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반주변부 재정위기에 대한 전망
글 머리에
6월 21일 그리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집권 사회당 파판드레우 수상은 내각을 새로 구성하여 의회에 신임투표를 붙여 이를 통과시켰다. 이는 구제금융 자금 5차 지급을 계기로 채권자들, 즉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이 추가로 요구한 긴축정책을 통과시키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이런 조치가 필요했던 것은 긴축정책에 대한 반감이 엄청나 파판드레우 수상이 이끄는 정부와 사회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그 여파로 집권 사회당 내에서도 이반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월 15일엔 스페인의 ‘분노한 시민들’의 광장점거 시위를 따라 한 시위가 아테네에서 30만이 모여서 진행되었고, 민간부문 노총과 공공부문 노총 둘 다 24시간 총파업을 벌였으며, 긴축정책을 의회에 통과시키려고 잡아 놓고 있는 28일엔 이번 위기 들어 처음으로 양대 노총이 48시간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던 터였다.
새로 구성된 내각이 의회 신임투표를 통과하였다 하더라도 긴축정책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이번에 예정되어 있는 5차 자금을 수령하거나 아니면 일각에서 전망하는 제 2차 구제금융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이런 과정이 모두 차질 없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 긴축정책안이 국민들로부터 별 저항 없이 집행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두 불투명하다. 아무튼 이것이 2010년 5월에 시작된 그리스 구제금융과 긴축정책 시행의 현재의 모습이다.
그리스만이 아니다. 아일랜드는 2010년 11월에, 포르투갈은 2011년 5월에 차례로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였다. 모두 유럽 반주변국들의 재정위기에서 비롯한 경제위기 때문인데 이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까지 번질지, 그래서 유럽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그 결과 유로화가 붕괴할 것인지 등이 현재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럽 반주변의 위기와 구제금융
2000년대에 주택부문에서 거대한 거품이 형성되었다가 붕괴되면서 2008년 들어 미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했다면, 2008년부터 유럽에서 진행된 경제위기는, 한편으로는 유럽 각국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이런 금융거품의 형성과 붕괴에 얽혀 있으면서 발생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로화 출범 이후 유로화 강세로 인해 유럽의 반주변부에서 주로 형성된 거대한 거품이 붕괴하면서 초래된 것이기도 하다. 즉, 2008년에 미국을 시발로 경제위기가 도래했고, 이것의 여파로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빠져들었지만, 이 와중에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폭증한 유럽의 반주변부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제 2차 경제위기에 돌입하여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차례로 유럽금융안정화기금과 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 나라들이 구제금융을 받은 이유는 단적으로 금융시장에서 정상적인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표 1] 참조).
참고로 구제금융 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는 7천5백억 유로의 상당부분은 유럽금융안정화기금인데, 이를 조성하는 데에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중심부 국가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그러면 이들 국가들의 경제위기는 이제 가실 기미가 있는가,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가? 앞서 맨 먼저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이야기를 했지만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간단히 알아보기로 하자.
상황을 악화시킨 긴축정책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은 구제금융을 제공한 뒤 이들 국가의 사정이 호전되어 금융시장에서 정상적인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경우 구제금융으로 일시적인 유동성위기를 해소한 뒤 2012년부터는 만기도래하는 빚의 75%를 차환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였다. 즉 2012년 이후로는 정상화의 길을 밟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는 사정이 악화되어 최근에는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얘기되고 있다. 아니 디폴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구제금융 당사자들이 그리고 있던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IMF 구제금융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이 주도한 이번 구제금융도 가혹한 긴축정책을 요건으로 하여 제공되었다. 재정적자가 줄고 결국은 재정흑자를 이룩해 정부부채가 줄어들어야 이들 위기 국가에게 빌려준 돈을 상환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구제금융 자금을 한꺼번에 지불하지 않고 몇 차례 나눠 주면서 구조조정을 점검하고 필요한 때는 추가 구조조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애초에 예상했던 결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 다시 구제금융을 받은 지 가장 오랜 시간이 흐른 그리스의 예를 들어보자.
