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의 역사와 쟁점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와 서울대법인화 반대 본관점거농성은 단숨에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반값등록금 문제는 각 정당과 정치세력이 입장을 제출하도록 강제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회적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등록금 30% 대책을 내놓았고, 민주당은 즉각적인 반값등록금 실시를 주장했다. 진보정당은 조건 없는 반값등록금 실현과 함께 등록금상한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값등록금으로 촉발된 비싼 등록금에 대한 비판은 한국 대학의 역사에서 네 번째라고 할 수 있다. 등록금과 관련된 최초의 대중적 논쟁은 대학이 대중화되기 이전, 아직은 엘리트대학의 성격을 갖고 있던 시기에 발생했다. 1966년 등록금 허가제가 폐지되면서 사립대 등록금이 폭등해 연평균 29%씩 크게 오르면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교부는 당시 학계와 전문가들로부터 구체적 자문까지 얻어 기초작업을 벌였지만 워낙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데다 소수 대학생을 위해 국고로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따라 백지화했다.
두 번째 등록금 논쟁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에 따른 ‘우골탑 사건’이었다. 1980년대에 사립대 등록금은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경제기획원과 협의해 인상률을 정하면, 대학들은 이 기준에 맞춰 등록금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1989년 노태우 정권의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조치로 등록금 책정이 정부의 권한에서 대학의 권한으로 이양되자 사립대가 재정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등록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또 다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1993년 이후 사립대 등록금 폭등해 소 한 마리 값을 넘어서면서 소득이 낮았던 농민들은 자녀의 대학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학문의 전당을 상징하는 상아탑을 패러디해 소뼈로 쌓은 전당이라는 의미의 우골탑이란 용어가 유행했다.
세 번째 논쟁은 IMF 구제금융위기를 막 벗어나던 시점인 1999년 말부터 등록금이 폭등이 이뤄지면서 발생했다. 1998, 1999년 구제금융위기 기간 동안 등록금 동결 압박을 받은 대학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자 등록금 인상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던 국민들은 대학등록금 인상을 반대해 2000, 2001년 강력한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이 벌어졌다. 1999년 말에는 등록금삭감운동본부, 교육대책위 등의 대학생단체가 결성되어 교육투쟁을 전개했다. 2000년대 초반의 등록금 폭등은 이미 대학생의 고통을 넘어 사회전체의 문제로 확산되어 갔다.
그리고 네 번째 논쟁이 이명박 정권의 반값등록금 공약 미이행으로 촉발된 2011년의 반값등록금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대학생단체, 등록금네트워크 측은 정부에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했으나, 한나라당과 정부의 핵심인사는 반값등록금 공약 자체를 부인했다. 이미 대학등록금이 저소득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가계지출에도 큰 부담을 느낄 수준으로 인상되었으나 주요 정치세력은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반값등록금 실시 요구는 제2의 촛불문화제로 발전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 등록금 사태를 불러온 원인은 전두환 정권 이후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해온 신자유주의에 의한 등록금 자율화이다. 노태우 정권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고, 김대중 정권은 2002년에 산업대학 등록금을, 2003년에는 모든 국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1989년에서 약 10년간 등록금 폭등을 주도한 것이 사립대학이라면, 2002~2008년 등록금 인상을 주도한 것은 국립대학이었다. 다만, 2002~2008년의 경우 인상률은 국립대학이 사립대학보다 높았지만 애초부터 등록금이 비쌌던 사립대학의 인상액이 더 커, 국립대와 사립대 간의 절대적인 등록금액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2000~2010년 대학 연도별/설립별 등록금 인상률 추이(<그림1>)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대학등록금 상승률이 매우 높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등록금은 2배 이상 인상되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대학등록금 인상을 억제해, 등록금 인상률이 주춤하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 집권 초반인 2009, 2010년 등록금 인상률은 물가인상률보다 낮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등록금 문제 해결을 장학금과 학자금대출 확대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 비판받았다. 예컨대, 교육과학기술부는 반값등록금 대신 등록금 후불제의 한 형태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이자부담이 컸고, 성적 제한이 있는 등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학생단체를 중심으로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하면서, 누적되어온 불만이 이명박 정부를 향하게 되었다.
