지부에서도 이를 적극 활용하여 안정적인 교육시간을 만들어낸 점. 둘째, 전략조직화 사업 기금을 통한 충분한 예산확보. 셋째, 조합원들의 정서와 조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교육기획 등을 꼽을 수 있다. 더불어 <따뜻한 밥 한 끼 권리 캠페인>이나 지부의 투쟁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전략조직화 사업이 탄력을 받는 속에 교육이 이루어진 것도 활기차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여성 특유의 친화력으로 새로운 노동자들을 만나다
청소노동자가 조직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분류된다. 고려대, 성신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처럼 학생들과 연대 사업을 통한 조직화 방식, 덕성여대, 동덕여대처럼 원청 노조(대학노조)와의 연대를 통한 방식, 기 조직된 조합원들과의 연계 및 투쟁의 입소문을 통한 자연발생적 조직화 방식이 대표적으로 조직화 되는 과정이다. 전략조직화 사업단에서는 이 중 학생들과의 연대 사업을 통한 조직화 과정을 주요 조직화 방식으로 선정하고 이화여대와 홍익대분회가 출범함으로써 이를 유의미한 경로로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청소노동자가 청소노동자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유효한 조직화 방식이라는 것도 확인하였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휴게실의 위치부터 파악하는 것으로 조직화 사업은 시작된다. 해당 대학의 학생들과 사업담당자가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2-3회에 걸쳐 정기적으로 휴게실을 방문하고 기본적인 실태조사를 수행하며, 노동자들을 직접 설득하는 시간이 조직화 과정 중 가장 긴 시기이자 중요한 과정이다. 학교의 크기나 노동자 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이 시간 동안 노동자들의 주요 불만지점을 파악하고, 진심으로 노동자들과 토론하여 이후 분회 간부로까지 활동할 수 있는 (핵심)주체가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간부교육을 이수한 분회 핵심간부들과 적극적인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조직화 프로그램 등을 배치하였다.
‘새벽출근선전전’은 출퇴근길 선전전으로 조직화에 성공한 미국 SEIU노조의 사례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언니·동생이 되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딱 맞는 조직화 방식이기도 하였다. 미화조합원들은 첫 차를 타고 출근하는 미조직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비슷한 처지에 대한 공감부터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내는 것까지 어떠한 활동가들보다 조직활동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휴게실 방문사업에서도 간부들의 역할은 컸는데, 잦은 방문은 아니었지만 연세대분회 간부들이 이화여대 조직화 단계에, 이화여대 간부들이 홍익대 조직화 단계에 함께 하면서 미조직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새로 조직된 조합원들을 바라보며 갖게 되는 분회 간부들의 자긍심과 애정은 남달랐다.
나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노동조합
저임금, 간접고용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폭로하고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시작한 <청소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캠페인단 활동은 전략조직화 사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이다. 캠페인 활동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언론을 통해 조명되면서 우호적인 여론형성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캠페인단에서 진행했던 여러 사업은 단순히 우호적인 여론형성을 넘어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환경, 권리, 나아가 삶의 문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발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교육과는 또 다른 주체화 과정이었다.
유령이 아닌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언했던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조합원들은 틈틈이 연습했던 풍물을 연주했다. 합창단을 만들어 가사를 개사한 노래공연을 직접 준비하기도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대회의 모든 발언을 채우기도 했다. 한 발 나아가 조합원이 직접 사회까지 보았던 <청소노동자 노래자랑>은 청소노동자들의 일상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또 다른 주체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성공적인 실험이었다. 일하면서 작게 흥얼거렸던 노래는 노래자랑이라는 무대를 만나 나의 일과 삶을 그리고의 나의 장기를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훌륭한 기제가 되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 '맞아맞아 꼴불견 베스트5' 등을 이야기할 때는 지나가던 시민들도 청소노동자들과 하나가 되는 분위기였다. 엄마의 무대를 위해 손수 피켓을 만든 딸의 응원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실험들은 ‘직접고용 쟁취하자’가 아닌 ‘학교랑 우리랑 직거래 합시다’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의 생생한 표현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나는 정말로 노래 부르는 것 빼고는 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침 노동조합에서 노래자랑을 한 대자나요. 그래서 얼른 신청했지요. 그런데 내가 은상을 탔다는거 아니겠어요! 나는 정말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거에요. 내가 노동조합 아니면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나는 정말 노조만나서 인생 대박터졌어요. 이번 간부 교육도 정말 열심히 들을거에요.”
대학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은 2개 대학 조직화에 성공하며 미조직사업으로서의 성과를 충분히 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몇몇 대학을 조직화 거점으로 선정해 집중적인 조직화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몇 개의 대학에서 노동조합 깃발이 더 휘날릴지도 모른다. 대학 뿐 아니라 빌딩, 관공서 등으로 조직화 범위를 확대해나가기 위한 실험과 노력도 진행 중이다.
전략조직화 사업이 조직화 과정에 전담활동가를 배치하는 등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여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집중적 투자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들을 별도의 특화된 사업이 아닌 지부의 자산으로, 일상 활동으로 녹여내는 것은 향후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조직화의 성과’ 이외에도 중요한 부분은, 처음부터 사업을 통해 미화 조합원들을 노동조합의 주체로 세워내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는 것, 그에 따른 사업의 기획과 집행을 했으며 실제로 그러한 실험을 통해 미화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의 주체로서 성장하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가 지부 활동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은 많은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화 조합원들의 연령 등을 고려하면 다른 젊은 조합원들에 비해 활동주기가 짧을 수밖에 없고 활동의 제약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조합원들보다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난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자신한다. 하기에 앞으로도 조합원들의 가능성을 믿고 보다 진일보한 투쟁과 사업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전략 조직화 사업은 조합원과 분회 간부들이 조직활동가로서 자기 역할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한다.
조합원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하지만 이미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엄혹한 정세 속에서도 그 어떤 노동자들보다 생동감 넘치게, 활기찬 노동조합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고,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우리는 전국의 40만 청소노동자가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동조합의 주체가 되는 그날까지, ‘더 많은 우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