2010년 5월 구제금융을 개시할 때 구제금융 당사자들은 그리스의 2010년과 2011년 성장률을 각각 -4%와 -2.6%로 전망하였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3월에 검토한 결과 각각 이 수치는 -4.5%와 -3%로 하향 수정되었다. 정부 재정적자는 2010년과 2011년 각각 국내총생산 대비 8.1%와 7.6%로 예상을 했는데, 역시 올해 3월에는 각각 9.6%와 7.5%로 수정되었다.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 대비 각각 8.4%, 7.1% 예상에서 10.5%, 8.2%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국가부채 상황은 당연히 악화하였다. 구제금융 초기에는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2012년에 149%로 최고치로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올 3월에는 이 수치를 159%로 수정하였다. 더 악화하고 있는 사정을 반영했으리라.
이런 수정은 2011년 3월에 진행된 것이어서 2010년도 수정치는 확정된 경제통계치는 아니더라도 대강 나타난 경제실적을 보고 수정한 것일 텐데, 이를 보면 이들의 애초 예상이 현실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2011년의 바뀐 예상치도 실제로는 더 악화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렇게 예상보다 못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로 유럽에 정부부채 문제가 드러나면서 구제금융을 받게 된 나라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들까지 유럽연합 전 가맹국에서 확산된 긴축정책의 영향을 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요 부족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요를 더욱 위축시키는 긴축정책을 전 유럽에서 시행했으니(보수당이 집권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의 성장이 저하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리스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는 당연히 세입 부족을 초래해 재정적자는 애초 예상만큼 줄지 않았고 정부부채는 예상보다 더 늘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보면 몇몇 나라의 재정위기를 빌미로 한 유럽연합 전체차원의 긴축정책으로의 선회는 그리스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은 꼴이 되었다.
미봉책의 연속
이렇게 그리스 사정이 애초 예상보다 더 악화되고 있는데도, 유럽연합 등 채권자들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회피하면서 지속적으로 긴축정책의 강도를 높여가기를 주문하고 있다. 그 결과는 그리스 경제의 침몰이며, 그리스 민중들의 삶의 파탄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연합 채권자들은 채권자들대로 결국 감당해야 할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부채 상환능력은 더 고갈되어 가고 부채 규모는 애초 예상보다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뒤따르는 수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채무 조정 내지는 삭감 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현재는 민간 금융자본을 이 과정에 끌어들일지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독일 수상 메르켈의 얘기가 나오자 금융자본들은 그럴 경우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면서 협박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할까? 오늘날 금융상품이 극도로 복잡하고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쉽게 이야기할 성질은 아니지만, 지금도 시장에서는 그리스의 디폴트와 뒤이은 채무삭감을 예상하여 국채수익률이 결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예상과 예상이 현실화하는 것은 그 효과가 약간 다르겠지만 디폴트와 채무삭감이 있다 해도 상황이 현저히 더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에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리만 브라더스의 총자산 규모는 6000억달러가 넘었고, 다른 문제가 되고 있던 투자은행들의 자산규모와 미국국제그룹(AIG)의 자산규모까지 치면 그야말로 수조달러에 이르렀고, 그리스 정부채 규모는 불과 3000억 달러 내외다. 자신들은 전혀 손해를 입지 않고 손해를 전부 공적부담으로 떠넘기려는 술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질질 끌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스 경제가 더 악화하면서 그리스의 채무삭감 규모가 커지고 이것이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디폴트로,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구제금융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유럽 위기의 전망
자연스럽게 이후 유럽 재정위기의 전망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서 누구도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몇 가지 경제지표나 통계를 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우선, 그리스의 정부부채 보유상황을 보면서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표 2]를 보면 지금은 약간 달라졌겠으나 2010년 3/4분기 기준으로 그리스 정부부채의 32%는 자국인이 보유하고 있고, 외국인 보유 비중은 68%이다. 유로존은 54%,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이 각각 14%, 독일이 9%를 보유하고 있다. 직접적인 위험 노출정도로 보면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 그리고 독일 순이다. 미국은 1%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어서 미국의 직접적인 위험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직접적인 위험노출만 보면 다른 위기 국가들에도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치면 위기 국가들 대부분이 라틴계 국가들인데 미국경제는 이들과의 경제 연관성이 매우 낮다. 그런데 이런 직접적인 위험 노출 이외에 미국금융기관들이 채권이 부도가 났을 때 그 원금지급을 보장해주는 보험성격의 금융상품인 신용부도스왑(CDS)을 많이 판매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는데 직접노출보다는 훨씬 크다고 한다.