반값등록금 운동의 배경
반값등록금 운동은 복합적인 이유로 높은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 가장 큰 원인은 연간 500~1300만 원에 육박하는 높은 등록금이지만, 낮은 대졸 취업률과 악화된 일자리의 질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중요한 배경이었다. 더불어 빈익빈 부익부 심화로 등록금 부담이 가중된 것이 반값등록금이 큰 지지를 받은 이유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2011년 통계에 따르면, 대학별 연평균 등록금 상위 10위는 857~931만 원이고, 등록금이 가장 비싼 의학계열의 경우 1,094만~1,279만 원 가량이다. 여기에 ‘사실상의 등록금’이라 할 수 있는 실습비, 교재비 등이 추가되면 체감등록금은 훨씬 높아진다. 더군다나 대학생활을 위한 주거비, 생활비, 용돈 등을 감안하면 대학교육 이수를 위한 비용은 중산층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1989년 이후 등록금 인상률이 임금상승률,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아 가계 부담으로 작용했다. 1982년 이후 등록금은 평균 2~4% 인상되었으나,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 직후인 1990년 사립대가 등록금을 12.7% 인상해 ‘우골탑’ 논란이 발생했다. 또한 1991년 15.1%, 1992년 14.4%, 1993년 16.8%, 1994년 13.6%, 1995년 13.8%, 1996년 14.7% 등 7년 연속 10% 이상 등록금이 인상되어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등록금 격차가 커졌다. 1989년 이후 10년간 사립대학의 평균 등록금 인상률은 무려 16.9%였다.
1989~1999년 당시는 사립대학을 다닐 수 없는 학생의 경우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립대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2~2003년 국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에 따라 국립대 등록금이 급등하기 시작함하자, 마지막 탈출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 등록금을 2001년과 비교할 경우 국립대학은 82.5%, 사립대학은 57.1% 각각 인상되었다. 같은 기간 물가인상률은 31.5%에 불과해, 대학이 물가인상률 보다 훨씬 높게 등록금을 인상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학자금 대출이 증가하고, 비싼 학자금 대출 이자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급증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대졸자의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일자리의 질도 낮아졌다.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 이수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58.4%에서 2007년 56.8%, 2008년 56.1%, 2009년은 48.3%로 낮아졌다. 반면 비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15.7%, 2007년 17.7%, 2008년 18.8%, 2009년 26.2%로 상승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이력추적 연구에 따르면, 남성 대졸자 취업률은 53.1%, 여성 대졸자는 31.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전공별 취업률은 ▲공학계 56.5% ▲의약계 49.6% ▲사회계 42.4% ▲이학계 38.6% ▲인문계 33.0% ▲예체능계 26.4% ▲사범계 20.9%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비싼 교육비를 지불해 대학 졸업 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인생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축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등록금 인상으로 마련한 재정을 적립금으로 이월하여 건축비 등 대학자산을 늘리는데 사용하거나, 사용처가 불분명해 대학생으로부터 비난받았다. 현재 대학의 적립금 규모는 10조 원에 이르는 등, 그 규모가 날로 커져가고 있다.
