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7-8.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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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적 억지 전략의 위험

류주형 | 정책위원장
지난 6월 17일 서해안에서 해병대 초병이 민항기를 오인사격하는 위험천만한 사태가 발생했다. 처음에 군 당국은 민항기의 항로 이탈 가능성을 언론에 흘렸으나 이는 곧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흘 뒤인 20일 합동참모본부는 “민항기는 정상항로를 운항 중이었고 미확인 물체를 오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초병이 매뉴얼에 따라 조치를 했다”고 덧붙였다.
외신들은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뤘다. AP통신은 “병사들은 훈련받은 대로 대응했을 뿐”이라는 해병대 관계자의 발언을 빌어, 한국이 병사를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타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한국군이 여객기를 사격한 병사의 행동이 규정에 부합하기 때문에 처벌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입장을 보도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지는 사건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투혼’(fighting spirit)을 주문하고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북한의 기습도발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연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우연치 않게, 사건 이틀 전 15일에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식이 있었다. 서방사는 작년 연평도 사태 때 군의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현 해병대 사령부를 모체로 육·해·공군의 협동작전수행 능력을 강화한 합동사령부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싸울 때만 평화와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관진 장관도 “적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이제까지 훈련한 대로 현장지휘관에 의해 주저 없이 강력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이 자위권의 개념이고 ‘선 조치 후 보고’의 행동요령”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들은 사실 작년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새롭게 변화된 ‘선제적 억지 전략’을 재확인한 것이다. 지난 해 12월 7일 김진관 장관은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북한이 재도발할 경우 각급 지휘관이 선 조치 후 보고 개념으로 자위권 행사를 보장해 적 위협의 근원을 제고할 때까지 강력히 응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 다음 날 한미 합참 협의회에서 양국은 ‘북한 도발 시 교전규칙과 정전협정에 구애받지 않고 즉각 전투기와 함포 등으로 북한의 공격원점을 정밀 타격한다’는 한국군의 자위권 행사 원칙에 의견을 함께 했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번 민항기 오인사격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를 거대한 위험의 예고편이다. ‘선 조치 후 보고’ 방침이란 곧 야전의 하급 장교에게 실전을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우발적 사고나 국지적 분쟁이 전쟁 재개로 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연구소장은 22일 미국 외교협의회(CFR) 기고문에서 ‘민항기 오인사격은 한국군의 선제적 억지 전략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군의 선제적 억지 전략이 대폭 수정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김관진 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사고의 원인을 병사의 “훈련 부족, 집중력 부족, 정신적 해이”로 돌린 것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현 정부와 군 당국의 사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1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여전히 극단의 시대에 놓여 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시계 제로’인 한반도 상황만큼이나 세계 경제의 위험과 불안정성도 고조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체계적 위기에 관한 토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이번 『사회운동』은 최근 경기둔화에 빠진 미국과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의 경제 상황을 각각 분석하는 류주형과 박하순의 기사를 <특집>으로 구성하였다. 부록으로 세계 고용, 임금 상황을 개관하는 전준범의 기사를 실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윤정의 ‘현대경제학 비판 강연 참관기’도 일독을 권한다.
<제언>에서 이현대는 최근 진보정당 통합 흐름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제2의 정치세력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최고봉은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반값 등록금’ 문제를 평가하면서 대학 교육의 개혁 방향을 제시한다. 임월산의 기사는 인종주의에 대한 개념적 정의로부터 시작해서 자본주의와 인종주의가 결합하는 구체적 양상을 분석한 뒤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이 반인종주의적·국제주의적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구속된 베트남 노동자들의 사례를 다룬 한재영의 <지역과 현장> 기사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같은 코너에서 김윤영은 풍부한 현장 실사를 바탕으로 오늘날 노동 빈곤층의 실태를 보고한다.
최근 청와대와 현대차자본이 직접 개입하여 노조 파괴 공작을 펼치고 있는 유성기업 투쟁을 <회원칼럼>에 실었다. 지역에서 투쟁에 헌신하고 있는 송민영이 소중한 기사를 보내주었다. 유성 투쟁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지역과 현장에서 조직과 투쟁을 일궈온 윤욱동 금속노조 경기지부 수석부지부장과의 <인터뷰>는 여러모로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이번 호부터 <기획연재>가 새롭게 구성된다. ‘여성노동자 조직화 현황과 과제’를 세 번에 걸쳐 다룰 예정인데, 첫 순서로 유안나가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례를 소개한다. 진재연은 6월 말 공공운수노조 출범에 즈음하여 개최된 좌파 현장조직들의 토론회를 <지상중계>로 다뤘다.
이와 함께 동일본 핵·지진 사태 이후 새삼 그 의미가 중요해진 반핵운동을 조명하는 두 개의 기사를 실었다. 8월 한일시민사회반핵포럼을 제안하는 수열의 기사와 일본의 핵과학자이자 반핵운동가인 다카기 진자부로의 저서에 대한 우지영의 <서평>이 그것이다. 생태운동도 최근 기후정의연대를 결성하여 기후변화 문제에 본격 대응할 태세다. 그 의미를 구준모의 <시론>에 실었다. 복지국가 열풍 속에 새삼 주목받고 있는 스웨덴 모델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이상훈의 기사를 <분석> 코너에 실었다. 이은주는 한미 양국에서 의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보건의료 부문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였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꽤나 두툼한 분량의 『사회운동』이 나왔다. 두께에 값하는 실천으로 독자들과 만날 것을 약속하며 많은 관심과 토론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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