둘째, 관련국들의 정부부채 수준을 알아보면서 이야기해 보자. [표 3]을 보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부채수준이 매우 높은데 특히 그리스는 위기를 경과하면서 그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다. 그 외 국가들의 경우 위기 이전, 즉 2008년만 해도 정부부채 수준이 대체로 80% 이하여서 크게 문제가 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부채 비율은 매우 낮았다가 경제위기 과정에서 매우 높아졌다. 은행위기가 터지면서 정부가 이에 개입하면서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위기 3개국 이후 다음 위기 국가로 지목되고 있는 스페인의 정부부채 비율은 의외로 매우 낮다. 스페인의 경우 민간부문의 부실이 매우 심각한데 여기에 정부가 개입을 할 것인지의 여부, 그리고 정부개입 수준에 따라 이후 정부부채 비율이 변화를 겪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긴축정책으로 정부부채증가를 둔화시키는 것이 경기확장에 도움이 된다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정부부채 수준으로만 보면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뒤에서 살필 순대외자산을 보면 더더구나 긴축의 필요성이 있는 나라는 아니다. 보수당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영국은 긴축정책으로 최근 성장률이 매우 지지부진한 상태다([그림 1] 참조).
마지막으로, 순대외자산 규모를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자. 순대외자산은 플러스 규모가 클수록 해외에 투자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마이너스 규모가 클수록 외국인의 국내 투자자산 규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 3]에 따르면 2008년 자료여서 변화가 있겠지만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에 외국자본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 휘발성이 높은 외국자본의 이탈로 인한 교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공적부문에서 일어나면 국채수익률이 높아져 재정위기가 되는 것이고, 사적부문에서 발생하면 자본철수로 인한 자산거품 붕괴, 저성장, 고실업의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다시피 정부부채 규모가 꽤 큰 포르투갈에서는 국채수익률이 장기에 걸쳐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외국자본 철수로 인한 사적부문에서의 자산거품 붕괴, 저성장, 고실업도 병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스페인은 앞에서 보았다시피 정부부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당장 국채수익률이 높아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외국자본의 철수로 인한 사적부문의 부진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겠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부진한 사적부분에 정부가 개입을 한다면 정부부채도 늘고 이로 인한 재정위기의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로존에서의 외국자본 철수는 독자통화를 가진 나라들에서보다는 심하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왜냐하면 통화가치의 하락을 예상하고 빠져나가는 외국자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독자통화를 가지고 있었고 자본철수가 심했던 아시아 위기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위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시아 위기에서는 통화가치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인해 해외부채를 지고 있는 경제단위의 급격한 부실화와 수출의 빠른 증대를 통한 경기회복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했었는데, 단일통화를 가진 유럽 위기의 경우 급격한 부실화나 빠른 회복 가능성 모두 아시아 위기 때보다는 덜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위기가 심화되었을 때 그 위기가 미국으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미국 자체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면 유럽 전체가 문제로 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국의 직접적 노출도 그리 크지 않고, 설사 디폴트가 발생해 신용부도스왑으로 인한 피해를 일정하게 입는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008년 통계이긴 하나 미국의 순대외자산 마이너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아(포르투갈, 스페인과 비교해 보라), 외부변수의 약간의 악화가 있다고 해서 달러가치 폭락과 급격한 자본철수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더구나 미국은 여전히 헤게모니 국가여서 다른 국가들과 순대외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동일할 경우 그 위험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덜하다고 해야겠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미 달러가치 하락은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가져오는 좋은 변화라고 환영을 하면서 고대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미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의 대외자산 가치는 상승하여 순대외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고 하겠다. 또한 유로화 출범이후 유로화의 지속적인 강세/달러화의 지속적인 약세로 인해 1유로 당 0.8-09달러에서 1유로당 1.6달러까지 달러가치가 하락했어도 미국에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결국 그리스와 유럽 반주변부의 위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현재처럼 긴축정책과 구제금융의 미봉책으로 일관한다면 그리스와 유럽의 반주변부 민중들에겐 재앙이 될 것이다. 