반값등록금 전략의 한계
등록금 원포인트 전략의 한계
반값등록금 운동이 큰 폭발력을 가졌으면서도 비판적으로 평가받는 지점은 대학교육의 근본적 문제들이 가려지고 비용 문제로만 쟁점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른 바 원포인트 전략, 일점돌파식의 투쟁이 당장은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등록금만 과다노출 되어 대학의 많은 문제들이 가려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이 운동을 정치적으로 수렴하고 있는 민주당은 대학기업화(즉, 대학산업화)를 통한 등록금 폭등을 주도한 세력으로서, 등록금 폭등을 유발한 당사자들이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비용 문제, 세금 지원 문제로만 쟁점을 집중시킬 때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만약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면 대학생이 부담하는 등록금은 1999~2000년 수준으로 인하되고, 나머지는 중앙 정부나 대학이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등록금이 인하되어도 고용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높은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늪, 열악한 노동조건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는 결국 세금으로 등록금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을 세금으로 실현할 경우 대부분의 경우 대학으로서 손해를 볼 것이 없다. 오히려 대학 입장에서는 기존의 등록금 수입을 그대로 보장받으면서 향후 등록금 인상의 가능성이 추가로 생길 뿐이다.
정부가 대학등록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부담하면서 다른 교육 분야의 예산을 삭감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최근 만5세 공통과정을 통해 유치원, 어린이집 지원확대를 선언한 이명박 정부는 재원을 초중등 교육예산 중 일부를 이전해서 마련키로 했다. 결국 조삼모사인 셈이다.
제시된 다양한 등록금 인하 해법과 그 한계
반값등록금이 이슈로 떠오른 후 대학생, 국민, 정치권 등에서는 등록금 인하에 공감을 드러냈지만, 해법에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는 기여입학제 도입을 통한 등록금 인하가 자리 잡고 있다. 즉, 부유층 자녀가 기여입학을 통해 재정적 기여를 하면, 해당 재정을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김황식 국무총리에 이어 최근 재정학회 등 보수진영이 기여입학제 도입을 통한 반값등록금 실현을 제기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서울대 대학본부는 서울대 법인화로 수익을 창출해 등록금 인하에 나서자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은 소득하위 50% 이하 계층에게 B학점 이상을 전제로 국가장학금을 지원하고, 부실대학은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것을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반값등록금 대신 등록금 30% 인하를 제시하고 있으며, 소요 예산은 2~4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소요 예산을 추가감세 철회나 잉여금을 통해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구상에서도 한참 후퇴해 등록금에 대한 불만을 대학 구조조정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재정과 기부금 등을 통해 국공립대는 등록금을 반액으로 인하하고, 사립대는 10조 원으로 추산되는 이월적립금을 활용해 등록금을 추가 인하하자는 입장이다. 소요 예산은 5조 7천억 원 가량으로 보고 있다. 기존 교육재정부금에 ‘고등교육재정 교부금’을 신설하고, 교부금 규모를 내국세의 4%에 해당하는 5조 원 가량 조성하자는 주장이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에 중앙등록금심의위원회를 설치해 등록금기준액, 등록금상한액을 심의토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등록금기준액은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3배를 넘지 않도록 했으며 기준액의 1.2배를 넘지 않는 선에서 등록금상한액을 정하도록 했다.
민주노동당은 소득에 상관없이 등록금을 반액으로 인하하고, 내국세 10%를 고등교육 재원으로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사립대 법인전입금을 강제하고, 법정전입금을 미납할 경우 국고교부금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등록금네트워크는 민주노동당의 등록금 대책을 지지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반값등록금을 계기로 등록금과 함께 대학개혁에도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보신당은 소득수준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책정하고, 소득하위 1분위는 전액 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등록금 상한액도 두어, 국공립대 등록금은 100만 원 이하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신당이 내놓은 해결책은 여러 정치세력의 방안 중에서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각 대학의 입장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등록금을 대폭 인상했기 때문에 세금으로 수익감소분을 보전해주기만 한다면, 등록금 인하 효과만 있는 현재의 등록금 인하정책을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현재 대학 측은 반값등록금 실현방안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어 대학 측에게만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등록금 대책에서는 우선 국립대의 기성회비 문제가 쟁점으로 남아있다. 