그리스가 채무삭감을 하지 못하고, 재정적자를 계속 줄여 재정흑자를 이룩하고 정부부채 규모를 줄이려면 앞으로도 3-4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정부부채가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에도 적정 채무 규모로까지 정부부채를 줄이려면 지속적으로 국유재산을 매각하고 긴축정책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이런 긴축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단적으로 2011년 1/4분기 유럽연합 노동자들의 시간당 평균 노동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2.6% 상승하였는데, 그리스 노동자의 시간당 노동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8%의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아일랜드는 -2.2%). 이런 길은 자본에게도 치명적일 텐데 왜냐하면 위기 지속 기간이 길어질 것이고 결국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위기의 심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의 전염 등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다른 길도 있어 보이는데, 우선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위기국가들의 부채에 대해 적절한 삭감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전 유럽 차원에서 긴축정책이 철회되고 가능한 국가에서 최대한 경기부양정책이 취해진다면 문제는 더 이상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은 당연히 일부 유럽의 중심부 채권자들이나 금융기관들이 손실을 감수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인데, 이럴 경우 스페인 국채 보유자들이 스페인 채무 삭감 가능성을 예상하고 국채를 팔아치워서 스페인으로도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스페인으로의 전염 가능성은 앞의 길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길만이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노동자 민중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는 길이고, 가장 신속한 위기탈출의 길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위기탈출 가능성이 보인다면 스페인으로의 전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동자 민중들의 생존권이나 노동권을 희생하면서 자본의 소유권이나 특정 체제를 구제하기 보다는, 생존권이나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자본의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체제를 변화시키는 방향이 더 적절해 보인다. 비록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집트 민중들의 투쟁을 따라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기대해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월 21일 그리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집권 사회당 파판드레우 수상은 내각을 새로 구성하여 의회에 신임투표를 붙여 이를 통과시켰다. 이는 구제금융 자금 5차 지급을 계기로 채권자들, 즉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이 추가로 요구한 긴축정책을 통과시키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이런 조치가 필요했던 것은 긴축정책에 대한 반감이 엄청나 파판드레우 수상이 이끄는 정부와 사회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그 여파로 집권 사회당 내에서도 이반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월 15일엔 스페인의 ‘분노한 시민들’의 광장점거 시위를 따라 한 시위가 아테네에서 30만이 모여서 진행되었고, 민간부문 노총과 공공부문 노총 둘 다 24시간 총파업을 벌였으며, 긴축정책을 의회에 통과시키려고 잡아 놓고 있는 28일엔 이번 위기 들어 처음으로 양대 노총이 48시간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던 터였다.
새로 구성된 내각이 의회 신임투표를 통과하였다 하더라도 긴축정책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이번에 예정되어 있는 5차 자금을 수령하거나 아니면 일각에서 전망하는 제 2차 구제금융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이런 과정이 모두 차질 없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 긴축정책안이 국민들로부터 별 저항 없이 집행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두 불투명하다. 아무튼 이것이 2010년 5월에 시작된 그리스 구제금융과 긴축정책 시행의 현재의 모습이다.
그리스만이 아니다. 아일랜드는 2010년 11월에, 포르투갈은 2011년 5월에 차례로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였다. 모두 유럽 반주변국들의 재정위기에서 비롯한 경제위기 때문인데 이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까지 번질지, 그래서 유럽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그 결과 유로화가 붕괴할 것인지 등이 현재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럽 반주변의 위기와 구제금융
2000년대에 주택부문에서 거대한 거품이 형성되었다가 붕괴되면서 2008년 들어 미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했다면, 2008년부터 유럽에서 진행된 경제위기는, 한편으로는 유럽 각국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이런 금융거품의 형성과 붕괴에 얽혀 있으면서 발생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로화 출범 이후 유로화 강세로 인해 유럽의 반주변부에서 주로 형성된 거대한 거품이 붕괴하면서 초래된 것이기도 하다. 즉, 2008년에 미국을 시발로 경제위기가 도래했고, 이것의 여파로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빠져들었지만, 이 와중에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폭증한 유럽의 반주변부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제 2차 경제위기에 돌입하여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차례로 유럽금융안정화기금과 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 나라들이 구제금융을 받은 이유는 단적으로 금융시장에서 정상적인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표 1] 참조).
참고로 구제금융 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는 7천5백억 유로의 상당부분은 유럽금융안정화기금인데, 이를 조성하는 데에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중심부 국가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그러면 이들 국가들의 경제위기는 이제 가실 기미가 있는가,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가? 앞서 맨 먼저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이야기를 했지만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간단히 알아보기로 하자.
상황을 악화시킨 긴축정책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은 구제금융을 제공한 뒤 이들 국가의 사정이 호전되어 금융시장에서 정상적인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경우 구제금융으로 일시적인 유동성위기를 해소한 뒤 2012년부터는 만기도래하는 빚의 75%를 차환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였다. 즉 2012년 이후로는 정상화의 길을 밟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는 사정이 악화되어 최근에는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얘기되고 있다. 아니 디폴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구제금융 당사자들이 그리고 있던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IMF 구제금융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이 주도한 이번 구제금융도 가혹한 긴축정책을 요건으로 하여 제공되었다. 재정적자가 줄고 결국은 재정흑자를 이룩해 정부부채가 줄어들어야 이들 위기 국가에게 빌려준 돈을 상환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구제금융 자금을 한꺼번에 지불하지 않고 몇 차례 나눠 주면서 구조조정을 점검하고 필요한 때는 추가 구조조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애초에 예상했던 결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 다시 구제금융을 받은 지 가장 오랜 시간이 흐른 그리스의 예를 들어보자.
2010년 5월 구제금융을 개시할 때 구제금융 당사자들은 그리스의 2010년과 2011년 성장률을 각각 -4%와 -2.6%로 전망하였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3월에 검토한 결과 각각 이 수치는 -4.5%와 -3%로 하향 수정되었다. 정부 재정적자는 2010년과 2011년 각각 국내총생산 대비 8.1%와 7.6%로 예상을 했는데, 역시 올해 3월에는 각각 9.6%와 7.5%로 수정되었다.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 대비 각각 8.4%, 7.1% 예상에서 10.5%, 8.2%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국가부채 상황은 당연히 악화하였다. 구제금융 초기에는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2012년에 149%로 최고치로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올 3월에는 이 수치를 159%로 수정하였다. 더 악화하고 있는 사정을 반영했으리라.
이런 수정은 2011년 3월에 진행된 것이어서 2010년도 수정치는 확정된 경제통계치는 아니더라도 대강 나타난 경제실적을 보고 수정한 것일 텐데, 이를 보면 이들의 애초 예상이 현실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2011년의 바뀐 예상치도 실제로는 더 악화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렇게 예상보다 못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로 유럽에 정부부채 문제가 드러나면서 구제금융을 받게 된 나라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들까지 유럽연합 전 가맹국에서 확산된 긴축정책의 영향을 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요 부족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요를 더욱 위축시키는 긴축정책을 전 유럽에서 시행했으니(보수당이 집권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의 성장이 저하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리스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는 당연히 세입 부족을 초래해 재정적자는 애초 예상만큼 줄지 않았고 정부부채는 예상보다 더 늘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보면 몇몇 나라의 재정위기를 빌미로 한 유럽연합 전체차원의 긴축정책으로의 선회는 그리스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은 꼴이 되었다.