과거의 경우 대학등록금은 입학금과 수업료, 기성회비로 구성되었는데 국립대는 이 중 기성회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입학금은 첫 학기만 내기 때문에 제외할 경우, 국립대 등록금의 대부분은 ‘부족한 재원을 학생/학부모에게 전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성회비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래 전부터 제기된 바와 같이 기성회비를 없애거나 수업료와 통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반값등록금 논쟁에서는 이 부분이 잠복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등록금 인하 방안은 국립대의 경우 세금으로 등록금 인하폭을 보전하고, 사립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과 이월적립금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2010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고등교육 정부부담 공교육비의 3.5배 정도가 투입되면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한다.(고등교육 정부부담 공교육비 비율 한국 20.7%, OECD 평균 69.1%) 또한 중앙정부는 대학의 재정낭비 요인을 찾아 지출규모를 축소를 추진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칫 비정규직의 확대와 노동조건의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값등록금에 가려진 주요 쟁점
반값등록금 주장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은 쟁점이 바로 ‘등록금을 낮춰도 대학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사립대학 중심의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대학기업화는 그대로 혹은 더 빠르게 진행되며 ▲운영원리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2010년 교육통계에 따르면, 4년제 대학(교대 제외) 179개교 가운데 사립대는 152개교로 전체의 84.92%를 차지한다. 국립대는 25개교, 공립대는 서울시립대와 시립인천대 등 2개교에 불과하다. 재학생수 기준으로는 국립대 재학생이 19.86%, 공립대 재학생이 1.24%, 사립대 재학생이 78.9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비슷한 상황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국공립대가 적고, 사립대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반값등록금 사태로 촉발된 대학개혁에 대한 관심은 사립대학 개혁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관심의 초점은 사립대학의 투명성 확보 등에 한정되고 있다. 국고지원을 통해 사립대학 등록금 인하에 나설 경우에도 ‘부실사학에 국민의 혈세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근본적으로 학교의 지배구조, 의사결정 구조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부에서는 ‘사립대학의 국립대학으로의 전환’ 등을 제기하지만, 급진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파급력이 약하다. 따라서 반값등록금이 실현되더라도 대학의 지배구조 문제, 설립유형, 의사결정 권한 등 대학의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또한 미국형 대학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을 계속 억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남는다.
직업이행 전략 없는 대학교육의 유지는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파탄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조적 접근 필요하다. 고용팽창기에는 ‘경제 성장 → 정규직 고용 창출 → 경제 성장 → 새로운 노동 수요 창출(화이트 칼라) → 고등학교 및 대학 팽창’의 과정을 거쳐 재생산이 이뤄진다. 반면 고용감축기에는 ‘대학 팽창 → 고용 정체 → 대학 팽창 → 고용 양극화 → 제한적 일자리 획득 위해 대학 진학 → 노동조건 악화 → 대학간/학문간/지역간 서열화와 위기 가속화 및 대학 구조조정’과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의 위기가 확대된다.
대학 진학 이후 대학생의 모습은 중도탈락, 직업이행(취업), 학업 연장, 그리고 졸업 후 미취업 등으로 유형화 할 수 있다. 직업이행의 경우에도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정년의 의미가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간접고용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기존의 관점에서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이행에 도달할 수 있는 대학 졸업자는 불과 7% 내외이다. ‘직업이행의 축소와 재생산의 위기’야 말로 등록금을 인하한다고 해도 대학교육을 정상화시키기 가장 곤란한 조건이다.
반값등록금 운동을 위한 제언
2011년 5~6월을 수놓았던 반값등록금 촛불은 잊혀진 대학의 사회적 기여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반값등록금 운동은 앞으로 단기적 접근과 중장기적 접근이라는 두 가지 트랙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반값등록금이라는 의제로 대학개혁의 불씨를 살려나가기 위한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의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값등록금을 제기하고 있는 민주당은 대학기업화를 주도했으면서도 이 운동의 성과를 수렴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반값등록금은 야권, 특히 민주당에 일방적으로 수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반값등록금이 야권연대를 위한 복지선물세트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사립대에 의존하는 구조를 국공립대 확대로 보완하거나 대학의 영리추구 성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대학운영의 민주성을 강화하고, 대학의 사회적 기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적절한 임금 지급을 통해 임금격차를 감축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반값등록금 운동은 등록금과 대학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 공명해야 한다.