미봉책의 연속
이렇게 그리스 사정이 애초 예상보다 더 악화되고 있는데도, 유럽연합 등 채권자들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회피하면서 지속적으로 긴축정책의 강도를 높여가기를 주문하고 있다. 그 결과는 그리스 경제의 침몰이며, 그리스 민중들의 삶의 파탄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연합 채권자들은 채권자들대로 결국 감당해야 할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부채 상환능력은 더 고갈되어 가고 부채 규모는 애초 예상보다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뒤따르는 수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채무 조정 내지는 삭감 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현재는 민간 금융자본을 이 과정에 끌어들일지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독일 수상 메르켈의 얘기가 나오자 금융자본들은 그럴 경우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면서 협박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할까? 오늘날 금융상품이 극도로 복잡하고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쉽게 이야기할 성질은 아니지만, 지금도 시장에서는 그리스의 디폴트와 뒤이은 채무삭감을 예상하여 국채수익률이 결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예상과 예상이 현실화하는 것은 그 효과가 약간 다르겠지만 디폴트와 채무삭감이 있다 해도 상황이 현저히 더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에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리만 브라더스의 총자산 규모는 6000억달러가 넘었고, 다른 문제가 되고 있던 투자은행들의 자산규모와 미국국제그룹(AIG)의 자산규모까지 치면 그야말로 수조달러에 이르렀고, 그리스 정부채 규모는 불과 3000억 달러 내외다. 자신들은 전혀 손해를 입지 않고 손해를 전부 공적부담으로 떠넘기려는 술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질질 끌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스 경제가 더 악화하면서 그리스의 채무삭감 규모가 커지고 이것이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디폴트로,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구제금융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유럽 위기의 전망
자연스럽게 이후 유럽 재정위기의 전망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서 누구도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몇 가지 경제지표나 통계를 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우선, 그리스의 정부부채 보유상황을 보면서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표 2]를 보면 지금은 약간 달라졌겠으나 2010년 3/4분기 기준으로 그리스 정부부채의 32%는 자국인이 보유하고 있고, 외국인 보유 비중은 68%이다. 유로존은 54%,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이 각각 14%, 독일이 9%를 보유하고 있다. 직접적인 위험 노출정도로 보면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 그리고 독일 순이다. 미국은 1%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어서 미국의 직접적인 위험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직접적인 위험노출만 보면 다른 위기 국가들에도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치면 위기 국가들 대부분이 라틴계 국가들인데 미국경제는 이들과의 경제 연관성이 매우 낮다. 그런데 이런 직접적인 위험 노출 이외에 미국금융기관들이 채권이 부도가 났을 때 그 원금지급을 보장해주는 보험성격의 금융상품인 신용부도스왑(CDS)을 많이 판매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는데 직접노출보다는 훨씬 크다고 한다.
둘째, 관련국들의 정부부채 수준을 알아보면서 이야기해 보자. [표 3]을 보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부채수준이 매우 높은데 특히 그리스는 위기를 경과하면서 그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다. 그 외 국가들의 경우 위기 이전, 즉 2008년만 해도 정부부채 수준이 대체로 80% 이하여서 크게 문제가 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부채 비율은 매우 낮았다가 경제위기 과정에서 매우 높아졌다. 은행위기가 터지면서 정부가 이에 개입하면서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위기 3개국 이후 다음 위기 국가로 지목되고 있는 스페인의 정부부채 비율은 의외로 매우 낮다. 스페인의 경우 민간부문의 부실이 매우 심각한데 여기에 정부가 개입을 할 것인지의 여부, 그리고 정부개입 수준에 따라 이후 정부부채 비율이 변화를 겪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긴축정책으로 정부부채증가를 둔화시키는 것이 경기확장에 도움이 된다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정부부채 수준으로만 보면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뒤에서 살필 순대외자산을 보면 더더구나 긴축의 필요성이 있는 나라는 아니다. 보수당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영국은 긴축정책으로 최근 성장률이 매우 지지부진한 상태다([그림 1] 참조).