반값등록금으로 촉발된 비싼 등록금에 대한 비판은 한국 대학의 역사에서 네 번째라고 할 수 있다. 등록금과 관련된 최초의 대중적 논쟁은 대학이 대중화되기 이전, 아직은 엘리트대학의 성격을 갖고 있던 시기에 발생했다. 1966년 등록금 허가제가 폐지되면서 사립대 등록금이 폭등해 연평균 29%씩 크게 오르면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교부는 당시 학계와 전문가들로부터 구체적 자문까지 얻어 기초작업을 벌였지만 워낙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데다 소수 대학생을 위해 국고로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따라 백지화했다.
두 번째 등록금 논쟁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에 따른 ‘우골탑 사건’이었다. 1980년대에 사립대 등록금은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경제기획원과 협의해 인상률을 정하면, 대학들은 이 기준에 맞춰 등록금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1989년 노태우 정권의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조치로 등록금 책정이 정부의 권한에서 대학의 권한으로 이양되자 사립대가 재정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등록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또 다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1993년 이후 사립대 등록금 폭등해 소 한 마리 값을 넘어서면서 소득이 낮았던 농민들은 자녀의 대학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학문의 전당을 상징하는 상아탑을 패러디해 소뼈로 쌓은 전당이라는 의미의 우골탑이란 용어가 유행했다.
세 번째 논쟁은 IMF 구제금융위기를 막 벗어나던 시점인 1999년 말부터 등록금이 폭등이 이뤄지면서 발생했다. 1998, 1999년 구제금융위기 기간 동안 등록금 동결 압박을 받은 대학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자 등록금 인상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던 국민들은 대학등록금 인상을 반대해 2000, 2001년 강력한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이 벌어졌다. 1999년 말에는 등록금삭감운동본부, 교육대책위 등의 대학생단체가 결성되어 교육투쟁을 전개했다. 2000년대 초반의 등록금 폭등은 이미 대학생의 고통을 넘어 사회전체의 문제로 확산되어 갔다.
그리고 네 번째 논쟁이 이명박 정권의 반값등록금 공약 미이행으로 촉발된 2011년의 반값등록금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대학생단체, 등록금네트워크 측은 정부에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했으나, 한나라당과 정부의 핵심인사는 반값등록금 공약 자체를 부인했다. 이미 대학등록금이 저소득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가계지출에도 큰 부담을 느낄 수준으로 인상되었으나 주요 정치세력은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반값등록금 실시 요구는 제2의 촛불문화제로 발전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 등록금 사태를 불러온 원인은 전두환 정권 이후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해온 신자유주의에 의한 등록금 자율화이다. 노태우 정권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고, 김대중 정권은 2002년에 산업대학 등록금을, 2003년에는 모든 국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1989년에서 약 10년간 등록금 폭등을 주도한 것이 사립대학이라면, 2002~2008년 등록금 인상을 주도한 것은 국립대학이었다. 다만, 2002~2008년의 경우 인상률은 국립대학이 사립대학보다 높았지만 애초부터 등록금이 비쌌던 사립대학의 인상액이 더 커, 국립대와 사립대 간의 절대적인 등록금액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2000~2010년 대학 연도별/설립별 등록금 인상률 추이(<그림1>)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대학등록금 상승률이 매우 높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등록금은 2배 이상 인상되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대학등록금 인상을 억제해, 등록금 인상률이 주춤하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 집권 초반인 2009, 2010년 등록금 인상률은 물가인상률보다 낮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등록금 문제 해결을 장학금과 학자금대출 확대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 비판받았다. 예컨대, 교육과학기술부는 반값등록금 대신 등록금 후불제의 한 형태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이자부담이 컸고, 성적 제한이 있는 등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학생단체를 중심으로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하면서, 누적되어온 불만이 이명박 정부를 향하게 되었다.
반값등록금 운동의 배경
반값등록금 운동은 복합적인 이유로 높은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 가장 큰 원인은 연간 500~1300만 원에 육박하는 높은 등록금이지만, 낮은 대졸 취업률과 악화된 일자리의 질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중요한 배경이었다. 더불어 빈익빈 부익부 심화로 등록금 부담이 가중된 것이 반값등록금이 큰 지지를 받은 이유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2011년 통계에 따르면, 대학별 연평균 등록금 상위 10위는 857~931만 원이고, 등록금이 가장 비싼 의학계열의 경우 1,094만~1,279만 원 가량이다. 여기에 ‘사실상의 등록금’이라 할 수 있는 실습비, 교재비 등이 추가되면 체감등록금은 훨씬 높아진다. 더군다나 대학생활을 위한 주거비, 생활비, 용돈 등을 감안하면 대학교육 이수를 위한 비용은 중산층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1989년 이후 등록금 인상률이 임금상승률,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아 가계 부담으로 작용했다. 1982년 이후 등록금은 평균 2~4% 인상되었으나,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 직후인 1990년 사립대가 등록금을 12.7% 인상해 ‘우골탑’ 논란이 발생했다. 또한 1991년 15.1%, 1992년 14.4%, 1993년 16.8%, 1994년 13.6%, 1995년 13.8%, 1996년 14.7% 등 7년 연속 10% 이상 등록금이 인상되어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등록금 격차가 커졌다. 1989년 이후 10년간 사립대학의 평균 등록금 인상률은 무려 16.9%였다.
1989~1999년 당시는 사립대학을 다닐 수 없는 학생의 경우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립대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2~2003년 국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에 따라 국립대 등록금이 급등하기 시작함하자, 마지막 탈출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 등록금을 2001년과 비교할 경우 국립대학은 82.5%, 사립대학은 57.1% 각각 인상되었다. 같은 기간 물가인상률은 31.5%에 불과해, 대학이 물가인상률 보다 훨씬 높게 등록금을 인상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학자금 대출이 증가하고, 비싼 학자금 대출 이자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급증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대졸자의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일자리의 질도 낮아졌다.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 이수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58.4%에서 2007년 56.8%, 2008년 56.1%, 2009년은 48.3%로 낮아졌다. 반면 비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15.7%, 2007년 17.7%, 2008년 18.8%, 2009년 26.2%로 상승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이력추적 연구에 따르면, 남성 대졸자 취업률은 53.1%, 여성 대졸자는 31.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전공별 취업률은 ▲공학계 56.5% ▲의약계 49.6% ▲사회계 42.4% ▲이학계 38.6% ▲인문계 33.0% ▲예체능계 26.4% ▲사범계 20.9%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비싼 교육비를 지불해 대학 졸업 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인생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축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등록금 인상으로 마련한 재정을 적립금으로 이월하여 건축비 등 대학자산을 늘리는데 사용하거나, 사용처가 불분명해 대학생으로부터 비난받았다. 현재 대학의 적립금 규모는 10조 원에 이르는 등, 그 규모가 날로 커져가고 있다.
반값등록금 전략의 한계
등록금 원포인트 전략의 한계
반값등록금 운동이 큰 폭발력을 가졌으면서도 비판적으로 평가받는 지점은 대학교육의 근본적 문제들이 가려지고 비용 문제로만 쟁점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른 바 원포인트 전략, 일점돌파식의 투쟁이 당장은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등록금만 과다노출 되어 대학의 많은 문제들이 가려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이 운동을 정치적으로 수렴하고 있는 민주당은 대학기업화(즉, 대학산업화)를 통한 등록금 폭등을 주도한 세력으로서, 등록금 폭등을 유발한 당사자들이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비용 문제, 세금 지원 문제로만 쟁점을 집중시킬 때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만약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면 대학생이 부담하는 등록금은 1999~2000년 수준으로 인하되고, 나머지는 중앙 정부나 대학이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등록금이 인하되어도 고용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높은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늪, 열악한 노동조건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는 결국 세금으로 등록금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을 세금으로 실현할 경우 대부분의 경우 대학으로서 손해를 볼 것이 없다. 오히려 대학 입장에서는 기존의 등록금 수입을 그대로 보장받으면서 향후 등록금 인상의 가능성이 추가로 생길 뿐이다.