마지막으로, 순대외자산 규모를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자. 순대외자산은 플러스 규모가 클수록 해외에 투자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마이너스 규모가 클수록 외국인의 국내 투자자산 규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 3]에 따르면 2008년 자료여서 변화가 있겠지만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에 외국자본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 휘발성이 높은 외국자본의 이탈로 인한 교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공적부문에서 일어나면 국채수익률이 높아져 재정위기가 되는 것이고, 사적부문에서 발생하면 자본철수로 인한 자산거품 붕괴, 저성장, 고실업의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다시피 정부부채 규모가 꽤 큰 포르투갈에서는 국채수익률이 장기에 걸쳐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외국자본 철수로 인한 사적부문에서의 자산거품 붕괴, 저성장, 고실업도 병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스페인은 앞에서 보았다시피 정부부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당장 국채수익률이 높아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외국자본의 철수로 인한 사적부문의 부진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겠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부진한 사적부분에 정부가 개입을 한다면 정부부채도 늘고 이로 인한 재정위기의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로존에서의 외국자본 철수는 독자통화를 가진 나라들에서보다는 심하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왜냐하면 통화가치의 하락을 예상하고 빠져나가는 외국자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독자통화를 가지고 있었고 자본철수가 심했던 아시아 위기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위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시아 위기에서는 통화가치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인해 해외부채를 지고 있는 경제단위의 급격한 부실화와 수출의 빠른 증대를 통한 경기회복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했었는데, 단일통화를 가진 유럽 위기의 경우 급격한 부실화나 빠른 회복 가능성 모두 아시아 위기 때보다는 덜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위기가 심화되었을 때 그 위기가 미국으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미국 자체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면 유럽 전체가 문제로 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국의 직접적 노출도 그리 크지 않고, 설사 디폴트가 발생해 신용부도스왑으로 인한 피해를 일정하게 입는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008년 통계이긴 하나 미국의 순대외자산 마이너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아(포르투갈, 스페인과 비교해 보라), 외부변수의 약간의 악화가 있다고 해서 달러가치 폭락과 급격한 자본철수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더구나 미국은 여전히 헤게모니 국가여서 다른 국가들과 순대외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동일할 경우 그 위험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덜하다고 해야겠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미 달러가치 하락은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가져오는 좋은 변화라고 환영을 하면서 고대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미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의 대외자산 가치는 상승하여 순대외자산의 마이너스 규모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고 하겠다. 또한 유로화 출범이후 유로화의 지속적인 강세/달러화의 지속적인 약세로 인해 1유로 당 0.8-09달러에서 1유로당 1.6달러까지 달러가치가 하락했어도 미국에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결국 그리스와 유럽 반주변부의 위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현재처럼 긴축정책과 구제금융의 미봉책으로 일관한다면 그리스와 유럽의 반주변부 민중들에겐 재앙이 될 것이다. 그리스가 채무삭감을 하지 못하고, 재정적자를 계속 줄여 재정흑자를 이룩하고 정부부채 규모를 줄이려면 앞으로도 3-4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정부부채가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에도 적정 채무 규모로까지 정부부채를 줄이려면 지속적으로 국유재산을 매각하고 긴축정책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이런 긴축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단적으로 2011년 1/4분기 유럽연합 노동자들의 시간당 평균 노동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2.6% 상승하였는데, 그리스 노동자의 시간당 노동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8%의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아일랜드는 -2.2%). 이런 길은 자본에게도 치명적일 텐데 왜냐하면 위기 지속 기간이 길어질 것이고 결국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위기의 심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의 전염 등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다른 길도 있어 보이는데, 우선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위기국가들의 부채에 대해 적절한 삭감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전 유럽 차원에서 긴축정책이 철회되고 가능한 국가에서 최대한 경기부양정책이 취해진다면 문제는 더 이상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은 당연히 일부 유럽의 중심부 채권자들이나 금융기관들이 손실을 감수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인데, 이럴 경우 스페인 국채 보유자들이 스페인 채무 삭감 가능성을 예상하고 국채를 팔아치워서 스페인으로도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스페인으로의 전염 가능성은 앞의 길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길만이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노동자 민중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는 길이고, 가장 신속한 위기탈출의 길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위기탈출 가능성이 보인다면 스페인으로의 전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동자 민중들의 생존권이나 노동권을 희생하면서 자본의 소유권이나 특정 체제를 구제하기 보다는, 생존권이나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자본의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체제를 변화시키는 방향이 더 적절해 보인다. 비록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집트 민중들의 투쟁을 따라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기대해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