정부가 대학등록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부담하면서 다른 교육 분야의 예산을 삭감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최근 만5세 공통과정을 통해 유치원, 어린이집 지원확대를 선언한 이명박 정부는 재원을 초중등 교육예산 중 일부를 이전해서 마련키로 했다. 결국 조삼모사인 셈이다.
제시된 다양한 등록금 인하 해법과 그 한계
반값등록금이 이슈로 떠오른 후 대학생, 국민, 정치권 등에서는 등록금 인하에 공감을 드러냈지만, 해법에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는 기여입학제 도입을 통한 등록금 인하가 자리 잡고 있다. 즉, 부유층 자녀가 기여입학을 통해 재정적 기여를 하면, 해당 재정을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김황식 국무총리에 이어 최근 재정학회 등 보수진영이 기여입학제 도입을 통한 반값등록금 실현을 제기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서울대 대학본부는 서울대 법인화로 수익을 창출해 등록금 인하에 나서자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은 소득하위 50% 이하 계층에게 B학점 이상을 전제로 국가장학금을 지원하고, 부실대학은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것을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반값등록금 대신 등록금 30% 인하를 제시하고 있으며, 소요 예산은 2~4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소요 예산을 추가감세 철회나 잉여금을 통해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구상에서도 한참 후퇴해 등록금에 대한 불만을 대학 구조조정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재정과 기부금 등을 통해 국공립대는 등록금을 반액으로 인하하고, 사립대는 10조 원으로 추산되는 이월적립금을 활용해 등록금을 추가 인하하자는 입장이다. 소요 예산은 5조 7천억 원 가량으로 보고 있다. 기존 교육재정부금에 ‘고등교육재정 교부금’을 신설하고, 교부금 규모를 내국세의 4%에 해당하는 5조 원 가량 조성하자는 주장이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에 중앙등록금심의위원회를 설치해 등록금기준액, 등록금상한액을 심의토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등록금기준액은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3배를 넘지 않도록 했으며 기준액의 1.2배를 넘지 않는 선에서 등록금상한액을 정하도록 했다.
민주노동당은 소득에 상관없이 등록금을 반액으로 인하하고, 내국세 10%를 고등교육 재원으로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사립대 법인전입금을 강제하고, 법정전입금을 미납할 경우 국고교부금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등록금네트워크는 민주노동당의 등록금 대책을 지지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반값등록금을 계기로 등록금과 함께 대학개혁에도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보신당은 소득수준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책정하고, 소득하위 1분위는 전액 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등록금 상한액도 두어, 국공립대 등록금은 100만 원 이하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신당이 내놓은 해결책은 여러 정치세력의 방안 중에서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각 대학의 입장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등록금을 대폭 인상했기 때문에 세금으로 수익감소분을 보전해주기만 한다면, 등록금 인하 효과만 있는 현재의 등록금 인하정책을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현재 대학 측은 반값등록금 실현방안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어 대학 측에게만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등록금 대책에서는 우선 국립대의 기성회비 문제가 쟁점으로 남아있다. 과거의 경우 대학등록금은 입학금과 수업료, 기성회비로 구성되었는데 국립대는 이 중 기성회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입학금은 첫 학기만 내기 때문에 제외할 경우, 국립대 등록금의 대부분은 ‘부족한 재원을 학생/학부모에게 전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성회비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래 전부터 제기된 바와 같이 기성회비를 없애거나 수업료와 통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반값등록금 논쟁에서는 이 부분이 잠복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등록금 인하 방안은 국립대의 경우 세금으로 등록금 인하폭을 보전하고, 사립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과 이월적립금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2010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고등교육 정부부담 공교육비의 3.5배 정도가 투입되면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한다.(고등교육 정부부담 공교육비 비율 한국 20.7%, OECD 평균 69.1%) 또한 중앙정부는 대학의 재정낭비 요인을 찾아 지출규모를 축소를 추진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칫 비정규직의 확대와 노동조건의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값등록금에 가려진 주요 쟁점
반값등록금 주장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은 쟁점이 바로 ‘등록금을 낮춰도 대학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사립대학 중심의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대학기업화는 그대로 혹은 더 빠르게 진행되며 ▲운영원리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2010년 교육통계에 따르면, 4년제 대학(교대 제외) 179개교 가운데 사립대는 152개교로 전체의 84.92%를 차지한다. 국립대는 25개교, 공립대는 서울시립대와 시립인천대 등 2개교에 불과하다. 재학생수 기준으로는 국립대 재학생이 19.86%, 공립대 재학생이 1.24%, 사립대 재학생이 78.9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비슷한 상황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국공립대가 적고, 사립대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반값등록금 사태로 촉발된 대학개혁에 대한 관심은 사립대학 개혁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관심의 초점은 사립대학의 투명성 확보 등에 한정되고 있다. 국고지원을 통해 사립대학 등록금 인하에 나설 경우에도 ‘부실사학에 국민의 혈세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근본적으로 학교의 지배구조, 의사결정 구조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부에서는 ‘사립대학의 국립대학으로의 전환’ 등을 제기하지만, 급진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파급력이 약하다. 따라서 반값등록금이 실현되더라도 대학의 지배구조 문제, 설립유형, 의사결정 권한 등 대학의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또한 미국형 대학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을 계속 억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남는다.
직업이행 전략 없는 대학교육의 유지는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파탄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조적 접근 필요하다. 고용팽창기에는 ‘경제 성장 → 정규직 고용 창출 → 경제 성장 → 새로운 노동 수요 창출(화이트 칼라) → 고등학교 및 대학 팽창’의 과정을 거쳐 재생산이 이뤄진다. 반면 고용감축기에는 ‘대학 팽창 → 고용 정체 → 대학 팽창 → 고용 양극화 → 제한적 일자리 획득 위해 대학 진학 → 노동조건 악화 → 대학간/학문간/지역간 서열화와 위기 가속화 및 대학 구조조정’과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의 위기가 확대된다.
대학 진학 이후 대학생의 모습은 중도탈락, 직업이행(취업), 학업 연장, 그리고 졸업 후 미취업 등으로 유형화 할 수 있다. 직업이행의 경우에도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정년의 의미가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간접고용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기존의 관점에서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이행에 도달할 수 있는 대학 졸업자는 불과 7% 내외이다. ‘직업이행의 축소와 재생산의 위기’야 말로 등록금을 인하한다고 해도 대학교육을 정상화시키기 가장 곤란한 조건이다.
반값등록금 운동을 위한 제언
2011년 5~6월을 수놓았던 반값등록금 촛불은 잊혀진 대학의 사회적 기여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반값등록금 운동은 앞으로 단기적 접근과 중장기적 접근이라는 두 가지 트랙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반값등록금이라는 의제로 대학개혁의 불씨를 살려나가기 위한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의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값등록금을 제기하고 있는 민주당은 대학기업화를 주도했으면서도 이 운동의 성과를 수렴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반값등록금은 야권, 특히 민주당에 일방적으로 수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반값등록금이 야권연대를 위한 복지선물세트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사립대에 의존하는 구조를 국공립대 확대로 보완하거나 대학의 영리추구 성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대학운영의 민주성을 강화하고, 대학의 사회적 기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적절한 임금 지급을 통해 임금격차를 감축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반값등록금 운동은 등록금과 대학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 공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